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87화
웃음이 나왔다. 이 아이를 설마 여기서 만나게 될 줄이야. 외모가 너무 달라져서 신기했다. 점차 영향을 받을 줄은 알았지만 머리칼과 눈동자 색까지 달라질 거라곤 생각지 못했다. 헤어질 당시만 해도 인간에 더 가까웠는데 지금은 인간과 정령, 그 중간쯤에 속한 느낌이었다.
“당신이 가까이 오고 있다는 게 느껴졌어요. 정령들도 계속 소란스러웠고요. 믿을 수가 없었어. 다시 만나서 너무 기뻐요.”
“나도 기뻐, 레이. 많이 변했구나. 그동안 어떻게 지냈어? 여기서 사는 거야?”
“네, 모두와 같이 즐겁게 지내고 있어요.”
“모두?”
아까 레이의 뒤를 쫓고 있던 여자가 생각나 시야를 틀었다. 그녀는 조금 떨어진 곳에서 굳어 있었다. 스쳐봤을 땐 몰랐는데 이제 보니 인간이 아니라 엘프였다. 귀염성 있는 얼굴에 풍성한 백금발과 연보라색 눈동자가 어디서 본 듯이 익숙했다. 내가 알던 아이가 성장한다면 딱 저런 모습으로 컸을 것 같았다.
“설마…….”
그리고 내가 느끼는 그 기분을 그녀도 느끼고 있는 것 같았다. 커다란 눈을 깜빡이던 여자가 힘겹게 입을 열었다.
“호, 호, 혹시 엘퀴네스 님이세요?”
이어진 질문을 들었을 땐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세실?”
입을 여는 것과 동시에 단단한 힘이 나를 와락 끌어안았다. 잠시간 멈칫했다가 떨고 있는 머리를 가만히 쓰다듬어줬다.
“정말 몰라보게 컸구나. 이제 아가씨가 됐네.”
“엘퀴네스 님은 하나도 안 변하셨어요. 진짜 엘퀴네스 님 맞죠? 어떡해. 꿈을 꾸는 것 같아요.”
“어릴 때 잠깐 본 건데 나 기억하겠어?”
“당연하죠! 절 치료해주신 것도, 제게 다정히 대해주신 것도 다 기억해요.”
눈물이 그렁그렁한 채로 환하게 웃는 얼굴을 보니 나도 같이 벅차올랐다. 전부 떠나버린 인연만 있는 게 아니었다는 위안도 함께였다.
“엔딜은 어떻게 지내?”
“아, 오빠는…….”
“잠깐, 시큐엘! 어딜 가는지는 말해줘야 할 거 아냐!”
양반은 못 되는지 때마침 들려오는 소리가 있었다. 고개를 들자 멀찍이서 허겁지겁 뛰어오고 있는 거대한 푸른 늑대가 보였다. 그 등에 한 남자가 필사적으로 매달려 있었다. 얼마나 잘 버티고 있는지 곡예가 따로 필요 없을 정도였다. 하지만 늑대가 멈추는 순간엔 균형을 잡지 못하고 내팽개쳐지듯이 떨어지고 말았다. 몇 바퀴 구른 뒤에야 멈춘 남자가 화가 나서 몸을 벌떡 일으켰다.
“아오, 젠장! 죽는 줄 알았잖아! 너 돌았어? 갑자기 왜 지랄을…… 어? 너희 여기서 뭐하냐?”
투덜거리던 남자가 세실과 레이를 스치듯 확인하고는 중얼거렸다.
“오빠!”
“오냐, 네 하나뿐인 오빠시다. 아씨 아파 죽겠네. 피부 다 까진 거 같은데? 앗, 진짜 다쳤어! 야, 이거 어쩔 거야, 시큐엘! 피 나잖아!”
“그게 아니라! 누가 오셨는지 봐!”
“뭐? 무슨 소리를…….”
외면하는 시큐엘을 다그치던 엔딜이 다시 고개를 들고 이쪽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마침내 나와 눈이 마주쳤다.
“헉…….”
숨을 삼킨 그가 빤히 바라보는 동안 나 역시 그의 모습을 살폈다. 청년이 된 엔딜은 소년일 때의 모습이 기억나지 않을 정도로 날카로워진 인상이었다. 세실과 똑같은 백금발에 연보라색 눈동자였지만, 그게 세실에게는 화사한 느낌을 준다면 엔딜은 어딘가 모르게 퇴폐적인 분위기를 풍겼다.
“엘 님?”
“안녕, 엔딜. 너도 많이 컸네.”
웃으며 인사하니 그는 오히려 힘이 빠진 것처럼 바닥에 주저앉았다. 경악한 얼굴로 붕어처럼 입만 뻐끔거리는 그를 지켜보다가 앞으로 다가갔다. 구르면서 쓸렸는지 손등에 난 생채기에서 피가 흐르고 있었다. 그 손을 잡고 치유력을 불어넣으니 엔딜이 잠시 숨을 멈췄다. 그는 말끔히 나은 손등과 나를 한동안 계속 번갈아 바라보았다.
“맙소사, 정말 엘 님이시네…….”
“그동안 잘 지냈어?”
대답 대신 그는 나를 꽉 끌어안았다. 누가 남매 아니랄까 봐 하는 행동은 비슷했다. 다시 마주한 엔딜은 눈시울이 붉어져 그렁그렁한 채였다.
“먼 여행을 가셨다고 들었는데. 이제 돌아오신 거예요?”
“응, 돌아왔어. 내가 너무 늦었지?”
“아니에요. 어서 와요, 엘 님. 정말 잘 오셨어요.”
목소리에 울먹임이 가득했다. 이런 점은 어릴 때와 변하지 않았구나 싶으니 안심이 됐다. 다들 너무 자라버려서 낯설었던 참인데 한층 내가 아는 엔딜로 보이는 것 같았다.
“카터스로 갔었을 텐데, 다시 여기로 돌아온 거야?”
“네, 아무래도 고향이 괜히 고향은 아니더라구요. 카터스도 나쁘진 않았지만 현실적으로는 거주지 밖을 나가는 건 엄두도 못 냈거든요. 마침 스왈트 제국도 살기 좋아졌다고 들어서 그냥 다시 건너왔어요.”
그게 벌써 250년 전이라며 엔딜이 너스레를 떨었다. 이사나가 이종족도 살기 좋은 나라로 만들면 돌아오겠다는 약속을 지킨 셈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정말 시기적절한 판단이었어요. 카터스 제국은 에드먼 황제 등극 후로 이종족을 박해하기 시작했거든요. 전쟁까지 계속 일어나서 말도 아니었죠. 거기서 계속 있었으면 위험했을 거예요.”
누군가 했더니 마법사를 박해했다는 바로 그 황제 얘기였다. 이종족을 하루아침에 거주지에서 내쫓고 노예로 팔아넘기기까지 했다고. 덕분에 종족 간 교역 시대가 열린 지금까지도 옛 카터스 제국이 존재했던 아라투스 대륙엔 진출하는 이들이 그리 많지 않다고 했다. 나라를 망치려는 지도자는 역시 하나만 잘못하진 않았다.
이후엔 차라도 대접하고 싶다는 성화에 못 이겨 엔딜의 집을 방문했다. 예전에 살던 집은 엘프의 영역 안에 있었는데, 지금은 번듯하게 마을 안에 자리 잡고 있었다. 숲을 배경으로 세워진 그림 같이 아름다운 2층집이었다. 1층은 엔딜 남매가, 2층은 레이가 사용한다고 했다.
셋이 함께 살기 시작한 건 백 년이 조금 넘었다는 것 같았다. 서로 알게 된 계기는 매우 흥미로웠다. 남매가 여름 휴양 삼아 경치가 아름답기로 유명한 지방을 방문했는데, 그곳에서 유령이 나오는 저택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단다. 마침 할 일도 없어서 심심하던 참에 구경이라도 해볼 생각으로 찾아가 봤더니 유령은커녕 혼자 살고 있는 소년을 만났을 뿐이었다. 그게 바로 레이였다.
“처음엔 정령인 줄 알았다니까요. 근데 자세히 보니까 인간인 거야. 하지만 또 온전한 인간은 아닌 것 같고. 왠지 엘 님과 관계있는 녀석인 것 같아서 이것저것 말도 붙이고, 그러다가 친해졌어요.”
레이는 양부인 카리브디스 공작과 쭉 같이 살다가, 그가 사망한 이후엔 혼자 지냈다고 했다. 늙지 않는 몸을 깨달은 이후로 외출을 삼가게 됐는데, 간간이 정원에 나와 있는 것을 본 사람들이 유령으로 오해하게 된 거였다.
레이도 그런 오해를 받고 있다는 건 알았지만 굳이 해명하진 않았다고 했다. 인간도 정령도 아닌 모호한 상태다 보니 누구와도 선뜻 어울릴 생각을 하지 못했던 거다. 그런 참에 만나게 된 엘프 남매와 친구가 되면서 드디어 새로운 곳에서 살아갈 결심을 굳히게 됐다.
“솔직하게 설명해주지 않은 내가 원망스럽지는 않았어?”
조심스럽게 물으니 레이는 부드럽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원망이라니, 당치 않아요. 이 삶은 린이 준 선물인걸요. 린이 항상 함께하고 있다고 생각하면 외롭지도 않았어요. 정령들도 자주 놀러와 줬구요.”
반 정령인 레이는 자연체의 정령들을 볼 수도, 그들과 대화할 수도 있었다. 이렇게만 들으면 4천 년 전의 나와 비슷한 상태인가 싶지만, 오히려 인간보다 정령에 가까운 쪽이라 정령 계약은 어려운 듯했다. 약간이지만 물도 다룰 수 있는 것 같았다. “덕분에 우리도 쭉 주시하고 있는 아이야.” 트로웰이 건넨 귀엣말에 머쓱히 웃었다. 레이와 같은 존재가 처음 있는 사례다 보니 명계와 신계에서도 그를 두고 의견이 분분하다는 것 같았다. 왠지 정령계의 특이한 선례는 내가 다 만드는 기분이다. 그래도 레이가 괴롭게 여기지는 않는 것 같아 다행이었다.
“아버지가 계속 말해줬거든요. 넌 축복을 받은 존재라고. 그러니 긴 삶을 멍에로 여기지 말라고. 이 삶이 저를 점점 더 행복해지는 길로 이끌어줄 거라고요.”
엔딜 남매를 만난 걸 보면 정말 그런 것 같다며 레이가 수줍게 웃었다. 대공의 편에서 수많은 악행을 저지른 남자였지만, 레이에게는 마지막까지 좋은 아버지였다. 그에게 레이를 맡긴 건 잘한 결정인 것 같았다.
주위를 둘러보는 중에 문득 눈에 들어오는 것이 있었다. 장식장 위에 성서로 보이는 두꺼운 책과 함께 은색의 목걸이가 놓여 있었다. 엘뤼엔의 문장이 조각된 목걸이였다.
“이건…….”
“아, 그건 카이테인 거예요.”
엔딜이 그리운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남매와 함께 카터스 제국으로 떠났던 카이테인은 몇 년간 정착을 돕다가 모두의 생활이 안정되었을 때 신전으로 복귀했다고 했다. 이후엔 대사제를 역임하며 신관장까지 됐던 모양이다. 그러다 나이가 들어 더는 운신할 수 없게 되었을 때 우연히 엔딜과 재회했고, 마지막 여생을 그들 남매와 함께 보냈다고 했다.
“임종도 저희가 지켰어요. 잠들 듯이 편안하게 갔어요. 마지막으로 엘 님을 다시 뵙고 싶어 했는데, 그러지 못하고 가는 걸 아쉬워했어요.”
“그랬구나…….”
목걸이에 달린 조각을 천천히 쓸어보았다. 잘 관리되어 있지만, 늘 지니고 있던 물건이라는 걸 증명하듯 여기저기에 생활감이 묻어나 있었다. 그런 나를 가만히 바라보던 엔딜이 물었다.
“집 뒤편에 그의 무덤이 있어요. 가보실래요?”
* * *
아크아돈에선 시신을 염한 후 관에 넣어 석실에 안치하는 것이 가장 기본적인 장례법이었다. 하지만 신관의 시신은 화장하는 게 관례였다. 하늘에서 온 이들이니 하늘로 돌려보내기 위한 거라고 했다. 화장 후 남은 뼈는 항아리에 넣어 땅에 묻고 그 위에 비석을 세웠다.
카이테인 역시 같은 방법으로 장례가 치러졌다. 그의 무덤은 살아 있을 때의 그만큼이나 단정하고 정결한 느낌이었다. 매일 꾸준한 관리를 하는지 몇백 년이 지난 세월에도 바랜 느낌이 들지 않았다.
엘뤼엔의 가장 거룩한 종, 엔딜과 세실의 영원한 친우.
평온히 잠들다.
비석에 새겨진 문구를 손가락으로 쓸어보다가 숨을 천천히 내쉬었다. 이젠 담담해졌다고 생각했는데 직접 무덤을 보는 건 기분이 조금 달랐다.
“나 왔어요, 카이테인 씨. 굉장히 오랜만이네요.”
‘사실 난 아직 몇 년밖에 안 지난 것 같아서, 이렇게 당신의 무덤을 보고 있으니까 기분이 이상해요.’
속으로 중얼거리며 서글픈 기분으로 웃었다. 뒤에서 지켜보던 트로웰이 위로하듯 내 어깨를 짚어왔다.
“이제 그만 갈까?”
이어진 말에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내미는 손을 붙잡고 몸을 일으켰다.
“또 어디를 가고 싶어?”
“음, 글쎄.”
고개를 들어 주위를 돌아보았다. 겨울을 품은 하늘은 까마득히 높고 새파랬다. 지인의 무덤을 눈으로 확인한 탓인가. 아직 돌아본 곳보다 보지 못한 곳들이 더 많았지만 이제 더는 흥미가 일지 않았다.
“이사나에게 갈래.”
멍하니 중얼거린 말에 트로웰이 잠시 나를 바라보았다.
“그래도 될까?”
“그럼, 당연하지.”
고개를 끄덕이는 그의 입가에 미소가 맺혔다. 나 역시 밝게 웃었다. 이제 여정의 끝에 설 시간이었다.
* * *
스왈트 황족은 사망 후 황가의 무덤에 안치된다. 무덤 역시 황궁 안에 존재했다. 본성에서는 마차를 타고 한참 가야 할 정도로 떨어진 거리였지만, 어쨌든 황궁 안에 속한 부지이긴 했다.
웅장하게 세워진 건물은 무덤이라기보다는 신전이란 느낌에 더 가까웠다. 내부 역시 화려하게 꾸며져 있어 박물관에 들어선 듯한 착각이 들 정도였다. 하지만 지하로 내려가기 시작하면서 분위기가 확연히 달라졌다. 별다른 장식 없이 오직 관들만 놓여 있는 공간들, 어두컴컴한 암실엔 최소한의 조명만 배치해 차분하고 엄숙한 분위기가 났다.
“저 끝으로 가면 돼.”
걸음을 멈춘 트로웰이 정면에 보이는 공간을 가리켰다. 여기서부턴 나 혼자 가라는 뜻인 것 같았다. 도망치고 싶은 기분을 꾹 참고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마주해야 하는 일이었다.
“안에 들어가면 네가 봐야 할 것도 볼 수 있을 거야.”
“……나한테 보여주고 싶다고 했던 거 말이야?”
“응, 그거 맞아.”
그게 여기에 있었던 거구나. 긴장해서 그런지 눈앞이 조금 어지러웠다. 내가 무덤에 들어와 있다는 것도, 이 안에 이사나가 있다는 것도 모두 실감이 나지 않았다. 하지만 이내 마음을 다잡고 걸음을 천천히 옮겼다.
마침내 목적지에 다다랐을 땐 나도 모르게 숨을 조금 삼켰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건 벽면과 천장까지 한데 어우러진 섬세한 조각들이었다. 자세히 보니 소년과 소녀가 처음 만나는 광경에서부터 시작해서 함께 용맹하게 전투를 치르는 모습, 결혼하는 모습, 백성들을 향해 다정히 손을 흔드는 모습으로 이어지는 형태였다. 아마도 이사나와 알리사의 일대기를 표현한 벽화인 것 같았다. 그 공간 한가운데 금 도장이 된 관 두 개가 놓여 있었다. 이사나와 알리사의 관이었다.
“…….”
그대로 주저앉고 싶은 기분을 간신히 견뎠다. 두 사람의 관 앞에는 다른 공간에선 보지 못한 장식이 있었다. 제단처럼 만들어둔 단상, 그 위에 선명한 붉은빛이 감도는 검이 세워져 있었다. 내가 알던 색과는 달랐지만, 분명히 내가 아는 그 검이었다.
<영웅들이 잠든 곳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용사여.>
아니나 다를까. 걸음을 내딛는 순간 웅장한 음성이 울렸다. 그 언젠가의 첫 만남을 상기시키는 음성이었다.
<내 이름은 파이어 버스터. 위대하신 불의 정령왕 이프리트 님의 산물인, 봉인된 이그니스가 담긴 정령검입니다. 나를 취하는 자, 이 세상의 모든 힘을 얻을 것입니다.>
예전과 거의 달라진 점이 없는 멘트에 쓴웃음이 나왔다. 왜 파이어 버스터가 이 안에서 무덤 지기를 하고 있는 건지 모르겠다. 트로웰이 보여주고 싶었다는 게 이거였을까. 가까이 다가가니 제단 위에 놓여 있는 것이 또 하나 눈에 띄었다. 금색 가죽이 덮인 두꺼운 책 한 권이었다.
“이건 뭐지?”
나도 모르게 혼잣말로 중얼거렸을 때였다.
<헛? 이 목소리는?>
고고하게 붉은빛을 흩뿌리던 검에서 깜짝 놀란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설마 엘퀴네스 님? 엘퀴네스 님이세요?>
언제 웅장했냐는 듯 호들갑스럽게 떠드는 목소리에 웃었다. 색이 달라져서 혹시나 했는데, 성격은 여전한 것 같았다.
“그래, 나 맞아. 오랜만이다.”
<에이, 뭐야. 또 엘퀴네스 님이에요? 너무해! 전 용사님이 온 줄 알았단 말이에요!>
“그놈의 용사 타령은 여전하구나.”
<그야 모시던 용사님이 돌아가셨으니 당연히 새로운 주인을 찾아야지요! 그게 바로 저의 사명이란 말이어요!>
항변하는 파이어 버스터는 무척 억울한 목소리였다. 전 주인의 관 앞에서 새 주인을 맞이하는 의식이라. 나름대로 의미가 있는 것 같기는 한데, 지금까지 이러고 있는 걸 보면 그리 적합한 장소는 아닌 듯했다. 그 생각을 알아차렸는지 파이어 버스터가 황급히 말을 이었다.
<앗, 오해는 하지 마세요! 지금은 다른 소임이 있어서 그걸 더 우선으로 하는 것뿐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