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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생 (53/304)

탄생

배영성이 출산휴가를 끝내고 돌아왔다.

“돌아왔습니다. 실장님.”

“이제 애 아빠네. 배 이사.”

“하하하.”

“아들 이름은 뭐라고 지었어?”

“예. 배주원입니다. 엄마를 닮아 얼마나 눈이 반짝반짝한지….”

배영성은 집에 두고 온 아들이 눈에 어른거리는 모양이다.

“이름 예쁘게 잘 지었네. 직접 지은 거야?”

“작명소에서 지었습니다. 사주를 봤는데 나중에 크게 유명해질 사주라고….”

“잠깐. 배주원?”

수안의 뇌리에 스쳐 가는 인물이 있었다. 점쟁이가 크게 유명해진다고 했던 말 때문이었다.

‘1995년에 태어난 배주원이면…. BTC 멤버?’

고개를 들어 배영성의 얼굴을 유심히 보는 수안이다.

배영성의 얼굴에 BTC 멤버 중 하나의 얼굴이 어렴풋하게 보였다.

“하하하. 우리 배 이사 닮아서 주원이가 그렇게 잘생겼구나?”

나이가 조금 들었지만 지금도 미중년이라고 할 수 있었고, 젊었을 때도 상당히 잘생긴 얼굴이었다. 그 당시 얼굴을 떠올리니 왜 그때는 배주원을 떠올릴 수 없었는지 의아할 정도다.

“저기… 아직 사진도 안 보여 드렸습니다만….”

자랑하려고 아기 사진이 든 지갑을 막 꺼내려던 참이다.

게다가 이제 막 신생아 티를 벗었다 뿐이지, 얼굴 윤곽이 나오려면 아직 멀었다.

“나 미래에서 주원이 얼굴을 봤어.”

“우앗! 주원이를 보셨다고요? 성인이 된 주원이를요? 어떻게 주원이를….”

지금까지 수안의 미래 예언이 자신과 연관될 줄은 꿈에도 생각 못 한 배영성이다.

“그 집 사주 잘 보네. 사 주대로 주원이 굉장히 유명 질 거야.”

“하하하. 우리 주원이 뭘로 유명해집니까? 공부? 아니면 스포츠? 설마 사건 사고는 아니죠?”

“이거… 함부로 천기 누설을 해도 될지 모르겠네.”

괜히 연예인이라고 했다가 창창한 가수의 앞길을 막을지도 몰랐다.

“입 꾹 다물고 살겠습니다. 제발 좀 알려 주세요. 실장님.”

이미 맛을 보여 줘 놓고 말해 주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배 이사는 연예인들 어떻게 생각해?”

“…연예인입니까?”

“응.”

“대배우가 되는군요! 우리 주원이가 대배우가 되다니!”

다행히 배영성이 연예인에 대해 거부감을 가진 것 같진 않았다.

“배우는 아닌데.”

“그럼요?”

“가수.”

“아…. 가수….”

“가수는 별로?”

“국내에서 아무리 유명해져 봤자… 가수는 가수죠. 그래도 실장님이 미래에서 봤을 정도면 나름 인기는 좀 있었나 보죠?”

“나름? 좀?”

“그것도 아닙니까? 그냥 얼굴만 아시는 정도? 가요 톱10에 나오긴 합니까? 아니면. 토요일토요일은 즐거워?”

가요톱10이 언제적 가요 톱10인가 싶다가도 지금이 1995년이라는 것을 기억해 낸다.

‘어휴. 상상력이 고작 여기까지라니… 하긴, 지금 그 이상을 생각하는 건 무리지.’

“하! 주원이는 전 세계적으로 인기를 끄는 보이 그룹 멤버가 될 거야. 미국 빌보드 차트 1위에 오를 몸이라고.”

“우아앗!!!!!”

가요 톱10과 빌보드는 엄청난 차이였다. 지금은 마돈나, 마이클 잭슨, 머라이어 캐리, 휘트니 휴스턴 같은 엄청난 가수들이 차지하는 빌보드 1위였다. 자신의 아들이 그런 대 가수들과 어깨를 나란히 한단다.

“주원이는 미리부터 영어랑 다른 외국어도 많이 가르쳐. 해외 나가서 인터뷰도 하고 팬들과 소통도 해야지.”

“큭. 우리 주원이가 벌써부터 아빠한테 효도를 합니다. 가슴이 뭉클하네요.”

“내가 주원이 키우려고 방수혁까지 찾아서 더블 엔터에 영입해 놨던 거 아냐.”

“방수혁이 키워야 합니까?”

“역사를 비틀지 않으려 노력하고 있어. 주원이와 다른 멤버들을 발굴해서 키우는 사람이 바로 방수혁이야.”

“크흐. 우리 주원이를 위해서 다 준비해 두셨군요!”

“오늘 기분 정말 좋다. 우리 배 이사 아들이 주원이라니. 하하하.”

“저도 기분 좋습니다. 오늘부터 뼈 빠지게 일해서 우리 주원이 제대로 키워 보렵니다.”

“나중에 주원이 크면 아빠한테 효도 제대로 해야겠다.”

“하하하.”

기쁨은 기쁨이고, 배 이사가 없는 동안 있었던 중요한 일을 공유해야 했다.

“나 신붓감 생겼어.”

“오! 저 없는 사이 고르신 모양이군요? 마음엔 드십니까?”

“무척.”

무척이라는 말로 다 표현되지 않을 정도로 마음에 들었다.

“하하. 회장님이 제대로 고르신 모양입니다. 어느 집 영애입니까?”

“재벌가 아니고 그냥 평범해.”

“회장님이…. 일부러 그러셨단 말입니까?”

강 회장님이 수안에게 강운을 물려주지 않는다면 모를까, 이해할 수 없는 처사였다.

강운 그룹이 다른 기업의 손을 빌려 성장할 것은 아니라도 서로 급을 맞추는 것이 당연한 일이다.

서로 혼맥을 통해 얽히고설키는 재벌가 아니었던가.

심각한 얼굴의 배영성을 향해 수안이 설명을 더했다.

“아냐. 내가 골랐어. 회장님도 어머니도 내 뜻대로 해 주기로 하셨거든.”

“쉽게 허락하지 않으실 텐데요. 괜히 문제가 생길 수도 있습니다.”

부모님과의 다툼을 걱정하는 배영성이지만, 이미 해결된 문제였다.

“풋. 벌써 집에 가서 두 분께 허락받았어. 배 이사는 별걸 다 걱정해.”

“네? 그동안 연애도 안 하셨잖습니까?”

배영성은 수안이 8살 때부터 지금까지 곁에서 지켜본 사람이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배영성은 수안의 일거수일투족을 다 알고 있었다.

연애는 고사하고 술집에서 여자를 만나는 것도 보지 못했다.

“신붓감 딱 고르고 그날로 집에 데려가서 허락받고! 끝이지.”

“도련님. 대체 누굴 고르신 겁니까?”

혹시 돈에 눈이 먼 여자는 아닐지 무척 염려스러웠다.

“지금 보러 가자. 소개시켜 줄게.”

아현을 보여 주면 크게 놀랄 배영성의 모습이 기대됐다.

* * *

수안은 장호까지 대동하고 더블 엔터로 향했다.

수안이 왔다는 소식에 김기수 사장이 헐레벌떡 내려와 복도에서 마주쳤다.

“오셨습니까. 강 실장님.”

“김 사장님. 임 이사는 위에 있죠?”

“집무실에 계실 겁니다. 마침 어제 이사님 집무실이 준비되어서 오늘 처음 입실하신 참입니다.”

“일 봐요. 내가 찾아갈 테니까.”

수안 뒤에서 배영성은 장호에게 조용히 묻고 있었다.

“최 실장은 알지? 누군데?”

“실장님이 함구하라고 하셨습니다.”

“야. 그냥 말해 줘봐.”

“지금 보러 가잖습니까. 직접 보세요.”

“에이.”

수안은 엘리베이터로 임아현의 집무실이 있는 층수에 도착했고, 노크로 왔음을 알렸다.

똑똑.

“…들어오세요.”

수안이 문을 살짝 열어 얼굴만 들이밀었다.

“나 왔어.”

“어머. 연락하고 오죠. 깜짝 놀랐잖아요.”

“내 측근들 소개해 주려고 데려왔는데, 같이 들어간다. 괜찮지?”

“예.”

수안은 문틈으로 안을 보려던 배영성을 밀쳐 내고 말했다.

“앞으로 사모님 잘 모셔. 흐흐.”

“그야… 당연하긴 한데….”

누군지도 모르고 확답을 할 수는 없었다. 최소한 얼굴은 봐야 할 것 아닌가.

“개봉박두.”

수안이 문을 활짝 열었고, 아현은 책상 앞에 나와 수안 일행을 기다리고 있었다.

“어서 오세요.”

“…….”

배영성은 입만 쩍 벌리고 있었고, 최장호는 멀리서나마 봤기에 제대로 인사를 했다.

“안녕하십니까. 인사드리는 건 처음입니다. 강수안 실장님 경호를 총괄하는 최장호 경호실장입니다.”

아현에게 경호원을 배정했지만, 앞에 나선 적은 이번이 처음이다.

“반가워요. 최 실장님. 경호원들은 감사했어요.”

“당연히 제가 해야 할 일입니다.”

“최 실장. 배 이사 얼굴 좀 봐라.”

“푸흡.”

넋이 나간 얼굴의 배영성은 볼 만했다.

수안이 아현 옆에 가서 서자 그제야 정신이 돌아온 배영성이 탄성을 지르듯 말했다.

“저, 정말 잘 어울리는 한 쌍입니다. 브라보!”

짝짝짝짝.

배영성은 손뼉까지 치며 환호했다.

“배 이사. 아직 인사도 안 했다.”

“아차! 인사가 늦었습니다. 강수안 실장님을 보좌하는 배영성 이사입니다.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사모님.”

“반가워요. 배 이사님. 저도 잘 부탁드려요.”

청초한 얼굴에 싱그러운 미소가 더해지니 미모가 빛을 발했다.

“어휴. 눈부셔.”

수안의 말에 아현이 가슴을 콩 쳤다.

“그만 해요. 앉으면 차 내올게요.”

“어인 말씀을… 제가 다녀오겠습니다.”

최 실장이 얼른 일어나 탕비실로 향하고 수안과 아현 그리고 배영성이 자리에 앉았다.

“우아. 지금까지 수애가 세상에서 제일 예쁘다고 생각했는데…. 하늘 위에 하늘이 있었습니다.”

아현이 옆에 있는 수안에게 조그맣게 물었다.

“수애가 누구예요?”

“배 이사 와이프.”

“아.”

“개울 너머 강이 있고, 강 너머 바다가 있음을 모르고… 도무지 적응할 수 없는 미모십니다. 아휴. 선글라스라도 써야겠습니다. 너무 눈이 부셔서 눈을 뜰 수가 없네요.”

“배 이사 적당히 하자. 몇 절까지 하려고.”

“옙! 절로 입이 나불거리는 겁니다. 제가 일부러 이러는 게 아니라고요.”

“두 분 말투가 은근히 비슷해요.”

“우리 둘이?”

“저희가요?”

수안과 배영성은 아니라는 듯이 되물었지만, 그간 같이해 온 세월이 있으니 닮을 수도 있었다.

“오래 같이 지내셨나요?”

“제가 강 실장님 8살 때부터 모셨죠. 좀 전에 밖으로 나간 최 실장은 이제 7년 좀 지났습니다.”

“어머. 배 이사님과는 상당히 오랜 인연이셨네요.”

“여자 한번 안 만나던 실장님이 결혼하실 분을 소개해 주시다니…. 정말 놀랐습니다.”

“사실이었어요?”

아현이 팔꿈치로 수안의 옆구리를 툭 건드렸다.

“그럼 내가 진짜 거짓말했다고 생각했어?”

장호가 차를 쟁반에 담아 들어왔다.

“차 가져왔습니다. 실장님은 녹차. 이사님은 커피. 사모님은 뭘 고르실지 몰라서 주스와 녹차, 커피 다 가져왔습니다.”

“저는 녹차로 할게요.”

“그럼 제가 주스랑 커피 다 마시겠습니다. 하하하.”

아현은 수안의 측근이라는 두 사람을 보다가 수안에게 물었다.

“두 분이랑은 얼마나 친하신 거예요?”

수안은 담담하게 말했다.

“회장님과 어머니께는 숨겨야 하는 일도 이 두 사람에겐 다 공개할 수 있어. 유일하게 내 본 모습을 다 드러낼 수 있는 사람들이야.”

함께 살인을 계획하고 실행한 건수만 벌써 세 건이다.

서로 어지간히 믿지 않고서야 함께할 수 없는 일이다.

그리고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은 미래 일을 둘에게 공유하고 있었다.

이 부분은 아현에게도 함부로 말할 수 없었다.

“아… 진짜 최측근이네요.”

그저 측근이라는 말로 설명할 수는 없었다.

“배 이사. 최 실장. 내 말이 맞지?”

“흐흐. 예. 실장님.”

“우리 주원이 다 클 때까지 실장님 곁에 꼭 붙어 있겠습니다. 하하.”

아현은 수안 옆에 좋은 사람들이 함께하는 것 같아 안심이었다.

“사람은 주변을 보면 그 사람을 파악할 수 있다고 하잖아요. 수안 씨 주변에는 좋은 사람만 있는 것 같아요.”

“이제 아현까지 옆에 있잖아. 세상에 좋은 사람들은 다 모였네? 하하하.”

연예계에서 귀동냥으로 들어왔던 재벌가의 지저분한 사생활은 수안과 무관했다.

아현의 날 선 경계심은 이제 찾아볼 수 없었다.

수안은 잠시 함께 차를 마신 다음, 일이 있다며 인사하고 아현의 집무실에서 나왔다.

아현도 아직 회사에서 맡은 일이 없었지만, 의욕이 대단했다.

앞으로 회사의 업무도 차근차근 배워나가겠다며 수안이 금방 일어난다는 말을 반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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