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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지가 가리키는 사람 (141/304)

엄지가 가리키는 사람

이방효에게 부탁해 아현의 에스코트를 부탁했다. 그리고 수안은 정원이를 찾아 파티장을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주원이와 함께 있겠다고 해서 배 사장 가족에게 아이를 맡겨둔 참이다.

수안이 잠시 혼자 돌아다니자 아는 얼굴이 나타나 말을 걸어온다.

“스티븐!”

수안도 상대를 알아볼 수 있었다. 미국에 몇 없는 아는 얼굴이다.

“하하하. 로버트 장관님. 언제 오셨습니까.”

“방금 도착했지. 벌써 파티가 끝나는 건 아니지?”

“설마요. 이제 시작입니다. 곧 가수들의 공연도 시작될 테고요.”

“다행이군. 나와 같이 온 사람들도 있다네. 자네와 좋은 인연이 될 사람들이지. 저쪽에 있군.”

로버트는 수안의 팔을 붙잡고 자신이 아는 사람들에게 데려갔다.

“다들 재미있게 즐기고 있나?”

“로버트 장관님. 덕분에 즐거운 파티에 초대받았습니다.”

“하하. 내가 파티의 호스트를 모셔왔다네. 이쪽은 BE 인베스트먼트의 체어맨 스티븐 강이네.”

로버트의 소개에도 그리 놀라지 않은 상대는 나른한 목소리로 수안에게 말을 걸었다.

“BE의 주인이 당신일 줄은 몰랐어요. 미스터 강. 로버트 장관에게 미리 듣긴 했지만, 지금도 놀랍답니다.”

외부엔 널리 알려지지 않았지만, 금융업에 종사하는 기업가들 사이에선 강수안이 BE의 소유주라는 것이 알려져 있었다. 모두 로버트 재무부 장관의 가벼운 입 덕분(?)이다. 게다가 로버트 재무부 장관 본인이 골드만삭스 출신이다. 덕분에 수안은 말을 거는 사람의 이름도 기억해 낼 수 있었다.

“반갑습니다. 혹시 골드만삭스의 새뮤얼?”

“날 아는군요. 하하.”

“이번에 고마운 보험을 팔아 줘서 기억하고 있답니다. 그쪽은 모건 스탠리의 마커스 CEO 되시고, JP모건의 토마스 CEO도 오셨군요. 모두 제 파티에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와우. 오히려 우리가 고마운 일이죠. 하지만 당신은 BE 최고 경영자를 교체할 필요가 있어요. 그런 보험을 비싸게 주고 사다니 손해가 막심할 겁니다.”

“하하하.”

수안은 상쾌하게 웃으면 대꾸했다.

“설마 그 보험을 우리가 갖고 있겠습니까? 관련 보험은 이미 외부로 팔려나가고 있고 대부분 매각이 끝났다고 알고 있지요. BE에는 그 어떤 리스크도 남아 있지 않아요.”

이들에게 보험을 다 팔아 버렸다고 말하는 이유는 앞으로 일어날 일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기 위함이다. 아직 서류 작업이 시작되지 않았지만, 미리부터 책임을 회피할 기회였다. 곁에 로버트 재무부 장관까지 함께 있질 않은가. 로버트가 훗날 증인이 되어 줄 것이다.

“하! 미스터 리가 그래서 자신만만한 태도를 보였어!”

이들은 관련 보험을 BE에서 모두 보유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제는 보험을 외부로 팔아 버렸다고 착각했다.

‘BE가 큰 손실을 볼 줄 알았더니 이미 위험을 회피한 모양이군. 아쉽게 됐어.’

“그래도 미스터 강의 등장은 너무 강렬했습니다. 스포츠 스타라서 관련 사업을 할 줄 알았더니 금융이라니. 그것도 미국 4대 금융사의 하나인 BE 인베스트먼트라니. 제대로 한 방 먹었습니다.”

“작은 나라지만 제 모국에서 가장 큰 회사를 제 아버지가 경영하고 있죠. 나는 내가 해야 할 분야를 찾았을 뿐입니다.”

“금융은 전문가가 아니면 힘든 분야랍니다. 롱텀 캐피털의 경우 수학 박사들이 잔뜩 포진해 있지요.”

운동으로 유명한 사람이 왜 박사급 인재가 가득한 금융에 손대려고 하냐는 우회적인 질문이다.

“물론 그들의 전문성을 잘 알고 있어요. 하지만 인간이라는 변수는 계산에 넣을 수 없는 법입니다. 천재들은 너무 확신에 차 있습니다. 여러분도 위기가 오는 소리를 듣지 못하는 모양이죠? 이미 제 고국은 그 위기를 겪고 있어서 저는 위기가 오는 소리가 너무 잘 들린답니다. 그래서 BE도 위기를 회피하는 일만큼은 자신감이 넘치지요.”

수안은 이미 보험을 팔았다고 해 버린 참이라 미래의 맛을 약간 보여 줄 생각으로 말을 이어 갔다.

“하지만….”

“이미 당신들도 다음 위기가 어디에서 올지 찾고 있지 않습니까? 당신들뿐만 아니죠. 전 세계 모든 금융기관과 헤지 펀드들이 다음 먹잇감을 찾아 눈에 불을 켜고 있어요. 상황이 이런데도 당신들이 말하는 롱텀 캐피털의 수학 박사들은 레버리지를 최대한도로 일으켜 투자를 집행하고 있지요. 1년 이내에 그들이 막대한 손해를 보지 않을 것 같습니까? 진정으로 그렇게 생각하세요? Really?”

“…….”

“…….”

“확률을 말씀하시니 저도 하나 묻겠습니다. 이 우주에서 지구라는 별이 생겨날 확률은 얼마나 됐을까요? 그리고 그 지구에 단세포 생명이 태어나고 다세포 생명으로 진화할 확률은요? 이후 공룡이 멸종에 이를 때 지구가 파괴되지 않고 멀쩡할 확률은 얼마나 될까요? 마지막으로 당신들과 내가 이렇게 만나서 확률에 관해서 이야기를 나눌 확률은요? 아마 그들이 계산한 확률보다 지금까지 내가 말한 확률이 더 낮았을 겁니다. 하지만 지금 우린 이렇게 마주하고 있죠. 확률은 신봉할 것이 아니라 아주 작은 참고만 해야 하는 겁니다. 진정한 투자자는 수학 박사가 아니라 제 앞에 계신 여러분이죠. 다른 이들은 몰라도 저는 그렇게 생각해요. 그리고 위기의 냄새가 자꾸만 짙게 풍겨와요. 어디선가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는데 아직 정확하게 보이질 않아요. 여러분은 이 냄새가 맡아지십니까?”

수안의 말에는 기이한 흡인력이 있었다. 듣다 보니 정말로 위기가 코앞까지 다가온 기분이다.

“미안하지만 아까 말했듯이 보험은 이미 다 팔렸습니다. 다시 회수하려거든 해외로 나가셔야 할 겁니다. 아마 아주 조금 이득을 보고 해외로 넘겼다고 알고 있는데…. 거대 금융사를 맡아 운영하는 새뮤얼의 말대로 BE의 CEO에 대해서는 생각을 좀 해 봐야겠습니다. 이런 희대의 보험을 외부에 다 팔아 버리다니…. 미리 보고 받았다면 절대로 팔지 말고 보험이 발효될 때까지 대기하라고 했을 겁니다. 아니면 혹시 더 팔아 줄 의향이라도 있습니까? 제 돈을 써서라도 관련 보험을 매입하겠습니다. 이번엔 절대로 외부에 판매하지 않을 겁니다.”

이런 말까지 들으니 팔았던 보험을 회수해야 한다는 마음이 들기 시작했다.

“이제 판매할 보험은 없습니다. 스티븐.”

“그렇소. 이미 발행된 보험도 한계치에 가까우니….”

“회수가 그렇게 힘들 것 같습니까?”

‘경고는 충분히 먹힌 모양이군.’

“이봐. 스티븐. 내 친구들은 그만 괴롭히게. 그리고 여기까지 와서 일 얘기만 할 건가?”

“하하. 오늘은 일에 관해서 얘기하기 그렇군요. 괜히 얘길 꺼낸 모양입니다. 즐거운 파티 아닙니까. 타이타닉의 성공을 마음껏 축하해 주시고 파티를 즐겨 주세요. 로버트 장관님. 제 아이를 보여 드리겠습니다. 가시죠.”

“오! 아들도 데려왔어? 어서 보여 주게. 자넬 닮았겠지?”

수안이 로버트 장관과 멀어지는 동안에도 셋은 조용히 고민에 빠져 있었다.

‘위기? 위기가 또 온다고? 어디지?’

‘롱텀은 완벽한 계산으로 위기를 회피한다고 하지만, 회피할 수 없는 위기라면…. 예측할 수 없는 위기라면 롱텀도 위험해.’

‘젠장. 젠장! 보험을 너무 많이 팔았어.’

이들은 오늘 파티를 제대로 즐기기 글렀다.

파티가 무르익었을 때 희귀병 어린이를 위한 재단과 연계한 기부금 모금 행사가 시작했다. 부호들이 많이 초대된 만큼 기부금은 상당한 금액이 모여들었다.

“신사 숙녀 여러분 지금까지 기부 행사에 동참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모금된 금액은 총 2천 4백만 달러로 이 기부금은 희귀병을 앓고 있는 아이들의 치료를 위해 사용될 것입니다. 그리고 특별히 이번 파티의 호스트인 BE 인베스트먼트에서 3천만 달러를 따로 기부해 주셨습니다. 모두 박수를 부탁드립니다.”

사람들의 환호와 박수가 이어졌고 사회자는 마무리 멘트를 남겼다.

“마지막 공연은 이번 타이타닉 영화의 주제곡입니다. 저는 아무리 들어도 질리지 않더군요. 함께 즐겨 주시길 바랍니다.”

어느새 수안은 정원이를 데리고 와서 아현과 함께 있었다.

“신선하고 놀라운 경험이었어요.”

“나도 그래.”

“이 사장님이 파티 여느라 돈깨나 들었겠어요. 기부금만 해도 3천만 달러잖아요.”

“저렴한 광고비라고 생각하면 될 거야. 이번 파티로 사람들 사이에 BE 인베스트먼트라는 이름을 단단히 각인시켰으니까.”

그리고 이번 파티에 사용된 물건들 대부분 스폰서로 참여한 기업들의 물건이다. BE 인베스트먼트와 관련 있는 회사들의 제품이 파티 참석자들에게 골고루 배포되면 이들은 다시 주변에 광고하는 셈이다.

“저렴하긴요. 광고비 엄청 비싸네요.”

둘이 대화하는 사이 노래는 정점을 향해서 달리고 있었다.

Near, far, wherever you are / 가까이, 멀리, 그대가 어디에 있든.

I believe that the heart does go on / 내 사랑은 계속될 거라고 믿어요.

“그래도 비싼 값을 하긴 하네요. 코앞에서 셀린의 라이브를 듣다니 너무 좋아요.”

“훗.”

아들이 조용해서 내려다보니 품에서 잠들어 버렸다.

‘엄마가 노래 들을 동안 조금만 기다려주렴.’

수안은 아들을 품에 안고 아내와 함께 타이타닉의 주제곡을 들으며 늦은 밤 파티의 여운을 즐겼다.

* * *

한국으로 돌아가기 전 수안은 아현과 떨어져 일리노이주로 향했다.

아현은 쇼핑도 즐기고 주변을 관광할 시간도 생겨서 더 좋다고 했다.

“회장님. 일리노이주는 무슨 이유로 가시는 겁니까?”

배영성은 수안이 갑자기 일리노이주로 향하는 이유를 모르면서도 아내와 아들을 남겨두고 수안을 따라나섰다.

“조용한 곳에 가서 얘기해 줄게.”

“…….”

‘또 무슨 일인 거야?’

상사의 표정이 심상치 않았다.

“누군가를 만나시는 거라면 약속은 되신 거죠?”

“당연하지. 이방효 사장이 미리 연락해 뒀어.”

수안은 배영성과 비행기에 올라 좌석에 앉았고, 수안은 주변을 돌아보며 확인하고 입을 열었다.

“오늘 아주 중요한 사람을 만날 거야.”

“일리노이주에 대단한 사람이 있습니까?”

“있지. 훗날 미합중국의 이게 될 사람.”

수안의 엄지손가락이 들려 있었다.

“……!”

‘미래의 미국 대통령!’

배영성도 엄지손가락을 들어 보여 주며 진짜냐는 듯이 눈을 크게 떴다.

“역시 배 사장은 단번에 알아들을 줄 알았지.”

“그럼. 이번 다음입니까?”

“아니. 차차기라고 해야 맞겠지. 앞으로 10년 남았어.”

클린턴이 앞으로 2년을 더 해 먹을 것이고 이후 공화당의 부시가 당선, 재선까지 하고 나면 딱 10년 후다.

“후우….”

“그렇다고 고작 상원의원에게 긴장하면 쓰나.”

“지금은 상원의원이라는 말씀이시군요.”

“그냥 안면만 익히러 가는 거야. 후원은 이방효 사장을 통해서 넉넉하게 하고 있으니까.”

“한국은 그렇다 치는데, 미래의…. 그 사람에겐 뭘 얻을 수 있습니까?”

국내에선 정권을 잡을 대통령에게 선거자금을 지원했고 앞으로 그에 따른 혜택을 기대할 수 있었다. 하지만 미국에선 뭘 바라고 지원을 이어 가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우선 휴대 전화. 팬탁폰은 미국까지 진출해야 해.”

지금은 스마트폰이 아니지만, 스마트폰을 개발하고 나면 무조건 진출해야 했다.

“그리고 네트워크 시장. 네이보와 다움, 미니홈피가 미국 시장에 진출한다고 생각해 봐. 얼마나 많은 이들이 우리의 서비스를 이용할까? 일전에도 말했지만, 포털 서비스는 첫걸음이야. 광고와 쇼핑을 비롯해 무궁무진한 먹거리가 우릴 기다리고 있어.”

“후우.”

무엇보다 3억 인구의 미국은 시장이 참 먹음직스럽다. 미국에서의 성공은 곧 세계적인 성공과 다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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