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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충원 (145/304)

현충원

“녀석. 고작 그거 가지고 좋아하긴.”

방금 이방효 사장에게 가능하다는 연락을 받고 수현에게 알린 것이다.

아들 정원이가 서운했다는 말은 당연히 핑계였다. 아침에 출근하느라 바쁜 녀석이 언제 아들과 매번 인사했겠는가. 동생이 원하는 일이라 수안도 들어주고 싶은 마음이었다. 둥지를 떠난 여동생이지만, 언제까지고 챙겨 주고 싶은 마음이다.

“하아. 이제 난 내 사업에만 충실하면 되겠네.”

아버지는 예전에 털어 버리고 집중하라고 하셨지만, 지금까지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하지만 이젠 시원섭섭한 마음도 털어 버릴 수 있었다.

남은 것은 본인의 일이다.

수안은 전화로 기사를 준비시키고 자리에서 일어나 재킷을 입었다.

문을 나와 걸어가는 길에 배영성 사장이 자연스럽게 합류했다.

“펜타그램은 나중에 가셔도 됩니다. 강운 홀딩스도 급하게 처리하실 일은 없고요.”

눈으로는 수안의 일정을 확인하면서도 앞에 있는 기둥을 피하는 곡예를 보여 준다.

이제 사장이라 일을 다른 비서에게 맡겨야 했지만, 아직도 수안의 보필을 도맡아 하고 있다. 수안도 배영성이 아니면 미덥지 못해 쉽게 바꾸자 소리를 하지 못하고 있었다.

“다행이네.”

“그리고 새로 들어온 운전기사 나이는….”

배영성의 가벼운 보고가 이어진다. 운전기사의 나이와 이름. 특히 새로운 운전기사는 스킬이 뛰어나다고 한다. 코너링이 기가 막힌다고 하던가?

“응? 어디서 근무했었다고?”

운전기사의 경력 중에 수안의 마음에 걸리는 부분이 있었다.

“현충원에서 잠시 일한 경력이 있습니다.”

“아…. 알았어.”

‘썩을….’

로비로 내려가자 운전기사가 인사하고 차 뒷좌석을 열어 준다.

“오늘 첫 출근인가? 못 보던 얼굴이네?”

운전기사가 새로 바뀌었다는 사실은 방금 들어 알고 있었다. 그리고 배영성을 통해 그의 특별한 이력도 확인했다.

“예. 회장님. 오늘 첫 출근입니다.”

“앞으론 차 문 열어 주지 마. 나 원래 내가 직접 문 열고 타는 거 좋아하거든. 사람들에게 재벌이라고 떠들고 다니지 않아도 다 알잖아. 내가 이런 거 별로 안 좋아해서.”

“죄송합니다. 시정하겠습니다.”

“자세가 굉장히 바르네? 어깨도 떡 벌어지고.”

수안은 여전히 차에 타지 않고 운전기사와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아. 제가 운동을 좋아합니다.”

“그런데 이 원장님이 벌써 여기까지 손쓰는 거야? 생각보다 선배님 조직 장악력이 어마어마했어.”

“……!”

“내 경호원들도 나름 유능한데 말이지.”

수안은 새로운 운전기사를 국정원 요원으로 단정하고 있었다.

배영성은 옆에 있다 수안의 말을 듣고 깜짝 놀랐다. 그리고 방금 펼쳐서 읽어 줬던 운전기사의 이력을 다시 살펴보기 시작했다. 어디에도 국정원과 연관 지을 단서는 보이지 않았다.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모르겠습니다. 회장님.”

신입 운전기사의 말에 수안이 다시 답했다.

“현충원에서 일했다며? 내가 현충원을 좀 알거든.”

그의 이력에 들어간 현충원 근무 이력. 현충원은 국정원 요원의 위장 신분으로 사용되곤 했다.

수안은 우연한 기회에 귀동냥으로 들어 알고 있었다. 과거 정금용 시절의 일이다.

“…….”

“미안하지만, 난 이런 경호가 질색이라 사양할게. 내가 돈이 없어 사람이 없어?”

수안은 고개를 돌려 말했다.

“배 사장.”

“예. 회장님.”

“오늘은 오랜만에 최 실장이 운전하는 차로 가 보자. 운전실력 녹슬지 않았겠지?”

“…예. 회장님. 홍정욱 씨 오늘은 사무실에서 일하세요. 방금 운전기사 보직은 보류됐습니다.”

배영성은 곧장 휴대 전화를 들어 최장호를 호출했다.

“…….”

충분히 충격을 줄 만한 말이 이어졌지만, 홍정욱은 여전히 무표정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렇게 무섭게 쳐다보면 나 겁나는데?”

수안의 말에 얼른 고개를 숙이는 홍정욱이다.

“…죄송합니다.”

“자네가 실수한 건 없었어. 현충원 근무 이력 하나가 내 신경을 거슬렸던 것뿐이야. 원장님께는 내가 잘 전달 할 테니 불이익은 없을 거야.”

“…….”

“배 사장. 저기 최 실장 온다.”

수안과 배영성은 멀뚱하게 서 있는 홍정욱을 남겨두고 차에 탔고 차는 금방 코너를 돌아 모습을 감췄다.

“…강 회장이 현충원을 어떻게 알고 있지?”

국정원 요원의 궁금증은 해결할 수 없는 의문이었다.

수안의 의심이 사실이라는 뜻이기도 했다.

* * *

수안이 탄 차는 조금 가다가 멈췄다. 수안과 배영성이 내린 차에서 최장호는 내부를 샅샅이 뒤지기 시작했다.

“…없습니다. 회장님. 아직 설치 전으로 보입니다.”

“도청기까지 있었으면 이 원장이랑 연을 끊어야지.”

“…어떻게 아셨습니까?”

배영성은 차 안에 도청 장치가 있을지 몰라 지금까지 궁금증을 마음속에만 품고 있었다.

“예전에 동네 할머니 손자가 있었어.”

“동네 할머니 손자요?”

배영성과 최장호는 수안이 겪고 온 미래에 대한 내용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나라에서 하는 일이 매번 그래. 아버지, 어머니 다 있는 유복한 집 자식은 험한 일을 시키지도 않아. 갑자기 사라진다고 해도 크게 문제가 안 될 사람들. 그런 사람들을 험한 일로 내몰아.”

수안은 지나가듯 들었던 당시의 일을 떠올리고 있었다.

“그 친구는 조부모 밑에서 어렵게 자라서 군대 갔다가 특등 병사도 됐다고 들었어. 그리고 나름 머리도 좋아서 시키는 일도 곧잘 하는 어린 친구였지. 할머니는 손자 자랑이 대단했어. 나라의 공무원이라고 했거든. 물론 할머니가 손자의 자세한 일들까지 자랑하진 않았지만, 대충 눈치로 위험한 일을 하는 손자라는 건 예상했지. 할머니 손자는 몇 달씩 사라졌다가 돌아오곤 했거든. 얼굴도 검게 그을리고 말이야. 외교관이 아닌 다음에야 뻔한 일이지.”

훈련을 받았는지 아니면 해외 특수 임무에 파견되었는지 모른다. 어쩌면 북에 침투했다가 돌아오는지도 모를 일이다.

“어느 날부터 할머니 손자는 한참을 집에 돌아오지 않았어.”

“……!!”

“……!!”

“할머니도 나중에서야 알았는데 지병으로 사망했다는 진단서가 우편으로 왔더래. 그렇게 건강하던 손자를 얼굴도 못 보고 떠나보낸 거야. 할머니는 죽은 손자 얼굴이라도 보겠다고 손자의 일터를 찾아갔지. 누군가를 만나고 돌아온 할머니는 잔뜩 겁에 질려 있었어. 어디 가서 뭐라고 할까 봐 할머니까지 겁줘서 돌려보낸 거지. 그래서 내가 현충원에 대해서 아는 거야. 그 손자가 적을 둔 곳이 바로 현충원이라….”

“그럼 그 손자가 바로….”

“내가 생각하기로 국정원에서 파견한 북파 공작원이 아니었을까 싶어. 시체도 찾지 못하고 사망으로 처리하지 않았을지….”

“회사로 돌아가면 홍정욱 씨와 얘기해 보겠습니다.”

“아마 벌써 사라졌을 겁니다.”

최장호도 같은 부류라 잘 알고 있었다. 최장호도 특임대 직전까지는 갔던 인물이다.

“정체가 탄로 났는데 아직도 그 자리에 있으면 실격이죠. 그게 아니라도 원에 연락하고 복귀 명령을 들었을 겁니다.”

수안은 최장호의 말에 머리를 헝클이고 말했다.

“에이. 오늘은 아무래도 펜타그램으로 가야겠다. 괜히 마음이 급해서 개발실로 가려다가 일이 이렇게 꼬이네.”

“펜타그램으로 모시겠습니다.”

셋은 차에 타고 조용히 펜타그램으로 향했다. 도청 장치는 없다고 했지만, 정밀 검색을 하기 전까지는 조심해야 한다고 들었기 때문이다.

이제 규모가 상당히 커진 펜타그램에서 직원들의 인사를 받으며 집무실로 들어간 수안은 서랍에서 안 쓰던 휴대 전화를 찾아 손에 들었다. 그리고 지갑에서 종이를 꺼내 확인하며 번호를 꾹꾹 누르고 나서 통화버튼을 눌렀다.

-여. 강 회장.

“원장님. 강녕하셨습니까.”

-내가 매번 이렇게 호칭을 바꿔 줘야 하나? 선배라고 하시라고요 후배님.

“죄송합니다. 제가 또 이러네요. 선배님.”

격 없이 지낸다는 말이 잘 어울리는 두 사람이다.

-우리 직원 돌려보냈다며?

이현창도 방금 보고 받아 알고 있었다.

‘가볍게 말하는 걸 보니 적의를 갖고 행한 일은 아닌 모양….’

“죄송합니다. 제가 워낙에 민감해서 베테랑 요원을 난감하게 했나 봅니다.”

-어떻게 알았어? 현충원 때문에 알았다고 하던데.

“뜬소문이긴 한데 현충원에 대해서 소문이 돌았던 적이 있습니다. 국정원 비밀 요원들 신분을 현충원 묘지기로 사용한다고 하더군요.”

-그런 소문은 또 언제 난 거야? 누가 알려줬는데?

“저도 기억이 가물가물합니다.”

-어쭈? 정보 제공자의 신변 보호는 확실하게 하시겠다?

“하하하. 넘어가 주십시오. 선배님. 오늘 요원도 불이익이 없도록 잘 부탁드립니다. 위장은 확실했지만, 운이 나빴습니다.”

-그래도 내가 앞으로 후배를 엄밀하게 보호해 주려고 보낸 직원을 그렇게 보내버리나? 후배는 이 나라의 보배란 말이야. 나라에서 보호를 해 줘야 한다고. 나라에선 겨우 전직 대통령을 보호할 것이 아니라 강 후배를 보호해야 해. 그래서 특별히 운전 스킬 좋은 요원까지 선별했는데 말이지….

“항상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선배님.”

-똑똑한 후배님은 스스로 잘 지켜. 이제 나도 모르겠으니까.

“잘 숨어다니고 위험한 일이 생기면 얼른 도망가겠습니다. 저 달리기 빠르지 않습니까.”

-푸흐하하. 그렇지. 강 후배가 세상에서 제일 빠른 사람이지.

둘은 한참 시답지 않은 대화로 시간을 죽였고, 이현창은 본론을 꺼내기 시작했다.

-사실 확인 끝냈네. 자네 직원들이 정말 정확했더군. 전부 일치해.

“…걱정이 많지만, 입 밖으로 꺼내지 않겠습니다.”

이현창이 말하는 사실 확인은 스위스에 존재하는 북한 차기 후계자를 말함이다. 이현창은 원장으로 취임하자마자 요원들을 보내서 수안의 말이 사실임을 확인했다.

-국가 중대사라고 할 수 있어. 향후 대한민국의 향방이 이번 작전으로 판가름 날 수도 있네.

“저도 이해하고 공감합니다.”

-시간이 넉넉해서 다행이지. 우선 회유책으로 시작하려 하네.

“저는 더 듣지 말아야 할 것 같습니다.”

관련 정보를 더 들어 봐야 걱정만 많아진다. 차라리 안 듣는 쪽이 속 편하다.

-자네는 역시 현명해.

“선배님의 어깨가 참 무겁겠구나 싶습니다. 고생 많으십니다.”

-말도 예쁘게 하고.

“곧 입찰이 마무리되면 지방의 부품 공장도 잘 돌아갈 겁니다.”

-큼큼.

아들들이 운영하는 공장에 관해서 말이 나오면 민망하기 그지없다.

-후배는 사과할 기회라도 좀 주시게. 애들이 이제나저제나 자네 오기만 기다리고 있다질 않나.

이현창의 아들들은 여태껏 수안을 만나질 못해 지난 무례를 사과할 기회가 없었다.

“안 그래도 오늘 지방으로 가려고 했는데, 날이 아니었던 모양입니다.”

-…….

결국 오늘 일도 자신의 잘못이라 할 수 있었다.

‘괜히 요원을 보내서는….’

“내일부터 지방 부품사와 외주 업체를 둘러볼 테니, 곧 만나겠지요.”

-나중에 조용한 곳에서 좀 보세. 내가 자네 맛난 거라도 사줘야겠어.

“어휴. 예전과 다릅니다. 원장님이 한번 움직이면 얼마나 많은 인원이 움직여야 하는데요.”

-…이거 참.

맞는 말이다. 거기다 해외 기관의 정보 수집 능력까지 예상해 보면 둘이서 만나는 일은 득 될 것이 없었다.

이젠 둘이서 몰래 만나기도 쉽지 않다.

“들어가십시오. 선배님.”

-…알았네. 나중에…. 나중에 보세.

지금은 그저 훗날을 기약할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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