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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차 입찰 (130/304)

1차 입찰

-저희가 지분을 가진 방송사들에서 연예계 인물들도 초청할 수 있을 겁니다. 걱정하실 필요 없습니다.

“숫자만 많이 채울 필요 없어. 초청한 인물들의 질을 높여야지. 대신 미국계 인물들은 되도록 일부만 넣고 히스패닉과 아시아 유명 인사를 위주로 초청 인물들을 편성해 봐.”

-그런데 회장님. 갑자기 무슨 바람이 불어서 파티를 열려고 하십니까?

“…파티에 와이프와 아들을 데려와서 구경시켜 주려고.”

-헙!

이방효 사장의 머리가 회전하기 시작했다. 오너 일가의 첫 사교계 데뷔 무대라고 할 수 있었다.

-회장님과 사모님께서 만족하실 만한 파티로 꾸미겠습니다. 파티 일은 두 달 이내에 잡겠습니다. 영화 타이타닉과 관련한 파티이니 두 명의 주인공과 일정을 조율해 보겠습니다. 아! 영화 주제곡을 부른 가수도 부르겠습니다.

“아. 그들의 일정과도 맞춰야겠네.”

한창 찾는 곳이 많은 두 사람이다.

-회장님께서 파티 일자를 먼저 지정해 주시면 둘에게 맞추라고 하겠습니다.

“…그래도 되나?”

-타이타닉에 들어간 우리 투자금이 아니었다면 오늘날의 성공도 이룰 수 없었습니다. 그들도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죠.

그 외에도 BE가 보유한 방송사 지분이 무시무시했다. 또한 이번 타이타닉이 아니라고 해도 BE 인베스트먼트가 할리우드 영화 투자자 중에 가장 큰 투자자임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앞으로 어떤 영화를 찍는다고 해도 BE 인베스트먼트의 소유주에게 밉보일 수는 없었다.

“우선 연락이나 해 보고 알려 줘. 내 일정과 안 맞으면 다시 얘기할게.”

-예. 회장님. 그리고 파티는 타이타닉 성공에 대한 자축과 자선 파티 형식을 더해서 진행하겠습니다. 먹고 즐기기만 하는 파티는 식상하게 느끼기 마련입니다.

“난 잘 모르겠으니까 이 사장이 알아서 해 줘.”

-옙! 맡겨 주십시오. 제가 몇 번 참석해 보기도 했고, 파티 전문가도 다수 알고 있습니다. 신경 쓰실 것 없이 여기서 제가 다 준비하겠습니다.

아직 미국식 파티에 대해서 아는 바가 별로 없었다.

수안은 이방효 사장을 치하하고 전화를 끊었다.

“괜히 바쁜 사람에게 엉뚱한 일을 시키는 건 아닌지 모르겠네.”

* * *

기화 차와 아세아 차의 첫 입찰일이다.

국제 경쟁 입찰의 낙찰자 선정기준은 응찰가보다 경영 능력과 외자 유치에 높은 비중을 두는 것을 골자로 한 종합 평가제로 최종 확정됐다. 이에 따라 국내 대현, 삼디, 강운 등 자동차 3사와 세계 순위권 회사들이 입찰에 참여할 수 있게 됐다. 대운은 검찰 조사와 세무 조사가 진행 중이라 빠졌고 해외에선 포드와 GM이 합세했으며 여기에 BE 인베스트먼트도 가세했다.

낙찰자가 정해지면 기화 차, 아세아 차의 자본금을 감자하고 각 1조 5천억 원과 6천억 원으로 자본금을 다시 늘린다. 이때 발행되는 신주를 낙찰자가 인수하는 방식으로 경영권이 넘어가게 된다.

인수자가 사들일 지분을 뺀 나머지 주식은 일반인을 대상으로 공모하기로 했다.

결과적으로 입찰에 참여하는 회사는 국내 3개 회사와 국외 3개 회사였다.

수안은 입찰에 참여하는 회사들의 움직임을 머리에 그리기 시작했다.

‘강운 그룹은 내가 알아서 할 것이고 대현은 정영수 회장이 들러리만 서 주기로 했고….’

BE 인베스트먼트까지 빼고 나면 경쟁자는 포드와 GM밖에 없지만, 여기도 크게 염려할 것은 없다. 그리고 삼디 그룹은 잇새에 끼인 고춧가루 수준(?)이라 신경 쓸 필요도 없었다.

‘김대준 대통령과 야당 이현창 총재 그리고 채권단 대표인 산업 은행 이근형 총재와 나눈 이면 합의.’

기화 차 입찰은 시작도 전에 끝나 있었다. 삼디 그룹이 걱정되지 않는 이유였다. 포드와 GM에서 원하는 적정 부채는 그들에게 제시되지 않을 것이다. 모든 것은 BE에서 가져간다.

하지만 외부에 힘든 입찰 과정을 보여 주면 정부가 기업의 부채 탕감 요구를 어쩔 수 없이 들어줬다는 당위성을 부과할 것이다.

그것도 모르는 삼디 자동차 관계자가 첫 입찰을 따낸 즐거움을 만끽하고 있었다.

걸려온 휴대 전화를 보고 얼른 플립을 열어 귀로 가져가는 모습이다.

“예. 회장님. 저희가 낙찰받았습니다. 나머지 부채 탕감 요구도 진행하겠습니다. 예. 예. 끝까지 긴장 놓지 않겠습니다.”

휴대 전화를 두 손으로 받쳐 들고 전화를 받는 모습이 무척 안쓰럽다.

‘상대 업체 입찰 금액까지 사전에 파악해서 자신들이 가장 높은 금액을 써냈지만….’

입찰 과정에서 적법하지 않은 방법을 사용한 삼디 그룹이다.

삼디 그룹은 이번 국제 경쟁입 찰에 참여하는 상대 업체의 입찰 금액을 모두 확인하고 가장 높은 금액을 써서 입찰에 참여했다. 1차 낙찰자로 삼디 그룹이 선택될 수밖에 없었던 이유다.

하지만 그마저도 수안의 손바닥 위에 있음이다.

-기화 자동차와 채권단 측은 가장 유력한 낙찰 대상자였던 삼디 자동차의 부채 탕감 요구는 입찰 규정 위반이라며 기화 입찰이 유찰된 것으로 결론을 내린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에 따라 기화 자동차 법정 관리인은 내일 오전 유찰 사실을 공식 발표하고, 재입찰 일정을 밝힐 예정입니다.

유찰은 당연한 결과였다.

-이번 입찰에 크게 주목받았던 미모의 BE 인베스트먼트 대리인도 당연한 결과라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제시카도 열일을 하고 있었다. 하이힐을 또각거리며 걷다가 차가운 표정으로 카메라를 응시하고 있었는데, 마치 해외 모델같은 분위기를 풍긴다.

* * *

늦은 밤 집무실을 떠나지 못한 삼디 그룹 이 회장이 주먹으로 책상을 내리치며 노호성을 질렀다.

쾅.

“이게 뭐 하는 짓이야!!”

평소 이렇게까지 화를 낸 일이 거의 없었던 이희수 회장이다.

기화 자동차 입찰에 사활을 걸고 있었고, 입찰에 성공했다는 연락까지 받았는데 이렇게 틀어질 줄은 생각도 못 하고 있었다. 이 회장 앞에선 삼디 자동차 관계자들이 붉어진 얼굴을 감추려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삼디 자동차 사장은 고개를 숙인 채 변명을 늘어놨다.

“죄송합니다. 저희 부채 탕감 요구를 이렇게 공개해서 유찰로 만들 줄은 몰랐습니다. 이는 분명 뒤에서 누군가 수작을 부린 겁니다. 대현이 그랬을 가능성이 큽니다.”

“경쟁자가 무려 다섯이야! 아무런 방해도 없이 입찰이 가능할 줄 알았어?!”

“크흠….”

“당장 재입찰 준비해!”

다시 재입찰을 진행해야 했지만, 삼디 그룹은 자신 있었다. 이후에도 자신들이 따낼 수 있다는 확신이 있었다.

똑똑.

“회장님. 강운 그룹 강수안 부회장 전화입니다. 회의 중이시라…. 연결할까요?”

“강 부회장이?”

이번 입찰에서 경쟁하고 있지만, 불만이 가득했던 녀석의 응찰가를 보면 크게 기화 자동차를 노리고 있는 것 같지 않았다.

“연결해.”

“예.”

이희수 회장이 전화를 들으며 손짓으로 자동차 사장을 내보냈다. 어차피 대화는 끝난 참이다.

“어. 강 부회장.”

-안녕하십니까. 회장님. 진즉에 전화 드리고 양해를 구했어야 했는데 이제야 연락을 드립니다.

“기화 차 입찰에 무슨 양해가 필요한가. 회사가 필요하다면 입찰에 참여해야지.”

-넓은 마음으로 이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회장님.

“오늘 우리가 유찰된 것을 축하하려고 연락한 것은 아니길 바라네.”

-어휴.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강운 자동차는 이번에 들러리나 설 생각입니다.

하지만 삼디 자동차 들러리가 아니라 BE 인베스트먼트의 들러리다.

“하하하. 역시 그랬어.”

-그런데 이번 입찰 규정 위반은 약간 심각한 수준으로 보입니다.

“이봐. 강 부회장. 뭐가 심각하단 말인가? 우린 법대로 한 것밖에 없어!”

삼디 자동차는 입찰 사무국에 최종 답변서를 발송했다.

[기화 입찰의 유찰 및 낙찰 여부는 채권단 및 기화 입찰 관련 평가기관에 일단 맡기겠다. 그러나 삼디가 조건부 응찰을 했다는 데는 절대로 동의할 수 없다. 입찰 적법성 여부는 지난 입찰 공고문과 입찰 안내서를 기준으로 해야 할 것이다. 이를 보면 기화 및 아세아 자동차 주식의 51% 미만과 주당 5,000원 미만으로 응찰한 경우 이외에는 낙찰 기준의 실격 사항에 포함되지 않음이 명백하다. 입찰 안내서의 5조에 입찰자는 주식청약 계약서에 대한 수정 제안을 할 수 있도록 언급돼 있으므로 삼디 자동차는 입찰 사무국의 요청에 따라 수정 제안을 한 것이다.]

삼디 자동차에선 부채 탕감 요구를 하지 말라고 적시되지 않았으니 괜찮지 않냐고 주장하고 있었다. 자신들의 부채 탕감 제안은 입찰안내서의 내용을 따랐다는 것이다.

다른 경쟁자들의 생각은 달랐다.

대현에선 이번 일에 간략한 입장문을 발표했다.

[이번 입찰은 부채 탕감 원칙이 불투명해 유찰될 수밖에 없는 입찰이었다. 재입찰을 할 경우, 입찰 조건이 이번의 경우와는 기본적으로 달라질 수밖에 없을 것으로 추측한다. 재입찰에는 이번의 입찰전력과 근본적으로 다른 전략으로 적극적으로 임할 방침이다.]

포드에서도 기화의 적정 부채를 4조 원 수준으로 파악하고 재입찰 과정에서 이 같은 부채 조건이 수용될 경우, 적극적으로 임하겠다는 자세를 취했다.

-하하. 저까지 입찰 사무국의 발표를 그대로 믿으라고 하시는 말씀입니까?

“자네가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군. 그리고 손윗사람에 대한 예의는 좀 더 배우는 편이 좋겠어.”

수안이 예의가 없다는 식으로 말하는 이희수 회장이었고 수안은 이를 크게 문제 삼지 않았다. 오히려 사과를 입에 담았다.

-제가 아직 어르신들께 돌려 말하는 걸 배우지 못했습니다. 이해해 주십시오.

“스스로의 과오를 빠르게 인정하니 아직 가능성은 있구먼.”

-이번 1차 입찰에 숨겨진 한 가지 소식 때문에 믿지 못한다 말씀드렸습니다.

“소식? 내가 모르는 소식이 있나?”

-입찰 사무국에서 이번에 응찰가를 삼디 자동차로 제공한 직원들을 다 잡아냈습니다. 제가 백방으로 뛰어서 삼디 그룹에 불이익이 가지 않도록 막은 겁니다. 입찰 사무국이 입찰 규정 위반이라고 발표하는 것은 막을 수 없었지만, 그래도 부채 탕감 요구로 포장하면 다른 경쟁자들도 이해하지 않겠습니까? 이 덕분에 대현과 포드에서 삼디 자동차를 크게 물고 늘어지지 않았습니다.

“뭐, 뭐?”

실로 아찔했다. 몰래 응찰가를 파악한 일이 드러나면 아예 입찰에서 제외된다고 해도 할 말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번 입찰에 실패하면 삼디 자동차는 그대로 워크아웃으로 직행한다. 야심 차게 시작한 완성차 사업을 접어야 했다.

-다행히 절 좋아해 주시는 분들이 많아서 이렇게 저렇게 정보가 먼저 들어오고 있습니다. 덕분에 외부로 공표하기 전에 정보를 비틀어서 막을 수 있었습니다.

수안의 인기라면 이해하지 못할 것도 없다. 강운 그룹의 힘이라면 자신들처럼 입찰 사무국에 영향력도 행사할 수 있었을 것이다.

-몰래 도와드리고 조용히 있어도 됐겠지만, 계열사 사장이 같은 실수를 하면 어쩌나 싶어서 회장님께 연락드렸습니다. 언짢지 않으시죠?

“크흠. 큼.”

자신의 무능력이 낱낱이 드러난 기분이다. 게다가 방금까지는 수안의 말투에 예의를 운운하고 있었다. 얼굴이 화끈하게 달아오른다.

-불편하셨다면 죄송합니다. 회장님. 앞으론 관여하지 않고 지켜보기만 하겠습니다.

“아아. 내가 경황이 없어서 인사가 늦었어. 강 부회장. 진정으로 고맙네. 자네 덕분에 우리가 두 번째 기회를 얻었어.”

수안의 말대로라면 실로 엄청난 도움이다. 경쟁사를 목록에서 지워 버릴 수도 있었건만, 이를 감춰 주고 다시 기회를 준 것이다.

수안은 이희수 회장의 말에 의뭉스럽게 답했다.

-휴우. 기분이 언짢으신 줄 알고 걱정했습니다. 다행입니다. 재입찰에선 꼭 성공하시길 바랍니다.

“훗날 이 은혜는 배로 갚도록 하겠네. 강 부회장. 내가 자네를 크게 오해했던 모양이야. 아까 얘긴 못 들은 걸로 하세. 이렇게 예의 바른 후계자가 또 어디 있다고…. 내가 괜한 소리를 했어.”

-말씀만으로 감사합니다. 회장님. 하하. 나중에 뵙고 인사 올리겠습니다.

수화기를 내려놓은 이희수 회장이 인터폰을 누르고 소리쳤다.

“아까 나간 자동차 사장하고 이번 입찰에 관련된 썩을 놈들 다시 들어오라고 해!!”

-예, 예. 회장님.

일을 맡긴 놈들은 무슨 일이 생겼는지 파악도 못 하고 있는데 경쟁사가 오히려 도움을 주고 있었다. 아까 화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이 혈압이 쭉쭉 오른다.

“썩을 것들이…. 맡긴 일도 제대로 못 해서 이제 막 후계자가 된 어린 녀석의 도움을 받게 만들어?”

제 아들과 몇 살 차이 나지도 않는다. 아들은 떠먹여 줘야 겨우 삼키는데 남의 아들은 현장에서 직접 뛰고 있었다. 그것도 붕붕 날아다닌다.

이희수 회장은 다시 인터폰을 연결했다.

-예. 회장님. 비서실입니다.

“정용이 오라고 해!”

-예. 지금 본사로 부르겠습니다. 회장님.

지금부터라도 아들을 가르쳐야 한 사람 몫을 하겠지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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