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권-반지 (49/304)

반지

새로운 계약

환영(?)

수진…

탄생

파생

씨앗

밤샘 촬영

교통정리 (1)

분열

윤혜린

속물

별장

1안과 2안

결혼식

신혼여행

수진의 다짐

난해한 패션의 세계

프랭크 빈치

은원

적극적인 경호

레슨

반지

아버지의 호통 속에 어머니의 음성이 들려 왔다.

“전 찬성이요.”

아버지의 고개가 획 돌아갔다.

“뭐? 찬성?”

“앞으론 아현 씨 말고 누굴 데려와도 눈에 안 찰 것 같아서요.”

미적인 부분을 중시하는 어머니에게 아현의 미모는 백 점 만점에 백만 점을 줄 수 있는 외모다.

강운모 회장도 수안이 데려온 아현의 자태를 다시 찬찬히 살폈다.

처음이라 속마음까지 속속들이 다 알 순 없지만, 첫 느낌만큼은 대단했다.

“오늘 처음 만났다 하잖아?”

“어때요? 마음 맞으면 그렇게도 하는 거죠. 그리고 예전엔 집안끼리 그냥 맺어 주고 그랬잖아요. 얼굴 보고 결혼했어요? 서방 얼굴도 못 보고, 색시 얼굴도 못 보고 결혼했는데, 한 번 봤으면 됐어요.”

“…….”

말문이 막힌 강 회장의 귀에 수안의 말도 들려왔다.

“조건도 안 따지기로 하셨잖아요. 여기 아현 씨 양친 무탈하시고, 깨끗하게 살아 왔습니다.”

그녀는 산소 같은 여자였다.

“허락해 주세요. 결혼하겠습니다.”

“…….”

번갯불에 콩을 구워 먹어도 정도가 있는 법인데, 아들은 심해도 너무 심했다.

“당신 결정만 남았어요. 여보.”

어머니가 거들었다.

“허! 허! 자네는…. 자네도 같은 생각인가?”

다소곳이 앉아 있던 아현을 향한 질문이다.

“지금까지 강수안 님을 스포츠 스타이자 저와는 거리가 있는 재벌가 아드님으로만 보고 있었습니다. 오늘 이렇게 두 분을 만날 줄은 예상도 하지 못한 일입니다. 지금 결혼을 허락하시는 것은 성급한 결정이라고 생각합니다.”

“성급하다? 그건 맞는 말이지. 그럼 지금은 수안이를 어떻게 생각하나. 여기까지 왔으면 최소한 마음은 있다는 얘기 아닌가?”

“…서로 알아가는 단계가 필요하다 생각합니다. 그 이상은 뭐라 말씀드리기가….”

강운 그룹의 돈만 보고 무작정 결혼할 생각은 아닌 것 같았다.

“차라리 얘가 생각이 더 깊구나.”

“당연하죠. 제가 괜히 아현 씨를 신붓감으로 데려왔겠습니까?”

“네가 못났다고!”

“하하하. 못났다는 말은 처음 들어 보네요. 신선했습니다. 아버지.”

수안의 말에 울컥한 나머지 허락 비스름한 말이 나오고 말았다.

“마음대로 해. 난 모르겠으니까.”

“당신도 허락하실 줄 알았어요. 나머진 제게 맡겨 주세요.”

어머니가 아버지의 말을 확실한 허락으로 만들었다.

지금까지 무한정 사랑받아 온 수안이다. 수안이 결정한 일이라면 무조건적인 신뢰를 보여 주고 있었고, 이 영향이 아현을 소개하는 자리에서도 강하게 발휘되고 있었다.

“허!”

“오예! 아현 씨. 내가 얘기했지? 우리 아버지 어머니가 이렇게 시원시원한 분들이라니까.”

“…….”

‘이러다 진짜. 진짜로 결혼 당하게 생겼어.’

“서재로 가세요. 애들하고 얘기 좀 할게요.”

“왜 자꾸 보내려고 해? 나도 같이 들으면 안 되나?”

“…안 바쁘세요?”

“바쁘긴 뭐가 바빠? 나 괜찮아.”

수안도 사람을 끌어당기는 매력이 있지만, 이미 수안에게 익숙해질 대로 익숙해진 두 사람이다. 여기서 새로운 매력을 가진 아현의 등장은 신선한 충격이었고, 엉덩이를 떼지 못하게 만들었다.

“…집안 어른이 계시면 아현 씨가 쉽게 입을 열겠어요?”

“애 본 지 얼마나 됐다고 자꾸 들어가래? 그리고 아까는 잘만 하던데 뭐.”

“…수안이 신붓감 더 보려고 여기 있겠다는 말이에요?”

“…….”

침묵은 긍정이다.

“…애가 참하네. 수안이가 납치할 만했다.”

저도 모르게 진심이 흘러나온다.

“여보….”

벌써부터 며느리 사랑이 시작됐다.

어머니의 날 선 눈빛이 아버지를 향해 발사되었다.

“놀다 가라. 난 바쁜 일이 있어서….”

화들짝 놀라 말하지 않아도 될 핑계까지 대면서 서재로 걸음을 옮기는 아버지였고, 아현은 얼른 자리에서 일어나 허리를 숙였다.

“또 놀러 오고….”

“예….”

아버지가 서재로 모습을 감추자 어머니는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이었다.

“네 아버지 얼굴 봤니?”

“흐흐. 상당히 마음에 드신 얼굴이셨어요.”

“넌 하루 만에 신붓감을 데려와도 통과하니? 내가 어이가 없어서 정말….”

“제 선택이 어디 틀린 적이 있어야죠. 어머니도 좋다며.”

어머니의 시선이 아현에게 향했다.

“아현 씨? 내가 편하게 말해도 될까?”

“예. 사모님.”

“그래. 아현이는 지금 나이가 몇이지?”

“스물다섯입니다.”

“수안이보다 한 살 많지만, 그 정도는 차이도 아니니 괜찮고… 대학은?”

“대학 다니면서 배우 일 시작했습니다. 졸업은 했고요.”

“아! 그래서 얼굴이 익었구나?”

“아직 주요 배역은 맡지 못했고 CF 위주로 얼굴을 비추고 있습니다.”

수안은 어머니의 물음이 아현에게 이어져도 가만히 듣고만 있었다.

끼어들어서 질문을 막아 봐야 어머니에게 점수를 잃는 것은 아현이었다.

“아현이 수안이를 감당할 수 있겠어? 아현이 아는 것처럼 우리 집안 보통 집안이 아니야.”

아현은 잠시 답을 멈추고 생각한 다음 입을 뗐다.

“아직 제 마음의 준비가 되질 않아서 지금은 아무것도 모르겠어요. 죄송합니다. 사모님.”

“내 정신 좀 봐. 아들놈이 오늘 납치해 왔다는 걸 뻔히 듣고도 너무 깊이 있는 질문을 해 버렸네.”

“아니에요. 호되게 꾸중 듣고 돌아갈 줄 알았는데, 두 분 모두 환대해 주셔서 너무 감사했습니다.”

“당연하지. 집에 가면 아현도 금이야 옥이야 키운 자식일 텐데….”

“…수안 씨 말대로였어요. 제가 너무 긴장했었나 봐요.”

“수안이가 뭐라고 했는데?”

“꽉 막힌 분들이 아니라고 하셨어요.”

“호호호. 기대를 어긋나지 않아 다행이네.”

이제 수안이 나서도 될 때였다.

“저기… 어머니?”

“왜?”

“이제 가 봐야 하지 않을까 싶은데….”

“집에 온 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 가?”

“나도 아현 씨 집에 가서 허락을 받아야지.”

수안은 양가 인사를 하루 안에 끝낼 생각이었다.

“뭐어? 그 집에 가서 또 뒤집으려고?”

“아아… 저도 반대예요. 저희 집까진….”

“…너무 늦었나?”

어머니는 아들을 노려보다가 아현에게 말했다.

“우리 애가 저래서 내가 얼굴을 못 들겠다. 아현이 이해 좀 해 줘. 얼굴이 화끈거릴 지경이네.”

“예….”

“수안이 넌 엉뚱한 소리 하지 말고 이따 집에나 잘 데려다줘! 아현이 집엔 꼭 미리 얘기한 다음 찾아가고!”

“예! 아현 씨 집엔 미리 약속하고 찾아가겠습니다.”

괜히 저녁을 먹였다간 체하겠다 싶어 적당한 다과와 차를 나누며 대화했고, 늦은 시간 집에서 나올 수 있었다.

수안은 기사가 운전하는 차에 타고 아현을 데려다주면서 말했다.

“자아. 이제 큰 고비 넘겼다. 그치?”

수안은 은근슬쩍 손을 잡았다.

“오늘 나랑 처음 만났어요. 이러지 말아요.”

“어허. 집에 허락도 받았어. 이제 여보 당신이야.”

잡은 손을 더 꽉 잡아 빼지 못하게 하는 수안이다.

“뭐요?”

“당신 일하는 데 지장 없을 거야. 배우로 일하길 원치 않으면 안 해도 되고.”

수안은 결혼 후의 일까지 미리 얘기하고 있었다.

“앞서 나가지 마세요. 아직 난 아무것도 모르겠으니까.”

“다른 건 생각하지 마. 남편 될 사람이 어떤 사람인가. 앞으로 스스로가 미래에 행복할 것인가. 이것만 생각해. 나 정도면… 당신에게 괜찮은 남편감 아니야? 게다가 당신한테 푹 빠져 있잖아.”

“…….”

괜찮은 정도가 아니라 수안과 비교할 남편감이 있기나 할지 싶다.

문제는 당장 결혼을 생각해 보지 않았다는 데 있었다.

‘오늘 처음 본 사람하고 무슨 결혼이야….’

“아까 낮에도 말했지만, 나 다른 재벌가 자식들하고 잘 어울리지도 않고, 문란하게 살지도 않았어. 당장 당신 손 잡고 있는 것도 엄청나게 떨린다고 나.”

꽉 잡은 그의 손에 흥건한 땀이 느껴진다.

대차게 행동하고 말하는 것과 다르게 속으론 떨고 있었다는 뜻이다.

“그러니까… 이거 꼭 받아 주라.”

수안은 청혼 반지가 든 작은 상자를 아현의 무릎에 올려 뒀다.

“…생각해 볼게요.”

“고마워.”

어두운 차량 뒷좌석에서 남녀는 손을 꼭 붙들고 있었다.

“…이제 좀 놓죠?”

“에헤이… 그냥 놓은 셈 치자.”

“그럼 잡은 셈 치고 놔요.”

“쳇. 결혼한 셈 치면 안 되나?”

“놓죠? 나 청혼 반지 밖에 던져요?”

“워우. 화끈하시네. 우리 아현 씨.”

손은 떨어졌지만, 그 온기는 서로에게 남아 있었다.

* * *

집에 돌아온 아현은 작은 상자를 손에 쥐고 깊이 생각하다 거실로 나왔다.

“아빠. 엄마. 잠깐 나 좀 봐요. 오빠도 나와 봐.”

늦은 시간이지만 아직 잠들 시간은 아니었다.

아현은 배우로 일하며 집안 생활을 윤택하게 만든 효녀였다.

가족들도 아현의 일이 최우선 사항이다.

“무슨 일인데 그렇게 얼굴이 굳었어?”

“아빠….”

“얘가 표정이 왜 이래. 일하다가 안 좋은 일 있었어?”

“엄마….”

“방송국 PD가 추근거려? 오빠가 한번 가 볼까?”

“아냐. 그게 아니라. 나 청혼받았어.”

“청혼?”

“너랑 결혼하고 싶다는 남자가 있어? 그보다 애인이 있었어?”

아버지와 어머니는 들어 본 적 없었고, 오빠도 마찬가지였다.

“너 남자 만나고 있었냐? 누군데? 연예인?”

“연예인…. 비슷하긴 하네.”

수안이 스포츠 스타였으니 연예인이라 할 수도 있었다.

“우리도 아는 사람?”

어머니 물음에 아현의 고개가 위아래로 끄덕였다.

“누군데? 누구라서 이렇게 우리 아현을 고심하게 만들어?”

아버지의 물음에 아현의 입이 열렸다.

“…강… 수안.”

“응? 누구? 강수안?”

“강수안? 연예인 누구지? 무명인가?”

“가수였나? 영수 너는 알아?”

영수는 혹시나 싶은 생각을 하며 동생에게 되물었다.

“아현야… 혹시 육상 스프린터 강수안? 맞아?”

“…응.”

“흡!”

“육상 강수안이면…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맞니?”

“네. 맞아요.”

“우아… 우리 아현이 연예인 하더니 금메달리스트에게 청혼도 받네.”

“금메달리스트면 연금만 해도 먹고 살겠구나….”

“아버지. 어머니. 강수안 선수는 금메달 연금이 문제가 아니에요.”

신문 지상에 알려지긴 했지만 많은 사람들은 올림픽 금메달리스트로 기억한다.

영수는 스포츠뿐 아니라 경제에도 관심이 있었기에 수안이 어느 집 아들인지도 정확히 기억하고 있었다.

“정말 결혼할 수는 있대? 다른 맘 갖고 있는 건 아니고? 그 왜 있잖아….”

차마 동생에게 스폰서가 아니냐고 물어볼 수 없었다.

영수의 물음에 오히려 어머니가 되물었다.

“왜 못해? 우리 아현이 어디가 못나서.”

“강수안 선수 집이 너무 잘 살아요. 우리 집이랑 너무 차이 난다고요.”

“차이 나봐야 얼마나 난다고.”

“그래. 우리도 아현이 나름 잘 벌어서 이제 풍족하게 살잖니.”

풍족하게 살아 봐야 이제 겨우 중산층이다.

아현이 고개를 들고 사실대로 말했다.

“…강수안 선수가 강운 그룹 강운모 회장 장남이에요. 기억 안 나세요?”

“……?”

“……?”

충격적인 소식은 이해하는데 잠시 딜레이가 필요했다.

“뭐어?!”

“누, 누구 아들? 강운 그룹 강 회장님 아들? 강수안 선수가? 그러고 보니… 그랬던 것 같네. 맞아… 강운 그룹 강운모 회장의 장남. 힉!”

영수가 수안에 대한 설명을 보탰다.

“금메달은 설명할 필요 없으니 빼고, 한국대 수석 입학에 사법 고시까지 패스했어요. 지금은 졸업하고 강운 그룹이 아니라 본인 회사를 꾸려나가고 있다고 들었어요. 그래도 나중엔 강운 그룹을 물려받을 게 확실하다고 알려져 있고요.”

“…그래서… 정말 가능은 하겠니?”

“아현이 왜 고심했는지 알 것 같네.”

어머니와 아버지 말에 아현은 나머지 소식도 전했다.

“오늘 수안 씨랑 집에 가서 허락받고 왔어. 두 분은 좋다고 하시네.”

“……!!”

“……!!”

“………!!!!”

이건 영수도 생각 못 한 반전이었다.

“다녀왔어? 그 집에 네가 다녀왔다고? 게다가 허락까지 받아?”

“오호호호. 얘가 언제 그런 분을 만났담. 미리 얘기라도 해 주지.”

이미 쌀이 익어 밥이 되었다는 말이다. 이제 숟가락 놓고 먹기만 하면 끝이었다.

“허락은 받았는데, 내 마음이…. 결혼은 생각만 해도 막막해.”

“…….”

“…….”

아버지와 어머니는 딸에게 뭐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표정이다.

“평양 감사도 저 싫다면 어쩌겠니.”

“엄마 말이 맞다. 우리 딸 그런 집 아니어도 충분히 행복 할 수 있어.”

“내 말은 그런 뜻이 아니잖아욧!”

아버지가 아직 재벌가에 대해서 잘 모르니 할 수 있는 말이다. 생활의 수준 자체가 달라지고 대접이 달라진다. 현대판 귀족이라고 할 수 있는 재벌가였고, 그중에 강운은 귀족 중에서 왕족이라고 해도 무리가 아니었다.

오빠 영수는 아현의 속마음이 궁금했다.

“뭐가 마음에 걸리는데 고심해? 너도 강 선수가 좋아서 만났을 거 아냐?”

“…오늘 처음 봤어.”

“당연히 그 집안 어른들은 처음 봤겠지.”

영수 입장에서 처음 봤다는 말을 이해할 수 있는 대상은 상대의 부모밖에 없었다.

결혼할 상대방을 처음 봤다고 이해하긴 무리였다.

“그게 아니라… 수안 씨를 오늘 처음 만났다고. 어제까지 우린 모르는 사람이었어.”

“…에이. 무슨 웃기지도 않는 농담을….”

농담이라 하기엔 여동생 얼굴에 장난기가 없다.

“…오늘 처음 만나서 집안에 결혼까지 허락받아? 이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야? 평소엔 전화로만 연락했어? 아니지. 그것도 말이 안 되는데….”

아현은 오늘 있었던 일을 차근차근 설명했다.

“소속사에서 연락받고 약속 장소로 갔더니….”

말을 하고 보니 한 편의 로맨스 영화 같은 하루였다. 그녀의 되새김이 수안의 모습을 미화해 다시 추억하고 있었다. 수안은 백마 탄 왕자였고, 자신은 로맨스 영화의 히로인이었다.

“어머나. 강 선수가 강단이 있네.”

“흠흠… 남자가 그 정도 추진력은 있어야지. 그런데 성격이 너무 급한 건 아닌지 모르겠다. 강 선수 100미터 달리기 속도만큼이나 빠르지 않니? 오늘 처음 만나 놓고 집까지 데려가는 건….”

영수는 동생의 말을 듣고서야 안심했다.

‘스폰서는 아닌가 보네….’

스폰서는 아니라지만, 성급하다는 아버지 생각에는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

“내가 생각해도 성급한 정도는 한참 넘은 것 같다….”

“고작 하루 만나서 흔들리는 내가 더 이상해. 수안 씨에게 끌려다니면서도 왠지 가슴이 콩닥거렸어. 어쩜 내가 이럴 수가 있냐고….”

영수는 아예 한 걸음 더 나아갔다.

“강 선수 집에 와 보라고 해. 아버지 어머니도 봐야 알지.”

“…안 그래도 오늘 온다는 거 말렸어. 수안 씨도 주책이야, 정말.”

“……!”

무슨 말만 하면 자꾸 반전이다.

“…너무 심하다 얘.”

“오늘 당장은 너무했어! 집 안 청소도 못 했는데.”

“훗. 수안 씨 어머니도 딱 아빠 엄마 같은 표정이었어. 자기 아들 보면서 그러는 거 있지? 저런 아들이라 얼굴도 못 들겠다고.”

“말도 통하는 어르신이네. 강 회장님도 너 예뻐하든?”

“…응. 두 분 다 예뻐해 주셨어요. 회장님이 자주 놀러 오래.”

아버지는 생각에 잠겼다가 말했다.

“같이 고민 좀 해 보자. 당장 결정할 일이 아닌 것 같구나.”

“그래. 허락을 받았다니 좋긴 한데… 지금 급하게 결정할 일은 아닌 것 같아.”

“나도 그래요. 날짜 잡자고 서두르는데, 아직 일러….”

“강 선수가 날짜 잡자고 해?”

“어머니도 그러셔….”

다과를 들며 얼른 아현을 집으로 들이고 싶은 마음을 숨기지 않았던 어머니다.

“… 재벌가라며? 재벌가에서 왜….”

영수는 왜 재벌가에서 동생을 못 데려가서 안달한다는 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미스코리아, 아나운서, 배우, 가수… 동생 아현도 예쁘긴 하지만, 예쁜 애들이야 TV에 흔해 빠졌다.

“나도 꿈꾸는 것 같아. 당장 자고 일어나면 꿈이라고 할 것 같거든.”

아현은 가족들에게 털어놓고 나니 뭔가 개운해졌다.

그리고 손에 들린 청혼 반지에 눈길이 갔다.

“그래도 이건 안 없어지겠지?”

“뭔데?”

“청혼 반지.”

“이리 줘 봐. 엄마가 한번 보자.”

어머니의 손에 들어간 작은 상자가 열리자 찬란히 빛나는 반지가 모습을 드러냈다.

아현 가족들의 얼굴에 작은 무지개 빛깔이 반사되며 아른거렸다.

“…재벌가 맞네.”

영수는 청혼 반지의 수준을 보고 재벌가를 의심할 필요가 없음을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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