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정령왕 엘퀴네스-592화 (592/608)

제592화

“헐, 누구지? 누가 이런 기특한 짓을?”

“글쎄요. 어쨌든 엘이 바라던 대로 된 것 같군요. 어서 가보십시오. 누군지는 몰라도 저 용기 있는 드래곤에게 축복이라도 해주셔야 할 것 아닙니까?”

“어어, 알았어! 미네, 다녀올게!”

“좋은 결과 있으시길.”

손을 흔드는 미네를 일별하고 곧바로 소환진에 몸을 실었다. 라미아스한테 들키기 전에 얼른 만나서 계약해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그렇게 도착한 곳은 울창한 숲에 둘러싸인 작은 호수 위였다. 그런데 나무들의 형태가 평범한 숲과는 조금 달랐다. 비정상적으로 느껴질 만큼 거대하고 큰 줄기, 가지들은 접시처럼 넓게 펼쳐져 있었는데 그 위에 나무줄기로 엮어 지은 듯한 집들이 한두 개씩 얹혀 있었다. 마치 거꾸로 자란 나무에 열매가 맺힌 것 같은 모습이었다.

거대한 나무들은 내가 서 있는 호수를 중심으로 둥글게 늘어져 있었다. 나무들 사이엔 줄다리를 놓아 서로 오갈 수 있게 해두었다. 내가 알기로 이런 가옥 구조는 노멀 엘프라 불리는 숲 엘프들의 특징이었다. 즉, 엘프 마을에서 나를 소환했다는 소리였다.

‘왜 이런 곳에서?’

소환 장소야 아무래도 상관없지만 조금 당황스럽긴 했다. 심지어 구경이라도 나왔는지 호수 앞에 엘프들이 잔뜩 몰려 있었다. 다들 놀라서 얼이 빠진 얼굴들이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세상에, 크레아시여.”

사방에서 앓는 듯한 신음 소리가 들려왔다. 소환 장소가 좀 생뚱맞기는 하지만 엘프의 창조신까지 찾을 일인가. 그래도 여기까진 그러려니 했다. 정령왕을 처음 봤으면 놀랄 수도 있지.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저주다! 신의 저주다!”

엥?

“우리 일족에 저주가 임한 거야!”

누군가 발악적으로 외친 말에 주변의 공기가 크게 요동쳤다. 혼란과 공포에 질린 표정들을 보며 잠시 할 말을 잃었다. 이거 지금 나보고 한 말인 거 맞지?

“……시비를 거는 방식이 참 참신하네.”

아닌 밤중에 홍두깨도 유분수지, 내가 뭘 했다고 이런 반응이실까? 하물며 정령왕을 저주 취급하다니 참 용감하기도 해라. 삐딱하게 웃으니 그제야 엘프들도 자신들이 무슨 짓을 저지른 건지 깨달은 것 같았다. 그렇지 않아도 안색이 좋지 않던 얼굴들이 더 핼쑥해졌다. 그때 웃음기를 머금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렇게 인상 쓰지 마. 너한테 하는 말 아니니까.”

“뭐?”

돌아보니 얼어 있는 엘프들 사이로 태연하게 웃고 있는 엘프 하나가 보였다. 이제 갓 성년은 되었을까. 새순을 닮은 연두색 머리카락에 민들레 꽃 같은 눈동자가 봄처럼 따스한 느낌을 주는 외모였다. 하지만 내가 눈여겨본 것은 다른 부분이었다. 내 발밑에 펼쳐져 있는 소환진의 기운이 그와 연결되어 있었다. 즉, 그가 날 소환했다는 뜻이었다.

“뭐지? 엘프로 유희 중인 드래곤?”

무심코 중얼거린 말에 연두색 엘프가 생긋 웃었다.

“아니, 그냥 엘프인데.”

“……농담이겠지.”

“진담이라면?”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적어도 일반적인 상식으로는 그렇다. 엘프는 정령과 상성이 좋은 편이지만 절대로 정령왕을 소환하지 못한다. 그들의 조화의 일족이기 때문이다. 만물의 이치에 따르며 세상의 균형과 순리를 지키는 종족. 그렇기에 결코 기적을 일으킬 수는 없는 종족. 누구나 다 알고 있는 엘프의 가장 기본적인 특성이었다. 그런데 지금 그 엘프가 나를 소환했다고?

누구를 바보로 아느냐고 헛웃음을 지으려 했다. 그런데 주변의 반응들이 아무래도 마음에 걸렸다. 보통 저주받았다고 여기는 것엔 그만한 이유가 있는 법이지 않나? 가령 일어나선 안 되는 일이 일어났다거나, 같은.

“헐. 설마. 정말로?”

“보면 알잖아. 근데 계약 안 해? 아무리 나라도 여기서 더 소환 상태를 유지하는 것은 무린데.”

“아참, 그렇지.”

“훗, 여전하구만.”

“뭐?”

날 언제 봤다고 여전하대? 황당해서 바라보자 눈이 마주친 엘프가 웃으며 고개를 갸웃했다. 왜 그러냐고 묻는 얼굴이었다. 내가 잘못 들었나? 아닌데, 분명 여전하다고 했는데. 찜찜한 기분을 삼키며 일단 계약서를 펼쳐 들었다.

“정말 엘프야?”

“그렇다니까.”

“계약 의사는 굳이 확인하지 않아도 될 것 같고. 이름은?”

“노엘?”

자기 이름 아닌가? 왜 의문문이야?

귀신에 홀린 것도 아닌데 아까부터 이해가 되는 부분이 하나도 없었다. 이 와중에도 무의식은 착실히 계약 절차에 따라 그의 이마에 문장을 새기고 있었다. 반듯한 이마에 새겨진 눈꽃 결정 문양을 보고 나니 그제야 퍼뜩 정신이 들었다.

“앗, 근데 이거 계약하면 안 되는 거 아니야?”

“이미 해놓고서 무슨 소리야?”

“하지만 엘프인데!”

“후회해도 소용없어. 이미 늦었걸랑.”

이마에 새겨진 물의 인장을 내보이며 연두색 엘프, 아니 노엘이 싱긋 웃었다. 나도 싱긋 웃었다. 네가 아직 계약파기를 할 수 있다는 걸 모르는구나. 정령왕과의 계약에선 무조건 정령 쪽이 갑이란다.

“물의 왕이여, 지금 큰 실수를 하셨소이다.”

하지만 그 말을 하기도 전에 다른 목소리가 끼어들었다. 돌아보니 엘프들 사이에서 한 여자가 걸어 나오고 있었다. 복장이나 분위기나 지도자 계급으로 보이는 사람이었다. 다른 엘프들처럼 그녀 또한 얼굴이 창백했다.

“노엘! 네가 기어코!”

부릅뜬 눈으로 노엘을 노려본 여자가 날카롭게 소리쳤다.

“주어진 순리를 어기고 균형을 깨트리다니! 네놈이 드디어 미쳤구나! 네가 기어코 우리 일족을 파멸시키려는 거야!”

꿈에서라도 나올까 걱정될 만큼 섬뜩한 목소리였다. 하지만 노엘은 간지럽다는 듯이 귀를 후비기만 했다.

“거참 답답한 소리를 하네. 재앙이 태어났으면 그것 또한 순리 아니겠어? 왜 입에 단 것만 삼키려고 해.”

“뭐, 뭐라고!”

“화내지 마. 혈압은 만병의 근원이야. 이제 젊지도 않은데 나이도 생각해야지.”

“네 이놈!”

대체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건지 전혀 모르겠다. 이게 대체 무슨 상황인 거야?

“가자, 엘.”

“어? 응?”

다음 순간 장난스럽게 웃은 노엘이 내 팔을 잡아끌었다. 당기는 힘을 따라 얼결에 뛰기 시작했다. 돌발 상황에 뒤쪽에서 엘프들이 당황하는 것이 느껴졌다.

“쏴, 쏴라!”

처음엔 당황해서 아무 말이나 내뱉는 거겠거니 했다. 그런데 정말로 곧 화살이 날아들었다. 반사적으로 손을 뻗어 노엘의 등에 꽂히려는 화살을 쳐냈다. 뭐야, 진짜 활을 쏜다고? 동족이잖아. 심지어 나랑 계약하는 걸 눈앞에서 봤는데?

어이가 없어서 돌아보니 활을 쏜 걸로 보이는 엘프가 딸꾹질했다. 다른 엘프들도 공격을 멈추고 굳었다. 지도자로 보이는 엘프는 더욱 악에 받친 얼굴이었다.

“물의 왕이여! 우리를 막지 마십시오! 그건 혼돈과 재앙의 씨앗입니다! 태어나서는 안 되는 더러운 것이 육신을 입었습니다! 정령왕인 당신이 그걸 보호해선 안 됩니다!”

“대체…….”

“그걸 저희에게 넘겨주십시오! 그걸 거두면 당신도 분명히 후회할 겁니다!”

돌아보니 노엘이 어깨를 으쓱였다. 마음대로 하라는 듯 결정을 넘기는 태도에 괜히 이상한 오기가 솟았다.

“계약자를 넘기라니, 우습지도 않은 말을 하네. 내가 지금 가만히 있으니까 만만해?”

“그, 그런 게 아니라!”

“너희야말로 한 번만 더 내 계약자 공격하면 가만 안 둔다. 진짜 재앙이 뭔지 알게 될 거야. 마을이 통째로 수몰되는 걸 볼 게 아니라면 내가 봐주고 있을 때 적당히 해.”

말로만 하면 못 알아들을 게 뻔해서 물을 움직여 엘프들이 들고 있던 활을 전부 부쉈다. 순식간에 무기를 잃은 엘프들은 숨소리조차 내지 못하고 그대로 얼어붙었다. 덕분에 사방이 고요해진 걸 확인한 후 노엘을 돌아보았다.

“자, 가자.”

부담스러울 정도로 반짝거리는 눈으로 나를 바라보던 노엘이 기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를 붙잡고 하늘로 훌쩍 뛰어올랐다. 빠르게 멀어지는 엘프들 사이에서 발악하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후회하실 겁니다! 후회하실 거라고요!”

마지막까지 참 집요한 엘프였다.

“와, 진짜 멋있었어, 엘! 완전 반했어!”

쫓아오지 못할 만큼 멀어진 후에 지상에 내려주니 노엘은 한참 웃음을 터트렸다. 십 년 묵은 체증이 내려가기라도 한 것처럼 통쾌한 얼굴이었다. 반대로 나는 심란해졌다. 일단 사고를 치긴 했는데 엘프랑 계약하는 건 정말 초유의 사태다 보니 이래도 되는 건지 모르겠다. 게다가 이 엘프는 언제 봤다고 내 애칭을 막 부르지? 애칭을 가르쳐 주지도 않았는데. 그냥 맘대로 남의 이름을 줄여 부르는 편인가?

“왜 그런 얼굴이야? 이미 저지른 거 말끔히 포기해.”

“이게 그렇게 가벼운 상황이 아니거든…….”

“쯧쯧, 모르는 소리. 모름지기 상황이란 마음 먹기에 따라 무겁게 보이기도 하고 가볍기도 한 법이지. 네가 별거 아니라고 생각하면 별거 아닌 거야. 정령왕이 남한테 휘둘리고 그러면 쓰나. 이왕 멋있게 나간 김에 끝까지 멋지게 갑시다. 응?”

지금 날 제일 많이 휘두르는 건 너거든?

얜 내가 정령왕인 건 알고 있는 거지? 왜 이렇게 스스럼이 없어? 게다가 기분 탓인가? 대화하면 할수록 기시감이 든다. 예전에도 이런 식으로 말하는 사람이 있었다. 명령이 익숙하고 낙천적이면서도, 아무 생각 없어 보이는 이 말투는 마치…….

“카노스 같아.”

“어라, 눈치챘어?”

“…….”

아니, 잠깐만요. 지금 뭐라고요?

바라보던 자세 그대로 몸이 굳었다. 반사적으로 대답한 거였는지 그도 놀란 눈을 한 채 한 손으로 입을 가리고 있었다. 하지만 이미 들어버린 말을 그냥 넘길 수는 없었다. 잘못 들은 것도 아니었다.

“…카노스?”

“어, 음, 그게…….”

“카노스으!?”

딴청을 피우듯 잠시 시선을 굴리던 그가 이내 멋쩍은 표정을 지었다. 나를 돌아보는 금색 눈동자가 부드럽게 휘어졌다.

“오랜만이다, 엘뤼엔의 아들.”

다리에 힘이 풀려서 그대로 주저앉았다. 멍청하게 올려다보는 나를 보며 그는 조금 난감한 듯이 웃었다. 저런 식으로 웃는 얼굴을 알고 있었다. 아아, 카노스다. 정말 카노스였다.

“어, 어떻게 된 거예요, 카노스? 이게 대체 무슨 일이에요. 왜 당신이……?”

소멸 후 카노스의 혼은 곧바로 환생의 궤도를 탔다고 들었다. 아크아돈에서 태어난 것이며 엘프가 된 건 좀 의외지만, 그럴 수 있었다. 그런데 왜 그가 기억을 갖고 있는 거지? 게다가 엘프들은 왜 이렇게 그에게 적대적이었던 건데? 재앙의 씨앗이라는 건 무슨 말이야.

“으음, 그건 말이지.”

진지해진 목소리에 나도 모르게 숨을 삼켰다.

“나도 몰라.”

“…….”

“냐하하~ 농담, 농담이고. 음, 아무래도 주신의 은총이 아닐까 싶은데. 내가 신으로 살았을 때 좀 이쁜 짓을 많이 했어야지. 그래서 특별히 이렇게 태어나게 해주신 게 아닐까?”

“……조화를 파괴하는 엘프로요?”

엘프 주제에 기적을 일으키는 은총 말입니까? 그 때문에 저주받은 아이로 오해받고 쫓기듯이 도망친 건 부가 옵션인가 보죠? 그것참 감사하시겠습니다? 수많은 의미를 담아 가만히 바라보니 본인도 무리수를 뒀다는 건 알았는지 어설프게 웃어넘겼다.

“냐하하~ 그래도 멋지잖아. 정령왕을 소환한 최초의 엘프! 두근두근하지 않아?”

“두근두근은 무슨…….”

“아, 근데 정말 쉽지 않네. 어떻게 날 바로 알아봤지? 이렇게 금방 정체가 들킬 줄은 몰랐는걸? 제법이야. 눈치가 빨라졌어.”

“거짓말 마요. 숨길 마음 처음부터 없었잖아.”

그게 어딜 봐서 들킬 줄 모르는 태도였어? 누가 봐도 대놓고 카노스처럼 굴었구만.

“이거 봐. 역시 눈치가 빨라졌다니까.”

“아니, 근데 잠깐만요. 지금 이런 농담이나 하고 있을 때가…….”

“자자, 투덜거리는 건 이제 그만. 어쨌든 나와 계약했으니 넌 당분간 내 거다!”

당당한 선언에 잠시 할 말을 잃었다.

“누구 맘대로요?”

“그야 내 맘대로지. 어때? 기쁘지? 행복하지? 영광스럽지? 그래, 그럴 줄 알았어. 잠시 시간을 줄 테니 나와 함께하는 행운을 누리게 된 것에 충분히 감동하도록 해.”

“…….”

“왜 아무 말이 없어? 역시 실감이 나지 않는 건가? 하긴, 날 모실 기회가 얼마나 있겠어. 너무 기쁘면 울어도 돼. 그 정도는 특별히 봐줄게.”

……나 그냥 계약 해지하면 안 될까?

아무래도 아까 그 엘프가 선견지명이 있었던 모양이다. 벌써 후회가 되려고 한다. 무시하지 말고 말이라도 끝까지 들어볼걸. 카노스인 걸 몰랐을 때 발을 뺐어야 했던 게 아닐까.

“그런 의미에서 너한테 할 말이 있어.”

“뭐, 뭔데요?”

“나 용돈 좀.”

“…….”

“보다시피 내가 마을을 나왔잖아? 지금 땡전 한 푼도 없는 알거지거든. 당장 오늘 저녁부터 굶어야 해. 너무 슬픈 일이지? 그러니까 뭐 좀 사 먹게 돈 좀 줘. 나 고기 먹고 싶어.”

“아니, 지금 숲 엘프잖아요? 무슨 고기를…….”

“숲 엘프가 채식만 한다는 건 편견이거든? 그 말도 안 되는 편견 때문에 내가 여기서 태어난 이래 주야장천 식물만 먹었다고! 얼마나 괴로웠는지 알아?”

그쯤 되면 편견이 아니라 사실이잖아!

“아버지 친구이자 선배한테 이렇게 야박하게 굴기야?”

“지금 그런 문제가 아니잖아요!”

“참나! 그렇게 나온다 이거지! 흐흐흑! 주신이시여, 이럴 수가 있습니까? 큰맘 먹고 희생해서 세상을 구했더니, 친구의 아들이자 제 후배 되는 녀석이 글쎄, 이제는 모든 것을 다 잃고 알거지가 된 아버지의 친구이자 선배 되는 저한테 고기 하나 못 사주겠다고…….”

“아, 알았어요! 가요! 갑시다! 고기 먹으러 가면 되잖아요!”

“아주 잘 생각했어.”

언제 우는 시늉을 했냐는 듯 해맑게 웃는 얼굴을 보며 치미는 한숨을 삼켰다. 정령은 혈압도 없는데 왜 이렇게 뒷골이 당기는 것 같지? 아니, 그러고 보니 같이 다니는 건 이미 기정사실이 된 건가. 기가 막혀서 탄식했다가 허탈하게 웃었다. 하긴 그래, 내가 또 언제 엘프와 계약을 다 해보겠어. 그게 카노스라는 게 좀 마음에 걸리긴 하지만.

아니, 솔직해지자. 카노스니까 괜찮은 거겠지. 그래, 인정할 건 인정해야 한다. 아까부터 입꼬리가 올라가는 걸 참을 수가 없었다. 아직 뭐가 어떻게 된 건지 모르겠지만. 이래도 되는 건지조차 알 수 없지만. 그래도 이렇게 만난 것만은 기뻤다. 다른 복잡한 생각은 얼마든지 뒤로 미룰 수 있을 만큼.

‘뭐, 이것도 나름대로 해피 엔딩이라면 해피 엔딩인가.’

언젠가 인연이 닿으면 다시 보자고 했던 그의 인사가 떠올랐다. 당시엔 아프기만 했던 말이었는데 설마 정말로 그렇게 될 줄은 몰랐다. 그때 이미 그는 알고 있었던 걸까. 반드시 마주치게 된다는 깊은 운명의 고리. 그 안에 우리도 들어 있었다고.

“아참, 나랑 만난 건 엘뤼엔한텐 비밀이야.”

“네? 왜요?”

“부려먹으려 들 게 뻔하잖아. 난 이제야 겨우 마신에서 해방돼서 진정한 자유를 만끽하고 있다고. 알았지? 절대 비밀이다.”

“하하하, 그럴게요.”

당장 가서 말해야지.

답과는 따로 노는 생각을 정리하며 속으로 음산하게 웃었다.

오늘따라 날씨가 무척 좋았다. 그리운 인연과 재회할 만한, 무엇이든 시작하기 좋은 날씨였다. 구름 한 점 없이 새파란 하늘을 보며 한껏 기지개를 켰다. 이번에도 역시 멋진 모험이 될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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