차차차
수안은 한적한 식당에서 아버지와 마주하고 있었다. 식사가 끝날 때까지 말이 없던 수안은 강운모 회장이 숟가락을 내려놓으며 묻자 답을 시작했다.
“내가 왜 대외적인 활동이 필요한데? 물론 재미는 있었다만….”
“아버지. 정치에 관심 있으십니까? 아버지 생각만 확고하시면 제가 밀어드리려고 합니다.”
갑자기 튀어나온 정치라는 말에 강운모 회장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정치? 경제인인 내가 정치를 하라고?”
“아버지가 관심만 있으시다면 얼마든지 가능합니다.”
“아들. 정택주 회장이 어떻게 됐는지 몰라서 그래?”
대현 정택주 회장이 정치에 뜻을 뒀다가 얼마나 고생을 많이 했던가. 지금도 정권과 밀접하게 연계해 대북 사업을 이어 가고 있지만, 강운모 회장은 위태로운 줄타기로 보였다.
“정 회장은 대현 그룹 직원들만 믿고 안일한 태도를 고수해 대선에 실패했습니다.”
예전 정택주 회장이 대선에 출마할 당시 대현 직원들과 그 가족들을 더해서 최소한 1천만 표 이상을 가져간다며 확신에 차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결과는 대패.
표심을 너무 만만하게 생각했던 정택주 회장이다. 산술적으로 계산해 봤자 답이 없는 것이 표심이다. 회사에서 월급을 타간다고 사장을 대통령으로 뽑아 줄 직원은 많지 않았다.
이 당연한 사실을 그때는 몰랐다.
“아버지는 언제든 정치에 발을 들이셔도 성공하실 겁니다. 강운 그룹 직원들은 고려하실 필요 없습니다. 표심은 언론이 만들어 주고 아버지의 업적이 만들어 줄 테니까요.”
수안은 이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강운 그룹 직원들과 국민의 표심은 전혀 다르다.
그런데 미래를 위해 일을 끌고 오다 보니 보이기 시작했다.
정치권에 강력한 우군을 만들어 놨다. 이현창과 김대준 그리고 민국당 국회의원들과 통합신당의 국회의원들이 모두 강운 그룹을 우러르고 있었다.
검찰 권력도 삼디와 대현을 넘어섰다. 많은 고위 검사가 강운의 지원을 당연하게 생각하고 있었고 초임 검사들도 강운 그룹의 장학생이 되려고 애쓰고 있었다. 거기다 수안과 직속으로 연결된 학교 동기들과 선후배들이 즐비했다.
언론은 말할 것도 없었다. SBS를 인수하기 전에도 언론은 강운 그룹에 밉보이지 않으려 애쓰고 있었다.
대한민국의 모든 권력이 모두 강운 그룹에 있는데, 아버지에게 대권을 선물하는 일도 가능하다고 여긴 것이다.
“…날 대통령까지 시키려고?”
“안 될 것도 없지 않습니까. 아버지가 정택주 회장에 비해서 부족한 것이 뭐가 있습니까? 인물이나 자산이나 아버지가 낫습니다. 하물며 자식 농사까지 전부 아버지가 우세합니다. 김대준 대통령도 일찍부터 민주화 운동을 했을 뿐입니다. 정치는 오히려 김일삼이 나았습니다. 또한 앞으로의 세계는 경제인의 시대가 될 겁니다. 경제인이 정치인이 되지 말라는 법은 없지요.”
수안은 이현창을 대통령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하면서 깨달았다.
‘이현창에게 들이는 노력이면 아버지를 대통령으로 만들고도 남는다.’
역사에 대통령이 된 적 없는 사람도 노력 여하에 따라 대통령으로 만들 수 있을 정도이니, 아버지 강운모 회장이 대통령이 되지 말라는 법이 없었다. 미래를 안다는 것은 그만큼 대단한 무기였다.
“너무 허황하지 않으냐? 내가 대통령이라니. 그런 자리는 아무나 앉는 게 아니야.”
“대통령이라는 자리가 대단하다고 생각하십니까? 어차피 일은 실무 공직자들이 합니다. 대통령은 얼마나 실력 있는 부하들을 많이 가졌는지가 중요합니다. 대통령 자신이 똑똑한 것은 아무런 쓸모도 없습니다. 그리고 정치는 돈으로 얼마든지 가능합니다. 우린 여당과 야당을 손에 쥐고 있고 검찰 권력까지 좌지우지할 수 있지요. 국내 언론은 더 쉽습니다. SBS를 소유했고, 강운과 얽힌 언론사가 대부분이죠. 강운의 지시에 따라 언론이 움직일 겁니다. 이래도 힘들어 보이십니까?”
“……!”
틀린 말이 없었다. 정치권에 상당한 힘을 발휘할 수 있고, 검찰까지도 틀어쥐고 있었다. 지금 당장 청와대에 들어가도 자연스럽게 국가를 경영할 수 있는 강운모 회장이다. 언론에서도 함부로 강 회장이 가진 권력을 트집 잡지 못할 것이다.
“남은 것은 국민의 지지. 앞으로 이것만 얻으시면 아버지의 대권 도전은 손쉽게 성공입니다.”
“…당장 결정할 일은 아니야.”
“예. 충분히 고민하셔도 됩니다.”
“네 말대로 대통령이 아니라도 내가 가진 힘이 대통령과 같다면 뭐 하러 청와대까지 가?”
대통령은 선출된 임시직. 자신의 회장 직함은 죽어서 내려오기 전까지 종신직이다.
“역사에 이름이 남을 테니까요. 남자가 그 정도 위치엔 올라 봐야 하지 않습니까?”
남자의 웅심을 자극하는 건 수안이 전문이다.
“가정에선 존경받는 아버지, 강운 그룹 재계 서열 1위를 확고하게 만든 유능하기 짝이 없는 경제인, 마지막은 대통령으로서 대한민국을 강대하게 변모시킨 훌륭한 지도자!”
“……!”
“여야의 정쟁은 모습을 감추고 언론은 바짝 몸을 낮춥니다. 국민은 새로운 지도자가 얼마나 대단한 능력을 갖췄는지 확인할 수 있을 겁니다. 대통령의 손가락질 한 번에 국내 경제인 모두가 한 방향으로 움직이고 정치인들은 대통령이 관심을 표한 법안과 임명한 인물들에 100% 찬성표를 던집니다. 대한민국의 모든 것을 결정하는 사람. 아버지가 되셨으면 좋겠습니다.”
“…….”
수안이 아버지를 대통령 자리에 올려놓으려고 하는 이유는 바로 22년 후에 발생할 바이러스 사태 때문이다. 지금은 김대준이 권력을 잡고 있고 이후에도 김대준의 키즈가 잡는다 치면 10년이 지난다. 이후 이현창이 권력을 잡으며 10년을 생각했었지만, 지금은 5년으로 줄여 버렸다.
‘이현창은 5년 시켜보고 내릴지 말지 살펴보자. 정부와 유기적인 협조를 얻으려면 아버지 외엔 답이 없어.’
아버지가 대통령으로 재임하는 동안 감염병 사태를 조기에 막아내고 국내에 예방 백신과 치료제를 1차로 공급, 이후 해외에 공급하면서 국가 위상을 높인다는 계획이다.
“…가능성은 얼마나 되겠느냐.”
“아직은 가능성을 따지기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저는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일전에도 회장 출신의 경제인이 대권을 잡은 일이 있었다. 이번엔 미리부터 이현창이 잡초를 뽑아내듯이 내쳐 버렸다. 검찰까지 동원해서 철저하게 짓밟았다. 대현 건설 회장 출신의 그자가 다시 정치로 복귀할 일은 없을 터였다.
‘그런 얼굴을 가진 사람도 인기를 얻어 대통령이 됐는데, 아버지가 못한다는 건 말이 안 되지.’
게다가 아버지는 그 사람처럼 돈 욕심을 부릴 사람도 아니다. 아버지가 대권에 오르기 전에 강운 그룹은 세계적인 대기업으로 성장해 있을 것이다.
BE 인베스트먼트가 이룬 성과와 앞으로 할 일들을 생각하면 결코 과한 추측이 아니었다.
“내가 대통령이 된다고….”
“건강만 잘 챙기십시오. 매일 운동하시면 70대가 되셔도 강건한 몸을 자랑하실 겁니다.”
“몇 년 후를 노리느냐.”
“현 대통령이 올해 취임해서 5년 고스란히 남았고, 이후에도 5년은 어려울 것 같습니다.”
강운모 회장은 차차기도 어렵다는 말에 수안이 공을 들여 키우고 있는 정치인을 떠올렸다.
“이현창 때문이냐?”
“아닙니다. 이현창은 다음에 출사표를 던질 것 같습니다. 아버지는 그 이후 대권을 노리면 됩니다. 인기를 얻는 정치인은 사이사이에 전부 정리할 수 있습니다.”
수안의 말대로라면 자신의 차례는 15년이 지나야 했다.
많은 시간이 남았다는 말에 오히려 강운모 회장이 안심했다.
“급할 일도 없군.”
“이미지를 만들기에 더 좋습니다. 지금부터 중요한 때마다 언론에 존재감을 드러내고 천천히 정치에 발을 담그시면 될 것 같습니다. 정택주 회장과는 전혀 다른 행보를 보이시면 사람들도 기대하게 될 겁니다.”
당시 인기를 얻었던 정치인이 했던 일들을 따라서 하면 인기도 저절로 따라온다.
“정치는 이용만 하면서 살 줄 알았더니 네 덕분에 욕심이 생기기 시작해.”
“뭐든 하셔도 됩니다. 아버지는 무소불위의 권력을 가지셔도 잘 어울릴 분입니다. 인물도 훤칠하시고 풍채도 좋으시죠. 벌써 여기서 절반 이상은 먹고 들어갑니다.”
인물이 좋아야 정치도 수월한 법이다.
“큭. 네 녀석이 항상 문제야.”
아들이 자신의 가슴을 두근거리게 했다.
“넌 나가고 최 실장 들어오라고 해. 같이 논의해 보게.”
“예. 회장님. 염 상무도 같이 들어오라고 하겠습니다.”
“그렇지. 셋이서 얘기하면 가타부타 결정이 날 거야.”
* * *
수안은 나가며 최학주 전무와 염동철 상무를 안으로 들여보냈고, 둘은 강운모 회장의 입에서 엉뚱한 소리를 들어야 했다.
“학주야. 동철아.”
“…무슨 소릴 하시려고 들어오자마자 이름을 부르신대요?”
“저도 겁납니다.”
염동철과 최학주의 답에 강운모 회장은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미사여구는 필요 없었다.
“아들 녀석이 대통령 시켜 준다고 하는데 어떠냐? 나 해도 되겠냐?”
“……!!”
“……!!”
둘의 놀람 사이로 정확한 시간까지 제시해 준다.
“당장은 아니고 차근차근 준비해서 15년 뒤라고 하네.”
차기도 아니고 차차기도 아닌, 차차차기. 15년 뒤에 대권을 노리고 있는 아들이다.
“강 부회장이 가능하답니까?”
최학주는 수안이 가능성이 없는 말을 하는 사람이 아니라는 걸 잘 알고 있었다.
부회장으로 옆에서 봐오면서 제대로 수안을 평가할 수 있었기에 던지는 질문이다.
“녀석은 충분하다고 하더라. 놈은 어째서 맨날 자신감만 넘치는지….”
“……!”
‘강 부회장님이 충분하다고 했으면 충분한 거다.’
“회장님도 아시지 않습니까. 강 부회장이 충분하다고 했으면 충분한 겁니다. 저는 찬성입니다. 회장님은 경제인도 잘 어울리시지만, 대통령 자리도 잘 어울릴 분입니다. 회장님이 대통령이라니…. 제 가슴이 두근거립니다!”
“동철이 너는 어떻게 생각하는데?”
“…회장님. 아니 형님.”
“왜 인마.”
“대통령 비서실장 자리는 저 주십시오. 최 전무는 회사나 맡기시고요.”
염동철은 그 이후까지 말하고 있었다. 대통령 자리는 당연하다는 뜻이다.
“뭐, 뭐?”
“강 부회장이 된다고 했으면 되는 겁니다. 이번엔 제가 형님 제대로 모시고 싶습니다.”
“야. 염동철. 너 누구 자릴 넘봐?”
“거. 한 번은 양보 좀 합시다. 형님 대통령 자리 앉으면 이번엔 내가 제대로 보필해 볼 테니까….”
“네가 뭘 안다고 회장님을 보필해?”
“네가 있어서 그렇지 내가 어디 나가서 못났다 소리를 듣나?”
“내가 옆에 있어야….”
“아니지. 이번엔 내 차례….”
“…….”
강운모 회장은 최학주와 염동철이 다투는 소리를 들으며 생각했다.
‘그래. 수안이가 된다면 되는 거야. 학주도 내가 대통령감이라 하고, 동철이 녀석도 찬성이고….’
강운모 회장의 의중도 확고하게 변해갔다.
* * *
수안은 아직도 시위를 이어 가고 있는 전직 기화 차 직원들을 뚫고 기화 자동차 본사로 들어갔다.
“험한 꼴을 보였습니다. 죄송합니다.”
마중한 기화 자동차 임원 중 하나가 수안을 영접하며 말했다.
“괜찮습니다. 내버려 두세요. 저렇게라도 풀어야죠. 다만 기한은 정해 둡시다. 만약 한 달 후에도 저렇게 영업을 방해하면 공권력이 투입된다고 일러두세요.”
“예. 사장님.”
오늘 기화 차 사장으로 취임한 수안이다.
“대신 기록은 제대로 해 둡시다. 저들의 요구 사항을 다 사진으로 기록해 두시고, 시위 현장을 영상으로 남겨두세요. 기사로 내보내고도 떳떳한지 봅시다.”
“시위 당사자의 근태를 따로 정리해 두겠습니다. 함께 내보내면 효과가 좋을 것 같습니다.”
“거긴 누구시죠? 첫날이라 이름도 모르는군요.”
“기화 자동차 홍보부. 오세영 부장입니다.”
“머리가 잘 돌아가시네. 기억해 두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사장님.”
“부장 이상 경영진 모두 모이십시오. 간략하게 취임식 끝내고 업무 돌입합시다. 할 일이 태산입니다.”
“예!”
‘오늘부터는 차만 생각한다. 차! 차! 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