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원
“아버지. 수안입니다.”
-오냐. 아기는 잘 나왔어?
“예. 우리 정원이 잘 태어났습니다. 산모도 아이도 건강합니다.”
아버지가 지어 준 아기의 이름이다. 정원(淨源). 깨끗할 정에 근원 원이다. 수안은 아버지가 선물한 아들의 이름이 무척 마음에 들었다.
-금방 가마.
“천천히 조심히 오세요. 아버지.”
-그래 알았다. 그리고 사돈 댁에도 얼른 연락해.
“예. 아버지.”
수안은 바로 처가에도 전화해 아현의 출산을 알렸다.
-아현이는 괜찮아?
“예. 의사가 산모도 건강하다고 합니다. 저는 바로 다시 들어가 보려고요.”
-엄마가 금방 간다고 전해 줘. 내가 뜨끈한 밥이랑 미역국 해 놨으니까 가져간다고 해.
“병원에서도 밥 나올 텐데요.”
-산모에게 병원 밥이라니!
“예. 알겠어요. 제가 꼭 전해둘게요.”
장모님은 아버지보다 빨리 병원에 도착했고, 정말 보온병에 미역국과 쌀밥을 챙겨오셨다. 반찬까지 가득 챙겨오셨다. 장인은 운전이 느리다며 처음부터 총알택시를 타고 오셨다고 한다.
“아이구. 내 새끼 고생 많았지?”
“엄마. 엄마. 흐흑.”
자꾸 울 일만 많아진다.
친정엄마의 사랑이 가득 담긴 쌀밥과 미역국을 보고 울지 않을 딸이 어디 있을까.
“어서 먹자. 산모가 잘 먹어야 모유도 잘 나오는 거야.”
“흐윽. 흑.”
아현이 미역국에 밥을 말아서 먹는 동안 아버지와 어머니도 도착하셨고, 사돈과 같이 신생아실에 누워 있는 아기를 만날 수 있었다.
“허허. 정원이 저기 있네. 한눈에 알아보겠어.”
이제 할아버지가 된 아버지는 정말 단번에 정원이를 알아보셨다.
“누가 봐도 강 서방이랑 아현이 아들이야. 어쩜 저렇게 잘생겼을까.”
장모님도 정원이가 누구인지 알아보셨다.
“꼭 수안이 어릴 때랑 비슷해. 수안이도 신생아들 사이에서 저렇게 혼자서 빛났어.”
어머니도 정원이를 알아보셨다.
“…저기. 누구 보고 얘기하세요? 나도 좀 알려 줘 봐요.”
오직 본인만 알아보지 못하고 있었다. 분만실에서도 뒷모습만 봤던 수안이다.
“너는 아들도 못 알아봐?”
“아들. 저렇게 너랑 닮았는데?”
어머니의 손가락을 따라가 보니 그제야 알아볼 수 있었다.
강수안의 아들 강정원이 저기 누워 있었다.
“정원아. 정원아. 아빠 왔어. 정원아.”
들리지 않는 걸 알면서도 자꾸만 부르게 된다. 수안의 눈엔 아들만 가득 들어왔다.
* * *
수안은 올림픽이 열리는 애틀랜타에 도착했다.
“하아….”
“그렇게 한숨 쉰다고 땅이 꺼지겠어?”
“우리 정원이가 눈앞에 아른거린단 말입니다.”
고작 한 달이다. 아들이 태어나고 단 한 달 만에 수안은 멀리 미국으로 와야 했다.
아들과 생이별한 아빠가 땅이 꺼지도록 한숨을 쉰 것이다.
“내가 진짜 다음 올림픽은 절대로 안 해! 안 한다고요!”
올림픽이 미워 죽을 지경이다. 버둥거리는 아들을 보는 즐거움을 올림픽이 빼앗아 버렸다.
밤에 우는 것도 예쁘고, 기저귀에 똥을 싸도 예쁘다.
너무 소중해서 하루 못 보는 것도 아쉬운 아들이었다.
파킨슨병에 걸린 무하마드 알리가 최종 성화를 봉송하는 것도 불퉁거리며 지켜봤다.
지금 수안의 머리엔 오직 아들 정원이만 존재했다.
미국은 이번 애틀랜타 올림픽을 세기의 축제로 만들고 싶었지만, 시작부터 잡음이 많았던 올림픽이다. 개최지 선정에서 아테네와 경합을 벌였지만, 석연치 않은 재투표가 5회까지 진행되며 결국 애틀랜타로 결정되었다. IOC 위원들이 뇌물을 받았다는 의혹까지 있었다. 100주년 기념 올림픽이니 당연히 시작점인 아테네에서 해야 한다는 의견이 많았기 때문이다. 개최지 선정부터 꼬인 올림픽은 시작 전부터 문제를 발생시킨다.
바로 테러. 애틀랜타 올림픽 개막을 이틀 앞두고 대규모 항공기 공중 폭발 사고가 있었다. 뉴욕 케네디 국제공항을 출발해 파리로 가던 보잉 747 여객기는 이륙 직후 공중 폭발하면서 추락했다. 탑승자 229명 전원 사망. 엄청난 사고였다. 이에 미국은 3만 5천의 방위군과 연방 요원을 동원해 전면 경계상태를 유지하고 공항 안전 조치를 강화했지만….
올림픽이 열리고 있던 27일 새벽. 올림픽 1백 주년 기념공원에 강력한 폭발사건이 발생해 2명이 숨지고 110여 명이 부상을 당하는 사건이 또 일어난다.
전 세계의 화합을 위한 올림픽이 피로 물든 것이다.
그리고 최고의 스프린터 자리로 싸울 둘이 있지만, 이들은 논외로 쳐야 했다. 수안이 존재하는 한 이들은 최고의 자리를 논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수안에겐 이번 애틀랜타 올림픽은 그리 반갑지 않다.
아들과 같이 있고 싶은데 끌려온 올림픽이다.
그리고 비행기에 탑승해야 하는데 비행기 테러 사건이 발생해 부모님과 아내의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수안이 출전하는 결승 경기 중에 가장 먼저 시작되는 것은 바로 100m 경기였다.
7월 29일. 무난히 결승에 진출한 수안은 나른한 얼굴로 트랙에 서 있었다.
다른 선수들은 긴장을 풀기 위해 스트레칭이나 제자리 뛰기를 하는 등 움직이고 있지만 수안은 멍하니 서 있는 것이 전부였다. 중계석에서도 그런 수안의 모습을 심각한 얼굴로 주시하고 있었다.
“이곳은 미국 애틀랜타 센테니얼 올림픽 경기장입니다. 오늘 강수안 선수가 남자 100m 육상 경기에 출전합니다.”
“선수들 입장해서 대기 중이고요. 우리나라 강수안 선수도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 강 선수 상태가 이상합니다. 혹시 오늘 컨디션에 문제가 있는 건 아닐까요.”
“저도 걱정스럽습니다. 긴장해서 그런 것 같진 않은데…. 벌써 선수 호명이 시작됩니다.”
수안은 자신의 번호와 이름이 불려 건성으로 손을 들었다.
‘귀찮다. 귀찮아.’
오직 아들을 보고 싶다는 생각밖에 없었다. 아까 전화로 들었던 정원이 울음소리가 아직도 귀에 윙윙거리며 울린다.
그때 임경남 감독이 멀리서 외쳤다.
“수안아! 정원이가 아빠 금메달 따오란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백일도 지나지 않은 정원이가 그런 소리를 했을 리 없다는 건 알고 있다. 하지만 자신의 약속이 있었다.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아내와 아들을 위해 금메달을 다 따야 했다.
수안의 눈에 초점이 돌아오고 몸에 힘이 솟아올랐다.
“아빠가 금메달 따갈게. 정원아.”
-Ready.
-Get Set!
타앙.
수안은 기계처럼 정확한 타이밍에 치고 나갔다.
캐나다 선수 하나가 수안과 동일 선상에 섰다가 금방 뒤로 밀려 나갔다.
보통 남자 100m는 영상 판독으로 최종 승부를 가려야 했지만 수안이 출전하면 영상 판독은 필요 없었다.
이미 수안은 결승선을 넘어서고 있다.
“강수아아안! 올림픽 남자 100m 육상 경기에서 3연패를 달성하는 역사적인 순간입니다! 우리나라 강수안 선수가 해냈습니다! 남자 100m 최고의 스프린터! 세계 최고의 자리에서 왕좌를 내줄 생각이 없습니다. 자랑스러운 우리의 강수안!”
“다른 나라 선수들이 호시탐탐 왕좌를 노리고 있었지만, 어림도 없는 일이죠. 영상 보시겠습니다. 기록은 확인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아! 2위와 확실하게 구분됩니다. 기록이….”
영상 기록을 확인하던 해설자가 입을 벌리고 말을 잊지 못했다. 아나운서가 얼른 해설자를 대신해서 기록을 외쳤다.
“9초 51! 지난 올림픽에서 본인이 세운 세계 신기록을 다시 경신합니다! 세계에서 가장 빠른 사나이 강수안! 명불허전입니다! 4년 만에 월드 레코드를 경신하며 카메라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습니다. ”
“우리 강 선수 정말 대단합니다. 인간이 낼 수 있는 최고 속도가 있다면 9초 5가 아닐까 하는 연구 결과도 있었죠. 우리 강 선수는 이제 인간의 한계에 도달한 선수라고 생각됩니다. 오늘따라 강 선수가 들고 뛰는 태극기가 정말 감동입니다. 강수안! 앞으로도 계속 부르고 싶은 이름입니다! 올림픽에서 남자 100m 3연패를 달성하며 전설을 써 내려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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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안은 태극기를 들고 트랙을 뛰다가 아는 얼굴을 만났다.
“볼트!!”
수안이 항공권과 경기 입장권까지 보내 볼트를 초대했기 때문이다.
100m 결승 경기를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관람하던 볼트가 수안의 목소리에 손을 번쩍 들어 흔들었다. 경기장이 환호로 가득했고 모든 시선은 100m 육상 경기의 주인공 수안에게 향해 있었다.
수안은 볼트 가까이 가서 주먹을 들었고, 볼트도 주먹을 들어 갖다 댔다.
“…….”
“…….”
기자들의 눈엔 수안이 아프리카계 어린 팬에게 팬 서비스를 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 모습을 사진에 담는 기자는 꿈에도 알 수 없었지만, 전설과 전설이 올림픽에서 만나는 역사적인 순간이었다.
수안이 볼트와 주먹을 마주한 사진은 미국 한 일간지에 크게 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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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 선수의 육상 경기 전설은 오늘부터 시작입니다. 내일 남자 400m 경기에도 강 선수가 출전합니다.”
“3일 뒤인 8월 2일에 남자 200m에도 출전이 예약되어 있죠.”
“400m 계주 경기도 남았습니다.”
“국민 여러분. 우리 강 선수에게 아직 세 경기나 남았다는 사실이 믿겨 지십니까?”
본래 이번 올림픽에서 200m와 400m를 동시 석권하며 마하 인간이라는 칭호로 불리는 미국 선수가 있었다. 하지만 수안이 200m와 400m에 출전하는 이상 그 칭호는 미국 선수에게 돌아갈 수 없었다. 마하 인간이든 육상의 절대 왕좌든 수안이 가져야 할 칭호였다.
* * *
“하루가 이렇게 길 줄은 몰랐습니다.”
“저도 오늘 치러질 남자 400m 경기를 너무나 기다렸습니다. 국민 여러분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싶습니다. 한국 시간으로 새벽에 치르는 경기입니다. 대한민국 팬들도 밤잠을 이루지 못하고 지켜보고 있습니다.”
수안은 전날처럼 멍한 표정이 아니었다. 첫 경기를 치르며 제대로 정신이 돌아왔다.
자신은 이곳에 메달을 따러 왔다.
다른 선수들에게 미안하지 않을 만큼 훈련에도 열심히 참여했다.
이젠 그 달콤한 결실을 취할 때였다.
-Ready.
-Get Set!
타앙.
수안은 달리고 또 달렸다. 하루하루 경기를 치르며 금메달을 쌓아간다. 사람들의 환호와 경악이 계속되는 수안의 경기였다.
* * *
미국은 올림픽의 스포트라이트를 자국 선수에게 맞추고 싶어 했지만, 수안의 존재가 이를 어렵게 만들었다. 미국의 여자 수영 선수가 4개의 금메달을 따내며 가장 많은 금메달을 획득했지만. 수안과 동률일 뿐이다. 남자 육상과 수영은 큰 차이가 있었다. 게다가 수안은 경기마다 세계 신기록을 달성했다.
아무리 미국이 방향을 틀고 싶어도 대중이 원하는 사람은 따로 있었다.
세계의 모든 시선은 수안에게 향했고, 수안은 한국으로 돌아가는 그 날까지 인터뷰에 시달려야 했다. 수안은 즉석에서 영어로 인터뷰를 진행했기에 편안하게 기자들과 대화하며 인터뷰를 진행할 수 있었다.
한국은 금 12, 은 15, 동 5 을 따내며 종합 7위를 기록했다.
수안이 없었다면 금메달 4개를 제외하고 10위의 성적을 기록했을 터였다.
올림픽 폐회식이 끝났고, 한국 선수단은 한국으로 돌아갈 채비를 하고 있었다.
“이제 끝이죠? 빨리 갑시다.”
“…….”
임경남 감독은 수안이 4개의 금메달을 따냈음에도 불퉁한 얼굴이다.
“아. 왜? 가자니까요. 뭐 때문에 화가 나셨어?”
“네 마음대로 은퇴한다고 발표하면 어떡해?”
수안이 해외 기자들과 인터뷰하며 가장 많이 했던 단어가 바로 은퇴라는 단어다.
이번 올림픽을 끝으로 육상 선수 생활을 청산하고 은퇴한다고 알린 수안이다.
누구도 수안의 입을 막을 수 없었다.
“그럼 또 나가라고? 임 감독님. 다른 선수들 늙어 죽어요. 영광스러운 자리에 올랐으면 내려올 줄도 알아야지. 계속 뭉개고 있어요? 금메달이 문제가 아니라 후진 양성도 생각해야죠.”
이번엔 대통령 할아버지가 와서 나가라고 해도 번복할 생각 없었다.
인터뷰에서도 이번 은퇴는 번복 없는 진짜 은퇴라고 몇 번이고 공언했다.
“그래도 그렇지. 나랑 상의는 했어야.”
“상의는 개뿔. 내가 은퇴하는데 뭐 하러 감독님하고 상의해요? 은퇴 안 해 본 것도 아니고.”
“아쉬워서 그러지 인마. 이번에 네 개나 땄는데…. 4년 뒤에도 고작 29살인데….”
“다른 선수들 다 늙어 죽는다니까요. 애들이나 발굴해서 잘 키워 봐요.”
수안은 더 얘기할 것도 없다는 듯이 짐을 싸서 밖으로 나갔다.
밖에 나가자 같은 한국 선수단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