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프랭크 빈치 (67/304)

프랭크 빈치

“아내는 잠들어 있어서 저만 내려온 참입니다. 아침이라도 함께하시겠습니까?”

“아뇨. 공개된 자리는 불편합니다.”

외부에 공개되지 않는 자리에서 수안만을 만나고자 하는 프랭크 부장관이다.

“단둘이 봤으면 좋겠군요.”

“저런. 중요한 말씀이시라면 룸을 하나 빌리겠습니다.”

수안의 눈짓에 배영성이 얼른 호텔에 빈방을 마련했다.

* * *

“실례라는 걸 알면서도 찾아왔답니다. 마침 미국으로 오신다니 안 볼 수가 있어야죠. BE 인베스트먼트의 실소유주이신데 말이죠.”

“하하. 지난번에 오셔서 좋은 말씀 많이 해 주고 가셨더군요. 감사드립니다.”

강운모 회장에게 BE 인베스트먼트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하지 않은 프랭크 부장관이다. 이에 대한 감사였다.

“별말씀을. 당연히 지켜져야 할 약속이었을 뿐입니다.”

“감사 인사를 입으로만 하는 것은 제 취향에 맞지 않는데…. 방법이 없겠습니까?”

은근하게 로비를 할 수 있는지 묻는 것이다.

“…그보다 다른 문제를 먼저 얘기하죠.”

‘분명 욕심은 보였어. 그런데 왜 그만두지?’

로비에 대해서도 충분히 알아들었고, 로비에 탐욕도 보였다. 하지만 부드럽게 다른 주제로 향하는 프랭크 부장관이다.

“말씀하십시오. 저는 준비됐습니다.”

“BE에서 인수한 회사들의 면면이 대단하더군요. 투자하는 곳마다 엄청난 수익률도 놀랍고요. 전부 스티븐 강의 작품이라죠?”

“어려서부터 이쪽 분야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오래 살펴보니 차후 성장할 회사들이 보였습니다. 본능에 따라 행동했죠.”

“하하. 본능. 그거참 대단한 본능입니다. 그런 본능이라면 저도 갖고 싶군요.”

수안은 본론이 나오지 않자 살짝 찔러 봤다.

“아무래도 저희가 인수한 회사들이 별로 마음에 들지 않으신 모양입니다.”

“흠흠… 미국 정부의 입장을 이해해 주시죠.”

“…우리가 인수한 회사 중에 어디입니까.”

“의향은 있으십니까?”

“물론입니다. 하지만… 가격이 맞아야겠지요. 가격이 맞아도 안 되는 회사가 있지만 말입니다.”

BE에서 인수한 회사 중 너무 높은 성장 가능성으로 인해 미국 정부가 되돌려 받고 싶은 회사가 있다는 뜻이었고, 팔 수 있는 회사에 한한다면 얼마든지 되팔겠다고 말하는 것이다.

‘미국 정부가 아니라 누군가 로비를 했겠지.’

미국 정부가 주도한 일은 아니라는 것이 확실했다. 인수는 하고 싶지만 아무리 인수 의사를 타진해도 소용이 없으니 정부를 통해 로비를 진행한 것으로 보였다.

“우선. 아마존의 지분.”

“…저희가 인수한 회사가 아니군요.”

향후 성장 가능성이 커 지분을 인수한 아마존이지만, 고작 이 정도로 정부가 나설 수준은 아니었다. 이는 이익을 내기 위한 투자 회사의 정상적인 투자였고, 진짜를 감추기 위한 바람잡이 그 이상이 아닐 터였다. 물론 아마존의 성장 가능성을 미국 정부가 모른다는 가정이다.

“본론이 아직 나오지 않은 것 같습니다. 작은 미국 기업의 지분을 가진 회사가 한둘도 아니고요.”

“하하. 젊은 나이의 오너라고 제가 너무 가볍게 생각했군요. 맞습니다. 진짜 본론은 따로 있죠.”

“오래 자리 비우시는 것도 부담스러우실 테니 바로 말씀해 주십시오. 긍정적으로 검토하겠습니다.”

“스티븐이 적극적으로 협조하니 대화가 편합니다. 우리가 원하는 것은 비아그라입니다.”

“후우.”

이미 비아그라가 세상에 출시되었다.

정확하게는 출시라고 보기 어렵고, 3상을 끝낼 타이밍이다.

‘파이자 제약이 수를 썼군.’

비아그라를 빼앗긴 파이자 제약에서 어마어마한 로비 자금을 지출한 모양이다.

3상을 통해 이미 비아그라의 효능과 향후 수익까지 계산한 것이 틀림없었다.

“좋습니다. 비아그라는… 협의에 따라 넘기죠. 가격은 맞춰야 할 겁니다. 파이자 제약에 연결을 부탁합니다.”

“하하. 파이자 제약이 뒤에 있는 것까지 단숨에 파악하다니. 말이 통해서 다행입니다. BE가 원하는 금액을 먼저 들어 볼 수 있겠습니까?”

“최소 인수금액은 200억 달러입니다. 여기부터 시작할 생각입니다.”

“…200억 달러? 과합니다.”

“프랭크 부장관님과 재무부 장관님까지… 200억 달러 매각을 성사시켜 주신다면 각각 5억 달러의 사례금을 드리죠.”

“……!!”

“매각 금액을 10억 달러 올리실 때마다 0.5%. 즉, 5백만 달러의 추가 보수를 기대하실 수 있습니다. 이 정도면 파이자 제약에서 보인 성의보다 후한 제안이 아닐까요?”

“허. 흠.”

프랭크 부장관의 눈빛이 달라졌다.

‘이 정도면 욕심이 생겨도 이상하지 않지.’

“…그 약이 그렇게 높은 가치가 있습니까? 파이자 제약은 그리 높은 금액을 생각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만.”

‘고작 발기 부전 치료제로 쓰인다고 했었는데….’

비아그라의 향후 가치를 정확히 파악하지 못한 프랭크 부장관이다.

고개 숙인 남성들에게 희망의 등불이 되어 노년층에까지 선풍적인 인기를 끄는 성 기능 촉진제였다. 고작 일부에게 사용하는 치료제가 아니었다. 본래 1998년 개발되는 약이지만, 처음부터 약의 목적을 확고하게 수립한 수안 덕분에 몇 년이나 일찍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파이자 제약이 프랭크 부장관님께 많은 정보를 드리지 않은 모양입니다.”

“…….”

“저희가 초기 개발 단계에서 파이자 제약에서 인수한 심장병 치료제 실데나필은 우리 제약사에서 발기 부전 치료제로 목적을 변경, 훌륭하게 완성해 3상 통과를 앞두고 있습니다. 그리고 발기 부전이라는 병은 나이 든 남성 누구에게나 공통된 일이죠. 이 약이 설마 나이 든 남성만을 판매 대상으로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향후 남자라면 누구든 이 약을 사려고 줄을 설 겁니다. 전 세계 인류 절반이 잠재적 소비자라는 뜻입니다. 파이자 제약은 향후 가치를 속여 어떻게든 적은 금액으로 인수하고자 하겠지만, 개발한 우리까지 속일 수는 없는 법입니다.”

“그럼…. 비아그라의 향후 가치가 200억 달러를 훌쩍 뛰어넘는다는 말입니까?”

“1정당 5달러로 가정하고 1억 정이 팔린다고 생각해 보시죠.”

“그래 봐야 5억 달러, 20년이라고 해 봐야 100억 달러에 불과하군요.”

“죄송하지만, 1억 정은 미국에서만 일주일 내에 팔린다고 가정하셔야 합니다. 전 세계 1년 판매량이 아닙니다.”

“……!!”

전 세계로 시장을 넓히고 판매 기간을 한 달로 잡으면 적어도 수십억 달러의 매출을 예상할 수 있었다. 여기에 최소 50%의 이익만 잡아도 1년에 수백억 달러의 이익이었다.

“이를 앞으로 20년간 독점 판매한다면 그 가치가 고작 200억 달러만 되겠습니까? 게다가 약으로 인한 수익에 파이자 제약의 기업 홍보까지 더해지겠군요. 비아그라를 통해 미국의 파이자 제약은 전 세계적인 제약사로 이름을 날릴 수 있죠. 200억 달러는 매우 저렴한 금액입니다. 저는 프랭크 장관님께 모든 것을 솔직하게 말씀드리는 겁니다. 그래서 넉넉한 중개 비용까지 제안할 수 있죠. 파이자 제약처럼 프랭크 부장관님과 미국 정부를 속이는 일은 없습니다.”

“…….”

수안의 제안에 프랭크 부장관은 욕심과 분노가 더해진 복잡한 감정을 안고 돌아갔다.

파이자 제약에서 적은 로비 금액과 부족한 정보로 자신을 속이려 한 것에 대한 분노와 수안의 거대한 로비 자금 제안으로 욕심이 더해진 상황이었다.

.

.

.

수안은 프랭크 부장관이 돌아가고 전화를 연결했다.

“이방효 사장 연결했습니다.”

수안은 배영성이 연결한 전화를 받았다.

“이 사장. 나야.”

-예. 미스터 스티븐. 말씀하십시오.

이방효 미국 BE 인베스트 사장은 보안을 위해 수안의 이름을 스티븐이라고 부르고 있었다.

“통신 보안은 확실한가?”

-음… 아직 이상은 없습니다. 편하게 말씀하셔도 됩니다.

“방금 프랭크 부장관과 만났어.”

-재무부 프랭크 빈치 부장관 말씀입니까?

“그래. 개발한 약을 넘기라더군.”

-허! 웃기는 놈들이군요. 그게 어떤 약인데.

“넘기기로 했어.”

-그건 안 됩니다! 이제 3상 막바지에 이르렀는데.

“우린 다른 약이 있잖아?”

-…그럼 오직 실데나필 성분의 비아그라만 대상에 포함된 겁니까?

“그래. 최소 200억 달러를 받고 파이자 제약에 넘길 생각이야.”

-푸흐흐흐. 200억 달러면 충분하군요.

“타다라필은 모르니까 하는 소리지. 어쨌든 준비하고 있어. 프랭크 부장관과 재무부 장관에게 200억 달러를 성공시키면 각각 5억 달러씩 입금하기로 했어. 10억 달러를 올릴 때마다 5백만 달러를 약속했으니까 알아서 매각 금액을 올릴 거야.”

인수한 제약사에서 실데나필만 바라보고 있진 않았다. 유사 성분을 개발해 특허 등록을 준비 중이었다. 매각과 동시에 특허가 등록되면, 남성을 위한 특수 제약 시장을 양분할 수 있었다. 실데나필의 비아그라는 24시간 효과를 발휘하고 타다라필의 신약은 72시간을 자랑한다. 비아그라는 두통이나 안면 홍조 등 부작용이 두드러지게 발생하지만, 타다라필 기반 신약은 부작용이 덜했다.

-매각 대금으로 시장 저변을 우리가 가져갈 수도 있겠군요. 말씀대로 이행하겠습니다.

수안이 전화를 끊자 배영성이 말했다.

“예상하셨던 일이 그대로 일어나는군요.”

“파이자 제약이 빼앗긴 제품을 돌려받길 원하는 거야 누구든 예상할 수 있잖아.”

파이자 제약에서 실데나필을 가져오며 향후 발생할 분쟁을 예상했었다.

거래 자체에 문제가 있었다는 파이자 제약의 문제 제기는 초기에 강력히 대응하며 틀어막았었다. 하지만 미국 기업과 해외 기업 간의 분쟁은 로비에 의해 달라질 수 있었기에 이를 걱정하고 있었던 수안이다. 예상대로 파이자 제약은 재무부 로비를 통해 비아그라를 돌려받고자 하고 있었다.

“…파이자 제약이 우리 제안을 받아들일지 모르겠습니다.”

“이제 우리 손을 떠난 일이야. 이미 파이자 제약은 프랭크 부장관의 신뢰를 잃었지. 우린 파이자 제약보다 거대한 로비 자금을 제안한 상태야. 프랭크의 활약을 기다리면 돼.”

* * *

수안의 예상대로 프랭크 부장관은 파이자 제약에 보내던 신뢰가 바닥에 이르러있었다.

“미스터 로이. 프랭크일세.”

-프랭크 부장관님. 반갑습니다.

“…오늘 좋은 소식을 전하게 되었군.”

-일이 잘 풀렸습니까? BE에서 재무부의 제안을 수락했군요! 하하하.

“BE는 재무부의 제안을 거절하지 못했네. 상당히 고된 협의를 거쳤지.”

-정말 감사합니다. 프랭크 부장관님. 무엇보다 가격이 궁금하군요.

“BE에선 300억 달러에 해당 약의 소유권을 넘기겠다고 하더군.”

-…300억 달러라고 하셨습니까? 그게 무슨 소립니까?

200억 달러가 300억 달러로 뻥튀기되었다.

그리고 파이자 제약에서 본래 원했던 금액보다 10배 이상 높은 금액이었다.

“어차피 그대와의 약속은 인수가 가능하게 해 주는 것까지였지 않나.”

-하지만 300억 달러는 말도 안 되는 금액이 아닙니까! 이런 금액을 제안했으면 재무부 선에서 잘랐어야 합니다!

“…로이. 왜 300억 달러가 말도 안 되는지 설명을 부탁해도 되겠나?”

-비아그라는 아무리 판매가 잘되어도 1년에 10억 달러 판매도 불가능합니다. 20년이라고 해도 200억 달러가 채 되지 않을 겁니다. 특허가 끝나는 순간까지 300억 달러의 매출도 불가능하니 당연히 어림없는 금액 아닙니까. 30억 달러만 해도 우리가 상당히 높게 책정한 금액이란 말입니다.

“그렇군. 그렇다면 비아그라의 인수는 힘들겠어. BE에서 제안한 금액과 파이자 제약에서 생각하는 금액의 괴리가 크니 거래 성사는 힘들겠군. 로이가 제안한 성공 보수는 잊겠네.”

-플랭크 부장관님! 장관님도 허락하신 사항입니까? 분명 우리는 장관님과 부장관님 두 분께 제안했습니다.

“자네 날 너무 가벼이 보는군.”

-부장관님. 제 말은….

“이미 재무부 장관님과도 얘기된 사항일세. 참고로 BE에서는 비아그라의 20년 판매 이익을 1천억 달러까지 보더군. 매출이 아니라 이익이란 말일세. 자네는 BE와 파이자 제약 간에 왜 이렇게 큰 금액 차이가 발생했는지 알고 있나?”

-…….

“자네도 모르는가 보군. 안타까운 일이야. BE 혼자서 허황한 예측을 하고 있다고 봐야 할까? 로이. 정말로 그렇게 생각하나?”

-…우리 예측에 변수가 있을 수 있지만….

“변수라. 그 변수 한번 대단하군. 몇 배가 넘는 차이가 발생하는 변수라.”

-…프랭크 부장관님.

로이는 일이 크게 틀어졌음을 알 수 있었다. 프랭크 부장관의 말투가 차갑기 그지없었다.

“300억 달러. 생각 있으면 다시 연락하게.”

-과합니다. 미국 기업도 아닌 BE에 그런 큰 금액을 주고 약을 사 올 수는 없습니다! 게다가 그 약은 본래부터 파이자 제약이 개발하던 약입니다!

“개발도 완료되지 않은 심장병 연구 자료를 팔아서 돈을 번 것은 파이자 제약이 아니었나? 지금에서야 돈이 될 것 같으니 내 것이라고 주장하고 싶은가? 이미 그 부분은 법정에서 다 밝혀진 것 같은데? 그리고 BE도 미국에 뿌리내린 미국 기업이라네.”

-그래서 우린 거액의 로비를 약속드리지 않았습니까?

“허허허. 자네 그 말은 꺼내지 않는 편이 좋았을 것 같군. 내가 성공 보수는 잊겠다고 한 것 같네만.”

-…말이 헛나왔습니다.

“BE의 제안은 그대로일세. 300억 달러. 고민해 보시게.”

-다시 제안 드리겠습니다. 50억 달러. 여기까지 해 주시면… 5천만 달러를….

파이자 제약 로이의 제안은 수안의 제안과 비교해 너무나 부족했다.

5억 달러에 플러스알파 그리고 5천만 달러. 비교 대상이 아니었다.

“훗. 로이가 이렇게 농담을 즐기는 사람인 줄 몰랐군. 재미있는 얘긴 잘 들었네.”

-…어떻게 하면 되겠습니까. 방법을 알려 주십시오.

“이미 장관님과 나는 자네에게 크게 실망했다네. 신뢰를 잃었다고 해야겠지. 재무부에서 다시 파악한 결과 20년 1천억 달러 이익도 과소하게 평가된 감이 있더군. 두 배인 2천억 달러의 이익을 낼 수도 있다는 판단이야. 로이. 제값을 주고 특허를 사 오시게.”

-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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