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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 경영 (10/304)

비밀 경영

교실 안. 주변에 수안의 친구들을 잔뜩 포진시키고 인터뷰가 시작되었다.

첫 번째 질문은 수안이 아니라 옆에 붙어 있는 친구에게 향했다.

“강수안 선수는 평소 어떤 친구입니까?”

“수안이는 항상 친절하고 친구들과 잘 어울립니다! 저는 국민학교부터 중학교 고등학교까지 수안과 같은 학교에 다녀서 제가 제일 잘 알고 있습니다. 제가 수안이와 국민학교에 같이 입학하고 짝꿍이 되었을 때 말입니다….”

‘태식아….’

국민학교 1학년부터 징글징글하게 수안 옆에 붙어 있는 놈이다. 녀석의 아버지는 강운 계열사에서 승승장구해 지금은 임원까지 바라보고 있었다. 지금까지의 승진이 아들이 강운가 도련님에게 잘해서 가능했다고 생각하고 있지만, 스스로 능력을 발휘해 승진한 것이다. 수안이 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태식의 지루한 대답에 기자의 마이크가 선생님에게 향한다.

“강수안 선수의 학업 성적을 기대하긴 어렵겠지요?”

수안의 고교 1학년 담임은 눈을 반짝 빛냈다.

“수안 학생은 어려서부터 1등을 놓친 적이 없습니다. 이번 올림픽이 시작되기 전에 치러진 고교 1학기 중간고사와 기말 고사도 전교1 등을 차지했습니다. 우리 강운 고등학교는 운동 특기생이라고 해서 교육을 등한시하도록 놔두지 않습니다. 덕분에 강수안 학생도 공부와 운동을 훌륭하게 병행하며 학교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전교 1등!”

기자들이 파바박 기삿거리를 적어내기 시작했다.

전 국민의 관심이 올림픽 스포츠 스타인 강수안에게 모이고 있기에 수안의 기사가 들어가면 신문이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간다. 이런 이슈가 있으면 그 반향은 더할 터였다.

기자의 시선이 수안에게 향했다.

수안의 책상 위에는 기자들의 녹음 마이크가 가득 늘어섰다.

“강수안 선수. 강운 그룹의 장자로 알려져 있습니다. 사실입니까?”

“일전에도 밝혔지만, 사실입니다. 덕분에 부족함 없이 올림픽 육상을 준비할 수 있었고, 아버지께서 육상계 선수들의 어려운 사정을 알게 되시어 회사 차원의 지원까지 연결되었습니다. 강운은 앞으로도 육상 꿈나무를 키워내기 위해 지원을 이어 갈 것입니다.”

“강수안 선수. 올해 나이가 고작 17살입니다. 다음 올림픽 출전 계획은 있습니까?”

“우선 대학에 입학하고 생각할 일입니다. 저는 운동을 했다고 해서 학업을 등한시하진 않을 생각입니다. 학교에서 운동과 학업을 병행할 수 있도록 충분히 지원하고 있습니다.”

“대학은 어디로 가실 생각입니까?”

“한국대 법학과를 노리고 있습니다.”

“한국대! 그것도 법학과래!”

기자들의 필기가 빨라졌다.

“아직 강수안 선수의 나이가 어립니다. 다음 올림픽도 문제없지 않을까요?”

확답을 듣지 못한 기자가 재차 질문을 던졌다.

“동감합니다. 다음에 열릴 올림픽이 4년 후이니 제 나이 21살입니다. 그동안 학업과 병행해서 열심히 준비하겠습니다.”

긍정적인 표현이다. 기자들은 수안의 다음 올림픽 출전을 기정사실로 했다.

“평소 학습 방법은 무엇입니까? 어떻게 매번 전교 1등을 차지할 수 있습니까?”

전국 학부모가 좋아할 질문도 빼놓을 수 없었다.

“평소 학교에서 선생님이 진행하는 수업에 집중하고 가르쳐 주신 내용을 복습하는 방법으로 공부합니다. 틀렸던 문제를 따로 챙겨 오답 노트를 만들면 크게 도움이 됩니다. 평소에 학교 도서관에서 책을 많이 읽고 있습니다. 학교에서 추천하는 도서는 학생인 제게 이정표가 되어 주고 있습니다.”

수안은 수능 만점자의 인터뷰를 차용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인터뷰 전에 학교와 말을 맞춰 둔 질문이기에 인터뷰를 보는 교장의 미소가 짙어졌다.

“학원에 다니진 않습니까?”

“학교 외에 따로 다니는 학원은 없습니다. 제게는 오직 학교 수업뿐입니다. 선생님들의 뛰어난 교습법을 잘 따른다면 다른 수업은 필요 없습니다.”

사실이었다. 과외도 국민학교에 들어가기 전에 받은 것이 전부다.

그 외에 스스로 외부 활동을 할 수 있게 되며 배우고 싶은 것이 있다면 찾아서 배우고 있었다. 과외는 필요 없었다.

* * *

수안이 찍은 광고가 TV로 송출됐다.

[가전업계의 금메달리스트. 최고의 가전을 선물하겠습니다. 강운 전자.]

[“나보다 빠른 세탁기가 있을까?” 가장 빨리! 가장 깨끗하게 세탁하는 강운 전자 신형 세탁기! 강수안과 함께합니다. “저보다 빠르면 난감한데요? 하하하.”]

[세계에서 가장 빠른 그가 달리는 모습을 가장 선명하게 담아내는 강운 전자의 새로운 TV. 지금 강운 전자 대리점에서 만나 보십시오.]

TV 화면을 돌릴 때마다 강수안의 얼굴이 들어간 광고가 나오고 있었다.

광고가 전부가 아니었다.

때때로 방송사와 인터뷰해야 했고, 공익 광고에도 얼굴을 비추고 있었다.

나라가 강수안 열풍이었다.

“뉘 집 아들인지 자알 생겼다.”

“쟈가 갸 아녀? 금메달! 무쟈게 빠르댜.”

“쟈가 갸구만!”

“게다가 강운 전자 아들래미여. 공부도 만날 전교 1등이랴.”

“워매. 쟈네 엄마는 밥 안 먹어도 배부르겄어.”

* * *

털썩.

피곤한 얼굴의 수안이 자신을 데리러 온 차량에 올라타 시트에 몸을 묻었다.

“퓨후….”

이제는 올림픽 스타의 삶이 아니라 고3 수험생의 삶을 사는 수안이다.

올림픽도 벌써 2년 전 일이었다.

“도련님. 오늘도 수고하셨습니다. 고3 수업 힘드셨죠?”

오래전 김일곤 교수가 붙여 준 사람이다. 국민학교 저학년부터 고등학생인 지금까지 자신 곁을 지키고 있다.

“공부 좀 했다고 수고는 무슨. 일은 이제 시작이잖아. 배 실장.”

“하하. 그렇죠.”

운전기사로 붙여 준 배영성은 운전석에 앉아 있지 않았다.

배영성은 운전석 뒤편, 수안의 옆에 앉아 보고서를 꺼내 들었다.

강운 전자 사장이 올린 보고서와 각 계열사에서 올린 보고서입니다.

어린 나이라 아직 회사의 일을 하라고 허락받지 못한 수안이었지만, 무슨 일인지 사장단 임원이 보고 자료를 올리고 있었다.

“강운 전자는 삼디 전자와 은성 전자를 바짝 추격하고 있으며….”

오래전부터 준비해 왔던 일이 이제야 빛을 발하고 있었다.

수안이 모델로 등장한 강운 전자 광고도 크게 한몫했다.

“그건 이미 다 아는 일이고, 디스플레이와 반도체 쪽은 계속 진행 중이지?”

“예. 도련님이 지시하셨던 인물인 한국계 전문가를 나사에서 모셔오고 나서부터 확실하게 미국의 기술을 따라잡고 있습니다. 디스플레이 분야도 이제 가닥이 잡혀 갑니다. 반도체와 디스플레이가 비슷한 공정을 따르기에….”

“따라잡는 거로는 부족한데… 시간이 필요한 일이니 두고 보자. 가전 쪽 신 모터 개발은?”

가전은 모터가 생명이었다.

전기를 덜 먹고 소음이 적으며 고장이 적은 모터를 누가 먼저 개발하느냐에 따라 향후 판도가 달라질 수 있었다.

“개발에 매진하고 있으나 쉽지 않은 듯합니다.”

“은성에서 일하는 연구원이라도 스카우트해야지. 당장 소속은 못 바꾸더라도 나중에 크게 대우한다고 약속하면 넘어올 거야. 물론 입사 계약금 조로 거액을 안겨 줘야지. 지금은 인재를 끌어모아야 해.”

“그대로 전하겠습니다.”

수안은 막후에서 강운 그룹을 경영하고 있었다.

일이 이렇게 된 데에는 작은 우여곡절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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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학교에 들어가서 배영성을 배정받고 가장 먼저 한 일은 각 계열사 사장들을 몰래 만나는 일이었다. 수안은 아버지 몰래 사장단 임원들을 만나 미래의 기억을 토대로 각 계열사의 발전 방안을 담은 기획서를 만들어 설명했다.

물론 사장들이 얼씨구나 따르진 않았다.

그런 사장을 두고 어린 수안은 당당하게 고개를 들어 말했다.

“지금은 제가 어리지만, 15년만 지나면 회사로 들어갑니다. 지금 제가 말씀드린 대로만 해 주세요. 이로 인해 손해가 생기고 사장님 직위에 문제가 생긴다면 제가 회사로 들어가 복직시켜 드리죠. 지금의 10배 연봉을 평생토록 지급하겠습니다. 15년 후에 사장님 연세가 많아서 힘드시면 아드님이라도 데려오세요! 제 직속으로 키워드리겠습니다.”

“허.”

“그리고! 제가 부탁드린 대로 진행해서 회사에 큰 성과를 가져온다면 이는 모두 사장님들의 몫입니다. 오롯이 달콤한 성과만 누리면 된다는 말씀입니다. 위험은 전혀 없습니다. 잘되면 본인이 잘난 탓이고, 못 되면 모든 책임을 제가 집니다. 이래도 안 하시겠습니까?”

“하지만… 회장님과 부회장님 몰래 이런 식으로….”

“회사가 성장하는 데 시기가 얼마나 중요한지 아실 겁니다. 지금 준비해야 제가 회사로 들어갔을 때 재계 서열 1위의 강운 그룹을 만날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제가 드린 강운의 미래 비전이 공감하기 어려우십니까? 사장님도 충분히 공감할 만한 내용이지 않습니까?”

“…가능성은 충분하죠.”

충분하고 넘치는 미래 비전이 수안의 기획서에 녹아 있었다.

만약 이 기획서가 소속 직원에게서 올라왔다면 특진이라도 시켜 주고 싶은 심정이다.

“제가 어리다는 것을 제외하고 봐주십시오. 그리고 이 자료를 토대로 부회장님과 회장님께 발전 방향에 대한 재가를 맡아 진행해 주십시오. 이로 인한 모든 공은 사장님께로 돌아갈 겁니다.”

“…만약 일이 잘못되어도 제 뒤를 봐주겠다고 하셨지요?”

“물론입니다. 나중에 일이 잘못되면 제 핑계를 대셔도 좋습니다. 그리고 제가 강운을 물려받으면 사장님은 은퇴 없이 지금의 지위를 누리실 수 있을 겁니다.”

“아휴. 은퇴는 해야죠. 그래야 노후를 편히 쉬지 않겠습니까.”

“아드님 쪽 제안이 듣기 좋으셨던 모양입니다. 그것도 확답하죠. 이번 기획안으로 문제 생기면 아드님을 과장부터 쭉쭉 올려드리겠습니다.”

“하하하. 그럼 도련님만 믿고 진행하겠습니다. 그리고 워낙에 기획서가 획기적이라 저도 군침이 흐르던 참입니다. 회장님과 부회장님도 눈이 돌아갈 겁니다.”

“이번이 끝이 아닙니다. 꾸준히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겠습니다. 우리 잘해 봅시다.”

그렇게 아버지 몰래 사장단과 끈끈하게 이어진 수안이다.

국민학교에서 이어진 인연들은 고등학생인 지금도 그대로 이어지고 있었다.

일부는 나이가 들어 은퇴하기도 했지만, 후임 사장단 또한 수안의 마수에 걸려들었다. 덕분에 사장단의 비밀 보고서가 수안에게도 이렇게 전해지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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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계열사는 됐어. 보고서로 충분히 확인했어.”

“그럼 다음 보고 드리겠습니다. 여기 미국 투자 회사의 2분기 자금 운용 결과입니다.”

수안은 새로운 회사의 보고서를 받아넘기며 물었다.

“미국 쪽 상황은 어때?”

“최근 큰 낙폭을 보이지만 저희와는 관계없습니다. 특히 도련님께서 지시하신 부분은 성과가 남다릅니다. 보고서 27쪽부터 자세한 성과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수안은 보고서를 읽으며 대수롭지 않게 미래를 말했다.

“곧 이라크발 전쟁이 벌어질 거야. 미군이 그 전쟁에 포함될 예정이고, 원유 전쟁이야.”

“원유 전쟁!”

“유가가 급등할 테니 준비해.”

곧 걸프전이 시작된다.

이런 특별한 기회를 매번 살리고 있으니 투자 회사의 자금은 날로 늘어갔다.

“예상일은 9월 중순. 인상될 유가는 현재의 2배 이상. 반짝 오르게 될 테니까 터는 시기가 중요해. 이렇게 다 알려 줬는데 못 먹으면 병신이야. 천천히 미리 확보해. 9월에 전쟁이 발발한다고 확정한 다음 주식 투자에 임하라고 해.”

“준비하겠습니다.”

수안이 아버지 모르게 진행하는 일은 계열사 사장단과의 일이 전부가 아니었다.

해외에 몰래 투자 회사를 운영하고 있었다. 가장 숨겨야 할 부분이다.

덕분에 운전해야 할 배영성은 경호를 해야 할 직원에게 운전을 시키고 자신은 곁에서 이런 보고를 이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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