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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령왕 엘퀴네스-561화 (561/608)

제561화

“저, 저기요! 엘이 하는 말은 믿으셔도 돼요!”

그때 돌연 랑시가 크게 소리쳤다.

“왜냐면 엘은……!”

굳건한 신뢰로 가득한 표정을 보니 이 세계에 오자마자 저질렀던 일 하나가 떠올랐다. 무슨 말을 하려는 건지 알 것 같아 황급히 앞으로 나섰다.

“맞아요! 제가 실은 이런 게 있거든요!”

웰디와 카리안이 볼 수 없도록 등을 진 상태로 장갑을 벗었다. 손등을 보여주니 문양을 확인한 사람들의 눈이 동그래졌다. 그제야 분위기가 빠르게 안정되면서, 이번엔 감동의 물결이 넘실거렸다. 징벌에 앞서 마신전에서 파견 나온 신관이 모두를 구한 거라고 믿게 된 것 같았다. “극비니까 지금 본 건 모른 척해 주세요.” 만일을 대비해 덧붙인 말에 그런 분위기는 더욱 과열됐다. 생각해 보니 크게 틀린 것도 아니라 기분이 굉장히 묘했다. 정작 날 이곳으로 보낸 마신관들은 내가 마신의 문장을 갖고 있다는 사실도 모른다는 점에서 더더욱.

“뭘 보여주신 거예요?”

한순간 달라진 분위기가 당황스러웠는지 웰디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걸 말해주면 일부러 감춘 의미가 없었으므로 모르는 척 웃어넘겼다.

“그런 게 있어요. 어쨌든 다들 마을로 들어가는 게 좋겠어요. 두 사람도 같이 가세요.”

“당신은요?”

“전 시벨리우스를 찾아올게요. 그 녀석, 저 안에 있다가 같이 휘말릴까 봐 좀 걱정되네요.”

저렇게 벼락이 내리치면 관련자가 아니라도 다칠 거다. 내가 하려는 말을 깨달은 웰디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그분을 꼭 안전히 모셔와 주세요.” 간절한 얼굴로 부탁하는 말에 고개를 끄덕여준 다음 한달음에 숲으로 들어섰다. 거기서 고비가 끝난 거면 참 좋을 텐데, 실상은 이제부터가 시작이었다.

―그 문장은 요긴하게 써먹는군.

소리 없이 따라선 엘뤼엔이 중얼거리는 소리에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고장 난 기계처럼 뻣뻣하게 돌아보니 무심한 시선이 마주해왔다.

―아직도 말할 준비가 되지 않았나?

“어, 그게 말이지…….”

―여전히 그 문장이 가짜라는 주장을 고수하려는 건 아닐 테지.

물론 나도 염치가 있는데 여기까지 와서 그런 뻔한 거짓말을 반복할 생각은 없었다. 하지만 엘뤼엔이 기다리는 대답이 고작 문장의 진위는 아닐 것이다. 그는 내가 누구인지 묻고 있는 거였다. 신의 힘과 정령의 힘을 동시에 담을 수 있는 몸을 지닌, 내 진짜 정체를.

“나는…….”

엘뤼엔이 이미 포기한 것 같다니, 얼마나 허무맹랑한 망상이었던가. 속이 타는 긴장감에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그래도 여기까진 말해도 괜찮지 않을까? 여기까지라면.

“미안해, 아버지. 실은 내가 이런 걸 말하면 안 돼.”

힘겹게 입을 열자 날 내려다보는 시선에 이채가 어렸다.

―주술이군.

역시 나와는 다르게 그는 단번에 내 말에 깔린 배경을 눈치챘다. 대답하지 않는 게 긍정의 의미라는 것마저도. 그의 표정이 묘해진다 싶더니 갑자기 시야가 울렁거리기 시작했다. 현기증이 아니라 공간 전체가 일렁이는 감각이었다. 언젠가도 겪었던 현상이라 바로 깨달았다. 엘뤼엔이 내 정체를 눈치챈 거다. 역시 언급도 해선 안 되는 거였나? 고작 주술이 있다는 걸 알아차렸을 뿐인데 이렇게 된다고? 숨을 삼킬 겨를도 없이 다가올 충격을 대비해 입술을 꽉 악물었다.

―방심을 못 하겠네.

어디선가 웃음기를 담은 경쾌한 목소리가 스쳤다. 그때 눈앞에 새하얀 섬광이 들이닥쳤다. 찰나의 순간 엘뤼엔과 시선이 마주쳤다. 그의 얼굴이 일그러지는 모습이 아주 느리게 재생되는 화면처럼 이어졌다.

콰아아앙!

“엘!”

날 부르는 소리가 엘뤼엔의 것인지, 라피스인지 모르겠다.

그리고 암전이었다.

* * *

다시 눈을 떴을 때 보인 건 날 빤히 내려다보고 있는 눈동자였다. 수국이 피어난 것 같은 예쁜 분홍색. 보송보송한 느낌이 드는 머리칼도 같은 색깔의 분홍색이었다.

별별 머리 색이 다 존재하는 아크아돈에서도 분홍색은 그다지 흔치 않은 색이다. 특히 이만큼 선명한 분홍은 지금까지 라온휘젠 황태자 한 사람 정도만 봤던 것 같다. 그마저도 완전히 똑같은 색은 아니었지만. 어쨌든 그 희귀한 머리 색을 지닌 존재는 앳된 얼굴을 갖고 있었다. 이건 꿈인가? 멍하니 바라보고 있자니 소녀인지 소년인지 모를 아이가 생긋 웃었다. 나도 모르게 따라 웃기 무섭게 정신이 번쩍 들었다.

“헉, 뭐야.”

반사적으로 상체를 일으키니 눈앞의 존재가 후다닥 멀어졌다. 조금 떨어지고 나자 모습이 더 확실히 보였다. 꿈결의 착각이 아니라 정말 어린애였다. 저 앤 누구지? 이건 대체 무슨 상황이야? 주위를 둘러보니 침침한 돌벽이 눈에 들어왔다. 천장까지 전부 꽉 막혀 있는 걸 보면 아무래도 동굴 같은 곳에 들어와 있는 것 같았다. 뭐가 어떻게 된 건지 정신이 하나도 없었지만, 일단 엘뤼엔이 곁에 없다는 것만은 확실했다.

“으, 머리야…….”

거기까지 확인하고 나니 머리가 깨질 듯이 아팠다. 손으로 짚은 채 신음하고 있으니 멀찍이 떨어졌던 아이가 가까이 다가와 기웃거렸다. 걱정하는 건가? 두통이 잦아든 걸 느끼고 아이의 모습을 살폈다. 아직 추운 계절인데도 짧은 옷을 걸친 데다가 신발조차 신지 않은 모습이었다. 덕분에 확실히 보였다. 정강이부터 발등까지 다리에 새겨져 있는 선명한 자국. 저건 분명 비늘이었다.

“……인어?”

“엘, 깼구나! 정신이 좀 들어?”

당혹감을 느끼기 무섭게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통로 쪽에서 내가 잘 아는 블루 엘프가 들어서고 있었다. 쟤가 왜 여기서 나와?

“시벨리우스, 너야?”

“응응, 나 시벨이야. 몸은 좀 어때? 괜찮아? 오랫동안 깨지 않아서 걱정했어.”

이게 진짜 무슨 상황인 건지 전혀 모르겠다. 의식을 잃은 동안 대체 일이 어떻게 돌아간 거지? 혼란스러운 기분으로 얼굴을 찌푸리는데 아이가 후다닥 시벨리우스의 뒤에 가서 숨었다. 그것도 황당했지만 더 어이없는 건 시벨리우스의 반응이었다. 흐뭇하게 웃은 녀석이 누가 봐도 인어인 꼬마의 머리를 다정하게 쓰다듬는 게 아닌가.

“괜찮아. 엘은 내 친구야.”

……또 두통이 이는 것 같다. 더는 생각하는 걸 포기하고 다시 머리를 짚었다.

“왜 그래? 머리가 아파?”

급히 다가온 시벨리우스가 내 이마를 짚었다. “열은 없는 거 같은데.” 그가 중얼거리는 동안 머리를 둥둥 울리는 것 같던 감각이 천천히 사그라졌다.

“혹시 몰라서 회복제를 먹여두긴 했는데. 한 병 더 마셔볼래?”

“아니, 괜찮아. 그보다 뭐가 어떻게 된 거야? 우리가 어떻게 만난 거야? 여긴 어디고?”

“우선 침착해, 엘. 정신을 잃기 전의 상황은 기억이 나?”

물론 기억한다. 엘뤼엔한테 정체가 들켰는지 주술이 깨지기 직전인 상태였다. 이대로 끝나나 싶었는데 그 순간 느닷없이 섬광이 들이닥쳤다. 하얗게 번져가는 빛 사이로 카노스의 목소리를 들었던 것 같다. 하지만 이런 걸 설명할 수는 없었으므로 그냥 천천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시벨리우스가 안타까운 한숨을 내쉬었다.

“너 혼자 숲에 쓰러져 있었어. 피신하는 길에 내가 우연히 발견했으니 망정이지…….”

“피신?”

“지금 밖에 난리가 났거든.”

무슨 말인지는 설명해 주지 않아도 알 것 같았다. 온 사방에 벼락이 내리치고 있다는 소리겠지. 짐작을 증명하듯 지금도 우르릉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조용해지는 틈이 없는 걸 보면 쉬지 않고 내리치고 있는 게 분명했다.

“나도 위험할 뻔했는데 얘가 구해줬어.”

시벨리우스가 가리킨 건 분홍색 꼬마 인어였다. 내도록 안개 속에서 헤매다가 겨우 시야가 트여 천막이 있는 곳을 찾아냈는데, 갑자기 하늘이 어두워지더니 눈앞에 벼락이 내리꽂혔다고. 그때 저 꼬마 인어가 시벨리우스를 뒤에서 잡아당겨 도와줬다는 사연이었다.

“아니었으면 피하지 못했을 거야.”

정말 간발의 차이로 살았다고 설명하는 시벨리우스는 서슴없이 꼬마 인어를 은인이라고 칭했다. 벼락을 피하도록 도와준 것도 그렇지만 불타는 숲을 빠져나오는 과정에서도 여러 차례 도움을 받았다는 것 같았다. 지금 피신처로 삼은 이 동굴 역시 꼬마 인어가 안내해준 거였다.

유심히 바라봤더니 꼬마 인어 역시 나를 똑바로 마주했다. 아직 어려서 그런가. 호수에서 봤던 인어들은 야수 같았는데 이 꼬마 인어는 사람에 더 가까워 보였다. 시벨리우스를 도와준 것도 그렇고, 어쩌면 모든 인어가 다 위험하지는 않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벼락 자체가 인어 때문에 떨어지는 것이다 보니 무슨 반응을 보여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으음, 일단 그건 그렇다 치고. 그보다 여기는 어디쯤이야? 날 발견한 곳이면 숲 외각인 거지? 거의 빠져나가는 부분.”

“어, 아니? 아마 숲 안쪽일 텐데. 일단 엘을 발견한 곳은 호수 근처였어.”

“……내가 호수 근처에 있었다고?”

“응.”

“내가 왜 거기에 있었지?”

“그, 글쎄?”

당사자도 모르는 걸 알 리가 없는 시벨리우스가 어색하게 웃었다. 다행히 오리무중에 빠지기 전에 그를 대신해서 설명해 주는 사람이 있었다.

“마신이 옮긴 거 같아.”

‘라피스!’

왠지 목소리가 평소보다 잠긴 것처럼 들리는 건 기분 탓인가.

‘넌 다 지켜봤어? 뭐가 어떻게 된 거야? 마신이 날 옮겼다니? 엘뤼엔은? 엘뤼엔은 어떻게 됐어?’

“아, 몰라. 머리 울려. 잠깐 입 좀 다물어봐.”

아니, 영혼인 주제에 무슨 머리가 울려! 황당함을 금치 못하니 가볍게 혀를 차는 소리가 들렸다. “진짜야.” 잔뜩 가라앉은 목소리만 들어봐도 장난하는 거 같진 않았다. 하기야 원래 이런 농담을 하는 녀석은 아니었다.

‘너 괜찮아?’

“안 괜찮아. 젠장, 그대로 소멸하는 줄 알았네.”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나도 정확한 건 아닌데…….”

한숨을 내쉰 라피스가 대충 자신이 아는 대로 설명을 시작했다. 나한테 떨어진 줄 알았던 섬광은 알고 보니 엘뤼엔을 겨냥한 거였다. 정확히는 그가 나를 지킬 거라는 걸 예상하고 진행된 공격이었다. 아주 잠깐 나에게 시선을 보내는, 그 찰나의 틈에 순간적으로 궤도를 틀어 엘뤼엔을 덮쳤다는 것이다.

“헐…….”

“엘, 왜 그래?”

“아니, 아무것도 아냐.”

의아해하는 시벨리우스에게 얼른 고개를 흔들어주곤 계속 이야기를 들었다. 어쨌든 나는 그 파장만으로 기절한 거였다. 내가 곧바로 의식을 잃는 바람에 라피스의 시야도 닫혔지만, 아주 강력한 신력이 장악하는 것만은 확실히 느꼈다고 했다. 두말할 것도 없이 카노스의 힘이었다.

‘그럼 엘뤼엔은…….’

“나도 그 뒤론 의식이 사라져서 거기까진 몰라. 지금 네 옆에 없는 거면 정령계로 돌려보내진 거 아냐?”

‘말도 안 돼. 엘뤼엔인데?’

“그게 뭐. 그 자식이 나중에 가서야 상급신이지, 지금은 마신이 훨씬 더 강하거든? 아니, 신이어도 마신이 더 강해. 마신은 최고신인 거 몰라?”

‘그야 그렇긴 하지만…….’

왠지 엘뤼엔이 지는 광경은 상상이 잘 안 간다고 해야 하나. 한 번 크게 다친 적도 있긴 하지만 그건 나 때문이었고. 이번에도 나만 아니었으면 그렇게 쉽게 당하진 않았을 거다. 아무리 상대가 카노스라도 그 생각엔 변함이 없었다. 그러고 보니 엘뤼엔이 다치는 건 항상 나 때문이잖아? 마음이 급격하게 무거워졌다.

“어쨌든 그놈 안부가 궁금하면 나한테 물을 것도 없이 직접 확인하면 되잖아. 한번 소환해보든가.”

아, 그러면 되겠구나. 그렇지, 내가 소환하는 방법도 있었지. 물론 정령왕은 소환을 거절할 수 있지만, 설령 응하지 않더라도 잠시 교감은 할 수 있다. 가장 간단한 방법을 떠올리지 못하다니, 아무래도 아직 정신이 없는 모양이다. 가볍게 심호흡한 후 의식을 집중하려고 했다. 그런데 기류가 달라지는 걸 느낀 탓일까. 내내 시벨리우스 곁에서 떨어지질 않던 꼬마 인어가 갑자기 내게 성큼 다가왔다. 무릎에 멋대로 앉아 요리조리 기웃거리더니 두 손을 뻗어 내 머리카락을 만지작거리기 시작했다. 도저히 집중할 수가 없어 일단 하려던 일을 미뤘다.

“왜 그래? 내 머리에 뭐가 묻었어?”

시선을 맞추고 물었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시벨리우스를 바라보니 그 역시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웃었다.

“아마 네 머리 색 때문에 그런 게 아닐까? 인어는 검은 머리가 없으니까 신기해서 그런가 봐.”

“아, 그래? 검은 머리가 없구나. 근데 꼬마야, 나도 이거 염색한 머리야. 신기할 거 없어.”

어색하게 웃으며 말해봤지만 이해한 건지 못한 건지 영 반응이 없다. 그러다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두 손으로 내 머리를 가볍게 쥐고는 아래로 주욱 쓸어내렸다. 어린아이들이 칠 법한 평범한 손장난이었다. 그 손길을 따라 머리카락이 엿가락처럼 늘어나지만 않았다면 말이다.

“……! 자, 잠깐!”

당황해서 밀쳐냈을 땐 이미 늦었다. 눈 깜짝할 사이에 늘어난 머리카락은 어느새 자르기 전 기장만큼 길어져 있었다. 심지어 머리 색까지 원래의 금발로 돌아간 상태였다. 내가 당황한 만큼이나 시벨리우스도 놀란 얼굴로 입을 벌리고 있었다. 나와 눈을 맞춘 꼬마 인어가 생긋 웃었다.

“이게 더 나아.”

“…….”

아무렇지 않게 이어진 말엔 잠시 반응할 수가 없었다. 뭐야, 얘 말할 줄 알았어? 인어라서 그런지 목소리도 정말 예쁘다. 은쟁반에 옥구슬이 굴러가는 목소리라는 게 딱 이런 걸 말하는 것 같다. 벌써 음색만으로 사람을 홀리는 느낌을 주는 걸 보니 훗날 가수가 되면 평생 먹고 살 수 있을…….

‘아니, 중요한 건 이게 아니잖아.’

딴 길로 새어나가려는 정신을 가까스로 붙잡았다. 인정한다. 나도 모르게 현실도피를 시도했다. 그만큼 충격이 너무 컸다. 솔직히 말하면 지금도 믿기지 않았다. 떨리는 손으로 머리칼을 들어 올렸다. 꿈이라고 여기고 싶었는데 역시 아무리 다시 봐도 금발이다. 오히려 흑발이었던 시절이 꿈이었던 것처럼 예전이랑 똑같아도 너무 똑같았다. 인어한테 이런 능력도 있었나? 머리카락을 순식간에 길어지게 하는 데다가 본래 색으로 되돌리는 능력이라니, 이런 건 듣도 보도 못했다. 대체 왜 이런 일이 벌어진 거지? 돌아가지 않는 머리를 억지로 굴려봐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이 세계에선 염색약을 구하기도 쉽지 않다. 검은색은 그중에서도 가장 구하기 어려운 색이다. 독하기도 얼마나 독한지 염색할 때마다 피부를 태우는 것 같은 고통을 참아야 했다. 내 머리칼은 염색도 잘 안 돼서 한 번 할 때마다 최소 네다섯 번은 해야 한다. 그 모든 수고를 감수하며 유지해오던 흑발이었는데.

“내 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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