놈을 잡아라
똑똑.
“들어와.”
배영성이 들어오고 뒤에는 최장호도 있었다.
“최 실장은 커튼 좀 쳐봐. 문 잘 잠겼는지 확인하고. 배 이사는 밖에 있는 비서 심부름이라도 보내.”
“예.”
“예.”
비서를 멀리 보내고 문을 잠근 뒤, 밖에서 보이지 않도록 커튼까지 친 것을 확인하고 수안이 말문을 열었다.
“고민되는 일이 있어서 의견을 나누려고.”
“제가 도움이 될지 모르겠습니다. 하하하.”
보안과 경호를 맡은 장호 입장에서 수안의 고민에 대한 도움은 힘들다고 생각하는 것이 당연했다.
“배 이사랑 최 실장에게만 할 수 있는 말이야.”
최장호도 이제 경호 실장으로 올라섰다.
“…또 실장님만 아시는 그… 내용입니까?”
“그래. 아주 심각해.”
“……!”
“……!”
“나 혼자는 해결이 불가능해.”
“혹시 북한 지도자라도 죽습니까? 전쟁이 발발하나요?”
최장호의 걱정은 남북관계에 있었다. 언제 전쟁이 벌어져도 이상하지 않다고 생각했고, 자신이 군에 있어봐서 그런지 심각한 미래라면 남과 북의 전쟁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수안은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음. 올해 여름에 죽기는 하는데 전쟁은 없어.”
“허읍!!!”
“억!!”
김일성은 1994년 7월 8일. 81세의 나이로 사망한다.
“기, 김일성이… 올해 죽는다고요?”
“그래. 그건 별일 아니야. 어차피 북한 지도자는 다음 주자가 대부분 세습을 끝내둔 상태니까.”
“아….”
“그러고 보면. 그놈도 미리 정리하면 참 좋을 텐데….”
후대가 말썽이었다.
어떻게 생각하면 사기꾼 조동팔보다 우선해야 할 일이었다.
하지만 이 부분은 조금 더 고민해 보기로 했다.
북한까지 넘어가는 것도 문제지만, 아직 어린아이일 후대를 어찌하고 싶지도 않았다.
“그럼 실장님이 말씀하려 했던 고민은 어떤 고민이십니까?”
지금은 할 수 있는 일을 해야 했다.
“정치적 문제는 아니야. 아주 사소하다면 사소한 내 과거의 은원이지.”
“개인적인 일이요?”
“응. 나중에 검찰까지 비호 세력으로 삼는 사기 범죄자인데….”
“검찰까지요? 기업을 소유한 인물입니까?”
“그건 아니고… 확실치 않네. 우선 지금은 아닐 거야. 나중이라면 모르지만.”
“우선 사건 개요라도 알려 주시죠. 그래야 저희도 아이디어를 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배영성의 말에 수안은 천천히 기억을 더듬어 사건을 떠올리기 시작했다.
“조동팔이라는 놈이 있어. 57년생 대구출생. 학력은 국민학교 졸업으로 끝.”
“엥?”
“학력이 고작 국민학교 졸업이라고요?”
“설마 범죄를 학교에서 배우겠어?”
“하긴… 범죄 머리는 따로 있는 법이죠.”
“학교는 안 다녔어도 머리는 상당히 좋았을 것 같네요.”
“맞아. 머리는 상당히 좋았던 것 같아. 사람들에게 40% 이상의 고수익을 약속하며 의료 기기를 대여하는 사업을 진행했어. 다단계 사업이라고 하면 알려나?”
“아. 다단계 그거 사기 아닙니까?”
“직접 당하면 사기인 줄 어떻게 알아? 사기꾼이 자기 사기꾼이라고 머리에 붙이고 다녀?”
다단계라고 하면 다들 사기로 알고 있지만, 솔직히 일반 기업의 구조도 다단계와 다르지 않은 피라미드 구조다. 합법과 불법도 아주 미세한 차이에 불과해 법적인 판단도 쉽지 않다.
조동팔은 20대에 고향에서 처음 다단계를 접하고 이때부터 사기꾼의 싹수를 드러냈다.
2004년부터 의료 기기를 사면 남에게 빌려줘서 고수익을 낸다는 식의 수법으로 돈을 모았다. 지역별로 전혀 다른 회사명을 사용한 것으로 봤을 때, 녀석의 치밀한 수법을 짐작할 수 있었다.
이후 지속해서 수익금을 지급하며 신뢰를 쌓고 회원을 늘려 전국에 수십 개 법인과 49개소 센터를 운영했다. 폰지 사기의 시작이었다. 뒷사람에게 받은 돈의 일부를 떼어서 앞 사람에게 지급하는 형태라 사람들은 일정량의 이익을 얻었고, 이 때문에 후일 수익금 지급이 미뤄져도 기존 수익금에 대한 기대와 홍보에 협조하던 유명 인사들에 대한 신뢰로 신고를 미뤘다.
결국 일정 이상 수익금을 확보한 조동팔 일당은 2008년 전산망을 파괴하고 도주한 다음, 중국으로 밀항했다.
수안의 설명에 둘은 멍하니 한 사기꾼의 인생 활극을 머리에 그리고 있었다.
“아. 그래서 잡혔습니까?”
“잡혔겠죠?”
“나중에 중국에서 자살로 꾸민 영상을 보냈는데… 내가 보기엔 확실히 거짓이야. 덕분에 인터폴 수배가 풀렸고, 후일 국내 경찰도 사망으로 수사를 종결했어. 완전 범죄의 완성이지.”
“미친… 전국에 사기 쳤는데, 완전 범죄라고요?”
“하!”
수안은 배영성과 최장호가 놀랄 만한 마지막 사실을 알려 줬다.
“…그래서 전국에서 발생한 피해자는 약 4만여 명, 이들 중 십여 명은 자살, 피해 금액은 약 4조 원. 건국 이래 최대 사기 사건이야.”
평균으로 보면 1인당 4억 원에 달하는 피해 금액이다.
사소한 일이라고 할 수 없었다.
“……!!”
“……!!”
“사건 설명은 끝이야. 이제 어떻게 해야 할까?”
“그 전에… 실장님과의 연관성은요?”
아직 수안이 조동팔과 연관된 이야기가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난 전세금을 날렸지. 집주인이 조동팔에게 제대로 홀렸거든. 그 사람이 10여 명의 사망자 중 하나야.”
“4조 원의 피해 금액보다 실장님이 전세 살았다는 점이 안 믿어지네요.”
“저도요.”
지금은 강운 그룹 맏이로 살고 있으니, 이들에게 믿어지지 않을 수도 있었다.
“현실에만 집중해. 나도 자꾸 헷갈리니까. 그리고… 항상 입조심하고.”
“예. 실장님.”
“조심하겠습니다.”
셋은 사무실에서 조용히 고민에 빠졌고, 장호가 먼저 입을 열었다.
“조동팔이라는 놈. 언제부터 사기를 쳤다고 하셨죠?”
“2004년부터 시작했고, 2008년에 흔적을 지우고 중국으로 밀항했지.”
“그럼 지금은… 1994년이니까….”
“녀석이 사기를 치려면 10년 남았어. 지금은 대구에 본거지가 있을지도 모르겠다, 대구에 있는 최대 폭력 조직 조직원들과 어울렸다고 했었어.”
“우선은 녀석이 어디 있는지 정확하게 파악해야 할 것 같습니다.”
“맞습니다. 위치부터 파악하고 처리 방안을 찾아야죠. 녀석의 현재 위치에 따라 처리가 쉬울 수도 있고 어려울 수도 있습니다.”
수안은 다시 전과 같은 일에 둘을 휘말리게 하고 싶지 않았다.
그런 일은 한 번으로 족했다.
신뢰하는 사람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은 사양이다.
“벌써부터 죽일 생각은 하지 말자. 방법이 꼭 그것만 있는 건 아니잖아. 일전에도 너무 성급했다 싶단 말이야.”
성급한 결정에 성급한 결행. 경찰에 흔적이 잡히지 않은 것이 용하다.
공교로운 일들의 연속이 아니었다면 분명 누군가에게 꼬투리가 잡혔을 것이다.
“…4만 명에 4조 원을 사기 칠 놈입니다. 꼭 살려야 합니까?”
“저도 배 이사님 의견에 동의합니다. 세상에 살 가치가 없는 놈들이 있고, 우린 실장님 덕분에 그 사실을 알았죠. 세상을 자비롭게 살아선 안 되는 때가 있습니다.”
“…그래도 너무 성급해.”
“지금도 비슷한 일을 하고 있을 수 있습니다. 전국적으로 해 먹으려면 예행 연습이 필요한 법입니다. 초짜가 그렇게 일을 크게 벌이긴 어렵습니다.”
“최 실장 말이 맞습니다. 우리가 확실하게 처분을 결정하고 찾아봐야 할 것 같습니다. 늦으면 피해가 커질 수도 있는 일입니다.”
수안은 피해가 커진다는 말에 또 다른 이름이 떠올랐다.
“…그럼. 주수동이라는 놈도 겸사겸사 찾아봐.”
“공범입니까?”
“내가 조동팔 사기가 건국 이래 최대 사기 사건이라고 했잖아.”
“그러셨죠.”
“주수동은 2등이야. 사기 피해액 2조. 조동팔보다 조금 이르게 피라미드 사기를 쳤는데, 당시엔 주수동이 1등이었지. 조동팔이 등장하고 2위로 밀렸을 뿐이지, 녀석도 만만치 않아.”
“세상에 죽일 놈 참 많습니다.”
“그러게요.”
“얼굴도 나름 잘나서 내연녀도 많았다고 하더라. 그리고 주수동은 조동팔처럼 완전 범죄가 아니야. 결국은 검거되고 구치소로 들어가니까. ”
“사전에 막아야 최선이죠. 다 당하고 나서 잡으면 무슨 소용입니까?”
배영성의 말에 수안도 고개를 주억거리며 긍정했다.
“그래. 둘 다 찾자.”
“…꼭 찾아내겠습니다.”
“조동팔은 내가 관심 있게 봐서 기억나는 일이 많은데, 주수동은 조동팔만큼 몰라. 지금은 어디서 정상적으로 살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계속 주수동을 입에 담자, 작은 기억을 떠올릴 수 있었다.
“그러고 보니 희미하게 기억나는데…. 정치에도 나름대로 끈이 있었던 것 같아… 특히 조심해야겠다.”
“저는 전략실을 통해서 찾아보겠습니다. 찾고 나서 다시 보고 드리겠습니다.”
“저도 제 인맥을 통해서 찾아보죠.”
“그건 안 돼. 나중에 그 사람들한테 문제가 생기면 도움을 준 이들이 누굴 의심하겠어?”
“…….”
“…….”
“우리 셋이 찾아야 해. 다른 사람 도움은 최소한으로 받고.”
“난도가 확 올라가네요.”
“그러게요.”
“피해자 중에 주수동이랑 조동팔에 연속으로 당한 사람도 있더라. 아주 대단한 놈들이야.”
“없던 기운도 솟아나는 말씀이네요. 꼭 찾아내겠습니다.”
“그런 놈들. 세상에 필요 없습니다.”
“어쨌든 찾고 나서 다시 생각해 보자. 지난번처럼 그렇게 허술하게 하지 말자고.”
““예. 실장님.””
* * *
그리고 시간이 흘러 배영성과 최장호는 수안이 얘기한 둘을 찾아냈다.
배영성이 먼저 주수동의 상황을 보고했다.
“1956년생 주수동. 현재 서초동에 학원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겉보기엔 아주 멀쩡해 보이는데, 실상 학원은 폐업 수순이었습니다. 주수동이 학원 사업 외에 다른 것에 너무 많이 눈을 돌린 것이 원인입니다. 말씀대로 일전에 정치에 발을 들인 일이 있었습니다. 하는 일마다 잘 안 됐는데, 사기를 당했던 모양입니다. 그는 만족할 줄을 모르는 놈입니다. 지금은 다른 다단계 사업을 준비하는 모양이었습니다. 아직 시작하진 않았습니다만, 컴퓨터 관련 다단계를 준비하는 듯했습니다.”
다음은 최장호 차례다.
“1957년생 조동팔. 말씀대로 대구에서 근거지가 있었고, 지금도 다단계 피라미드 사업에 발을 담그고 있었습니다. 저희가 대화하는 현재도 피해자가 양산되고 있는 상황입니다. 녀석의 주변에 비슷한 부류의 인물들이 상당합니다. 전부 공범이죠.”
“처단할 이유는 충분하다?”
“조동팔은 지금이라도 막아야 합니다. 빨리 처단할수록 좋습니다.”
“예. 충분합니다. 주수동은 사전에 막을 수 있으니 더 좋습니다.”
“…….”
수안의 고민은 깊어졌다. 둘은 처리하자고 하지만, 여전히 결정을 내릴 수 없었다.
“삼풍 그룹 회장 때보다 쉽지 않겠습니까?”
“에이 그건 정말 쉬웠죠. 일도 착착 풀리고.”
두 사람의 말에 수안은 문득 떠오른 것이 있었다.
“배 이사. 그때 만든다던 약은 만들었어? 회장이 약을 하고 있었다는 건 거기 가서야 알았잖아.”
“아… 만들긴 했습니다. 함부로 버리지 못해서 가지고 있지요.”
너무 위험해서 함부로 버릴 수도 없는 약이었다.
“얼른 버리라니까 형님, 아니 이사님.”
최장호가 배영성을 타박했지만, 오히려 수안에겐 잘된 일이라고 여겨졌다.
“무기는 확보했네.”
이거라면 둘에게 가까이 가지 않아도 스스로 무너지게 만들 수 있었다.
“…이걸 쓰시려고요?”
“그 약. 한번 하면 끊기 쉬워?”
“못 끊습니다. 어지간한 정신력으론 힘들어요. 괜히 세상에서 문제시하고 금지하는 것이 아니죠.”
“한 번. 단 한 번이라도 어떻게든 시작하게 만들면 되지 않겠어? 약물 중독자가 되면… 앞으로 사기는 물 건너가는 거야. 그러다 마약 사범으로 잡히면 어떻게 사기를 치겠어?”
“호오….”
“적정량을 한번 주사하는 정도라면….”
“가능성이 확 올라간다. 그렇지?”
“주사가 아니라 알약으로 제조할 수도 있습니다.”
배영성의 말에 수안의 눈이 반짝 빛났다.
“그러고 보니 떠오르는 약물이 있네. 우리가 인수할 만한 제약사가 해외에 있을까?”
“찾아보면 있을 겁니다.”
“실데나필….”
“그런 제약사는 못 들어 봤습니다만.”
훗날 전 세계를 강타할 기적의 신약이었다.
타다라필, 실데나필. 성분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대표적으로 비아그라라고 불리는 약물이다.
“이 부분은 나중에 미국 지사장과 얘기하도록 하지. 우선 배 이사는 알약으로 만들어. 파란색 색소를 넣고, 모양은 둥글게.”
“뭔가 생각이 있으신 모양이죠?”
“발기부전치료제. 스스로 먹게 만들 수도 있어.”
“…네??”
이 부분은 많은 남성의 지대한 관심사다. 평소 많은 돈을 벌어들이고 물 쓰듯 쓰는 놈들이라면 이런 일에도 큰 관심을 보일 수밖에 없었다. 수안은 자신이 세운 계획을 들려줬다.
“…해서 우리는 그들이 사는 집 근처에 홍보물을 붙여 두고 연락이 오길 기다리면 된다 이거야. 눈이 번쩍 뜨일걸?”
배영성과 최장호는 곰곰이 수안의 아이디어를 머리에서 현실화시키고 확장시켰다.
“가능성이 있을 것 같은데요?”
“그러니까 우선 배 이사는 가진 물건을 알약으로 만들어. 그리고 알약이 완성되면, 최 실장은 홍보물 만들어. 밑에 전화번호만 찢어갈 수 있도록 하고 계속 감시하면 될 거야. 다른 쪽에서 연락 오면 무시하고, 오직 그곳 연락만 받는 거야.”
“방문은 제가 하겠습니다.”
“누군가는 해야 하지. 하지만 남자는 쉽지 않아. 경계가 상당한 놈들이라 방문 판매처럼 보이려면 여성이 적합해.”
“흐음… 연기자를 섭외할까요?”
수안은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본인과 눈앞의 둘을 제외하고는 아무도 믿을 수 없었다.
“흐음….”
“최 실장. 아이디어 있으면 내 봐. 난 지금 믿을 수 있는 사람이 많지 않아.”
“홍보물을 붙이지 말고 아예 집에 넣어 버리는 겁니다. 동선을 미리 파악하고 놓아두면 다른 사람들이 챙겨가지 못하도록 하면서 오직 대상자만 확인할 수 있게 만들 수 있지요. 아침에 배달되는 신문에 끼워 넣으면, 그 집에만 넣을 수 있습니다.”
“오오!!”
전봇대 홍보물보다 실현 가능성이 높은 아이디어였고, 확실하기까지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