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전. 15화
“네 몸의 시간을 뒤로 돌렸다. 내게 감사할 필요 없으니 인사라면 엘에게 해라. 네가 엘의 계약자가 아니었다면 그냥 버리고 갔을 거다.”
“그래도 정말로 감사합니다! 저 정말 감격했어요! 평생의 은인으로 여길게요!”
“필요 없다고 했다. 그보다 평생이란 말을 입에 담기 전에 넌 오래 살 연구부터 해라.”
“네?”
“얽힌 기운이 한둘이 아니군. 내가 읽어내지도 못할 만큼 깊은 원한이 사무친 저주다. 빠른 시일 내에 해결하지 않으면 멀쩡한 꼴로 죽지 못할 거다.”
엘프의 표정엔 그다지 변화가 없었다. 그 또한 제 상태를 알고 있다는 소리였다. 엘뤼엔은 두 눈을 가늘게 뜨고 그를 바라보았다. 아까부터 이상할 정도로 위화감이 들었다. 그러고 보니 이 발칙한 엘프는 자신을 살린 은인에게 정체가 뭐냐고 묻지도 않았다. 머리가 있다면 시간을 돌려 치료하는 방법이 평범하지 않다는 것쯤은 이미 깨달았을 텐데도.
심지어 엘과의 관계를 궁금해하는 눈치도 아니었다. 관심이 없는 게 아니라, 자신이 누군지 이미 짐작하고 있음이 분명했다. 게다가 이 방정맞은 성격도, 어디서 많이 본 것 같지 않은가?
“너…….”
엘뤼엔은 차마 떨어지지 않는 입을 벌렸다. 굉장히 싫은 예감이 들었다. 물론 성격이야 겹칠 수 있었다. 상태가 저렇다고 해서 전부 그쪽으로 단정 지을 수만도 없었다. 하지만 그렇기에 더더욱 확인해야 했다.
“네? 왜 그러시죠?”
“이건 정말 진심으로, 아니길 바라지만…….”
“네에, 말씀하세요.”
“……혹시 카노스냐?”
그러자 아주 잠깐 엘프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물론 눈치 빠른 엘뤼엔은 그걸 놓치지 않았다.
“너…….”
“아하하하! 누구를 말씀하시는 건지 잘……. 그게 누구죠? 저는 노엘이라고 하는데요?”
“노엘?”
“네! 보시다시피 평범한 하이 엘프 일족의 노엘이라 합니다. 당신은 형벌의 신 엘뤼엔 님이시죠? 엘에게 이야기 많이 들었거든요. 뵙는 순간 딱 한눈에 알아봤어요! 설마 직접 뵙게 될 줄은 몰랐는데 이렇게 뵈다니, 정말 영광입니다!”
능청스러운 대답에 엘뤼엔은 가만히 미간을 좁혔다. 속을 들여다본 것처럼 해명하는 것이 마음에 걸리긴 했지만, 꽤 그럴 법한 변명이기도 했다. 하지만 잘못 짚었다기엔 조금 전 카노스의 이름에 반응한 것도 사실이었다.
“저어, 엘뤼엔 님?”
어리둥절하게 바라보는 순진한 엘프의 얼굴에 엘뤼엔은 속으로 생각하던 것을 중단했다. 그래, 설마 카노스가 엘프가 됐을 리가 없지. 설령 그렇다 해도 엘을 소환해서 계약할 생각 따윈 하지 않을 것이다. 그놈에게 양심이란 게 있다면 말이다.
“아버지!”
그 순간 갑자기 허공의 기류가 뒤틀리더니 푸른 머리칼의 소년이 튀어나왔다. 엘뤼엔이 이곳에 있다는 것을 알고 허겁지겁 달려온 엘이었다.
“엘, 너…….”
“안 돼, 아버지! 카노스는 아무 잘못도 없어! 내가 계약하자고 한 거야! 그러니까 죽이지 마!”
“…….”
짧은 정적이 그들 사이를 휘몰아쳤다. 시리도록 차갑고, 섬뜩하도록 고요한 공기였다.
“……어, 어라?”
갑자기 달라진 분위기에 엘은 입을 다물었다. 그는 당연히 엘뤼엔이 노엘을 만나면 그 즉시 알아보고 죽일 것이라 여겼다. 그래서 최악의 사태를 막기 위해 아직 다 회복되지 않은 몸을 무릅쓰고 달려온 거였다.
그러나 외치는 순간 갑자기 스산해지는 엘뤼엔의 표정을 보니 무언가 느낌이 이상했다. 슬쩍 고개를 돌리자 노엘이 낭패한 얼굴로 이마를 짚고 있는 것이 보였다. 그제야 일이 잘못되었다는 걸 깨달았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카노스?”
“냐하하, 저, 저기……. 그, 그게 말이지, 엘뤼엔…….”
주춤 뒷걸음친 엘프, 노엘이 어색하게 웃으며 식은땀을 흘렸다. 그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던 엘뤼엔의 얼굴에 찬란한 미소가 떠올랐다. 보는 사람이 넋을 잃게 만드는, 그야말로 달콤한 천상의 미소였다.
“죽여 버리겠어.”
물론, 그 끝은 전혀 달콤하지 못했지만.
* * *
“흑흑흑…….”
순간의 실수가 불러들인 결과는 참혹했다. 엘은 구석에 쪼그리고 앉은 채 울고 있는(정확히는 우는 척을 하는) 노엘을 바라보았다. 잠깐 사이 피멍이 든 그의 몸은 다행히 부러진 곳은 없었지만, 여기저기 보기 흉하게 부어 있는 상태였다.
“죄송해요, 카노스. 괜찮으세요?”
노엘이 무릎 사이에 묻은 얼굴에서 힐끗 눈만 들어 올렸다. 그리곤 뭐라고 말을 건네기도 전에 다시 얼굴을 파묻고 서러운 울음소리를 터뜨렸다.
“어흑! 어흐흑! 흐그그극! 어흐흑!”
“으으, 정말 죄송해요. 설마 일이 이렇게 될 줄 몰랐어요.”
“엘, 그 망할 놈은 신경 쓰지 말고 이리 와라.”
쩔쩔매는 엘을 향해 차가운 목소리가 이어졌다. 엘은 노엘 쪽은 조금도 신경 쓰지 않는 엘뤼엔을 나무라는 눈길로 바라보았다.
“너무해, 아버지. 이제 신도 아닌데 꼭 저렇게 심하게 때려야겠어?”
“저런 놈은 맞아야 정신 차린다.”
“그래도 그렇지. 인간으로 치면 이제 막 성인이 된 나이란 말이야.”
“그게 무슨 상관이지?”
흉흉한 눈빛에선 분이 풀리지 않은 기색이 역력했다. 사실 엘이 말리지 않았으면 이 정도 선에서 끝냈을 리가 없었다. 대체 이 둘의 사이는 왜 이런 걸까. 엘은 무거운 한숨을 내쉬었다. 반가워하는 건 기대하지 않았어도 애틋한 감정은 있을 줄 알았는데, 오히려 예전보다 더 싫어하는 것 같았다. 지금도 울고 있는 노엘을 바라보는 시선이 살벌하기만 했다.
“잔망한 놈. 엘프로 태어났으면 그대로 얌전히 살다 죽을 것이지, 어딜 남의 귀한 아들을 소환해? 네 저주받은 삶에 엘까지 끌어들일 생각이었나?”
“윽, 그러지 마, 아버지. 무슨 말을 그렇게 해?”
“말리지 마라, 엘. 넌 이 사태가 얼마나 심각한지 모르니까 저놈을 두둔할 수 있는 거다. 주신의 대항자는 그 자체로 세계를 좀먹는 역병 같은 거다. 네가 아무리 정령왕이라도 영향을 피하지는…….”
“주신의 대항자라니?”
순간 엘뤼엔의 얼굴에 낭패감이 스쳤다. 그는 살짝 혀를 차고는 다른 쪽으로 시선을 피했다.
“카노스에게 문제가 있다는 건 알고 있어. 트로웰이 말해 줬어. 그가 악신……에 가까운 상태일 거라고.”
“…….”
“말해줘, 아버지. 왜 카노스가 그런 상태가 된 건데? 카노스가 왜 주신의 대항자야?”
“그런 게 있다. 넌 몰라도 되는 일이야.”
“하지만…….”
“그래, 맞아. 넌 몰라도 돼, 엘.”
어느새 곁에 다가온 노엘이 스리슬쩍 대화에 끼어들었다. 엘뤼엔은 불만스러운 표정을 지었지만 그가 자리 잡고 앉는 것을 저지하진 않았다.
“으~ 너무해, 엘뤼엔. 좀 살살 때려주지. 진짜 아팠다고.”
“닥쳐. 더 패고 싶은 걸 참았으니까.”
“네에, 그저 죽이지 않으신 것만으로 감사하고 있습니다.”
천연덕스럽게 웃으며 대꾸하는 얼굴엔 역시나 울고 난 흔적이 전혀 없었다. 하지만 다친 건 사실이라 흉한 상처가 덕지덕지 달라붙은 채였다.
“치료 안 해도 되겠어요?”
“응? 아아, 그냥 내버려 둬. 치료술 쓰다간 서로 다치기만 한다?”
“……그게 카노스가 주신의 대항자라서 그렇다는 거죠?”
“뭐, 그렇지.”
“대체 왜 그렇게 된 건데요?”
“넌 몰라도 된다니까.”
“아뇨, 알고 싶어요. 알아야겠어요!”
“엘.”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안 되잖아요! 카노스는 우리를 위해 희생한 존재인데, 왜 이렇게 돼요? 오히려 가장 큰 공헌자니까 축복을 받아야 하는 거 아니에요?”
“그 반대야, 엘.”
“네?”
생각지 못한 대답을 들은 엘의 눈이 크게 떠졌다. 노엘이 씁쓸하게 웃으며 대꾸했다.
“그렇게 궁금해하니까 말해줄게. 악신의 소멸을 위해 희생하는 신은 세상을 구원하는 쪽으로 여겨지지 않아. 굳이 따지자면 오히려 악신을 위해 죽는 거지.”
“그게 무슨…….”
“일단 이거부터 짚어볼까? 악신의 소멸에 상급신이 왜 필요한 거 같아?”
이어진 질문에 엘은 선뜻 대답하지 못했다. 그리 깊이 생각해 보지 않은 부분이었지만 지금까지는 일종의 제물로 이해하고 있었다. 큰 병엔 강한 약을 써야 하는 것처럼, 악신이라는 종양을 제거할 수 있는 치료제가 상급신의 생명인 게 아닐까 하고. 노엘이 대견해하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대충 그거 맞아. 정확히 말하면 그릇의 역할에 가깝지만.”
“그릇이요?”
“악신의 힘을 전부 옮겨 담을 만한 튼튼한 그릇이 상급신밖에 없거든.”
마주한 그들 사이에 공허한 바람이 스쳤다. 엘은 조금 전에 들은 말을 다시 정리하기 위해 애썼다. 굉장히 이상한 말을 들은 것 같았다.
“각성한 악신은 주신 외에는 소멸시킬 수 없어. 중간에 정화하면 기회가 있었겠지만 카류안은 그 단계조차 지나버렸지. 그 시점에선 우리가 저지할 방법이 단 하나밖에 없어.”
“그게, 뭔데요?”
“누군가 한 명이 그의 힘을 받아들인 후에 소멸하는 거야.”
언젠가의 잔상이 스치며 눈앞이 잠시 캄캄해졌다. 엘은 떨리는 숨을 억지로 삼켰다.
“악신의 힘을 받아들인다는 건…….”
“말 그대로야. 이쪽이 악신이 되는 거지.”
주변의 공기가 급격하게 식었다. “아, 물론 지금은 소멸한 후라서 괜찮아. 그냥 평범한 엘프야.” 노엘이 웃으며 덧붙였지만 그 말을 듣는 누구도 웃지 못했다.
“다른 애들은 그런 구조까진 몰랐지만 말이야. 어쨌든 이게 쉽게 설명하면 남이 진 빚을 대신 갚는다고 나선 거거든. 이에 응하는 자체가 채무자를 위한 게 돼. 그래서 악신을 위해 죽는 거라고 한 거야.”
“주신의 대항자라는 것도…….”
“맞아, 전부 같은 원리지.”
대답하는 목소리는 발랄했지만 담고 있는 내용은 그렇지 못했다. 엘은 자기도 모르게 엘뤼엔을 응시했다. 그가 고개를 끄덕이는 것을 보고 나서야 이 말도 안 되는 상황이 정말이라는 걸 받아들였다.
“……알았어요. 솔직히 이해는 안 되지만 그렇다 쳐요. 그래도 소멸했으면 다 끝난 거 아니에요? 소멸했잖아요. 그런데 왜 환생해서까지…….”
“악신의 모든 걸 다 가져온 거라서 그래. 그의 죄업은 물론이고 악신에게 내려지는 주신의 저주까지. 이건 혼에 남는 거라 신적이 소멸해도 사라지지 않아. 이 또한 갚아야 하는 빚의 일부라고 보면 돼.”
하, 엘은 탄식인지 뭔지 모를 신음을 내뱉었다. 정작 빚을 만든 당사자는 완전히 소멸해서 사라졌는데, 다른 이가 그 죄업을 대신 갚고 있었다. 지금도 웃으며 사라지던 카노스의 모습이 눈에 선했다. 그 처참한 절망의 끝에 더한 절망이 기다리고 있을 거라곤 상상도 해본 적이 없었다. 뒤통수를 맞은 것처럼 머리가 다 얼얼했다.
“하지만, 그건 어쩔 수 없는 거였잖아요. 애초에 주신이 잠들어 있으니 소멸시키려면 다른 방법이 없었잖아요.”
“맞아, 어쩔 수 없었지. 하지만 상황이 거기까지 이르기 전에 막지 못한 책임도 있으니까.”
엘은 얼굴을 일그러트렸다. 카노스는 그를 막기 위해 수차례 시뮬레이션 해봤다고 했다. 그런데도 막을 수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도 그가 책임을 다하지 못한 게 되는 건지 묻고 싶었다. 그러나 이어진 노엘의 말이 그 질문을 가로막았다.
“내가 그 녀석을 위한 건 사실이기도 하고.”
작은 중얼거림이었지만 듣지 못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이번에야말로 할 말을 찾지 못한 엘은 고개를 떨궜다. 엘뤼엔이 그의 아들을 지키기 위해 몸을 던졌던 것처럼, 카노스 역시 제 자녀를 위하는 아버지였다. 그런 건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 그러나 돌아온 결과가 너무 아팠다.
“한심한 놈.”
엘뤼엔이 싸늘하게 쏘아붙였다.
“아이, 너무한다, 엘뤼엔. 나도 내가 한심하다는 건 알지만 말이야.”
“멍청이.”
“그렇게 말하기야? 아무리 나라도 상처받는다고.”
“닥쳐.”
옥신각신하는 모습이 과거의 평화롭던 그 시절을 떠올리게 해서 엘은 더 숨이 막혔다.
“그럼…… 정말로 카노스가 다시 신이 될 방법은 없는 거예요?”
다툼을 멈춘 두 사람이 엘을 돌아보았다. 그런 방법은 없다고, 헛된 꿈은 꾸지 말라고 말할까 봐 겁이 난 엘은 옷자락만 꾹 움켜쥐었다. 그런데 뜻밖의 대답이 돌아왔다.
“방법이 있긴 하다.”
“어? 정말로?”
“이 녀석이 다시 악신이 되면 된다.”
희망의 꽃이 피어오르기도 전에 꺾였다.
“알다시피 순전한 아이들을 죽여서 그 생피를 마시면 신이 되지. 어차피 이 녀석은 여기서 더 받을 저주도 없을 테니, 막 나가자는 심보로 저지르면 충분히 가능할 거다.”
“……그런 거밖에 없어?”
차라리 신이 될 방법이 없다고 단언한 쪽이 더 나았을 것 같았다. 실망감을 감추지 못한 엘의 표정이 절로 불퉁해졌다. 그와 함께 엘뤼엔의 다음 말이 이어졌다.
“또는, 잠들어 있는 주신을 깨우든가.”
“……어?”
스치듯 속삭이는 목소리에 고개가 번쩍 들렸다. 그제야 엘은 그의 입술이 미소짓고 있다는 걸 발견했다.
“주신을 깨우다니?”
엘뤼엔이 가볍게 어깨를 으쓱였다.
“네 말대로 이번 일은 어쩔 수 없었던 거니까. 주신이 깨어난다면 모든 일을 무효로 돌릴 수도 있겠지. 믿을 수는 없지만 주신이 이 녀석을 가장 사랑했다고 하니 그런 사정쯤은 충분히 참작할 거다.”
“저, 정말?”
“그래. 나로선 왜 이런 녀석을 아끼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니, 그게 아니라…… 정말로 그게 가능해? 주신을 깨우는 게?”
“불가능하진 않아. 그가 잠들어 있는 장소를 찾아가면 되니까.”
“그 장소가 어딘데?”
“글쎄. 그건 카노스가 알고 있겠지.”
“카, 카노스가?”
모두의 시선이 한곳을 향했다. 난처한 미소를 지은 노엘이 머리를 긁적였다.
“엘뤼엔, 너…….”
“왜? 내 말이 맞지 않나? 주신이 잠들기 전에 너에게만 장소를 알려주었다고 들었는데 말이야.”
“아니, 어떤 의미에선 틀린 말은 아닌데……. 근데 갑자기 이렇게 나오니까 좀 이상한데? 설마 너도 내가 다시 돌아가길 바라는 거야?”
“당연한 소릴 하는군.”
순순한 긍정은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었다. 오히려 웃고 있던 노엘이 놀라서 눈을 깜빡였다.
“엘뤼엔! 나 지금 감동했어! 역시 너도 나를 사…….”
“헛소리하지 마라.”
혀를 찬 엘뤼엔이 다가온 노엘의 얼굴을 한 손으로 밀어냈다. 돌격한 반동을 고스란히 돌려받은 노엘은 콧등을 세게 부딪힌 고통에 그대로 엎드려졌다. 끙끙 앓는 소리에 엘은 안절부절못했지만, 엘뤼엔은 조금도 개의치 않았다.
“인정하고 싶진 않지만 네놈의 공백이 상당히 크더군. 다들 아직도 마음을 잡지 못한 채 방황하고 있다. 덕분에 신계 전체의 업무가 제대로 돌아가질 않아. 전부 네놈 하나 때문이다.”
“큽, 아파라. 그런 거였어? 그치만 새로운 마신은 이미 정해졌잖아.”
노래하듯이 대꾸한 노엘이 바닥에 벌렁 드러누웠다. 그 태평한 모습에 엘뤼엔의 눈길이 사나워졌다.
“닥쳐. 단순한 관할 영역의 문제가 아니다. 오히려 성실한 면으로 치면 넌 크로아첸과 비교할 수도 없어.”
“하하, 그 정도야?”
“그래. 지금 이렇게 널 설득하고 있는 내 자신에게 화가 치밀어 오를 정도다. 하지만 어쩔 수 없지. 넌 잠든 주신의 대리인과도 같은 존재였으니까.”
“…….”
“그러니까 돌아와라, 카노스. 신계엔 네가 필요해.”
숨을 삼킨 엘이 긴장한 얼굴로 노엘을 주시했다. 그가 무슨 반응을 보일지 초조했다.
“음, 글쎄. 별로 내키지 않는데.”
“카노스!”
다급해진 엘이 소리쳤다. 엘뤼엔의 시선도 더 낮게 가라앉았다. 그 모든 걸 외면한 채 하늘만 바라보는 노엘은 심드렁한 얼굴이었다.
“그치만 주신을 깨우는 게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야. 내가 아는 방법이라는 것도 정확히 말하면 주신의 의식에 닿는 열쇠를 찾는 방법일 뿐이고. 무엇보다 주신이 괜히 잠든 게 아니라서 강제로 깨우면 전혀 좋을 게 없거든? 그게 더 후폭풍이 클걸? 고작 나 하나 때문에 감수할 일은 아니지.”
“카노스가 왜……!”
“네가 왜 고작이지?”
발끈한 엘이 소리치는 말을 가르고 엘뤼엔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이번에야말로 예상하지 못한 말을 들은 노엘이 눈을 멀거니 깜빡였다. 자신이 끼어들 자리가 아니라는 걸 직감한 엘도 두 손을 입에 모은 채로 조심히 뒤로 물러났다.
“음? 어?”
“내가 조금 전에 한 말은 어디로 흘려들은 건지 모르겠군. 신계에 네가 필요하다는 말은 그 알량한 머릿속에 들어갈 자리가 없는 건가?”
“아아, 뭐. 그야 한동안은 혼란이 있겠지. 하지만 그런 건 시간이 지나면 다 괜찮아지는 거잖아. 대리인 역할이라면 다른 최고신도 있고. 내가 아니라도 누구든 채우게 될 거야.”
“그럼 친우의 빈자리는 누가 해결하지?”
“뭐?”
“네 말대로 주신의 대리인은 다른 누군가가 채울 수도 있겠지. 하지만 내 친우의 빈자리는 대체하는 게 불가능하다. 이에 대한 책임은 져야 하는 거 아닌가?”
“……나한테 하는 말이야?”
“내 친우가 또 있던가?”
서로의 시선이 마주 닿았다. 당혹감에 멀뚱거리던 노엘의 눈매가 장난기를 담고 휘어졌다.
“와, 엘뤼엔. 엄청난 말을 아무렇지 않게 하네. 그러다 후회하면 어쩌려고.”
“후회라면 이미 널 알게 된 순간부터 지겹게 했다. 네놈과는 시작부터 악연이었지. 날 신으로 만든 것도 네 짓 아닌가?”
“아…….”
동그래진 눈을 깜빡이던 얼굴이 난처한 미소를 머금었다.
“알았어?”
“그럼 그걸 계속 모르고 있었을 것 같았나?”
“아니, 뭐. 언젠가 알게 될 줄이야 알았지.”
“안다면 더더욱 할 말은 없겠군. 남의 계획을 다 망쳐 놨으면서 혼자서 제멋대로 살겠다고? 어림없으니 꿈도 꾸지 마. 내가 그 꼴은 안 볼 거다. 그러니 같은 말 두 번 하게 하지 마라.”
다시금 시선이 맞닿았다. 이번엔 누구도 웃지 않았다.
“돌아와.”
노엘은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멀거니 하늘을 응시하다 천천히 눈을 감았다. 표정 없던 얼굴에 곧 희미한 미소가 그려졌다.
이윽고 카노스가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무언가를 털어버린 홀가분한 얼굴이었다. 두 팔을 뻗어 기지개를 켜는 그의 모습 위로 눈 부신 햇살이 쏟아져 내렸다.
“할 수 없지. 그렇게 날 원한다면 돌아가 줄까.”
“정말이에요, 카노스?”
“……이 재수 없는 자식.”
곧바로 얼굴이 환해지는 엘 옆에서 엘뤼엔의 음산한 목소리가 퍼졌다. 카노스는 항복하는 것처럼 얼른 손을 들어 보였다.
“그렇게 노려보지 마. 나도 쉽게 결정한 거 아니야. 말했지만 정말 어려운 과정이라니까. 이번 생에서 성공할지도 자신 없고, 몇 번을 시도해야 할지도 알 수 없어. 그건 너도 알잖아?”
굳은 표정을 푼 엘뤼엔이 가볍게 혀를 찼다. 엘은 벅차오르는 기분을 감추지 못한 채로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 카노스가 돌아오기로 결정한 것도, 그 결심을 끌어낸 사람이 다른 이도 아닌 엘뤼엔이라는 것도. 이 모든 과정이 꿈을 꾸는 것처럼 믿기지 않았다.
“그나저나 너야말로 괜찮겠어, 엘뤼엔?”
“뭐가 말이지?”
“내게 돌아오라고 한 책임은 져야지. 앞으로 꽤 신세를 질 것 같거든. 아마 지금까지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귀찮을걸? 시작하면 무를 수 없을 텐데, 감당할 수 있겠어?”
빙긋 웃는 카노스의 얼굴에 여느 때와 같은 장난기가 담겼다. 엘은 한껏 기대하며 엘뤼엔을 돌아보았다. 이런 도발에 물러서는 그는 상상도 되지 않았다. 예상대로 엘뤼엔은 당연한 소리를 들은 얼굴이었다. 너나 잘하라며 타박하는 듯한 표정 위로 도전적인 미소가 떠올랐다.
“얼마든지.”
그 당당한 대답에 엘은 웃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
새로운 막이 열리고 있었다. 모두가 행복해지는 결말일 게 분명했다.
<그리고, 어느 날의 이야기>
후드를 깊게 눌러쓴 아이는 정신없이 거리를 걸었다. 오늘은 일 년에 한 번 있는 마신의 탄신제였다. 세상이 본격적인 어둠에 잠들기 전, 절기를 기념하며 열리는 대규모 축제. 이날을 위해 몇 달을 준비해 왔다는 행사는 기다렸던 보람이 느껴질 만큼 화려하고 아름다웠다. 말을 탄 성기사들과 신관들의 거리 행진, 수시로 뿌려지는 금종이와 꽃가루들. 폭죽이 수놓은 다채로운 불꽃들이 대낮인데도 노을에 물든 듯한 붉은 하늘을 장식하는 광경은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그 행렬을 넋 놓고 따라가느라 어느 순간 보호자를 놓쳤다는 건 깨닫지도 못했다.
“에밀! 저길 봐! 교황청 행렬이야!”
신나서 소리치던 아이가 제 옆에 아무도 없다는 걸 깨달은 건 이미 한참의 시간이 지난 후였다.
“에밀?”
당황한 아이는 인파를 가까스로 빠져나왔다. 호위기사와 떨어지면 안 된다며 신신당부하던 유모의 목소리가 떠올랐다. 하지만 아무리 주위를 둘러봐도 에밀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동행을 잃어버렸을 땐 돌아다니지 말고 그 자리에 있어야 한다는 말을 기억한 아이는 일단 얌전히 기다렸다. 그렇게 얼마간 있었을까. 갑자기 눈앞에 천 자락이 덮이더니 누군가가 뒤에서 입을 틀어막았다. 힘껏 바둥거렸지만 붙잡은 힘을 조금도 이길 수 없었다. 오히려 그대로 들어 올려진 아이는 어디론가 끌려가기 시작했다.
한참 만에 멈춰섰을 땐 퀴퀴한 냄새가 풍겼다. 그제야 자신을 붙잡은 힘에서 풀려난 아이는 엉거주춤 넘어진 상태에서 주위를 둘러보았다. 어딘지는 알 수 없지만 인적이 전혀 없는 후미진 골목 안이었다. 아이는 이번엔 자신을 끌고 온 쪽을 확인했다. 인원은 전부 다섯. 모두 후드를 쓰고 있어서 얼굴이 보이지 않았다. 그에 비해 아이가 쓰고 있던 후드는 이미 벗겨진 후였다. 솜사탕처럼 보송보송한 은발과 별 조각처럼 화려한 금안이 선명히 드러났다.
“너희는 누구야? 나한테 왜 이러는 거야?”
침착한 아이의 질문에 납치범들이 휘파람을 불었다.
“거 꼬마답지 않게 되게 침착하네. 그 핏줄인 건 맞나 봐.”
“그러게. 굳이 확인할 필요도 없겠는걸?”
“은발에 금안. 외모만 봐도 딱이잖아.”
나누는 대화가 이미 범상치 않았다. 아이는 마른 침을 삼켰다. 차라리 우연히 미아가 된 꼬마를 발견한 불량배들의 소행이길 바랐는데, 아무래도 그런 것과는 거리가 멀어 보였다. 호위기사와 떨어지게 된 것도 단순한 우연만은 아닐 터였다.
“꼬마, 리솔트 가문의 도련님 맞지?”
짐작이 맞다는 걸 알게 된 아이의 얼굴이 굳어졌다. 그 표정에서 정답을 읽어낸 납치범들이 히죽 웃었다.
“미안하지만 도련님이 어른이 되는 걸 원하지 않는 분이 계셔서 말이야. 도련님은 오늘 여기서 죽어주셔야겠어. 꼬마를 죽이는 취미는 없는데, 도련님 목에 걸린 돈이 워낙 거금이라 말이지. 미안하게 됐어.”
“누구야? 대체 누가 시킨 거야?”
날 때부터 귀한 별을 타고났다는 아이는 친황파의 수장인 리솔트 공작 가문의 장자이기도 해서 사방에 적이 많았다. 정적 가문들은 물론 제국을 경계하는 나라에서도 아이를 제거하려고 혈안이었다. 그래서 평소엔 엄중한 보호를 받아왔는데, 하필 조르고 졸라 간신히 허가를 받아낸 외출에서 이런 문제가 생길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평범한 옷을 입고 수행원을 단출하게 하면 오히려 눈에 띄지 않을 거란 계산이 완전히 어긋난 셈이었다.
“그거까진 알 거 없고. 최대한 빨리 끝내줄게.”
앞으로 성큼 나선 남자가 장검을 뽑아 들었다. 아이는 주춤거리고 뒤로 물러섰다. 닿지 않는다는 걸 뻔히 알면서도 마음속으로 호위기사의 이름만 계속 불렀다. 아이는 또래보다는 명석한 편이었고 타고난 재능도 뛰어난 편이었다. 하지만 아직 어른을 상대할 무력은 없었다.
“그럼 잘 가라.”
남자가 검을 들었고, 아이는 눈을 질끈 감았다. 그런데 한참을 기다려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당황해서 눈을 뜬 아이는 이내 자신의 앞에 누군가가 서 있는 걸 발견했다. 긴 망토에 후드까지 덮어쓴 차림이었다.
‘에밀?’
호위기사인가 싶어 얼굴이 밝아진 아이는 상대가 그의 기사치고는 체구가 작다는 걸 알아차렸다. 아마도 지나가던 길에 누군가가 상황을 목격하고 끼어든 것 같았다. 납치범들도 갑자기 나타난 상대가 당황스러웠는지 주춤거리고 있었다.
“넌 뭐야?”
“내가 묻고 싶은 말인데. 너흰 뭔데 얠 죽이려고 해?”
이어진 음성은 청량한 기분이 느껴질 만큼 맑았다. 그리 낮지도, 높지도 않은 음색이라 목소리만으론 성별을 가려내기 어려웠다.
“이렇게 어린애가 뭘 잘못했다고. 아주 나쁜 사람들이네.”
“상관하지 말고 죽어!”
검을 들고 있던 남자가 곧바로 덤벼들었다. 목격자를 제거할 겸 같이 처리할 작정인 것 같았다. 하지만 오히려 쓰러진 건 덤벼든 쪽이었다. 검을 들지도, 마법 같은 이능력을 쓰지도 않았는데 남자가 뻣뻣하게 굳더니 그대로 바닥에 엎어졌다. 뜻밖의 사태에 남자의 동료들이 모두 당황해서 주춤거렸다.
“또 덤빌 사람?”
태연한 목소리에 그들은 빠르게 시선을 교환했다. 그리곤 이렇다 할 신호도 없이 곧바로 공격해 들어왔다. 이런 일에 무척 익숙한, 훈련된 전사라는 걸 여실히 드러낸 순간이었다. 하지만 결과는 신통치 않았다. 아이는 대상에 닿기도 전에 낙엽처럼 우수수 떨어지는 이들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눈을 뜬 채 꿈을 꾸는 거 같았다.
“괜찮아?”
그래서 자신을 구해준 이가 그렇게 물어오는 말에도 차분히 대답할 수가 없었다. 한참 만에야 그가 자신을 도와줬다는 걸, 덕분에 무사히 살아남았다는 걸 깨달은 아이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구, 구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아이구, 예의도 바르네. 기특해라.”
정체를 알 수 없는 이는 아이를 귀여워하는 걸 숨기지 못했다. 그래서일까. 낯선 사람은 무조건 경계하는 편이었지만, 이상할 정도로 그에겐 경계심이 일지 않았다. 그냥 가슴 속이 간질간질했다. 단지 자신을 구해준 사람이라서는 아니었다. 마치 오래전부터 알았던 것 같은 친숙한 기분이었다.
‘왜지? 모르는 사람인데.’
아이가 이해할 수 없는 기분에 혼란스러워하는 동안 상대는 아이가 다친 곳이 없는지 꼼꼼히 살폈다. 그리곤 옷매무새를 다듬어주고 벗겨진 후드를 씌워준 다음에야 몸을 일으켰다. 이윽고 아이 앞으로 하얀 손이 내밀어졌다.
“가자. 보호자가 있는 곳까지 데려다줄게.”
순간 깊게 눌러쓴 후드 안으로 가려져 있던 그의 모습이 보였다. 화사한 물색의 머리카락, 바다처럼 새파란 눈동자가 보석처럼 아름다웠다. 부드러운 미소를 머금은 얼굴엔 그리운 감정이 가득했다. 그게 누구를 향한 감정인지도 모르면서, 아이는 홀린 듯이 그가 내민 손을 붙잡았다.
납치됐을 땐 한참 동안 끌려왔던 것 같은데, 막상 인파가 가득한 거리로 다시 돌아오기까진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아이에게 일어날 뻔한 불행을 모르는 거리는 여전히 축제 행렬에 흥분해 있었다. 그 사이에서 아이는 곧 익숙한 목소리를 들었다.
“도련님!”
호위기사인 에밀이었다. 그가 혼비백산한 얼굴로 달려오고 있었다. 아는 얼굴을 발견한 아이가 겨우 안도할 때였다.
“그럼 잘 가, 이사나. 다음에 또 보자.”
“……어떻게 내 이름을?”
돌아보는 순간 아이는 숨을 삼켰다. 바로 조금 전까지 옆에 있던 사람이 어느새 사라져 있었다.
“아아, 도련님! 무사하셔서 정말 다행입니다! 갑자기 사라지셔서 얼마나 놀랐는지 모릅니다!”
그사이에 다가온 호위기사가 아이를 끌어안고 다급히 살폈다. 익숙한 손길을 가만히 받아들이다가 아이는 다시금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도련님? 왜 그러십니까?”
“에밀, 방금 내 옆에 있던 사람 못 봤어?”
“예? 누구를 말씀하시는 겁니까?”
“날 구해준 사람이었는데……. 내 중간 이름을 알고 있었어.”
태어날 때 황제로부터 하사받은 이름이었다. 역대 가장 훌륭했던 황제의 이름이라고 들었다. 리솔트 가문과 더 큰 결속을 다지기 위한 황제가 아이를 황가의 일원으로 맞이하고 싶다는 뜻을 내비친 것이기도 했다. 과분한 것도 과분한 거지만, 덕분에 정적들을 더욱 자극하는 결과를 낳기도 해서 아이는 그 이름을 내심 부담스러워했다.
평소 혼날 때 외엔 단독으로 불릴 일도 거의 없는 이름이었는데, 그 사람은 당연한 듯이 아이를 이사나라고 불렀다. 그리고 그게 왠지 기뻤다. 자신을 잘 아는 듯한 그 사람이 너무 궁금했다. 하지만 에밀은 다른 사실에 더 집중했다.
“구해주다니요? 지금 누군가가 도련님을 구해 줬다고 하신 겁니까? 대체 무슨 일이 있으셨던 겁니까!”
“아…….”
짧은 순간 아이의 머리가 빠르게 돌아갔다. 솔직하게 전부 다 말하고 은인의 정체를 같이 탐구하느냐, 그냥 모르는 척하느냐. 결론은 금방 내려졌다. 축제에 나갔다가 납치됐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앞으로 다시는 이런 식으로 거리를 나오지 못할 게 분명했다.
“아무것도 아냐. 이만 가자.”
“도련님! 제발 말씀해 주십시오! 도련님!”
아이는 애원하는 소리는 모르는 척하며 걸었다. 자신을 구해준 사람에 대한 건 개인적으로 알아볼 작정이었다. 흔치 않은 푸른 머리칼이었으니 누구든 아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못 찾게 된다고 해도 그리 실망하진 않을 것 같았다.
‘다음에 또 보자고 했어.’
그러니까 다시 만날 수 있을 거다. 그게 언제든. 그런 확신이 들었다. 금방 다시 만날 수 있기를. 그때는 제대로 용기 내어 대화를 나누고 싶었다. 정체가 뭔지, 이름이 뭔지도 묻고 싶었다. 그 생각만으로도 가슴이 크게 벅차올랐다.
참 이상했다. 납치된 데다가 죽을 뻔했는데 무섭거나 불안하기는커녕 기분이 좋기만 했다. 머릿속에는 온통 그 사람의 웃는 얼굴만 가득했다. 분명 처음 보는 얼굴이었는데 왜 이렇게 그립고 반가운 기분이 드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오랫동안 보고 싶었던 사람을 드디어 만난 것 같았다.
외전 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