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욕심 (9/304)

욕심

강운가 저택에서도 TV로 수안의 경기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할머니와 어머니, 동생들이 있었다.

얼마든지 경기장에 갈 수 있었지만, 사람이 많은 곳이라 경호에 어려움이 있다는 판단이었다. 수안도 어차피 경기장에 와 봐야 얼굴도 제대로 보이지 않으니 집에서 지켜보길 원한다고 말했었다.

“우리 똥강아지가 금메달이야!”

“금메달! 아들이 금메달을 땄어요! 아아악!”

시어머니와 며느리가 얼싸안았다.

동생들도 오빠 형의 금메달 소식에 두 팔을 들고 소리 질렀다.

“금메다아아알!! 꺄아아!”

“오빠가 이겼다! 세계 신기록이래!”

“우아아아!”

* * *

수안은 가장 높은 단상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었고, 잠실 올림픽 주경기장엔 애국가가 울려 퍼졌다.

“동해 물과 백두산이….”

육상은 약물 외에 그 어떤 꼼수도 통하지 않는 종목이다.

서로 경쟁하지만, 영향을 줄 수 없고, 오직 속도로만 우열을 가리는 100m 육상 경기는 마라톤과 함께 올림픽의 꽃이라 불리는 경기였다.

국내뿐 아니라 세계 외신들도 한국의 서울에서 열리는 88올림픽 100m 결승 경기를 반복적으로 중계하며 금메달을 따낸 강수안의 얼굴을 알렸다.

다른 20대, 30대 선수들과 달리 나이가 고작 17세. 올림픽 100m 금메달리스트 역사상 가장 어린 나이였다. 육상에서 가장 전성기라고 할 수 있는 나이가 25세였으니, 추후 성장까지 기대되는 유망주였다. 또한 앞으로 세계 랭킹을 주름잡을 것이 분명하다는 예측이 여기저기서 나오고 있다.

3일 뒤 여지없이 벤자민의 금지 약물 복용 소식이 전해지며 동메달을 박탈당했다.

벤자민은 약물을 복용했음에도 금메달을 따지 못하고 수안에게 패배하였으니, 수안의 이름이 더욱 높아지는 결과만 만들었다.

그 뒤에 열린 남자 200m 경기.

온 국민이 수안이 제 기량을 발휘해 금메달을 따길 기원하고 있었지만, 수안의 걱정은 다른 데에 있었다.

‘이번에도 페이스 조절을 잘해야지.’

여전히 온 힘을 다하지 않는 수안이다.

괜히 세계 기록을 너무 앞당기면 약물 복용에 대한 의심만 살 뿐이다.

진짜 실력은 어디에도 내보일 수 없었다.

매일 반복되는 훈련 시간도 길지 않았다.

‘태릉 선수촌에서 훈련하는 육상 선수들에 비교하면 반도 안 했는걸. 뭐….’

잠시 태릉 선수촌에 들어가 다른 선배 선수들과 함께해 본 수안이다.

연습이긴 했지만, 육상 허들이나 장거리 달리기에서도 국가 대표를 누르고 1위로 들어왔었다.

몸으로 하는 대부분의 종목은 약간 익숙해지기만 하면 메달을 노릴 수 있을 것 같았다.

훗날 다른 경기에도 출전해 금메달을 목에 걸 수 있었지만, 그 이상은 욕심이라고 생각했다.

‘타고난 몸이 너무 좋아서 그런 것뿐이야. 더 욕심부리지 말자.’

수안은 자신을 규격 외의 존재라고 생각했다.

다시 태어나 전생의 기억을 갖고 있었고, 일반인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강인한 몸을 갖고 있었다. 또한 앞으로는 강운 그룹을 물려받을 예정이다.

사실 두 종목에서 금메달을 따는 것도 과도한 욕심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Ready.”

‘이대로 만족하자.’

“Get Set.”

‘다른 종목은 꿈도 꾸지 마.’

탕!

육상 200m 결승 경기의 출발 신호가 떨어졌다.

“달립니다! 강수안! 시작부터 앞서 나갑니다!!!”

“근육질 긴 다리에 파워풀한 주법으로 강인하게 단련된 강수안! 예전 국내 육상 유망주였던 임경남 코치가 발굴해 지금까지 길러온 육상의 보배입니다! 달립니다! 빠르게 달려 나갑니다! 강수아아아안!”

수안은 100m와 다를 바 없이 빠른 속도로 트랙을 날듯이 뛰었다.

10초나 20초나 중계석에서 할 말은 많지 않았다.

트랙을 달리는 수안은 시간 조절에 온 신경을 쓰고 있었다.

‘나도 모르게 힘이 들어갔어.’

욕심을 버리겠다 다짐하며 출발선에 섰다가 저도 모르게 다리에 힘이 들어가 선두로 치고 나왔다. 수안은 곁눈질로 후미의 선수들을 살피며 속도를 미세하게 조절했다.

“강수아아아아안! 결승선 통과합니다! 금메달! 강수안 선수가 다시 금메달을 따냅니다!”

“우아아아! 역시 강수안! 100m에서 보여 준 그대로 200m를 빠르게 주파하며 국민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습니다! 강수안 금메달! 금메달입니다!”

중계석은 다시 광란의 도가니였고, 대한민국도 다시 들썩거렸다.

“기록 나옵니다! 또! 또!! 또!!! 세계 신기록! 역시 세계에서 제일 빠른 사나이! 강수아아아안!”

“뉴 월드 레코드 19초22!! 200m 세계 신기록을 달성하며 금메달을 따낸 대한민국 강수안 선수입니다!”

“한국 신기록이 올림픽 신기록과 세계 신기록으로 남는 역사적 순간입니다!”

* * *

경기가 끝나고 이어진 인터뷰에서 수안은 돌아가신 할아버지와 자신을 길러 준 할머니에게 금메달을 바친다고 인터뷰했고, 기자들에게 약간의 오해가 생겼다.

“돌아가신 할아버지와 집에서 TV로 지켜보고 계실 할머니께 금메달을 바칩니다.”

“할머니께서 강수안 선수를 길러주셨습니까?”

“예. 할머니의 보살핌 덕에 제가 어린 시절 많은 사랑을 받으며 자랄 수 있었습니다.”

거짓은 아니지만 이어지는 기자의 질문이 나오기에, 충분한 대답이었다.

“부모님은 안 계십니까?”

“어려운 환경 속에서 어떻게 훈련을 이어 갔습니까?”

“라면만 먹고 달렸습니까?”

“…양친께서는 건강하게 살아 계십니다. 밥 못 먹고 살지 않았습니다.”

“그럼 부모님은 어디에….”

“모친께서는 할머니와 함께 제 경기를 TV로 보셨을 겁니다. 그리고…. 제 아버지는 강운 그룹의 강운모 회장님이십니다. 경기장 어디선가 제가 달리는 모습을 지켜보셨을 겁니다.”

여전히 자신을 숨길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 수안이다.

“헙!”

생각지도 못한 이름이 튀어나왔다.

“왜 방송사에서 강수안 선수 집에 못 가나 했더니….”

보통 금메달이 확실시되는 집이라면 방송사에서 대거 파견되어 가족의 반응 또한 카메라에 담아야 했지만, 어느 방송사도 성공하지 못했다고 들었다. 이유를 말해 주지 않아 무척 궁금하던 차였는데, 왜 이유를 말하지 못했는지 단번에 이해했다.

“나라의 지원도 많은 도움이 되었고, 강운 그룹 회장님이신 아버지가 체육계에 공헌하신 부분도 한국 육상계에 큰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 이 자리를 빌려 조국과 강운 그룹의 지원에 감사드리는 바입니다.”

강운 그룹의 이름값이 치솟았다.

대한민국은 수안이 딴 금메달 2개를 추가해 금메달 14개를 획득하며 모든 올림픽 경기를 끝냈다.

소련과 동독, 미국에 이어 종합 4위의 준수한 기록이었다.

은메달 10개와 동메달 11개도 있었으나, 대한민국에선 금메달을 최고로 친다. 거기다 유일한 2관왕 수안은 카퍼레이드 가장 앞에서 얼굴을 내밀고 사람들의 환호에 답해야 했다.

목에 걸려 있는 금메달 두 개가 반짝이며 빛나고 있었다.

올림픽 폐막식이 끝나고 수안은 곧장 청와대로 향했다.

선수들을 격려하겠다는 대통령의 의지가 있었기 때문이다.

“아하하하. 선수들 정말 수고 많았습니다.”

보통 사람을 구호로 내세우고 대통령에 당선된 전임 대통령의 군대 직속 후임.

국민들이 제대로 된 정보를 얻지 못하던 시기였고, 매일 TV로 송출되는 검열된 뉴스에 길들여진 국민들이다. 이 전 대통령 때는 이를 땡정 뉴스라고 부르기도 했다.

뉴스가 시작하자마자 내뱉는 아나운서의 멘트 때문이다.

아나운서는 언제나 “오늘 정두인 대통령은….”이라는 말로 항상 뉴스의 시작을 알렸다.

TV나 신문이나 할 것 없이 정부에서 완벽하게 언론을 장악한 상황이다.

그래서 국민들은 현 대통령이 정두인 대통령과 같이 쿠데타를 일으킨 인물이라고 생각하지 못하고 자신의 표를 던져 줬다.

거기다 삼당 합당의 야합으로 헛발질을 한 양 김의 무리수가 더해졌기에 당선될 수 있었다.

여러모로 운이 하늘에 닿은 사람이었다.

수안은 별로 좋아하지 않는 대통령이지만 아버지가 재벌이고 정부의 힘은 기업을 운영하며 필수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거기다 올해 대통령이 되어 가장 권력이 왕성할 시기였다. 바짝 엎드리고 있어야 했다.

수안은 대통령에게 공로를 치하받는 단상에서 불편한 감정을 깨끗하게 숨겼다.

“감사합니다. 대통령 각하.”

“자네가 강 회장의 맏아들이라지? 경기와 인터뷰 잘 봤네. 강 회장이 아들을 제대로 키웠어.”

“조국이 육상에 지원해 줘서 낼 수 있었던 기록입니다. 감사합니다!”

“하하하. 그렇지.”

나라의 지원은 협회 윗대가리들이 다 해 먹는다. 선수들에게 돌아올 혜택은 쥐꼬리에 불과했다.

그나마 수안이 재벌가 아들이라 개인 돈으로 좋은 환경에서 훈련할 수 있었을 뿐이다.

집으로 돌아온 수안은 할머니와 아버지, 어머니를 앉혀 놓고 큰절을 했다.

“좋은 성적표를 받아 돌아왔습니다. 모두 할머니와 부모님 덕분입니다.”

“우리 똥강아지가 금메달을 두 개나 따다니….”

“할머니 목에 걸어 보세요.”

수안은 목에 걸려있던 금메달을 빼서 할머니 목에 걸어드렸다.

“어머니도요.”

어머니 목에도 남은 금메달을 걸어드렸다.

이러고 보니 강운모 회장의 목이 휑하다.

“…아버지는 다음에 두 개 걸어드릴게요.”

“허. 흠… 다음까지 하려고?”

강운모 회장은 다음을 기약한다는 말에 크게 반대할 수 없었다.

이미 금메달을 따고 세계에 얼굴을 알린 수안이다.

또한 경기장 VIP석에서 받았던 축하 인사가 아직도 귀에 선명했다.

금메달을 따기 전과 따고 나서는 상황이 달라졌다. 수안의 예상과 같았다.

수안은 다음 올림픽까지만 가능하다 여기고 있었다.

그때가 되어도 수안의 나이 21살. 그때까지는 외유도 허락될 것 같았다.

‘다른 종목을 욕심내지 않는 대신, 두 종목을 한 번 더 따면 되잖아….’

한순간 반짝 빛나고 싶지 않았다. 이미 욕심을 부린 육상 종목을 놓치고 싶지 않았다.

“한국대에 들어가고 나서 1992년 올림픽에 출전하겠습니다. 그 이후에는 경영자 수업에만 몰두하겠습니다.”

“흠… 21살이면 뭐든 해도 될 나이지.”

“허락 감사합니다. 아버지.”

“대신. 광고 하나만 찍자.”

“네?”

“네가 내 아들임을 온 국민이 다 아는데 강운 그룹 광고 하나는 찍어야지.”

“하하하. 물론입니다. 언제든 말씀만 해 주십시오.”

수안은 학교에 다시 돌아갔다.

강운 고등학교는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강수안을 맞이하기 위해 분주했다.

[경! 대한의 건아. 강수안. 올림픽 100m 금메달 획득 쾌거! 축!]

[경! 강운고의 건아. 강수안. 올림픽 200m 금메달 획득 쾌거! 축!]

현수막이 여기저기 나부끼고 있다.

학교 입구에서부터 학생들이 주르륵 나와 대기하고 있었고, 선생과 교장, 교감도 기다리고 있었다. 수안은 차에서 내려 모두의 앞에 섰다. 예나 지금이나 수안의 자신감은 언제나 넘쳐흐른다.

“친구들아 나 세계 1등 먹었다! 아자자!”

두 팔을 번쩍 들고 크게 소리치는 수안의 말에 학생들이 화답했다.

“우아아아아!!”

학생들이 선생들의 통제를 벗어나기 시작했다. 우르르 수안에게 몰려들었다.

재벌가 후계자이면서도 친구들과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며 초 인싸로 살아온 수안은 친구들의 헹가래를 받으며 소리쳤다.

“누가 똥꼬를 찔러?! 야! 그만해! 앞은 건드리면 안 되지! 아악! 나 강운 장남이라고! 아악!”

수안의 몸이 하늘 높이 날아오르고 있었다.

그 뒤 마중 나온 교장을 필두로 교감, 선생 순으로 인사하고 전 교생이 강단으로 모여 수안의 금메달 획득을 치하했다.

“감사패. 강운 고등학교 1학년 강수안. 위 학생은 뛰어난 육상 실력을 갖추고 1988년 올림픽에 출전하여 100m 금메달, 200m 금메달을 획득하였다. 국위를 선양하고 강운 고등학교의 명성을 전 세계에 알린 공로가 있어 이 감사패를 수여한다. 1988년 10월 10일 강운 고등학교 교장 곽봉석.”

수안이 감사패를 받자 박수와 환호가 쏟아졌다.

짝짝짝짝.

“우아아아아!”

카퍼레이드와는 또 다른 느낌이 있었다.

“강운 재단에서 주는 특별 금일봉 1천만 원을 부상으로 수여합니다.”

“우아아아아!”

동그라미가 주르륵 그려진 판을 수안과 마주 들고 카메라를 향해 미소 짓는 교장이다.

수안도 교장의 미소를 따라 그리며 카메라를 응시했다.

촤자자작.

강당에 카메라를 들고 있는 사람들은 선생들뿐이 아니었다. 국내 일간지 기자들도 올림픽 스포츠 스타 강수안의 학교 복귀를 촬영하기 위해 찾아와 있었다.

기자들의 일은 강당에서 끝이 아니었다.

수안의 걸음을 따라 움직이던 카메라보다 더 큰 카메라와 방송국 사람들이 교실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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