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정령왕 엘퀴네스-588화 (588/608)

제588화

“다른 소임?”

<네, 맞아요! 주인님께서 남기고 가신 유품을 지켜야 하거든요! 제가 또 한 의리 있는 정령검 아니겠어요? 그분께 받은 마지막 소임이라 생각하고 그 일에만 집중하고 있어요.>

그런 것 치곤 아까 기척을 느끼자마자 용사 운운하지 않았나? 지적하고 싶은 기분을 삼키며 제단 쪽을 다시 바라보았다. 이사나가 남긴 유품이라니.

“이 책 말이야?”

일기장일까. 아니면 평소에 즐겨보던 책? 어느 쪽이든 내 기억에선 한 번도 본 적이 없던 거다. 지키는 존재를 따로 둬서 그런지 책 자체엔 아무런 잠금장치도 걸려 있지 않았다. 건드려도 별다른 반응이 없기에 무심코 겉표지를 펼쳐보았다. 그런데 돌연 안에서 갑자기 환한 빛이 터져 나왔다.

“……!”

마법이 걸려 있었던가? 당황해서 한 발 물러나자 활짝 펼쳐진 책이 내 앞으로 붕 떠올랐다. 건드리지도 않았는데 페이지가 빠른 속도로 넘어가고 있었다. 그러다 어느 장에 이르러 멈추더니 그 위에서 새하얀 빛무리가 떠올랐다.

하지만 정말 놀란 건 그다음 순간이었다. 빛무리 속에서 익숙한 형체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티끌 없이 깨끗한 금발, 선명한 파란색 눈동자. 긴장한 듯 상기한 얼굴이 나를 응시하며 수줍게 웃었다.

<엘, 안녕? 오랜만이야.>

“……이사나?”

분명 이사나였다. 내가 기억하는 모습에서 하나도 변하지 않은, 앳된 모습 그대로의 이사나.

<이런 걸 해보는 건 처음이라 조금 긴장된다. 놀랐지? 실은 엘이 돌아왔을 때 내가 어떻게 지냈는지 알려주고 싶어서, 이제부터 간간이 영상 기록을 남겨보기로 했어. 엘이 열면 바로 마법이 발현되도록 해놓았어.>

멍해져서 굳어 있는 동안, 이사나는 그동안 자신에게 있었던 일들을 일기 형식으로 설명해나갔다. 주로 아침엔 뭘 했고, 누구와 무슨 말을 했다는 등의 사소한 이야기들이었다. 그리고 중간중간 나를 걱정하는 말도 빼놓지 않았다.

<엘이 여행을 떠난 지 오늘로 한 달째야. 그곳엔 무사히 도착한 거겠지? 부디 무사히 라피스 님을 찾아서 돌아오기를 바랄게. 빨리 만나고 싶다, 엘. 벌써 이러니, 앞으로 어떻게 기다리지?>

어색하게 웃는 순간 영상이 바뀌었다. 다음으로 나타난 이사나는 한층 성장한 모습이었다. 그나마 남아 있었던 10대의 모습은 거의 다 사라지고, 훤칠하고 준수한 청년이 되어 있었다.

<안녕, 엘? 3년 만에 남기는 영상이야.>

목소리와 말투도 전보다 더 굵어졌다. 이런 모습을 볼 수 있을 거라곤 상상도 하지 못해서 가슴이 벅차올랐다.

<나 그동안 많이 변했지? 키는 이제 여기서 더 안 크는 것 같아. 엘은 잘 지내고 있어? 어디 아프거나 다친 곳은 없는 거지?>

손을 뻗어봤지만 당연하게도 영상은 만져지지 않았다. 나를 걱정하는 이사나의 얼굴은 쓸쓸해 보였다.

<네가 아직도 돌아오지 않아서 걱정이야. 트로웰 님은 괜찮을 거라고 말했지만, 혹시 아직도 라피스 님을 찾지 못한 건 아닌지, 그곳에서 혼자 고생하고 있는 건 아닌지, 너무 마음이 쓰인다. 만나지 못해도 괜찮으니까,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소식이라도 들을 수 있었으면 좋겠어.>

그 뒤에도 영상은 여러 번 바뀌었다. 불규칙적으로 남기기는 했지만, 대개 3년에서 5년에 한 번꼴로 기록되어 있었고, 그때마다 이사나의 모습은 점점 변해 갔다.

<어떡하지, 엘? 오늘 알리사가 내 고백을 받아줬어! 정말 세상을 다 가진 것 같아! 너무 기뻐서 조금 울어버렸어. 너한테만 하는 얘긴데 사실 불안했거든. 라온휘젠 황제는 멋있는 사람이고, 알리사에게 적극적으로 구혼하니까. 그에 비하면 난 너무 멀리 떨어져 있고, 바빠서 연락도 잘 못 하고. 그래서 받아주지 않을까 봐 조마조마했어. 아, 내가 이런 걱정을 했다는 건 알리사한테는 비밀이야. 알았지?>

<엘, 이것 봐. 결혼 예복이야. 식은 내일이지만 엘한테 보여주려고 미리 입어봤어. 어때? 잘 어울려? 아, 너무 긴장된다. 네가 돌아올 때까지 기다리려고 했는데 미안해. 주변에서 하도 채근해서 어쩔 수가 없었어. 서운해하지 않을 거지? 부디 우리의 앞날을 축복해줘.>

<엘, 기쁜 소식이 있어. 오늘 알리사가 아들을 낳았어. 우리의 첫아이야. 산고가 길어서 걱정했는데 다행히 알리사도 아이도 둘 다 무사해. 하지만 알리사가 아픈 걸 보는 건 너무 힘들었어. 한참을 울다 왔는데도 아직도 눈물이 날 것 같아. 아들은 날 많이 닮았어. 그래도 눈동자 색은 알리사랑 똑같아. 너무 신기해. 내가 감히 이런 기쁨을 누려도 되는 걸까, 가끔 믿어지지 않을 때가 있어.>

청년에서 장년으로, 장년에서 중년으로. 나이가 들어가는 이사나는 점점 중후해지고 있었다. 하지만 아무리 외모가 변해도 특유의 부드러운 분위기만은 그대로 남아 있었다.

대부분은 기쁜 소식이 있을 때 기록했지만, 슬프거나 고민이 있을 때도 남기긴 했다. 아이들의 교육 문제나 정책 문제를 두고 한탄을 하기도 했다. 그러다 노년에 이르러서는 영상을 남기는 횟수가 극단적으로 줄어들었다. 정확히는, 알리사가 세상을 떠난 후부터였다.

<엘, 오늘…… 알리사가 나를 두고 떠났어.>

그날의 기록은 텅 빈 얼굴로 중얼거린 한마디가 전부였다. 그 한마디 외에는 더 말을 잇지도 못했다. 흐느끼는 소리를 뒤로한 채 영상은 그대로 어두워졌다.

다음 영상 속에선 머리가 하얗게 센 이사나가 힘없이 앉아 있었다. 주름지고 검버섯이 핀 얼굴, 한눈에도 병색이 완연한 모습을 보며 입술을 깨물었다. 지금까지는 아무리 변해도 이사나로 보였는데, 지금 모습은 그가 아닌 것 같았다. 동시에 좋지 않은 예감이 들었다. 어쩌면 이 기록이 마지막일 거라는 그런 예감.

<안녕, 엘? 아마도 이게 네게 보내는 마지막 영상일 것 같구나.>

예상했음에도 이사나가 그렇게 말했을 땐 숨이 턱 막혔다.

<이런, 늙은이 말투가 나와버렸네. 내 모습이 말이 아니지? 이제 어디를 봐도 할아버지야. 너와 함께하던 날들이 아직도 엊그제 같은데, 벌써 시간이 이렇게 흘렀어.>

힘없이 웃으며 중얼거리는 목소리는 탁하고 쉬어 있었다. 치아도 거의 빠졌는지 발음도 많이 어눌했다.

<난 그동안 많은 걸 이뤘어. 사람들은 나를 현황이라 칭송하고, 자녀들은 모두 사랑받고 사랑할 줄 아는 사람으로 성장했지. 세상에서 이보다 더 행복한 인생이 있을까?>

<인간치고는 난 오래 산 편이야. 하지만 요즘 들어 내게 남은 시간이 얼마 없다는 것을 느끼고 있어. 알리사는 이미 나보다 먼저 세상을 떠났고, 내가 알고 있는 대부분이 모두 이 세상에 없지. 나도 이제 곧 그들 곁을 따르게 될 거야.>

그만, 이사나! 제발 그만 말해!

비명이 터져 나올 것 같아 입을 틀어막았다. 이미 지나가 버린 과거라는 건 아는데, 눈앞에 진짜 이사나가 있는 게 아니라는 걸 알면서도 정신을 차리기가 힘들었다. 그에게 마지막이 다가왔다는 걸 믿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영상 속의 이사나는 이미 모든 걸 받아들인 것 같았다. 이쪽을 가만히 주시한 채로, 그가 희미하게 미소지었다.

<죽기 전에…… 널 보고 싶었어, 엘.>

“……!”

<제국이 부흥한 모습을 볼 때마다, 자랑스럽게 성장한 아이들을 볼 때마다 네게 보여주고 싶었어. 네가 이 모습을 본다면 얼마나 기뻐할까. 아마 나보다 더 행복해할 텐데. 나보다 더욱, 자랑스러워해 줄 텐데.>

맞아, 틀림없이 그랬을 거다. 이사나가 얼마나 고생했는지 내가 다 아는걸. 가장 드높은 자리에서 하루아침에 쫓기는 신세로 전락했어도 꿋꿋하게 걸어 나가던 어린 황제를 내가 얼마나 사랑했는데. 그 애가 이룬 모든 것을 내가 이룬 것처럼 기뻐했을 거다. 나도 그러고 싶었어, 이사나. 정말 그러고 싶었어.

<다른 건 전부 미련이 없는데, 그 한 가지만은 아쉬움이 남아. 미안해. 너도 사정이 있어서 오지 못하는 걸 텐데. 분명 속상해할 거 아는데…… 그래도 보고 싶다, 엘. 네가 너무 보고 싶어. 죽기 전에, 딱 한 번만. 널 다시 한 번만 만나보고 싶어.>

아아아. 그대로 무너져 끓어오르는 울음을 토해냈다. 영상 안에서 이사나 또한 그렇게 울고 있었다. 젖은 얼굴을 쓸어내리는 팔이 앙상할 정도로 말라서 더 눈물이 나왔다.

왜. 왜 하필 지금이었을까. 왜 나는 이렇게 한참 늦어버린 시간에야 돌아온 걸까. 하다못해 임종이라도 지킬 수 있었다면. 이사나의 마지막 순간이라도 함께할 수 있었다면 이렇게까지 처참한 기분이 들지는 않았을 텐데.

<하지만, 엘. 난 정말 행복했어.>

흐르는 눈물을 삼킨 이사나가 긴 한숨을 토해냈다. 괴로운 듯 일그러진 얼굴에 어울리지 않는 미소가 떠올랐다. 어떻게든 웃어 보려는 얼굴이었다.

<널 만나서, 너로 인해서 과분할 정도로 많은 걸 누렸고, 후회 없이 살았어. 오히려 걱정되는 건 너야. 돌아왔을 때 내가 없다는 걸 알면 넌 분명 슬퍼할 테니까. 이 영상을 보면 더 슬퍼하겠지. 그래서 실은, 이 책을 남겨도 좋은 건지도 잘 모르겠어.>

내뱉듯이 말한 후 다시금 한숨을 토해낸 이사나가 얼굴을 쓸며 앓는 소리를 흘렸다. 참아보려 하는데 잘 안 되는지 숨소리가 거칠어졌다.

<그러니…… 그러니까, 흑…… 내 마지막 부탁이라고 생각하고 들어줄래? 후우우, 나와의 추억에선 좋은 기억만을 떠올려줘. 네가 나로 인해 괴로워진다면, 난 그게 더 슬플 거야.>

울음을 참기 위해 끅끅거리면서도 어떻게든 말하려고 애쓰는 모습에 가슴이 무너졌다. 그래도 똑바로 보기 위해 눈꺼풀에 힘을 주고 버텼다. 평생 함께해 주지도 못했는데, 마지막 모습까지 외면할 순 없었다.

<그리해 줄 거지, 엘? 내 부탁, 들어줄 수 있지?>

응, 그럴게. 약속할게, 이사나. 꼭 그렇게 할게. 나도 널 만나서 행복했어. 너와 함께한 모든 순간이 즐거웠어. 그러니까 항상 행복한 날들만 추억할게. 너와 보낸 시간을 후회와 고통으로만 남지 않게 할게.

눈물을 멈추지 못하는 채로 미친 듯이 고개만 끄덕였다. 이런다고 이사나가 볼 수 있는 것도 아닌데, 내가 할 수 있는 게 그것뿐이었다. 그러자 영상 안의 이사나가 환하게 웃었다. 마치 내 대답을 듣기라도 한 것처럼. 그리고 마침내, 기록의 마지막 순간이 찾아들었다.

<그럼 인사는 여기까지 할게. 이제 자야 할 시간이 온 것 같아.>

“아, 안 돼. 가지 마, 이사나!”

<안녕히, 엘. 네가 항상 행복하기를.>

“가지 마!”

다급히 손을 뻗었지만 허공을 휘젓기만 할 뿐 당연하게도 잡히지 않았다. 잔잔한 미소를 머금은 이사나의 모습이 빠른 속도로 흐릿해졌다.

<넌 내 인생의 가장 위대한 스승이었고, 가장 사랑하는 어버이였으며, 의지하는 형제이자, 제일 소중한 친구였어.>

그 말을 마지막으로 어둠이 훅 밀려들었다. 힘없이 제단 위로 떨어지는 책을 보며 나 역시 바닥에 주저앉았다. 멍하니 눈만 깜빡이고 있으니 어깨를 짚어오는 온기가 느껴졌다. 고개를 들자 서글픈 표정을 짓고 있는 얼굴이 보였다. 트로웰이었다.

“트로웰, 이사나가 갔어…….”

“……엘.”

“이사나가 가버렸어.”

매달리듯이 그를 꽉 끌어안았다. 서러운 울음을 토해내는 내내, 트로웰은 아무런 말 없이 내 등을 다독여 주었다.

“이제 좀 진정했어?”

흐느낌이 어느 정도 잦아들었을 때쯤 트로웰이 물었다. 많은 감정을 드리운 눈동자를 보며 밝게 웃었다.

“응, 덕분에 후련해졌어. 고마워, 트로웰.”

“실은…… 보여줘도 괜찮을지 계속 고민했어. 겨우 마음의 정리를 마친 너를 오히려 뒤흔드는 건 아닐까 싶어서.”

“아니야. 이사나의 일생을 알 수 있어서 좋았어. 열심히 잘 살았구나 싶어서 안심했어. 내게 남긴 말을 들을 수 있어서, 그것도 정말 기뻐.”

그게 아니었다면 이사나는 내게 아픈 기억으로만 남았을 거다. 떠올릴 때마다 죄책감에 가슴이 아려서, 감히 추억할 생각조차 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러지 말아 달라고 부탁했으니까. 이제 슬픈 생각이 떠오를 때면 더 행복했던 기억 속의 이사나도 함께 상기할 수 있었다. 곁에 있어 주지도 못한 내가 받아도 되는 건가 싶을 만큼. 분에 넘치는 작별 선물이었다.

“그래, 그렇다니 다행이야.”

“이 책은 내가 가져가도 될까?”

“그야 물론이지. 네가 책의 주인인걸.”

조심스럽게 책을 집어 품에 끌어안았다. 딱딱한 가죽의 감촉을 천천히 쓸어보다가 그 너머에 놓여 있는 관들에 시선을 두었다.

“트로웰, 나 한 가지만 물어봐도 돼?”

“응, 얼마든지.”

고개를 끄덕인 트로웰이 내가 다음 말을 잇기를 기다렸다. 신뢰와 애정이 가득한 두 눈을 보며 크게 한 번 심호흡했다.

“내 계약자들, 정말 멋진 사람들이었지? 그 사람들에게도 내가 좋은 계약자였을까?”

빛을 담은 황금색 눈동자가 일렁거렸다. 트로웰은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얼굴로 나를 끌어안았다.

“당연하지, 엘. 이전에도 이후로도, 너보다 좋은 정령왕은 만날 수 없을 거야.”

그 다정한 온기에 기대어 다시금 눈물을 훔쳤다. 억지로 잡고 있던 미련들도 겨우 내려놓았다. 이제 정말로 작별이었다.

* * *

밖으로 나오니 환한 햇살이 반겼다. 회색 구름이 물러나고 있는 하늘, 진눈깨비가 한창 내리다 그쳤는지 젖은 바닥에 얼음 조각이 녹아 있었다. 겨울 냄새를 물씬 풍기는 공기를 한껏 마시며 잠시간 그 자리에 가만히 서 있었다.

<아아, 이건 또 얼마만의 햇빛인가요! 마음이 온통 정화되는 것 같아요. 역시 사람은 빛을 보며 살아야 해요.>

하지만 수다쟁이가 감상에 빠지는 걸 방해했다. 들고 있는 붉은색 장검을 가만히 내려다봤다. 원래는 책만 챙기려 했는데, 나도 데려가 달라는 파이어 버스터의 애원을 무시할 수 없어서 같이 가지고 나온 참이었다. 이렇게 들고 있으니 4천 년 전에 늘 지니고 다녔던 게 떠올라서 기분이 묘했다. 파이어 버스터는 전혀 기억하지 못하겠지만.

“넌 사람이 아니잖아.”

<말이 그렇다는 거죠. 휴우, 우리 엘퀴네스 님은 너무 고지식하시네요. 이런 건 그냥 넘어가 주셔야 하는 거예요. 들어도 못 들은 척, 보고도 못 본 척하는 게 세상을 지혜롭게 사는 미덕 아니겠어요? 그렇게 하나하나 다 따지고 들면 인기 없어요.>

……그냥 다시 가져다 두고 나올까.

좋았던 시절만 상기하느라 얘가 그저 말만 많은 게 아니라는 걸 잠시 잊었다. 혹시 책을 지킨다는 건 핑계고, 사실은 아무도 주인이 안 되려고 해서 그냥 방치된 거 아니야? 합리적인 의심이 들었다.

“너 다비안하고 지낼 때도 이랬어?”

<제 첫 주인인 다비안 용사님 말씀이신가요? 아아, 그리운 기억이네요. 그 시절 저는 갓 태어난 어린아이와 같아서 수줍음을 많이 탔었죠. 그래서 용사님과도 대화를 거의 안 했어요. 하문하시는 말에 간략히 대답해드리는 정도였죠. 지금은 조금 후회하는 부분이에요. 그런데 엘퀴네스 님이 다비안 님을 어떻게 아세요?>

대화를 거의 안 했구나. 정말 다행이다. 안 그래도 후환이 두려운 일이 천지인데 여기서 더 업보를 늘리고 싶진 않았다. 대답해달라는 재촉을 무시한 채로 긴 한숨을 내쉬려니 트로웰이 웃으며 말했다.

“그건 나한테 줘. 귀찮을 텐데 내가 맡고 있을게.”

“어? 굳이 안 그래도 괜찮은데……. 트로웰도 귀찮잖아.”

“괜찮아. 그 녀석도 누울 자리를 보고 다리를 뻗는 거거든. 그리고 반가운 재회엔 방해가 될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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