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투 펀치
이현창과 보좌관을 보내자 두 사람이 다가왔다.
배영성과 최장호다.
“부사장님. 얘기 좀 하시죠.”
“…….”
수안은 귀를 후비며 별장으로 걸음을 옮겼다.
“못 들은 척하지 마시고 이리 오세요.”
“…에효.”
둘이 알았다면 못 오게 했을 게 뻔했다. 그래서 가장 믿는 둘에게도 말하지 않고 강릉으로 온 것이다.
“…아무도 안 다치고 잘 넘어갔으니 그냥 넘어가 주면 안 되나?”
최장호가 굳은 얼굴로 팔짱을 끼고 있었고 배영성은 의자를 빼 주고 있었다.
드르륵.
“이리 와서 앉으십시오. 부사장님.”
수안이 의자에 털썩 앉자 장호가 품에 있던 리볼버 권총을 꺼냈다.
배영성에게 북한 잠수함에 대해서 듣고 권총의 존재를 인지하곤 바로 트렁크에서 총기부터 입수한 장호다. 그 뒤로 긴장감을 극도로 끌어올리고 있었다.
“별일 없었는데 이제 제자리에 두지?”
“이 총은 어디서 나셨습니까? 설마 직접 입수하신 건 아니죠?”
혹시나 불법적인 경로를 통해 구입한 총기가 아닌지 걱정하고 있었다.
“아버지 서재. 오래전부터 있었어.”
어려서 아버지 서재에 들락거렸던 수안은 서재 서랍장 깊은 곳에 숨겨진 권총의 존재를 알게 되었다. 이번 사건이 위험하다는 판단에 몰래 아버지 서재에 있던 물건을 들고나온 것이다.
“이거 등록 번호 지워져 있습니다.”
최장호는 총기를 입수하자마자 리볼버 권총의 등록 번호부터 확인했지만, 그라인더로 갈아 지워진 면만 확인했다. 이 물건을 사용했다가 걸리면 불법 총기 소지 혐의로 잡혀간다.
“그렇겠지.”
“다시는 들고나오지 마십시오. 지문 깨끗하게 지워 둘 테니 가져다 둘 때도 조심하시고요.”
“오케이.”
장호의 말이 끝나자 배영성이 앞으로 나섰다.
“저희가 말릴까 봐 말씀을 못 하셨습니까?”
“둘에겐 미안해. 솔직히 다른 사람을 데려오고 싶었는데, 둘이 없으면 내가 너무 불안해서 말이야.”
어려서부터 곁에 있던 두 사람이다. 수안이라고 불안감이 없었을까. 북한 정찰대와 잠수함이 접선하는 날이 전날임을 알고 있었기에 호기롭게 근방으로 왔지만, 속으론 떨고 있었다.
“휴우. …이번 일로 부사장님이 뭘 해결한 겁니까.”
미래를 보고 왔다는 자신의 상사였다. 해야 할 일이었으니 했겠지만, 성과는 알고 싶었다.
배영성은 사람을 하나라도 구했으면 그냥 넘어가 줄 생각이다.
“우리나라 장병 약 10여 명 사망, 북한군 약 20여 명 사망, 지역 봉쇄로 고생했을 주민들과 민간인 희생자들….”
“최소한 30명 이상은 살렸네요.”
“사람 살린 것만 성과겠어? 오늘 저렇게 대대적으로 소탕하지 않았으면 근방 전 지역에 투입되어 고생해야 했을 국군장병이 4만 3천 명이야.”
근방에서 군의 통제에 따르지 않고 송이버섯을 채취하러 산에 올랐던 몇 명의 민간인이 죽는다. 북한군의 경우 대부분 자살로 생을 마감하지만, 이번엔 자살할 시간도 없을 것이다.
“상황을 짧게 끝낸 것만 해도 얼마나 좋아. 배 이사는 기억날걸? 김신조 사태 몰라?”
김신조 사태 혹은 1·21 사태라고 부르는 이 사건은 1968년 1월 21일에 북한군 31명이 대한민국 청와대를 기습하여 대통령을 암살하려다 미수에 그친 사건이다. 이때 희생된 국군은 26명이었고 민간인 5명도 희생되었다. 북한군 31명 중에 김신조는 사로잡혔고, 1명은 북으로 도주, 나머지는 모두 사살되었다.
수안이 이 일화를 꺼낸 이유가 있다. 1·21 사태는 대한민국에 엄청난 변화를 일으켰다.
먼저 군인들에게 절망적인 소식이 전해진다.
-전군 제대 보류, 휴가 중지.
-복무기간 6개월 연장, 유격 훈련, 화생방 훈련 실시.
-예비군 부활(기존에 해체되었지만 1·21 사태로 부활했다).
학생들에게도 암울한 사건이다.
다음 해 1969년 교련 수업이 창설되었다. 전시 상황에 대처 능력을 높인다는 명분 아래 고등학교 필수 과목으로 지정해 버렸다. 그리고 반공 웅변대회가 생겨났다.
또한 간첩과 대한민국 국민을 구분, 식별하기 위해서 주민 등록법을 개정하여 주민 등록 번호가 생겨났다.
배영성도 한국사에 큰 변곡점을 만들어 낸 1·21 사태를 잘 알고 있었다.
1954년생 배영성의 경우 68년 1·21 사태에 15살의 나이였다.
“…그때 생각하니 오늘 나라를 구하셨네요.”
배영성은 나라를 구했다는 말이 절대 과하지 않다 생각했다.
“그 정도까지는 아니고….”
“그때 실패한 청와대 공격을 이번에 성공하려 시도했을지도 모르지 않습니까.”
“맞아. 이번에도 청와대 공격하려고 침투했어. 걔들은 왜 걸핏하면 대통령을 잡겠다고 저렇게 군인들을 보내나 몰라. 우리야 죽으면 또 뽑으면 되잖아. 저들처럼 혈족이 죽을 때까지 하는 줄 알아?”
“……!!”
수안이 개입하지 않아도 실패했겠지만, 청와대를 공격하려 했다는 것은 사실이다. 북한군 생존자의 입을 통해 밝혀지는 일화였다.
“훈장 받으시겠는데요?”
“에이. 훈장은 무슨…. 내가 지금까지 받은 훈장이 몇 갠데 또 주겠어?”
수안은 배영성의 말이 현실성이 없다고 생각했다.
* * *
그날로부터 몇 주가 지났다.
9월 17일 북한 잠수함 강릉 침투사건으로 크게 관심을 받고 있던 한신당 이현창 국회의원의 기자 회견이 열렸다.
그리 호의적인 관심은 아니었다. 어디서 새어 나갔는지 최초 신고자가 이현창이라는 소식이 국회의원들 사이에 알려졌고, 정부에 의해서 조작된 사건이 아닐까 하는 의심이 고개를 들었다. 이후 이현창은 언론과 야당의 시달림 속에 하루하루를 보내야 했다.
지금까지의 관심이 오늘 기자 회견으로 폭발하고 있었다.
“지금까지 언론과 야당인 민국당에서 제기한 의혹처럼 이번 북한 잠수함 침투사건의 초기 신고자는 제가 맞습니다.”
펑. 펑. 펑. 펑.
기자들의 플래시가 터져 나왔고 이현창의 발표는 계속되었다.
“간첩을 신고하는 그 자리에 내연녀 문제가 있었다거나 불법적인 뇌물에 관련되었다는 기존 기사 내용은 거짓입니다. 정부에서 이번 침공을 일부러 계획했다는 설도 당연히 거짓입니다. 북한의 침투는 사실입니다. 어떻게 이런 일을 조작할 수 있겠습니까! 정부가 북에 침투를 요청했다는 망발은 듣기도 거북합니다! 제가 지금까지 국방부에 이 일을 숨겨달라고 말했습니다.”
“숨겨야 할 이유가 있어서 숨긴 것 아닙니까?”
“당연히 이유가 있으니 숨겨달라 했습니다. 그 이유는 바로 강수안 선수 때문입니다.”
펑. 펑.
터지던 카메라 플래시까지 잠시 멎을 정도로 뜬금없는 사람이 등장했다.
“지금 강수안 선수라고 하셨습니까?”
“올림픽 3연패의 영웅 강수안을 지금 입에 올리셨습니까?”
감히 입에 담아서도 안 될 사람을 거론했다는 투의 기자들 질문이다.
“우리나라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나도 강수안 선수를 무척 좋아하는 국민의 한 사람이었습니다. 인연이 닿아 강 선수와 친밀하게 지낼 수 있었습니다. 강 선수가 올림픽을 끝내고 돌아와 밤낚시를 제안했고, 우린 일반인이 올 수 없는 장소를 찾다가 강릉 해변으로 약속 장소를 정했습니다. 이는 여기 당일 같이 찍은 사진으로도 증명할 수 있습니다.”
수안과 함께 찍은 사진이 이현창의 손에 들려 있었다.
펑. 펑. 펑. 펑.
카메라 플래시가 다시 요란하게 울린다.
“또한 처음 신고에서도 국방부 장관에게 강수안 선수와 함께 있으니 빨리 출동하여 보호해 달라고 요청하였습니다.”
“아….”
충격과 혼돈의 기자 회견장에 이현창의 발표가 계속 이어졌다.
“저 같은 국회의원과 친분이 있다는 것이 알려지면 강수안 선수의 드높은 명예에 문제가 생길까 싶었습니다. 그래서 이번 강릉 잠수함 사건을 내가 신고했다는 사실을 언론에 알리지 않았고, 국방부에도 기밀을 유지해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사실 제가 먼저 발견한 것도 아닙니다. 그곳에서 북한의 잠수함을 발견한다는 것은 누구도 상상하지 못할 일 아닙니까?”
이현창은 숨을 고르고 다시 발표를 이어 갔다.
“너무 커진 인기로 인해 사람들이 없는 장소를 찾던 강 선수는 강릉에 가서도 주변을 자주 경계했습니다. 적외선 망원경까지 들고 다니며 누군가 다가오진 않는지 경계하더군요. 주변을 경계하던 강 선수가 먼저 북한의 잠수함을 발견했고, 이를 제게 알려 주었습니다. 맨눈으로는 확인할 수 없었지만, 강 선수가 가진 적외선 망원경을 통해 북한 잠수함의 실체를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강수안 선수는 자신이 신고해도 군의 빠른 대응이 어려우니 전직 총리이자 국회의원인 제게 신고를 대신해 달라고 했습니다. 아주 현명한 판단이었습니다. 전직 총리를 역임한 저는 국방부 장관의 연락처를 알고 있었고 덕분에 우리 군은 빠르게 적을 포위, 청와대에 침투하려 준비하던 북한군을 사로잡을 수 있었습니다. 민간인 희생도 국군장병의 희생도 없었습니다. 이 모든 공은 바로 강수안 선수가 가져야 했습니다.”
발표문을 읽은 이현창의 고개가 들렸다. 그리고 부리부리한 눈으로 기자들을 노려봤다.
“이것이 진실입니다!! 민국당과 언론이 원하던 진실은 바로 이것입니다!”
기자 회견장에 이현창의 목소리가 크게 울렸다.
“민국당과 언론의 어처구니없는 의심과 헛소리를 더는 참을 수 없어 이렇게 나섰습니다. 강수안 선수를 보호하기 위해 지금까지 입을 닫았지만, 강수안 선수가 제 어려움을 보고 자신의 이름을 알려도 좋다고 허락해 줬습니다.”
완벽한 상황 반전이다.
“군에서 사로잡은 간첩을 조사한 결과 북한군이 침입해서 진행하려던 공작은 바로 대통령 암살이었습니다! 대통령이 북에 자신을 죽여 달라고 요청했겠습니까? 야당은 대체 뭘 믿고 정치 공세를 펼쳤단 말입니까! 북의 지령이라도 받았단 말입니까?”
기자들은 이현창의 입을 통해 확인한 진실을 알리느라 정신없이 바빠졌다.
그리고 기자 회견 내용을 확인한 민국당은 골머리를 썩어야 했다.
“강수안 선수가 여기서 왜 나와?”
* * *
수안은 이현창 의원과 양동작전을 펼치기로 약속되어 있었다.
오랜만에 TV에 얼굴을 비춘 수안은 생방송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었다.
한쪽에선 기자 회견을 하고 한쪽에선 이를 확인시켜 주기 위함이다.
인터뷰를 맡은 리포터는 갑자기 전해진 속보에 놀랐지만, 프로답게 질문을 이어 갔다.
“마침 인터뷰가 진행되고 있어서 저희가 가장 먼저 답변을 들을 수 있겠습니다. 방금 이현창 의원의 기자 회견이 있었습니다. 최근 북한 잠수함 침투에 관련한 기자 회견이라고 합니다. 거기서 강 선수의 이름이 거론되었는데, 이현창 의원과 친분이 있다는 말이 사실입니까?”
“물론 사실입니다. 몇 해 전 친분을 맺을 수 있었고 그 이후 가끔 만나서 제게 밥을 사 주십니다. 존경하는 선배님이죠. 매일 얻어먹기만 해서 죄송스럽습니다.”
“그렇다면 9월 17일 밤에도….”
“예. 같이 있었습니다. 오랜만에 마음먹고 낚시하러 갔는데, 북한 잠수함을 마주할 줄은 생각도 못 했습니다. 제가 신고할 수도 있었지만, 제가 신고하면 경찰서를 통해 위로 올라가는 보고 과정이 복잡할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곁에 있는 권력자 선배님을 이용했지요.”
“군의 빠른 대응을 위해 신고를 양보했다는 말씀이군요?”
“예. 거기엔 잠수함뿐 아니라 북한군으로 보이는 인물도 해변에 있었습니다. 저희는 비무장 상태로 낚싯대 하나 들고 있었고요. 북한군 때문에 겁이 많이 났는데 이 의원께서 든든하게 곁을 지켜 주셨습니다. 신고할 때도 얼마나 대단하셨는지 모릅니다. “진돗개 하나 상황이야! 빨리 움직여!” 이러셨는데 저는 무슨 소린가 하고 있었어요.”
“우아. 지금까지 정부와 이현창 의원이 민국당과 언론의 집중포화를 받아 왔는데, 전부 거짓이었군요?”
“그렇습니다. 이현창 의원은 저를 안전한 곳에 내려놓고 다시 잠수함이 좌초된 현장으로 향했습니다. 누구보다 국가의 안위를 생각하는 분이죠.”
언론은 누군가에게 보여 주기 위해 기사를 쓰게 되고, 큰 목소리에 따라 시류가 바뀌기 마련이다. 하지만 이렇게 진실이 밝혀지면 세상이 뒤집히기도 한다.
“저와 친분이 드러나면 제게 피해를 줄 것으로 생각하신 모양입니다. 제가 그냥 올림픽 스타이기만 하면 문제가 없겠지만, 저는 강운 그룹의 맏아들이기도 하고 더블 스타라는 회사를 경영하고 있는 경제인입니다. 경제인과 국회의원의 만남은 국민에게 단 하나의 상상만 떠오르게 하죠. 불법적인 커넥션과 뇌물. 이 외에 더 생각할 수 있습니까? 이현창 의원께서는 이 문제 때문에 순수했던 만남조차 공개하지 못하고 계셨습니다.”
“그래서 지금까지 이 의원님 혼자 감당하시려고….”
“혼자 감당하고 계셨죠. 묵묵히 입을 닫고 저를 보호해 주셨습니다.”
먼저 자신이 경제인임을 밝히고 문제를 수면 위로 올리면 누구도 다시 이 일을 꺼내기 쉽지 않다. 사전에 이런 의문을 차단하고자 자신의 입으로 거론한 것이다.
“강 선수는 이 의원의 어려움 때문에 공개를 결정하셨군요?”
“예. 선배님이 어렵게 시작한 정치 활동인데, 이번 일로 의원직 사퇴까지 염두에 두신 것 같아 최근에서야 제가 말씀드렸습니다. 어차피 한신당과 우리 강운 그룹은 주고받은 돈도 없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니 그냥 말씀하시라고 했습니다. 물론 밥은 제가 좀 많이 얻어먹었습니다. 이게 죄가 되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외에는 검찰 조사가 있다 해도 한 점 부끄러운 것이 없습니다. 나이를 초월해 마음이 잘 맞는 분이기도 하고 제가 지지하는 국회의원이기도 합니다. 정당을 떠나 개인적인 지지라고 해야 맞겠지요.”
“갑작스러운 질문에도 답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괜찮습니다.”
“그럼 인터뷰 이어서 진행하겠습니다. 지난 올림픽에 관해서 묻지 않을 수 없는데요. 강 선수는….”
다음 날 신문과 뉴스는 모조리 이현창과 강수안으로 도배되었다.
이현창과 강수안의 작품은 완벽한 성공이었다.
[나이를 초월한 우정. 강수안을 지키려 비난을 감수한 이현창.]
[시류에 편승해 가짜 기사를 쏟아 낸 언론사. 특단의 조치 필요.]
[이현창 언론과 민국당에 고발 계획 없어. 끝까지 이성적인 판단.]
[정당이 아닌 사람을 지지한다. 강수안 선수의 소신 발언.]
[북 잠수함 최초 발견자 강수안. 포상금은?]
[민국당 대국민 사과 기자 회견 예정.]
[올해 국회의원으로 당선된 이현창. 특혜라 의심될 일도 없는 상황.]
[강수안 “이 의원에 항상 밥 얻어먹는다.” 순수한 친분 과시.]
[검찰. 이현창 의원 수사 계획 없어. 강수안에 대한 조사 또한 불필요.]
[정부. 최초 신고자 강수안에 보국 훈장 수여 계획.]
수안은 모든 신문을 책상에 늘어놓고 보다가 마지막 보국훈장 기사에 시선을 멈췄다.
“결국 배 이사 말대로 되네.”
수안의 훈장이 또 하나 늘어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