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3화 〉 마수 조련사(2)
* * *
한편, 북문과 서문의 상황은 꽤 나쁘지 않았다.
“이쪽은 대부분 정리된 거 같은데,”
하지만 북문 쪽에서 전투 중이었던 하겔은 무언가 이상함을 느꼈다.
‘이상할 정도로 적다.’
그 악명 높은 마수 조련사의 군단이라고 하기에는 마물들의 양도, 그 질 역시 조금 부족했다.
‘다른 곳에 화력을 집중한 건가?’
그러나 만만하지만은 않았다.
마수 조련사의 특징. 그녀의 수하에 있는 마수, 혹은 마물들은 대략 1.5배 정도 강해진다. 그래서 그런지 한때 전장에서 정령사로 싸웠던 하겔에게도 생각보다 신선한 경험이었다.
‘그래도 뭐, 목숨이 위험할 정도는 아니군.’
아까 정령이 풀려나서 소동이 났던 곳은 북서쪽이었다. 그래서인지 북문, 그리고 서문으로 가는 선생님들은 생각보다 빠르게 도착했다.
‘걱정되는 곳은 동문이려나.’
학생들의 기숙사가 있는 데인데 심지어 도착하기까지 시간도 좀 걸릴 만큼 거리도 멀다.
원래라면 남문 쪽도 거리가 멀어서 마수들이 쳐들어온다면 불안했을 지역이지만, 그쪽에는 믿을 만한 정령사가 파견돼 있었다.
라헬.
어제까지는 중급 정령사였지만, 방금 상급 정령과 계약한 그녀는 웬만한 선생들보다 더 큰 활약을 할 것이다.
원래대로라면 그녀도 학생이니까 선생님들한테 보호받아야 하는 것이 규칙이다. 그러나 정령사의 수준은 그 정령사가 다루는 정령에 따라 명확하게 구분된다.
이제 라헬은 분명한 상급 정령사.
거기다 정말 마수 조련사가 공격해온다면 인력 한 명 한 명이 부족한 실태이다. 그 와중에 어제까진 학생이었다지만 그래도 현직 상급 정령사의 힘을 빌리지 않을 수 없었다.
애초에 라헬이 계약한 불의 정령은 평범한 상급 정령의 수준이 아니었다.
‘처음 날뛸 때, 내 정령도 같은 이그니스인데 비교조차 되지 않았지.’
하겔이 가지고 있는 정령 역시 상급 불의 정령 이그니스. 그렇지만 루시엘의 정령 소환술로 나타난 이그니스가 날뛸 때, 그 화력을 맞불로 버텨 내는 것조차 버거웠다.
“정말 로헨 님을 이을 인간 정령사가 나타난 걸지도 모르겠군.”
하겔은 쓴웃음을 짓고 다시 전투에 돌입했다.
그의 발밑에 고블린과 오크, 오우거들의 시체가 산더미처럼 쌓여갔다.
* * *
『북문, 서문』
오크, 오우거, 고블린 등의 잡졸들
VS
엘프 정령술 및 궁술 선생님들
* * *
“크워어어어!”
“비겁한 거 아닌가, 조련사?”
“뭐가 말이죠?”
“뒤에서 구경만 하고 있군.”
맨티코어, 유니콘, 늑대인간들.
그리고 그리폰을 탄 채로 하늘에서 내려다보는 마수 조련사.
일단 가장 거슬리는 녀석은 늑대인간이다.
맨티코어와 유니콘만큼 강하지는 않지만 한 번에 죽이지 않으면 뛰어난 회복력으로 계속 달려든다.
그러나 마수 조련사에 의하여 강화된 육체라 그런지, 일격에 죽이기가 그리 쉽지 않았다.
“하압!”
너클을 낀 채로 한 방, 두 방 때린다.
“아우우우!”
늑대인간들이 한 걸음, 두 걸음 물러난다.
“뭐 하는 건가요? 가서 싸워, 이 똥개들아!”
“직접 내려오시고 말씀하시지. 무서워서 벌벌 떨면서 하늘에서 구경만 하고 있는 주제에.”
“수준 낮은 도발이네요. 내려가면 저 죽어요~”
마수 조련사는 자신의 수하에 있는 마물과 마수들을 지휘하고, 조종하는 데 특화되어 있다.
그 말은 즉, 본인의 힘은 그렇게 강하지 않다는 것을 뜻한다.
끌어내린 후, 이 주먹으로 가격할 수만 있다면 반드시 이긴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주먹을 꽉 쥐었다.
퍼억!
“끼잉!”
“쿠오오오오!”
하지만, 내 적은 늑대인간들뿐이 아니었다.
《참 한심한 공격이로고.》
맨티코어가 꼬리를 세게 후려치자 정체를 모를 바늘들이 나를 향해 직선으로 날아왔다.
하지만 화르륵, 하는 소리와 함께 불타 사라졌다.
《소녀가 뒤를 보고 있다. 네놈은 불꽃에 노릇노릇 익힌 고기가 되는 편이 나아 보이는구나.》
맨티코어는 들어 보기만 했지, 직접 만나 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아마 저 바늘은 독침일 거야. 조심해야 해.”
《흥, 피할 생각은 없다. 죄다 불태우는 게 마음 편하지 않느냐?》
맨티코어의 가죽은 그리 물렁하지 않다. 가죽은 전에 싸웠던 뱀의 피부만큼 단단하고, 공격 수단은 주로 꼬리를 이용한다.
그리고 꼬리를 휘둘러 치는 것도 강력하지만, 원거리의 사냥감에게 독침을 날려 그 목숨을 가져간다는 것도 유명한 이야기였다.
파밧!
치명적인 위력을 지닌 독바늘들이 화살처럼 쏟아진다.
《이미 통하지 않은 것을 한 번 더 시도하는 꼬락서니란, 이러니 미천한 금수라고 불리는 것이로고.》
이그니스는 그런 맨티코어를 비웃으며 다시 독바늘들을 불태워 버렸다.
“크오오오오!”
몇 번 막혀서 화난 건지 맨티코어는 꼬리 공격을 멈추고 나를 향해 돌격했다.
“이그니스, 화력 지원 부탁해!”
《화염 벽을 세우겠다.》
맨티코어가 달려오는 동선에 화염 벽 하나, 그리고 우리 주변에 화염으로 원을 그려 몸을 보호했다.
“아우우우우!”
화염 원은 늑대인간들이 다가오지 못하게 할 수 있었다. 하지만, 맨티코어는 화염 벽에도, 화염 원에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크워어어어!”
그 사자의 형상을 하고 있는 괴물이 그동안 보이지 않게 접어놓은 날개를 쫙 펼치더니, 하늘 위로 날아올라 원 안으로 진입했다.
퍼억, 퍼억!
“크롸아아아!”
분명 몇십 미터는 떨어져 있어 닿지 않았을 주먹이었다.
《원거리 펀치, 어땠냐?》
“최고였어.”
닿지 않는 거리를 닿게 해 주는 너클, 이번 아르마 너클의 효과는 그것이었다.
저번에는 위력을 강화하는 효과였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이그니스의 화염을 두르고 있는데 위력 강화보다는 유틸적인 부분을 강화하는 것이 더 도움이 될 거라고 아르마 스스로 판단한 모양이다.
《아르마는 최고의 책사. 상황에 맞는 효과, 상황에 맞는 아르마.》
물론 내가 활을 다룰 줄 알았으면 좋았겠지만, 내가 할 수 있는 무술 중 가장 숙련도가 좋은 것은 권술이었다.
“검술도 나름 배우긴 했지만, 아직 부족해서 말이지.”
《싸움이라면 정령들에게만 다 맡기고 뒤에서 구경하던 꼬마가 이렇게 변하다니, 기특한지고….》
“내가 언제 구경만, 이그니스!”
이그니스는 공중으로 날아올라 늑대인간들 쪽으로 이동했다.
이그니스는 늑대인간을, 나는 맨티코어를 맡는다.
아직 그리폰을 탄 마수 조련사는 흥미진진하다는 듯이 구경하고 있었고, 유니콘은 나와 이그니스 사이에서 고민하는 듯이 보였다.
“진짜 구경하는 건 저건데 말이지.”
“저거라뇨, 말이 심하세요.”
“그것보다 대체 어떻게 살아난 거냐? 분명 내가 주먹으로 널 때려죽였던 걸로 기억하는데.”
“당신이 왜 귀여운 여자아이가 됐는지 얘기해 주면 생각해 볼게요~”
남의 아픈 곳을 건드리다니.
퍼억!
조련사 대신, 그리폰에게 원거리 불꽃 펀치를 날려 앙갚음해줬다.
“끼이이룩!”
그 겉모습과는 다르게 나약해 보이는 비명을 내뱉는 그리폰.
“이, 이게 뭐하는 건가요?!”
“꼬우면 내려오던가.”
퍼억, 퍽!
“이, 이, 천박한 놈이…!”
“그래도 놈이라고 해 줘서 고맙네. 년이라고 했으면 10대는 더 치려고 했어.”
이렇게 말해도 녀석은 내려오지 못한다. 이미 한 번 죽어 봤기에 다음 죽음이 얼마나 두려울지 알겠지.
그리고 원거리 펀치는 아무래도 치명적일 만큼의 데미지는 주지 못한다. 정말로 해치울 정도의 위력을 가하려면 내 손이 닿는 위치까지 와서 직접 때려야 한다.
계속 때리다 보면 잡을 수 있겠지만, 그리폰이 더 높이 비행해서 벌써 사거리에서 벗어나 버렸다.
“으으….”
아마 녀석은 맨티코어와 유니콘, 늑대인간들이 다 죽고 나서야 나설 것이다. 최후의 최후까지 견디다가 더 이상 아무런 수단도 남지 않았을 때 내려올 게 뻔하다.
‘어찌 보면, 정령사들과도 닮았다고 해야 하나.’
평범한 사람들에게 정령사는 모든 전투를 정령에게 맡기고 후방에서 편히 논다는 인식이 강하게 박혀 있다.
그게 불만이었던 나는 직접 권술을 익혀 실전적인 정령술을 발전시켰고, 나름 성공적이었다고 생각한다.
“쿠워어어어!”
펀치에 맞고 잠시 물러섰던 맨티코어가 다시 내게 다가왔다.
물론 거리를 유지하면서 계속 원거리 펀치만 날리면 언젠가는 체력이 다 돼서 이기겠지만, 유니콘이 난입하면 상황이 곤란해질 수 있다.
“히히히힝….”
아마 조련사 녀석이 더 불리한 곳에 투입하려고 유니콘을 바로 투입시키지 않고 간을 보는 중인 것 같다.
내가 맨티코어를 압도하면 내 쪽에 유니콘을, 이그니스가 늑대인간들을 도륙하면 이그니스 쪽에 유니콘을.
“두 쪽 다 이길 건데 말이지.”
“크롸아아아아!”
“이제 네 그 울부짖음도 질렸다.”
맨티코어가 꼬리를 이리저리 휘두르며 수백 개의 독바늘을 뿌리며 달려왔다.
저 곤봉 같은 꼬리에 한 대라도 맞으면 온전히 목숨을 부지하지 못할 것 같은데.
콰앙!
방금까지 내가 있던 땅에 커다란 구덩이가 파였다.
아마 저걸 맞았다면 지금쯤 묵사발이 됐겠지.
“크아아아아아!”
“홍염권.”
팔을 뒤로 젖힌 뒤, 그대로 주먹을 앞으로 뻗었다.
단순한 정권 지르기.
하지만 그 주먹에 상급 정령 두 마리가 깃들어 있고, 오랜 세월 동안 배워온 권술이 빛을 발한다.
“크, 크워어….”
“뭐, 끝났네.”
거대한 화염 폭풍이 사자를 닮은 괴수를 잡아먹는다.
그 성대마저 불태워 버려, 목소리조차 나오지 않게 만든다.
다리가 불타고, 갈기가 불타고, 날아오던 독바늘까지 불에 휩싸여 재가 되어 사라진다.
“안돼! 날개사자야!”
아이를 잃는 부모처럼 맨티코어에게 애칭까지 붙여 가며 애타게 부르는 마수 조련사. 하지만 그녀에게 이런 짐승 한 마리 따위는 그저 장기말에 불과하다는 것을 나는 아주 잘 알고 있다.
“유니콘, 데려오시지?”
“……건방지게.”
“근데 말이야, 너 이 전력이 전부냐?”
내 말이 정곡을 찌른 걸까, 조련사는 몸을 움찔거렸다.
아까부터 생각해 온 부분이었다.
물론 다른 쪽에 하급 마물들로 가득 찬 ‘질보다 양’ 군대가 몰려오고 있다고는 하지만, 원래 마수 조련사는 이런 느낌이 아니었다.
질보다 양도 아니었고, 양보다 질도 아니었다.
어느 정도의 질을 갖춘 마수들을 많이 모아, 그녀 특유의 강화 능력으로 높은 수준의 질을 갖춘 군대로 탈바꿈한다.
하지만 지금 그녀의 군대는 이도 저도 아니었다.
맨티코어, 유니콘. 물론 강한 마수들이다.
고블린, 오크 등등. 약한 마수들이지만 양이 많다.
중간 정도의 마수들을 많이 거느리던 마수 조련사가 소수의 강력한 마수들, 그리고 다수의 약한 마수들과 함께하고 있다.
이상하다면 이상하다고 느낄 수 있지만, 별로 중요해 보이지 않는다고 느껴질 수도 있는 부분이다.
하지만, 녀석을 한 번 죽여본 나는 알 수 있었다.
“너, 준비가 부족했지?”
“네, 네에?!”
당황한 목소리, 나는 확신했다.
“너 정도 녀석이 고작 이 정도 병력으로 나를 잡으러 온다고?”
“그, 그게…”
마수 조련사의 이마에서 땀이 줄줄 흘렀다.
부활한 마수 조련사, 빈약한 군사력. 갑자기 정령을 풀어놓으려 하는 성급한 계획, 심지어 실패했고, 성공했더라도 솔직히 큰 영향은 없었을 거 같다.
분명히, 무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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