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통신사 (46/304)

통신사

“정말 놀랄 일이군.”

“그리고 BE 인베스트에서 한 가지 부탁이 있었습니다.”

“뭔가?”

“미국 정부엔 실소유주 자료를 제공하지만 외부에 알려지지 않도록 각별히 당부했습니다.”

“한국 정부에 알려지는 것을 원하지 않는 건가?”

“한국 정부를 포함해 모든 곳에 알려지는 것을 원하지 않고 있습니다. 강수안의 아버지인 강 회장도 모르는 일로 보입니다.”

“아버지도 모른다? 그럼 자금 출처는?”

“결국 자금의 출처가 한국 기업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강수안 스스로 힘으로 일으켜 세운 투자 회사입니다. 여기 서류에 적힌 초기 자본금도 천만 불 정도로 작은 수준이었고, 지금까지 추가 자본금 납입은 없었습니다. 오직 실력으로 여기까지 투자 회사를 키워 왔습니다.”

“미치겠군. 이 작은 자본금으로 10년 만에 250억 달러 규모로 투자 회사를 키웠단 말이야?”

“…일본에도 BE 인베스트먼트 지점이 있습니다. 일본 지점은 130억 달러 규모입니다.”

도합 380억 달러 규모였고, 1995년 환율로 계산하면 한화로 약 30조 원에 이른다.

“허!”

“BE 인베스트먼트는 자금을 쉽게 한국으로 돌리지 않겠다고 합니다. BE 인베스트먼트의 모든 자금은 미국에서 집행될 것이고, 미국 은행에 유치하겠다고 전했습니다.”

“앞으로 있을 정부의 견제와 금융계의 견제까지 막아 달라는 얘기로군.”

“그렇습니다. 자금이 유출되지만 않는다면 미국 입장에서 나쁠 것이 없습니다.”

“나쁘지 않아… 헌데, 왜 보고가 편향적으로 들리는지 모르겠어.”

“예?”

“단도직입적으로 묻지. 브리튼. BE 인베스트먼트의 로비를 받았나?”

“그런 일은 없습니다. 미국인 입장에서 말씀드렸을 뿐입니다. 다른 투자사와 달라 BE는 국내에 많은 투자를 집행하고 해외 자금을 끌어오고 세금을 정확히 납부하고 있습니다. 또한 많은 기부로 사회 환원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나쁘게 볼 이유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흥청망청 스스로에게 인센티브를 남발하는 월스트리트 금융사보다 건실한 회사로 보였습니다. 보고에 사견이 포함되었다면 죄송합니다.”

“흐음… 알았네. 위엔 내가 보고하지.”

차관 집무실에서 나온 브리튼은 가슴을 쓸어내렸다.

‘로비가 의심될 정도였나? 너무 과했는지 모르겠어.’

실제로 이방효 지사장에게 막대한 로비를 받은 브리튼이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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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셉 재무부 차관은 상위자인 프랭크 부장관에게 관련 보고를 진행했다.

조셉 차관도 프랭크 부장관에게 브리튼이 들었던 말과 똑같은 의심을 받아야 했다.

“보고가 편향적이군… 로비가 있었나?”

“자료 내용 그대로입니다. 저도 작성자가 로비를 받았는지 의심했으나, 자료를 이중 검토해도 마찬가지 결과였습니다. 자료에 감춘 것이 없고 거짓도 없으니 로비가 필요 없었던 모양입니다.”

“알았네. 장관님께 내가 보고 드리지.”

프랭크 장관에게 보고를 마치고 나온 조셉 재무부 차관도 가슴을 쓸어내렸다.

‘로비는 절대로 밝혀지지 않을 거야.’

조셉 차관도 BE 인베스트먼트의 로비 자금을 받은 인물이었다.

BE 인베스트먼트는 위아래로 넉넉하게 로비를 진행해 불협화음을 최소화하고 있었다.

* * *

수안은 더블 스타 집무실에서 배영성의 보고를 듣고 있었다.

“지난번 말씀하신 BEST 건은 잘 무마되었다고 합니다.”

더블 스타에서 언급할 때는 BE INVESTMENT를 줄여 BEST라고 칭하기로 했다.

“그래? 그럼 안 가도 되는 거야?”

“예. 그리고 관련 비용이 약간 발생했으나 크지 않습니다. 이제 BEST 관련 정보 유출은 걱정하실 필요 없습니다.”

“다행이네. 이제 더블 스타에만 집중하면 되겠어.”

우웅. 우웅.

배영성은 허리춤에 차고 있는 팬탁의 삐삐를 슬쩍 살펴보고 말했다.

“아내 출산이 임박한 것 같습니다. 오후에 가 봐도….”

“배 이사! 오후는 무슨 오후! 빨리 가 봐. 내가 김 사장에게 따로 얘기할 테니까 지금 그냥 가.”

“예. 실장님.”

배영성은 급했는지 문도 닫지 않고 나갔고, 수안도 열린 문을 통해 사장실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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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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똑똑.

“사장님. 강 실장님 오셨습니다.”

“어서 들어오시라고 해.”

“김 사장님.”

“어서 오십시오. 실장님. 그런데 배 이사가 안 보입니다.”

“안 그래도 배 이사 일로 왔지요. 방금 아내 출산이 임박했다고 해서 내가 먼저 보냈습니다.”

“아이쿠. 순산해야 할 텐데.”

비서가 차를 놓고 나가자 수안은 편하게 소파에 앉아서 말투를 바꿨다.

“김 사장. 이번 기회에 우리 회사도 출산 휴가 규정이랑 육아 휴직 규정 손 좀 보자.”

“배 이사가 아이를 갖는다니 부족해 보이셨나 봅니다. 허허허.”

“아내의 출산에 남직원의 출산 휴가는 주말 포함 7일. 여직원의 경우 출산휴가 100일로. 당연히 유급 휴가로 해야 하고.”

“회사가 벌어들이는 돈도 넉넉하고, 인력도 여유가 있는 편입니다. 충분히 가능합니다.”

“그리고 육아 휴직도 고려해 보자. 국내에 자리 잡기 전에 우리 회사가 복지를 선도했으면 해.”

“음… 휴직은 길면 년 단위로 가니 근무 공백이 있어서 약간 힘들긴 합니다만… 고려하겠습니다.”

“나중에 우리 회사도 회사 내부에 어린이집도 만들어 봐야지. 계열사도 차차 늘려나가고.”

“직원복지를 실장님이 신경 쓰시니 제가 얼굴을 못 들겠습니다.”

“김 사장이야 함부로 얘기 못 하겠지. 괜찮아. 그보다 통신사 건은 진척이 힘든가 봐?”

“통신사가 의외로 복병입니다. 쉽게 인수하긴 어려울 것 같습니다.”

팬탁을 인수하며 통신 관련 계열사를 그룹화하기 위해 통신사를 인수하라고 지시했지만 여태 지지부진했다.

“어디가 문제야?”

“우선 지금 노리는 곳은 세기 통신입니다.”

“…정경유착으로 선정 그룹에서 반환한 그 통신사 말이지?”

“예. 실장님. 다른 자잘한 통신사는 나중에 휴대폰 통신까지 성장하기에 무리입니다. 처음부터 대어를 잡고 가야 합니다.”

“나중에 이전투구를 하느니 미리 확보하는 것이 나을 수도 있지.”

PCS 사업자 선정을 통해 통신사로 인정받느라 고생하는 것보다는 지금 세기 통신 지분을 인수해서 일찌감치 따돌리는 편이 나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1대 주주와 2대 주주가 대기업이라는 점이 문제다.

“우선 한번 찔러 볼게. 안면이 없지도 않고….”

아버지 강운모 회장과 재계 행사에 동행하며 안면을 익힌 적 있었다.

“어려운 부탁을 드려서 죄송합니다.”

“나 얼굴마담이잖아. 막 써먹으라고.”

“하하하. 예. 실장님.”

“곧장 세기 통신 소유주를 만나기는 그렇고, 상황부터 파악해 볼게. 세기 통신 사장부터 만나 보고, 그다음이 대주주 차례야. 영 아니다 싶으면 대주주에겐 가지 않을 수도 있어.”

“기다리겠습니다.”

“김 사장은 떨어지는 감만 기다리지 말고, 다른 통신사 알아봐. 찔러서 피 한 방울 안 나올 것 같으면, 힘들어도 설립하는 편이 나아.”

“예. 실장님. 플랜 B로 활용할 대안을 찾아 놓겠습니다.”

* * *

수안이 세기 통신 사장을 만나는 것은 오래 걸리지 않았다.

비서실을 통해 약속을 잡고 이틀 만에 회사로 방문했다.

수안은 출산으로 자리를 비운 배영성 대신 전략실 직원과 경호원들을 대동하고 세기 통신으로 향했다.

“사장님 뵈러 왔습니다.”

“약속은 되셨….”

수안을 알아본 안내 데스크 여직원은 대응에 버퍼링이 생겼다.

“약속은 미리 잡았습니다. 강수안입니다.”

186의 큰 신장과 단단한 몸을 가진 수안은 TV로 보는 것보다 실물이 낫다는 평가를 받곤 했다.

“어머… 어머머….”

“비서실에 확인 부탁합니다.”

“자,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안내 데스크 직원은 얼른 비서실로 연락해 확인하고 안내를 맡았다.

“올라가시면 됩니다. 제가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안내에 따라 사장실로 이동하고 나머지 직원들은 밖에서 대기. 수안 혼자 사장실로 들어갔다.

“안녕하십니까. 김대수 사장님.”

“반갑습니다. 강수안 선수.”

“하하하. 어딜 가나 저는 선수가 뒤에 붙습니다.”

“이제 더블 스타 강 실장님으로 불러야 합니까?”

“어찌 부르셔도 괜찮습니다. 그래도 이제 선수 생활은 그만뒀으니 실장이 조금 나을 것 같긴 합니다.”

“하하하. 강운의 첫째 도련님 신분도 있지 않으십니까.”

“아직 강운 그룹에 소속되지 않아 그쪽 직함은 없습니다. 있다면 강운 그룹 육상 실업팀 코치 정도가 끝입니다.”

강운과 연관 지을 필요 없다는 뜻이다.

“앉으십시오. 녹차로 드릴까요?”

“커피도 괜찮습니다.”

삐익.

“여기 커피 두 잔.”

-예. 사장님.

“사전에 알아보니 제 선배님이셨더군요. 저도 올해 한국대 졸업했습니다.”

“아! 그러고 보니 우리 대학 동문이었군요. 하하하. 이렇게 반가울 데가.”

선후배 사이를 강조했음에도 김대수 사장은 함부로 말을 놓지 않았다.

수안이 강운가의 장남이기 때문이다.

잠시 분위기를 편안히 만들기 위해 커피를 마시며 신변잡기 위주의 대화가 진행되었다.

김대수 사장은 내년 올림픽의 출전 여부도 물어 왔다.

“강 선수가. 아니지. 강 후배님. 내년 올림픽은 출전 안 하십니까?”

“이제 후배들에게 기회를 줘야죠. 벌서 2연패를 했는데 내년까지 나가면 전 세계 육상 선수들이 욕합니다. 혼자 다 해먹을 생각이냐고요.”

“푸흐흐. 나가면 우승은 확신하시나 봅니다.”

“아직 젊은 나이 아닙니까. 아직도 매일 운동도 하고, 소속 육상 선수들 관리도 하고 있습니다. 직접 출전하지 않아도 소속 선수들이 성과를 낼 겁니다.”

수안은 강운 육상 실업팀에 자주 얼굴을 비추고 임경남 감독과 함께 선수들을 코치하고 있었다. 원래 병역 특례를 위해 3년만 해도 됐으나, 하다 보니 손에서 놓을 수가 없었던 탓이다.

뼈 빠지게 고생하는 선수들에게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고 싶었다.

“열심이시네요. 강 후배님이 계시니 우리나라 육상계의 미래가 밝습니다.”

“육상보다는 회사 일이 더 힘듭니다. 오늘만 해도 이렇게 제가 직접 오지 않았습니까.”

“아! 그러고 보니 방문하신다고만 들었고, 목적을 듣지 못했습니다. 후배님이 오늘 방문하신 이유가 우리 세기 통신사와 관련이 있으신가 보죠?”

“P제철사와 K사가 대주주로 있다고 알고 있습니다만, 둘 중에 누가 실제로 회사를 움직이고 있습니까?”

“상당히 미묘한 문제인데…. 후배님은 왜 이걸 궁금해하시는지 모르겠네요.”

“선배님이 말씀해 주시면 저도 허심탄회하게 제 생각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여기까지 와서 선배님께 불편함을 남길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잠시 생각하던 김대수 사장은 별거 아니라는 듯이 털어놨다.

“흐음… 대외적으로 알려진 것도 있으니 우선 말씀드리죠. 전경련에서 두 대기업 사이의 분쟁을 막기 위해 1대, 2대 대주주로 구분해 세기 통신을 설립했지만, 지금도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내 밑으로 K사 라인이 주르륵 있고, 부사장 밑으로 P사 라인이 형성되어 있죠.”

“아. 그럼 여전히….”

대주주가 둘이라 제대로 된 경영 환경이 조성될 리 없다. 사공이 둘이고 그 둘이 서로 배를 차지하려 싸우는 형국이었다. 수안이 예상했던 대로다.

“이제 후배님 차례로군요.”

“솔직히 저는 세기 통신을 인수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무작정 이렇게 찾아왔습니다.”

“하하하. 꿈은 가상하지만 어려운 일입니다.”

“전혀 가능성이 없다고 생각하시는군요.”

“대기업들이 괜히 통신사에 눈독을 들이고 있겠습니까? 차후 황금알을 낳는 거위가 될 것이 뻔한 통신사입니다. 어느 기업이라도 통신사의 성장 가능성을 점치고 있는 상황이죠. 물론 강운이 그룹 차원에서 달려들면 달라질 수도 있으나, 그것도 전경련에서 쉬이 용납하지 않을 겁니다. 이미 두 대기업의 사례가 있지 않습니까. 무분별한 경쟁은 사전에 차단하고 있죠.”

김대수 사장의 말대로다. 미래에 통신사가 돈이 된다는 것을 모두가 예측하고 있기 때문에 경쟁이 발생하고 있었다. 수안만큼 확실한 미래는 아닐지라도 기업의 브레인들에게 이 정도는 예측 가능한 범위였다.

“그래서 두 대기업이 전부 세기 통신을 놓지 못한 겁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죠. 둘 중의 하나가 포기해서 한쪽으로 넘어가는 결과밖에 없을 겁니다. 제삼자는 허용되지 않습니다. 이제 막 시작하는 통신사인데, 누가 함부로 넘기고 싶겠습니까?”

“국가에서도 허용할 리가 없겠군요.”

“맞아요. 대주주로 이름을 올린 대기업들이 매각할 리도 없고, 국가기관 통신사로 밀고 있는 세기 통신을 함부로 강운에 내주진 않을 겁니다. 물론 강 후배님이 독립적으로 운영하는 더블 스타지만, 나라에선 둘을 따로 생각하지 않죠.”

“…큰 도움이 됐습니다. 선배님. 덕분에 깔끔하게 마음을 접을 수 있겠습니다.”

“저런… 제가 자라나는 기업인의 열정을 꺾은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아닙니다. 통신사를 소유하는 방법이 세기 통신 인수 한 가지만 있진 않습니다. 다른 방법을 찾아봐야죠.”

힘을 숨기고 대기업 둘을 상대하는 것도 버거운데, 거기에 국가 기관까지 엮여 있으니 인수할 마음을 접어야 했다.

‘아직 때가 도래하지 않았어.’

“하하하. 그렇죠. 그런 마인드가 필요합니다. 역시 불굴의 강 선수답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사인 좀 부탁해도 되겠습니까? 내가 아까 말은 안 했지만, 강수안 선수의 빅 팬이거든요. 강 선수가 온다고 해서 내가 얼마나 마음이 들떴는지 몰라요.”

“어휴. 얼마든지 해 드려야죠. 예뻐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우리나라 국민 누가 강수안 선수를 좋아라 하지 않겠습니까. 마음 같아선 내년 올림픽도 꼭 출전해 달라고 부탁하고 싶어요.”

수안은 그저 미소로 답을 대신하고 사인했다.

“또 뵙겠습니다. 선배님.”

“다음엔 올림픽 중계로 봤으면 하네요. 하하하.”

세기 통신에서 나와 회사로 돌아가며 수안은 차후 PCS 통신사 선정에 돌입할 수밖에 없음을 받아들였다.

‘세기 통신은… 나중에 내부 문제가 곪아 터지고 나서 지분 취득으로 인수해야 맞겠어.’

전생에도 전례가 있는 일이다. S 통신사가 세기 통신의 지분을 주식 시장에서 대량 인수해서 두 대기업을 물 먹이고 인수한 사건이 있었다. 그 주체가 S 통신사에서 수안의 더블 스타로 변경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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