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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사고 (42/304)

작은 사고

“김현성 사장에게도 상황 일러주고 배 이사는 따로 사무실 알아봐. 보안 철저하게 준비하고.”

“예. 실장님.”

“그리고 이건 배 이사 몫이야.”

배영성이 뿌리고 왔던 흰 봉투보다 훨씬 큼직한 은행 종이 봉투였다.

“아휴. 실장님이 저 월급 많이 주십니다. 이번에 떡값도 많이 받았고요.”

배영성이 받는 것은 더블 스타의 이사 월급만이 아니었다. BE 인베스트먼트에 따로 이름이 올라있었고, 거기서도 월급이 들어오고 있다. 실상 김현성 사장보다 더 많은 월급을 받는 배영성이다.

“그건 그거고. 이건 내 마음이야. 곧 애도 태어날 텐데, 매번 어려운 일만 시키잖아. 가서 어머니 용돈도 팍팍 주고, 동생들도 챙겨.”

“…동생들도 이제 일해서 돈 벌고 있는데….”

그 동생들이 학업을 마치고 번듯한 직장에 다닐 수 있었던 것도 결국 수안이 자신을 거둬준 덕분이었다.

“정 줄 곳 없으면 마누라한테 주면서 어깨에 힘이라도 줘. 일부는 비자금으로 꼭 남기고. 다 주면 배 이사는 뭐 먹고 살아?”

“하하하. 감사히 잘 받겠습니다.”

“오늘은 일찍 퇴근하자. 김현성 사장에게 직원들 오전 퇴근시키라고 해. 그래야 멀리 가는 직원들 차라도 덜 막히지.”

“예. 실장님.”

수안도 일찍 회사에서 나와 집으로 갔다.

명절 전날이라 집도 부산하다.

“왔니?”

“예. 어머니. 동생들은요? 아. 오늘 수진이 들어온다고 안 했나?”

미국에서 유학 중이던 첫째 여동생 수진이가 잠시 국내로 입국한다고 했었다.

“수진이는 김 기사가 데리러 갔어. 곧 올 거야.”

“수현이는 왔을 것이고… 수용이는 집에 있어요?”

“일찍부터 나갔어. 어딜 그렇게 쏘다니는지.”

요즘 수용은 수안이 선물한 차를 끌고 쏘다니기 바쁘다.

“면허 땄다고 아주 제 세상이네.”

“오빠 왔어?”

수현이가 밖으로 나왔다가 수안을 보고 인사했다.

“여~ 수현이 요즘 얼굴 보기 힘들다.”

“수현이는 요즘 고려 호텔로 일 배우러 다니잖아.”

어머니 말을 듣고서야 수현이 경영자 수업을 시작했다는 걸 알았다.

“벌써 시작했구나?”

“주요 계열사는 아니지만, 그래도 열심히 해 보려고.”

“호텔도 충분히 중요한 계열사야.”

“눼에….”

이상한 표정을 짓는 동생의 얼굴도 수안에겐 귀엽게만 보였다.

아버지에게 어떻게 전달될지 몰라 동생들에겐 말하지 못하고 있지만, 조만간 자신의 생각을 밝힐 마음이다.

“으이그. 열심히 해 봐. 너도 이젠 한몫해야지.”

“머리 만지지 말라고!”

헝클어진 머리를 가다듬으며 멀리 도망치는 수현이다.

“아버지는요?”

“서재에 최 실장 불러서 얘기 중이셔.”

“오~ 저도 잠깐 봐야겠네요.”

“미팅 끝나면 들어가지?”

“괜찮아요.”

어머니 만류에도 수안은 아버지의 서재를 찾았다.

똑똑.

“뭐야?”

“접니다. 흐흐.”

수안이 문을 열고 고개를 쑥 들이밀었다.

“회장님. 들어가도 될까요?”

“…들어와.”

수안이 들어와 문을 닫자 강 회장의 말이 먼저 귀에 꽂혔다.

“넌 회사에서 뭘 해서 그렇게 숨기는 게 많아?”

도청이 들통났어도 당당한 아버지였다.

‘아버지에겐 당연한 일이니까.’

이런 성격 덕분에 할아버지에게서 강운 그룹을 물려받았다.

극단적인 위험 회피, 안전한 경영. 이를 위해서는 불법적인 일을 통해서라도 외부의 정보를 취합해야 했고, 여기에 자식들도 예외가 아니었다.

“아휴. 숨기긴 뭘 숨겨요. 그냥 서로 다른 회사니까 각자도생하자는 거죠.”

“각자도생? 더블 스타는 강운과 무관하다 그 말이야?”

“제가 따로 설립하지 않았습니까. 그러니 아직 강운 영향까지 받을 필요는 없다 이거죠. 사공이 많으면 배가 어디로 가겠습니까. 하하.”

“아직은 이라는 말은 강운의 영향권에 들어올 수 있다는 뜻이지?”

“물론이죠. 그래도 아주 먼 훗날에 제가 강운에 들어오면 모를까 지금은 멀었습니다.”

“…연예 기획사는 왜 인수한 거야? 여자라도 필요해? 이제 놀아 볼 생각이야?”

“여자는 비서실에서 고르기로 하지 않았어요?”

수안이 아직 나가지 않고 서 있는 최학주 실장을 돌아봤다.

“비서실은 리스트만 만드는 거고! 괜히 연예인들하고 얽히면 소문나니까 알아서 조심해.”

“그럴 일은 없습니다. 저야 대표들이나 만나지 소속 연예인들 만날 일은 없어요. 저는 아버지가 만나라고 할 여자만 기다리고 있습니다.”

“없기는… 오디션에서 네 얼굴 봤다고 떠드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리는데….”

“그야 진흙 속에 진주라도 발견할 수 있을까 싶어서 가 봤던 거죠. 앞으로 전적으로 회사에 맡겨 두려고 합니다. 그리고 연예 기획사는 앞으로 성장 가능성을 보고 투자했습니다.”

안 그래도 다시는 가지 않을 생각이다.

“그래. 알았다.”

“그리고 앞으로는…. 없다고 믿겠습니다. 회장님.”

도청에 대해서 말함이었다. 최 실장에게 말했지만 다시 다짐을 받고 싶었다.

“…최 실장에게 단단히 주의 줬으니 너도 너무 심하게 하지 마. 이번엔 네가 과했어.”

수안이 당시 최학주 실장을 심하게 나무란 타박을 하는 것이다.

“예. 회장님. 조심하겠습니다.”

아버지 말에 답한 수안은 정중하게 최학주 실장에게 사과했다.

“최 실장님. 그때는 죄송했습니다. 제가 예의 없이 굴었습니다.”

“아. 예.”

사과로 끝은 아니었다.

“관련된 직원 둘은 면직 처리했습니다. 앞으로는 이런 일이 없다고 생각하겠습니다.”

“…흠. 예. 알겠습니다. 도련님.”

경고가 섞인 사과였다.

“나가 봐.”

“예. 회장님. 언제든 불러 주십시오.”

수안이 나가고 강 회장은 최 실장에게 말했다.

“내 앞에서 저딴 식으로 말하는 놈이 회사에 어디 있겠어?”

수안처럼 격 없이 강 회장을 대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 턱이 없다.

“그런데. 저놈이 도대체가 밉지를 않아. 미운 짓을 해도 그냥 넘어가게 된단 말이지.”

“저도 수안 도련님이 데리고 있는 직원을 보면서 느꼈습니다. 대놓고 뻗대는데 밉지가 않더군요.”

“그래?”

“수안 도련님이 제대로 자기 사람을 만들었습니다. 도련님을 향한 충성심이 가득했습니다. 회장님도 같은 기분이지 않나 생각해 봅니다. 수안 도련님이 툭툭 내뱉는 말도 다 회장님을 생각하는 말이지 않습니까.”

“허허. 그렇지. 녀석이 버럭 성내며 하는 말도 다 강운이 잘되라고 하는 말이고, 나 좋으라고 하는 말이었지.”

“어찌 저렇게 잘 길러내셨는지 저도 자식 키우는 입장에서 배우고 싶은 심정입니다.”

“푸흐. 자네가 그런 말도 할 줄 알아?”

“아부가 아니라 실제로 그렇습니다.”

스스로 잘났다고 자랑해도 될 만한 충분한 성과를 이뤘다. 올림픽 금메달을 따고, 들어가기 힘든 한국대에 떡하니 수석으로 입학하고, 사법 고시까지 합격해 버렸다. 지금은 본인이 스스로 세운 회사를 크게 성장시키고 있다. 그럼에도 어려서부터 지금까지 부모에게 효심 가득한 아들이었다. 부럽지 않을 수가 없었다.

“됐고, 아까 하던 해외 공장 얘기나 계속하지.”

“예. 회장님.”

* * *

아버지의 형제가 있지만 명절엔 따로 지낸다. 특히 할아버지의 둘째인 아버지가 마지막까지 할아버지를 모셨지만, 큰아버지는 그들의 집에서 제사를 모셨고, 서로 왕래하는 일은 드물었다.

덕분에 명절 당일에는 친척들이 아니라 계열사 사장들이 집을 방문해 회장님께 인사하러 찾아오곤 했다.

“복 많이 받으십시오. 회장님.”

“그래. 김 사장도 복 많이 받아. 집에는 다녀왔고?”

“예. 지난주에 먼저 다녀왔습니다.”

직장인에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 윗사람이다. 설 당일에 강 회장에게 오려고 본가는 설 명절이 오기 전에 다녀오는 것이 당연시됐다.

수안은 계열사 사장들이 집에 찾아온 모습을 보고 있었다.

‘다들 고생이 많네.’

항상 뒤에서 만나던 계열사 사장들이다. 반갑지만 지금은 아는 척할 필요 없었다.

“강수안 도련님.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더블 스타라고 하셨지요?”

사장들 중 하나가 수안에게 말을 걸어왔다. 마치 처음 만나는 듯 아주 자연스럽다.

“알아주셔서 감사합니다. 더블 스타 맞습니다. 쓰리스타는 너무 촌스럽더라고요.”

“하하하. 위트까지 있으시면 어쩝니까.”

“제대로 키워 보려고 합니다. 나중에 기대하십시오.”

“하하하. 역시 회장님 아드님이십니다. 자신감이 넘치십니다.”

다른 사장도 은근슬쩍 붙어서 물었다.

“회사로는 언제쯤 들어오실지….”

“제가 회장님께 몇 년만 자유 시간을 달라고 말씀드렸습니다. 밖에서 충분히 기업을 공부하고 강운으로 가고 싶습니다. 지금 강운은 변혁의 때를 맞고 있지 않습니까. 저도 외부에서 많은 혁신 경영을 적용해 보고 강운에도 도움이 되고 싶습니다.”

수안은 아버지께 인사하고 나온 사장단 인원을 맞이하여 자유롭게 대화하며 분위기를 이끌었다. 항상 수안과 만나던 사장들에겐 익숙한 일이다.

“이제 막 성장하는 회사랍니다. 혹시라도 사장님들 회사에서 도움을 주실 수 있다면 감사히 받아야 하죠. 하하하.”

사장들은 오히려 기회로 여기고 있었다.

“언제든 연락만 주십시오.”

“저도 말씀만 해 주십시오. 하하하.”

“그러고 보니 더블 스타의 한컴이 참 좋다고 들었습니다. 회사 내부 소프트웨어로 채택해도 좋겠군요.”

“곧 안랩에서 컴퓨터 바이러스 백신이 나온다지요? 그것도 필수적으로 넣어야겠군요.”

“컴퓨터도 보안이 중요하죠.”

저마다 수안에게 도움을 주지 못해 안달이었다.

* * *

오랜만에 귀국해 수현과 함께 있던 수진은 그 모습을 보고 입술을 깨물었다.

“우린 저 단단한 성을 무너트려야 해.”

“알아. 셋이 뭉쳐도 힘들겠지.”

“수용이는 이 상황에 대체 어딜 간 거야? 이럴 때 사장단에 얼굴도장이라도 찍어야 할 것 아냐?”

“…나도 몰라. 아침에 차를 몰고 나갔다고 했는데….”

“이 멍청한 놈은 대체 하는 일이 뭐야?”

“…그 차도 수안 오빠가 사 줬더랬지.”

“되는 놈은 뭘 해도 된다니까. 수용이 들어오면 좀 보잔다고 해.”

“알았어. 언니.”

.

.

.

그때 수용은 도로상에서 곤란한 지경이었다.

“…아놔. 미치겠네.”

인적이 드문 도로. 뱀처럼 그려진 스키드 마크 끝에는 차량 후미를 도로 벽면에 들이받은 수용의 차량이 놓여 있었다.

기분 내며 속도를 올리다 사고를 낸 것이다.

“아버지가 알면 노발대발하실 텐데….”

공중전화부스로 가서 회사에 전화했고, 잠시 기다리자 비서실 직원들이 출동했다.

“도련님.”

“왜 이제 와? 내가 얼마나 기다렸는지 알아?”

감사 인사는 고사하고 늦게 왔다고 타박이었다.

“…죄송합니다.”

명절 당일이다. 도로 곳곳이 정체 상황이라 늦을 수밖에 없었다.

“이거 빨리 처리해.”

“몸은 괜찮으십니까?”

“목이 좀 아프긴 한데. 문제는 없어. 빨리 집에나 가자고. 이러다 제사 늦겠다.”

“…벌써 늦으셨습니다.”

“그래도 얼굴은 비춰야 할 것 아냐!”

“…예. 우선 비서실 차로 이동하시죠.”

비서실 차량으로 이동한 집엔 이미 사장단이 다 돌아가고 가족만 남아 있었다.

“…늦었습니다.”

“명절 당일에 어딜 쏘다니다가 이제 들어와?”

“죄송해요. 어머니.”

“아버지께는 내가 얘기할 테니까 넌 방에 들어가서 나오지 마. 네가 얘기했다간 곱게 안 끝나.”

“네….”

어머니 말에 오히려 다행이라는 감정이 들었다.

자신이 아버지에게 이실직고를 했다간 고이 나오긴 힘들었다.

“야. 너!”

방으로 들어가기 전에 난관이 하나 더 있었다.

“작은누나.”

“넌 대체 어떻게 된 놈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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