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정령 잃어버린 정령사-40화 (40/40)

〈 40화 〉 마탑 방어전(6)

* * *

“마법을, 배우고 싶습니다!”

시작은 작은 사고에서 발생했다. 조그마한 시골 마을 농부의 아들로 태어난 데이비드는 친구들과 놀던 중 실수로 마법을 사용하고 말았다.

물론 자신에게 마법적 재능이 있던 것도 알지 못했다. 애초에 그 시대에서는 마법이라는 개념 자체가 흔하지 않았다. ‘최초의 마법사’ 이외에는 마법사라는 인간이 존재하지 않았으니까.

그래서 그는 몇 년 동안 집 안에 갇혀서만 살았다. 위험한 아이라는 소문이 돌았고, 작은 마을이었기에 그 소문은 너무나도 빨리 퍼져나갔다.

그렇게 그는 작은 집에 갇혀서 책을 읽고, 신문을 읽고, 상상을 하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7살 때부터 그렇게 자라 8년이 지났다.

그렇게 여느 날처럼 신문을 읽던 도중, 최초의 마법사에 대한 기사를 읽었다.

그제야 그는 자신의 재능을 깨달았다. 사람들이 탄압하고, 무시하고, 역겨워해야 할 악마가 아니라 고귀한 마법사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자신은 이런 시골 마을에서 썩을 인재가 아니라는 것에 감격했다.

그 즉시 집을 나간 데이비드는 무작정 최초의 마법사를 찾아다녔다. 여름에는 쪄서 죽을 뻔하고, 겨울에는 얼어서 죽을 뻔했다. 배고파서 죽을 뻔한 적도 있었고, 지쳐서 쓰러졌던 적도 있었다.

하지만 세계를 돌아다니며 스스로 마법을 수련했다. 대상은 야생 동물들, 그리고 그를 공격하던 양아치들.

이미 그는 마법 재능이 없는 일반인들보다 자신이 훨씬 우월하고 훌륭하다고 자부하고 있었다. 그렇게 수소문을 한 지 3년째, 데이비드는 드디어 최초의 마법사를 찾아낼 수 있었다.

“스승님이라고 불러도 되겠습니까!”

다행히도 최초의 마법사는 그를 반겼다. 마법적 재능을 가지고 있는 자가 드물었기에, 최초의 마법사 그 자신의 업적과 성취를 남기고 세상을 떠날 수 있다는 것에 몹시 기뻐했다.

그렇게 그 둘은 세상을 유랑하며 마법을 수련했다. 데이비드는 마법을 배우면서 처음으로 행복이라는 감정을 느꼈다. 여태까지 맞지 않던 옷을 입다가 벗어던지고, 딱 맞던 옷을 입은 느낌이었다.

그러던 중, 스승님이 연구하는 마법을 슬쩍 들여다보았다.

“…끝의 마법이라뇨?”

최초의 마법사, 지금은 그의 스승인 마법사가 끝의 마법이라는 주제로 연구를 시작하고 있었다. 이미 환갑이 넘어간 나이였지만 아직 정정했다.

“…내가 최초의 마법사라고 불리니, 끝을 보고 싶다는 마음도 들더구나. 내 때에 끝내지 못한다면… 네가 이어서 마무리해주지 않겠느냐?”

60살임에도 불구하고 아직 정정하다고는 하지만, 언제 죽어도 이상하지 않은 나이였다. 반면 데이비드는 아직 30살의 나이. 끝없는 지적 호기심에 물든 최초의 마법사는 데이비드가 자신을 이어 끝의 마법을 완성하기를 원했다.

데이비드는 흥분했다. 스승님만 없으면 자신이 최고의 마법사가 될 수 있는데, 심지어 자신이 끝의 마법도 완성한다면 더욱 뛰어난 마법사였다고 인정받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쉽지 않군.”

세상에 존재하는 거의 모든 마법 이론을 정립시킨 최초의 마법사조차 끝의 마법을 완성하는 데는 무리가 있었다. 모든 마법의 궁극에 다다른 그 결말을 맞이하기에는 시간이 부족했다.

하지만, 데이비드는 연구 방식을 바꿨다.

그의 스승님은 지나치게 깐깐했다. 데이비드가 발견해낸 흑마법은 불길하다면서 사용하지 않았고, 사람을 죽이지도 않았다.

노예를 구매해서 인체 실험을 하면 연구가 훨씬 빨라질 텐데, 데이비드는 그의 스승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의 스승인 최초의 마법사와는 달리, 데이비드는 온갖 수단을 이용해서 끝의 마법에 다다르기 위해 노력했다. 어떻게든 궁극의 마법을 완성하려 노력했고, 수십 명을 제물로 엮어 거대한 흑마법을 연성하기도 했다.

빛이 있으면 어둠도 있는 법인데, 궁극에 다다르기 위해서는 빛과 어둠을 전부 섭렵해야 하지 않겠는가.

데이비드가 스승에게 항상 하는 말이지만, 그때마다 최초의 마법사는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 마법진을 그리기 바빴다.

그러던 어느 날, 그의 스승이 데이비드가 흑마법을 시전하려고 사람들을 희생시키는 장면을 목격했다.

“썩 꺼지거라.”

그날 이후로 다시는 그 둘이 만나는 일이 없었다.

데이비드는 세상을 돌아다니며 또 마법 수련을 했다. 스승이 죽은 후에 끝의 마법을 완성한다면 또 최초의 마법사가 남긴 유산을 주워먹었을 뿐이라는 이야기를 들을 게 뻔했다.

그렇기에 그는 자신을 따르는 제자들을 모아 연구에 몰입했다. 듣기로는 최초의 마법사는 홀로 고고히 연구하고 있다는 모양인데, 저래서야 해낼 수 있을 리가 없다.

“허, 꼰대 같은 늙은이.”

데이비드는 한때 자신의 구세주이자, 은인이자, 유일한 행복을 선물했던 그의 스승이 어느새 시대에 뒤처진 늙은이라고 욕을 하고 있었다.

국가 간의 전쟁터에 가서 한쪽 편을 들어 마구 학살하고 그 시체를 바쳐 흑마술을 해 보기도 하고, 그냥 순수하게 마나의 본질만 탐구해 보기도 했다.

그렇게 10년 동안 연구를 계속했지만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했다.

그러던 어느 날, 그의 스승이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처음에는 망설였다. 그를 다시 보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었지만, 최초의 마법사가 이뤄낸 업적들이나, 그가 만들어낸 끝이 어떤 형태일지 조금 궁금하기는 했다.

결국 데이비드는 자신의 호기심을 이기지 못했다. 스승님의 연구실을 찾아갔고, 모든 자료를 조사했다.

데이비드는 최초의 마법사가 이뤄낸 끝의 마법에 가까운 무언가를 이해할 수조차 없었다. 어떠한 생물의 형태라는데, 그가 샘플이라고 쪽지를 붙여 놓은 플라스크는 구멍이 열린 채 텅 비어 있었다.

잘 모르겠지만, 왠지 불안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 생각은 곧 사라졌다. 데이비드 자신이 최초의 마법사의 ‘끝’을 이해하지 못한다는 사실이 그저 두려웠을 뿐이었다.

물론 저것이 진짜 끝의 마법이라는 보장은 없다. 단지 최초의 마법사가 평생을 바쳐 그나마 끝에 가까이 가서 만든 게 저 샘플일 테니까. 데이비드가 그 샘플조차 이해하지 못했다는 사실만이 중요할 뿐이다.

그는 끝까지 자신의 스승을 추월하지 못했다.

절망에 빠진 데이비드는 죽을 때까지 스승의 자료를 모으고, 더 완벽하게 엮어 한곳에 정리했다. 그리고 좋은 장소를 찾아 그곳에 이 자료를 보관해 둘 탑을 만들었다.

그렇게 몇 년이 지나자 최초의 마법사의 모든 마법적 성취가 담겨 있는 마법사의 탑을 향하자는 이야기가 널리 퍼졌고, 마법적 재능을 지닌 자들이 하나둘씩 마탑으로 모였다.

그것이 마탑의 시작이었다.

마탑의 설립자가 최초의 마법사의 제자라는 소문도 돌았다. 그래서 그 최초의 마법사의 직계 제자라면 얼마나 대단한 마법사일지, 그리고 그에게 가르침을 얻을 수 있는 건지 기대하며 젊은 마법사들은 마탑으로 향했다.

하지만 그곳은 일종의 학교가 될 거라는 예상과 달리, 마법사들끼리의 토론장이자 협력 장소가 되었다. 최초의 마법사의 제자는 어딘가로 떠나 있었기 때문이다.

데이비드는 멀리, 아주 멀리 떠났다. 아무도 그를 찾을 수 없는 곳으로.

그리고 죽을 때까지 자신의 스승이 남긴 한 장의 문서, 끝의 마법이 생명체라는 사실에 몰입해 연구를 했다. 그의 스승의 무덤이 파헤쳐졌다는 이야기 따위는 이미 그에게 중요치 않았다.

그렇게 또 몇십 년이 지났고, 데이비드도 이곳저곳 몸이 아파가는 나이가 되었다. 이제 얼마의 세월이 남았는지 알 것만 같았다.

“나는 곧 죽는다.”

하지만, 아직 끝의 마법의 ㄲ자도 찾아내지 못했다. 결국, 결국 그는 구시대의 유산으로 남고 자신의 후배들이 미래에 도달하는 것인가.

부러웠다. 질투 났다. 미래에 마법이 잘 발달된 시대에 태어날 그 재능 넘치는 마법사들이 부러웠다.

“나는… 재능이 있는데… 미래에는 나보다 재능이 없는 놈들이… 교육을 통해 나보다 훨씬 뛰어난 마법사가 된다고…?”

받아들일 수 없었다. 싫다. 혐오스럽다. 그런 하찮은 벌레들이, 사실상 평범한 인간과 다를 것 없는 재능 없는 자들이…!

쿨럭, 데이비드는 피를 토했다. 인간의 몸은 왜 이리 나약한 것일까. 왜 고작해야 몇십 년밖에 살지 못한다는 말인가.

데이비드는 저주했다. 이 세계를, 인간을, 마법을, 최초의 마법사를, 끝의 마법을, 그리고 무엇보다, 미래의 마법사들을 저주했다.

그리고 그때 깨달았다. 죽은 자를 부활시키는 흑마법을 만들고, 그 마법을 다루는 자를 네크로맨서라고 칭했다.

“나는, 죽어도 죽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자신에게 그 마법을 시전했다.

“미래의 마법사들이 부럽다면… 그들이 태어날 시대까지 살아가면 된다…. 나는 반드시… 끝의 마법을 완성시키겠다.”

거기서 데이비드 루윈은 죽고,

흑마법사, 리치가 태어났다.

***

리치는 조금씩, 조금씩 사라져 가고 있었다.

뼛가루가 바스러지고, 로브가 재가 되어 흩날린다.

‘랜서스 데이몬드… 끝까지…!’

마법 보호막을 전개할 그 찰나를 놓쳤다. 여기서 길고 길었던 2,000년간의 세월이 끝나는가? 리치는 믿을 수 없었다.

연결되어 있었다.

아직, 그의 수하들이 남아 있었다. 그리고 그들과 연결되어 있었다. 무명이라는 검사가 언제 오는지는 모르겠지만, 조금만. 조금만 시간을 벌면…

수하들에게 전해준 마나가 다시 돌아오고 있었다. 그 마나가 리치의 몸을 구성하고, 다시 뼈를 만들어낸다.

“잠깐만, 리치가 다시 부활하고 있어!”

“막아야 해, 무명이 오기 전에 순간 이동을 시전할 마나를 회복하면… 또 놓친다고? 말도 안 돼!”

귀찮은 정령사와 마법사의 목소리가 들린다. 중요치 않다. 이제 절반, 조금만 더 채우면 끝이다. 그들의 마나를 점점 빨아들인다.

‘내가 만든 군대니, 나에게 복종해야 할 것이다.’

시간을, 부디 나에게 조금의 시간을 더…!

퍼억, 하는 소리와 함께 주먹이 리치의 갈비뼈에 작렬했다. 이 정도로 죽지는 않는다. 정령사의 힘도 많이 빠져 있다. 계속, 계속 흡수한다. 마나를, 시간을, 생명을….

“시체 뚫는 작살.”

마나로 된 창이 리치의 뼈를 뚫었다.

‘……어라?’

마나가 흡수되지 않는다. 몸이 무너진다. 파괴된다. 진정한 죽음이, 2,000년 만에 다가온다. 자신을 죽일 수 있는 검사가 다가오고 있다.

리치의 텅 빈 공허와 같은 눈이 자신을 꿰뚫은 창을 던진 남자를 직시한다. 그래, 자신이 그토록 증오해 마지않던 미래의 마법사다.

“크리스… 베네피쿠스….”

하지만, 알 수 있었다. 그 마나의 질을, 그 마법의 수준을, 그의 마법적 재능을, 누구보다 잘 아는 건 세상에 단 한 명뿐. 리치, 아니 데이비드 루윈뿐일 것이다. 어쩌면 저 남자가 끝의 마법을 이뤄낼 수도….

‘나는 재능이 없었다.’

깨닫고 말았다.

리치는 천천히 눈을 감았다. 나이가 조금 있어 보이는 남자의 중후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마 그 무명이라는 검사겠지.

“그래도 너의 불멸에는 목적이 있었구나.”

라이프 베슬과 연결된 선이 어이없을 만큼 쉽게 잘린다.

“내게는, 아무런 목적이 없다.”

2,000년간의 삶이 사라진다.

“…리치, 네가 부럽구나.”

데이비드 루윈은 죽었다.

***

“…네놈은 누구냐?”

“나 역시 마법사다. 하지만, 너와는 차원이 다른 수준의 마법사지.”

리치는 갑자기 나타난 은발 남성이 반갑지는 않았다. 갑작스레 나타나서 그의 언데드 군단을 몰살하고 결국 리치의 앞에 도달한 저 남자는, 리치인 본인도 이해할 수 없을 만큼의 악(?)이 깃들어 있었다.

“흠, 별로 마음에 들지 않는 태도군.”

다음 순간, 리치는 꼼짝 못한 채 바닥에 엎드려져 있었다.

굴욕이었다. 절망이었다. 공포스러웠다.

최초의 마법사가 죽은 지금, 대체 저 괴물은 누구인데 리치 자신을 마법으로 압도한다는 말인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내 수하가 되어 복종한다면, ‘끝의 마법’에 이르는 방법을 알려주지.”

‘이토록 강한 자라면, 끝의 마법에 나보다 더 가까이 도달했겠지. 어디까지나 이용이다. 언젠가, 반드시 이 복수를…!’

그 은발 남자는 몇백 년 후 마왕이라는 이름으로 불렸다. 말 없는 마족 검사 검귀라는 녀석도 있었고, 사악한 흑룡도 있었고, 변변찮은 인간 주제에 마왕의 총애를 받는 여자아이도 있었다.

하지만 리치에게는 그들 전부가 관심 밖이었다. 리치는 오로지 마왕이 알려주겠다는 끝의 마법으로 가는 방법을 알기 위해 그를 섬길 뿐이었다.

하지만 1,000년을 넘게 그를 따랐는데도 불구하고, 마왕은 그에게 끝의 마법을 알려주지 않았다.

“이번, 마탑 점령을 성공시킨다면 알려주겠다.”

자신이 만들었던 탑을 점령하라니, 웃기지도 않는 명령이었다. 게다가 마법 보호막을 둘둘 두른 리치가 이런 탑 점령에 실패할 리가 없다.

‘드디어 마왕이 나에게 끝의 마법으로 가는 길을 알려 주려 하는구나.’

오로지 그것만을 위해 2,000년에 가까운 세월을 살아온 리치다.

알려준다면 자존심이고, 뭐고 상관없다. 오로지 끝의 마법만을 위해 살아갈 뿐.

마왕의 힘은 인간, 리치, 드래곤, 마족. 그 무엇이든 초월한 존재였다. 어쩌면 신이거나 악마가 아닐까 생각했던 리치는 그가 끝의 마법으로 가는 길을 알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러나, 그는 마탑 점령에 실패했다.

“…리치, 네가 부럽구나.”

죽기 직전, 머릿속에 마왕의 모든 행적이 스쳐 지나갔다. 이 세계의 두 번째 마법사인 리치는 죽기 직전에야 간신히 깨달을 수 있었다. 반드시 이 사실을 크리스 베네피쿠스에게 전달해야 한다.

몸이 사라지고 있는 반면, 정신은 조금씩 맑아졌다.

새하얀 순백만이 보였다. 데이비드는 한 가지 소원만을 빌었다.

…스승님을 다시 만나게 해 달라고.

하지만, 그 자신도 역시 알고 있었다.

수많은 사람을 죽인 자신이 지옥에 떨어질 거라는 걸.

“…마왕이, 끝의 마법 그 자체다.”

데이비드 루윈은 마지막으로 모든 힘을 짜내서 크리스에게 텔레파시를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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