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생
나오자마자 배영성과 최장호에게 지시했다.
“배 이사는 김 사장에게 임 배우 보조하는 직원들 다 회의실로 모으라고 해. 최 실장은 담당 경호원들 모아서 회의실로.”
““예. 실장님.””
수안이 회의실로 가서 기다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속속 사람들이 들어왔다.
“정주한 팀장 포함. 경호원 4인 전부 집합했습니다.”
“매니저 박영구 씨와 스타일리스트 둘. 전부 데려왔습니다.”
수안은 앉아 있던 자리에서 의자를 빙글 돌려 들어온 사람들을 보며 말했다.
“다들 앉아요.”
수안은 앉아 있는 사람들의 면면을 살펴보며 하나씩 불러 말하기 시작했다.
“정주한 경호팀장.”
“예! 실장님.”
“이미 전달받았겠지만, 노파심에 다시 당부하려고 불렀습니다. 배우 임아현 씨는 곧 내 아내가 될 사람이에요. 강운 그룹 패밀리가 될 사람이란 말입니다. 어디 가서도 기죽지 말고 경호하세요. 내 이름을 팔아도 좋고, 강운 그룹 이름을 팔아도 좋습니다. 아시겠습니까?”
“철저하게 경호하겠습니다. 실장님!”
“좋습니다. 그리고 박영구 매니저.”
“예, 옛. 실장님.”
“외부에서 발생하는 모든 일은 당신에게 1차적인 책임이 있는 겁니다. 경호원이 지근거리에 있다지만, 아현 씨 가장 가까이에 있는 사람이 바로 당신이에요. 스케줄도 당신이 관리하니 철저하게 일정을 관리하세요. 문제의 소지가 있는 일정은 아예 처음부터 잡지 말아요.”
“옙!”
“박 매니저가 스타일리스트 두 분도 관리하실 테니 따로 지시하진 않겠습니다. 다만, 두 분은 정 직원으로 채용하세요. 계약해서 일하고 쥐꼬리만큼 일당을 받는 식이면 책임감도 떨어지기 마련입니다. 김 사장에게 말씀하시면 바로 실행될 겁니다. 그리고 입 조심시키세요. 연예계 소문의 근원지는 스타들 근방에 있는 직원들의 입이니까.”
스타일리스트 둘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한 달 잘 벌어야 50이 될까 말까 한 직업이었다. 경력을 만든다는 이유로 노동을 착취당하는 일이 빈번한 이들이다. 스타일리스트의 불확실한 근로환경이 극단적으로 변화했다. 입을 다물라는 지시 정도는 얼마든지 들어줄 수 있었다.
“박 매니저.”
“예. 실장님.”
“김 사장에겐 따로 얘기했지만, 다시 얘기드립니다. 곧 강운 그룹 계열사 광고가 아현 씨에게 할당될 겁니다. 일정 조율하고 진행 부탁해요.”
수안이 아버지에게 직접 부탁한 일이었다. 곧 분양을 시작할 삼풍 백화점 자리의 프리미엄 아파트부터 시작해, 강운 계열의 패션과 화장품에 아현을 광고 모델로 활용해 달라는 부탁이었다. 대우는 당연히 최상급을 넘어서는 수준이었다.
“아! 맡겨 주십시오. 앞으로도 부족함 없이 모시겠습니다.”
“이상. 당부는 끝입니다. 하고 싶은 말 있습니까? 듣겠습니다.”
““…….””
함부로 입을 열지 못하는 사람들을 보고 수안이 첨언했다.
“지금은 생각나지 않아도 나중에 생각날지 모르죠. 경호팀 정 팀장에게 부탁하면 내 귀에도 들어옵니다. 나중에 생각나면 정 팀장에게 남기세요. 이만 끝내죠.”
수안이 회의를 마친다고 하자, 배영성이 직원들을 돌려보냈다.
“자. 다들 자리로 돌아가십시오.”
“박 매니저는 남아요.”
수안의 말에 박 매니저는 덜컥 걸음을 멈추고 긴장했다.
수안은 남아 있던 박 매니저를 데리고 함께 회의실 밖으로 나와 복도를 걸으며 얘기했다.
“아현 씨가 사용할 차량은 뭡니까?”
“주차장에 있습니다. 봉고 차량인데….”
수안은 아현이 항상 타고 다닐 차량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배 이사. 우리 쓰던 밴 이제 바꿀 때 안 됐나?”
몇 년 사용하지 않아 신형이나 다름없었지만, 수안의 생각을 읽은 배영성이 답했다.
“깨끗하게 청소하고 정비해서 더블 엔터로 넘기겠습니다. 이제 실장님도 대형 세단 타실 때가 됐습니다.”
“나중에 새로 바꿀 때까지만 쓰라고 해. 밴은 물 건너오려면 오래 걸리잖아. 그리고 대형 세단은 뽑는 김에 내 돈으로 하나 더 뽑아. 아현이 평소에 타라고 선물해 주게.”
“예. 실장님.”
“박 매니저. 배 이사가 차량 인계해 주면 그걸로 사용하도록 하세요.”
“예…. 감사합니다.”
“배 이사는 김 사장에게 따로 법인 카드 하나 만들어서 아현에게 주라고 해.”
“예. 이사로 근무하시니 법인 카드는 필수죠.”
아현에 관련한 일이라면 하나부터 열까지 챙겨 주고 싶었다.
* * *
더블 엔터에서 나와 차에 오르자 배영성이 물어 왔다.
“실장님. 세단부터 보러 가시겠습니까?”
“아냐. 세단은 배 이사가 알아서 골라. 다움으로 가자.”
수안이 야심차게 시작하는 인터넷포털 사업의 첫 삽이었다.
“거긴 아직 사무실도 변변치 않은데….”
지난 사장단 회의에서도 가장 말석에서 두 번째에 앉아 있었던 이들이다. 당시엔 이들을 마땅히 소개할 말도 없었다. 진짜 말석에 있던 게임 개발 회사 덕분에 부끄러움을 덜었던 그들이다.
“이제부터 확실하게 키워야지. 처음부터 다 크고 시작하면 그게 어디 사업이야? 시작은 미약해도, 끝을 창대하게 만들어야 사업이 재미가 있지.”
“여기도… 혹시 아시는 곳입니까?”
미래에 본 기억이 있느냐는 뜻이었다.
수안은 운전하는 이가 장호라는 것을 확인하고 편안하게 말했다.
“다움은 2020년에 시가 총액 31조. 국내 인터넷 종합 포털이 되는 기업이야.”
“허극!”
최장호가 잡은 운전대가 비틀하며 차가 기우뚱했다.
끼익. 부웅….
“죄, 죄송합니다.”
차는 다시 앞으로 나아갔다.
1995년 현재 시총 1위인 한국전력도 20조에서 한참 부족하다. 2위 강운 전자도 8조 원을 겨우 넘고 있었다. 1위에서 3위까지 더해야 30조에 도달하는 수준이었다.
“지금과 25년 뒤는 물가가 다르니까 너무 충격받을 필요 없어.”
최소 세 배 이상의 물가 차이가 있었다.
“…다움이 그렇게 크게 성장한단 말입니까?”
“다움만 가지곤 소용없어. 코코아가 더해져야 제대로 크지.”
“코코아요?”
“그 부분은 다움에서 차차 개발하면 될 거야. 지금은 다움이 성장할 방법을 일러주러 가는 길이야. 아 당시 말석에 있던 게임 개발사도 전 국민이 즐기는 포탄 게임을 개발할 회사야. 엄청난 인기를 끌어.”
“흐흐. 우리 실장님 머리엔 모든 것이 다 들어 있으니까 저도 걱정이 없습니다. 최 실장 운전 똑바로 하자. 요즘 운전 쉬었다고 녹슬었어?”
“…죄송함다.”
* * *
수안은 이제 홈페이지를 만드는 다움 운영진에게 말도 안 되는 주문을 했다.
“우선 무료 메일 서비스를 위한 작업에 돌입하고, 전천후 검색기능에 채팅이 가능한 메신저도 만드세요. 추가로 국내 뉴스 기사와 해외 소식, 인터넷 카페, 개인 블로그, 서로 전문 지식을 나눌 수 있는 지식 Q & A, 전국 지도와 인터넷 만화와 웹 소설까지 모조리 넣어야 합니다. 이거 전부 무료서비스입니다. 아시겠죠?”
“허억!”
“이걸로 놀라면 어쩝니까? 나중엔 인터넷 쇼핑과 게임 퍼블리싱, 호텔 예약과 부동산 중개까지 모두 포괄해야 합니다. 자본금 확충할 테니, 필요한 직원들 다 뽑아서 개발하세요.”
“쇼핑과 게임은 너무 먼 얘기고… 지금까지 말씀하신 것들은 수익성이….”
“지금은 수익이 중요하지 않습니다. 유료화는 나중 일입니다. 이용자를 확보하는 것이 포탈 성공의 열쇠예요. 내가 여러분에게 돈 내놓으라고 할 것 같습니까? 더블 스타 지분이 90%예요. 모든 투자금은 더블 스타에서 지급됩니다. 회사 망해도 여러분 집에 빨간 딱지 붙을 일은 없으니, 마음 놓고 지르세요! 몇 년 동안 적자라도 상관없습니다. 서버 팍팍 늘리고! 직원들 다 뽑아 버려요!”
“하하하. 예! 실장님!”
이재영 사장은 별것도 아닌 자신들을 찾아와준 수안의 꿀 발린 말에 홀딱 넘어가 버린 다음이다. 본래라면 자신들이 힘을 모아 시작했어야 하지만, 수안이 일부 지분까지 스톡옵션으로 넘겨주며 설득해 작은 회사를 일으키고 있었다. 월급까지 따박따박 나오는 상황이라 생활 환경도 너무나 풍족했다.
향후 회사의 발전 방향까지 제시하는 수안의 말에 따르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하지만 분명히 기억하십시오. 인터넷 포털을 노리는 기업은 다움이 전부가 아닙니다. 다른 계열사도 같은 일을 하고 있습니다.”
다움만 바라보고 있을 수 없었기에 아예 계열사 하나를 새로 만들어 같은 일을 진행하고 있었다. 본래라면 삼디 그룹 산하의 계열사가 시작하다가 너무 작은 사업이라며 분사하지만, 이들조차 시작하려면 몇 년이나 남았기에 직접 손을 댔다.
수안은 야후 따위가 국내에서 힘도 못 쓰게 만들 생각이다.
“네이보는 검색 엔진을 개발하고, 메신저를 중심으로 개발 중입니다. 이들에게 뒤처지지 않도록 다움이 더 힘내야 할 겁니다.”
수안은 향후 포탈의 양대 산맥을 전부 거머쥐고 휘두를 생각이었다.
“발전해 나가겠습니다. 실장님.”
“믿고 가겠습니다. 내가 다움에 거는 기대가 큽니다. 기대를 전부 충족시키지 못해도 좋으나, 발전하지 못하는 계열사는 필요 없습니다. 아시겠죠?”
수안은 다움 경영진에 경고 섞인 말을 남기고 다시 밖으로 나왔다.
“SJ 컴퓨터는 내일, 팬탁은 그다음 날.”
“안랩에서도 실장님 방문을 요청한 상태입니다.”
“거긴 다음 주. 아직 안랩은 여유가 있으니까.”
“예. 실장님. 그리고 이번 더블 스타 주총에서 실장님을 등기 이사 사장으로 선임하는 안건이 있습니다. 김현성 사장은 부사장으로 내려오는 안건입니다.”
학교를 졸업하고 이제 회사에 주력하고 있으니 제대로 된 직급을 갖게 하려는 것이다.
“에이. 김현성 사장 잘하는데 뭐 하러 내려? 등기 이사는 그대로 가되 내 직급은 부사장으로 하자.”
“예. 실장님. 안건 변경하겠습니다.”
주총은 요식행위일 뿐이다.
안건을 통과시키는 주체가 바로 본인이었다.
“펜타그램에 잠시 들렀다가 회사로 돌아가자.”
“예.”
* * *
수안이 아현과 연애를 즐기며 회사 운영에 매진하는 동안 갑작스러운 기사가 나왔다.
배영성은 신문으로 내용을 확인하자마자 깜짝 놀라서 수안에게 달려갔다.
“부사장님. 문제가 생겼습니다.”
등기 이사는 주총에서 통과되어야 했지만, 회사 내부 직급은 사장이 임명하면 가능했다.
3월 초에 부사장으로 발령받은 다음이라 이젠 부사장이었다.
“뭔데 호들갑이야? 최 실장 와이프 애 낳는다고 연락 왔어?”
“장호는 제가 알아서 병원으로 보낼 테니 걱정하지 마시고요. 이것 좀 보십시오.”
수안은 배영성이 내민 신문을 확인했다.
“어? …이거 주수동 내연녀 얘기하는 거야?”
“거의 확실합니다. 아마도 그 물건을 손에 넣었던 모양입니다.”
기사에는 교통사고 발생으로 출동한 경찰이 횡설수설하는 여성 이모 씨의 상태를 의심해 조사하다가 마약 사범으로 전환했다는 내용이 들어 있었고, 집에서 대량의 알약 형태 마약이 발견되었다는 내용도 들어 있었다. 위치는 수안도 익히 알고 있는 장소였다. 그 여자가 분명했다.
“차로 가서 얘기하자. 최 실장 불러.”
“예. 부사장님.”
새로 뽑은 세단에 모인 셋은 무거운 안색이었다.
수안이 먼저 물었다.
“지난번 사건에서 경찰은 전혀 몰랐다는 거지?”
“…당시엔 저희도 그렇게 예상했고, 사실이었던 것 같습니다. 경찰이 주수동의 사인을 자연적인 사망으로 보고 조사를 진행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압수수색이 없었기 때문에 약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고 추측됩니다.”
“그럼. 그 약을 내연녀 이 씨가 발견하고 복용했다?”
“당시 약을 받아 가고 함께 사는 사람이 있었으니 같이 먹었을 수도 있지요. 같이 먹고 있었다면 내연녀가 극구 주수동의 사인을 해명한 것도 맞아떨어집니다. 자신도 마약 사범이 될 수 있으니까요.”
“나 참….”
최장호가 뒷말을 붙였다.
“저희가 따로 회수할 수도 없었던 일이라….”
“그럼 조동팔은 문제의 소지가 없겠지? 이미 다 체포하고 끝났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