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권-프롤로그. 정금용 (1/304)

프롤로그. 정금용

태어나다

송곳

이른 과외

눈높이

입학

육상?

첫 번째

욕심

비밀 경영

고3 그리고 대학

쇼핑

입학 환영식

두 번째 선물

마지막 올림픽

성수대교?

성수 & 삼풍

과격한 계획

결행

부채질

욕심과 욕심

붕괴

스마트

후드

엎어치나 매치나

프롤로그. 정금용

쿵쿵.

“아저씨!! 문 열어 봐요.”

뾰족한 여성의 목소리가 조용한 복도에 울렸다.

고시원 주인아주머니였고, 예정에 없던 갑작스러운 방문이다.

목소리만으로 기분이 좋지 않음을 알 수 있었다.

관처럼 작은 방 안에 누워 있던 남자는 얼른 일어나 문을 열었다.

“안녕하세요. 하하. 오랜만에 뵙-”

“아저씨. 여기 오래 지내신 건 아는데, 이건 아니지.”

남자는 주인아줌마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고 있었다.

“늦어서 죄송합니다. 깁스만 풀면 바로 일을 시작 할 수 있습니다.”

하얀 깁스를 잠시 안타까운 눈으로 흘린 여성은 다시 단호한 말투를 되찾았다.

“그 말도 벌써 삼 개월째인 건 알죠?”

고시원비가 벌써 세 번이나 밀렸다. 이번 달까지 밀리면 넉 달째.

고시원 총무가 아무리 독촉해도 안 되니 결국 주인아줌마를 소환한 것이다.

“조금만 더 시간을 주시면.”

“시간은 드릴 만큼 드렸잖아. 석 달 전엔 팔이 다치더니 두 달 전엔 어깨였지? 이번엔 다리를 다치시고.”

세입자 사정을 봐주는 것도 한계다.

“내가 자선사업가도 아닌데 무작정 고시원 밥만 축내게 할 수는 없잖아. 여기 공무원 시험 준비하는 친구들이 얼마나 많은데… 그 어린 친구들이 매번 밥 다 어디 갔냐고 물어봐.”

남자가 삼시 세끼를 고시원에서 해결하긴 했지만, 한 사람이 먹어 봐야 얼마나 먹겠는가.

남자가 듣기 싫은 소리를 하려고 일부러 하는 말이었다.

“최대한 마련해 보겠습니다. 조금만 더 시간을 주세요.”

“…내가 인심 써서 일주일만 더 기다릴게. 그 뒤엔 바로 방 빼 주셔야 해.”

고시원 주인은 아무래도 밀린 고시원비 받기는 글렀다고 생각했다.

‘그래도 험악한 사람은 아니라 다행이지.’

가끔 무대포로 나오는 고시원 입주자가 있다. 그런 사람은 밀린 고시원비를 요구하면 욕설은 물론이고 가끔 폭력을 행사하기도 한다. 평소에도 고시원에서 소란을 일으키는 일도 잦다. 눈앞에 있는 아저씨는 그런 사람이 아니라 더 강하게 나갈 수 있었다. 만만해서 더 큰 소리를 낼 수 있는 것이다.

“꼭 기억해요! 내가 분명히 경고했어!”

“들어가십시오….”

주인아줌마가 돌아서고 한참 허리를 숙여 인사한 남자는 소리 나지 않게 조용히 문을 닫았다.

좁디좁은 고시원 방에서 한숨도 크게 쉴 수 없었다.

“퓨후….”

공사 현장에서 다쳤지만, 보상금은 어림도 없었다.

인력 중개소에서 치료비라고 몇 푼 쥐여 주긴 했지만, 말 그대로 치료비로 몽땅 들어가고 그 후엔 자신의 돈을 써가며 병원에 다녀야 했다.

다시 연달아 발생한 사고에 일도 뚝 끊기고 쥐꼬리만큼 모아 둔 돈마저 사라졌다.

현재 남자의 통장에 남은 잔액은 5,300원이었다.

“하… 만원도 안 되는구나….”

‘내가 어쩌다 이렇게….’

남자가 처음부터 노가다를 한 것은 아니다.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내고, 힘겹게 공부를 했지만, 직장에 다녔던 시절도 있었다.

.

.

.

남자는 태어날 때부터 고아였다.

부모님의 사정은 나중에 자라고 나서 고아원 원장님에게 들을 수 있었다.

아버지는 자신이 태어나기도 전에 교통사고로 돌아가셨다고 했고, 어머니는 자신을 낳다가 과다출혈로 돌아가셨다고 들었다.

오갈 데 없는 무연고 아기를 받아 줄 곳은 고아원밖에 없었더랬다.

스스로의 과거를 알았지만 남자의 정신은 건강하고 단단했다.

남자는 건강한 사고방식을 갖고 눈앞에 닥친 일을 긍정적으로 생각하곤 했다.

만난 적도 없는 부모님의 존재도 마찬가지였다.

부모님이 자신을 사랑하지 않아 버린 것이 아니었다는 생각이 먼저였다.

‘가난해서 버린 것도 아니고, 사랑하지 않아 버림받은 것도 아니었어. 어쩔 수 없었던 사고야.’

어려서부터 느껴온 깊은 상실감이 눈 녹듯 사라졌다.

‘만약…. 살아계셨으면 날 많이 사랑하셨을 거야. 난 부모님의 사랑을 잔뜩 받으며 행복하게 살았겠지. 아빠 엄마. 나 계속 지켜보고 있었죠? 지금도 거기서 날 사랑하고 있는 거죠? 하늘에서 지켜봐 주세요. 저 혼자 남았지만 잘살아 볼게요. 오래오래 잘살다가 만나러 갈게요.’

고등학교를 졸업하며 고아원에서 나와 일을 시작한 남자는 다른 고아원 친구들과 달리 험한 길로 빠지지 않았다. 공장 공돌이부터 시작해서 열심히 일했고, 야간 전문대에 입학해 전문대 졸업장도 취득했다.

공돌이는 시간이 흘러 한 단계 높은 선임 경력자가 되고 그 후엔 조장이 되었다.

그땐 스스로의 앞날이 빛날 거라 의심치 않았다.

남자의 불행은 이제 시작이었다.

1997년. 이름만 들어도 경기를 일으킬 IMF가 시작됐다.

대기업도 푹푹 나자빠지는 세상에 남자가 다니던 작은 공장도 비켜 가지 못했다.

순식간에 부도 처리된 회사는 퇴직금과 얼마 전부터 밀리던 급여도 지급하지 못했다.

남자의 인생에서 번듯한 직장 생활을 한 것이 이것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아… 내 돈.”

못 받은 급여와 퇴직금보다 더 큰 문제가 있었다.

그동안 뼈 빠지게 모아온 돈.

그 모든 돈이 주식에 들어가 있었다.

“네가 이러면 안 되잖아!”

대운 자동차.

이 거대한 회사에 문제가 생길 거라곤 생각할 수 없었다. 자신이 다니던 공장에서 생산하던 부품도 최종 목적지가 대운 자동차였다. 그만큼 철석같이 믿고 있었고, 자신이 일하고 노력한 만큼 대운 자동차도 성장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괜찮을 거야. 살아날 수 있을 거야. 대마불사라고! 정부가 기어코 살려낼 거야!”

포기는 늦었고, 늦은 만큼 자신의 자산은 완벽하게 사라졌다.

끝까지 대운 자동차가 회생할 것이라 믿다가 주식이 휴짓조각으로 변해 버린 것이다.

“하. 끝이다. 끝이야.”

이제 주식에 매달리고 있기엔 자신의 상황이 녹록지 않았다.

어디 하나 기댈 곳도 없는 천애 고아는 절망에 빠져 허우적거릴 여유가 없었다.

집 안에 웅크려 있다고 해서 보살펴 줄 사람이라곤 없다.

그 뒤로 일용 노동자의 삶이 시작됐다.

이리저리 고시원을 옮겨 다니며 살았다. 하루하루 고된 삶이지만 건설 현장 노가다 일도 버틸 수 있었다. 작은 회사 노동자로 고되게 살아온 날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남자는 주식에 큰 실패를 맛봤지만 그 뒤로도 손을 떼지 못했다. 마치 끊을 수 없는 마약과 같았다. 오히려 주식을 공부하며 다시 소소한 소득을 얻기 시작했다.

점점 자신감이 불어났다. 고된 노동이 아니라 매입과 매도만 하고 생기는 달콤한 소득은 남자를 주식 판으로 깊이 끌어들였다.

노가다로 벌어들인 소득은 고시원비와 최소한의 돈을 제외하고 모두 주식으로 재투자했다.

주식에 나름 재능이 있었는지 남자의 돈은 자꾸만 불어났다.

“우헤헤헤.”

억 단위까지 불어난 자신의 주식 잔고를 보는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그러나 주식은 항상 오르지 않는다. 아무리 실적이 좋은 회사라도 전체적인 시장의 흐름에 편승해 폭락하는 일이 종종 생기곤 했다.

2000년 닷컴 버블 붕괴가 시작됐다.

“안 돼!!”

자신의 돈으로만 했으면 좋았을 것을 폭등 장에 욕심을 낸 것이 문제였다.

신용까지 사용해 매입한 주식은 폭락하며 반대 매매로 털어져 나갔고, 남자의 자산은 급속도로 쪼그라들었다. IMF 이후 벌어온 돈 대부분이 허공으로 날아가 버렸다.

이때 남자는 처음으로 자살을 생각했었다.

왜 주식 투자하는 사람들이 한강으로 가는지 절절히 공감했다.

찰박.

한강 고수부지에서 발을 물에 넣었다가 곧장 뺐다.

“어휴. 물이 너무 차네.”

이대로 죽을 수 없었다.

‘돌아가신 부모님 얼굴을 이렇게 볼 순 없어.’

그럼에도 남은 자산과 일용직으로 벌어들이는 돈이 있었고, 주식 투자는 함부로 끊지 못할 도박과 같았다.

남자는 다시 시작했다. 안정적으로 투자해 수익률은 낮아졌지만, 그래도 이익이 발생한다는 것이 중요했다. 남자의 돈은 다시 불어나기 시작했다.

“그래. 이거지. 이거야!”

하지만 절망은 예고 없이 찾아오는 법이다.

2007년 미국발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가 바로 그것이었다.

“아아….”

그제야 주식에서 완전히 손을 뗄 수 있었다.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항상 기웃거렸지만, 투자할 엄두는 나지 않았다.

‘송충이는 송충이의 삶이 있어. 하지만 난 송충이도 아닌 구더기겠지.’

항상 긍정적이고 자신감에 차 있던 남자의 곧은 마음은 세상에 꺾여 버렸다.

“몸이라도 건강해 다행이다. 땀 흘려 일해서 번 돈이 최고야.”

그의 나이 36살. 남들은 결혼도 하고 아이도 낳았을 나이였지만, 천애 고아에 모아 둔 돈도 없는 그는 여자와 인연을 만들지 못했다.

여자와 자식에 관심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이도 저도 아닌 상태에서 아이를 낳아 자신처럼 불행하게 키우고 싶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분수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었다.

그 후 또 다른 불행이 예고 없이 찾아왔다.

마지막 희망조차 허락할 수 없다는 듯 의사의 선고가 내려진 것이다.

“어휴. 혈압이 너무 높으신데요? 당뇨는 위험한 수준이니 꼭 약을 챙겨 드시고, 안과 병원으로 가셔서 안저검사도 따로 받아 보시죠. 시력 저하가 상당히 진행되신 것 같습니다.”

관절통이 심해져 받아 본 건강 검진에서 고혈압과 당뇨 판정을 받았다.

만성 관절염은 인공 관절이 아니면 치료가 불가능할 지경이었다.

진통제와 혈압약, 당뇨약을 달고 살아야 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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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마저도 약이 떨어진 지 오래지….”

고시원 방에 앉아 있는 49살의 남성은 아파오는 관절을 느끼고 있었다.

지난번 제대로 치료하지 않고 깁스를 풀어 버린 탓에 팔과 어깨도 저릿저릿하다.

거기다 제때 밥을 먹지 않으면 어질어질한 기분도 느낀다. 혈 당조절이 되지 않아 여차하면 위험한 수준으로 당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길을 걷다 쓰러져 응급실에 실려 간 적도 몇 번 있었다.

눈도 얼룩얼룩 검은 것이 어른거리고 침침해졌다. 안저검사를 받지 않았지만 자신의 눈이 곧 실명할 것을 느끼고 있었다. 당뇨 합병증이었다. 낫지 않는 다리도 당뇨와 관련이 있는 것이 분명했다.

남자는 은행에 갔다.

대출이라도 받아 볼 요량이었다.

“죄송합니다. 고객님. 고객님 신용 등급으로 받을 수 있는 대출은 없습니다.”

고정적인 직장도 없고, 원금 회수가 가능할지 판단도 되지 않는 남자에게 대출을 허락할 정도로 은행 문턱이 얕지 않았다.

남자는 절룩거리며 은행에서 걸어 나오다가 주머니에서 웅웅거리는 휴대폰에 얼른 받았다. 혹시 일거리라도 있나 싶었다.

“여보세요.”

-정금용 씨 되시나요?

“아. 네. 맞습니다. 누구시죠?”

-천주교 수원교구에서 연락드렸습니다. 김 미카엘라 수녀님께서 선종하셔서 연락드립니다.

“……!”

고아원에서 어머니처럼 여겼던 수녀님이었다.

-미카엘라 수녀님이 유서에 정금용 씨의 이름과 연락처를 남기셨는데….

그 뒤로 무슨 말을 하건 제대로 귀에 잘 들어오지 않았다.

-…충격은 크시겠지만, 장례 미사에 참석해 주셨으면 해서 연락드렸습니다.

“…네. 네.”

그나마 깔끔한 옷을 찾아 입고, 장례 미사에 참석했다.

“끄윽….”

많은 사람들이 모인 장례 미사가 끝나고 아무도 없는 성당에서 펑펑 울었다.

정금용이 세상을 살면서 정신적으로 의지하던 단 하나뿐인 사람이었다.

“수녀님마저 가시면…. 난 누굴 믿고 살아요.”

인생의 위기가 왔을 때마다 미카엘라 수녀님은 항상 용기를 북돋아 주었다.

덕분에 절망의 구렁텅이에서 빠져나와 삶을 살아갈 수 있었다.

비루한 몸과 가난한 자신의 생을 이어 가는 원동력이었다.

“내가 곧 간다고 했잖아요…. 수녀님 좋아하는 포도 사 가지고 간다고 했잖아요….”

전화로는 찾아가겠다고 약속을 남발했지만 그 약속은 지켜지지 못했다.

지키지 못한 약속이 금용의 죄책감을 더욱 부채질했다.

“미안해요. 수녀님. 다 내 탓이에요. 내가 다 잘못했어요…. 끄윽.”

컴컴해진 다음에서야 성당을 나선 금용은 마음을 다잡았다.

“…수녀님을 위해서라도 나 다시 일어날게요.”

미카엘라 수녀님은 항상 말씀하셨다.

[금용아. 신께서는 항상 우리를 보고 계셔. 나쁜 생각하지 말고 묵묵히 생의 십자가를 지어야 해. 어려운 삶을 살수록 하늘에 많은 보물을 쌓고 있다고 생각하렴. 좋은 날이 오고야 말 거야.]

금용은 며칠 뒤 제3금융권을 찾았다. 어느 은행에서도 대출이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어이쿠. 어서 옵셔.”

허름한 빌딩 3층 구석에 위치한 대부업체는 맞이하는 인물부터가 험상궂은 얼굴이다.

“얼마까지 빌릴 수 있을까요?”

“자아… 어디 봅시다. 지금 뭐 하시는 분인지?”

눈을 가늘게 뜨고 위아래로 금용을 살피는 사채업자도 은행이나 다를 것 없었다.

“공사판에서 일하는 사람입니다.”

“어휴. 그런데 그런 꼴로 일을 할 수나 있소?”

아직 다리 깁스도 풀지 못한 금용이다.

“거의 다 나았습니다. 잠시 돈이 막혀서 빌리려고 온 것뿐입니다.”

“오호라. 나이 마흔아홉이면 아직 쌩쌩하지. 보통 아저씨 같으면 다른 데서도 안 해 준다고.”

“그래서 얼마나 받을 수 있겠습니까?”

“200해 드리지.”

“좋습니다.”

“이자도 안 듣고 오케이야? 나 참. 그러다 못된 놈들에게 걸리면 어쩌려고?”

“…제가 사채는 처음이라….”

“사채가 아니라 번듯한 금융업이지 이 아저씨야. 내가 설명할 테니까 잘 들어. 아저씨.”

업자는 선이자 30% 떼고 입금된다는 것과 월 15%의 이자를 지급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연체로 인한 이자는 두 배로 계산해 30%를 받겠다고 설명했다.

“하아… 그렇게 되면….”

“첫 두 달은 이자 안 내고 되시고, 석 달째부터는 약소하게 30만 원씩 꼬박꼬박 이자를 납부하시면 된다 이거지. 1년 지나면 원금 상환하시고.”

“제가 받을 돈이 그럼 140만 원입니까?”

“정답. 아저씨 계산 빠르네. 흐흐흐.”

금용은 사채업자에게 현금 140만 원을 받아 밀린 고시원비부터 정리했다.

잘 곳은 필요했다. 고시원에서 세 끼 식사까지 보장받으며 지내기 때문에 가장 저렴한 숙소라고 할 수 있었다.

“호호호. 아저씨 내가 아저씨는 믿고 있었다니깐.”

넉 달 치 120만 원의 현금을 받은 고시원 주인아줌마는 한껏 텐션이 올라갔다.

그런 아줌마가 꼴 보기 싫었던 금용은 다시 고시원을 나섰다.

포도 한 송이를 사서 검은 비닐에 담아 수녀님이 묻힌 교구 공동묘지를 찾았다.

“…미안해요. 수녀님. 제가 너무 늦게 왔죠? 그래도 포도 사 온다는 약속은 지켰어요.”

그 후 남은 20만 원이 푹푹 줄어갔지만, 금용은 여전히 일을 찾지 못했다.

무리하게 깁스를 풀고 인력 시장에 나갔지만, 절룩거리는 다리를 숨기긴 힘들었기 때문이다.

“지역 신문이라도 찾아봐야겠네.”

일찍 고시원에서 나와 길거리에서 지역 신문을 찾은 금용은 구인란을 유심히 보며 횡단보도를 건너고 있었다.

멀리서 하얀 차량 한 대가 빠르게 달려오고 있었다.

당뇨 합병증으로 자꾸만 시야가 좁아지는 금용이다.

신문에 정신까지 팔려 있으니 다가오는 차량을 알아차리지 못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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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예! 달려!”

“아싸! 내가 뭐랬어? 나 운전 잘한다니까?”

“크크. 너 잘났다 새꺄. 나중에 레이싱이나 해 봐라!”

아직 고등학생이지만 훔친 신분증으로 공유 차량을 빌린 녀석들이었다.

“어! 조심해!”

“뭐?”

콰앙.

횡단보도를 걷던 금용은 속도를 전혀 줄이지 않은 차량에 치어 수십 미터를 미끄러지며 도로를 가로질렀고, 인도 변에 있던 화단에 처박혔다.

“아흑…. 뭐, 뭐야?”

“사람. 너 사람 쳤어. 새끼야!!”

“어… 어… 어떡하지?”

“…튀자.”

“…사람은 어쩌고….”

“그럼 네가 책임질 거야?”

“아오. 씨발. 저 새낀 왜 여길 지나가?”

“횡단보도잖아. 게다가 파란불이었다고!”

“…빼박이네. 저 사람 살았을까?”

멀리 화단으로 날아간 남자는 미동도 없었다.

“어차피 지금 우리가 가도 저 새끼 못 살려. 벌써 뒈졌을 거야. 그냥 튀어!”

끼이이익. 부우우웅.

앞부분이 심하게 망가진 차량이 빠른 속도로 사고 현장에서 멀어지고 있었다.

.

.

.

“크흐… 윽….”

아직 숨이 붙어 있던 금용에게 지나온 세월이 주르륵 스쳐 지나갔다.

“허억… 헉.”

‘잘살고 싶었는데… 행복하게 살고 싶었는데….’

사지를 전혀 움직일 수 없었다. 미약한 숨에 가슴만 들썩이고 있었다.

‘아버지. 어머니. 보고 싶소. 거기 가면 만날 수 있겠지요? 미카엘라 수녀님 나도 곧….’

“미카엘ㄹ… 하아….”

금용이 수녀님의 세례명을 부르다 다 부르지 못하고 마지막 숨을 토해내며 눈을 감은 순간.

세상의 시간이 멈췄다.

금용을 치고 도망치던 차량도 멀리 멈춰서 있었고, 서울 시내 다른 모든 차량도 그대로 멈춰서 있었다. 차 안에 탑승한 사람들은 물론 집에 있던 사람들과 거리의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시야를 넓혀 대한민국 전부를 살펴도 어디 하나 움직이는 사람이 없었다. 국외의 모든 곳도 상황은 같았다. 더 멀리 보면 지구의 자전이 멈추고 태양을 돌던 지구의 공전도 멈춰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지구를 포함해 온 우주에 모든 별과 은하계가 그대로 멈춰 있음이다.

금용이 숨을 멈춘 것과 동일한 시점에 모든 것이 멈춰 버렸다.

마지막 숨을 내뱉고 멈춰 있던 금용의 곁에서 대화가 오가고 있었다.

세상의 시간이 멈췄음에도 영향을 받지 않는 이들이었다.

[…심각한 오류….]

[…자비를 베풀어….]

[…되돌려야….]

[…사랑받아 마땅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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