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77화
“어서 오십…… 어?”
문을 열고 들어가자 반사적으로 맞이하던 식당 주인이 나를 알아보고 눈을 동그랗게 떴다. 갈색 머리칼에 녹안. 이루고 있는 색은 달랐지만 전체적인 얼굴 분위기가 역시 많이 닮았다. 시벨리우스의 형, 리글레오였다.
“오랜만이네요.”
“아, 정말 오랜만입니다.”
식사 시간이 아니라 그런지 식당 안엔 다른 손님이 없었다. 반가운 얼굴로 다가온 리글레오가 슬쩍 내 주위를 살폈다.
“그 아이는…… 시벨은 같이 안 왔습니까?”
“그거 때문인데요. 혹시 유니콘 마을에 가는 방법을 알려줄 수 있을까요?”
“……네?”
당황한 듯 눈을 깜빡인 리글레오가 한 발짝 늦게 반응했다. 그러다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무섭게 얼굴을 굳히고 물었다.
“설마 시벨이 추격자들에게 잡혀갔습니까?”
“아, 아뇨! 그런 건 아니에요. 마을로 돌아가긴 했지만 본인 의지로 간 거예요. 저도 같이 가기로 했는데, 제가 자는 사이에 그 녀석 혼자 가버려서요…….”
아아, 그제야 상황을 이해했다는 듯 그가 한결 안도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쫓아가고 싶은데 이미 마을에 들어가 버린 것 같더라구요. 그래서 방법을 물어보러 온 거예요.”
“으음, 그렇군요. 무슨 상황인지는 알겠습니다. 하지만 죄송하게도 이건 도움을 드리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아…….”
“앗, 오해하지 마십시오. 알려드리기 싫다는 뜻이 아닙니다. 저도 모르기 때문에 알려드리고 싶어도 그럴 수가 없는 겁니다.”
“……모른다고요?”
“유니콘 마을은 외부인의 출입이 엄격히 통제되는 만큼 결계 관리에도 신경을 많이 씁니다. 제가 마을을 떠난 후에 바로 진법의 구조부터 바꿨습니다.”
차분한 설명에 가슴이 착잡해졌다. 한때 룬이었던 그가 마을을 떠났는데 가장 먼저 한 일이 진법을 바꾼 거라니. 다시는 돌아오지 말라는 소리를 이보다 더 차갑게 표현할 수 있을까. 내가 이렇게 가슴이 아픈데 당사자는 어떤 기분일지 상상이 가지 않았다. 하지만 나 때문에 좋지 않은 기억을 상기했을 텐데도, 리글레오는 그저 미안해하기만 했다.
“아렐은 알 테지만 그도 최근엔 만나기 어려워진 상태라서요. 제 쪽에서 먼저 연락할 방법은 없어서 이것도 도움이 되기가 어렵겠네요.”
“……그렇군요.”
“시벨은 당신을 걱정해서 그랬을 겁니다. 유니콘 마을은 외부인에 많이 예민한 편입니다. 인간에게는 더욱 그렇고요. 장로는 특히 무슨 짓을 할지 알 수 없는 사람이라…… 마주치게 하고 싶지 않았을 겁니다. 서운하겠지만 이해해 주세요.”
실망한 표정이 너무 눈에 보였는지 리글레오가 서둘러 위로의 말을 건네왔다. 누가 형제 아니랄까 봐 하는 말도 거의 비슷했다.
“한 가지 물어볼 게 있는데요.”
“네, 뭡니까?”
“여전히 시벨이 당신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 채로 살기를 바라나요? 그게 아주 먼 시간이 지난 후라도?”
그 말에 웃고 있던 그의 얼굴이 천천히 굳어졌다. 동생 친구를 바라보던 훈훈한 시선이 사라지고, 그 자리에 경계심이 채워지는 것이 선명히 보였다.
“……당신은, 뭘 어디까지 알고 있는 겁니까?”
“아마 예상하는 것보다 더 많이 알 거예요.”
“혹시 아렐이?”
“아뇨. 당신 태도도 그렇고, 여기저기서 들은 이야기들도 있고 해서요. 그냥 제 나름대로 짐작해본 거예요. 지금 반응을 보니 맞춘 것 같네요.”
적당히 둘러댄 말이었지만 어색하진 않았는지 리글레오는 의심 없이 받아들인 얼굴이었다. 잠시간 낭패한 기색을 감추지 못하던 그는 이내 진지한 표정으로 생각에 잠겼다.
“먼 시간이라는 건 어느 정도를 말하는 겁니까?”
“으음, 그냥 까마득하게 긴 시간이요. 몇천 년? 한 4천 년이라든가.”
“이런, 생각보다 더 먼 훗날이네요.”
몇천 년은 유니콘에게도 긴 시간이다. 그제야 여유가 돌아왔는지 리글레오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그렇군요. 그쯤이면 알아도 괜찮을지도 모르겠네요. 그 아이가 룬으로서 어엿하게 각성하고, 절 용서할 마음이 생긴다면요.”
“……그때가 되면 시벨리우스한테 무슨 말을 하고 싶어요?”
설마 그런 걸 물을 줄은 몰랐다는 듯 리글레오가 눈을 크게 떴다. 하지만 그 얼굴은 곧 편안하게 풀어졌다. 부드러워진 눈빛에 애틋한 감정이 물씬 피어났다.
“형은, 널 아주 많이 사랑한다고요.”
알겠어요. 돌아가서 만나면 꼭 그렇게 전해줄게요. 답하고 싶은 말을 입안으로 삼키며 고개를 끄덕였다. 울지 않기 위해 애쓰는 것만으로 버거워서 제대로 말을 할 수가 없었다. 리글레오는 그런 내 기분을 다 안다는 듯 아무 말 없이 미소짓기만 했다. 왜 이런 걸 물어보는지 이유조차 묻지 않았다.
혼자 식당을 돌아 나오는 발걸음이 무거웠다. 결국 시벨리우스를 쫓아갈 방법은 찾지 못하게 됐다. 갑작스럽게 너무 엄청난 일이 벌어진 것 같았다. 이럴 줄 알았으면 무작정 같이 가겠다고 하지 말걸. 차라리 제대로 작별하는 시간이나 마련해볼걸. 그랬다면 마지막 식사라도 같이할 수 있었을 거다. 아쉽고 안타까울지언정 이런 식으로 허무하게 끝나버리진 않았을 텐데. 뒤늦은 후회들만 가슴을 가득 채웠다.
안녕, 시벨리우스. 지금은 이별이지만 이게 끝은 아닐 테니까. 네가 먼저 돌아간 거라고 생각할게. 나중에 꼭 다시 만나자. 그때 우리는 더 많은 것을 공유할 수 있을 거야. 그렇지?
한숨을 내쉬는데 눈앞에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내가 리글레오를 만나는 동안 밖에서 기다리고 있던 엘뤼엔이었다.
“아버지.”
“원한다면 네 앞에 데려다 놓겠다.”
시벨리우스를 데리고 나와주겠다는 뜻이었다. 흐리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미련이 남지 않은 건 아니지만 이렇게 된 게 차라리 잘된 것 같다. 사실 같이 갔으면 오히려 더 힘들기만 했겠지. 눈앞에서 시벨리우스가 봉인되는 상황이 벌어지면 그걸 가만히 지켜볼 순 없었을 거다.
“아버지, 나 거기 가고 싶어.”
“어디를?”
“아버지랑 처음 만난 곳.”
돌아보는 엘뤼엔의 눈동자에 이채가 어렸다.
“그쪽의 용건은 이제 끝난 거 아니었나?”
“그래도 가고 싶어. 데려가 줄래?”
“그래, 알겠다.”
부유감과 함께 화사한 빛이 감싸 안았다. 이제 정말로 내가 아는 모든 과거의 이야기가 끝났다. 이제부터는 전부 모르는 세계였다.
* * *
여름에 접어든 날씨는 새벽이 되어도 훈훈했다. 짙푸른 숲에 들어선 시벨리우스는 자꾸만 뒤를 돌아보고 싶은 충동을 간신히 눌러 참았다. 엘이 같이 가자고 했는데 그가 잠든 사이에 말도 없이 떠나고 말았다. 깨어나면 틀림없이 화내겠지. 실망한 표정을 지은 엘을 생각하니 돌을 얹은 것처럼 마음이 무거웠다.
“가지 않는 게 좋을걸.”
출발하기 전 들었던 말 때문에 더 그럴지도 몰랐다. 그 말을 한 사람이 하필 예지 능력을 지니고 있지 않았다면 좋았을 것이다. 싫어하는 쪽에 가까운 이라 그가 하는 말은 무엇도 달갑게 여길 수 없지만, 이건 그것과는 별개의 문제였다.
“작별 인사는 제대로 하는 게 낫지 않겠어? 잠든 사이에 몰래 가버리면 엘이 실망할 텐데.”
약 올리듯이 말하던 목소리가 지금도 귓가에 선명했다. 시벨리우스는 자기도 모르게 한숨을 내쉬었다. 엘퀴네스는 정령계로 돌아갔고, 엘도 완전히 잠든 시각이었다. 아무도 자신의 계획을 알아차리지 못할 거라 생각했는데 설마 누가 나타날 줄은 몰랐다. 그게 지난 시간 그의 속을 뒤집어놨던 땅의 정령왕일 거라곤, 더더욱 상상도 하지 못했다.
“네가 무슨 상관이야.”
“맞아, 나와는 상관없지.”
어슴푸레한 달빛을 등진 채 나타난 소년은 그 자체로 고요한 밤하늘 같았다. 미풍에 흔들리는 흑발도, 은은한 광채를 머금은 금안도 모두 이 세상이 심혈을 기울여 빚어낸 작품처럼 보였다. 그래서 더 마음에 들지 않았다.
“네가 아니라 엘을 위해서 말해주는 거야.”
“그런 말을 네가 하는 건 우습다고 생각하지 않아?”
“한마디를 좋게 받아들이질 않네. 그래서 선배로서 충고하는 거잖아. 뭐, 굳이 후회하겠다면야.”
“……작별 인사는 필요 없어. 난 아주 떠나는 게 아냐. 같이 가는 건 너무 위험하니까 그냥 혼자 금방 다녀오려는 거야. 용건만 해결하고 바로 다시 돌아올 거야.”
“글쎄, 그게 과연 네 생각대로 될까.”
읊조리는 듯한 음성이 낮은 웃음기를 머금었다. 위에서부터 아래로 천천히 훑어내리는 시선이 묘했다. 어릴 때부터 종종 받아왔던 시선이라 시벨리우스는 그 의미를 금방 알아차렸다. 그건 분명 한심해하는 시선이었다.
“어쨌든 난 경고했어.”
빠직, 시벨리우스는 길을 방해하는 나뭇가지를 신경질적으로 잡아 꺾었다. 다시 생각해도 이가 절로 갈렸다.
“기분 나쁜 자식…….”
정령왕이면 뭐고 미래를 좀 볼 수 있는 게 뭐라고. 어차피 그 예지도 전부 들어맞는 건 아니면서. 최근 들어 좀 나아지긴 했지만 역시 천성은 어디 가지 않는 법이다. 그 때문에 엘이 죽을 뻔했던 걸 생각하면 지금도 그는 울화가 치밀었다.
그래도 한편으로는 마음이 무거운 건 어쩔 수 없었다. 그 얄미운 땅의 왕이 친히 경고까지 하러 올 만큼, 이 여정이 위험하다는 소리였으니까.
‘어차피 한번은 겪어야 할 일이야.’
시벨리우스는 심란한 마음을 차분히 다스렸다. 엘에게는 차마 말하지 못했지만, 장로가 보낸 전언엔 그에게만 전하는 내용도 들어 있었다.
<기한 내에 돌아오지 않을 시 당신의 소중한 친구가 다치게 될 겁니다. 제가 일족을 위해 특별한 힘을 쓸 수 있다는 걸 잊지 마십시오.>
이걸 허세라고 여길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장로에겐 루세프의 신물이 있었다. 유니콘이 중간계로 이주할 때 특별히 하사받은 것으로, 그 신물을 사용하면 단 한 번 루세프의 이름으로 심판을 내릴 수 있었다.
원래 룬이 지니고 있어야 하는 거지만 그의 나이가 너무 어리다는 이유로 장로가 관리했고, 성인이 된 후에도 돌려받지 못했다. 지금까지는 감히 아무도 사용할 생각을 하지 못했으나 룬에 비정상적으로 집착하는 장로라면 일을 저지르고도 남았다. 신계 복귀가 확정된 지금은 더더욱 거리낌이 없을 것이다. 엘이 아무리 강하고 정령왕의 비호를 받는다 해도 상급신의 심판을 이기지는 못한다. 그렇기에 더더욱 마을에 데려갈 수 없었다.
‘일단 루세프의 신물부터 찾자.’
신물을 보관해둔 장소는 이미 알고 있었다. 그것만 확보하면 장로에게 끌려다니지 않아도 된다. 속으로 계획을 정리한 후 시벨리우스는 신중히 마을로 들어섰다. 약속된 규칙에 따라 몇 개의 관문을 통과하자 다른 세상이 펼쳐지기 시작했다. 등나무꽃이 한가득 피어난 초원 위로 신전처럼 새하얀 가옥들이 하늘을 향해 뻗어 있었다. 익숙한 고향의 전경이었다.
아직 이른 시간이라 그런지 활동하는 이들은 많지 않았다. 시벨리우스는 주술을 써서 기척을 죽이고 빠른 속도로 이동했다. 목적지는 마을 중심부에 있는 장로의 가택이었다. 출입문으로 들어가는 대신 벽을 넘어 안으로 들어선 그는 성큼성큼 걸음을 옮겼다. 복잡한 구조였지만 워낙 어릴 때부터 오간 곳이라 모르는 길은 없었다. 이윽고 그의 눈앞에 작은 가옥이 모습을 드러냈다. 장로의 개인 기도실이었다.
기도실엔 장로 본인만 통과할 수 있는 결계가 있어서 다른 사람이 들어가는 건 위험했다. 시벨리우스도 어릴 때부터 들어가면 큰일이 난다는 얘기를 귀에 못이 박이도록 들었다. 실제로 누가 호기심으로 들어갔다가 결계에 걸려 죽는 사고가 벌어진 적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 안으로 들어서는 시벨리우스의 발걸음엔 아무런 망설임이 없었다. 사실 그는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자신이 들어가지 못할 거라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었다. 그 결계를 룬의 피로 만들었으니까.
예상대로 시벨리우스는 아무렇지 않게 결계를 통과했다. 가볍게 숨을 삼킨 그는 조금 착잡한 기분으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내부엔 루세프의 신상들이 세워져 있었다. 시벨리우스는 그중 활을 들고 있는 신상으로 다가가 주위를 훑었다. 이마의 장식을 건드린 후 활촉을 돌리자 신상의 등 부분에서 작은 홈이 튀어나왔다. 여기까지는 전부 순조로웠다. 하지만 그 안에서 빼낸 함을 확인했을 때 시벨리우스의 눈빛은 가라앉았다.
‘……없어.’
원래 신물이 들어 있어야 할 상자가 텅 비어 있었다. 내가 찾아올 걸 예상했나. 아무래도 쉽게 가기는 틀린듯했다. 주먹을 움켜쥔 시벨리우스는 기도실을 벗어났다. 이번엔 굳이 숨어 다니지 않고 모습을 드러냈다. 한창 오전 일과를 시작하던 장로의 식솔들이 그를 알아보고 술렁거렸다.
“시벨 님!”
소식이 안으로 전해지는 속도는 빨랐다. 곧 다른 건물 쪽에서 웰디가 시종들을 대동한 채로 나타났다. 치장하는 중에 서둘러 나온 건지 머리도 땋아 내리다 만 상태였다.
“드디어 돌아오셨군요! 기별이라도 해주시지 그러셨어요. 그럼 마중을 나갔을 텐데.”
반가운 기색이 역력한 얼굴을 바라보다 시벨리우스는 다른 이들도 돌아보았다. 그들은 모두 불편한 표정으로 시선을 피하고 있었다. 이것 역시 익숙한 광경 중 하나였다. 이곳 사람들은 대부분 그와 눈을 맞추려 하지 않는다. 그제야 돌아왔다는 실감이 들었다. 더불어 더는 이런 광경들에 미련이 생기지 않는다는 사실도 깨달았다. 시벨리우스는 자기도 모르게 낮게 실소했다. 그래도 조금쯤은 그리운 기분이 들 줄 알았다.
“서클렛은 어딨어?”
“오시자마자 그거부터 찾으시기예요?”
웰디가 입술을 삐죽였다. 새초롬해진 얼굴에 서운함이 서리는 광경을 시벨리우스는 담담히 응시했다. 그를 이루는 삭막한 세계에서 웰디는 몇 안 되는 온기 중 하나였다. 예전 같았다면 미안한 마음이 들었을 텐데 지금은 아무렇지도 않았다. 그 변화를 느낀 건 웰디도 마찬가지였는지 눈빛이 흔들렸다. 입술을 살짝 깨문 그녀의 목소리가 조금 전보다 한층 퉁명스러워졌다.
“그거 지금 저한테 없어요.”
“그게 무슨 말이야? 너한테 없으면 누구한테 있는데.”
“실은…….”
“이걸 찾으십니까?”
순간 들려온 음성에 소름이 쭈뼛 돋았다. 시벨리우스는 가까스로 고개를 돌려 소리가 들려온 방향을 확인했다. 그곳엔 오색의 가운을 걸친 남자가 서 있었다. 연한 다홍색 머리칼을 딱 붙도록 넘겨 올린 그는 그 머리 모양만큼이나 빈틈없이 날카로운 인상이었다. 웰디와 똑같은 붉은색 눈동자였지만, 그의 눈은 한 번도 편한 기분으로 마주봤던 적이 없었다.
“아르단.”
“룬을 참으로 오랜만에 뵙습니다.”
정중한 인사를 가장한 타박이었다. 시벨리우스는 굳은 얼굴로 그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장로 아르단은 은으로 만들어진 쟁반을 들고 있었다. 그 위에 담겨 있는 장신구가 보였다. 은테에 푸른 보석이 달린 서클렛. 희미하게 스며 있는 마신의 기운만 봐도 그게 찾던 물건이라는 건 분명했다. 하지만 시벨리우스의 시선이 향한 건 아르단의 손이었다. 그 오른쪽 검지에도 푸른 보석이 박힌 두꺼운 반지가 끼워져 있었다. 기도실에서 찾을 수 없었던 루세프의 신물이었다.
아르단 역시 시벨리우스의 시선이 반지에 향했다는 걸 알아본 표정이었다. 그의 얼굴에 은은한 미소가 걸렸다.
“하실 이야기가 많으신 것 같군요. 자리를 옮기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