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66화
“엘!”
다급한 목소리에 대꾸할 틈조차 없었다. 우악스럽게 움켜쥐려는 힘을 검으로 받아친 다음 단숨에 베어내고 나니 곧장 다른 쪽에서도 공격이 이어졌다. 대응하기도 까다로웠지만 한 번에 상대하기엔 달려드는 숫자가 너무 많았다. 그리고 왠지 유독 내게 집요하게 몰리는 느낌이었다.
설마 싶은 마음에 일부러 자리를 박차고 올라 일행과 거리를 멀찍이 벌려봤다. 그러자 한눈에도 대부분의 숫자가 나를 따라오는 게 느껴졌다. 착각이 아니었다. 정말 날 노리고 있었다.
“이것들 뭐야?”
내가 거리를 벌리자 당황하던 시벨리우스도 몬스터 떼가 워낙 대놓고 따라가는 게 보이니 목표를 알아차리고 황당해했다. 몬스터가 아닌 평범한 맹수라도 사냥할 때 가장 약해 보이는 개체를 우선 적으로 노리는 건 당연한 본능이다. 하지만 그 약한 개체를 나라고 여기는 건 말이 안 됐다. 일단 난 대놓고 검기까지 쓰고 있으니까. 상급 몬스터면 지능도 꽤 있는데 그걸 알아보지 못할 리가 없었다.
“저건 조종하는 지휘자가 있는 것 같은데.”
라피스가 흥미롭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상급 몬스터를 조종할 수 있을 만한 존재는 한 손에 꼽는다. 근처에 있을까? 일단 달려나가며 시벨리우스 쪽과 거리를 더 벌렸다.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목표가 나라면 원하는 대로 해주는 수밖에.
“엘!”
“가까이 오지 마!”
몬스터 떼의 공격이 더 집요해졌다. 기이한 음파를 쏘려는 걸 허공을 박차고 뛰어올라 베어 넘기고, 옷자락을 잡아채는 놈을 걷어찼다. 그 때문에 약간의 틈이 벌어지자 기회를 놓치지 않은 왕도마뱀 떼가 파고들었다.
“시큐엘!”
물줄기가 내 몸을 휘감으며 달라붙던 왕도마뱀들이 빠르게 나가떨어졌다. 시큐엘이 보조를 맞춰주니 동작에 한결 여유가 생겼다. 그러자 왕도마뱀들이 이번엔 다른 쪽을 향해 날아가기 시작했다.
“꺄악!”
“웰디 님!”
“어딜!”
급작스러운 공격에 놀란 시벨리우스가 웰디를 낚아채려는 몬스터를 베어냈다. 당황해서 돌아본 사이 옆구리에 날카로운 감각이 닿았다. 황급히 막았지만 찝찝한 마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방금 흐름은 아무리 봐도 다른 쪽을 공격해 내게 빈틈을 유도한 거였다. 역시 몬스터의 사고라고 볼 수는 없었다.
“귀찮게, 진짜!”
발톱이 스치며 뺨에 쓰린 감각이 일었다. 검기를 휘둘러 한 무리를 쳐내곤 온몸의 감각을 끌어올렸다.
“시벨리우스! 잠깐 맡길게!”
굳이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시큐엘의 등에 올라 하늘로 솟구쳤다. 따라붙는 몬스터들을 베어내며 주변을 선회하는 동안 멀찍이 전나무 숲이 빼곡한 부근에서 기척 하나가 느껴졌다.
‘찾았다.’
이쪽을 기웃거리며 살피는 걸 확인하고 그대로 쏘아나갔다. 설마 발각될 거라곤 생각지 못했는지 숨어 있던 그림자가 기겁해서 뭔가를 중얼거렸다. 마법을 쓴 건지 마력의 파장이 일어났다.
“튀려나 본데. 저 마력 유형이면 공간 이동 마법이야.”
곧 라피스의 예고대로 휘몰아친 마력이 그림자를 감싸기 시작했다. 그러나 다행히도 라피스만큼 천재적인 마법사는 매우 드물다. 대부분은 마법이 발동하는 시간이 있다는 소리다.
“도망치겐 못 두지!”
곧바로 검을 던져 집중력을 끊은 후, 상대가 멈칫하는 찰나를 틈타 위에서부터 덮쳤다. “으아아!” 간발의 차이로 달아날 시기를 놓친 이가 비명을 내질렀다. 엎어진 채 버둥거리는 몸 위에 올라탄 다음, 꼼짝 못 하게 내리누른 후에야 상대의 모습이 제대로 보였다. 흑발을 지닌 젊은 남자였다.
“너 뭐야? 네가 몬스터로 날 공격한 거야?”
“으아, 이런 미친! 이게 무슨! 잠깐! 잠깐만 기다려! 너 정말 인간 맞아? 어떻게 이런……!”
발각될 줄도 몰랐지만 붙잡힐 거라곤 더더욱 생각지 못했는지 남자는 매우 경악한 기색이었다. 돌아보는 얼굴이 귀신이라도 보는 것처럼 얼이 나가 있었다. 하지만 그 얼굴을 보고 당황한 건 오히려 나였다.
“이건 또 뭐야.”
라피스가 어처구니없다는 말투로 중얼거렸다. 지금 내 심경을 딱 대변하는 반응인 걸 보니, 그도 나와 같은 걸 보고 있기는 한 모양이다. 아까 발동한 마법이 공간 이동 마법이 아니라 환각 마법이었나? 당연히 낯설어야 상대의 외모가 왜 이렇게 익숙한 건지 모르겠다. 이 얼굴은 분명…….
“……디아곤?”
“헉?”
남자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틀림없다. 내가 아는 모습보단 훨씬 앳되지만 분명 그였다.
“뭐, 뭐야. 날 어떻게 알아?”
그런데도 막상 인정하는 말이 돌아오니 머리가 멍했다. 정말 디아곤이라니. 왜 그가 여기에 있지? 나는 왜 공격한 거야? 지금 이 시대에서 그는 나를 알지도 못할 텐데?
뭐라 형용할 수 없는 기분으로 그를 멍하니 바라봤다. 블랙 드래곤 디아곤. 라피스 형제의 아버지이자 란타샤의 반려가 될 남자. ……그리고 트로웰의 계약자.
“혹시 부탁을 받았어?”
“어? 뭐? 어어?”
“날 노리라고 한 거야?”
트로웰이, 그러라고 했어?
눈을 깜빡이는 디아곤은 무척 혼란스러워하는 얼굴이었다. 아직 뭐가 뭔지 이해도 되지 않는다는 표정이었으나, 봐주지 않고 멱살을 움켜잡아 몸을 일으켰다.
“어디에 있어?”
당기는 대로 끌려온 디아곤이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짙은 검은색 눈동자에 그를 바라보는 내 모습이 선명히 비쳤다. 화난 것처럼 일그러져 있지만 동요를 숨기지 못한 꼴사나운 얼굴이.
“지금 트로웰, 어디에 있어?”
* * *
“나는 왜 찾아?”
부드러운 음성에 몸이 굳었다. 말을 듣지 않는 몸을 어떻게든 움직여 간신히 고개를 들었다. 조금 떨어진 작은 바위 위에 소년이 걸터앉아 있었다. 짙은 피부색이며 흐트러진 듯한 흑발까지, 전부 눈이 아플 정도로 익숙해서 오히려 비현실적이었다. 모든 걸 들여다보는 듯한 황금안이 나를 감상하듯 응시하는 것도.
“트로웨엘~!”
내가 멈춘 틈을 탄 디아곤이 나를 밀쳐내고 황급히 그에게 달려갔다. 자기보다 작은 사람 뒤에 숨어 감춰지지도 않는 몸을 가리려고 애쓰는 모습이 우스꽝스러웠지만 웃음이 나오진 않았다. 곧 하늘에서 요란하게 푸드덕거리는 소리가 울렸다. 내가 디아곤을 덮친 동안 더는 달려들지 못하고 주위를 배회하던 큰 날개 왕도마뱀들이 빠르게 흩어지는 소리였다.
“디아곤, 실망이야.”
하늘을 응시한 트로웰이 가볍게 혀를 찼다.
“위협한다는 게 겨우 저거야?”
“겨우라니! 저거 상급 몬스터거든? 쟤 대체 뭐야? 인간이라며!”
“인간이야.”
“무슨 인간이 상급 몬스터 떼를 그냥 갖고 놀아? 그냥 상급도 아니고 비행 몬스터란 말이야! 아무리 검성이라도 보통은 공중전엔 미숙해서 쟤들이 한꺼번에 덤비면 고전한다고! 쟤 심지어 이동 마법까지 막았어! 내가 마법을 쓰는 걸 막았다고!”
“그래서 강하다고 했잖아.”
“그게 그냥 강하다는 표현으로 될 말이야?”
내가 아는 모습보다 훨씬 앳된 디아곤은 말투와 행동도 확연히 어렸다. 어른인 그는 가볍게 말해도 숨길 수 없는 관록이 느껴졌는데, 지금은 그냥 혈기왕성한 사춘기 소년이란 느낌이었다.
“말해두는데, 난 란타샤만 닮았어.”
부친의 젊은 시절을 수용하지 못한 라피스가 조용히 선을 그었다. 정색하는 얼굴이 절로 그려졌지만 이번에도 편히 웃지는 못했다.
“처음부터 적당히 하려고 하니까 안 되는 거야.”
“하지만 내가 직접 건드렸다가 죽어버리면 어떡해! 다치기만 하면 된다고 했잖아!”
“그래서 고작 뺨에 생채기가 전부야? 내 계약자지만 참 무능하네.”
“그러니까 쟤가 너무 강한 거라니까?”
나를 주제로 이어지는 대화인데 내가 끼어들 틈은 없었다. 마치 화면 너머에서 지켜보는 것처럼, 두 사람에게 내 존재 자체가 완전히 배제된 것 같았다. 머릿속을 장악한 생각은 온통 하나뿐이었다. 그렇구나. 역시 트로웰이 지시한 게 맞았다. 그가, 정말 날 해치려고 했다.
멍하니 바라보자 곧 눈이 마주쳤다. 아니, 그는 처음부터 쭉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정확히는 관찰하는 것에 더 가까운 시선이다. 내게서 뭔가를 찾는 것 같았다. 그게 뭔지는 모르겠지만.
“할 말이 있는 얼굴이네.”
“……트로웰.”
“왜, 엘?”
그가 웃으며 대답했다. 다정하고 친근하게. 마치 아무런 일도 없었다는 것처럼. 하지만 달랐다. 내가 아는 그와는 하나도 같은 부분이 존재하지 않았다.
목이 마르는 기분에 그대로 입을 다물었다. 몰랐던 것도 아닌데. 그가 내 목을 틀어잡은 적도 있었는데. 왜 새삼스럽게 이 모든 상황이 낯설게 느껴지는 건지 모르겠다. 나를 응시하는 시선이 너무 건조해서 무섭다. 원래 그가 어떤 표정을 지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어떤 얼굴로 웃었는지, 어떤 식으로 나를 대했는지도.
“야, 정신 차려.”
라피스의 목소리를 듣고서야 내가 숨을 멈추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저거 원래 성격 더럽다고 내가 누누이 말했잖아. 동요하지 마. 그게 저 또라이가 원하는 거니까.”
차분한 목소리에 조금씩 머리가 맑아졌다. 그래, 맞아. 이럴 때일수록 정신 차려야지. 원래 미래는 이 방향으로 진행되는 거였다고 했다. 그걸 내가 다른 쪽으로 튼 거다. 큰 흐름을 바꾸는 일이 쉬울 리가 없잖아. 간신히 고개를 끄덕이며 울고 싶은 기분을 참아냈다. 어떻게든 몸을 일으키려는데 다리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손이 너무 차가워서 감각조차 잃은 것 같았다. 멀찍이서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시벨리우스와 유니콘들이 달려오고 있었다.
“엘, 괜찮아?”
다급히 다가온 그가 엉거주춤한 자세로 굳어 있는 나를 살폈다.
“뺨에 상처가 났잖아! 기다려, 바로 회복제를……!”
“아…… 괜찮아. 별거 아냐.”
“별거 아니긴! 이건 바로 치료해야 해. 큰 날개 왕도마뱀 발톱엔 맹독이 있단 말이야!”
아, 그래서 몸을 움직이기 힘들었던 건가. 그러고 보니 혀가 조금 굳은 느낌이 드는 것도 같다. 뒤늦게 상태를 인지하는 동안 시벨리우스가 꺼내든 회복제를 서둘러 내게 한 모금 마시게 했다. 나머지는 손수건에 적혀 뺨에 댔다. 그 사이 웰디와 카리안은 시벨리우스가 미처 보지 못한 부분을 알아차렸다. 이쪽을 흥미롭다는 듯이 구경하고 있는 트로웰과 디아곤의 존재를.
“그런데 저들은 누구죠?”
그제야 트로웰을 발견한 시벨리우스가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넌…….”
“유니콘이네.”
트로웰이 시큰둥하게 중얼거렸다. 단숨에 정체를 알아보는 것에 깜짝 놀란 웰디와 카리안이 경계심을 드러냈지만, 시벨리우스의 태도는 한결 더 풀어졌다.
“몬스터를 쫓아낸 게 너야?”
아직 그는 나와 트로웰 사이에 얽힌 복잡한 사연을 알지 못한다. 형제처럼 지내던 모습만 기억하는 상태라 당연히 그가 나를 돕기 위해 나타난 거라고 생각한 듯했다.
“글쎄, 어느 쪽일까. 어쨌든 인간이 아닌 건 조금 유감이네.”
하지만 그렇게 대꾸한 트로웰이 빙긋 웃었을 땐 이상하다는 걸 느낀 것 같았다. 얼굴을 굳힌 그가 뭔가 말하려던 순간, 바닥에서 강한 진동이 울렸다. 반사적으로 시선을 내리니 땅이 갈라지고 있었다. 시벨리우스도 같은 광경을 확인했다. 거의 동시에 눈이 마주쳤다. 곧 급격하게 틈이 벌어지면서 나와 유니콘들의 거리가 빠르게 멀어졌다.
“꺄악!”
급작스러운 사태에 경악한 웰디가 비명을 질렀다. 시벨리우스는 허둥거리는 두 유니콘을 붙잡고 곧바로 도약할 자세를 취했다. 뛰어올라 다시 이쪽으로 건너오려는 거였다. 하지만 사방에서 바위들이 솟아오르는 게 더 빨랐다. 높게 솟구친 바위기둥이 마치 살아 있는 것처럼 그들 일행을 단숨에 덮쳤다.
“시벨!”
달려가려는데 엄청난 힘이 내 앞을 막아섰다. 내 주위에서도 솟구친 바위기둥이 채찍처럼 휘둘러지고 있었다. 간신히 피하며 물러나는 사이, 시벨리우스 일행은 바위로 만들어진 감옥에 갇힌 상태가 됐다. 두꺼운 돌 창살 너머로 넋이 나간 웰디가 쓰러지듯 주저앉는 것이 보였다. 그녀의 상태를 서둘러 살핀 시벨리우스가 이를 갈며 창살을 움켜잡았다.
“이게 무슨 짓이야?”
“걱정하지 마. 유니콘은 안 건드려.”
“대체 그게 무슨……!”
순간 주변이 흔들리며 섬뜩한 격통이 느껴졌다. 어느새 솟아난 뾰족한 바위들이 마치 가시처럼 내 다리에 박혀 있었다. 그 상태에서 잡아당기니 몸에 전혀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저항하지 못하고 그대로 넘어졌다. “흐윽!” 비명을 삼키려니 목 안에서 끓는 듯한 이상한 소리만 흘러나갔다.
“엘!”
처절한 부름이 들렸지만 대꾸할 여력이 없었다.
와, 이건 좀 심한데. 다리를 움직일 수 없는 것도 그렇지만 너무 아프다. 식은땀으로 온몸이 푹 젖는 게 느껴졌다. 아픈 건 다리인데 숨을 쉬는 게 버거웠다.
“이렇다니까.”
머리 위에서 트로웰이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내가 하면 손속이 과해질 거 같아서 맡긴 거였는데. 뭐, 차라리 잘된 것 같기도 하고.”
“너, 너 미쳤어? 왜 이러는 거야! 이게 대체 뭐하는 짓이냐고!”
소리치면서 시벨리우스가 창살을 마구 내리쳤다. 하지만 그들을 가둔 감옥은 꼼짝도 하지 않았다.
“그냥 화풀이야.”
“뭐?”
더는 상종할 생각이 없다는 듯 산뜻하게 돌아선 트로웰이 내 앞에 한쪽 무릎을 굽히고 앉았다. 무심히 내려다보는 얼굴엔 아무런 표정이 없었다. 기분이 좋은 건지 나쁜지조차 알아보기가 어려웠다.
“아파?”
“트로웰…….”
“하긴 너무 당연한 걸 물었네. 죽일 생각까진 없었지만 혹시 죽더라도 너무 억울해하진 마. 원래 그러기로 한 거잖아.”
나와 한 약속을 지키는 거라고 생각해. 달래는 듯한 목소리가 귓가에서 다정하게 속삭였다.
“이럴 줄 알았으면 그냥 고통 없이 단숨에 죽는 게 더 나았을 뻔했지? 이래서 당장 화를 면한다는 게 반드시 좋은 결말로 이어지는 건 아니라는 거야. 그렇지 않아?”
무슨 대답을 해야 할지 알 수가 없어서 그냥 숨만 몰아쉬었다. 사실 대답할 정신도 없었다. 이 순간에도 살갗에 박힌 돌 가시가 계속 꾸물거리며 파고들었다. 온 신경이 조각조각 끊어지는 것 같았다. 생리적인 눈물이 계속 흘렀다. 어떻게든 비명을 참으려고 입술을 악물었지만 역부족이었다.
“아무튼 참 신기한 인간이야. 이런 때조차 생각이 읽히지 않네. 하긴 그 덕분에 지금까지 살려둔 거긴 하지. 쭉 장점이라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좀 짜증이 나는 것 같기도 해.”
“트로웰…… 이거 너무 아파.”
결국 참지 못하고 앓는 소리를 내버렸다. 멀리서 시벨리우스가 고함치는 소리가 더 커졌다.
“아프라고 한 건데 당연하지.”
약간의 간격을 두고 돌아온 대답은 여전히 시큰둥했다. 그가 내 턱을 붙잡고 억지로 고개를 들게 했다. 진득하게 탐색하는 듯한 시선엔 불만이 가득했다. 아직도 원하는 반응을 끌어내지 못했나 보다. 이것보다 더 아파야 하나 해서 아찔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