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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화 〉 용사 파티는 패배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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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마왕성 꼭대기에 도착했다.
이제 이 문을 열고 안에 있는 마왕의 목을 베면 이 지긋지긋하게 길었던 전쟁도 끝이 난다.
천 년간 이어져 온 선과 악의 대립.
그것이 오늘 우리 용사 파티의 손으로 끝날 것이다.
“두근두근하네.”
나는 주먹을 꽉 쥐고 중얼거렸다.
“후훗. 로헨도 긴장 많이 했구나?”
“놀리지 마시죠. 메리엘 님…. 하나도 안 쫄립니다.”
남을 놀리는 악취미가 있지만 전쟁에서는 수많은 마물의 숨통을 끊어버리는 백발백중의 명사수, 차기 엘프 여왕, 메리엘.
“가호는 다 걸었어요. 이제 정말, 끝이 다가오네요….”
나와는 달리 정말 긴장한 듯한 신의 대리인, 성녀 아리아.
“오늘 우리가, 천 년간 이어져 온 전쟁을 끝낸다.”
검을 뽑고 이렇게 말한 자는 성검의 주인, 용사 에반이다.
말 그대로 영웅인 그가 자신만만하게 선언한다.
그것만으로 우리의 사기는 급상승했다.
끼익.
그가 문을 열자, 한 치 앞도 보이지 않을 만큼 어두컴컴한 방이 그 아가리를 벌렸다.
마치 우리가 들어올 때까지 기다렸다가, 들어오는 순간 가차없이 잡아먹으려 드는 포식자처럼.
“윌(光), 밝혀줘.”
나는 조용히 빛의 정령을 부른다.
* * *
메리엘은 정령사 청년, 로헨을 보며 또 한 번 감탄했다.
몇 년간 같이 파티를 꾸려 전투했는데도 불구하고 저 정령술은 도무지 이해조차 가지 않는 수준이었다.
오랫동안 엘프들만의 전유물이라 여겨졌던 정령술.
그것을 엘프도 아닌 인간이, 모든 종류의 상급 정령과 계약을 맺다니.
‘나는 바람의 상급 정령, 《진》만으로 한계인데 말이지.’
물론 상급 정령 한 마리와 계약한 것도 정령술에 어느 정도 재능이 있다는 것을 뜻한다.
하지만 로헨이 방금 부른 것은 빛의 상급 정령 윌.
빛, 어둠, 불꽃, 물, 땅, 바람 등등….
저 남자, 로헨은 거의 모든 종류의 상급 정령과 계약을 맺은 천재 정령사다.
정령왕들과는 직접 계약하지 못했다는 것이 아쉽긴 하지만… 현존하는 최고의 정령사가 로헨인 것은 확실했다.
그도 그럴게, 로헨이 나타나기 전까지 정령술의 최고 권위자가 고작 3속성 상급 정령 동시 계약자였으니까.
그에 비하면 최소 10속성 이상의 정령과 동시에 계약한 로헨이 그저 놀라울 뿐이었다. 저 아이가 더 성장해서 지금의 상급 정령들이 하나씩 정령왕으로 성장한다면….
‘든든하네.’
어쩌면 이 파티에서 용사 다음으로 중요한 인물은 저 남자일지도 모른다고, 메리엘은 그렇게 생각했다.
* * *
“조심해라. 어디서 나타날지 몰라.”
전위에 선 용사 에반이 경고를 하는 순간, 윌에 의해 실내가 밝혀지며 저 멀리 옥좌에 비스듬히 앉아 있는 마왕이 보였다.
“마왕…!”
【쓰레기들이, 여기까지 왔구나.】
저것 때문에 지금까지 죽은 인간의 수는 얼마일까.
지금 이 순간에도 어딘가에서는 인간들이 마물들에게 학살당하고 있을 것이다.
한시라도 빨리 마왕을 해치운 뒤, 저 목을 높이 걸어 전쟁의 끝을 알려야 한다.
나는 그것만을 생각하고 바로 공격을 날렸다.
“이그니스(?)! 진(風)!”
불과 바람의 상급 정령 동시 소환.
둘의 시너지로 발생하는 화염 바람, 일반 마물이라면 몸이 녹아 사라지더라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의 위력이다.
이거라면 마왕이라도 타격이 있지 않을까…싶었지만.
팅!
가볍게 튕겨 나간다.
【가소롭군.】
역시.
물론 온 힘을 다한 공격은 아니었지만 나름대로 위력 있는 기술이었는데 전혀 통하지 않아서 살짝 당황했다.
“마법 보호막이 둘러져 있는 것 같아.”
그렇게 말하고, 메리엘이 화살을 쏠 준비를 한다.
“로헨! 도와줘!”
“알겠습니다. 진(風), 이그니스(?), 윌(光).”
바람과 화염, 그리고 빛을 화살촉에 담는다.
마법 공격 뿐으로는 막히지만, 화살이라는 물리 공격이 동반된다면?
“저, 저도…홀리 라이트!”
거기다가 성녀의 축복까지.
이게 안 먹히면 당장 도망쳐야지, 뭐.
“내가 달릴게! 메리엘! 지원사격 부탁해!”
용사님이 성검을 뽑고 달리기 시작하는 동시에, 메리엘이 힘껏 활시위를 당겨서 정령과 축복이 담긴 최강의 화살을 날렸다.
“하아아압!”
그 와중에 화살보다 빨리 뛰어가는 인간이라니. 역시 용사님이다.
“윌(光), 이그니스(?), 아쿠아(?), 클레이(?), 진(風).”
빛, 화염, 물, 땅, 바람.
동시에 모두의 힘을 합쳐 공격을 가한다.
광선이 쏘아지고, 화염이 터지고, 물대포가 쏘아지고, 바위가 우르르 떨어지고, 바람의 칼날이 적을 가격한다.
그와 동시에 메리엘의 화살이 적중하고, 마지막에는 용사가 성검을 크게 휘두른다.
용사의 검기가 폭풍처럼 휘몰아친다.
‘이건 먹혔다.’
아주 잠깐,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위험해요!!”
그 순간, 아리아가 용사 쪽을 보며 크게 소리쳤다.
대체 뭐가 위험하다는 거지. 애초에 마왕 자식은 의자에 앉아 일어나지도….
아니, 일어나 있었다.
어느 순간부터 일어나 있었지?
“신성 가호…!”
내 몸을 신성력의 방패가 두른다. 이건 필시 아리아가 건 신성 마법일 터. 하지만 왜 후방에 있는 나에게…?
【끝이다.】
자리에서 일어난 마왕이, 전 방향으로 암흑 파동을 발산하고…
“베여서, 사라져라…! 마왕!”
용사의 검은 멈추지 않았다.
암흑 파동과 우리의 공격이 그대로 충돌한다.
그리고 그 에너지의 여파는, 전방뿐만 아니라 나와 아리아가 있는 후방까지 그대로 들이닥쳤다.
내 앞에는 나와 계약한 정령들이 암흑 파동을 막기 위해, 전부 실체화해서 방어하지만…
* * *
“으, 으음….”
눈이 떠졌다.
등이 딱딱했다. 흙과 돌멩이들이 내 등 밑에 굴러다니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얼마나 오랫동안 기절해 있던 거지?
주변을 둘러보지만 그저 넓은 초원뿐이다. 방금까지는 풀 한 포기 자라지 않는 마계의 중심, 마왕성이었는데 대체 언제 여기로 온 거지.
‘에반과 아리아, 메리엘은 어디에…?’
나는 잘 움직이지 않는 몸을 억지로 일으켰다.
“으윽!”
온몸이 부서질 것처럼 아프다. 뼈가 부서지고 근육이 끊어지는 듯한 고통.
‘눈에 띄는 상처는 없는데?’
암흑 에너지 파동은 아리아의 보호막 덕에 내게 큰 피해를 주지는 못했다. 대체 무엇 때문에 몸이 이토록 아픈 건지 알 수가 없다.
“으, 으윽….”
…여자의 목소리. 어디지?
“여, 기….”
“아리아!”
다행이다. 아리아가 살아 있었어…!
“괜찮은 거야? 잠깐, 전혀 안 괜찮잖아?! 아쿠아(?), 빨리 아리아의 치료를…!”
아리아는 겉으로만 봐도 거의 반죽음 상태였다. 물의 정령 아쿠아를 불러 치료하려고 했지만, 설상가상으로 아쿠아가 내 부름에 응답하지 않는다.
나를 암흑 파동으로부터 지키다가 본인이 공격당해서 버티지 못하고 쓰러진 건가.
정령들과의 연결이 살짝 약해진 듯했지만, 크게 신경 쓰이지는 않는다. 아마 다들 회복하는 중이겠지. 지금은 아예 부를 수조차 없는 것 같다.
“전, 이미 늦었어요… 로헨.”
“아냐, 안 돼. 아직 살아 있잖아! 조금만…조금만 버티면 아쿠아가 회복될 테니 바로 불러서 치료할 수 있을 거야!”
“이 상처는 치유술로 회복될 수 없는 것 같아요…저 말고, 빨리 용사님이나, 메리엘을….”
“어째서, 어째서 내게 보호막을…나 말고 에반이든 메리엘이든, 너한테 쓰든지 했어야지!”
“에반하고 메리엘은, 윽… 튼튼하고, 저는 신성력으로 한 번 정도는 버틸 수 있을 줄 알았죠… 로헨이 우리 중 제일 약하잖아요. 헤헤.”
“안 돼…. 메리엘! 에반! 다들 어딨는 거예요! 아리아가 위험하다고요!”
애타게 다른 동료들을 불렀지만, 바람에 풀들이 휩쓸리는 소리만 들릴 뿐 아무런 대답도 없었다.
“로헨. 부디 신전과, 교황님께 제 마지막 말을 전해주세요….”
“…….”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안돼, 아리아의 얼굴을 똑바로 봐야 한다.
나는 눈물을 닦고 아리아의 마지막 말을 들었다.
“용사 파티와 함께해 마왕에게 도전한 것, 너무 즐거웠다고….”
그 말을 끝으로, 아리아는 호흡을 멈췄다.
“크, 크흐윽….”
여긴 어디인가.
마왕은 어디로 갔는가.
메리엘, 에반은 또 어디 있는가.
나는 왜 다친 곳도 없는데 온몸이 부서질 듯이 아픈 것인가.
수많은 의문을 제기하지만, 해결되는 것은 없다.
“에반…!”
저 멀리 쓰러져 있는 남자가 보였다. 성검을 떨어뜨린 채 쓰러져 있는 용사, 에반이 확실하다.
“에반, 에반! 괜찮아요?”
정신을 잃은 건가.
호흡은 아직 하고 있다. 그나마 다행이다. 이제 메리엘만 찾으면….
“끄아아악!”
고통이 더욱 심해진다. 앞으로 한 걸음도 움직일 수가 없다.
뼈가 뒤틀리고, 몸이 비틀어지는 듯한 고통.
나는 그렇게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
* * *
이번에는 바닥이 딱딱하지 않았다. 푹신했다.
아까 있던 초원이랑 같은 곳이 아니라는 사실이 등 쪽의 촉각으로 확실히 느껴졌다.
침대…? 지금 내가 누워있는 곳은 침대였다.
‘다 꿈일 것이다. 눈을 뜨고 일어나면 아리아와 메리엘, 그리고 에반이 이제 일어났냐고… 늦잠 자지 말라고 꾸중하겠지.’
마왕에 도전하는 꿈을 꾼 것이다.
아리아가 죽을 리가 없지. 그 에반이 쓰러질 리가 없다.
그럴 것이다. 그래야만 했다.
나는 살며시 눈을 떴다.
천장은 고풍스러운 장식으로 꾸며져 있었다. 마치 왕궁처럼….
‘왕궁?’
상체를 일으켜 침대 위에 앉은 자세를 취했다.
‘어라? 내 손이 이렇게 작았나?’
꽤 크고 거칠었던 손이, 작고 하얗게 변해 있었다.
‘뭐지… 저주 같은 거에 당한 건가?’
어려지는 저주. 1년쯤 전에 전선의 기사들에게 마구 난사된 저주였는데 그 저주 때문에 다들 고생 꽤나 했었지. 전장이 보육원인 줄 알았다. 결국 아리아가 다 해주해줬지만….
침대에서 나와서 바닥에 두 발로 선다. 바닥도 역시 좋은 카펫으로 꾸며져 있었다.
뭔가 눈높이가 낮아진 느낌이 드는데. 어려지는 저주 맞나 보군.
‘왕궁 맞는 것 같은데.’
방금까지 마계에서 마물들과 싸우다가 갑자기 왕궁으로 오다니. 이게 무슨 일이람.
마왕을 직접 대면했는데 메리엘과 용사, 아리아가 쓰러지고 나만 살아남았을 리가 없다. 그러니까 그건 분명 꿈이다.
그렇다면 어려지는 저주에 맞아서 왕궁으로 온 건가? 아리아가 해주해줄 수 있을 텐데.
이런저런 추측을 하며 방 안의 화장실로 향했다. 일단 세수라도 하고 맑아진 정신으로 생각을 해 보자.
그런데…
거울에 비친 이 파란 머리, 푸른색 눈동자의 여인은 대체 누구인가.
“으음?”
이 높은 미성은 대체 누구의 것인가.
설마 눈높이가 낮아진 게, 어려지는 저주 때문이 아니라…
“여자가 된 거라고?”
거울 속의 여자가 어이없다는 듯한 표정으로 중얼거린다.
“호, 혹시 모르니까. 얼굴만 바뀐 걸 수도 있으니까….”
당장이라도 깨질 듯한 유리 공예품을 만지는 것처럼 조심스럽게 옷 속에 손을 넣어 본다.
‘있다.’
위에는 너무 크지도, 작지도 않은 적당한 볼륨감이 느껴졌고, 아래는…
‘없다.’
자괴감이 몰려왔다. 내가 아는 저주 중에 성별을 바꾸는 저주가 있었나?
하긴 신체 나이를 되돌리는 저주도 있는데, 성별을 바꾸는 저주 정도는 당연히 있을지도… 하지만, 대체 언제, 어디서, 누구한테 당한 거지?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어쩌면 지금 이 상황이…
‘환각이거나 꿈일 가능성은…?’
“계십니까! 로헨 님!”
익숙한 목소리다. 왕궁의 근위기사, 데이브 캘린. 평소에 성격이 싹싹해서 왕궁에 갈 때마다 나와 잘 어울려 다녔던 녀석이다.
“로헨 님이 사라지셨다…! 자는 동안 방해가 되지 않으려고 나간 것이건만, 그 사이에….”
어쩌지 이거. 나가서 저 로헨입니다 해야 하나.
믿어 주려나… 아니, 어쩌면 내가 이 저주에 걸린 걸 알고 있을지도?
저 침대에 얼마나 오래 누워있었는지 모르는 것 아닌가. 여자가 된 걸 나만 지금 깨달은 거고, 다른 이들은 이 저주에 대해서 뭔가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
끼익.
나는 떨리는 마음을 다잡고, 화장실 문을 열고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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