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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장 (61/304)

별장

“나만 집에 불효를 한다고 생각했는데, 너도 그럴 줄은 몰랐어.”

“불효라니, 난 부모님 뜻대로 한 것뿐이야.”

“설마 회장님이나 외숙모가 마냥 좋다고 하셨을까.”

“흐흐. 좀 놀라긴 하셨지.”

“으이그. 그래도 어찌어찌 허락은 받았다?”

“허락이야 뭐. 난 내가 알아서 잘한다고 했으니까.”

“와이프한테 너무 잘해 주지 마. 괜히 그랬다간 오히려 네 마누라한테만 악영향이야.”

“형님이 덕담하려고 와주셨네. 그럼 동생 된 입장에서 귀를 씻고 들어야지.”

수안의 호의 어린 태도에 지훈은 어렵지 않게 본론을 꺼내 들었다.

“호텔. 네 와이프가 갖는다며?”

“형님이 놀랄 만했지. 그래도 뉴월드 그룹하고는 별 상관없지 않나?”

아현을 통해 윤혜린이 다녀갔고, 호텔 소식을 캐물었다는 일도 알고 있었다.

“강운에서 유통만 계열 분리 중이잖아. 이제 거의 끝나나 싶었는데, 문제가 생기나 싶어서 그러지.”

고려 호텔과 붙어 있던 뉴월드 유통 계열은 강운모 회장의 여동생인 고모 쪽으로 넘어가는 중이다. 할아버지도 돌아가셨으니, 강 회장의 결정만으로 가능한 일이었다.

덕분에 뉴월드 그룹은 상당한 크기의 독립된 기업으로 자리잡고 있었다.

지훈은 수안이 결혼하며 이 계열 분리에 잡음이 생기는 것은 아닌지 내심 걱정하고 있었다.

“뉴월드 유통은 고모님이 그동안 고생하셨는데, 당연히 가져가셔야지. 나도 불만 없고, 아현도 거기에 아무런 불만 없어. 불만은 고사하고 뭐가 뭔지도 모를걸?”

“휴우. 다행이네.”

“다행은 무슨. 어차피 고모님 지분도 상당하잖아. 불만 가졌다고 한들 누가 그 철옹성을 깨겠어?”

“회장님께서 다 넘기진 않으실 거잖아. 최소한 10% 이상은 지분을 보유하실걸?”

아무리 계열을 분리한다지만, 완벽한 분리는 지훈도 바라지 않았다. 계속해서 범 강운으로 남아야 거대한 재벌가의 권위를 누릴 수 있었다.

“발전 가능성이 너무 확실한 곳이잖아. 내 동생도 유통과 서비스에 관심이 많아.”

“둘 중에 누구?”

“수현이. 나중에 형이 수현이 좀 잘 봐주라. 뉴월드로 보내서 일 좀 배우라고 하게.”

“네가 아니라 수현이에게 갔어야 하나?”

“아직 어린 수현이가 뭘 알겠어? 형님이 나에게 온 건 잘한 일이지.”

“하긴. 수현이는 아직 졸업도 못 했지?”

“뉴월드 쪽에 보낼 테니까 자리나 마련해 줘. 졸업하면 고려 호텔에서 옮겨서 일 배우라고 하게.”

“뉴월드 호텔도 괜찮지?”

분리되는 계열사 중추인 뉴월드 유통에 원주인을 남겨두고 싶지 않아 뉴월드 호텔을 입에 담은 것이다.

“안 그래도 지금 고려 호텔에서 일 배우고 있으니까 더 좋겠네. 그리고 어차피 뉴월드 백화점도 계열 분리에 포함 못 시키는 거 알지? 나중엔 그쪽으로 보낼 거야.”

“그럼 내가 수현이 잘 키워서 사장까지 시킬 테니까, 네가 마트와 유통 쪽 계열 분리 문제 안 생기게 힘 좀 써 줘.”

“어휴. 지훈 형님이 이렇게 양보하시는데, 나도 물심양면으로 도와야지.”

수안이 돕지 않아도 알아서 잘 진행될 계열 분리다.

“큭. 나이대가 비슷해서 그런지 말이 잘 통해.”

“그래도 두 살 차이면 한참이지 형. 그보다 형수님이 윤혜린 씨라고 했지? 아현 씨와도 친하게 지내나 봐?”

“둘이 같이 연예계에 몸담고 있어서 그렇겠지.”

“아현은 이제 햇병아리 연예인이고, 형수는 전 국민이 다 아는 여배우잖아. 급이 틀리지.”

“훗. 알긴 아는구나?”

“하하하.”

립 서비스야 얼마든지 해 줄 수 있었다.

자신에겐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는 아현이다.

“필요한 거 있으면 말해. 동생 결혼하는데 선물은 해야지.”

“내가 공짜 선물을 마다하는 사람이 아닌데, 각오는 돼 있는 거지?”

“…그렇다고 너무 벗겨 먹지는 마라.”

“크흐흐. 나 아직 아무 말도 안 했는데, 벌써부터 앓는 소리야?”

“너는 임마. 번듯한 회사라도 운영하고 있지만, 난 이제 겨우 이사 달았잖아.”

뉴월드 그룹 전략기획실 이사로 올해 첫 직장 생활을 시작하는 지훈에 비해, 수안은 대학 1학년 때부터 오너로 시작한 회사 생활이다. 둘 다 일반인들과는 다른 시작이었다.

“나도 이제 겨우 부사장인데 뭘. 그리고 그룹 장자의 월급을 고모님이 그렇게 짜게 주시겠어?”

“뭘 받으려고 그렇게 밑밥을 깔아? 나 겁난다.”

“난 동해에 별장 하나 있으면 좋겠더라.”

“…동해에 별장?”

“너무 휘황찬란하면 부담스럽고, 적당한 크기의 별장이면 좋지.”

“야, 임마. 별장이라니….”

아무리 돈을 물 쓰듯 쓰는 지훈이지만 별장은 생각도 안 해 봤다.

“서울 집값보다는 한참 싸잖아. 고모는 서울에 대형 평수 아파트를 사 달라고 해도 사 줄 것 같은데?”

“…하긴 어머니가 널 많이 예뻐라 하긴 하셨지.”

수안은 집안 직계 가족 외에도 방계 가족의 사랑까지 독차지한 전과가 있다.

지훈의 어머니인 고모도 마찬가지였다. 자기 자식이 있음에도 조카인 수안을 얼마나 예뻐했는지, 지훈이 어렸을 때는 수안에게 질투도 많이 했더랬다.

“대신 나는 해외에 계좌 하나 만들어서 달러로 선물할게. 내 결혼 선물이야.”

“호오. 이거 주고받는 거였냐?”

공짜로 받겠다고 하고는 현금을 제안하는 수안의 마음 씀씀이가 무척 반갑다.

‘별장을 공짜로 달라고 하면 도둑놈이지. 암.’

“성의로 백만 달러만 넣을게. 신혼여행 가서 쓰면 편하지 않겠어?”

“……!!”

“적진 않지?”

“…우리 수안이 손이 언제 그렇게 커졌어? 하하하.”

기쁨을 감추지 못하는 지훈이다.

‘백만 달러면 대충…. 8억!’

“흐흐. 난 동해 별장 기대하고 있을게.”

“백만 달러에 걸맞는 별장으로 준비하마. 하하하.”

해외에 차고 넘치는 달러였다. 지금은 들여올 생각이 없었기에 이렇게라도 사용할 수 있는 것이 다행이다.

“결혼 전에 형수님하고 인사나 시켜 줘. 나도 예비 신부 데리고 나갈게.”

“그래야지. 비슷한 시기에 결혼하는데 서로 인사는 해야지.”

* * *

수안은 지훈을 보내고, 다시 배 이사를 불러 업무 지시를 이어 갔다.

“이번에 회장님이 중국으로 가시는 건 알지?”

“예. 중국이 이제 자본주의를 병행하려 한다는 추측입니다. 이에 따라 해외 기업을 불러 자국에 공장 설립을 부탁한다고 알고 있습니다. 회장님의 중국 방문 일정도 이와 유사한 내용으로 진행될 예정이라고 들었습니다.”

“추측이 아니라 사실이지. 중국 지도부는 공산주의 체제의 한계를 명확하게 알고 있어. 지난 공산주의 정권을 보라고, 안으로 썩어들 어가기만 하는 권력 집단을 해소하려면 밖으로 눈을 돌려야 해.”

“저희도 중국 진출을 생각해 볼 만합니다. 제조 시설을 중국에 둔다면 인건비를 크게 줄일 수 있습니다.”

“맞는 말이야. 인건비를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지. 국내 직원을 파견해서 QC를 엄격하게 하면 품질도 유지할 수 있겠지. 하지만!”

수안은 중국 진출에 회의적이다.

“중국은 공산주의 독재국가야. 공장을 건설해도 누가 우리 자산을 보장해 줄까? 공산당이 해외 자본가의 손을 들어줄 것 같아? 절대로 아냐.”

“효용 가치는 있지 않겠습니까?”

“당장 모토로라를 봐. 우리 팬탁에 OEM을 맡겼고, 우린 그 기술을 빼먹으려고 용쓰고 있잖아. 중국은 어떨 것 같아?”

“…직접 공장을 세운다면 다르지 않습니까?”

“중국은 OEM이나 직영 공장이나 다르지 않아. 거기서 고용한 중국인이 나중에 무슨 생각을 할 것 같아? 아마 몇 년 일하다가 익숙해질 대로 익숙해진 경력 직원들을 끌고 나가서 똑같은 물건을 만들고도 남을걸? 우리도 이미 일본과 미국, 독일을 보면서 배운 경험이 있잖아.”

“기술이 유출되어도 선행 특허가 있다면….”

“특허가 침해되었다고 고발한들 중국 정부가 외국 기업의 손을 들어줄까? 중국은 체제가 다르다니까.”

“…기억에 있으신 모양이죠?”

“이제 척하면 척이네.”

수안은 중국에 진출한 기업들이 어떤 말로를 맞이하는지 설명해 줬다. 대기업들이야 어찌어찌 살아남는다지만, 대부분 기업들은 중국 공산 정권에 강탈당하는 수준으로 공장과 기계를 빼앗기고, 기술까지 유출당했다. 야반도주가 아니면 답이 없었다.

“중국 진출은 포기해야겠군요. 하지만 인건비 비중이 자꾸 높아지고 있어서 해결책이 필요합니다. 신규 사업을 검토하면 수익에 상당한 악영향을 줍니다.”

“우선은 국내로 충당해. 그리고 정 힘들면 인도네시아로 알아보고.”

“오오. 아예 국가를 달리하시는군요?”

“베트남도 곧 미국과 수교하고 국교 정상화를 걷겠지만… 거기도 어차피 공산주의 국가라 제외. 남은 것은 인도네시아야.”

“알아보겠습니다.”

“아직 시간 있으니 천천히 알아봐. 미리 한국 제품을 선보이면서 한국을 맛보여 주는 것도 좋겠지.”

“예. 부사장님.”

“그리고 오늘 방문했던 뉴월드 그룹 정지훈 이사 결혼 선물로 계좌가 필요해. 홍콩 은행에 계좌 개설하고 백만 달러만 넣어놔.”

“선물로는 너무 크지 않습니까?”

“괜찮아. 동해에 별장 받기로 하고 주는 거라 공짜 아니야.”

“동해라면… 끝내주겠습니다. 하하하.”

“가서 참치도 잡아 보자. 크흐흐.”

별장은 아현과 쉬기 위함도 있었지만, 평소에 BE 인베스트먼트 지사장들과의 미팅을 위해 준비하는 것이다.

앞으로 쓸모가 많을 별장이었다.

* * *

지훈은 수안을 만나고 바로 윤혜린을 불러냈다.

“수안이랑 나중에 같이 만나기로 했어.”

“예비 신부도요?”

“그럼. 같이 봐야지.”

“선물을 준비해야 하는데 뭘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아현 앞에서는 서로 하지 않는다고 했지만, 생각해 보니 그냥 넘어갈 수가 없었다.

“아… 선물은 혜린이가 따로 생각할 필요 없어. 내가 준비할 테니까.”

“지훈 씨가 하려고요?”

“수안이 녀석이 동해에 별장이 갖고 싶다네.”

“…벼, 별장이요?”

‘재벌가는 원래 이런가?’

혜린은 상상도 못 할 선물이었다.

“하하. 녀석은 보답으로 뭘 준다는 지 알아?”

“별장과 비슷한 선물이면 짐작도 안 가요.”

“신혼여행 가서 편하게 쓰라고 백만 달러를 선물하겠다네? 나 참.”

“……!”

“안 좋아?”

선물도 누구에게 받느냐에 따라 다르다. 혜린은 선물에서 밀리고 싶지 않았다.

“지훈 씨는 별장을 어느 정도 규모로 생각해요?”

“…4억이면 충분하지 않을까?”

백만 달러에 걸맞는 별장을 주겠다고 했지만, 정말로 그렇게 한다는 말은 아니었다.

“백만 달러를 받고 고작 4억짜리 별장으로 끝내겠다고요? 서로 비슷하게는 맞춰야죠!”

“그런가?”

“생각해 봐요. 우린 강운 그룹 방계예요. 우리만의 일이 아니라고요. 어머님이 나중에 아신다고 생각해 보세요. 뭐라고 하시겠어요?”

“아….”

지훈도 거기까지 생각해 보진 않았다. 그저 자신의 결혼과 사촌 동생인 수안의 결혼까지만 생각했는데, 혜린은 서로 집안의 차이와 부모님의 권위까지 고려하고 있었다.

“어머니까지 생각하면 나중에 욕먹을지도 모르겠네. 고마워 혜린아. 덕분에 나중에 창피당하지 않겠다.”

“동해 별장 부지부터 규모까지 제대로 맞춰서 선물하기로 해요. 그래야 지훈 씨도 떳떳할 수 있어요.”

“큭. 내가 신부는 잘 골랐네. 마냥 순둥이인 줄 알았더니 머리도 좋네?”

“어머님께 미리 말씀드려요. 그래야 혹시 모를 불상사도 막을 수 있어요.”

“뒷일까지 완벽하셔? 하하. 그래. 어머니께 말씀드리고 의논해 볼게.”

지훈은 수안에게 별장을 선물한다는 뜻을 어머니에게 알렸고, 그걸 왜 이제야 말하냐는 타박을 들어야 했다.

“안 그래도 나중에 별장 하나 지을까 생각해 둔 부지가 있었는데 잘됐다. 조카 선물로 딱이네.”

지훈은 어머니가 가지고 있던 부지를 면담 한 번으로 확보 할 수 있었다.

‘돈 굳었다. 아싸.’

하지만 밖으로 나오고 나서야 현실을 인지했다.

“그런 부지가 있었는데. 왜 나한테는 말도 없으셨지? 게다가 수안이 결혼한다니까 그냥 주신다고? 그럼 난!”

여전히 수안을 어여쁘게 여기는 지훈의 모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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