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1화 〉 마탑으로(1)
* * *
“그럼, 물러나 보겠습니다.”
국왕과의 대화를 마친 후 나는 알현실 밖으로 나왔다.
국왕님의 말대로라면, 숨겨진 마탑으로 향하기 위해서는 마법사 크리스 베네피쿠스의 안내를 받아야 한다.
그 기분 나쁜 녀석과 여정을 함께해야 한다니, 썩 유쾌하지는 않다.
“아, 나오셨군요.”
“아직 계셨군요.”
크리스는 내가 알현실에서 나오기까지 기다렸던 모양이다. 아마 그는 그 자신이 나의 안내인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을 테고, 처음부터 내가 누구인지도 알고 있었을 것이다.
“후우, 그쪽은 처음부터 제가 누구인지 알고 있었겠네요?”
“네, 뭐. 국왕님께서 정령사 로헨을 안내하라고 하시던데요.”
그래도 그와 나는 협력 관계이고, 표면상으로는 예의를 지켜야 할 필요가 있었다. 나는 근본도 없는 평민 출신이라 잘 모르겠지만, 마법사들은 대부분 뛰어난 집안의 자제들이기 때문이다.
마법서에, 마법 도구들에, 괜찮은 스승 구해서 마법 배우는 데만 해도 돈이 말도 안 되게 들어간다고 들었다.
그 결과, 아무리 마법에 엄청난 재능이 있더라도 돈이 없는 평민이면 현실의 벽에 막혀 금세 마법사의 꿈을 접게 된다.
‘나도 많이 변했네.’
처음에는 상대가 귀족이든 왕족이든 떽떽 반말하며 건방지게 굴었는데, 용사 파티와 함께하며 어느 정도의 예의범절은 몸에 익히게 됐다.
동료들이 친절히 가르쳐 준 것도 있지만, 나와 같은 일반 평민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웬만한 귀족보다 훨씬 더 기품있던 용사 에릭을 동경한 결과, 변하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그럼 지금 당장 동반 순간이동을 해서 마탑으로 가시죠.”
“네? 지금 바로는 좀….”
아직 내 동료들, 줄리아와 이그니스를 만나 합류해야 했다. 또 고향인 벨크 마을에 들러 무명 스승님도 만나 뵈어야 하고.
“아, 동료들이 있으신 겁니까.”
하긴, 아마 국왕은 내가 혼자라고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이그니스는 정령이니까 생각조차 하지 않고 있을 테고, 줄리아와 무명의 존재는 아예 모르니까.
‘무명은 알고 있으려나?’
그 정도 힘을 지닌 인간이 세간에 소문 하나 없이 꽁꽁 베일에 싸여 있다니, 왕실에서 비밀로 하는 건 아닐까 갑자기 의심이 들었다.
“네. 동료 두 명은 근처에 있지만, 나머지 한 명은 좀 멀리 있어서…아무래도 어느 정도 시간이 걸릴 것 같네요.”
“로헨 님의 사정이라면 이해합니다. 그래도 부디 빠른 합류를. 마탑은 진정으로 커다란 위기에 처해 있습니다.”
역시 귀족인가. 그의 말투에는 귀티가 묻어 나왔다.
그래도 처음 보는 여자의 엉덩이를 만지는 귀족이라니, 딱 봐도 귀족가의 망나니 같은 녀석이 어쩌다가 마탑에 들어간 운 좋은 경우겠지.
“표정이…기분 안 좋은 일이라도 있으신지요. 아까 일로 마음이 상하셨다면 정말 죄송합니다.”
“아, 아뇨. 그런 게 아니라… 곧 동료들과 만나 마탑으로 향하겠습니다.”
“으음, 그렇다면 로헨 님이 동료분들과 만나기까지 제가 동행해야 할까요. 한 자릿수의 인원이라면 동반 순간이동이 가능하니….”
시간이 더 필요하다는 내 말을 들은 크리스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혹시 무슨 일이라도?”
“제가 나름 마탑의 중요 인물인지라, 오래 빠져 있을수록 여러 가지 문제가 생기거든요.”
“아, 네….”
건방 떠는 것 같기도 하고 자만심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저렇게 어린 나이에 마탑에서 애지중지하는 중요 인물이 됐다니. 어쩌면 살짝 대단한 인물일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일단 돌아가시고, 며칠 뒤 벨크 마을에 들러 동료들과 합류하는데, 그곳으로 오셔서 저희를 데리고 다시 가면 되지 않을까요?”
“벨크 마을이라면 로헨 님의 고향이군요. 알겠습니다.”
“어, 알고 계시네요?”
그런데 생각해 보니, 크리스는 지금 여자로 변한 내가 정령사 로헨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지 않나? 내 안내를 맡은 사람이니 아마 국왕님에게 내 사정에 대해서는 들었을 거라 생각된다.
그럼 내가 원래 남자라는 사실을 아는 것 아닌가?
그런데도 내 엉덩이를 만진 거야?
“그럼 제가 원래 남자였던 것도 알고 계시겠네요?”
“네. 뭐….”
크리스가 머리를 긁적였다.
“근데, 그런 짓을…?”
정말 어이가 없었다. 여자라고 생각하고 했다는 것도 용서 못 하지만, 남자였다는 걸 알면서도…수치스럽다.
“저는 그런 걸 신경 쓰지 않습니다.”
크리스의 표정이 진지해졌다.
“로헨 님이 남자였을 시절은 전 아예 모릅니다. 어떻게 생겼는지도 모르고, 남자였는지도 모릅니다. 사실 아예 몰랐습니다. 마탑 안에서만 살아서 바깥일은 잘 몰랐거든요.”
“…….”
“로헨 님의 고향 얘기도 국왕님한테 들었죠. 그러므로, 제가 아는 건 여성 정령사 로헨밖에 없다는 겁니다!”
“미쳤나요…?”
“즉, 저는 남성이 아닌 여성의 신체를 어루만진 겁니다.”
왜 이러는지 모를 만큼 열렬하게 선언하는 크리스의 모습에 괜히 내 얼굴이 뜨거워졌다.
“제발 그만둬주세요….”
“아, 잠시 흥분했습니다.”
나는 가만히 서 있는 크리스를 남겨두고 그 자리에서 종종걸음으로 도망쳤다. 나중에 벨크 마을로 오라는 전언을 남겨 뒀으니 괜찮겠지.
“귀족 중에는 변태가 많다던데, 정말이었네….”
도망치는 내 뒷모습을 바라보는 뜨거운 시선이 느껴져서, 나는 걸음 속도를 더 올려서 최대한 빨리 달아났다.
뒤를 돌아보지 않았는데도 그의 시선이 내 몸의 어느 부분을 향하고 있는지 알 것만 같았다.
‘보지 마, 좀!’
* * *
“마왕 개새끼….”
“괜찮으십니까?”
크리스에게서 벗어난 나는 간신히 데이브와 마주했고, 그와 같이 용사님이 잠들어 있는 방으로 가고 있었다.
“여자로 만든 게 마왕의 저주인지는 모르겠지만, 만약 맞다면…반드시 죽여버릴 거야. 반드시….”
신전에서 아니라고 했으니 엄밀히는 저주가 아니지만, 처음에는 여자로 변하는 저주 같은 게 의미가 있나 싶었다.
그냥 장난삼아 쓴 술수가 아닌가 싶을 정도로 내게는 별 영향이 없었다.
초반에는 아예 다른 성별의 신체에 적응하는 데 시간이 조금 걸렸지만, 그걸 고려하더라도 그리 효과적인 저주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런데, 내가 남자였는지 모르는 상태로 친하게 지내던 남자애가 갑자기 고백해오고, 모르는 사람이 전에는 남자였더라도 지금은 여자니까 상관없다면서 몸을 만져대고….
특히 방금은 정신적인 충격이 컸다.
“난 남자인데….”
“자, 도착했습니다. 들어가시죠.”
혼자 혼란에 빠져 중얼대고 있더니 곧 용사님의 병실에 도착했다.
“하나도 변하지 않았네.”
병실이라고는 하지만 사실상 침실에 가까웠다.
용사, 에릭은 세상일 따위는 전혀 모른다는 듯이 태평하게 잠만 자고 있었다.
“부럽네요. 에릭. 편하게 누워 있고. 전 바빠 죽겠는데 말이죠.”
장난식으로 그를 원망했지만, 약간은 진심도 섞여 있었다.
“그러니까 그만…깨어나 주시면 안 되나요.”
세상 전부가 용사를 바라고 있다. 물론 내가 뛰어나다고 칭송받기는 하지만, 여신에게 선택받아 성검을 다루는 용사의 그 상징성을 대체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모든 사람들이 다 용사라면 어떻게든 해 줄 거야, 용사라면 무언가 하겠지, 용사가 우리를 구해줄 거야, 라고 믿고 있다.
물론 나도 그 사람들 중 한 명이다.
뭐, 그런 사람들이 대부분이니 용사 파티가 졌다는 사실을 대중에게 알리지 않은 국왕님의 판단은 매우 좋았다고 생각한다.
희망을 잃은 인간이라는 건 생각보다 쉽게 무너지기 마련이니.
“이렇게 잠만 자고 있으면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도 모르겠네요. 그렇죠?”
대답이 없는 용사와 그 앞에서 즐거운 듯이 이야기를 하는 나, 그리고 그런 나와 용사를 안쓰럽게 바라보는 데이브.
“저번에 궁궐을 떠나고 마을로 돌아갔거든요. 은퇴하려고 했는데, 거기서 이상할 정도로 강한 남자를 만나 스승님으로 삼고….”
데이브가 보기에는 나와 용사, 둘 다 너무 불쌍해 보이겠지.
“아, 맞아. 최근에 친해진 남자 동생이 위험에 빠져서 구해주니까 고백도 받았다니까요. …살다 살다 남자한테 고백받을 줄이야.”
그럴 만하다. 고아 출신에, 입양되어 자랐고, 용사 파티에 합류하고 나니 동료들 중 한 명은 죽고, 한 명은 타락하고, 한 명은 혼수상태. 그게 내 인생사다.
그런 상황에서 혼자 멀쩡하게 살아남은 내가 받는 스트레스와 죄책감을 걱정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리고 엘피디언 아카데미라는 곳에 들러서 여왕님도 뵙고, 루시엘도 오랜만에 만났어요. 리안나라는 애도 만나고…맞아. 마수 조련사가 갑자기 공격해 오더라고요?”
하지만 내 사정도 용사 에릭에 비하면 양반이었다. 용사라는 자리를 원하지도 않았는데 강제로 용사로 선택되어 세계를 위해 목숨을 바치게 되어버린 평범한 시골 소년.
“그래서 뭐, 가볍게 정리하고 제 노예로 삼아버렸죠. 나쁜 녀석이긴 한데 그래도 도움이 될 것 같아서요. 그리고 저 사실 저주 때문에 정령들을 다 잃어버렸는데, 이그니스랑 재회도 했고….”
그 시골 소년은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이고 세계를 위해 짐을 짊어졌다. 결국 패배하고 말았지만, 그 어떤 용사보다 더 뛰어난 모습을 보여줬다.
1000년간 이어져 온 지옥 같은 전쟁, 수십 명의 용사들 중 여태까지 마왕에게 직접 성검을 휘두른 용사는 거의 없었다.
대부분 다 그 전에 죽었거나, 마왕에게 저항도 못 한 채 여신의 품으로 돌아가고 말았으니까.
“그리고 왕궁에 돌아오니 이번엔 마탑을 지키라네요. 또 아까는 제 엉, 아니. 조금 이상한 놈을 만났는데 그 마법사가 제 안내자라고 하는데 별로 기껍지는 않더라고요. 또 거기 제 다른 정령들이 있다는 말도 들어서 가 보긴 할 텐데….”
그렇게 나의 여태까지의 여정을 전부 털어놓고 나니, 막 왕궁에 도착했을 때가 낮이었는데 벌써 해가 저물어 갔다.
그동안 데이브는 내 뒤에서 긴 이야기를 묵묵히 듣고만 있었다.
“이제 돌아가자.”
이그니스와 리안나도 도대체 내가 언제 돌아오나, 하면서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돌아가면 사과부터 해야지.
철컥, 철컥.
데이브와 나는 나란히 왕궁 복도를 걸었다. 데이브의 갑옷이 철컥대는 소리 말고는 아무런 소리도 나지 않을 만큼 고요했다.
그나저나 저런 갑옷을 입고 쭉 기다렸던 건가. 대단하네.
“이제 마탑으로 가시는 겁니까.”
“아…응. 그렇게 됐어. 리치가 마탑을 노리고 있대.”
“늘 귀찮은 일에 엮이시는군요. 무운을 빕니다. 로헨 님.”
나를 존경하면서도, 동생으로 생각해 늘 챙겨 주는 데이브.
그 마음이 고마웠다.
“그래, 데이브. 다음에 또 용사님 방 갈 수 있게 허가 좀 부탁해.”
“하하, 물론이죠. 로헨 님에게 그 정도야.”
작별 인사를 마친 나는 왕궁을 나와 이그니스와 줄리아가 기다리는 곳으로 향했다.
이제 그곳에서 마차를 타고 벨크 마을로 향한 뒤, 무명을 만난다.
그리고 떠나기 전 했던 질문, 당신은 마왕을 처치할 각오가 되어 있느냐는 질문의 답을 받으면 된다.
마침내 때가 왔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