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어나다
금용은 몸을 조여 오는 압력에 정신을 차렸다.
‘으윽! 내가… 어째서 살아 있지?’
사고로 주마등이 스쳐 지나가고, 곧 소중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으리라 생각하던 금용이다.
‘사, 살고 싶어! 미카엘라 수녀님과 한 약속을 지켜야 해!’
갑갑함이 가득한 공간에서 느슨한 공간을 본능적으로 찾아낸 남자가 머리를 들이밀었다. 몸에 힘은 없었지만 온몸을 조이는 압력 덕분에 밀려 나가고 있었다.
좁디좁은 공간을 겨우 지나자 차가운 공기가 머리 피부에 느껴졌다.
곧 자신의 힘이 아니라 누군가의 도움으로 완벽하게 빠져나올 수 있었다.
‘윽! 추워! 그래도 살았다! 누군진 몰라도 고맙소. 형씨!’
“응애 응애 응애~~~”
‘…이게 무슨 소리야?’
“응애…. 응애?”
자신의 입에서 나오는 소리였다.
흐릿한 시야가 점차 선명하게 변했다. 그는 주변 상황을 파악하기 시작했다.
초록색 수술 가운을 입고 수술용 마스크를 착용한 사람들은 저마다 라텍스 장갑을 착용하고 있었다. 자신은 그중 한 명의 손에 들려 있었다.
‘수술실? 내가 그사이 병원으로 옮겨졌나? 그런데 아기 울음소리는….’
목이 잘 움직여지지 않았다. 몸도 마찬가지였다.
‘마취가 된 건가? 아니면 전신불수?’
끔찍한 가정이었지만 그 외에는 쉬이 떠오르지 않았다.
다행히 움직이는 눈을 굴리며 주변을 살피던 금용은 반짝이는 의료 도구에 비친 작은 아기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헙!’
“앵!”
“어머. 아이가 보는 것 같아요. 교수님.”
“설마. 신생아는 아직 눈이 흐려서 우릴 볼 수가 없어. 그보다 밖에서 기다리시는 부회장님께 빨리 알려 드려! 아드님이 건강하게 태어나셨다고.”
“네. 교수님.”
간호사 하나가 밖으로 뛰어나갔고, 아기의 시선은 뛰어나가는 간호사의 실룩이는 엉덩이를 뒤쫓았다.
‘이크. 내가 이걸 왜 보고 있는 거야? 지금 이게 문제가 아니잖아!’
여전히 남자로서의 본능이 살아 있었다.
“정말로 보이는 건가?”
의사가 궁금증을 해결하기도 전에 아기는 신생아 검사 절차를 빠르게 진행했다.
금용도 정신을 차리기 힘들었다. 이리저리 옮겨 다니고 손바닥 발바닥 도장을 찍고 나서야 따스한 품으로 옮겨졌다.
“우리 아가… 엄마야.”
‘어, 엄마?’
“으응애?”
금용은 누군가 자신을 이렇게 따스하게 바라볼 수 있다는 걸 이제야 알았다.
‘엄마… 내. 엄마라고?’
글썽이는 두 눈은 오로지 자신만을 담고 있었다.
사랑 가득한 눈 속에는 양수도 마르지 않은 쭈글쭈글한 아기의 얼굴만 가득했다.
“어쩜. 어쩜 이렇게 깜찍하고 사랑스러울 수가.”
엄마는 갓 태어난 자신의 아들이 너무나 예뻐 산고(産苦)마저 잊었다.
“얼른 젖을 물리세요. 사모님.”
“아! 알았어요.”
감격에 절로 눈물이 나올 뻔했는데, 풍만한 산이 눈을 가득 채웠다.
‘어? 어? 이거 내가 함부로 입에 대면 안 되는데. 안 되는…. 너무 배고파….’
덥석.
금용은 자신도 알 수 없는 본능에 눈에 가득 들어온 젖가슴에 얼굴을 묻었다.
그렇게 금용은 죽자마자 다시 태어났다.
나이 마흔아홉의 신생아였다.
* * *
모유를 빨던 금용은 곧 자신의 새로운 이름을 들을 수 있었다.
“여보. 우리 수안이 눈 좀 봐요. 어쩜 이렇게 반짝반짝한지.”
“하하하. 당신을 닮았어.”
“아니에요. 당신을 더 닮았어요. 크면 당신처럼 멋진 남자가 될 거예요.”
“하하하.”
금용의 머리가 빠르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내가… 아기가 되었어!! 죽어서 다시 태어났다고!’
꼬물거리는 손이 포대기 안에서 꽈악 주먹을 쥐고 있었다.
‘이제 나도 아빠 엄마가 있다!’
다른 어떤 것보다 기분 좋은 일이다. 부모님이 죽지 않고 살아 있는 것만으로 지금까지 살아온 인생의 보상을 받은 기분이었다.
“여보 수안이 낳느라 고생 많았어. 아버지께 방금 말씀드렸는데, 아버지도 너무 좋아하시더라.”
“다들 갖는 아이잖아요. 이렇게 건강하게 태어나 줘서 얼마나 고마운지 몰라요. 담당 산부인과 교수님이 이번엔 어려울 것 같다고 했었잖아요.”
태어나기 직전까지 담당 의사는 아이가 너무 약해 마음의 준비를 하라고 했었다. 하지만 태어난 아기는 너무나 건강해서 의사와 부모를 깜짝 놀라게 했다.
“아버지가 당신 이름으로 고려 호텔을 넘겨준다고 하시더라. 출산 선물이라고 하셔.”
“어머! 아버님도 참….”
‘……!!’
젖을 빨며 부모님의 얘기에 귀를 기울이던 금용, 아니 이제 수안이 된 아기는 본능적으로 빨던 모유를 줄줄 흘리는 줄도 몰랐다.
‘호, 호텔?’
차원이 다른 출산 선물이었다.
“차라리 미술관을 주시면 좋을 텐데. 제가 호텔을 어떻게 받아요.”
“미술관은 아버지가 애착을 갖고 계시잖아. 그리고 미술관보다는 호텔이 낫지.”
‘미술관? 호텔?’
그러고 보니 아버지의 얼굴이 왠지 익숙했다.
‘저, 저 사람은…. 강 회장!!’
하나 있던 형을 제치고 강운 그룹을 온전히 이어받는 강 회장이 바로 자신의 아버지였다.
“어휴. 부담스러워요. 제가 서비스 쪽은 잘 모르는데.”
“괜찮아. 어차피 능력 있는 직원들 많으니까 맡겨 두면 될 거야.”
“너무 감사하다고 꼭 전해 주세요.”
“곧 오신다고 했으니까 당신이 직접 말씀드려.”
“응애! 으응애애!!”
수안이 젖을 빨다가 크게 울음을 터트렸다. 아기는 눈물을 보이지 않았고 눈을 크게 뜨고 있었다.
“어머. 우리 아기가 왜 이러지? 어서 의사 선생님 불러와요! 여봇!!!”
“어어! 알았어!”
수안의 울음은 다른 이유가 아니었다.
‘아자!! 아자자자!!’
부모님이 있는 것도 고맙지만 그 부모님이 재벌이라면 더 고마운 일이다.
‘금수저다!’
감사한 일은 이것이 전부가 아니다.
강 회장의 얼굴은 상당히 젊어 보였다.
즉, 과거의 어느 시점이라는 뜻이었다.
‘신이시여 감사합니다!!’
“으응애애앵!!!”
눈을 치켜뜨고 소리치는 아기의 모습에 산모가 기겁했다.
“서, 선생님!!! 빨리 와 보세요!”
* * *
소란이 지나고 병원 직원들이 부산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회장님이 오신다.”
“다들 준비해! 인사 똑바로 하고!”
병원 입구에서 대기하던 병원장과 의사들은 회장이 차 문을 열고 강운 병원 입구로 들어서자 모두 허리를 굽혀 인사했다.
“안녕하십니까. 회장님.”
““안녕하십니까.””
“바로 안내해 주게.”
“예. 회장님.”
병원장은 강 회장 곁에 서서 안내하고 그 뒤를 의사들과 회사 관계자들이 따르고 있었다.
우르르 몰려가는 의사들 행렬에 병원에 내원한 사람들의 시선이 쏠리고 있었다.
수안은 자신을 번쩍 들고 웃고 있는 강 회장을 보고도 울지 않았다. 신기하게 쳐다볼 뿐이다.
“허허허! 울지도 않는구나. 장군감이로다!”
태어난 자신의 손자를 보며 할아버지는 오랜만에 크게 웃음을 터트렸다.
부모가 재벌임을 알고 일으킨 아기의 소란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잠잠해진 다음이다.
아기 수안은 현실에 금방 적응했고, 아기가 된 자신의 상황을 받아들였다.
‘강병호 전 회장. 지금은 정정하시네.’
강병호 전 회장이 그룹을 넘기기까지 많은 시간이 남아 있었다.
“회장님. 이렇게 건강하게 태어날 것을 괜히 마음 졸이셨죠? 죄송해요.”
엄마조차 아기가 건강하게 태어날지 걱정하고 있었다.
“그래도 이리 강건하게 태어났으니 기쁘지 않으냐. 우리 며느리도 그간 마음고생 많았다.”
수안은 병실 달력을 보고야 알 수 있었다.
1972년 본래 자신이 태어났던 때와 같은 해 같은 달에 태어났다.
차후 국내 유수의 대기업이 될 강운 그룹을 물려받을 적자였다.
“호텔은 잘 키워서 나중에 수안이 안사람에게 물려줄게요. 아버님.”
“이미 선물로 넘겨줬으니 어떻게 하건 네 마음이다.”
“몇 년 전에 유산하고 앞으로는 쉽지 않을 줄 알았어요. 흑흑….”
“괜찮다. 괜찮아. 한번 건강하게 낳았으니 앞으로도 순산할 게다. 몸조리 잘하거라.”
몇 년 전 수안의 어미는 기껏 가졌던 아이를 유산했고, 이제야 첫아들을 본 것이었다.
현 회장인 할아버지의 기쁨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런데… 강운 그룹에 문제가 많았는데….’
소시민이었던 본인이 기억나는 것만 해도 몇 가지 있었으니 감춰진 문제도 많을 것이다.
그리고 재계에서 다섯 손가락에 들지도 못하던 강운 그룹이었다. IMF는 이겨냈으나, 큰 한 방이 없었던 것이 문제다.
‘이제 내가 있으니… 강운 그룹의 재계 서열을 1위로 올려야지.’
그때가 되려면 아직 멀었다. 충분히 준비할 시간이 있었다.
* * *
사흘 뒤 수안은 병원에서 벗어나 거대한 집으로 돌아갔고, 이제는 아기부터 다시 살아야 했다.
‘아… 천장이 높구나. 모빌이 빙글빙글 도네.’
혼자 일어서지도 못하는 아기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잘 먹고 잘 싸고 자는 것이 아기가 할 일이었다.
‘환장하겠네.’
준비고 뭐고 우선 일어날 수가 없는데 뭘 한단 말인가.
할 수 있는 것은 생각뿐이었다.
‘정리부터 해 보자. 새로 태어난 것은 확실하고.’
꼬물꼬물 손 싸개 속에서 움직이는 자신의 고사리손과 이불 안의 짧은 다리가 그 증거였다.
‘시기는 본래 내가 태어난 해와 같고.’
멀리 달력을 보니 생일은 약간 달랐지만, 비슷한 시기에 태어났다.
‘하지만… 어째서?! 왜?!’
풀리지 않는 의문이다. 다시 태어난 것도 좋고, 부모님이 멀쩡하게 살아 있는 것도 좋았다.
하지만 어째서 자신이 새로 태어났는지, 그것도 과거에 태어났는지 알 수는 없었다.
그리고 가장 큰 의문은 이것이다.
‘왜 내가 과거의 삶을 고스란히 기억하고 있냐고….’
전생을 기억하는 일은 세상에 이런 일이에나 나올 일이 아닌가 싶다.
‘아기 때는 나처럼 전부 기억할지도….’
지금의 기억이 아주 짧은 시간만 존재하고 사라진다고 생각하니 문득 두려워졌다.
‘안 돼! 기억해야 해! 그래야 강운 그룹을 키울 수 있다고!’
수안의 생각은 전생의 기억을 넘어 자신이 과거로 돌아와 환생한 일에 도달했다.
‘정말로 신이 있나?’
신이라면 가능할 일이었다. 미래와 과거를 마음대로 조절하고 죽은 자신을 새롭게 태어나게 하는 것이 가능한 존재를 떠올려 보니 신을 제외하고 상상하기 힘들었다.
‘아니면 돌아가신 미카엘라 수녀님이 천사가 되신 걸까?’
이유야 어찌 되었건 자신이 과거를 기억하고 아기로 살아 있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었고, 지금부터는 기억을 잃지 않도록 노력해야 했다.
‘기억하자. 과거의 모든 것을 정리해야 해. 매일 기억하면 잊어버리지 않을 거야.’
움직일 수 없는 지금. 당장 해야 할 일을 찾아냈다.
그 뒤로 잠들지 않고 깨어 있는 시간에 항상 과거의 기억을 떠올렸다.
당시엔 악몽 같은 시간들이었지만, 지금은 더없이 소중한 기억이다.
주식 판에서 몇 번이고 자산을 까먹은 경험이 그러했다.
‘IMF, IT버블, 서브프라임 모기지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