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7화 〉 마수 조련사(6)
* * *
“내가 마왕님을 미워한다니, 그게 무슨 해괴망측한….”
“네 가족은 기억나냐?”
“가족……?”
마수 조련사의 눈빛이 흔들렸다.
“네 부모님이라거나, 형제자매들.”
“어릴 때부터 마왕님한테 키워져서, 가족 같은건… 애초에 나를 버린 가족 따위 필요 없거든.”
“너를 버렸다는 건 어떻게 알아?”
“마왕님이 그렇게 말씀하셨으니까!”
나는 그녀를 한심하게 쳐다봤다.
“마왕의 말은 어떻게 믿는데.”
“…응?”
“마왕의 말이라면 의심도 하지 않는 거야? 난 아무리 봐도 마왕이 네 가족에게 해를 끼치고 너를 데려온 것 같은데.”
“그럴 리가, 네가 그걸 어떻게 안다는 거야?”
“모르지. 근데, 버렸다고 하더라도 이름조차 주지 않았다는 건 말도 안 되지 않아? 네 능력을 안 후에 데려갔을 테니 갓난아이 때 데려간 것도 아닐 텐데.”
생전 한번도 생각해보지 않았던 가족이라는 주제에 많이 당황한 듯했다.
“어떻게 회유해도 난 마왕님을 배신할 생각은 없어. 대신….”
“대신?”
“짜증 나는 마왕군 간부 녀석들을 해치운다면 몰라도.”
마왕군 간부?
내가 아는 마왕군 간부라면…
지금 내 눈앞에 있는 인간 여성, 마수 조련사.
검에 미친 마족 검사, 검귀.
마법의 본질을 찾는다며 생명체를 학살하는 흑마법사, 리치.
오만불손한 검은색 도마뱀, 흑룡.
이렇게 3명과 1마리 정도가 있었다.
흑룡은 날개 두 장을 찢어버린 후 봉인했었고, 리치는 몇 번 죽였었지만, 그 망할 놈의 라이프 베슬 덕분에 죽여도 죽지 않는 놈이었다.
검귀, 이 자식의 발을 왕국 병사들이 묶어 놓은 사이에 마왕성에 쳐들어가 마왕을 잡으려고 시도한 거라, 검귀와 싸워서 이겨 본 적도 사실상 없다.
마수 조련사는 죽인 줄 알았는데 도플갱어였다고 하고.
이렇게 말하니 실질적으로 마왕 간부라고는 한 놈도 죽이지 못한 채 마왕에게 도전한 건가?
‘살짝 혼란스럽네.’
“근데 네 동료들인 마왕군 간부들은 왜?”
“동료라니, 그 개자식들!”
“……?”
이상하게도, 마수 조련사는 마왕군 간부 얘기를 시작하니 나를 향해 발산하는 것보다 더 강한 적대심을 내뿜고 있었다.
“한 놈은 마족 검사라고 인간 따위는 완전 개무시하고, 리치 녀석은 내가 실패한 임무에 대신 발령받고 나를 비웃고, 드, 드래곤 새끼가 제일 심해!”
“어어, 그랬구나….”
“그 도마뱀한테… 쓸모없는 인간, 마왕군 간부 중 최약체, 마왕의 유일한 실수 등등 내가 얼마나 심한 말을 들어왔는지 알아?!”
“모르지, 많이 힘들었겠구나….”
“근데 마왕님은 날 챙겨주지도 않고, 밑에 마족 부하 놈들도 인간이라고 우습게 보고, 흐윽…….”
아무래도 쌓인 게 많았던 모양이다.
마왕 말고 이런 쪽으로.
“우으, 나도 알고 있어. 이번에 돌아가면 정말 마왕님께 살해당한다는 걸.”
마수 조련사가 한참 울더니 평정심을 되찾았다.
“그럼, 내 제안에 동의하는 거야?”
“네 동료가 되라는 거야? 웃기지도 않아.”
“어쩌자는 건데….”
“마왕님을 죽이는 건, 훌쩍. 아직 잘 모르겠어. 대신 다른 간부들을 죽이는 거라면 기꺼이 협력할게.”
마침내, 허가를 얻어냈다.
“그럼 이미 네 작전이 실패한 건 알 테고, 그만 왕궁에 침입한 마수들을 뒤로 물려.”
“잠깐만, 이미 명령해 놓은 걸 취소하려면 아이들 가까이로 가야 해.”
마수들을 아이들이라 부르는 건가. 그 끔찍한 짐승들을 아이라고 부를 수가 있구나.
“노움(?).”
땅의 정령을 불러 여태까지 머리 밑으로는 땅속에 갇혀 있던 마수 조련사를 해방해 주었다.
“으으, 더러워졌네.”
“근데 항상 마수 조련사, 마수 조련사, 라고 부르는 것도 귀찮은데 좀 짧게 부르면 안 되냐?”
“뭐, 줄이면 마조?”
“…….”
그녀의 이름으로 뭐가 좋을까 잠시 생각했다.
“그건 좀 그렇고, 줄리아 어때? 아니면 줄리?”
“풉, 내 이름 붙여준 거야?”
“어, 불만 있냐?”
“없어~ 라헬 님!”
“사람들 없을 땐 로헨으로 불러라.”
마수 조련사, 아니, 줄리아가 환하게 웃었다.
“이런 느낌도 나쁘지 않네.”
* * *
“거의 다 왔다.”
한쪽 손으로는 움직일 수 없다고 징징대는 줄리아를 잡은 채, 실프의 바람에 타서 왕궁 쪽으로 날아갔다.
‘저기 어딘가 밑에 이그니스도 있을 텐데.’
이그니스와 나눈 대화에 의하면 그녀는 지금 거미 마수, 아리아드네와 전투 중일 것이다. 저쪽에도 가까이 가서 마수를 진정시켜야 하는데.
《거미는 잡았다. 계약자는 바로 왕궁 쪽으로 가서 여왕을 구하도록.》
걱정 따위는 필요 없다는 듯이 내 머릿속으로 말을 걸어오는 이그니스. 역시 믿음직해…….
“저기 보이네.”
멀리서도 보일 만큼 거대한 크기의 고래가 허공을 부유하고 있었다.
“잠시 말 걸지 말아봐.”
줄리아가 눈을 감고 정신 집중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놀랍게도 계속해서 지상에 있는 엘프들을 호시탐탐 노리고 있던 모비 딕이 저 멀리 떠나갔다.
“어디로 보낸 거야?”
“그냥 하늘 위로. 어디 이상한 데 뒀다가 맞고 다니면 안 돼.”
누군가에게 맞고 다닐 것 같지는 않지만, 일단은 긍정해 주었다.
“어, 저기! 케르베로스도!”
“아으, 기다려. 좀!”
줄리아가 다시 눈을 감으니, 케르베로스도 끼잉, 낑, 하는 소리를 내며 뒤로 물러났다. 아마 눈을 감으면 저 마수들과 대화를 할 수 있는 건가 보다.
“후, 다 끝난 건가…. 다른 곳을 공격한 마수들은?”
“다 죽어버렸어.”
“응?”
“네 대단한 엘프 정령사 분들이 하급 마물들과 마수들은 다 해치워 주셨다고~”
아무래도 다른 곳들도 무사한 모양이다.
“저기 루시엘, 리안나, 여왕님, 다 모여 있네. 저기 착륙한다?”
“어? 어어? 나 그래도 지금 제일 나쁜 놈인 거 아냐?”
“알고 있네. 알면 사과라도 해.”
물론 그녀는 엘프 왕국에 심각한 피해를 입혔다.
내가 아는 것만 해도 기숙사에 잠들어 있던 학생들이나 일반 시민들 또한 위험에 빠질 뻔했고, 실제로 왕궁의 붕괴로 인해 기사들 몇 명이 깔려 죽기도 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내가 마수 조련사를 내 편으로 끌어들인 건, 철저한 효용 상의 문제였다.
마수를 조련하는 힘을 인간이 가지게 된다면, 그녀의 ‘아이들’이 죽인 수보다 훨씬 더 많은 수를 살릴 수 있을 것이 분명하다.
물론 처벌은 받아야겠지만, 잘못했으니까 죽어! 라고 하기에는 이 세계는 그렇게 감정만으로 돌아가지 않는다.
그래도 동료라고 하긴 좀 그렇지. 대신 노예로 삼는다.
탁.
한 손으로 줄리아를 든 채로 가볍게 바닥에 착지했다.
“괜찮아요, 다들?”
넋이 빠진 듯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는 루시엘과 리안나, 그리고 누군지 잘 기억 안 나는 남자 엘프를 보며 씨익 웃어 보였다.
* * *
“로, 아니, 라헬 님……!”
가장 먼저 나를 반겨 주는 루시엘.
“흐윽, 흑! 무서웠어요….”
리안나는 옆에 선생님 같아 보이는 분이 있는데 나를 보고 안심됐다고 하면서 눈물을 흘린다.
난 고작 학생 신분인걸? 선생님이 속상해하시겠어, 리안나.
그리고 그 옆, 쓰러진 채로 기사님께 안겨 있는 여왕님, 클라우디아 엘피디아.
“운디네(?).”
물론 치유사 데이지 플로스터처럼 치유 전문인 물의 상급 정령사 정도는 아니지만, 어떻게 간단한 응급 처치를 할 정도는 됐다.
“큰 상처는 없고, 단지 정령술로 인한 피로가 누적된 모양이네요.”
나는 여왕님의 증상을 진단한 뒤, 다른 엘프들을 진정시켜 주었다.
“근데 라헬 님, 거기 붙잡고 계신 분은…?”
“아, 이번 일의 원흉. 잡아냈어.”
“너, 너어! 네 편 들어주면 같이 마왕군 간부들 죽인다고 약속했잖아?!”
시끄럽게 재잘대는 줄리아, 지금은 일단 녀석은 뒤로 하고, 혼란에 빠진 엘프 마을 및 엘피디언 아카데미를 안정화할 때이다.
‘그걸 위해선 여왕님이 빨리 정신을 차리셔야 하는데.’
그나저나 루시엘, 그리고 리안나도 이런 위험한 곳에 오다니.
나는 여러 전장을 거쳐온 베테랑 정령사라고 하지만, 루시엘과 리안나는 고작 중급 정령사에다가 평범하게 학교만 다니던 학생이었다.
그런 아이들이 목숨을 걸고 끔찍한 마수들과 싸우다니, 확실히 될성부를 나무는 떡잎부터 다르다 이건가.
괜히 기특해졌다.
“으으…….”
“여왕님, 깨어나신 겁니까?!”
때마침, 여왕 클라우디아 엘피디아가 막 정신을 차렸다.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고는 해도 단순한 피로 누적이어서 그런지 몸에 커다란 문제는 없는 듯했다.
“어머니….”
쭈뼛대며 다가오는 루시엘.
‘아까 울고 있던 게 설마… 여왕님이랑 다퉜던 건가.’
모녀간의 다툼, 혼나는 딸과 화난 어머니.
엘프 왕가라고 해도 저런 모습은 평범한 가정 같았다.
“으음, 루시엘이니….”
아직 여왕님은 비몽사몽한 상태인지, 제대로 몸을 가누지 못했다.
“네, 어머니… 아니, 여왕님. 지금은 일단 편히 쉬시고….”
“미안하다, 딸아.”
루시엘의 눈동자가 살짝 흔들렸다.
“아니에요, 제가 더 잘해야 하는 건데.”
“너를 그렇게 보내고 나서 바로 후회했다. 너도 그렇고, 나도 그렇고. 요즘따라 너무 힘들었잖니.”
“…….”
“그래서 말이 심하게 나갔던 것 같구나… 이 못난 어미를 용서해 주겠니?”
싸운 지 얼마 안 돼서 루시엘은 처음에는 어떻게든 자존심을 지키려 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거듭되는 클라우디아의 사과에 결국 그녀도 마음을 열었다.
“으아아아앙!”
엉엉 울며 바로 어머니의 품 안으로 달려드는 루시엘.
그 모습이 퍽 보기 좋아 나 역시 입가에 미소가 저절로…
‘인기척?’
슈욱!
팅!
내 등 뒤에서 강력한 풍압이 발생했고, 무언가가 내 뺨을 스쳤다.
주륵.
살짝 스쳤는지, 오른쪽 뺨에 피가 흘러내렸다.
“허억, 허억, 허억.”
“괜찮으십니까? 이게 무슨…!”
“아직 적이 남아 있는 건가?!”
기사들이 주위를 수색하기 시작한다. 대체 무슨 상황이지?
정신을 차리고 앞을 바라보자, 루시엘과 여왕님이 서로 끌어안고 있었는다. 그리고 그녀들 바로 앞 허공에 방패가 떠 있었고, 그 방패에 화살이 박혀 있었다.
여왕님, 혹은 루시엘을 노린 화살이었던 것이다.
《휴, 늦을 뻔 했다!》
‘저 방패, 아르마 네가 한 거지?’
《물론이다! 갈채하라, 계약자!》
다행히 그 찰나에 아르마가 방패로 변해 화살을 막은 모양이다.
“대체 누가….”
나는 허리를 굽혀, 당황한 엘프 왕가 모녀 앞에 떨어져 있는 화살을 주웠다. 줍자마자 난 이 화살의 특이한 점을 깨달을 수 있었다.
“이건… 루시엘, 너도 만져 봐.”
“마수들은 다 돌아갔을 텐데, 대체 누구죠?”
“조용히 하고, 일단 만져 봐.”
루시엘은 내 말을 순순히 따랐다.
“이건….”
“맞아, 바람의 상급 정령, 진(風)의 흔적이 남아 있어.”
강력한 풍압과 함께 쏘아진 화살, 그리고 그 화살에는 정령술의 흔적이 남아 있었다.
“루시엘, 혹시 너 정령의 흔적으로 ‘개체 구분’도 할 수 있어?”
“아뇨, 그것까진….”
개체 구별이란, 중급 이상 정령들부터는 각 정령 개체마다 그 위력이나 특성이 심하게 갈려서 그 차이를 느껴 구분하는 것을 말한다.
아직 중급 정령사에 불과한 루시엘로서는 아직 속성 및 정령의 급밖에 구분하지 못하는 듯했다.
“그러고 보니, 내 조력자라고 마왕님이 보내 주신 다크 엘프 년도 바람 정령을 쓰더라고. 딱 보니 너네 엘프 종족 배신하고 도망친 건 줄 알았는데.”
“조용.”
막 입을 여는 마수 조련사, 줄리아의 입을 억지로 막았다.
“읍읍, 왜!”
지금 상황에서 정령술을 이용해 화살을 쏘아 여왕을 저격하고자 한 것은 아마 줄리아의 말대로 그 다크 엘프가 맞을 것이다. 이그니스를 보러 갔을 때 우연히 마주친 그녀.
하지만, 지금 이 화살에서 느껴지는 바람 정령의 기운. 개체 구별을 할 수 있는 나는 알 수 있었다.
‘몇 년 동안 같이 다녔는데, 모를 수가 없잖아.’
바람의 상급 정령 중에서는 나와 직접 계약한 녀석 다음으로 친숙한 녀석이었다. 내가 알고 있는 정령이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고, 그래서 더더욱 루시엘이 알아채지 못한 것이 다행이었다.
…왜냐하면, 내가 아는 한 이 정령은 기존 엘프 차기 여왕이자 용사 파티에서 나와 함께 동고동락한 동료, 신궁 메리엘의 소유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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