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전. 1화
1.
처음 느낀 건 약간의 호기심. 새로 등장한 이변이 어떤 상황의 변수로 작용할지도 모른다는 약간의 불안과 흥미. 그리고 일말의 기대감.
시작했을 때만 해도 가벼운 놀이에 임하는 기분이었다. 만족스러운 결과가 나오지 않으면 언제든 선뜻 그만둘 수 있는. 한쪽에만 일방적으로 유리한 게임. 승패를 가르는 무게추는 분명 저를 향해 기울어져 있었을 터였다. 그게 틀어졌다고 느낀 건 언제부터였을까.
콰직―
눈앞에서 믿기지 않는 소리가 울렸다. 차가운 금속이 살을 꿰뚫고 단숨에 파고 들어가는 소리였다. 느릿하게 눈을 깜빡였다. 일어나서는 안 되는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으…….”
작게 앓는 신음을 흘린 그가 제 가슴에 스스로 박은 검을 뽑아냈다. 피가 튀면서 상체에 짙은 색의 물기가 번져나갔다. 무서울 정도로 빠른 속도인데 본인은 그 사실을 인지하지도 못하는 것 같았다. 오히려 재차 다시 찌르려는 걸 간신히 붙잡아 막아 세웠다. 마주친 눈동자가 고통에 흐려진 채로 응시해 왔다. 방해하는 이유를 묻는 시선이라 머릿속이 어지러웠다.
“너 이게 무슨……. 어떻게 이런…….”
이게 대체 무슨 짓이야. 어떻게 스스로 심장을 찌를 생각을 하는 거야. 죽어야 할 건 네가 아니잖아. 그런데 대체 왜 네가!
머릿속을 가득 채운 말들이 문장으로 떨어지지 않았다. 이럴 때도 아니었다. 하필 급소를 찌르다니. 인간이 급소를 다치면 얼마나 버틸 수 있었지?
……안 돼.
거기까지 생각하니 절로 고개가 저어졌다. 여기서 이렇게 죽으면 안 돼. 그가 죽는다니, 그건 말도 안 돼.
엘퀴네스.
마비된 머리에 오직 한 단어만 떠올랐다. 엘퀴네스가 올 때까진 어떻게든 버텨야 했다. 생각이 미치기 무섭게 혹시 몰라 늘 지니고 다니던 회복제를 환부에 뿌렸다. 순간 그의 입에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 끔찍한 고통도 잘 버티던 이가 그대로 발작을 일으키는 것에 온몸이 차게 식었다.
“엘!”
속박에서 풀려난 유니콘이 뛰어와 몸부림치고 있는 그를 붙잡았다. 자신은 차마 건드릴 수 없던 몸을 끌어안고 부축하며 상태를 살피기 시작했다.
“엘이 왜 이래! 너 대체 무슨 짓을 한 거야!”
“……회복제를 뿌렸어. 상처가 너무 깊어서, 재생 속도가 따라가지 못해서 그런 거야.”
“회복제! 아, 그렇지! 나도 회복제가…!”
“그만둬. 이미 정량을 다 썼어. 더 뿌려봤자 여기서 더 좋아지진 않아. 고통만 커질 거야.”
“제기랄!”
서둘러 회복제의 뚜껑을 열어젖히던 손이 멈췄다. 눈물이 범벅된 채 돌아보는 얼굴에 핏발이 형형했다.
“엘이 죽으면 너도 죽일 거야!”
“알아들어? 절대 가만히 안 있어! 내 모든 걸 걸고! 반드시 널 죽여버릴 거야!”
떠드는 소리에 귀를 기울일 정신은 없었다. 지금은 고통스러워하는 얼굴만 보였다. 눈을 뜬 채 악몽을 꾸는 것 같았다. 그때와 비슷했다. 아직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끊어낼 수 있는 거라고 믿고 있었을 때. 그걸 확인하기 위해 제 손으로 그를 공격했던 날. 충분히 예상했던 광경인데도 정작 피를 철철 흘리며 아파하는 모습에 손끝이 차가워졌다. 분풀이가 될 줄 알았는데 하나도 기분이 나아지지 않았다. 오히려…….
“비켜.”
서늘한 목소리에 정신이 들었다. 멍하니 고개를 들자 익숙한 푸른색이 보였다. 저 냉정한 얼굴을 반갑게 여겨본 건 처음이었다. 당연히 오리라는 건 알았지만 안도감이 차올랐다. 왔구나. 살았어. 이제 살릴 수 있어.
그제야 확실히 깨달았다.
난 그가, 엘이 죽는 걸 바라지 않았다.
쿠웅!
고요한 사무실에 요란한 소리가 울렸다. 깜짝 놀라 돌아본 직원들은 소음이 일어난 곳을 발견하곤 더 기괴한 표정이 됐다. 존경(이라고 쓰고 두렵다라고 읽는)해 마지않는 그들의 마스터가 책상에 이마를 박고 있었다.
“아, 깜짝이야. 거, 마스터. 그래 갖고 어디 부수겄소?”
부장이 농을 건네자 마스터의 뒤쪽에 있던 직원이 창백한 얼굴로 바쁜 손짓을 보냈다. 그 동작에서 책상이 완전히 박살 났다는 걸 알아차린 부장이 머쓱한 표정을 지었다.
“거, 머리는 괜찮으시오?”
“……시끄러워.”
일격에 폐품이 되어버린 원목 책상과는 달리 고개를 드는 마스터의 이마엔 작은 상흔도 없었다. 직원들은 새삼 감탄했지만 그만큼 숨을 죽였다. 척 봐도 오늘 마스터는 기분이 좋아 보이지 않았다. 이럴 때 잘못 걸리면 조금 전의 원목 책상과 같은 절차를 밟을 게 분명하니 몸을 사려야 했다.
‘대체 저 괴력은 어디서 나오는 건지.’
직원들은 새삼스럽게 저들의 마스터를 흘끔거렸다. 약간의 곱슬기를 지닌 짙은 흑발, 햇빛이 스며든 듯한 구릿빛 피부. 황금을 녹여낸 듯한 찬란한 눈동자. 반듯하고 훤칠한 체격은 거적때기를 걸쳐도 그럴듯하게 보이게 했다. 외모만 보면 동화책에서나 묘사되는 왕자님이 따로 없었다. 하지만 실체를 아는 사람들은 결코 그런 몽글몽글한 감상으로 그를 바라보지 못했다. 그는 왕자라기보다는 황제였다. 심지어 국경도 존재하지 않는 밤을 다스리는 제왕이었다. 금융계의 큰 손이자 유통업계의 대부, 대륙에서 가장 큰 정보 길드 <테네브>의 마스터.
출신지도 나이도 신분도 불명. 알려진 건 오직 ‘매튜’라는 이름뿐. 어느 날 갑자기 혜성처럼 나타나 하루아침에 지하 세계를 평정하고 실권을 장악한 그는 암흑가의 살아 있는 전설이었다. 하나를 보면 열을 아는 비상한 머리나, 마치 사람의 속내를 들여다보는 것 같은 통찰력도 대단하지만, 그가 전설이 될 수 있던 바탕엔 무력의 비중도 제법 컸다. 권법과 검술에 능통한 오러 능력자. 세상에 공표하지만 않았을 뿐 소드 마스터라는 것도 기정사실이었다. 그 강함에 감화되어 따르는 이들도 많았지만 무서워서 따르는 이들도 많았다.
“젠장.”
그런 그가 흉흉한 얼굴로 입술을 잘근잘근 씹고 있으니 살얼음판이 따로 없었다. ‘오늘 마스터 왜 저러시냐?’ ‘몰라, 아까까지만 해도 아무렇지 않으셨는데.’ ‘누가 보고서 망쳤냐?’ ‘마스터 오늘 보고서는 아직 읽지도 않으셨어.’ 서로 눈치만 보던 직원들의 시선이 급기야 부장을 향해 모여들었다. 그래, 이런 거 하라고 월급 더 받는 거지. 차마 부하들의 애타는 눈길을 외면할 수 없었던 부장이 결국 다시 총대를 맡고 나섰다.
“마스터, 무슨 문제라도 있소?”
“뭐?”
“아, 아니, 기분이 별로 안 좋아 보이셔서 하는 말이요.”
찔끔한 부장이 저도 모르게 시선을 회피하며 중얼거렸다. 그 모습을 가만히 노려보던 마스터 매튜―트로웰이 이내 한숨을 내쉬었다.
“별 일 아냐. 잠깐 잊고 있던 예전 기억이 떠올라서 그래. 신경 쓰지 마.”
한층 누그러진 목소리에 직원들의 표정이 밝아졌다. 업무적인 문제가 아니라는 점을 확인한 부장도 안도했다.
“대체 무슨 기억이길래…… 아, 혹시 그런 종류요?”
“그런 종류?”
“왜 불쑥 생각나서 몸부림치게 만드는 그런 거 말이요. 요즘 애들은 그런 걸 두고 수치사 한다고 하던데.”
“…….”
“이야, 우리 마스터는 너무 빈틈없이 완벽해서 가끔 감정이란 게 아예 없는 거 아닌가 싶을 때도 있었는데. 이제 보니 인간적인 부분이 있기는 했구만? 솔직히 안심했소.”
“시끄러워.”
애초에 감정을 인간의 전유물처럼 여긴다는 점에서부터 참 인간다운 관점이었다. 불멸자는 감정이 없는 게 아니다. 보이는 게 더 많기에 그만큼 고려하는 사안도 많은 것뿐. 감정 자체가 주신에게서 나온 건데 왜 인간들만 누린다고 생각하는 거야. 반박할 말이야 차고도 넘쳤지만 그런 점들을 지적하는 것도 귀찮았던 트로웰은 그냥 한마디로 마무리 지었다. 거기서 멈췄다면 모두가 평온한 결말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기세를 탄 부장은 눈치가 없었다.
“하하, 너무 쑥스러워하실 거 없소. 나도 자다가 이불 몇 번 걷어차 봤지.”
“…리가스 부장.”
“네, 마스터.”
“시끄럽다는 말이 무슨 의미인지 모르겠어?”
생긋 웃는 얼굴에 부장―리가스는 얌전히 입을 다물었다. 찬기가 들어찬 사무실은 조금 전보다 더 살벌해졌다. 부하 직원들은 기가 막힌다는 시선으로 리가스를 바라보았다. 상황을 더 악화시키면 어쩌자는 거냐는 타박이 고스란히 녹아 있는 시선에 리가스는 아무런 변명도 할 수 없었다.
사무실 분위기가 처참해져 있건 말건 트로웰은 다시금 한숨을 내쉬었다. 얼굴을 쓸어내리는 손이 조금씩 떨리고 있었다. 머릿속은 차가운데 속이 홧홧하게 끓어올랐다.
‘미쳤어.’
4천 년 전 그 시절의 기억은 거의 흐릿했고, 그나마도 몇 가지 장면만 알고 있을 뿐이었다. 그것만으로도 못 할 짓을 했다는 건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지만 조금 전 떠오른 기억은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섰다.
‘대체 무슨 짓을 한 거야.’
엘이 제 눈앞에서 자해했다. 심장에 검을 꽂아 넣었다. 그렇게 할 수밖에 없도록, 자신이 그를 몰아붙였다. 설마 이런 상황까지 있었을 줄은. 이에 관한 언급은 그 얄미운 유니콘에게서조차 듣지 못했다. 아니, 애초에 몰랐다고 할 수 있을까. 그때의 자신을 멈추게 한 엘이 평범한 방법을 썼을 리가 없다는 걸 정말 짐작하지 못했다고?
손끝이 다시 떨렸다. 더는 견딜 수 없는 기분에 트로웰은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동시에 침울하게 기죽어 있던 리가스가 번쩍 고개를 들었다.
“마스터? 어디 가시는 거요?”
“잠시 나갔다 올게.”
“자자자, 잠깐 기다리시오!”
그 순간 리가스가 두 팔을 벌리고 그의 앞을 가로막았다.
“나도 데려가시오!”
“뭐?”
“어딜 가시는 건지 모르겠지만, 나도 같이 가십시다!”
“개인용무야.”
“그래도 안 되겠소! 그렇게 말하고는 또 몇 년간 안 돌아오시려는 거 아니오!”
울먹이는 목소리에 트로웰은 서늘히 응시하던 걸 멈추고 잠시 당황했다. 이 순간엔 모든 길드원의 뜻이 리가스와 같았다. 트로웰은 잠시 기가 막힌 얼굴로 모두를 돌아보았다.
“또 그 얘기야? 2년이나 지났잖아.”
“2년이나 라니! 아직 2년밖에 되지 않은 거요!”
“맞아! 그 정도로는 신뢰를 회복하기 어렵다고요!”
“옳소!”
사방에서 터져 나오는 호응에 트로웰은 잠시 이마를 짚었다.
암흑가를 쥐락펴락하는 거대한 실세. 목적을 위해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기로 악명 높은 테네브에는 아무도 해서는 안 되는 금기어가 존재했다. 그건 바로 ‘잠시 나갔다 온다’는 말이었다. 그 말과 함께 외출한 길드 마스터가 무려 5년이나 돌아오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평소에도 워낙 행적이 신묘한 사람이긴 했지만 설마 그렇게 오랫동안 자리를 비울 거라곤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 그 사이에 길드가 와해될 뻔한 위기를 얼마나 숱하게 넘겨왔던가. 아무렇지 않게 마스터가 다시 나타났을 땐 모두가 그 자리에서 오열할 정도였다. 그들에겐 악몽 같은 시절이었다.
사실 트로웰도 그땐 그렇게 될 줄 미처 예상하지 못했었다. 미래를 들여다보는 혜안도 짚어내지 못하는 영역이 있었고, 완벽하게 그쪽에 해당하는 사안이었다.
생각해 보니 그날도 유쾌하지 않은 기억이 떠올랐던 날이었다. 미네르바가 그의 인간 계약자에게 배반당했던 날. 넋을 잃고 망연자실해져 있는 엘에게 내기의 끝을 고하던 기억. 그 속에서 자신은 이미 절망하고 있는 그의 목을 틀어잡고 있었다. 그를 죽이려고 했다. 참담한 마음을 견딜 수 없어 잠들어 있는 엘의 얼굴이라도 봐야겠다는 생각으로 물의 영역으로 향했는데, 그곳에서 엘뤼엔을 만났다.
“신계의 승인이 떨어졌다.”
오래전부터, 정확히는 엘의 계약자가 사망하기 이전부터 엘뤼엔은 엘의 혼을 다시 현대로 불러올 방법을 모색해왔었다. 그때쯤엔 데리러 갈 방안을 찾아내고 신계의 허가만 기다리던 상황이었다. 빈 육체로 버티는 것도 한계에 달한 상황이었기에 신계에서도 사안 자체는 긍정적으로 여겼다. 아크아돈에 일어날 재앙을 막기 위해서라도, 한시라도 빨리 엘퀴네스의 혼이 제자리에 돌아와야 했다. 다만 신이 직접 움직임으로써 미칠 영향력도 고려해야 했고, 수많은 인과가 얽힌 일이다 보니 밟아야 하는 절차가 많았다. 그 지루하고 복잡한 과정이 드디어 끝난 것이다.
“힘을 일부 봉인하고 과거의 일에 함부로 개입하지 않기로 맹약했다. 이제 엘을 데리러 갈 수 있어.”
“나도 같이 가.”
그렇게 말할 수밖에 없었다. 충동적인 결정도 아니었다. 엘뤼엔이 엘을 데리러 가야겠다고 결정할 때부터 그 역시 같은 생각을 품고 있었다. 엘이 위기에 처해 있다면, 누군가가 그를 도와야 하는 상황이라면, 그 누군가엔 반드시 자신이 들어있어야 했다. 다른 이에게만 맡겨두고 지켜보고 있을 생각은 조금도 없었다.
하지만 바로 출발해야 할 만큼 일정이 촉박할 줄은 몰랐다. 준비할 시간이 조금이라도 있었다면 벌여둔 유희의 뒷수습 정도는 해뒀을 거다. 최소한 잠시 나갔다 온다는 말을 마지막으로 하진 않았을 건 분명했다. 그날을 소홀히 넘긴 대가가 이렇게 돌아오고 있었다.
“이번엔 정말 잠깐 비우는 거야.”
“못 믿겠소!”
“너 말이야…….”
“마스터가 자리를 비운 동안 우리가 길드를 지키기 위해 얼마나 개고생한 줄 아시오? 내가 죽으면 죽었지 그 짓은 또 못하겠소! 차라리 날 죽이고 가시오!”
“아, 그래?”
트로웰의 고개가 살짝 기울어졌다. 죽이라고 하면 못 죽일 것 같냐는 의미를 고스란히 담은 시선에 리가스의 얼굴이 뻣뻣해졌다. 생각해 보니 그들의 마스터는 그런 거 안 봐주는 사람이었다. 대체 어쩌려고 그랬어요, 부장! 지켜보던 직원들의 얼굴도 창백해졌다. 그러나 다행히도 리가스는 명운이 좋은 편이었다.
“마스터, 마스터가 알아보던 거 드디어 찾은 것 같……얼래? 이 분위기는 뭐래요?”
때마침 안으로 들어서는 사람으로 인해 분위기가 환기됐다. 트로웰은 리가스 부장을 노려보던 시선을 틀어 얼떨떨한 얼굴로 서 있는 여성을 바라보았다.
“무슨 일이야, 루키아.”
“아? 아, 그 책을 찾은 거 같아서요.”
“책?”
“마스터가 전에 언급했던 동화 말이에요. 그거 실린 책이요.”
트로웰의 눈동자에 이채가 서렸다. 명백히 떠오른 흥미에 긴장하고 있던 테네브의 모든 직원이 안도했다. 다행히 시신이 실려 나가는 일은 면한 모양이었다.
“바로 확인할 수 있어?”
“네, 그럼요. 이 책이에요.”
돌아가는 상황은 모르지만 대강 눈치로 파악한 루키아가 얼른 가방에서 책 한 권을 꺼내 들었다. 표지를 확인한 트로웰의 표정이 한결 더 풀어졌다.
“어디서 찾았어?”
“아라드 왕국 델몬 자작가의 서고에서요. 가주가 사망하면서 오랫동안 방치되어 있던 서고를 이번에 대대적으로 정리했다는데, 그중에 있던 거예요.”
“잘했어, 루키아. 수고했어.”
“헤헤, 뭘요. 내용은 안 보셔도 되겠어요?”
“확인 안 해도 돼. 이거 맞아.”
책을 챙겨 넣는 트로웰의 표정이 밝았다. 칭찬에 인색한 마스터가 흡족해하니 직원들의 표정도 흐뭇했다.
“그럼 잠시 나갔다 올게.”
물론 그 순간은 그리 오래 가지 않았다.
“잠시…요?”
공기가 다시 경직됐다. 루키아가 자기도 모르게 굳은 얼굴로 반문했다. 리가스의 얼굴 역시 다시금 비장해졌다. 가볍게 한숨을 내쉰 트로웰은 그가 입을 열기 전에 바로 뒷말을 덧붙였다.
“……저녁 안으로는 돌아올게.”
음울하던 사무실 안에 그제야 평화가 찾아들었다. 햇빛을 받는 병아리들처럼 한순간에 노곤해진 얼굴들을 보며 트로웰은 자기도 모르게 피식 웃었다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왠지 갈수록 물러지는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