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슨 (70/304)

레슨

수안은 고려 호텔 계열의 골프 연습장에 도착했다.

연습장은 최근 완공해 개장을 앞두고 있었기에 아직 손님을 받지 않지만, 수안은 예외였다.

차량이 도착하자 직원이 헐레벌떡 뛰어나온다.

“안녕하십니까. 부사장님.”

“아직 오픈도 안 했는데 공연히 부산스럽게 했습니다.”

“아닙니다. 개장 전 직원들 예행 연습도 되고 좋은 기회라고 생각합니다.”

“하하. 말씀도 잘하시네요. 강사는 어디 있습니까? 내가 레슨에 좀 늦었죠?”

수안의 질문에 흠칫한 남직원은 기어가는 목소리로 답했다.

“…죄송합니다. 아직 강사가 도착하지 않았습니다.”

골프 강사가 도착하지 않았다는 말에 배영성이 나섰다.

“이봐요! 제가 분명히 얘기해 드렸을 텐데요. 여태 안 왔다는 게 말이 됩니까? 일을 대체 어떻게 하는 겁니까?!”

사전에 골프 강사를 선택하고 그 이후의 세부 일정을 연습장을 운영하는 직원에게 넘겼던 배영성이다.

“배 이사. 이 사람 잘못이 아니잖아. 좀 기다리자.”

“…죄송합니다. 부사장님. 제가 끝까지 챙겼어야 했는데….”

“사람이 살다 보면 좀 늦을 수도 있지 뭘 그래.”

수안은 천천히 옷을 갈아입었고 레슨 받을 준비를 끝냈다. 그리고 몇 분 더 지나서야 급하게 뛰어오는 골프 강사였다.

“헉헉. 죄송합니다. 오는 길에 사고가 났는지 너무 길이 막혀서….”

“이보세요! 최 프로. 이런 식이면 곤란합니다. 시간을 딱 맞춰 나오니 이런 문제가 발생하지 않습니까. 미리 나와서 기다렸어야죠! 부사장님이 얼마나 기다렸는지 압니까?”

‘괜찮다고 했는데 또 그러네….’

수안은 배영성이 타박하는 소리에 고개를 돌려 골프 강사를 확인했다.

“……!”

“죄송합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연신 고개를 숙이는 사람은 수안이 잘 알고 있는 얼굴이었다.

“최 선수! 아이고 반갑습니다.”

수안은 얼른 달려가 골프 강사로 초빙된 프로 골프 선수의 손을 맞잡았다.

“올해 팬텀 오픈 우승한 최경준 프로 맞죠? 이야~ 우리 배 이사가 대단한 강사님을 모셨네.”

“아. 하하. 감사합니다.”

1995년 올해 국내 대회 우승을 시작으로 국내 골프계를 평정하고 일본으로 넘어간 다음, 미국 PGA까지 진출해 총 8회 우승을 차지하는 역대급 프로 골퍼 최경준. 수안의 골프 강사로 선택된 이의 미래 약력이다.

“배 이사. 적당히 하자. 앞으로 한두 번 볼 사이도 아니고.”

“예. 부사장님.”

수안은 새로운 인연에 집중했다.

“최 프로님 제가 최 프로님께 거는 기대가 큽니다. 앞으로도 승승장구하셔야죠.”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올림픽에서 두 번이나 육상을 평정하신 분의 기대라뇨.”

“저는 육상. 최 프로님은 골프. 앞으로 국내 프로계를 평정해 버리고 미국으로 날아가실지도 모르는 분 아니겠습니까. 하하하.”

“올해 처음 우승한 신인일 뿐입니다. 말씀만으로 감사합니다.”

배영성은 수안의 격한 환대에 대강 최경준 선수의 미래를 예상할 수 있었다.

‘미국? 미국 PGA로 진출할 선수였어?’

최경준 선수가 늦게 도착해 올라오던 화가 순식간에 사그라졌다.

“우리 배 이사 선구안은 장난이 아니네. 수고했어. 배 이사.”

“소 뒷걸음치다가 쥐를 잡았나 보죠….”

“운도 실력이야. 배 이사는 항상 느끼지만, 운이 참 좋아.”

‘…도련님을 만난 순간부터 제 운이 일하기 시작했습니다만…. 그나저나 저 사람이 대체 어디까지 오를 사람인 거야?’

배영성은 궁금증을 잠시 미뤄 두고 골프를 배우기 시작하는 수안의 수발을 들기 시작했다.

“자아. 이제 시작하시죠. 최 프로님. 생초보라고 생각하시고 잘 가르쳐 주십시오.”

“예.”

수안은 처음 골프를 배우는 참이다.

아버지에게 배울 기회는 많았지만, 육상으로 향한 수안의 여건이 이를 허락지 않았다.

“골프는 조화로운 스윙을 기본으로 깔고 가셔야 합니다. 수직과 수평의 조화가 그것이죠.”

수안은 자세부터 시작해 그립을 쥐는 법을 배우고 스윙의 방법을 자세하게 들었다.

최경준은 자신의 말에 집중하고 그대로 따르는 수안에게 아낌없이 자신의 노하우를 주입했다.

수안의 팔과 어깨, 다리를 교정하며 말했다.

“좋습니다. 몸이 정말 좋으시네요. 한번 알려 드리면 바로 익히시고… 역시 국가 대표답습니다.”

수안은 국가 대표로 올림픽에 출전했던 선수 출신이다. 힘과 유연성은 물론이고 자잘한 자세의 교정까지 몸이 자연스럽게 따르고 있었다.

몸으로 하는 모든 운동에 항상 자신 있는 수안이다.

“첫 스윙 가 보죠. 볼을 보시고, 어드레스. 어깨는 릴랙스. 안정된 스탠스로 갑니다. 백스윙, 다운스윙, 임펙트, 팔로우 스로우. 연습한 대로 부드럽게 한번 해 보세요. 지금 완벽합니다. 스윙 시작하세요.”

수안은 최경준에게 배운 자세를 몸에 주입하고 조화를 생각하며 어깨에 힘을 뺐다.

안정된 스탠스로 백스윙이 올라가고 자연스러운 다운스윙 그리고 이어진 임팩트!

타앙!

임팩트 후에 이어진 팔로우 스로우 자세도 한 점 흐트러지지 않았다.

“나이스 샷! 나이스 스윙! 자세는 이대로 교본에 넣어도 되겠습니다. 하하하.”

.

.

.

수안은 연습장에서 몇 시간 동안 최경준 프로에게 골프 레슨을 받고 집으로 향했다.

“…최 선수가 프로 데뷔하라고 저렇게 난리를 피울 줄은 몰랐네요.”

“자기 경쟁자가 생길지도 모르는데, 왜 저래?”

수안은 최경준의 골프 레슨을 집중해 들으며 노하우를 쪽쪽 빨아먹었고, 레슨 마지막쯤에는 스윙의 정확도와 비거리까지 쭉쭉 늘어났다. 최경준 프로는 육상이 아니라 골프를 해야 했다며 난리였다. 당장이라도 이쪽으로 넘어오라며 입에 침이 마르도록 설득했지만, 수안이 골프를 배운 것은 사업상 접대를 위함이었다.

‘프로 골프까지 진출할 생각은 없다고.’

수안은 마이클 조던처럼 되고 싶지 않았다.

“싹이 보이니 그렇죠. 몸으로 하는 건 정말 뭐든 잘하시네요.”

“다음 레슨부터는 배 이사도 배우자. 나 혼자 배우니까 심심하네.”

“이 나이에 몸이 따라 줄지 모르겠습니다.”

“불타오르는 신혼을 즐길 체력이면 뭐든 안 될까.”

“…열심히 배우겠습니다.”

“그럼 놀면서 배우려고 했어? 나중에 나랑 라운딩 돌려면 손에 굳은살이 생기도록 연습해야 할걸?”

“그나저나. 최경준 선수가 미국으로 간다고요?”

“암. 가고말고.”

“…대단한 사람인가 봐요?”

“국내 평정하고 다음엔 일본 평정. 그리고 미국 PGA까지 진출해서 총 8회 우승.”

“힉!!”

“쉽게 오는 기회가 아니야. 진짜 열심히 배워야 해.”

“나중엔 돈 주고도 못 배우겠네요. 열심히 배우겠습니다.”

* * *

다음 날 수안은 회사가 아니라 컨트리클럽으로 향했다.

서울과 가까운 경기도 내에 있는 골프장이다.

“정지훈 이사님과 윤혜린 양의 결혼식이 모레였죠? 바쁘실 텐데 이런 약속을 잡으셨네요.”

“지훈 형 결혼 전에 얼굴 보기로 했었거든. 갑자기 골프장에서 보자고 할 줄은 나도 몰랐지.”

수안과 필드에 오르기로 약속된 사람이 바로 뉴월드 그룹의 정지훈이었다.

다른 사람과의 약속이라면 골프를 아직 배우지 못했다고 미룰 수 있었지만, 친척이라면 얘기가 달랐다. 레슨을 받은 본래 의도는 조금이라도 익혀서 기본 스윙만 배워 가자는 심정이었다. 사촌 형이니 골프 조금 못 쳐도 상관없다고 생각했었다.

“어제 처음 레슨 받고 바로 필드로 나가시는 분은 부사장님밖에 없을 겁니다.”

“오늘 이 약속 때문에 부랴부랴 레슨 받았잖아.”

사업상 접대를 위한 목적도 있었지만, 오늘 필드에서 약속이 잡혀 있어서 급하게 시작한 골프 레슨이다. 물론 그렇게 쉽게 배울 수 있는 줄은 수안도 예상하지 못한 일이다.

“문제는 하루 배워도 아무 문제가 없다는 거죠.”

“재미는 있더라. 사람들이 왜 그렇게 골프에 열광하는지 알겠어.”

정지훈은 수안과 비슷한 시간에 골프장에 도착했다.

“수안아!”

“형.”

“잘 어울리네. 넌 역시 옷발이 죽인다.”

“하하. 형이야말로 고수의 기운이 풍기네. 자주 쳐 봤어?”

“내가 운동은 이것저것 좋아하잖아. 사람들과 어울릴 수준까지만 배웠다.”

“내가 형이라서 나왔어. 다른 사람이 부르면 나오지도 않아.”

“하하. 영광이다, 임마. 골프 얼마나 치냐? 100타는 치지?”

“…나 오늘 머리 올리러 나왔거든? 백지야. 기록 같은 거 없어.”

골프를 배우고 처음 필드에 올랐다는 뜻이다.

“뭐? 라운딩 처음이야?”

“형 때문에 어제 처음으로 골프 레슨 받은 사람이야 내가.”

“아이고 머리야. 난 네가 회사 운영한다고 해서 당연히 배웠을 줄 알았잖아. 지금까지 골프도 안 배우고 뭐 했어?”

“됐고. 참신한 지도 부탁해. 이제 필드나 들어갑시다.”

“우리 다음 타임 예약 잡지 말라고 하길 천만다행이다. 한참 걸리겠네.”

.

.

.

정지훈의 걱정은 티샷이 이뤄지는 티잉그라운드부터 시작이었다.

“…드라이버는 휘두를 줄 아냐? 티샷은 쳐 봤어?”

“어제 몇 번.”

“…수백 번을 쳐도 필드에서 어찌 될지 모르는데. 아휴.”

“여긴 파 4홀인가? 그린이 상당히 머네.”

“야. 그린은 뭐 하러 쳐다봐? 페어웨이만 노려. 페어웨이가 어딘지는 알지?”

“내가 기본 지식도 없이 왔겠어? 딱 기다려 봐.”

수안은 어제 배운 느낌 그대로 어드레스를 잡았다.

‘어쭈? 자세는 아주 프로네.’

이어지는 과감하고 부드러운 백스윙.

‘아휴. 연습이나 하고 휘둘러야지… 수안아. 헛스윙이나 하지 말자. 뒤땅도 걱정이네….’

지훈은 수안의 드라이버가 공이 아닌 땅을 치고 부러지면 어쩌나 걱정하고 있었다.

빠른 다운스윙에 강렬한 임팩트가 이어졌다.

카아앙!!

완벽한 팔로우 스로우 자세와 날아가는 공을 따르는 시선.

마지막까지 완벽한 동작이었다.

캐디가 쌍안경으로 공이 떨어진 위치를 보고 말했다.

“…온 그린입니다. 비거리가 대략 270야드… 맞바람이었는데….”

파 4홀에서 티샷으로 공을 그린에 올려 버렸다. 무지막지한 비거리였다.

프로들이 장타 대회에서나 선보일 비거리였기 때문이다.

“…너 뭐냐?”

약간 짧은 파 4홀이지만 티샷 온 그린은 해도 너무 했다.

“이럴 때는 나이스 샷이라고 외쳐 주지 않나? 역시 실전과 이론은 달라.”

“진짜 어제 처음 배웠어? 너 나 놀리려고 일부러 그랬지! 너 언제부터 배운 거야?”

“이 형이 평생 속고만 살았나. 내가 형이 불러서 못 치는 골프를 일부러 배웠다니까.”

지훈은 수안과 몇 마디 대화로 정말 수안이 어제 처음 골프를 배웠고, 오늘 처음 필드에 나왔음을 믿을 수 있었다. 거듭된 질문에 일관된 대답이었다.

“진짜야! 그제까지 골프에 기역도 몰랐다고! 그만 좀 물어봐!”

지훈은 도대체 어디에서 특이점이 발생했는지 궁금해졌다.

“…대체 어제 하루 동안 뭘 배웠어?”

“아주 특별한 강사님이 오셨거든. 노하우를 아낌없이 베풀어 주셨지.”

“누구? 신혼여행 갔다가 미국에서 PGA 프로 선수라도 데려왔어?”

“미국은 무슨… 올해 국내 대회 처음으로 우승한 프로 골퍼였어.”

“이름 대라. 나도 그 선수에게 레슨 좀 받자.”

“최경준 프로. 형이랑 동갑이겠네.”

“내가 몇 년을 쳤는데… 아오.”

“형 차례 아닌가?”

지훈은 흔들린 멘탈 그대로 티샷을 쳤고, 역시나 공은 경로를 이탈해 오른쪽으로 향했다.

“어이쿠. 이게 슬라이스야?”

“…처음부터 오른쪽으로 향한 건 푸시라고 하는 거야. 슬라이스는 가다가 오른쪽으로 휜 것.”

“오오~ 역시 배울 게 있었어.”

“…….”

지훈은 이런 걸 가르쳐 줄 생각이 아니었다.

<『재벌가에 끼어들었다』 4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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