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운모 (151/304)

강운모

기화 자동차 인수가 끝나고 구조 조정까지 마무리되었다. BE 인베스트먼트는 다시 기자들을 모았다. 이번에도 빌리가 수고해 주고 있었다.

“오늘 BE 인베스트먼트는 기화 자동차와 관련 중대 발표를 이유로 여러분을 모셨습니다.”

잠시 고개를 들자 기자들의 카메라 플래시가 눈을 어지럽힌다.

촤자자작.

“기화 자동차 인수 시점에서 말씀드린 바와 같이 BE 인베스트먼트는 혹독한 구조 조정을 통해 기업의 체질을 개선하였습니다. 아직도 많은 부채를 안고 있지만, 이는 예전 부채 규모에 비하면 양호하다 할 수 있을 겁니다. 이에 BE 인베스트먼트는 한국 기업에 기화 자동차 경영을 맡기고 본업에 집중하려 합니다.”

빌리는 예전 기화 자동차 입찰에 성공하며 기자들에게 말한 바 있었다.

[혹독한 구조 조정을 끝내고 회사 정상화를 이룬 이후 기화 차 경영을 한국 기업에 맡길 생각입니다.]

“BE 인베스트먼트에서 기화 자동차 경영을 맡길 회사로 선택된 한국 기업은 강운 자동차입니다.”

“……!!”

“……!!”

기자들의 웅성거림 사이로 빌리의 말이 이어진다.

“나머지 발표는 강운 그룹 강운모 회장님께 맡기겠습니다.”

빌리가 자리를 비키자 강운모 회장이 모습을 드러내 마이크 앞에 섰다.

“반갑습니다. 강운 그룹 강운모입니다. 오랜만에 이렇게 기자 여러분 앞에 섰습니다. 검찰청 앞이 아니지만, 어색하진 않죠?”

““하하하.””

기자들의 긴장감이 올라가다가 강운모 회장의 농담에 풀어졌다.

평소 쉽게 만나기도 힘든 그룹의 총수들인 데다 국내 그룹 총수 중에서 가장 규모가 큰 재계 1순위의 강운 그룹이다. 강운모 회장은 이런 자리에서 만날 수 있는 기업 총수가 아니었다.

착. 착착. 착착차착.

기자들의 카메라 플래시도 상당히 조심스럽다.

“우리 강운 그룹은 강운 자동차를 운영하며 국내 자동차 시장에 적응해 왔고, 이젠 BE 인베스트먼트의 위임을 받아 기화 자동차를 경영하게 되었습니다. 기화 자동차는 강운 자동차와 더불어 국내 유수의 자동차 메이커로 발돋움할 것이며….”

…중략….

“기화 자동차 입찰에 강운 그룹이 선택되진 않았지만, BE 인베스트먼트도 나쁘지 않은 선택이라고 자평하고 있습니다.”

강운모 회장의 통상적인 발표는 지루할 정도로 이어졌다. 하지만 마지막 두 가지는 예상할 수 없었던 발표다.

“기화 자동차 최고 경영자 자리에는 강운 그룹 강수안 부회장을 선임하고, 기화의 신차를 1년 이내에 발표하도록 하겠습니다. 이미 강수안 부회장은 기화 자동차 신차 개발을 위해 물밑에서 움직이고 있었으며 BE 인베스트먼트는 신차의 가능성을 보고 강운과 협상을 진행했습니다. 또한 BE 인베스트먼트는 이번 신차 개발의 성공 규모에 따라 기화 차 지분을 강운 그룹과 나누기로 사전 협의가 완료되었습니다.”

강수안 부회장은 기화 차 입찰이 끝나기도 전에 신차 개발을 위해 움직이고 있었고, 프로젝트의 성공 가능성을 크게 평가한 BE 인베스트먼트가 입찰에 참여할 수 있었다는 말로 들린다. 게다가 이미 넘어간 기화 자동차 지분까지 나눌 수 있다고 하니 강운에는 엄청난 호재였다.

기자들의 손이 마구 들리고 있었다.

사회자가 한 명을 지명하자 자리에서 일어난 기자가 질문을 던진다.

“KBS 진성환입니다. 강운 자동차는 완성차 시장 점유율이 상당히 낮습니다. 기화 자동차와 같은 대형 자동차 산업을 운영하는 것과는 결이 다르지 않습니까?”

예상된 질문이다.

“강운은 이번 기화 자동차 입찰에 소진한 자금이 없어 자금에 일부 여유가 생겼습니다. 정부에 발표한 대운 그룹 입찰에 참여하여 국내 자동차 업계에 자리 잡아 보겠습니다. 강운 자동차에 대운 자동차를 더하고 한쪽으론 기화 자동차를 경영하는 셈입니다.”

“아!”

‘기화 자동차를 경영하며 대운 자동차까지 손에 쥐게 되면….’

본래 가진 강운 자동차에 기화 자동차와 대운 자동차까지 더하면 현 1위를 수성하는 대현은 2위로 내려앉게 된다.

기자가 상념에 빠진 사이 다른 기자들의 손이 질문 기회를 요청하고 있었다.

“SBS 현성기입니다. BE 인베스트먼트와의 협력을 축하드립니다. 기화 자동차의 신차에 관해 말씀하셨는데 새로운 차량의 이름은 무엇입니까. 간략한 설명을 부탁드리겠습니다.”

예상된 질문이 아니라 배포한 질문이라고 해야 옳았다. SBS는 비서실에서 미리 알려 준 질문을 던졌고 강운모 회장은 그럴듯한 답변을 이어 갔다.

“개발 중인 해당 프로젝트는 K시리즈라고 명명했습니다. 대현 자동차의 아반떼, 소나타, 그랜저에 대항할 K-3, K-5, K-7이 개발되고 있으며 최고급 트림이라고 할 수 있는 K-9이 준비 중입니다. 올해 신차를 사려고 마음먹으신 고객께서는 기화 자동차에 조금만 더 시간을 주시기 바랍니다. 강수안 부회장이 혁신적인 퍼포먼스를 가진 신차 개발에 몰두하고 있습니다. 후회하지 않을 기다림이 될 것으로 자신합니다.”

기자 회견을 가장한 광고이고 대현에서 출시할 신차를 향한 저격이다.

강운모 회장의 기자 회견은 수안이 기획한 것이다. 본래는 본인이 나가서 언론의 주목을 받으며 등장하려 했지만, 아버지와 자신의 무게감은 확실히 차이가 있었다. 아버지가 언론에 등장하면 발표의 신뢰도가 수직 상승이었고, 강운 그룹의 대외 인지도까지 올릴 수 있었다.

또한 수안이 나서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바로 BE 인베스트먼트와 자신과의 관계 때문이다. 이미 외부 기업들은 BE 인베스트먼트의 주인이 누구인지 알고 있었다. 훗날 BE와 수안과의 관계가 알려졌을 때를 생각하면 기자 회견장에 수안이 나갈 일이 아니었다.

“겨레 신문 김혜인입니다. 기화 자동차가 법정 관리로 들어가며 많은 협력사가 부도로 사라졌으리라 추측할 수 있습니다. 1년 이내에 신차 출시가 가능한 일입니까? 당장은 기업 정상화가 시급한 시기로 보입니다. 이런 시기에 무리하게 신차를 출시하다 보면 오히려 기업의 재무 구조에 악영향이 초래되지 않습니까?”

당연한 의문이다. 아무리 급하게 준비해도 1년은 너무 이른 일정이었다. 차량 개발이라는 것이 마음먹은 대로 당길 수 있었다면 누가 개발 기간을 줄이지 않았겠는가.

“강운 그룹은 기화 자동차가 법정 관리에 들어가는 순간부터 기화 자동차 협력사를 살리는 일에 주력했습니다. 훗날 누가 인수하건 기화 자동차의 정상화를 위해 필요한 일이었고 많은 사람의 일터였기 때문입니다. 강운 그룹은 기화 자동차 협력사와 함께 신차를 개발하고 있었기에 이미 개발 기간은 상당히 흘렀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해당 자금은 강운에서 지출되었고, 이 때문에 BE 인베스트먼트에서 지분을 나누기로 결정한 것입니다. 기화 차에 재무적 부담은 없습니다. 기화 자동차는 무리 없이 1년 이내에 K시리즈를 선보일 수 있습니다.”

“신라 일보 정태식입니다. BE 인베스트먼트의 임시 경영자가 기화 자동차 제조 직원 대부분을 퇴출했습니다. 기화 자동차에 신규 차량 생산이 가능합니까? 신차를 개발하더라도 구매 수요를 공급이 받쳐 줄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좋은 질문입니다. 이번에 BE 인베스트먼트가 근무 태도가 불량했던 제조 직원들을 상당수 퇴출했지만, 생산에 문제는 없습니다. 강운 그룹이 확보한 협력사 중에는 기화 자동차를 생산하던 외주 생산 인력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들은 자동차 조립과 생산에 특화된 전문 인력이며, 기존 근태가 불량했던 직원들과 달리 성실하고 능력 있는 직원들입니다. 강운 그룹은 이들에게 적절한 보상을 지급하고 생산을 이어 갈 계획을 세웠습니다. 이미 외주 협력사와 사전 미팅을 끝냈고 투입을 앞두고 있습니다. 제조 인력 퇴출로 인한 생산 공백은 없습니다. 기화는 기존 차량을 계속해서 생산할 겁니다.”

강운모 회장의 답변에는 거침이 없었다. 자리한 모든 기자의 질문에 미리 준비된 것처럼 확실한 답변을 이어 갔다. 모호하게 넘어가는 질문이 없었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만 더 질문받도록 하겠습니다.”

사회자의 말에 구석에 있던 기자가 손을 들었다.

“CBS 정희수입니다. 강수안 부회장이 기화 자동차를 맡는다고 하셨는데, 그만한 역량이 있습니까? 강수안 부회장은 IT 전문 기업을 경영했지만, 자동차에 관련한 일은 하지 않았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자동차에 경험이 없는 인물이 경영을 맡아서 잘할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강운모 회장은 회견장에 모인 기자들을 둘러보며 말했다.

“기화 자동차에 대한 사전 준비는 전부 강수안 부회장에 의해 준비되었습니다. 기화 자동차가 법정관리에 들어선 시기부터 새로운 K시리즈의 디자인부터 진보된 기술까지 전부 계획했습니다. 중소 협력사에 대한 부분도 모두 강수안 부회장이 기획했고, 실행했습니다. 기화 자동차의 각 협력회사를 통해 확인하셔도 좋습니다. 강운 그룹은 여기에 숟가락을 올린 수준에 지나지 않습니다. 해서 강수안 부회장에게 기화 자동차 경영을 맡기는 것으로 결정했습니다. 강운 그룹은 강수안 부회장에 일말의 의심도 하지 않고 있습니다. K시리즈가 발표되면 이 의문을 해소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합니다. 하지만 한 가지 걱정은 있습니다. 기화 K시리즈 때문에 강운 자동차 판매가 줄어들까 매우 염려하고 있습니다. 강수안 부회장과의 경쟁은 쉽지 않은 일이 될 것입니다.”

“이상으로 기자 회견을 마칩니다. 나머지는 보도 자료를 통해 확인해 주시기 바랍니다.”

“강 회장님! 한 가지만 더 부탁드립니다! K시리즈 대강의 제원이라도….”

“신차 발표일은 언젭니까?”

“회장님!”

강 회장을 찾으며 여기저기서 손을 들었지만, 더 이상의 질문은 허락되지 않는다.

* * *

강운모 회장은 기자들이 부르는 소리를 뒤로하고 무대 뒤편으로 자리를 옮겼다.

“수고 많으셨습니다. 회장님.”

수안은 들고 있던 생수 뚜껑을 열어 아버지에게 건넸다.

강 회장은 수안의 손에서 생수통을 받아 벌컥벌컥 마셨다.

“푸후. 오랜만인데도 재미있네. 다시 젊어진 기분이야.”

강운모 회장의 말에 최학주 실장이 답했다.

“강운은 회장님의 강운입니다. 오랜만에 회장님이 건재(健在)한 모습을 보니 저도 감회가 새롭습니다.”

최학주 실장도 기꺼운 표정으로 오늘 강운모 회장의 기자 회견을 지켜봤었다.

“수안이 네 말대로 가끔 이런 자리도 나와야겠어. 나와 보니 회장이랍시고 커튼 뒤에서 숨어만 있으면 누가 알아줄까 싶어. 내가 이 나이에 현역이 되고 싶은가 봐.”

수안은 아버지의 말에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젊게 살아야 젊어진다고 합니다. TV에 얼굴도 자주 비추시고 강운 그룹 광고에도 나와주십시오. 연예 프로그램에도 가끔 얼굴을 보이시고요. 회장님이 대중에 다가서면 강운 그룹 이미지는 더욱 좋아집니다.”

“…….”

나중에 검찰 포토라인에 서더라도 국민의 호의가 있으면 쉽게 빠져나올 수 있음이다. 또한 아버지를 카메라 앞으로 보낸 이유는 이것이 전부가 아니었다.

“너…. 뭔가 다른 계획이 있는 것 같구나.”

강 회장은 수안의 얼굴이 뭔가를 감추고 있음을 감지했다.

“조용한 곳에 가서 말씀드리겠습니다. 회장님.”

“그래. 이제 가자. 앞으로 기화 차는 네가 알아서 할 일이지.”

수안에게 기화 차를 맡기기로 했으니 더 신경 쓸 필요도 없었다. 수안은 성공적으로 K시리즈를 성공시킬 아들이다. 그보다 아들이 무슨 생각을 가지고 자신을 기자들 앞에 세웠는지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아들이 고작 현역 기분이나 내라고 나를 기자들 앞에 세웠을 리가 없지.’

아들도 자신과 같이 한 번에 여러 가지 일을 노리고 처리하는 타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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