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욕심과 욕심 (21/304)

욕심과 욕심

수안은 조그만 목소리로 속삭이듯 말했다.

“저 같으면 팔아 버린다고 하고 다시 찾아오는 방법을 쓸 것 같습니다.”

악마의 속삭임이다.

“…팔아서 나누고 되찾아온다?”

가능성이 없는 말이 아니지만, 방법이 중요했다.

“예. 그래야 오롯이 한 명이 가질 수 있으니까요. 건설을 제외한 다른 종속 회사들은 별 볼 일 없죠. 나머지 중에 가장 큰 것이 삼풍 백화점입니다. 건설은 중추라 함부로 손댈 수 없지만 삼풍 백화점은 분리되어 있으니 얼마든지 매각이 가능합니다. 게다가 둘째가 사장으로 있지 않습니까. 꼼수를 부린다면 첫째에게 걸어도 넘어올 겁니다. 물론 되돌아갈 일은 없겠죠. 한번 먹으면 그걸로 끝입니다.”

강 회장의 목소리도 작아졌다.

“…그렇다면 중간에 우리가 낚아챌 수 있다는 말이냐?”

백화점을 계열사로 갖고 있는 입장에서 삼풍 백화점은 먹음직스러운 사냥감이다.

“물론 가능합니다. 중간에 둘을 이간질하고 진행 방향을 비틀어 줄 필요는 있지만요. 우리 비서실 능력 좋잖아요. 미리 떡밥을 뿌려 놓으면 얼씨구나 달려들겠죠.”

“…장례식장에서 할 말은 아닌 것 같구나.”

“죄송합니다.”

“집에 돌아가서 자세히 얘기하자.”

* * *

수안은 아버지와 집에 돌아와 자세한 계획을 말하기 시작했다.

“우리가 돌려준다며 받아와서 아예 때려 부수고 새로 짓자?”

“예. 그렇게 되면 돌려 달라는 말도 할 수 없습니다. 서초동 삼풍 백화점 입지는 알아주지 않습니까. 그리고 이미 사람들의 인식은 가장 호화롭고 좋은 백화점이라는 인식이 있는 곳입니다. 때려 부수고 새로 지어도 백화점 영업력은 그대로 유지 될 겁니다.”

“멀쩡한 백화점 건물을 부수고 새로 짓는다는 부분이 마음에 걸리는구나.”

‘절대로 멀쩡하지 않습니다. 아버지.’

“인수하기 전에 안전 점검부터 하면서 트집을 잡아야겠죠.”

삼풍이 아니라 강운의 이름하에 건물 안전 점검을 진행한다면 상황을 뒤바꿀 것이다.

처음부터 트집을 잡기 위한 안전 점검이니 건설 단계부터 가진 문제점들이 우수수 튀어나올 것이다.

‘이렇게 하면 무너질 삼풍 백화점을 인수할 일이 없지.’

“흐음….”

“오늘 보셨겠지만, 둘의 사이가 좋아 보이지 않았습니다. 상속 분쟁은 벌써 시작되었습니다.”

“둘 중에 누굴 공략해야 할까?”

“물론 둘 다입니다.”

“둘 다?”

“그래야 삼풍 백화점을 넘기는 데 생길 잡음을 최소화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만약 건물 점검 과정에서 문제점이 드러나면 저렴한 비용으로 사냥감을 공략 할 수도 있겠지요.”

자신의 아비라면 일부러라도 문제를 일으킬 사람이다.

“백화점은 영업이 정지될 테니까….”

“그렇습니다. 그렇게 되면 영업도 할 수 없는 백화점 가치는 뚝뚝 떨어집니다.”

“진행해 볼 만해….”

“아직 아무도 모르고 있으니 먼저 움직이면 삼풍 백화점이 우리 것이 됩니다.”

“나가 봐. 생각해 보지.”

수안을 내보내고 강운모 회장은 착하게만 보이던 아들의 독심에 서늘한 마음이 들었다.

장례식장에서 슬픔이 아니라 먹을 것을 찾는 독심을 보인 아들이다.

‘아들의 미소는 집 안에서만 볼 수 있었나? 딱 좋아.’

강 회장은 그마저도 기꺼웠다.

“회사를 이끌 경영자라면 응당 그래야지.”

경영자로서 이 정도 독심은 흠도 아니라고 생각했다.

차명 계좌 정리가 끝나가는 시점이다. 비서실에 여유가 있으니 얼마든지 새로운 임무를 내릴 수 있었다.

삐.

-예. 회장님.

“최 실장 들어오라고 해.”

-예. 회장님.

수화기를 내려놓은 강 회장은 다시 계획을 점검했다.

‘첫째와 둘째에게 접근해서 매각 방향성을 제시하고, 미래에 돌려줄 것을 약속한다. 그리고 명목상의 안전 점검으로 백화점 영업을 마비시키고 손을 떼 버리면….’

“제대로 외통수.”

‘그 후 영업이 무기한 정지된 백화점을 헐값에 인수하고 아예 때려 부숴서 일말의 가능성까지 제로로 만들어 버린다….’

뉴월드 백화점 서초점의 탄생이다.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겠어. 최적의 시나리오를 찾아야겠군.’

* * *

장례가 끝나고 며칠 뒤 삼풍 그룹 이상훈 부회장은 강운에서 왔다는 사람을 마주하고 있었다.

“강운에서 여기까지 무슨 일로….”

“전 회장님의 일은 삼가 조의를 표합니다.”

“아. 예. 감사합니다.”

“저는 회장님의 지시로 찾아왔습니다. 삼풍의 적자가 바로 이 부회장님 아니십니까.”

“그렇습니다. 바로 제가 삼풍의 유일한 상속자입니다.”

두 형제의 분쟁이 격화되는 시점이었다. 아군은 많을수록 좋았다.

게다가 재계 서열 상위권의 강운은 버선발로 마중해야 하는 아군이다.

“회장님은 고 이준성 회장님과의 친분으로 첫째 아드님이신 이 부회장님께 뭐라도 도움이 될 만한 것은 없는지 찾아보라고 하셨지요.”

“아하하. 이렇게 고마울 때가… 장례식장에도 회장님께서 직접 찾아주셔서 감사한 마음을 갖고 있었습니다. 도움을 주시다면 마다할 처지가 아니라 민망스럽군요.”

“필요한 일이 있으면 언제든 제게 연락을 주십시오. 제가 회장님 직속 비서실장입니다.”

“최학주 실장님이셨군요….”

명함을 받아 이름을 확인하던 이상준 부회장도 얼른 자신의 명함을 건넸다.

“이상훈입니다.”

“고맙습니다. 부회장님.”

“제가 드릴 말씀이죠. 하하. 그나저나 혹시 미리 녀석의 약점에 대해 알아보신 것은 있으십니까? 되지도 않는 놈이 아버지 회사를 나눠 갖겠다며 날뛰고 있습니다.”

“법적으로 둘째 아들이 가져야 할 몫이 있으니 문제라 이 말씀이죠?”

“끄응… 그렇습니다.”

“안 그래도 그 부분이 걱정되어 방법을 찾아본 참이죠.”

“기발한 방법이라도 있습니까?”

능력 좋기로 소문난 강운 그룹 비서실이다. 자신은 막막하지만, 강운 그룹 비서실이라면 방법이 있을 것 같았다.

“팔아 버리십시오.”

“팔라니.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가짜로 팔고 나중에 상속이 끝나고 나서 돌려받으면 되지 않겠습니까?”

“…뭘 팔라는 말씀입니까?”

“허접한 종속 회사는 양보한다고 넘겨 버리시고, 중추를 손에 틀어쥐어야 합니다. 양보하는 회사에 부채를 떠넘기면 중추 회사의 경쟁력도 살아나죠. 그리고 일부는 매각하는 것으로 꾸미셔야죠.”

“오호! 양보와 중추 회사…. 그리고 가짜 매각.”

이상훈 부회장의 머리에 얼개가 짜이고 있었다.

“가짜 매각이라지만, 매각 후 현금이 생기겠죠.”

“현금?”

“그 돈으로 중추인 건설사 지분을 확보하면 상속으로 나눈다 한들 둘째가 부회장님의 지분을 따라잡을 수 있겠습니까?”

“이야!”

“그렇게 되면 둘째는 완전히 낙동강 오리알이 되겠죠. 기업은 경영하던 사람이 하는 겁니다.”

“하하하. 역시 강운 그룹 비서실의 능력은 대단하군요.”

이복동생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골머리만 썩고 있었는데, 희망이 보이기 시작했다.

“별말씀을. 우선 부회장님은 매각할 회사를 선정해야 합니다. 허접한 종속 회사는 매각한다 해도 돈이 되지 않을 겁니다.”

“흐음… 건설사를 제외하면… 남은 것이 삼풍 백화점밖에 없습니다만.”

“그 정도면 상당한 현금을 손에 쥐실 수 있겠군요. 둘째가 양보할 물건이 아니지 않습니까. 게다가 둘째가 사장으로 있는 계열사이니 팔아서 빈손으로 만들어 버리십시오.”

“상당히 심도 깊은 논의가 필요할 것 같군요. 하하하.”

“먼저 삼풍 백화점을 팔아 생긴 돈으로 지분을 매수하시고, 그룹 경영권을 완전히 장악한 다음 훗날 같은 가격에 매입하는 방식이면….”

최 실장은 이미 준비한 시나리오를 열심히 부회장의 귀에 때려 박았다.

이 부회장은 현실적인 시나리오를 들으며 얼굴에 화색을 띠고 있었다.

* * *

그날 오후 둘째 이상필도 강운의 방문을 받았다.

“강운 그룹에서 오셨다고요?”

“반갑습니다. 이 사장님. 강운 비서실의 최학주입니다.”

명함을 받고 이상필은 실장이라는 직함에 다시 고개를 들었다.

“아. 최 실장님.”

“반갑습니다.”

악수를 나누고 자리에 앉은 최 실장은 비슷한 말로 이학필을 꼬여내기 시작했다.

“…강운에서 제게 도움을 주시겠다고요?”

“저희 회장님도 첫째는 아니었지요. 둘째라도 능력이 있으면 얼마든지 후계자가 됩니다.”

동질감을 부르는 말이다.

강운모 회장도 둘째로서 그룹을 이어받은 사람이었다.

“아! 그렇지요.”

“능력 있는 사람이 고 이준성 회장님의 후계자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계십니다. 전 회장님과 저희 회장님의 친분이 아주 두텁지 않으셨습니까.”

“맞습니다. 능력 있는 사람이 삼풍 그룹을 이끌어야 맞지요! 이렇게 저와 생각이 같으시다니 천군만마를 얻은 것 같습니다. 하하하.”

욕심에 눈이 먼 사람을 설득하는 것은 최학주 실장에게 아주 쉬운 일이었다.

첫째에게 제안했던 것과 비슷한 내용이 최학주의 입을 통해 설명되었고, 이상필은 크게 관심을 보였다.

“삼풍 백화점을 매각하면 제게 떨어지는 것이 얼마나 될까요?”

관심을 넘어서 당장 계획을 실체화시키려는 의지까지 보이고 있었다.

“저가로 던지시면 실제 금액에 프리미엄까지 얹은 금액을 돌려드릴 수 있습니다. 최소 1천억까지 가능하죠. 매각을 결정하는 것은 삼풍 백화점의 대표자가 좌지우지할 수 있는 일이니 이 정도는 받으셔야죠.”

“와아….”

“그 정도는 되어야 첫째인 부회장님과 싸워 보실 수 있지 않겠습니까?”

“총알은 충분하겠군요.”

“기업은 이사회와 주주 총회로 움직입니다. 이사들을 끌어들이시고, 주주 총회에서 사장님 손을 들어줄 사람들을 회유하셔야 합니다. 그래야 상속으로 분열된 지분을 이겨내고 그룹을 손에 넣으실 수 있습니다. 이 과정에서 떨어져 나가는 삼풍 백화점이야 어쩔 수 없는 일이죠. 큰 물고기를 잡으려면 작은 물고기는 포기할 줄도 알아야 합니다. 하지만 사실 포기도 아니라는 것이 중요하죠. 나중에 그룹을 장악하고 자금을 마련해 되사실 수도 있는 일입니다.”

최학주의 제안은 너무도 달콤하게 들렸다.

“곧장 진행합시다. 내가 뭐부터 하면 됩니까?”

‘앞뒤 분간 못 하는 급박한 성격. 경영자의 기본도 없군.’

“천천히. 이 부회장 모르게 진행하셔야 합니다. 물론 삼풍 백화점 지분 대부분을 가지고 있는 지주사 부회장의 눈을 피할 수는 없으나, 어쩔 수 없이 매각한다는 모양새를 취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렇죠. 맞습니다.”

“사장님은 삼풍 백화점이 욕심나지만, 형님께 줄 수 없으니 팔아서 나누자고 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사장님도 절대 포기할 수 없다고 버티시면 부회장도 팔아서 나누는 것이 낫다고 여길 겁니다. 어차피 자신이 가질 지주사에 매각한 자금이 들어온다고 생각할 테니까요.”

“그래봤자 저가로 매각하면 쭉정이밖에 안 되겠죠.”

“그렇습니다. 진짜 알맹이는 사장님이 다 가지시는 거죠. 계약은 이상필 사장님 총괄하실 수밖에 없습니다. 삼풍 백화점 사장이 계약서에 사인하지 않으면 누가 하겠습니까.”

“매각 과정은 어떻게 진행하면 됩니까?”

“부회장을 설득하고 나면 명목상 자산 가치 측정을 시작합니다. 실질 계약은 그 이후에 진행하면 되니 큰 문제는 없겠죠.”

이 부분이 가장 중요했지만, 이상필은 일말의 의심도 갖지 않았다.

“좋습니다. 바로 이상훈에게 가서 담판을 내고 오죠.”

최학주 실장은 삼풍 백화점 사장실에서 빠져나와 작은 미소를 지었다.

‘욕심이 화를 부른단다. 아가야.’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