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권- 건국 이래 최대 (26/304)

재벌가에 끼어들었다

2권

건국 이래 최대

놈을 잡아라

약의 효능

실데나필

돈 냄새

수용

흐릿한 불씨

선택의 기준

맛보기

도청

확인

노예 계약

이놈이나 저놈이나

적재적소

기사회생

작은 사고

입원

조용한 소문

Bald Eagle(흰머리 수리)

통신사

꿈에 그리던 그녀

합시다

건국 이래 최대

곧 가을이지만 무더운 여름이 가시기 전이다.

수안은 시원한 에어컨 바람을 맞으며 식당 룸에서 둘을 기다리고 있었다.

“역시 가전은 GL이 제대로 만들… 아차! 나 강운 그룹 장남이지.”

아직 은성의 사명이 GL로 변경되기 전이었지만, 저도 모르게 백색 가전의 우위를 GL에 두고 있음을 자책했다.

과거에 가전 하면 삼디와 GL이 투 톱이었고, 그중에서 GL의 우위는 사람들 뇌리에 각인되어 있었다.

폴더블 OLED와 대형 OLED 디스플레이에 있어서는 국내가 아니라 해외에서 더 알아줬다.

해외의 어떤 기업도 포기한 OLED 기술을 끈질기게 연구해 이룩한 성과였다.

‘이제는 강운 전자가 최고야. 은성이든 삼디든 어디 덤비기만 해. 다 잡아먹을 테니까.’

수안이 방법을 생각하는 사이 드르륵 미닫이문을 열고 들어오는 인물이 있었다.

“어이쿠. 먼저 오셨습니까?”

배영성이다.

“안녕하십니까. 강수안입니다. 반갑습니다.”

“어머… 안녕하세요. 김수애라고 합니다. 실장님에 대한 말씀을 오늘에서야 들었어요. 물론 그전에는 신문에서 많이 뵈었죠. 너무 반갑습니다. 팬이에요.”

“오늘 말씀드렸어? …요?”

차마 신부 될 사람 앞에서 나이도 많은 배영성에게 반말을 할 수는 없었다.

“예. 함부로 떠벌리고 다닐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말해도 상관없는데…. 날씨가 아직 무덥지요? 하하.”

곧 장호와 예비 신부도 들어왔다.

“늦었습니다.”

“장호 씨도 제시간에 맞춰 왔습니다. 어서 오세요. 반갑습니다.”

“…어색합니다. 실장님.”

장호는 항상 반말만 듣다가 존대를 들으려니 심히 불편했다.

“적당히 맞장구치지?”

“으흐흐. 예. 이쪽은 곧 결혼할 정현주입니다.”

“아. 네. 강수안 선수. 아니. 실장님이라고 하셨죠? 반갑습니다.”

“두 분이 들어오시니까 방 안이 환해지네요. 반갑습니다.”

수안은 두 사람이 데려온 신부를 만나니 왠지 마음이 놓였다.

남편을 공연히 힘들게 할 것 같지 않은 조화로운 인상이었다.

‘조 머시기랑 비교도 안 되네.’

수안은 지난 삶과 이번 삶을 합해 70이 넘는 생을 살았다.

사람을 만나 느끼는 감상만으로 대충 관상까지 때려 맞출 수 있었다.

“실장님 눈빛은 왠지 저희 아버지를 보는 것 같아요. 아직 나이가 젊으실 텐데….”

“저도 그래요. 오빠가 실장님보다 나이가 많은데도 왠지 실장님이 어른 같아요.”

‘확실히 여자의 촉은 무서워….’

“아휴. 제가 한참 어리지만, 관록이 있어 보이긴 하죠. 하하하. 저와 같이 일하는 두 분이 만나신 예비 신부님들을 보니 저는 마음이 푹 놓입니다.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결혼하시면 제가 집에도 일찍 들여보내겠습니다.”

“아니에요. 실장님. 일하다 보면 늦는 일이 다반사죠. 부디 이 사람 중히 써주셔요.”

“그럼요. 매일 일찍 들어오면 저희는 이 남자가 능력이 없나 의심할지도 몰라요.”

회사에 모든 시간과 열정을 쏟아붓는 일이 당연하게 여겨지는 시기였다.

직장인 대부분은 회사에서 시간을 보냈고 집은 잠만 자고 나오는 숙소와 같았다.

회사는 열심히 일하는 직원을 당연하게 생각했고, 일과 사생활의 균형은 찾아볼 수 없었다.

워라벨이라는 말이 나오려면 한참은 남았다.

주 5일 근무제는 10년 뒤에나 나올 제도였다.

“하하하. 제가 아끼는 두 사람은 배우자를 정말 잘 만난 것 같습니다. 저도 두 분 같은 배우자를 만나길 바랍니다. 식사 같이 들죠.”

수안은 예비 신부들 앞에서 열심히 배영성과 최장호를 띄워줬다.

직장 상사의 입으로 듣는 예비 남편의 활약상은 예비 신부들의 눈을 초롱초롱하게 만들었다.

* * *

영성과 수애는 수안과 헤어져 돌아가는 길이다.

“오빠.”

“응? 왜?”

“결혼하면 회사 근처에 집을 구하자. 오빠 늦게 끝나도 금방 들어올 수 있게. 그래야 조금이라도 더 자고 나가지.”

“아… 집.”

아직 집 얘기를 하지 않은 배영성이다.

“아, 아니 집을 사자는 말은 아니야. 아주 작은 집이라도 좋으니까 전세로 시작해도 되잖아. 월세도 좋고. 그래도 부담스러울까? 시댁으로 들어가야 해?”

배영성의 난감한 얼굴을 보고 집 구할 돈이 부족하다고 여긴 예비 신부였다.

“수애야.”

“…응.”

“오빠가 집도 없이 너 데리고 온다고 했겠어? 신혼집은 벌써 구해 놨다. 흐흐.”

목소리에서 배영성의 자신감이 뿜어져 나온다. 결혼도 하겠다는 마당이고 수안의 허락까지 받은 참이다. 더 이상 숨기지 않아도 됐다.

“… 벌써 집을 구해?”

“압구정에 43평 대현 아파트. 전세 아니고 내 명의야.”

“…….”

“아까 인사드린 강 실장님이 해 주셨어. 결혼한다니까 신혼집으로 쓰라고….”

“허어… 재, 재벌은 통이 원래 이렇게 큰 거야?”

“재벌이 아니라 실장님이 통이 크지. 남달라 아주.”

통이 클 수밖에 없다. 국내의 지주사를 빼고라도 해외에 있는 투자 회사의 운용자산이 조 단위였다.

“으으… 아까 뼈를 묻는다고 해야 했는데… 그래야 오빠가 회사에서 승승장구해서 이사도 달고 하지 않겠어? 그나저나 진짜 대단하다 실장님….”

“어… 그게….”

그러고 보니 아직 회사에서 자신의 직책도 말하지 않고 숨겨왔다. 젊다면 젊은 나이인데 이사라고 하면 무슨 일을 하는지 궁금해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이사 간판이 아니어도 여자를 만난 배영성이다.

“또 뭔데?”

“…나 벌써 이사 달았거든. 너 만나기 전부터 이사였어.”

“오…. 오빠. 왜 오빠는 나한테 숨기는 게 많아?”

“강수안 실장님이 강운 그룹 장남이잖아. 밖에 함부로 얘기하고 다닐 수가 있어야지.”

강운 그룹의 이름이면 납득 못 할 일이 없다.

“흐읍. 다, 다음부터는 절대로 숨기지 마. 알았지?”

수애의 입꼬리가 승천하려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응. 말 안 해서 미안해. 수애야.”

“흐흣. 그나저나 우리 집에서 난리 나겠다. 오빠 나이 때문에 걱정이 컸는데 방금 다 해결되어 버렸어.”

회사에서 일하는 평범한 직장인이라고 말해 뒀기에 집에서 무척 궁금해하던 참이다.

“휴우… 다행이네. 가서 잘 좀 얘기해 줘. 나도 나이가 걱정이라….”

“오빠가 이사님이라니… 나라도 안 믿길 거야.”

“이제 얘기하지만 내가 강 실장님 최측근이야. 수애 부모님께는 말씀드릴 수 있지만… 다른 곳은 좀 조심해 줬으면 좋겠어.”

“비밀?”

“기밀이라고 하는 편이 어울리겠지?”

“그래서 아파트도 해 주신 거야?”

“그렇지. 강 실장님이 하는 모든 일이 내 손을 통해서 각 사장단에 전달되고 있으니까.”

배영성의 어깨가 두 치는 솟아올랐다.

“후아. 그럼 오빠가 사장들한테 명령한다는 말이야?”

“비슷하지. 정확하다고 해야 하나?”

“우아. 우아….”

“내가 회사에서 얼마 받는지 얘기했던가?”

“…이실직고를 부탁해. 나 모르게 딴 주머니 차면 가만 안 두겠어.”

“…….”

“어허. 오빠 답이 늦네?”

“한… 2천 5백?”

“뭐? 이사라며 1년에 그거밖에 못 받아? 물론 그 정도도 나쁘지 않긴 하지만….”

회사의 이사라면 5천은 받는 줄 알았다.

“왜 1년이야. 월급이지.”

국내 지주사인 더블 스타에서 억대 연봉을 받고, 해외 투자사에서 따로 월급을 받는 배영성이다. 이것도 수안의 배려였다. 관련된 일을 하고 있으니 일한 만큼 받으라는 지시였다.

“…….”

“살림에 부족하진 않겠지?”

“…우아아악!”

.

.

.

최장호의 커플도 비슷한 대화가 오가고 있었다.

“오, 오빠. 강 실장님이 집을 주셨다고? 장난감 집이 아니라 진짜 집? 그것도 아파트?”

“그래. 강 실장님이 강운가 장남이잖아. 배 이사님하고 나는 왼팔 오른팔 격이야.”

예비 신부도 직접 대면하고 오는 길이다.

결혼 전에 직원의 배우자 될 사람까지 챙길 정도면 진짜 신임을 받고 있다는 뜻이었다.

“우아! 서방님 회사에서 정말 잘나가잖아?”

“현주 너도 강 실장님 잘 챙겨야 해. 나중에 강운 그룹을 물려받으실 분이야.”

“응! 맡겨 줘! 강 실장님은 뭐 좋아하셔? 여자 취향은?”

“왜 누구 소개라도 해 주게? 아서라. 강운 그룹이 아무나 들이는 곳이야?”

“…아차. 강운 그룹 맏아들인데… 내가 큰 실수할 뻔했네.”

“실수는 실장님이 아니라 당신이 소개하려던 친구한테 할 뻔했지.”

“큭… 그것도 웃기겠다. 소개팅 나갔더니 재벌집 맏아들이라고 해 봐. 나 같으면 얼어서 한마디도 못 했을 거야.”

“오늘은 잘만 하더니?”

“아잉. 서방님이 옆에 있으니까 용기가 난 거지.”

“흐흐. 앞으로 자주는 못 뵐 거야. 공사다망하신 분이라.”

장호의 예상대로 수안은 바쁘게 미래를 준비했다.

대학은 휴학하지 않고 그대로 다니며 지주사로 전환한 더블 스타에 출근하고, 때때로 강운 그룹 사장단과 만나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곤 했다. 낚시를 핑계로 집을 비우는 날에는 해외 투자사 지사장과 만나 회의를 거듭했다.

새로운 회사, 새로운 투자처를 찾는 수안의 일정은 바쁘게 이어졌다.

* * *

“하아. 이놈을 어떻게 한다….”

요즘 수안은 고민이 생겼다.

미래를 차근차근 준비하다가 떠오른 인물 때문이다.

아직 시기는 멀었지만,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지금이 아니면 처리가 곤란할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다른 사건들도 많았지만, 도무지 기억나질 않았다.

‘뉴스로나 잠깐 지나치고 말았더니….’

사건이 일어난 것은 알고 있지만, 정확한 시기나 원인을 알지 못했다.

성수대교와 삼풍 백화점은 뇌리에 강하게 남아 있어서 사전에 막을 수 있었지만, 그 이후 발생하는 재난들은 정확하지 않았다. 주식에 영향을 끼치는 정보나 눈여겨봤기 때문이다.

대구 지하철에서 화재가 발생하든 가스가 폭발하든 남의 얘기라고 생각했었다.

당시의 안타까운 마음은 잠시였다.

남들 생각할 겨를이 있으면 자신을 돌봐야 했다. 스스로가 불우이웃이었다.

그런데도 잊을 수 없는 사건과 사람이 있다.

전생에 금용으로 살던 때의 일이다. 인천에서 아파트 건설 현장에서 일용직으로 일하고 있었고, 마침 근처에 알맞은 주택이 있어서 거금을 주고 전셋집을 얻었었다.

‘내가 잊어버리지도 않아. 나쁜 새끼.’

집을 세 들어 살게 해 준 주인이 나쁘다는 말이 아니었다.

선량한 집주인을 꼬드겨 거하게 사기행각을 벌인 나쁜 놈이 따로 있었다.

단군 이래 최대의 사기 행각으로 유명한 사기꾼은 금용의 집 주인아저씨의 마음도 사로잡았다.

집을 담보로 은행에서 돈을 빌린 인천의 착한 아저씨는 결국 사기로 모든 돈을 잃었다는 절망감에 아내와 자식들을 남겨두고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금용의 전세 자금이 날아간 것도 그때의 일이다. 채권은 은행이 1순위로 들어가 있어, 경매로 넘어간 주택에서 수안이 돌려받을 전세 자금은 한 푼도 없었다.

죽은 아저씨를 미워할 수는 없으니, 사기를 친 그놈을 얼마나 미워했는지 모른다.

주식은 자신의 잘못으로 잃었지만, 그 전세 자금은 오로지 남 때문에 잃은 것이다.

금용은 주식을 그만두고 겨우 모은 수천만 원을 그렇게 허망하게 잃어버렸다.

나중에서야 드러난 사기 피해자들은 실로 엄청난 숫자였고, 피해 금액도 대단했다.

인천, 서산 지역에서 발생한 피해자는 2만여 명, 피해 금액은 약 2조 원이었다.

대구, 경북 지역에서 발생한 피해자는 1만여 명, 피해 금액은 약 1조 원에 이르렀다.

부산, 경남 지역에서 발생한 피해자는 5천여 명, 피해 금액은 9천4백억이었다.

이렇게 전국에서 다단계 사기꾼 조동팔에 당한 피해 금액이 무려 4조 원에 이른다.

아직 이 사기를 벌이지 않은 조동팔에게 안타까운 소식은 그 안에 금용이 끼어 있었다는 사실이다.

아직 녀석이 활동을 하는지 안 하는지는 알 수 없지만, 전생의 복수를 감행할 결심을 세웠다.

‘나라의 큰 해악을 끼치는 놈.’

나중엔 검찰, 경찰을 매수해 비호 세력으로 삼는 녀석이다.

‘돈이 있으니 뭐든 못할까.’

조금이라도 돈을 벌어들이기 전에 처리해야 했다.

‘방법을. 방법을 생각해 내야해.’

방법을 고민하던 수안은 작년에 결혼하고 신혼 생활에 깨가 쏟아지는 두 사람을 불러들였다.

때는 1994년. 봄이 오기 전이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