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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안과 2안 (62/304)

1안과 2안

강운모 회장은 중국에서 장쩌민 주석 및 리펑 총리와 면담하고 돌아왔고, 결혼식은 몇 주 앞으로 다가왔다.

강운모 회장은 중국에서 돌아와 회사로 수안을 불렀다.

“너는 중국에 궁금한 일 없어?”

강운 그룹이 중국에 진출하는 것을 고민하고 있었기에 돌려서 물어보는 것이다.

“강운 그룹 경영이야 아버지가 알아서 잘하시겠죠. 이제 회사 일은 말씀 안 드린다니까요.”

“아직도 그때 일로 그러는 거야?”

예전 강운 자동차 문제로 금융 위기에 대해 의논하며 앞으로 회사 업무와 경제 상황에 대한 논의를 하지 않겠다고 했었던 수안이다. 강운 자동차가 곧 망할 것이고, 국내에 거대한 금융 위기가 도래한다고 예측했으니 강 회장의 심정도 이해하지 못할 바는 아니다.

“제 입에서 안 좋은 소리 나오면 기분만 상하고 따르지도 않으실 텐데 뭐 하러 입 아프게 설명 드려요. 회사가 조금 손해 보고 끝나면 되는 문제입니다. 저는 아버지 말 잘 듣는 착한 아들 하겠습니다.”

“끄응… 얘기라도 해 봐. 그래야 내가 듣고 어찌할지 결정을 할 거 아냐?”

수안은 포옥 한숨을 내쉬고 짧게 설명했다.

“…중국은 공산당이 일당 독재하는 국가입니다. 장쩌민이 주석에 올랐지만 미약한 권력만 갖고 있고, 전임 주석인 등소평의 힘이 강력하게 남아 있습니다. 아무리 개방해도 공산당이 있는 한 중국에서의 사업은 성공 가능성이 희박합니다.”

“…근거는 그저 공산당 하나뿐이냐? 오히려 그 때문에 흥할 수 있는 일이다.”

이번 출장으로 중국 정부와의 끈을 확실하게 잡았다고 생각한 강 회장이다.

“진출하시면 한동안 성과는 얻으실 겁니다. 대신 작은 기술이라도 공장에 내보이시면 모조리 빼앗기실 겁니다. 시간이 흐르면… 모든 것은 중국의 것이 되어 있을 겁니다.”

“…기술 유출을 의심하고 있구나.”

“기술 유출이 끝이겠습니까? 인재 유출도 상당할 겁니다. 그리고 해외 기업에 약간의 문제라도 생기면 공장 기계를 정부가 꿀꺽하고 본토 기업에 내 줄 겁니다. 문제가 없어도 있게 만들 수 있죠. 현지에서 공장을 청산한다 해도 기계를 다시 들여오지 못합니다. 올 때는 마음대로였지만, 나갈 때는 아닙니다. 공산당이 민주 정부와 다른 점이 바로 이것입니다. 법 위에 정부가 있습니다. 게다가 아버지께서 잡은 그 줄은 힘없이 푸석거리는 밧줄이죠.”

수안은 아버지가 중국에서 맺은 꽌시가 대단치 않다 표현하고 있었다.

“…….”

등소평의 힘이 강력하게 남아 있는 것도 사실이었고, 공산당 내에서 장쩌민의 입지가 작은 것도 사실이었다. 강 회장이 화를 꾹 눌러 참은 이유다.

“그래도 앞으로 중국 정부와의 관계를 생각하셔서 최소한의 규모로 진행하시되 기술이 유출되어도 문제가 없을 만한 분야라면 괜찮겠습니다. 괜히 전자나 반도체, 디스플레이 공장을 중국에 넘기는 우를 범하시면 안 됩니다. 되도록 다른 경쟁사에도 경고해 주세요. 우리가 일본의 조선업을 따라잡고 있듯이 중국은 우리의 반도체 기술과 디스플레이 기술을 따라잡을 생각입니다.”

1993년. 거품 경제 붕괴 속에서 정신을 차리지 못하던 일본과 달리 어려운 상황 속에서 생산력을 확충하고 기술 개발에 매진한 한국의 조선업은 눈부시게 발전했다. 그리고 약 40년간 세계 1위 자리를 차지하던 일본을 제치고 조선업계 수주량 1위에 올라섰다. 이후 2천 년대부터 수주, 건조, 수주 잔량 등 모든 지표에서 1위를 차지하며 40% 가까운 점유율을 보이며 시장을 선도한다.

“크흠….”

수안의 말이 얼토당토않게 들리지 않았다. 이미 연구소에서 분석한 결과에도 비슷한 경고가 있었다.

한 번 시작된 수안의 경고가 계속해서 이어졌다.

“아시는 것처럼 반도체는 앞으로 산업의 쌀과 같습니다. 중소기업은 기술 빼먹지 말고 함께 커야 합니다. 작은 유망 기업에 투자해서 국산 기술력을 확보해야 합니다. 밑바닥부터 최상급 기술에 이르기까지 모조리 국산화로 진행해야 합니다. 지금처럼 반쪽만 해서는 소용없어요. 기술 최강국이자 반도체 소재, 부품까지 취급하는 일본이 나중에 우릴 견제할 것까지 예상하셔야 합니다. 지금은 일본이 우리에게 호의를 보이지만, 일본 정치도 공산주의 못지않습니다. 일본과 중국은 절대로 믿지 못할 파트너입니다.”

“이제 겨우 256M D램이 나왔는데….”

“믿을 것은 우리나라 기업과 우리 기업 연구원들밖에 없습니다. 초격차를 만드셔야 합니다. 그리고 강운 그룹 자본력으로 치킨 게임을 시작해야죠. 다 죽이고 우리만 남아야 합니다.”

“허….”

아들이지만 어쩌면 이렇게 자신과 생각이 비슷한지 가끔 섬뜩한 기분이 들었다.

“강운이 가는 길에 중국이라는 떨거지를 안고 가실 겁니까?”

훗날 중국의 화웨이와 샤오미를 비롯해 중국 정부의 돈을 지원받는 반도체, 디스플레이 업체가 치고 올라온다.

“아니면 강운이 가는 길에 발목 잡을 일본을 안고 가실 겁니까?”

일본은 한국의 독주를 막기 위해 화이트 리스트로 주요 반도체 소재 수출을 규제하며 발목을 잡는다.

이것이 촉발된 원인으로 엉뚱한 법원 판결을 들었지만, 실제 이유는 한국의 경쟁력을 악화시키고 일본에 대한 의존성을 높이기 위한 협잡이었다.

“…네놈이 물건은 물건이야. 크흐흐.”

“일본처럼 조선 핵심 인력을 구조 조정 명단에 넣는 우만 범하지 않으시면 됩니다. 인재를 중용하시고 크게 대우하시면 인재유 출을 막고 초격차를 유지할 수 있습니다. 단 하나의 특출한 인재가 강운 전체를 먹여 살릴 수 있습니다.”

“프하하하. 네 말이 맞다.”

수안은 아버지의 긍정에 조용히 다음 말을 꺼냈다.

“중국 진출 2안도 있는데 들어 보시겠습니까?”

“…2안도 있었어?”

“경영자로서 대안 정도는 가지고 있으셔야죠. 그리고 중국에 물건 안 파실 겁니까? 지금은 소비 시장이 작지만 곧 거대한 소비 시장으로 거듭날 중국입니다.”

지금까지 중국 진출에 단점만 나열하던 수안이지만, 2안은 전혀 달랐다.

“그 방법… 어서 듣고 싶구나.”

“중국에 강운 그룹의 노동 집약 제조업은 물론이고 첨단 반도체, 디스플레이 공장까지 지어 중국 시장에 진출하시면 되겠습니다.”

“아까는 기술 유출을 조심하라며?”

“일정 부분 기술을 포기하시면 됩니다.”

“포기? 잠깐 시장을 먹자고 기술을 포기해? 그게 경영자로서 할 말이냐?”

“중국에 팔아 번 돈으로 우리는 계속해서 격차를 만들어야죠.”

“……!”

“거대한 중국 시장에 물건을 팔아 돈을 벌고, 그 돈으로 기술을 개발해야 합니다. 초격차. 아무리 따라오려 해도 따라올 수 없는 기술의 차이. 중국에서 번 돈으로 우린 기술을 증진하고 이미 유행이 지나 버린 기술과 구식 장비까지 중국에 팔아 버리시면 됩니다. 중국은 우리의 꽁무니만 따라오며 돈을 갖다 바칠 겁니다.”

“하하. 하하하하!”

2안이 무척 마음에 든 강 회장이다.

“…….”

강 회장이 웃고 있었지만 수안은 여전히 불퉁한 얼굴이다.

“뭔데? 왜?”

“제 말이 다 맞다 하시면서 강운 자동차는 얼씨구나 출범하셨습니까?”

이미 3월에 강운 자동차를 출범한 강 회장이다.

“수안아, 그건….”

자동차는 아버지의 로망이자 돌아가신 할아버지의 로망이다.

충분히 알고 있는 바다.

“이제 저도 자동차를 생각해 보죠.”

“오! 너도 이제 차에 대한 로망이 생겼나 보구나!”

“회장님과는 다른 방법이 될 것 같습니다. 3년 뒤에 보시죠. 그때까진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다 알면 재미없잖아요.”

“위기가 오면 네가 강운 자동차를 인수하겠다는 말이냐?”

“…설마요. 강운 자동차는 줘도 안 갖습니다. 딴 데 넘기세요.”

“뭐 임마? 이제 시작한 자동차 사업을 왜 딴 놈에게 넘겨?”

자동차 얘기만 나오면 이 모양이다.

“…지금은 아직 멀었으니까요.”

“…위기가 오긴 온다는 말이지?”

“제 생각과 예측은 아직 변함없습니다. 해외에 눈을 돌리고 각국의 위기를 살펴보십시오. 우리나라의 위기도 해외와 발을 맞춰 옵니다.”

아직 IMF를 막을 만한 힘은 없었다. 지금은 시류에 편승해 최악을 차악으로 만들어야 했다.

“끄응… 믿긴 해야 하는데. 근거가 없으니 나 원 참….”

“금융 위기나 완성차 산업 얘기는 그만하죠. 마지막으로 당부 드리고 끝내겠습니다.”

“충분히 알아들었다. 소재, 부품 국산화.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신기술 개발 그리고 초격차. 더 있어?”

“뜬구름 잡는 얘기일 뿐이지 않습니까.”

스스로 한 말이지만 철저하게 깎아내리는 수안이다.

“…더 상세한 내용이 있다는 말이야? 여기서 더?”

“우선 디스플레이부터 시작하죠. 현재 강운에서 개발 중인 TFT LCD는 계속 진행하시되, 1987년 발견된 OLED 기술에도 선행 투자를 집행하십시오. 전 세계 시장을 TFT LCD로 석권한 다음 OLED로 초격차를 만들어야 합니다.”

“…네가 그걸 어찌 알고 있는지는 모르겠다만, 뜬구름 잡는 얘기인 것은 마찬가지로구나.”

“강운 전자 연구소 출입 권한을 주세요. 제가 가서 핵심 기술을 만들어 보겠습니다.”

“뭐? 법학을 전공하고 사법 고시까지 치른 네가?”

전공도 아닌 분야에 뛰어들어 무슨 소용이 있겠냐는 뜻이다. 오로지 기업의 경영에 매진한 강 회장 입장에서는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다른 사람들은 몰라도 아버지는 아시지 않습니까. 저 평범하지 않습니다.”

국민학교에 들어가기도 전에 대학 과정까지 학습을 끝낸 수안이다.

“…아무리 그래도 이공계는 기본부터 다르다. 그들이 괜히 몇 년씩 공부하고 공학 박사가 되었겠느냐? 괜히 시간 낭비일 뿐이야.”

“그건 해 봐야 아는 거죠. 겸사겸사 반도체 연구소도 출입을 허가해 주세요.”

“디스플레이든 반도체든 헛수고라니까.”

“회장님.”

“…….”

아들이 가끔 무표정한 얼굴로 아버지가 아닌 회장님이라고 부를 때는 가슴이 덜컥하곤 했다.

“제가 가진 계열사에도 제품 개발 연구소가 있고, 이미 그 연구소에서 개발한 많은 핵심 결과물이 제 손에서 탄생했습니다. 시간을 낭비해도 제가 낭비합니다. 저는 강운에 도움이 되고자 제 시간을 사용하는 것입니다.”

이미 반도체 공정과 디스플레이 공정에 대해 미리 공부한 수안이다.

강운 전자 사장에게 지시를 하려면 알고 있어야 했고, 그 전에 본인이 해당 사업을 진행하려고 했었다. 하지만 거대한 규모의 공장을 갖춰야 했고 방대한 하청 그룹도 필요한 일이다.

‘중복 투자는 필요 없지. 어차피 강운에 다 갖춰져 있고, 강운 전자는 미래에 내 것이 될 거야.’

강운 반도체와 디스플레이에 도움을 주는 것이 옳다는 판단 아래 연구소 출입 권한을 요청한 것이다.

물론 관련된 신기술을 모두 파악하진 못했다. 그래도 현재 연구원들이 가진 수준만큼은 분명히 따라잡았다. 머리에만 떠도는 기억을 실제로 적용하며 개발에 임하면 오랜 시간이 아니라도 개선이 가능할 것 같았다.

“경영은 어차피 아버지께서 건재하시니 제가 필요 없지만, 기술 개발은 빠를수록 좋습니다.”

“그걸 네가 해 내겠다?”

“저도 해 봐야 알죠. 하지만 가능성은 높습니다.”

“…흐음. 어차피 네가 회사 기밀을 빼돌릴 것도 아니지….”

“빼돌려봐야 제 살 깎아 먹기밖에 더 하겠습니까? 겸사겸사 연구원들도 솎아내죠.”

“연구원들을 솎아내? 무슨 기준으로?”

“중국어 가능자는 우선 중심 개발 연구진에서 제외합니다. 그리고 직무 개발 보상에 불만을 가진 연구원들도 찾아 구분해야죠.”

“중국어 가능자를?”

“향후 중국에서 우리 연구진을 빼내 가려고 5배에서 10배까지 연봉을 제시할 겁니다. 중국어가 가능하다면 혹하지 않겠습니까? 중국어를 모르더라도 보상에 불만을 가진 연구원이라면 홀딱 넘어가 버릴 겁니다. 초격차를 유지하려면 보안은 필수죠. 물론 싸게 부려먹을 생각을 하는 우리 회사가 근본적인 문제긴 합니다만….”

“언제 회사가 연구원을 싸게 부려먹었다고 그래?”

“그럼 한 가지만 여쭤보죠. 연구원 하나가 몇조 원의 매출을 이룰 제품을 개발하면 얼마나 보상해 주실 겁니까?”

“그야….”

강운 전자의 짜디짠 직무 보상 규정으로 줄 수 있는 보상엔 한계가 있었다.

“단순 보상은 불충분합니다. 해당 제품 매출로 발생한 영업 이익의 일정 비율을 보상해야 합니다. 그래야 전 세계 어디서도 따라오지 못할 초격차를 만들어 낼 수 있습니다. 아끼다가 똥 되는 것은 순식간입니다.”

“말을 해도 똥이 뭐야?”

“저는 이미 실행하고 있어서 말씀드렸습니다. 제가 경쟁사인 삼디 전자에서 빼내온 연구원들이 만들어 낸 제품은 향후 수천억의 매출액이 발생할 제품이었습니다. 저는 그들에게 향후 그로 인해 발생한 영업 이익의 일정 비율을 주기로 계약서까지 작성했습니다. 덕분에 연구소에서 일하는 연구원들의 열의가 대단하죠. 우리 연구원들은 다른 기업에서 높은 연봉을 부른다고 흔들리지 않습니다.”

“…너무 과해.”

“기술이 유출되어 발생할 문제에 비하면 아주 작은 금액일 뿐입니다. 기준이 되는 것은 매출도 아니고 영업 이익입니다. 2조의 매출을 이뤘다고 했을 때 영업 이익은 1천억이나 될까요? 그의 5%는 고작 50억입니다. 수천의 강운 식구들을 먹여 살리는 핵심 연구원들에게 50억을 쪼개 주는 것도 아깝습니까?”

“적절한 비율을 찾아보마….”

“다시 말씀드리지만, 개발에 들어가는 비용을 아끼다가 더 큰 것을 잃습니다. 세계 일류로 나아가는 강운이 되려면 분명히 바로 잡고 가셔야 할 부분입니다.”

“알았다니까!”

“…아무래도 불안해서 먼저 얘기 드려야겠습니다. 제가 개발한 물건의 로열티는 영업 이익의 5%로 받겠습니다.”

“뭐 임마!”

“제가 스타트를 끊어야 뭔가 시작될 것 같으니까요.”

“하! 네가 진짜로 그런 기술을 개발하면 그때나 논할 일이야!”

“아뇨. 그땐 이미 강운 연구원들과 공유한 다음일 테니 협상에 우위를 가질 수 없죠. 5%. 지금 확답해 주십시오. 저는 강운 연구소에 들어가기 전에 계약서부터 쓰고 들어갈 겁니다.”

“…이 녀석이!!”

그래도 아들이라 윽박지르는 것으로 끝이었다.

“가시적인 성과라도 보이면 그때 다시 얘기하자. 내가 크게 양보한 거야!”

“…어쩔 수 없군요. 핵심 공정은 연구원들과 공유하지 않고 결과만 보여 드리는 수밖에요.”

“시작도 안 해 놓고….”

“저 원래 자신감이 넘치는 놈이지 않습니까. 하하하.”

“나가!”

“계약서 초안 부탁드리겠습니다. 그럼 저는 결혼 전까지 강운 연구소에 출퇴근하겠습니다. 쉬세요.”

수안이 얄미운 미소를 지으며 문을 닫고 나갔고, 집무실에 남은 강운모 회장은 이마를 짚고 있다가 최학주를 불러들였다.

“부르셨습니까?”

“강운 반도체 개발팀과 디스플레이 개발팀에 수안이 출입 허가해. 직책은 기술 고문.”

“…기술 고문이라면….”

연구원들 하나하나가 박사급 인재들이다. 여기에 기술 고문이라는 직책을 가지려면 해외 유명 대학의 교수급 인재여야 했다.

“포기하는 데 오래 걸리지 않겠지. 이제 녀석이 실패하는 것도 한 번쯤 보고 싶어.”

“예… 알겠습니다. 회장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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