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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재적소 (40/304)

적재적소

“아직 제대로 된 스타도 없는 SN 엔터를 너무 높게 추켜세우십니다. 하하하.”

“있었는데… 문제가 생겼을 뿐이죠.”

“…….”

SN 엔터 소속 가수가 빚은 마약 문제는 여기저기서 다 알고 있었다.

“모회사는 종속 회사에 최소한의 관여만 할 겁니다. 어제 더블 엔터에서 그 관여가 있었죠.”

이수남은 조심스럽게 물었다.

“…어떤 관여였을까요?”

“아티스트와 기획사 사이의 수익 배분에 대한 내용이었습니다.”

“수익 배분이 너무 줄어들면 아티스트를 기획사로 끌어들이기 어렵습니다.”

모회사의 수익을 위해 아티스트 배분을 더 줄인다고 생각한 이수남이다.

“반대로 생각하셨군요. 저희는 기획사의 비율이 아니라 아티스트의 수익 배분 비율을 끌어올리라고 했습니다.”

“오….”

“오너께서는 공정한 계약을 원합니다. 회사가 어찌 되었건 아티스트는 자신이 노력해서 벌어들인 소득의 상당 부분을 가져가야 합니다. 제때 정산하고 수익 배분을 아티스트가 만족스럽게 만들 것. 이것이 우리의 요구 조건입니다. 노예 계약은 극도로 혐오합니다.”

“좋은 말씀이십니다만, 본래 기획사에 적정선이라는 것이 있는데….”

“회사에 수익이 발생한다고 월급 사장이 챙겨가진 못합니다. 회사를 넘기면 별로 상관없으실 텐데요?”

“…그도 그러네요. 하하하.”

어차피 회사를 매각하면 경영자의 월급이 주요 수입원이다.

회사가 운영만 된다면 자신은 상관없었다.

“하시는 말씀을 들어 보니 매각으로 마음이 기우신 것 같네요. 맞습니까?”

“그렇습니다.”

“앞으로 저희 더블 스타 그룹 사장단의 일원이 되시겠군요. 먼저 축하드립니다.”

“하하하. 제가 더블 스타를 정확히 모릅니다. 그룹이라고 하시면 어떤 회사들이 계열사로 있습니까?”

“어휴. 그럼 오너가 누군지도 모르고 듣고 계셨습니까? 김기수 사장이 그것도 안 알려주던가요?”

“김 사장은 전혀 언급하지 않더군요.”

“나 참. 자세히 설명 드려야겠군요. 우선 내일 이수남 사장님이 만나실 분은 우선 더블 스타 CEO인 김현성 사장, 강수안 실장님과 더블 엔터 김기수 사장입니다.”

“김현성 사장님이 오너 분이신가요?”

“…오너는 강수안 실장님입니다.”

“아… 본사 경영조차 전문 경영인에게 맡기셨군요. 이름이 상당히 익습니다. 하하.”

“아마 이수남 사장님이 생각하는 그 사람이 맞을 것 같네요.”

“…저는 스포츠 스타인 강수안 선수밖에 모릅니다만.”

“맞습니다. 올림픽 2연패의 강수안. 그분이 모회사의 오너입니다.”

“……!!”

“아시는 것처럼 강운 그룹을 이어받으실 적장자이기도 하시죠.”

“저, 정말입니까? 강수안 선수가… 이끄는 회사란 말입니까?”

“물론이죠. 내일 보면 아실 텐데 제가 하루 속이자고 거짓말할 필요는 없지 않나요?”

“하… 하하.”

“물론 지금의 더블 스타는 강운 그룹과 전혀 관련이 없습니다.”

“강운 그룹 회장님의 아들인데 관련이 없긴 왜 없겠습니까. 하하하.”

“강운 그룹과는 분리된 회사니까요.”

“어쨌든… 내일 강수안 선수를 볼 수 있다는 말씀이시죠?”

“이제 선수 생활은 접으셨으니 실장님이라고 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계열사로는 현재 삐삐를 생산 중인 팬탁과 컴퓨터 부문에 SJ 컴퓨터, 소프트웨어 부문에 한컴 그리고 알고 계신 대로 더블 엔터가 있고, 자잘한 종속 회사들이 몇 개 더 있습니다.”

“후아. 제가 대단한 기회를 맞은 것 같네요.”

이수남은 회사를 넘기며 한몫 제대로 벌 수 있다고 생각했다.

눈에는 욕심이 가득 들어찼다.

이수남의 빛나는 눈을 본 배영성은 뻔히 짐작되는 속마음에 찬물을 끼얹었다.

“원래 재벌가가 더한 것은 아실지 모르겠네요. 내일 인수 금액 산정도 대단할 겁니다.”

“…전문가가 오시나요?”

“김현성 사장은 지금까지 계열사를 늘리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했죠. 생각하신 것만큼 대단한 인수 금액은 아닐지 모릅니다.”

“그래도 오너께서 재벌가 아들이시지 않습니까. 하하하.”

희망을 버리지 못하는 이수남에게 배영성은 좋은 말을 해 주고 싶지 않았다.

돌아가면 수안이 돈으로 인수하려는 마음을 바꾸게 만들 생각이다.

“엉뚱한 곳에 헛돈 쓰는 분이 아니라는 점. 다시 강조드리죠.”

“…정말 짜디짠 분인가 보네요?”

“백 원짜리 하나도 허투루 쓰는 분이 아닙니다.”

“어휴… 무시무시하네요.”

“이 정도면 우리 대화는 마무리해도 되지 않겠습니까? 저도 이제 회사로 들어가 봐야 해서요.”

“아차. 제가 너무 시간을 끌었네요.”

“괜찮습니다. 유익한 시간이었습니다.”

“내일 좋은 얼굴로 다시 뵙죠.”

“내일 뵙겠습니다.”

* * *

이수남을 일별하고 회사로 돌아온 배영성은 연예 기획사 사장들의 마인드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김기수도 그렇고 이수남도 그렇고… 정이 안 가네.’

김기수는 뒤에서 꼼수를 부리고, 이수남은 김기수를 뒤에서 헐뜯었다.

그놈이 그놈이었다.

‘이놈이나 저놈이나…. 나중엔 다 갈아치워야겠어.’

.

.

.

다음 날 인수 미팅에 들어가기 전, 배영성은 자신의 생각을 수안에게 털어놨다.

“김기수도 그렇고 이수남도 그렇고 마인드가 글러먹은 것 같은데요….”

“나도 알아.”

“…아신다고요?”

“김기수는 회사를 적당히 유지시키는 역할이야. 더블 엔터는 나중에 박준영이 이어받아야 해.”

“그럼 SN 엔터는요?”

“거긴 방수혁을 생각하고 있어.”

수안이 그린 밑그림은 더블 엔터에 박준영, SN 엔터에 방수혁이었다.

수안은 왜 그 둘에게 기획사를 유지시키는 역할을 맡겨야 하는지 설명했다.

“김 사장이나 이 사장은 진흙탕 같은 연예계에서 잔뼈가 굵잖아. 방송국 PD들에게 뒷돈 찔러 주는 것도 서슴지 않아. 그런 일은 어울리는 사람이 해야지. 초반에 자리 잡을 필요는 있으니까 그들을 써먹어야 해. 그래서 둘이 필요했어.”

사람은 저마다 필요한 구석이 있기 마련이었다.

잔뼈가 굵은 둘은 진흙탕에 어울리는 경영자였다.

수안은 적재적소에 쓸 요량으로 둘을 경영자 자리에 앉힌 것이다.

“하하. 역시 실장님은 다 생각이 있으셨네요. 괜히 혼자서 걱정했습니다.”

“글러먹은 놈들이 사장이랍시고 나중에 거들먹거릴까 봐?”

“그것도 걱정이었습니다만, 나중에 물의를 일으킬 것 같았거든요.”

“사전에 둘을 면밀히 조사해서 약점 잡아 놔. 찍소리 못하게 만들어서 내쫓을 테니까.”

“옙!”

“그리고 나 인성을 중시하는 사람이야. 박준영이나 방수혁은 나와 생각을 같이하는 사람들이고. 그런 사람들이 있어야 나중에 영입할 연예인도 인성을 기준으로 선발하지 않겠어? 되먹지 못한 연예인은 키워 줄 생각 없어. 둘이 성장하도록 지원할 수 있는 부분이 있으면 지원해 줘.”

“알겠습니다.”

* * *

일본 대지진에 대한 뉴스가 여전히 주목받고 있는 1995년 1월 말, 더블 스타는 사장단 회의를 소집했다.

얼마 전 인수한 SN 엔터 이수남 사장도 끝자리에 앉아 있었다.

“사장단 회의는 처음이네요. 다들 반갑습니다.”

““반갑습니다. 실장님.””

“저는 모회사인 더블 스타 김현성 CEO로부터 이사회 의장직을 제안받고 수락해 이 자리에 섰습니다. 이렇게 회의가 진행될 때는 의장이라고 칭해 주시면 됩니다.”

““예. 의장님.””

“연초에 이렇게 여러분을 모은 것은 우리 더블 스타 그룹의 각 계열사를 소개하기 위함이 첫째이고, 둘째는 올해 목표 설정을 통해 나아갈 길을 제시하기 위함입니다.”

수안은 계열사 사장들을 하나씩 호명해 인사시켰다.

“가장 먼저 계열사에 편입되었고, 현재 국내에서 급속도로 성장하는 컴퓨터 업계의 신성. SJ 컴퓨터의 장세진 CEO입니다.”

짝짝짝짝.

“감사합니다. 잘 부탁합니다.”

“다음은 컴퓨터 소프트웨어 부분 계열사인 한컴의 한중호 CEO입니다.”

짝짝짝짝.

“감사합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삐삐 단말기를 생산하는 팬탁의 박병우 CEO입니다.”

짝짝짝짝.

“감사합니다.”

“그리고 곧 연예계를 강타할 SN 엔터테인먼트 이수남 CEO입니다. 이미 다들 얼굴은 아시죠?”

짝짝짝짝.

“감사합니다. 사인은 사양하죠. 하하하.”

“역시 연예계를 주름잡을 더블 엔터테인먼트 김기수 CEO입니다.”

짝짝짝짝.

“감사합니다. 저는 얼마든지 사인해 드릴 수 있는데 말입니다. 하하하.”

두 기획사 대표의 눈이 불꽃을 튀기고 있었다.

“이쪽은 안랩의 안영호 CEO입니다. 이제 막 시작하는 단계지만 기대가 큽니다.”

짝짝짝짝.

“반갑습니다.”

그 뒤로 몇몇 작은 계열사들이 소개되었고, 본사의 김현성을 소개했다.

“더블 스타의 수장. 김현성 CEO입니다.”

짝짝짝짝짝.

“의장님이 이런 자리를 괜히 마련하신 것이 아니었다는 것을 새삼 느낍니다. 이렇게 만나 뵈니 더 기분 좋군요. 앞으로 잘해 봅시다.”

“마지막으로 저는 더블 스타 전략실 실장으로 일하고 있는 강수안입니다. 잘 부탁합니다.”

짝짝짝짝짝.

짝짝짝짝짝.

“자. 이제 각 계열사가 나아갈 방향과 목표에 대해서 제안하겠습니다.”

수안은 분야가 다른 각 계열사의 일에 전문적인 식견을 보여 주며 회의를 이끌었다.

사장단은 수안의 전문성에 한 번 놀라고, 창의적이고 상세한 목표 설정에 두 번 놀랐다.

모르겠다 싶은 질문을 던져도 상세한 답변이 돌아오는 것을 보고 모든 자료가 수안의 손에서 만들어졌음을 알 수 있었다.

이어 수안은 다음 사장단 회의에서 각 회사의 결산 내역을 보고할 것을 요청했다.

“이번에 목표 설정은 제 선에서 설정한 목표였으나 올해 말에 진행할 사장단 회의부터는 각 사장들이 직접 목표를 설정할 것을 요청합니다. 그리고 다음 사장단 회의는 작년 결산을 마무리하고 보고하는 방향으로 진행합시다. 우리 그룹사는 아직 초창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성장을 기대하고 인수한 회사입니다만, 대단한 실적을 내라고 강요할 때는 아니죠. 그러니 사업의 실적이 저조하더라도 기죽지 말고 보고하십시오.”

“““예. 의장님.”””

수안은 마지막 멘트를 던졌다.

“마지막으로 이 부분은 지켜 주셨으면 합니다. 곧 민족 대 명절 설입니다. 거래처 대금을 앞당겨 지급하십시오. 우리가 관리해야 할 것은 우리 회사의 제품을 소비하는 소비자뿐이 아닙니다. 가장 가까이에는 직원들이 있고, 그다음으론 거래처가 있습니다. 소속 직원들에겐 떡값을 챙겨 주시고 거래처엔 대금을 선 지급하십시오. 이렇게 챙겨 주면 우리가 어려울 때에 거래처도 우릴 챙겨 줍니다.”

“아….”

훗날은 하청이나 거래처와의 관계 개선 및 단단한 관계를 구축하기 위해 많은 회사에서 실행하는 일이지만 지금은 흔하게 볼 수 없는 선대금이다. 미리부터 시작하면 관계회사와 돈독한 관계를 구축하는 데 큰 도움이 될 터였다.

“이것으로 회의 마치겠습니다. 사장단은 나가실 때에 선물 꼭 챙겨 가십시오.”

명절이라 사장단 선물까지 준비해 둔 수안이다. 계열사가 거래처와 관계를 돈독히 한다면 모회사는 계열사와 관계를 돈독히 해야 했다. 선물은 그 일환의 일부였다.

자신들 위에 존재한다고 생각했던 강운가 장남이자, 모회사의 오너였다.

그런 오너에게 받는 설 선물은 사장단에 특별한 감정을 선물했다.

‘우릴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으셨나?.’

훗날 강운 그룹을 온전히 이어받을 가능성이 100%에 근접하는 오너였다.

그들은 훗날 강운 그룹 사장단으로 탈바꿈할 날을 꿈꾸며 본인들의 회사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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