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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격한 계획 (18/304)

과격한 계획

수안은 배영성이 잠시 생각을 정리하도록 가만히 기다렸다.

“부실 공사라고 떠벌려봐야 소용없겠죠?”

“재벌가 건설사들이 잘도 받아들이겠다.”

“저도 힘들 거라고 생각하고 한 말이에요. 정경유착의 대표적인 부분이 건설이니….”

“특히 삼풍 그룹이 문제야. 창업주 본인이 완고한 사람이라….”

좋게 말해 완고하다고 표현했지만, 지독하다고 표현해야 맞을 사람이었다.

“유명하죠. 그 회장은.”

“그러니 과격한 방법밖에 생각이 안 나더라고.”

말이 통하지 않을 것이 뻔하니 폭파밖에 생각나지 않았더랬다.

“그래도 우선 살펴보죠. 삼풍 백화점은 아직 시간이 남았으니 성수대교부터요. 붕괴 원인도 미래에서 보셨어요?”

“우선은 부실 공사가 원인이야. 용접 불량에 볼트도 부실해서 손으로 뺄 수 있을 정도라고 했어.”

“미친!!”

거대한 다리 상판 볼트를 손으로 뺄 수 있을 정도라면 무너지는 것이 당연했다.

“그리고 통행량 예측도 틀렸어. 8만 대 통행을 예측하고 만들었는데 16만대가 통행하고 있으니까.”

“하이고.”

안 그래도 부실한 다리에 계획 대비 두 배의 차량 통행이 이뤄지고 있었다.

“그리고 차량 한 대의 최대 하중이 18톤으로 설계됐는데… 25톤짜리 레미콘 차가 그 위를 달리고 있고.”

“여기서 더 있습니까?”

“마지막은 감독 소홀이야. 보수할 부분이 생겨도 땜질 보수만 했으니까. 그리고 안전점검도 형식적으로만 진행하고 25톤 레미콘 차량이 통행하는 것을 통제하지 못했어. 16만대의 과도한 차량 통행도 조치가 전혀 안 되고 있고.”

“총체적 난국이네요.”

“이건 강운에서 못 막아. 내가 미래를 보고 있다고 말했다간 정신병원에 보낼지도 모르지.”

“다른 형제들이 알면 큰일이겠네요.”

별거 아닌 상속 자산을 위해서도 자식들끼리 칼부림 나고 정신병원에 보내버리는 일이 있는데, 현 재계 순위권의 강운 그룹을 차지하는 일이라면 물불 가리지 않을 게 뻔하다. 아직은 동생들이 어리고, 사이도 나쁘지 않지만 작은 틈을 주면 어떻게 돌변할지 알 수 없었다.

“난 그런 위험까지 감수하고 배 이사에게 말한 거야. 배 이사 아니면 누가 내 말을 믿어 주겠어?”

“…믿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번만큼은 주고받는 사이가 아니라 그저 신뢰야. 이번 일 잘했다고 보상도 없어. 그냥 우리끼리 만족이지.”

“사람 목숨 구하는데 돈 바라지 않습니다.”

수안은 이래서 배영성을 더 믿었구나 싶었다.

“나도 그래. 이걸로 돈 벌 생각 없어. 벌 수도 없겠지만.”

“휴우. 그래도 아직 시간은 있네요.”

“지금 강운 비서실이 바빠서 내가 움직이는 걸 체크할 시간이 없어. 만약 성수대교를 부술 거라면 지금 움직여야 하지 않을까 싶었어.”

“그건 안 됩니다. 정권이 허술해 보여도 할 건 다 합니다. 특히 미국에서 파견된 정보 요원들도 곳곳에 남아 있고요. 만약 폭발물을 사용하면 어디까지 추적할지 알 수 없어요. 그런 위험까지 감수할 수는 없습니다. 붕괴는 자연스러워야 합니다. 그래야 책임의 소재를 따질 때 우리에게 피해가 없습니다.”

“그러고 보니 당산철교도 문제긴 했어….”

“거긴 또 왜요?”

“성수대교 붕괴하고 나서야 서울시 모든 다리를 전수 검사했거든. 당산철교에서도 결함이 발견되었고 철거 도중에…. 그냥 붕괴했어. 나중에서야 지하철 기관사들이 다리를 지날 때마다 흔들렸다고 증언했고. 지하철 2호선이 계속 운행되었으면, 얼마나 인명 피해가 발생했을지 짐작도 안 가.”

“이런 썅. 다리 건설을 죄다 그따위로!!”

“내 말이. 어쨌든 성수대교 상황은 완벽하게 파악된 거지?”

“이제 삼풍 백화점 남았습니다. 어떻게 무너지면 500명이 넘게 죽습니까?”

“삼풍 백화점을 중앙에서 보면 좌측과 우측이 있잖아.”

“네. 중앙 입구로 나눠 생각하면 양쪽이 있죠. 왼쪽이 A동이고 오른쪽이 B동입니다.”

“A동 건물이 벽면과 엘리베이터만 남기고 완전히 땅속으로 사라져. 오른쪽은 무사하고.”

“……!!”

붕괴 후 며칠이 지나도록 구조 작업은 계속되었고, 콘크리트 사이 틈에서 오래 살아남은 사람들을 구해내기도 했었다. 해외에서 유명했던 초능력자라는 사람까지 불러서 생존자를 찾겠다며 난리를 쳤었다. 그 초능력자도 나중엔 거짓임이 드러났지만, 그만큼 절실했다는 얘기다.

“거기다 삼풍 백화점은 뜨고 있는 백화점이야. 하루에도 수천 명이 오가고 직원만 해도 1천 명이야. 500명이 죽은 것도 어쩌면 덜 죽은 걸지도 몰라. 기분이 이상해서 밖으로 나왔다는 사람들이 많았거든. 뉴스에 나오더라.”

“후우. 후우….”

“그래서 야밤에 경비원을 끌어내고 폭파시킬 생각까지 한 거야. 그 많은 사람을 죽게 놔둘 수는 없잖아.”

“없죠. 없어요.”

“그리고 당사자인 회장은 참사 당일에도 고치면 장사할 수 있다고 생각했어.”

“건물이 붕괴했는데 고쳐서 장사를 하겠다고요? 미쳤습니까?”

“물론 어처구니없는 생각이었지. 삼풍 그룹 회장은 배상금을 물고 형량을 채운 다음 출소해서야 죽어.”

“…출소? 그런 재앙을 불러와 놓고 출소를 했다고요? 500명이 넘게 죽었는데?”

이해가 되지 않는 일이지만, 실제로 벌어진 일이라는 점이 중요하다.

“미칠 일이지.”

“…세상이 미쳐 돌아가고 있었는데 제가 깜빡했네요. 하하….”

그 미친 세상에서 살아남으려면 자신도 미쳐야 했다.

“테러 외에 방법이 있을까?”

“그런 일을 자초한 놈이면. 죽어도 상관없겠죠?”

배영성의 눈이 빛났고, 수안은 배영성의 눈을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난 그렇게 생각해. 배상금? 징역? 콩밥도 아깝고 녀석이 숨 쉬는 공기도 아까워.”

“저도요.”

“하지만 회장이 죽는다고 건물 문제가 해결되겠어?”

죽여서 해결될 일이라면 얼마든지 죽일 수 있지만, 건물이 문제였다.

“곧장 해결은 되지 않겠죠. 하지만 분열은 충분히 가능합니다. 상속 문제가 걸리니까요.”

“오오!”

상속으로 어지러운 상황이라면 끼어들 틈바구니가 있을 수도 있겠다 싶다. 하지만 걸리는 일이 있다.

“그리고 범죄는 어렵다고 하지 않았나? 미국 요원들도 있을 거라며. 그리고 그 사람. 중앙 정보부 창설 요원 출신이야. 끗발이 장난 아닌 사람이라고.”

“개인의 죽음은 관심을 끌기 어렵습니다. 많은 사람이 사고로 죽는 것과는 결이 다르죠. 게다가 나이도 먹을 만큼 먹었으니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당장 마약류로 분류되지 않는 국내 화학 약품도 상당하구요. 얼마든지 구할 수 있고, 나중에 부검을 통해서 검출해도 출처를 알기 쉽지 않아요. 절대로 의심받지 않습니다.”

의사가 이래서 무섭다.

“그럼 방법은 정해진 건가.”

“확실히 마약류가 좋겠네요. 국내에서 평범한 화학 물질로 제작하면 들킬 일은 없습니다. 이것저것 섞으면 혈관이 빵하고 터질 테죠.”

“약물 과다 복용으로 가자고?”

“예. 그래야 회장과 붙어먹은 권력자들도 관여하지 않고 쉬쉬하게 될 테니까요.”

“그것도 좋지.”

“도련님은 빠지십시오. 오직 제가 실행하겠습니다.”

“내 손에 피 묻히는 거 괜찮아. 내가 이런 미래를 한두 번 봤겠어? 전쟁도 미리 알려줬잖아.”

“만일을 대비해서 말씀드릴 뿐입니다.”

“…배 이사는 안 무서워?”

“수많은 사람들 목숨이 걸렸다고 생각하니 두렵지 않습니다.”

“역시 사람 살리는 의사는 다르네.”

“말씀하신 대로 강운 비서실이 정신 차리기 전에 빨리 움직이겠습니다. 성수대교가 우선이지만, 삼풍 백화점부터 해결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리고 삼풍 백화점 부실 공사 카드를 꺼내면 다른 건축물 점검도 달라질 겁니다. 일전에도 그랬다고 하셨잖습니까.”

“이야… 그렇게 될 수도 있겠어. 역시 배 이사가 머리는 기똥차게 돌아가.”

“가까이 닥친 미래라고 해서 먼저 해결할 필요는 없죠. 뒷일을 해결하면 저절로 해결되기도 합니다.”

“좋아. 우선 물건부터 제대로 만들어. 약물을 복용케 하는 것은….”

“그건 장호가 맡을 겁니다.”

“장호까지 끌어들이려고?”

“아직 어린 도련님이 삼풍 그룹 회장에 접근하는 것은 모양새가 좋지 못합니다. 차라리 침투해서 직접 주입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래야 확실합니다. 증거 인멸하기에도 좋고요.”

“후우… 일이 점점 커지는 것 같네.”

“맡겨 주십시오. 그리고 일이 잘못되면… 어머니를 부탁드립니다.”

배영성을 물끄러미 보던 수안이 말했다.

“배 이사 어머니는 당연하지. 그리고 일이 잘못되면 내가 대통령이 돼서라도 배 이사 사면해 줄게.”

“푸흣.”

“못 할 것 같아?”

“그 전에 사형당할지도 모르는데요?”

“미친 척해. 정신이상으로 감형받게 해 줄 테니까. 강운 몰라?”

“그리고 애인은….”

“뭐야? 애인도 있었어? 왜 말을 안 해?”

“…제가 뭐 이렇죠. 곧 끝내야겠네요.”

“끝내긴 뭘 끝내? 제대로만 하면 아무 문제도 없을 건데.”

“뭐. 문제가 되면 알아서 정리되겠죠.”

“실행하는 날에 나도 간다.”

“안 됩니다.”

“안 되긴. 내가 누군지 몰라? 세상에서 가장 빠른 남자라고. 혹시나 문제가 생겨도 빨리 빠져나올 수 있어.”

“고작 몇 초 차이로 안 되는 일이 되진 않습니다. 괜히 장호 신경 쓰이게 하지 마시고 빠져주세요.”

“밖에서 소란이라도 떨게 해 주라. 내가 집안 지키는 개들 다 끄집어낼게.”

“하아. 도련님.”

“내가 배 이사랑 장호를 사지에 던져 놓고 어떻게 넋 놓고 있어?!”

“…….”

나중에 구제하겠다는 둥, 어머니를 책임지겠다는 둥 했던 말은 농담이다.

수안은 자신의 사람을 위기에 몰아넣고 나 몰라라 할 수 없었다.

“솔직히 장호보다 내가 침투하는 편이 나아. 내가 더 빠르고 내가 더 힘이 세니까.”

“기술과 경험은 무시 못 합니다. 아무리 도련님이 빨라도 안 되는 건 안 되는 겁니다. 게다가 침투는 들키지 않고 들어갔다 나와야 하는 일인데 힘이 세다고 되겠습니까? 사람 죽이는 일입니다. 도련님이 관여하시면 안 됩니다.”

“배 이사! 그럼 나보고 어쩌라고! 내가 꺼낸 말이잖아. 당연히 내가 관여해야 해. ”

“장호랑 저. 뒤만 잘 살펴주십시오. 도련님은 남아서 저희 뒤를 살펴주셔야 합니다.”

일이 잘못되었을 때 남은 가족을 부탁한다는 뜻이다.

“내가 돈이 얼마나 많은지 알잖아! 돈이 문제야? 부모에게서 아들을 뺏는 게 어떻게 돈으로 해결될 일이냐고!”

“도련님이 아들 노릇이라도 해 주시든지요.”

“이 와중에 농담이 나와?”

“저는 도련님 믿습니다. 도련님도 저 믿고 얘기해 주셨지 않습니까. 도련님이 미래를 얘기해 주신 순간부터 성수대교 붕괴와 삼풍 백화점 붕괴는 남의 일이 아니게 됐습니다. 사람을 살리기 위해 제가 선택한 일이고, 그 일에 저를 바칠 각오입니다. 그러니 제게 맡겨 주세요.”

수안은 배영성의 단호한 말에 이제 되돌릴 수 없는 일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실행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필요합니다. 신중하게 처리하겠습니다. 그래도 사전에 꼭 말씀드리겠습니다.”

배영성이 고개를 푹 숙이고 차에서 빠져나갔지만 수안은 붙잡을 수 없었다.

수백의 무고한 사람들과 자신이 품은 한 사람 사이에서 판단을 내릴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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