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번째
다시 시간이 흐르고 수안은 나이를 먹어갔다.
체육 선생은 과거 국가 대표 육상 선수였다고 한다.
세계 무대의 큰 벽을 체감하고 육상 꿈나무를 찾고 있었는데, 마침 수안이 나타난 것이다.
수안은 체육 선생을 전담 코치로 고용해 육상을 배우고 있었고, 덕분에 전문적인 훈련 과정을 통해 주법도 배울 수 있었다.
중학교를 거쳐 고등학교에 들어가는 동안 운동을 이어 갔고, 청소년 육상 대회에도 참가할 수 있었다.
고등학교 1학년까지 키는 쑥쑥 자라 183cm까지 성장했고, 신체 능력 또한 여전히 또래보다 월등했다. 수안은 훌쩍 자란 몸으로 트랙을 달리면서 구슬땀을 흘리고 있었다.
“좋아! 잘하고 있어. 페이스 놓치지 말고, 팔, 허리! 자세 제대로!! 좋아. 좋아!”
담당 코치가 된 체육 선생이 자전거를 타고 옆에서 달리고 있었다.
“훅. 훅. 훅.”
고1, 17살의 수안은 이미 88올림픽 출전권을 따냈다.
게다가 출전 종목은 100m와 200m 두 개나 됐다.
최연소 출전이 더해지며 기대되는 청소년 유망주라고 기사가 나오고 있었다.
아직 수안이 강운 그룹 장손이라는 내용은 기사에 없다.
괜히 사람들에게 빈부 격차를 강조할 필요는 없었다.
처음에는 집안의 반대도 있었지만, 수안이 재미 삼아 출전해 본다는 말에 승낙한 것이 발단이다.
수안은 출전하는 대회마다 1위를 놓치지 않고 금메달을 따왔다.
그렇게 이어진 1위 행진은 실업팀 형님들을 제치고 국내 육상 선수권 대회까지 우승했고, 세계 선수권 대회까지 우승하며 올림픽 출전권을 따내기에 이른다.
여기까지 와서 막을 수는 없었다.
하지만 수안의 아버지인 강운모 회장은 여전히 불만스러운 표정이었다.
“아버지가 살아 계셨으면… 그냥 두고 보진 않으셨을 거야.”
강병호 회장은 정해진 운명처럼 1987년인 작년에 돌아가셨다.
수안은 할아버지의 장례식에 구슬프게 울었더랬다. 혈육을 떠나보내기는 처음이었다.
“할아버지는 손자를 응원하셨을지도 모르죠. 할아버지는 제가 하고 싶은 일이라면 다 하라고 하셨어요.”
“아버지가 얼마나 널 아끼셨는데. 가난한 애들이나 한다던 육상을 한다고. 아셨으면 너라도 회초리를 드셨을 거다.”
“그래서 아버지께 감사드려요. 아버지께서 허락해 주셔서 여기까지 왔어요.”
“끄응….”
이렇게 될 줄은 생각도 못 했다.
재미 삼아 한다는 말에 경험 삼아 허락한 것이 발단이다.
자신을 닮았다면 유전적으로 약한 폐를 타고났어야 할 맏아들이다. 그래서 신체는 자신이 아니라 어미를 닮았으려니 생각하고 있었다.
“정말로 이번 올림픽을 끝으로 육상에선 손을 뗀다고?”
“선수 등록은 유지하고 가끔 대회에는 참가해야죠. 병역을 대체하니까요.”
올림픽 3위 이상과 아시안 게임 1위로 조건이 변경되는 것은 90년 이후다.
세계 선수권에서 금메달을 획득하며 병역 조건은 이미 충족시켰다.
“누가 들으면 벌써 올림픽 메달이라도 딴 줄 알겠다.”
“하하. 이것도 당연히 따야죠. 세계 선수권 대회에도 제 상대는 없었어요. 그들이 올림픽에 나올 테고요.”
이미 이번 올림픽에 출전하는 세계 정상급 육상 선수들과 겨뤄 본 수안이다.
자신감은 차고 넘친다.
88년 서울 올림픽 이후 92년 바르셀로나와 96년 애틀랜타 올림픽도 노려볼 수 있다. 충분히 어린 나이이기 때문이다.
이번만이라고 했지만 따고 나면 쉽게 선수 생활을 접긴 힘들 터였다.
“…부족한 건 없어?”
“육상에 지원 좀 해 주세요. 배고픈 애들이 많긴 많더라고요.”
“으이그. 알아보라고 하마.”
강운가 회장의 돈을 빼먹는 일이 쉬울 리 없지만, 사랑받는 맏아들이라 가능했다.
“다른 녀석들 말고 네가 필요한 거 없어?”
“저는 괜찮아요. 충분히 풍족한 환경에서 훈련하고 있어요. 다 아버지 덕분이에요.”
검게 그을린 그의 피부와 우락부락한 다리 근육이 수안의 훈련 시간을 짐작하게 했다.
수안이 지금까지 운동만 한 것은 아니지만, 강운모 회장은 꿈에도 알 수 없었다.
“고2부터는 어림도 없을 줄 알아. 대학은 가야 할 것 아냐?”
“저 학교에서 계속 1등이잖아요. 한국대 꼭 갈 겁니다.”
성적이라도 떨어지면 수안을 포기시킬 이유가 되겠으나, 국민학교에 가기 전 대학 과정까지 모조리 공부한 수안에게 성적이 떨어지길 바라는 것은 무리다. 그렇다고 아예 손을 놓은 것도 아니다. 수안은 여전히 공부가 재미있었다.
그리고 회사를 키우는 것도 너무나 재미있는 일이다.
“지켜보마.”
“감사합니다. 아버지.”
* * *
수안이 트랙에서 손을 들고 있었다.
방금 선수 호명이 있었기 때문이다.
-7번 레인 강수안.
이미 조별 경기를 끝내고 준결승을 거쳐 마지막 관문인 결승에 도착했다.
이번 경기가 마라톤과 함께 올림픽의 꽃으로 불리는 100m 결승 경기였다.
“우아아아아!!”
수안의 이름이 울려 퍼지자 잠실 올림픽 주경기장이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었다.
수안은 6번 레인에 선 캐나다 선수 벤자민이 신경 쓰였다.
‘이 새끼가 도핑한 그놈?’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고 3일 만에 박탈당한 다음 도망치듯 출국한 선수였기 때문이다.
이번엔 은메달을 박탈당할 차례다.
“Hey. Cute boy.” (이봐. 귀여운 아이.)
녀석은 친근하게 웃으며 비꼬고 있었다. 자신의 나이가 어리다는 것을 아는 것이다.
이미 세계 선수권 대회에서 수안 덕분에 물먹은 녀석은 어린 수안의 멘탈이라도 흔들어 보려는 생각이었다.
“Hello. Mr. Drug.” (약물씨 안녕.)
수안의 말에 녀석의 표정이 삽시간에 굳어졌다.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누가 들었는지 초조해했다.
‘멘탈이 와장창 흔들렸네. 은메달도 힘들지 모르겠어.’
녀석의 누런 흰자위와 울퉁불퉁한 근육은 녀석이 스테로이드 성분의 금지약물을 복용하고 있다는 증거였다.
그 옆에 다른 경쟁 상대는 흑인 칼룬.
이 사람 역시 미국 선수로 세계 신기록 보유자다. 하지만 크게 걱정되지 않았다.
자신이 가진 기록도 비공인 세계 신기록이다. 그리고 이 둘은 세계 선수권 대회에서 마주했던 상대다. 이미 한 번 이겨 봤으니 두 번 이기는 것도 문제없다.
“Ready.”
“Get Set.”
탕!
출발 신호가 떨어졌다.
칼룬과 벤자민, 수안이 나란히 선두권으로 치고 나왔다.
그 후 단 몇 초, 수안이 약간 더 앞으로 나온다.
“대한민국 강수아안!! 치고 나옵니다!”
100m 경기 중계 아나운서는 많은 말을 할 수도 없다.
10초 이내에 할 수 있는 말이 얼마나 되겠는가.
스포츠 뉴스에서도 100m 경기는 전부를 보여 줄 수 있을 정도로 짧다.
“그대로 계속 뜁니다! 강수아아아안!! 선두로 나서서….”
‘역시 저놈들 다리가 길어.’
긴 다리에 탄력 있는 근육과 유연한 몸. 흑인 육상 선수는 한국 선수와 비교해 출발점부터 다르다. 타고난 유전자가 육상에 최적화되어 있었다.
하지만 본인은 그 최적화조차 뛰어넘는 축복받은 체력과 힘이 있었다.
파바바박.
짧으면 그만큼 빨리 뛰면 된다.
100m 경기는 빨리 결과를 볼 수 있었다.
단 10초. 그 안에 결판이 난다.
“강수안이 치고 나오고 있습- 우아아아아!!! 가앙수아아아아아아안! 대한민국 역사상 최초로 남자 100m 금메달을 차지합니다! 88서울 올림픽에서 대한민국의 강수안이 100m 금메달을 차지하는 영광스러운 순간입니다. 강수안!!!!”
“강수안! 강수안이 해냅니다! 17살 어린 나이의 강수안이 해냅니다! 강수아아아안!”
“강수안! 대한민국의 건아 강수안입니다. 강수아아아안!”
중계석은 난리가 났다. 수안의 이름만 주야장천 부르며 오디오를 가득 채웠다.
하지만 누구 하나 뭐라고 하는 사람이 없었다.
이를 지켜보는 사람들도 열광하긴 마찬가지였기 때문이다.
수안 뒤로 칼룬과 벤자민이 이어서 들어왔다.
벤자민은 흔들린 멘탈로 칼룬에게도 패배하며 동메달에 그쳤지만, 3일 뒤면 그마저 박탈당할 것이다.
““““우아아아아아아!””””
국내 관중들의 환호에 경기장 내에 있는 수안의 귀가 먹먹할 지경이다.
“기록 나오고 있습니다! 대한민국 강수안의 100m 금메달 기록은… 세계 신기록!!!”
“세계 신기록입니다! 무려 9초 67 나왔습니다. 9초 67!!! 지난 칼룬의 세계 신기록을 훌쩍 뛰어넘어 버립니다! 세계에서 가장 빠른 사나이. 그 사람이 이제 바로 대한민국의 강수안입니다! 국민 여러분 대한민국 17살 소년 강수안이 올림픽 100m 세계 신기록을 달성하고 금메달을 따냈습니다! 대한민국 육상 역사에 길이 남을 기록입니다!!”
수안은 여유롭게 손을 흔들고 누군가 건네주는 태극기를 받아 흔들었다.
그리고 그 모습은 88 서울올림픽을 보는 모든 국민이 보고 있었다.
전국이 들썩거렸다.
수안이 태극기를 들고 자신이 세운 기록 옆에 서자 카메라 플래시가 파바박 터진다.
그 사진이 국내 모든 일간 신문의 헤드라인이 될 예정이었다.
해외도 다르지 않았다.
* * *
경기장 VIP석에서 지켜보던 대통령도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박수를 아끼지 않았다.
“아하하하하! 하하하하하!”
주변에 있던 해외 주요 관계자들도 축하를 이어 갔다.
“대단합니다. 프레지던트. 축하드립니다.”
“미국과 캐나다를 넘어 금메달이라니 체육계에 많은 투자를 하셨나 봅니다. 하하하.”
“게다가 세계 신기록을 세웠습니다. 축하드립니다. 프레지던트.”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하하하.”
대통령의 입꼬리는 내려올 줄을 몰랐다.
수안의 아비인 강운모 회장도 그 자리 말석에 앉아 있었다.
“각하. 제 아들입니다.”
“아하하하. 뭐라고 했나?”
잠실 올림픽 주경기장이 너무 시끄러웠기에 말소리가 잘 들리지도 않았다.
“100m 육상 강수안 선수가 저 강운모의 맏아들입니다.”
아들 수안이 결승에 올라도 말하지 않다가 우승이 확정되고 나서야 사실을 말하는 강 회장이다. 돌다리를 두들겨 건너지 않고 아예 해체한 다음 다시 철 다리로 지어 건넌다는 강운모다운 처세였다.
“…허! 뭐라? 하하하하. 여기 이 사람이 100m 금메달리스트 강수안의 아버지입니다. 여러분.”
다시 해외 VIP들의 축하 인사가 이어졌다.
한 나라의 대통령에게는 의례적으로 축하할 일이지만, 선수의 아버지라면 정말로 축하받을 일이다.
* * *
수안은 경기 후 인터뷰에서 나라에서 육상을 적극적으로 지원한 결과라며 공을 돌렸다.
아버지가 따로 지시하지 않아도 수안은 책잡힐 말을 하지 않는다.
“강수안 선수. 100m 경기 정말 대단했습니다.”
“나라의 지원이 있었기에 가능한 성과였습니다. 이 자리를 빌려 국내 체육계에 지원한 대한민국 정부와 육상 협회에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그리고 지켜봐 주시고 응원해 주신 국민 여러분이야말로 진짜 금메달리스트입니다. 감사합니다.”
“며칠 뒤 200m 결승 경기가 남았습니다. 강수안 선수 자신은 있습니까?”
“최적의 몸 상태를 유지하고 경기에 임하겠습니다. 국민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겠습니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짧은 인터뷰를 마치고 코치와 둘만 남았다.
“크흡….”
“좋은 날 왜 울어요?”
“좋은 날이니까 울지 인마. 크흑….”
수안은 코치의 어깨를 한쪽 팔로 쓰윽 감았다.
“하나 가지고 만족이 됩니까? 200m 경기는 어쩌시려고?”
“읍! 그래! 아직 하나 더 남았지!”
“남은 경기도 완벽하게 끝내 버릴게. 그때 울어요.”
“하하하하.”
“그렇다고 울다가 웃을 건 또 뭐람.”
“좋으니까 웃지 인마. 하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