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전화를 내려놓는 수안 곁에는 배영성이 앉아 있었다.
“훗날 삼디 자동차를 인수하시려는 포석이군요?”
배영성의 말에 수안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수월하게 넘겨받으면 좋잖아.”
말은 수월하게 하려 했다지만, 과정은 수월하지 않았다.
먼저 응찰가를 삼디 자동차에 넘긴 입찰 사무국 직원들을 수면 위로 끄집어 올려 일을 크게 만들었다. 그 후 다시 영향력을 행사해 이 일을 묻어 버렸다. 훗날 삼디 자동차에서 알아봐도 사실임을 파악하도록 한 것이다. 이래야 거짓이 아님을 파악할 수 있으니 번거로운 과정을 거쳤다.
여기에 응찰가 유출이 아닌 다른 이유를 들어 유찰을 발표한 일련의 일들까지 모두 수안의 계획 중 일부였다. 이번 사건으로 삼디 그룹 이희수 회장과 좋은 인연을 쌓기 시작했으니 훗날 삼디 자동차를 인수할 때 일말의 영향이라도 줄 수 있을 것이다.
“회장님 손바닥이 얼마나 넓은지 상상도 안 갑니다.”
누구든 수안과 함께라면 손바닥 위로 올라가서 춤을 추기 때문이다.
“됐어. 배 사장. 그보다 대현의 움직임은 어디까지 파악했지?”
이번 대통령이 취임사에서 햇볕 정책 발표했다. 당당하게 휴전선을 넘어 북에 다녀오고 싶은 정택주 회장이 이 기회를 놓칠 리 없다. 해서 정택주와 대현 그룹을 주시하라고 얘기해 놨다. 훗날 대현 자동차 정영수 회장에게 조언하려면 지분을 모으는 것 외에도 특별한 도움을 줘야 했다.
“정택주 명예 회장이 일선으로 복귀한다고 합니다.”
“뭐? 벌써?”
“대현 건설 대표 이사로 돌아온다고 합니다. 조만간 대현 그룹 경영자 협의회가 열린다는 얘기도 있습니다.”
대북 사업과 건설의 위기를 보고 잠깐 복귀했을 뿐이지만, 걱정할 사람이 있었다.
“젠장. 정영수 회장이 똥줄 타겠어.”
“몇 번 연락이 왔었습니다. 회장님이 바쁘셔서 제가 미뤄놨습니다.”
“만나자고 해?”
“예.”
만나기 전에 확인할 일이 있었다.
“현 정부 대북 사업 진행 상황은 어때?”
“이제야 윤곽이 드러나고 있습니다만, 정확한 지원 규모를 산정하진 않은 것 같습니다. 보안이 상당합니다.”
김일삼 정부에서부터 대북 지원은 진행되고 있었다. 이번 김대준 정부는 아예 마음먹고 지원할 생각이라 그 규모가 커지고 있을 뿐이다. 몇 개월 뒤 6월이 오면 정택주 회장은 소를 끌고 북으로 넘어가는 쇼를 보여 줄 것이다. 이전 4월엔 대현의 실무 조사단이 북한에 파견되기도 한다.
“조만간 정영수 회장 보자고 해. 힌트 하나 줘야겠다.”
“예. 회장님.”
“자아. 이제 국내 문제도 살펴보자.”
이미 본궤도에 오른 부도 기업 인수 작업은 이제 손을 떼도 될 정도였다. 담당자들도 하루가 다르게 늘어가는 부도 기업 덕분에 기업 인수·합병에 전문가가 되어 버렸다. 지금 수안이 살펴보자는 국내 문제는 부도 기업 외에 금융 위기로 인하여 파생된 일을 가리킨다.
“현재 집값이 하루가 다르게 폭락하고 있습니다. 이 상태로 가면 말씀하신 대로 올해 최저점을 찍을 겁니다.”
이번 금융 위기로 서울 아파트 매매가는 15%까지 폭락하고 전세가도 20% 이상 폭락을 경험한다. 내년 1999년엔 반작용으로 다시 매매가가 13% 가까이 폭등하고 전세가는 32% 폭등한다. 잠깐 사이 롤러코스터를 타는 것이다.
금융 위기로 국내 통화 가치가 바닥에 이르러 있었다. 사실 통화 가치가 바닥을 치고 있으면 실물 자산인 부동산의 가치가 올라가야 맞았다. 지금은 급증한 실업률과 위기의식으로 인해서 잠시 아파트 매매 가격이 하락한 것이다. 이후 화폐 자산이 아닌 부동산의 매력이 수면으로 부상하면 걷잡을 수 없이 오르기 시작한다. 이때를 위해 지금 아파트를 거둬들여야 했다.
“매물이 늘기는 하지만 아직 많지 않습니다.”
“올해 6월부터 올해 말까지 계속 매물이 쏟아질 거야. 경매에서 나오는 물건도 김현성 사장이 잘 챙기라고 해.”
“예. 알겠습니다. 그리고 거둬들인 부동산은 나중에 다시 판매하실 생각이십니까?”
“아니. 그대로 보유하고 전세로 돌려. 투입된 자금은 아파트 담보 대출로 채우고 전세금은 계속 올라가면 회사엔 추가로 돈이 들어올 거야. 자금을 순환시켜서 계속 투자해.”
겨우 이런 일로 돈을 벌어야 하나 싶은 생각도 했었지만, 계산해 보니 결코 적은 돈이 아니었다.
현 시세 3억 원 아파트 100채를 매입하는 데 들어가는 자금을 계산하면 300억. 여기에 80% 담보 대출을 생각하면 60억의 현금만 갖고 100채를 살 수 있는 것이다. 여기서 전세금이 들어온다 생각하면 240억의 현금이 생긴다. 60억으로 100채의 아파트와 현금 240억을 만든 것이다. 담보대출을 전세로 갚아 버려도 되고 이자를 내면서 다시 다른 부동산을 매입할 수도 있다. 선택은 자유다.
100채만 계산해서 그렇지 1천 세대라면 어떻게 될까? 1만 세대라면? 3조 원이다. 6천억을 투자하면 2조 4천억의 현금이 들어온다. 조 단위의 돈을 만질 수 있는 부동산이다.
‘게다가 3억을 주고 산 아파트가 단 몇 년만 지나도 5억.’
보유한 자산은 자산대로 가치를 더하고 들어올 현금은 현금대로 다시 커진다.
“이번 위기로 자금이란 자금은 전부 강운과 더블 스타로 모여들겠습니다.”
“자금이 모이는 것은 아니지. 우린 돈을 쓰고 있잖아.”
부도 기업을 사들이며 쓰는 돈이 수조 원에 이른다.
“나중엔 다 거두지 않겠습니까. 대한민국의 유동 자금이 모두 우리 손에 들어올 겁니다. 이미 BE가 움직이고 있습니다. 국내 금융사 지분도 BE와 관련된 회사들이 취득하고 있고요.”
매일 새로운 바닥을 확인하는 국내 주식시장에서 단 몇조 원의 돈만 있으면 국내 금융 회사 지분을 전부 살 수 있었다. 건실한 회사가 살아남았어도 강운 그룹에 의해 회생한 기업들보다 경쟁력이 있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어려운 일이다. 결국 국내 업계를 선도하는 회사는 강운 그룹의 손자회사들이 될 것이다.
“내가 돈만 벌려고 이러겠어?”
“바로 그게 궁금해서 그럽니다. 이렇게 돈을 벌어서 궁극적으로 하시려는 일이 뭔지….”
미래를 보고 돌아온 자신의 상사는 얼마든지 돈을 벌 수 있다. 이번에 BE 인베스트먼트가 벌인다는 일로도 미국 금융 시장에 엄청난 영향력을 끼칠 수 있을 터였다. 지난번 파이자 제약에 팔아먹은 비아그라 특허는 아무것도 아닐 거대한 거래가 될 것이다.
그렇게 온 세상의 돈을 끌어모으기만 하면 뭘 할 것인가.
자신의 상사는 돈을 많이 가졌다고 행복한 사람이 아니었다. 돈을 쓰는 것을 즐기는 사람도 아니다. 아내와 자식 그리고 가족에게서 행복을 찾는 사람이다. 배영성 스스로와 닮은 사람이라 왜 자꾸 돈을 버는지 궁금했다.
“배 사장이 궁금해하면 내가 풀어 주는 것이 인지상정이지.”
“죄송합니다. 회장님. 제가 괜한 것을 물어서….”
김현성이라면 감히 궁금해하지도 않았을 것이고 답을 해 주기도 어려웠겠지만, 배영성이라면 편안하게 얘기할 수 있었다.
“우선 내가 나서면 외국 자본이 국내 시장을 거덜 내는 상황을 미연에 방지할 수 있어.”
수안이 일차적으로 원하는 것은 국부 유출을 막는 것이다. 이 부분은 배영성도 이미 알고 있는 내용이다.
“덕분에 국내 기업들이 많이 살아남았고, 금융 시장도 해외 자본의 영향력에서 많이 벗어나긴 했지요. 부도 기업에서 일하던 노동자들도 회장님 덕분에 연명할 수 있을 테고요.”
두 번째는 국가를 믿지 못하기 때문이다.
“난 정부를 믿지 않아. 못된 놈을 뽑으면 국민이 낸 세금이 제 주머니로 들어갈 테지. 아무리 좋은 지도자를 뽑아도 정쟁에 치어 원하는 정책을 제대로 실행하지 못해. 국가가 쓰는 돈은 엉뚱한 곳으로 새어 나가고 국민은 다시 세금을 납부해야 해. 악순환이 이어지지. 만약 내가 먼저 거둬서 정확한 곳에 쓸 수 있다면 어떨 것 같아?”
“회장님 그건 너무 과합니다. 나라가 할 일을 일개 회사가 할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도 안 되는 거고요.”
수안의 눈이 가늘어지며 배영성을 노려봤다.
“과하게 상상의 나래를 펼치진 말자. 내가 국가가 맡아서 해야 할 국민 복지 사업까지 진행하겠다는 말은 아니야.”
“…죄송합니다.”
수안이 생각하는 복지는 앞으로 다가올 문제들을 기업을 통해 해결하는 것이다. 기업이 수익 발행을 최소화하고 적당한 물건을 적시에 공급하는 것만으로 발생할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었다.
“강운 건설이 주택을 공급하는 일은 얼마든지 할 수 있잖아. 작은 평수의 임대 주택을 무지막지하게 공급하면 천정부지로 올라가는 집값을 잡을 수 있지 않겠어?”
“서울에 주택을 과잉 공급해 버리면….”
한 사업자에 의해 과잉 공급이 일어날 수도 있었다. 무너지는 건설사를 강운 건설이 흡수하고 있기에 불가능하지 않은 일이다. 이 경우 아파트값을 떨어트리고 싶지 않아도 알아서 아파트 가격이 내려갈 수 있다.
“내가 얘기했었지. 서울 집값이 어디까지 올라가는지 말이야.”
“아….”
현실성이 있었다.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다.
모인 자금으로 토지를 매입하고 우후죽순 아파트를 지어 올리면 속절없이 가격이 내려갈 것이다. 새 아파트가 오늘도 내일도 분양하면 기존 아파트 가격이 왜 올라갈까. 아무리 학군에 따라 가격이 형성된다고 하지만 과잉 공급된 아파트가 제자리를 잡으려면 서울 아파트 시장에 오랜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그리고 아파트 공급이 제자리를 잡기 전에 강운 건설은 새로운 아파트 단지들을 선보일 것이다.
“그리고 미래에 대비하려면 정확한 투자가 필요해. 난 미래를 예측할 수 있으니 지금 얻은 자금을 걱정 없이 재투자할 수 있지. 그리고 지금까지는 대한민국의 미래만 준비했지만, 앞으론 전 세계의 미래를 생각해야 해.”
세 번째는 전 세계를 강타할 전염병을 막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이 부분은 아직 배영성에게 전할 단계가 아니다. 1998년에 2019년의 일을 알려 봤자 걱정만 늘어날 뿐이다.
“…어. 그러니까 돈은 모을 수 있는 만큼 모으고 필요한 곳엔 팍팍 쓰자.”
‘일전에도 그렇고 미래에 대해서는 말씀을 아끼시는 것 같네.’
“예. 회장님. 다음엔 모든 얘길 다 해 주시리라 믿겠습니다.”
“…어허. 천기누설은 금지라니까. 때가 되면 알게 될 것이니….”
‘또 도사 흉내를….’
배영성은 수안의 말을 귓등으로 흘리며 아까 지시받았던 내용을 재차 확인했다.
“정영수 회장과 일정 잡으면 다시 알려 드리겠습니다.”
“정 회장은 전화 통화로 끝내도 좋은데 말이지.”
꼭 얼굴을 봐야 하나 싶었다. 간단한 힌트 하나 알려 주려고 하는데, 뭐 하러 얼굴까지 봐야 한단 말인가.
“기화 2차 입찰도 남았으니 얼굴 한번 보십시오.”
“에잉.”
“이렇게 정 회장을 따로 보시는 것도 힘을 실어 주는 행동이 됩니다. 정택주 회장이 회장님을 신경 쓰고 있으니까요.”
“…아. 그렇게 생각하진 못했네.”
수안은 의외라는 눈으로 배영성을 쳐다봤다.
“흠흠. 요즘 최학주 전무님께 여러 노하우를 배우고 있습니다.”
“바쁜 와중에 최 실장 노하우까지 빼먹고 있었어?”
“회장님을 제대로 보필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배 사장이 그렇게 말 안 해도 내가 뒤를 맡길 수 있는 사람은 배 사장밖에 없어.”
“항상 그 믿음에 보답해야죠. 아! 그리고 모레 사모님과 영화를 보러 가신다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배 사장이 영화관 하나를 통째로 빌렸다. 덕분에 편하게 영화도 볼 예정이다.
“와이프랑 오랜만에 영화관 구경이야.”
“편안히 즐기고 오십시오.”
“…….”
항상 자신을 챙겨 주는 배영성에게 뭐라도 해 주고 싶은 마음이다. 수안은 이방효 사장에게 부탁한 파티가 떠올랐다.
“같이 가자.”
“타이타닉은 와이프와 벌써 봤습니다. 두 분이 편히 보십시오.”
그런 자리에 배영성을 데려가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기분이라 말을 꺼낸 것이다.
“영화 보자는 말이 아니라 같이 미국에 가자고.”
배영성은 전처럼 백악관에 볼일이 있나 싶었다.
“워싱턴입니까?”
“아니. LA.”
“로스앤젤레스로 가세요? 한인 타운에 볼일이 있으십니까?”
“한인 타운 말고 할리우드에 볼일이 있어.”
할리우드라는 말에 배영성은 BE를 통해 투자했던 영화를 연관 지을 수 있었다.
“타이타닉 흥행이 대단하긴 했죠. 관련 파티가 있는 모양이네요.”
“그러니까 배 사장도 같이 가지?”
“제가 그런 파티는 가 본 적이 없어서….”
“누군 가 봤겠어? 내가 이방효 사장에게 타이타닉 성공 기념 파티를 열어 달라고 했어. 배 사장 와이프하고 아들도 데려와. 같이 미국 문화 체험 같이하자.”
“하하하. 이미 있는 파티가 아니라 회장님이 직접 호스트라면 가 봐야죠. 일은 김 사장에게 다 미뤄놓고 가겠습니다. 아내도 저도 새로운 경험입니다.”
“와이프 드레스는 확실하게 준비해 줘야 할걸?”
“아는 곳 있으시면 추천 좀 해 주십시오. 파티용 드레스는 전혀 모르겠습니다.”
“푸흐. 나라고 알겠어? 내가 와이프 연락처 줄 테니까 같이 가서 맞추라고 해.”
“아내가 깜짝 놀라겠는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