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정령왕 엘퀴네스-574화 (574/608)

제574화

“……정말 어처구니가 없군.”

우선 인사부터 하려고 입을 여는데 그가 먼저 낮게 중얼거렸다. 비난의 말이 나올 걸 대비해 움츠렸지만 그는 여전히 내가 찔렀던 곳만 바라보고 있었다.

“겁이 없는 줄은 알았지만 내가 잘못 판단했다. 넌 인간으로서 가장 기본적인 본능이 결여돼 있다.”

“어, 음…… 그런가.”

이거 어디서 들어본 말인데. 예전에 라피스도 이거랑 비슷한 말 하지 않았나?

“계약이 파기됐으면 몸을 사려야지. 넌 대체 왜…….”

한숨과 함께 눈두덩이를 문지르는 모습에서 짙은 피로감이 느껴졌다. 이상한 일이다. 늘 철옹성처럼 견고했던 그가 지금은 유난히 약해 보였다. 날 구하고 피투성이가 된 채 쓰러졌던 그 순간이 떠오를 만큼.

그걸 깨닫는 순간 내가 그동안 뭘 놓치고 있었는지도 깨달았다. 내 감정을 지키기에만 급급해서 다른 이들을 돌아볼 겨를이 없었다는 걸. 라피스가 그렇게 여러 번 경고했는데. 그로 인해 무슨 일까지 벌어졌는지 알았으면서. 그걸 또 잊어버렸다.

이 세상은 내게 너무 가혹해서, 나만 괴롭고 힘든 건 줄 알았다. 아무것도 없이 밑바닥에서부터 억지로 시작한 관계니 내게만 의미가 있을 거라고. 그래서 쭉 혼자서만 붙들고 있는 줄 알았다. 하지만 나만 다친 게 아니었다. 내가 다친 만큼 그 역시 다친 거였다.

“미안해, 아버지. 잘못했어.”

다급히 팔을 뻗어 그를 끌어안았다. 엘뤼엔은 피하지 않고 가만히 있었다.

“내가 정말 잘못했어.”

가까이에서 느껴지는 호흡이 약하게 흐트러졌다. 약간의 시간 후, 느릿하게 닿아온 손길이 천천히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를 더 꽉 끌어안았다. 따뜻한 체온에 눈물이 날 것 같았다.

* * *

바깥에서 소란이 느껴진 건 그로부터 얼마 후였다. 쑥스러운 기분으로 엘뤼엔과 포옹을 끝마치는데, 그 순간 문이 벌컥 열리더니 누군가가 나를 덮치듯 끌어안았다.

“아이고, 도련님!”

말투만 들어도 이프리트였다.

“드디어 일어났구나! 괜찮아? 괜찮은 거야? 대체 이게 다 무슨 일이야! 왜 그런 짓을 저질렀어! 차라리 그 검으로 트로웰 놈을 찔러버리지! 그놈 자식 이미 힘 빠질 대로 빠진 상태라 저항도 못 하고 그냥 순식간에 역소환 됐을 텐데! 그럼 앞으로 수십 년간 인간 멸망은커녕 중간계는 구경도 하지 못했을 텐데! 아이고, 이 예쁘고 착한 도련님이 도대체 무슨 잘못을 했다고!”

“윽… 잠깐, 이것 좀… 놓고 말을…….”

걱정해주는 건 좋은데, 얼마나 꽉 부둥켜안았는지 숨을 쉬기가 힘들었다. 켁켁거리고 있으니 그의 몸이 휙 뒤로 넘어가며 강제로 떨어져 나갔다. 엘뤼엔이 그의 뒷덜미를 잡아 던진 거였다.

덕분에 겨우 얼굴을 보게 된 이프리트는 금발을 지닌 릴의 모습이었다. 넘어지면서 뒤통수를 박았는지 아프다고 끙끙거리던 그가 원망스러운 얼굴로 엘뤼엔을 노려봤다.

“이게 무슨 짓이야!”

“성가시게 굴지 마라.”

“무슨 상관이야! 넌 이제 도련님 계약자도 아니면서! 네가 뭔데 나와 도련님의 오붓한 시간을 방해해!”

“아버지를 그만둔 건 아니지.”

그 대답에 먼저 숨을 삼킨 건 나였다. 확실히, 정령 계약을 그만둔 거지 부자 관계를 그만둔다는 말은 안 했다. 계속 아버지라고 불러도 뭐라고 하지도 않았고. 하지만 원래의 엘뤼엔도 아니고, 이 시대의 그에게서 이런 대답이 나올 거라곤 상상도 하지 못했다. 이프리트 역시 당황했는지 어안이 벙벙한 표정을 하고 있다가 곧 발끈해서 소리쳤다.

“허! 이 치사한 놈 좀 봐! 이제 보니 처음부터 이럴 작정이었던 거지? 님, 양심은 챙기셨어요?”

“꺼져.”

“아 왜 뭐만 했다 하면 꺼지래! 싫거든! 안 꺼질 거거든! 내가 어디에 붙어 있든 그건 내 마음이거든!”

“그럼 그 대가도 책임지면 되겠군.”

“도련니임! 너네 아버지가 나 괴롭혀!”

……이게 정령왕의 싸움인지 애들 싸움인지 모르겠다.

후다닥 내 뒤로 숨는 시늉을 하는 이프리트를 황당한 기분으로 바라보다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이 와중에도 입꼬리가 자꾸 올라가서 더 곤욕스러웠다. 아직 이럴 때가 아닌데. 깨어난 후로 이어지는 상황들이 쭉 평화롭기만 해서 나도 모르게 계속 넋을 놓게 된다.

정신을 다잡을 겸 주위를 돌아보았다. 생각지 못한 재회를 한 건 좋은데, 정작 함께 있던 트로웰과 시벨리우스는 보이지 않았다. 그 뒤로 상황이 어떻게 돌아간 건지, 시간이 얼마나 흐른 건지도 알 수가 없었다.

“저기, 나 얼마 만에 일어난 거야?”

“도련님? 이틀은 꼬박 잤을걸.”

조심스럽게 물어본 말에 이프리트가 대답했다. 이틀이라니. 생각했던 것보다 더 긴 시간이었다.

“엘퀴네스 말로는 도련님이 그동안 잠을 제대로 못 자서 그런 거라던데. 치유술 덕분에 피로가 풀리면서 몸이 나른해지니까 그 반작용 같은 거래. 그치, 엘퀴네스?”

“…….”

엘뤼엔이 그걸 왜 네가 설명하냐는 시선을 보냈다. 두 정령왕이 험악하게 서로를 노려보는 동안 속으로 다음 말을 골랐다. 하지만 정작 묻기도 전에 이프리트가 입을 여는 것이 더 빨랐다.

“트로웰이라면 자기 영역 수습하러 갔어.”

내가 누굴 찾는 게 너무 티가 난 모양이다. 그렇구나. 정령계로 돌아갔구나. 이걸 어떤 방향으로 해석해야 할지 모르겠다. 설마 그사이에 전부 다 끝나버린 건 아니겠지.

쓰러진 후의 기억은 가물가물하다. 트로웰이 내 손을 잡고 울었던 거 같은데, 너무 잠에 취해 있어서 꿈인지 현실인지 확실하지가 않았다. 당장 느껴지는 분위기는 나쁘지 않았지만 혹시 또 모를 일이다. 자고 일어난 사이에 내가 최후의 인간이 되었을지. 차라리 잠시 보류된 거라면 좋을 텐데. 불길한 상상이 들어맞을까 봐 차마 물어보기도 겁났다. 그러자 내 불안을 알아차렸는지 이프리트가 씩 웃었다.

“걱정하지 마, 도련님. 이제 그놈도 정신 차린 것 같아.”

“어……?”

“트로웰 말이야. 인간들 안 죽이기로 했어.”

나도 모르게 숨을 멈췄다. 가장 듣고 싶었던 말이었지만 막상 들으니 현실감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정말?”

“정말.”

이프리트의 웃음이 짙어졌다.

“처음 무너트린 마을 외에는 아무것도 안 건드렸어. 그 현장도 바로 수습해서 생존자들 구조했고. 다행히 다들 일하러 나간 시간이라 인명피해도 생각보다는 안 컸어.”

멍하니 엘뤼엔을 응시하니 그 역시 고개를 끄덕였다. 그제야 숨이 쉬어지면서 손에 절로 힘이 들어갔다. 트로웰이 그만두기로 했단다. 인간을 멸족하려는 계획을 철회했다. 카노스가 보여줬던 미래를 틀었다. 그가 타락하는 결말을 막아냈다.

“다행이다…….”

안도감에 벅차오른 나머지 목소리가 떨렸다. 너무 기쁜데 울고 싶은 기분이라 머리가 혼란스러웠다. 지금 내 표정이 우스꽝스러울 거라는 것만은 분명했다.

“정말 고생했어, 도련님. 그 녀석을 멈추게 해줘서 고마워.”

나만큼이나 울 것 같은 표정을 지은 이프리트가 나직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

“사실 진짜 막막했거든. 도련님이 아니었으면 아무도 그 녀석을 구제할 수 없었을 거야. 다 도련님 덕분이야. 사실은 우리가 했어야 하는 일인데 면목이 없어. 인간들만이 아니라 정령계 전체가 큰 신세를 졌어.”

“아냐, 이프리트. 너무 그렇게 어렵게 말하지 마. 나도 내 가족을 위한 거뿐이야.”

그 말에 눈을 크게 뜬 이프리트가 부드럽게 웃었다.

“도련님을 만나서 정말 다행이야.”

늘 친절했지만 이번만큼 다정한 목소리를 들어본 건 처음인 것 같았다. 그가 내 손을 꼭 붙잡았다.

“그 대신이라고 말하기엔 뭐하지만 도련님, 앞으로 도련님이 힘든 일이 생길 땐 내가 꼭 도울게. 혼자서 힘든 일은 겪지 않게 할게. 언제든지 마음껏 의지해.”

“응, 고마워.”

“진짜야. 내가 너의 가장 친한 친구가 될게.”

맹세하듯 말한 후 그가 내 이마에 가볍게 입을 맞췄다.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는 한 박자 늦게 깨달았다. 이프리트의 고유 능력인 축복의 키스였다. 계약자에게도 선뜻 내려주지 않는 불의 가호. 그가 나를 자신의 사람으로 인정했다는 의미였다.

“고, 고마워, 이프리트.”

“그건 내가 할 말이야.”

뜻밖의 선물을 받은 기분에 어안이 벙벙해져 있으려니 싱긋 웃은 이프리트가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내내 못마땅해하는 시선을 보내고 있던 엘뤼엔이 더는 봐줄 수 없다는 듯 그 손길을 쳐냈다. 다시금 두 정령왕의 시선이 험악하게 맞부딪쳤다.

때마침 방 안으로 들어서는 기척이 느껴졌다. 누군가 했더니 시벨리우스였다. 이미 내가 일어났다는 걸 알고 온 건지 이쪽을 바라보는 표정이 담담했다.

“시벨리우스.”

그러고 보니 그에게도 사과해야 하는데. 눈앞에서 친구가 자살 기도하는 광경이라니, 너무 나쁜 기억을 심어줬다. 나라면 만나자마자 욕을 한 바가지는 퍼부었을 텐데, 그는 얌전히 바라보고 있기만 해서 더 양심이 찔렸다. 어떻게 말을 꺼내야 하나 망설이는 동안 시벨리우스는 아무런 말 없이 다가와 내 앞에 그릇이 담긴 쟁반을 내려놓았다. 그가 그릇의 뚜껑을 열자 달콤하고 고소한 냄새가 풍겼다.

“이틀 만에 일어났으니 시장할 거야. 네가 좋아하는 콩 수프 만들어 왔어. 식기 전에 먹어.”

“……시벨리우스.”

그대로 돌아서서 나가려는 그의 옷깃을 붙잡았다. 억지로 멈춰선 시벨리우스가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몸을 다시 내게 돌렸다. 표정은 딱딱하게 굳어 있는데, 금방이라도 울 것처럼 눈가가 새빨갰다. 그 모습을 보자 저절로 입이 열렸다.

“미안해.”

순간 시벨리우스의 눈에서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얼굴을 와락 일그러트린 그가 입술을 꾹 악물었다. 고개 숙인 그에게서 억눌린 울음소리가 흘러나왔다.

“네가 그대로 죽어버리는 줄 알았어.”

“……정말 미안해.”

“다시는, 다시는 그런 짓 하지 마.”

“응.”

흐느끼는 목소리를 가슴에 새기며 고개를 끄덕였다. 엘뤼엔과 이프리트의 표정도 무겁게 가라앉아 있었다. 그 모습 하나하나 천천히 눈에 담았다. 앞으로 평생 잊지 말아야 할 것들이 생겼다.

“다시는 안 그럴게.”

* * *

내가 달랠 사람은 시벨리우스만이 아니었다. 수프를 다 먹은 후에 거실로 나와 보니 잔뜩 심술이 난 라미아스가 소파에 다리를 꼰 자세로 앉아 있었다. 눈이 마주치자마자 손가락을 까닥거리는 것에 머뭇머뭇 다가갔다. 맞은편 자리에 죄인처럼 앉으니 그는 한참을 나를 노려보다 짓이기는 듯이 말했다.

“얘기는 다 들었어.”

“아하하, 네. 들으셨군요…….”

“너 말이야! 이런 중요한 일을 나한테 말도 하지 않고!”

“죄송해요.”

“어떻게 그런 큰일을 겁도 없이 그냥 막……어? 뭐?”

곧바로 사과할 줄은 몰랐는지 기관총처럼 빠르게 쏟아지던 말이 급격히 수그러졌다.

“너무 마음이 급해서 다른 게 보이지 않았어요.”

“……흠흠, 뭐, 사실 그럴 만도 하지. 네가 어디 제대로 고민할 겨를이나 정신이 있었겠냐. 그냥 널 걱정하는 사람들도 있다는 걸 알아달라는 소리였어.”

“네, 알아요. 걱정해주셔서 고마워요.”

웃으며 답한 말에 그의 표정은 더 누그러졌다. 복잡한 얼굴로 나를 바라보던 라미아스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트로웰이 그 정신 나간 계획을 정말 저지르려 할 줄은 몰랐어. 좀 화풀이나 하다가 말 줄 알았지. 미친놈이 힘을 가지면 답이 없다는 걸 알려주는 건 내 동족들만으로 충분했는데, 그걸 정령왕을 보면서도 깨달을 줄은……. 일이 어떻게든 잘 풀려서 다행이다.”

“아하하, 그러게요.”

“사고 현장은 트로웰이 스스로 복원해주기도 해서 대충 수습된 것 같아. 유족들과 피해자들에겐 내가 익명으로 위로금을 보냈어. 그곳 인간들한테는 날벼락이었겠지만, 정령왕이 날뛴 것치고는 평화로운 결말이지. 다 네 덕분이다.”

글쎄, 이걸 덕분이라고 할 수 있을까. 라미아스로선 마음을 편히 해주려는 의도겠으나, 하필 그들이 날벼락을 당한 이유에도 내가 있다 보니 입안이 썼다.

“한 가지 궁금한 게 있는데요.”

“뭔데?”

“그 현장에서 고아가 된 여자애가 있을 텐데…… 이름이 에밀리라고 하거든요. 그 애가 어떻게 됐는지 알 수 있을까요?”

현장에 있던 사람이라면 모두 충격이 컸겠지만, 에밀리는 트로웰의 적의까지 온몸으로 경험했다. 마지막에 서럽게 울던 걸 제대로 진정시키지도 못했던 게 마음에 걸렸다. 이미 그에 대해서도 들은 게 있는 듯 라미아스는 누구를 말하는 건지 알겠다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확인하러 가볼래?”

라미아스가 날 데리고 간 곳은 동화책에 나올 것처럼 생긴 아름다운 저택 앞이었다. 높게 세워진 담벼락 안으로 푸릇푸릇한 정원과 놀이터가 가꿔져 있었다. <해가 드는 고아원> 철문에 달린 작은 팻말이 보였다. 놀이터에선 같은 복장을 한 아이들이 한창 까르르 웃으며 뛰어노는 중이었다. 그중에서 익숙한 여자애를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었다. 에밀리였다.

“밤새 꼬박 앓더니 기억을 거의 잃었어. 저 꼬마한테는 차라리 잘된 일이지.”

“……나중에 후유증이 생길 확률은요?”

“아예 없다곤 못하지만 괜찮을 거야. 여기 원장이 전쟁고아나 외상 후 증후군을 앓는 아이들을 돌보는 일에 관심도 많고 관련 경험도 많거든. 특별히 더 신경 쓴다고 했어.”

“그래요. 다행이네요.”

에밀리를 거금의 후원금과 함께 고아원에 맡긴 건 라미아스였다. 뒤늦게 소식을 듣고 기겁해서 현장을 찾아갔는데, 도착하자마자 트로웰이 자신을 향해 무언가를 던지며 알아서 하라고 했단다. 얼결에 받아들고 보니 웬 여자아이였다고. 그게 에밀리였다.

“그렇군요. 트로웰이…….”

“뭐, 자비심은 있었다는 거지.”

에밀리에게 들어간 후원금은 그에게 꼭 청구하고 말 거라며 라미아스가 낮게 투덜거렸다.

“조사해보니까 그 아버지란 놈도 친부는 아니었더라. 그날 함께 있던 일당들이 일대를 주름잡고 있던 폭력배 조직인데, 부모가 없는 어린애들을 이끌고 다녔대. 밑에 두고 부리다가 좀 더 크면 사창가나 노예 시장에 팔아버리는 쓰레기들이었어.”

그 말을 들었을 땐 너무 무거워서 탄식이 절로 흘러나왔다. 그래도 그런 악질과 혈연이 아닌 건 오히려 다행이라고 해야 하려나. 라미아스가 택한 고아원은 이 나라에서 가장 시설이 좋은 곳이라고 했다. 좋은 집안에 입양될 확률도 높고, 나이가 차 퇴소하게 되더라도 사회에 잘 적응해갈 수 있도록 기본적인 자립에 도움을 준다는 듯했다. 고맙다고 하니 그가 어깨를 으쓱였다.

“사실 나도 인간이 선한 본성을 타고난다고 생각하진 않아. 어린애라고 다 순진한 건 아니지. 그래도 저 애는 좀 안타깝더라고. 괜찮은 환경에서 살았으면 그런 일에 가담하지 않았겠지. 여하튼 이쪽은 네가 더 신경 쓸 거 없을 거야.”

“뒷수습을 다 떠맡긴 거 같아서 죄송하네요.”

“이게 뭐 별거라고. 인간 사회에서 유희하다 보면 이런 일이야 흔해. 그리고 네가 한 일에 비하겠냐.”

쯧쯧 혀를 차는 말에 머쓱히 웃었다. 그때 조금 떨어진 거리에서 서성거리는 그림자가 보였다. 누가 나무 기둥 뒤에 숨어 이쪽을 훔쳐보고 있었다. 당황스럽게도 디아곤이었다.

“저놈이 왜 저깄어?”

라미아스도 그를 발견하곤 얼굴을 찌푸렸다. 나를 향해 반갑다는 듯이 손을 흔들던 디아곤은 라미아스를 향해선 허둥거리듯 손짓발짓을 하기 시작했다. 대충 파악해보기론 가까이 오라는 신호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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