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4화 〉 마수 조련사(3)
* * *
지금 자신만만한 척 허세를 부리지는 마수 조련사는 사실, 속으로는 몹시 불안에 떨고 있는 상태였다.
‘대체 언제 소식이 오는 거지?’
로헨의 지적은 사실이었다.
현재 마수 조련사의 세력은 굉장히 약화되어 있다.
‘며칠 전 그 일만 아니었어도…!’
원래 마수 조련사의 목적지는 이곳, 엘피디언 아카데미가 아니었다.
마왕이 공격하라고 명령했던 곳은 대륙의 내로라하는 마법사들만 모여 있다는 바로 그 마탑.
그때 당시 투입했던 마수가 성체 모비 딕, 케르베로스, 와이번들, 그리고 마법 저항 효과를 가진 골렘들은 물론이고, 수많은 벌레형 마수, 동물형 마수 등등 전력을 다해 공격했었다.
마법 저항 골렘을 앞세워서 마법사들의 총공을 막아내며 가까이 다가가기만 하면, 그 공격력에 비해 몸이 약한 마법사들은 한순간에 처리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 계획은 수포로 돌아갔다.
그 골렘을 만드는 데 얼마나 힘들게 일했고, 얼마나 큰 노력이 들어갔는지, 지금 생각해도 그녀의 마음이 아파져 왔다.
‘마광석을 구하고, 제련된 강철도 모아서 골렘으로 융합하는 데 얼마나 수고가 많이 드는데.’
원래대로라면 골렘 군대는 마법사들의 천적이 돼야 했었다.
‘그런데, 어디서 듣도 보도 못한 자식이…!’
그런데 갑자기 나타난 이상한 별종 마법사가 다 망쳐버렸다.
그 마법사가 든 창에 푸른 뇌광이 맴돌고, 그 창을 가볍게 휙 던지니 골렘 수십 마리가 우수수 쓰러졌다.
그 광경을 본 조련사는 경악했다.
하지만 그건 시작에 불과할 뿐, 그 옛날 ‘창공의 고래’보다는 훨씬 약해지긴 했지만 그래도 그 괴물의 후손급이라고 자부할 수 있는 성체 모비 딕도 그 창에 꿰뚫렸다.
“고래잡이 작살!”
이런 소리나 들으면서 말이다.
골렘과 고래가 사라지니 다른 마법사들도 곧 전력을 발휘해 마수 조련사의 군대를 공격하기 시작했다.
안전한 장소에서 마법으로 적을 요격하는 마법사들은 무적에 가깝다. 마나가 다 고갈되지 않는 한 무한으로 마법을 쏟아붓는다.
그렇게 마수 조련사는 그 전투에서 거의 전력의 50%를 잃었다.
‘그래도, 괜찮아.’
그래도 마수 조련사는 긍정적으로 생각했다. 이건 시행착오였을 뿐이고, 다시 시간을 가지고 천천히 준비하면 분명히 함락시킬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마왕님의 생각은 그녀의 생각과 달랐다.
《수고했다. 그렇지만 마탑 파괴는 이제 네 소관이 아니다.》
“부디, 한 번만 더 기회를! 잘할 수 있습니다!”
《마탑 건은 이제부터 리치에게 맡긴다.》
“그, 그럼 저는…?”
마왕군에서 버려진 자는 어떻게 되는가?
쓸모없어진 도구는 버려진다. 그것이 마왕의 방식.
그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마수 조련사였기에, 그녀는 두려움에 벌벌 떨었다. 평범한 인간이지만 어린 시절부터 마수를 조련하는 재능 하나만으로 마왕의 눈에 띄어 마왕군 간부로의 엘리트 코스를 밟은 그녀였다.
그녀는 도구였기에, 이름도 없고 가족도 없다. 가족들에 대한 기억도 없다.
그래서 그녀에게 남은 것이라고는 마수 조련사라는 직함, 마왕군의 간부라는 자리, 그리고 마왕님에 대한 애착뿐이었다.
“제발, 버리지 말아 주세요….”
《대신, 마수 조련사는 엘피디언 아카데미를 점령해 보도록.》
“엘프 마을에 있는 학교 말씁이십니까…?”
《그래, 그곳에 너를 죽인 정령사도 올지 모른다.》
그 말을 끝으로 마왕은 자리를 떴다.
“하, 하아, 아하하….”
거친 숨을 몰아쉬던 그녀는 마침내 실소를 흘렸다.
마왕의 압박감에 몸이 부들부들 떨리고, 식은땀이 흘렀다.
‘이번 기회가 마지막이다.’
목숨을 걸고서라도 해내야 한다.
‘그나저나, 나를 죽인 정령사라면… 로헨?’
정령사 로헨이 전장에 데뷔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그 남자는 4대 원소 불, 물, 땅, 바람의 상급 정령 네 마리로 마수 조련사의 군대를 학살했었다.
“그 재능을 좋은 곳에 썼다면 좋았을 텐데.”
이런 치욕적인 말까지 듣고, 숨을 거두고 말았다.
물론 마왕님의 은총으로 두 번째 삶을 살 수 있게 되었지만….
그 후, 전력의 반절을 잃은 그녀는 세력 강화에 힘을 썼다.
상급 마수들이 대부분 죽었고, 양과 질 둘을 다 갖춘 골렘들도 대부분 부서졌다.
쓸만한 마수라고는 거대 뱀, 거미 괴수, 맨티코어, 유니콘, 새끼 모비 딕, 케르베로스 정도만 남아 있는 형편에서 마수 조련사는 방책을 찾았다.
“일단 골렘을 만들어 볼까.”
마광석이 잘 나온다는 광산을 발견하고, 그곳에 마수 몇 마리를 풀어놓았다.
거대 뱀 가족을 풀어놓아서 함부로 들어오는 모험가나 광부들을 차단한 뒤, 빠르게 마광석을 캐 가려는 계획이었다.
그런데, 몰려온 사람들을 식량용으로 쓰기 위해 가둬 뒀는데 그곳에 검사 한 명과 정령사 한 명이 찾아왔다.
그들은 뱀들을 해치운 뒤 홀연히 사라졌고, 살해당한 뱀들의 흔적을 살펴보니 중급 정령들의 자취가 남아 있었다.
정령은 마나로 조종된다, 그리고 그 마나는 아주 익숙한 사람의 것이었다.
로헨.
‘마왕님께선 엘피디아 아카데미에서 만날 거라고 하셨는데, 벌써 만났네.’
그 후 마왕님의 말씀대로 로헨은 정말 엘피디언 아카데미에 입학했다.
또한 뱀의 사체에서 확인할 수 있었던 로헨의 흔적을 보니, 알 수 없는
이유로 그는 중급 정령사 수준으로 약해졌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그러나, 그때까지도 조련사의 군대는 아직 빈약한 수준이었다.
“마왕님이 직접 말씀해 주시진 않으셨지만, 그분이 역시 또 저를 위해 뭔가 손을 써주신 것 아닐까요~”
“…….”
그리고 마왕님의 또 다른 선심…… 인 줄 알았으나 말도 없고 뭐 하는지도 잘 모르겠는 다크 엘프가 마왕님의 지시를 받아 그녀를 도왔다.
“학교에서 불의 정령이 난동부려서, 봉인 당했다. 그걸 푼 다음 총공격을 하면 효과적일 것 같다…….”
“오, 당신 말도 하네요?”
다크 엘프가 처음 건넨 제안이었다. 충분한 시간이 없어 마수 조련사의 악명 높은 마수 군단의 세력은 조금 부족했다.
그렇지만 만약 상급 불의 정령이 학교를 불태워 혼란에 빠트린다면, 그걸 틈타서 여왕을 죽이고, 선생들을 해치운 다음 우왕좌왕하는 학생들을 없애 마무리할 수 있다.
여왕과 선생들만 해치운다면 고작해야 학생 수준인 정령사와 궁수들을 죽이는 것은 간단할 것이었다.
‘로헨이 좀 거슬리긴 하지만, 그래봤자 그도 지금은 고작해야 중급 정령사.’
그렇게 판단한 마수 조련사는 계획을 실행했다.
* * *
“근데, 근데, 근데 왜!”
갑자기 발작하는 마수 조련사, 내가 너무 정곡을 찌른 건가?
“우리에게 도움이 돼야 했을 불의 정령이 당신과 계약해 버리고, 중급 정령사인 줄 알았던 당신에게 상급 정령이 두 명이나 있었다니!”
“아르마와는 예전부터 계약한 상태였는데?”
《후후, 나는 프로 정령. 고작 그런 전투에 흔적을 남기지 않는다.》
아무래도 그 거대 뱀은 이 마수 조련사의 범행, 그리고 그 뱀의 사체에서 내 마나의 흔적을 발견하고 나를 죽이러 온 것 같다.
“그렇다고 당신을 죽이러 온 거라 착각하지 마시죠! 제 목표는 어디까지나… 후후.”
“그게 무슨…?”
콰광, 하는 소리와 함께 왕궁 쪽에서 거대한 굉음이 났다.
그리고 하늘에 거대한 고래가 떠올랐다.
“창공의 고래?”
아니, 그럴 리가 없다.
그 괴물은 몇백 년 전 역사책에나 적혀 있던 옛 괴물이다. 무명 스승님이 사살한 녀석이기도 하고.
애초에, 저 하얀 고래는 그 정도로 크지는 않았다. 인간에 비하면 거대한 크기는 맞지만, 그 존재만으로도 위압감을 줄 정도로 무시무시하지는 않다.
“그것보다, 왕궁을 공격했다는 건…!”
“아하하, 맞아요. 당신한텐 처음부터 별 관심 없었는걸요? 제 목표는 처음부터 엘피디언 아카데미 및 엘프 마을의 붕괴!”
“그래서 여왕님을 노리고 있는 거냐?”
“그렇죠, 맞아요. 정답이랍니다. 원래 당신의 죽음을 마지막 디저트로 남겨 놓을 예정이었는데, 당신이 생각보다 강해져서 계획을 수정한 거죠.”
마수 조련사 본인이 직접 방문해서까지 나를 견제하려고 애를 쓴 건가.
그러나 사실 그녀의 최우선 목적은 여왕님 살해였다.
“그런데, 너 잘못 판단한 게 있어, 조련사.”
“……?”
“여왕님이 쉽게 당하실 분은 아니거든.”
* * *
한편, 루시엘과 리안나는 선생님들이 오기만을 기다리며 한계에 다할 때까지 전투하며 적을 해치우고 있었다.
“하아, 하아…에클레어(?)!”
리안나는 여전히 전격과 번개를 쓰는 정령술을 사용했고, 루시엘은 정령술을 그만두고 활을 들었다.
“정령술보단 궁술이 더 자신 있어서요!”
쏘는 화살마다 족족 고블린과 오크들의 급소에 적중한다. 백발백중의 신궁. 물론 루시엘은 정령술, 궁술, 단검술 등 여러 방면에서 모두 뛰어났지만, 그중 가장 뛰어난 재능을 꼽으라면 단연코 궁술일 것이다.
“학교 내에서 마음대로 무기를 쓰는 건 규칙 위반 아닌가요?”
“지금 그럴 상황인가요, 어떻게든 해야죠.”
아무래도 바람 정령, 실프는 이런 상황에서 적을 학살할 정도의 살상력을 가지지 못한다. 그래서 활을 들어 싸우고 있었다.
“클레이(?)! 다들 물러나거라!”
때마침, 땅의 상급 정령을 다루는 선생님이 도착했다. 수업 시간에 아비드라고 자신의 이름을 소개했던 남자 엘프였다.
“살았어요….”
“끝난 건가요, 흐에….”
루시엘과 리안나 둘은 거의 기절하기 직전이었다.
오밤중에 갑자기 쳐들어온 마물로부터 기숙사를 지킨다니, 영웅적인 일이었지만 현실은 피곤해서 당장이라도 쓰러질 것 같았다.
선생님의 활약으로 마물 몇몇은 땅 밑에 생매장되고, 몇몇은 굳어버린 채 죽어버렸다.
“정말 끝난 거 맞죠…?”
루시엘이 말을 꺼낸 그 순간,
콰광, 하는 소리와 함께 거대한 굉음이 들렸다.
“왕궁 쪽…?”
루시엘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어, 어떡하죠?”
리안나는 그런 루시엘의 눈치를 보며 어쩔 줄 몰라했다.
왕궁은 루시엘의 어머니가 있는 곳. 물론 뛰어난 엘프 병사들이 그녀를 호위하고 있지만 그럼에도 왕궁의 붕괴는 많은 엘프들의 혼란을 가져온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어머니….”
불과 몇 시간 전 그녀를 호되게 혼냈던 어머니이다.
그렇지만, 지금 그런 걸 따질 때가 아니었다.
“어머니를 구해야 해.”
루시엘은 넋을 잃은 듯이 비틀거리며 왕궁 쪽으로 걸어갔다.
“루시엘 양! 지금은 안 돼요. 너무 지쳤어요!”
“안 돼, 어머니가, 왕궁이….”
“학생, 차기 여왕님! 일단은 몸을 피하셔야 합니다!”
선생님과 리안나가 말리지만, 루시엘은 아무런 생각도 할 수 없었다.
“어머니가, 언니에 이어서 어머니도…….”
“그렇게 말하면, 말릴 수가 없잖아요…….”
우우우우, 소름 끼치는 고래의 노랫소리가 들려왔다.
마치 하늘에 떠 있는 구름과 닮은 하얀 고래가 울부짖었다.
“모비 딕…….”
땅의 정령을 쓰는 선생님이 사색이 되어 중얼거렸다.
“같이 가요, 루시엘.”
“리, 안나…?”
“저기는 위험해요. 우리 선생들이 해결할 테니, 일단 쉬도록 하고…!”
리안나는 고개를 저었다.
“이제, 남이 바라는 대로 움직이며 살고 싶지 않습니다.”
부모님의 속박을 벗어던진다.
“제가 하는 행동은 오로지 제 의지이며, 모든 것은 제 책임입니다.”
귀족으로서의 자긍심은 갖추되, 쓸데없는 허례허식은 집어치운다.
“말리지 말아 주십시오.”
선생님은 잠시 고민하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저도 같이 가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아비드 선생님.”
“리안나, 아비드… 어머니를, 빨리…!”
언제나 늘 유쾌하고 단단하던 소녀, 루시엘이 눈물을 글썽였다.
“걱정 마요. 루시엘.”
“…….”
“저희는 모범생이잖아요? 이번 기회에 수석을 가리자고요.”
“그런 문제가….”
“아, 알아요. 라헬 양이 있다는 거. 근데 그분은 너무 규격 외잖아요?”
“그건, 맞는데…….”
리안나가 우아하게 미소 지었다.
“당신들에게서 뭘 얻을 생각은 이미 접었어요.”
“……?”
“후후, 그런 게 있어요.”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