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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메라는 없는 것 같지만 도청 장치는 어딘가에 감춰져 있을 것이다.

사무실 전화 내부는 확실했고, 천장에도 있을 것이 뻔했다.

안 그래도 일본 지진으로 기분이 가라앉고 있는데, 도청까지 더해져 수안을 피곤하게 했다.

“실장님. 오늘은 일찍 들어가시겠습니까? 피곤해 보이십니다.”

“그래. 일본 재난 소식은 밖에서 확인해도 충분하니까. 난 회사 휴양 시설에서 잠시 쉬고 집으로 돌아갈게.”

한참 작성하던 수안의 메모지가 다시 들렸다.

-외부 지사 투자 수익이나 경과 보고는 우선 배 이사 선에서 해결하도록. 대신 사무실에서 연락하지 말고. 배 이사 자리에도 어제 도청 장치가 설치됐을 거야. 조만간 사무실 인테리어 개선 품의를 올리도록. 설치한 놈들이 알아서 회수할 수 있게.

수안의 손가락이 전화기와 천장을 가리키고 있었다.

도청 장치를 품고 눈치 보며 일하고 싶지 않았다.

한 번은 참지만 두 번은 가만두지 않을 생각이기도 했다.

“배 이사도 오늘은 일찍 들어가. 나도 없는데 회사에 붙어 있지 말고. 아내도 이제 곧 출산이잖아.”

“감사합니다. 실장님.”

사무실 밖으로 보내 줘야 배영성도 미국과 일본 지사의 업무를 볼 수 있었다.

-장호도 사무실과 법인 차량까지 확인해 보라고 해. 김현성 사장도 마찬가지야.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답한 배영성이다.

수안은 지금까지 작성한 자필 메모를 모아 작은 쓰레기통에 불을 질렀다.

화르륵 타오르는 불이 메모지를 재로 만들었고, 수안은 남은 재를 화분에 쏟고 뭉갰다.

철저하게 흔적을 감추는 것이다.

“기사 준비되면 연락해.”

“예. 실장님.”

배영성은 찡그린 얼굴로 사무실 복도를 지나 아무도 없는 회의실로 들어갔다.

A4용지 뒷면에 할 말을 주르륵 적어 놓고 김현성 사장의 방으로 먼저 들어갔다.

“배 이사님. 실장님 오셨던가요?”

“예. 방금 출근하셔서 뵙고 오는 길입니다.”

배영성은 김현성 사장에게 메모한 내용을 들이밀었다.

-강운 비서실 도청 시작. 어제 설치된 것으로 보임. 실장님이 확인하시고 김현성 사장에게 엄밀한 당부. 외부 지사 관련 업무는 철저하게 감출 것. 설치 장소는 사무실 전화기와 천장으로 의심. 도청 장치는 우선 제거하지 말 것. 조만간 사무실 인테리어를 갈아엎을 예정. 실장님의 지시로 외부 지사 업무를 일임받아 외출 필요. 이 메모는 읽고 태울 것.

“……!!!!”

“오늘은 피곤하신지 회사 휴양 시설에서 쉰다고 하십니다. 일본에 큰 문제도 터진 상황이라 기분도 별로 좋지 않으신 것 같습니다. 보고하실 일이 있다면 미루시는 편이 좋겠습니다.”

“어… 그래. 실장님이 요즘 너무 열심히 하긴 하셨지. 오늘 뉴스도 상당히 충격적이고.”

김현성 사장도 메모지를 뜯어 간단하게 자필 메모를 썼다.

-이해했습니다.

“저도 일찍 들어가 보라고 하셔서 사장님께 보고하고 들어가려고 합니다. 출산일이 다가와서 아내와 같이 산부인과에 가 보려고 합니다.”

“오오. 그렇지요. 어서 들어가 보세요.”

“감사합니다. 사장님. 내일 다시 뵙겠습니다.”

배영성은 본인 자리로 돌아가 전화기에 손을 뻗다가 멈칫했다.

하지만 다시 전화기를 들었고, 전화기를 접합하는 부분을 잠시 살폈다.

‘역시… 나사를 풀고 조인 흔적이 남아 있어.’

도청 장치의 존재는 확실했다. 어디까지 존재하는지가 문제다.

-감사합니다. 더블 스타 경호실 최장호 실장입니다.

“전략실 배 이사다.”

-예. 배 이사님.

“실장님 외출하신다니까 운전기사 준비하고 최 실장도 함께하도록.”

-알겠습니다.

“아. 잠깐 만나서 할 얘기가 있어. 내가 밑으로 내려가지. 나도 그렇지만 자네도 곧 출산이잖아.”

최 실장 자리도 안심할 수 없었다.

-예.

서류 가방을 챙겨 밑으로 내려간 배영성은 최장호를 인적이 드문 장소로 이끌었다.

최장호도 굳은 배영성의 얼굴을 보고 조용히 뒤따랐다.

도착한 곳은 흡연장이었다.

가방에서 종이를 꺼낸 배영성이 휘리릭 글을 적어 내려갔다.

그리고 바짝 곁에 서서 메모지를 보여 줬다.

-이곳 주변에 도청 장치가 설치될 만한 곳이 있을까?

“……!”

최장호는 메모지를 보자마자 무슨 일이 생겼는지 이해했다.

끄덕.

최장호가 끄덕이자 추가로 글을 적었다.

-없을 만한 곳으로 안내해.

최장호를 따라간 곳은 건물 계단이었다.

“여긴 안전합니다. 설치할 만한 곳이 없어요. 위치를 특정하기도 힘들고요.”

“휴우. 이게 무슨 짓인지….”

“도청이 시작됐습니까? 어디까지 확인됐죠?”

“그래. 네가 알려 준 대로 실장님이 확인하시다가 아신 모양이야. 사무실 전화기와 천장을 가리키시더라고.”

“그럼 회사 주요 인물들 사무실에 다 설치됐다고 보면 되겠네요.”

“내 전화기에도 나사를 만진 흔적이 있었어. 실장님이 김현성 사장과 나 그리고 너까지 조심하라고 하시더라. 지금 외부 일을 아는 사람은 우리 셋밖에 없으니까.”

“나머지 일은 알아도 상관없죠.”

“그래. 국내 일은 어차피 보라고 하는 일이니까. 그리고 조만간에 사무실 인테리어를 싹 바꿔 버리라고 하시네. 품의 올려서 외부에서 알 수 있게 하라고.”

“설치한 놈들 다시 수거하느라 용쓰겠네요. 겸사겸사 나쁘지 않습니다. 그리고 실장님이 타시는 차량에도 있을 겁니다.”

사무실에 도청 장치가 설치되었다면 차량도 안전하지 않았다.

“실장님 댁으로 가서 실장님 차로 바꿔. 가서 네가 직접 운전하고 기사는 보내. 오늘 휴양 시설로 가신다고 했어.”

“본가의 실장님 차도 안전하지 않습니다. 차라리 의심하지 않도록 본래 차를 이용하는 편이 낫습니다. 그래도 기사는 보내고 저희 경호원이 운전하도록 하죠. 제가 곁에 있겠습니다.”

“아. 그럴 수도 있겠네.”

집에 있는 차량에 도청 장치가 없다고 확신할 수 없었다. 강운 비서실이 자택이라고 빼먹었을 리 없다.

“이젠 제게 맡기십시오.”

“그래. 난 외부 일을 맡겨 주셔서 나가는 길이야. 연락할 일 있으면 바로 전화하고.”

“알겠습니다. 배 이사님.”

수안은 나갈 준비가 됐다는 연락을 받고 밑으로 내려왔고, 대형 밴을 타고 이동했다.

운전은 경호원이 맡았고, 옆자리에는 최장호가 앉아 있었다.

수안이 탑승한 밴 뒤에는 경호원들이 탑승한 차량이 뒤따르고 있었다.

수안은 상의에서 메모지와 펜을 꺼내 글을 써서 장호에게 보여 줬다.

-미행도 확인하나?

장호는 메모지와 펜을 받아 이어 적었다.

-지금까지 미행이 붙지 않아 경계가 소홀했지만, 오늘은 아닙니다. 미행도 수시로 체크하라고 했습니다.

수안은 엄지손가락을 들어 치하했다.

잠시 후 수안의 밴 안에 설치된 카폰으로 전화가 걸려왔다.

“여보세요.”

-실장님. 경호 차량 주유 가득하고 가겠습니다.

“미리 안 챙기고 뭐 했어?”

-주유를 깜빡했습니다. 죄송합니다.

“기름이 부족하면 넣고 가야지.”

수안은 대화 내용 그대로라고 생각했다.

장호는 옆에 놓아둔 메모지에 대화의 실상을 알렸다.

-미행. 붙었다고 합니다.

“……!”

경호 대상을 뒤따르는 경호원들이 주유도 하지 않고 대기하고 있을 리 없었다.

미행이 붙으면 가득 주유한다는 말로 전달하기로 약속되어 있었고, 지금 그 말이 들려온 것이다.

장호는 운전하는 경호원에게 다음 주유소에 정차할 것을 지시했다.

차량이 멈추고 뒤따르던 경호원들의 차량도 멈췄다.

수안은 얼른 글을 썼다.

-어쩌려고?

-확인만 하겠습니다. 맡겨 주십시오.

수안을 차 안에 두고 내린 장호는 경호원들의 차량으로 다가갔다.

창문이 열리자 곧장 대답이 들려온다.

“3227 검정 그랜져.”

“오케이. 넌 기름 넣고 둘은 내려서 화장실 가는 척하고 따라와.”

숙였던 허리를 펴고 뒤쪽 도로를 흘깃 살펴본 장호는 해당 차량이 멀리 멈춰있는 것을 확인했다.

장호는 주유소로 들어가는 척하며 담을 넘어 건물 사이로 접근하기 시작했고, 그 뒤를 경호원 두 명이 따르고 있었다.

근처에 도착해 잠시 숨을 고른 장호와 경호원들은 차량을 확인하고 뛰쳐나갔다.

둘은 차 앞을 막아섰고 장호는 검정 그랜져 창문을 두드렸다.

통통.

“깨기 전에 열어.”

검게 선팅한 창문이 내려갔다.

“…장호야. 오랜만이다.”

“어휴. 괜히 놀랐잖아? 선배였어? 여기서 다 뵙네. 하하하.”

최장호도 아는 얼굴이다.

수안에게 오기 전에 같은 강운 보안실에 소속되었던 선임 직원이었다.

“…일 잘하네.”

“난 또 누군가 했잖수.”

“꼼짝없이 당했다, 야.”

“그런데 우리 도련님은 왜? 지시 내려왔어요?”

“나도 몰라. 알잖아.”

“말씀 못해 주는 게 당연하지. 어쨌든… 오늘은 돌아가요. 못 본 걸로 할 테니까.”

“부탁한다. 위에 보고 올라가면 나 죽어.”

“내가 설마 선배 물 먹이겠어? 오늘 도련님 인천 휴양지로 가신다니까 그리 알고 있어요. 가서 바람이나 쐬고 오실 테니까.”

“오케이. 땡큐다 임마.”

“또 봅시다. 얘들아 차 지나가게 비켜라.”

차를 막아선 경호원들을 비켜서게 하고 검정 그랜져가 빠져나가는 것을 지켜봤다.

차로 돌아온 장호가 주유소 화장실로 수안을 불렀고 수안은 장호에게 방금 있었던 일을 들을 수 있었다.

“확인하니까 좀 씁쓸하다.”

“좀 늦은 감이 있죠. 이제야 실장님을 정밀 감시하다니 한참은 늦었습니다.”

“늦어서 다행이지. 덕분에 그동안은 자유롭게 외부 업무를 진행했으니까.”

“어쨌든 오늘 미행은 보냈으니, 차 안에 있을지 모를 도청 장치만 조심하면 될 것 같습니다.”

“수고했다. 장호. 가자.”

“예. 실장님.”

* * *

며칠 뒤 최학주 실장은 회장님의 맏아들 강수안의 정보 보고를 보며 이마를 좁히고 있었다.

“…왜 이렇게 됐어?”

“더블 스타 임원 사무실 인테리어를 완전히 갈아엎는다고 해서 들키기 전 장치를 모두 제거했습니다.”

배영성이 보란 듯이 작성한 실내 인테리어 개선 품의가 제대로 효과를 발휘했다.

“그럼 차에 설치한 건 왜 안 된다는 건데?”

“며칠 전에 도련님 차량에 작은 접촉사고가 발생하며 공업사로 들어갔는데, 거기서 장치에 물이 들어간 모양입니다. 들어간 김에 내부 스팀 청소를 하라고 했다고….”

“하!”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의 최 실장이다.

“미행 쪽은 무리 없이 진행하고 있으며 특이 동선은 없습니다. 집과 운동 그리고 회사. 루틴은 셋만 반복입니다. 가끔 휴양시설에 낚시하러 가시는 것 외에 지방 외유도 없습니다.”

“만나는 여자도 없고 말이지.”

“예. 전혀 없습니다. 술자리도 간단하게만 드시고 끝입니다. 2차, 3차는 없습니다.”

“그래. 사무실 도청 장치는 인테리어 완료하면 다시 설치하도록 하지.”

“예. 실장님.”

‘따로 정보력이 있는 것도 아닌데, 국가의 위기를 말했다? 정말로 혼자 생각이었을까?’

최학주는 지난번 회장님의 말을 듣고 더 자세한 정보를 얻기 위해 도청을 시작했다.

물론 강운모 회장의 재가를 얻은 도청이었다.

덕분에 수안이 만나는 여자가 없다는 것도 확인했지만, 진짜로 얻어야 할 것은 얻지 못했다.

‘아냐. 아니지. 뭔가 있어. 아무런 정보도 없이 그런 예측을 회장님께 전할 도련님이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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