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42화
“엘?”
“어어, 아냐. 장갑을 만들어 준다고? 그럼 나야 좋지.”
“정말? 열심히 해야겠다. 혹시 선호하는 색은 있어? 재료를 최대한 맞춰서 구해 볼게. 개인적으로는 네 눈동자 색이나 머리 색에 맞춰도 괜찮을 것 같은데.”
“……파란색.”
“파란색? 금색이나 녹색이 아니고?”
의아한 표정을 지은 시벨리우스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울고 싶은 기분을 삼키며 밝게 웃었다.
“파란색이 좋아. 파란색으로 만들어줘.”
“음, 알겠어. 너한텐 파란색도 잘 어울릴 것 같아. 너와 가장 잘 어울리는 재료를 찾아서 세상에서 하나밖에 없는 장갑을 만들어 줄게. 어떻게 완성될지 기대해. 분명 마음에 들 거야.”
자신 있게 답하는 모습에 다시 가슴이 뭉클해졌다. 완성된 모습은 이미 알고 있다고, 정말 마음에 들었다고 이 자리에서 말해주지 못하는 게 속상할 만큼.
“고마워, 시벨리우스. 미안해.”
“고마운 건 알겠는데 미안하다는 건 무슨 말이야?”
“그냥, 이것저것. 너한테 신세 지는 게 너무 많은 것 같아서.”
그때 네 말을 믿지 않아서. 조금이라도 귀 기울여주고 함께 고민해주지 못해서. 그래서 결국 너 혼자 외롭게 만들어서. 떠오르는 기억이 전부 다 너무 미안한 일밖에 없었다. 조금쯤은 받아줘도 됐을 텐데, 그땐 나도 여유가 없는 상태였다곤 하지만 너무 매몰차게 굴었다.
“신세를 지긴. 난 즐겁기만 해. 신경 쓰지 마.”
“넌 너무 착해서 큰일이야. 그렇게 전부 나한테 맞춰주려고 할 거 없어. 귀찮은 건 귀찮다, 재미없는 건 재미없다고 해도 돼. 솔직히 지금 생활이 편하진 않잖아.”
“아냐, 정말 즐거워. 필요한 게 있으면 언제든 편히 말해줘. 그게 더 기쁠 것 같아.”
“진짜? 아, 그러고 보니 내일 마을에 가려면 오늘 다시 염색해야 해. 뿌리가 많이 자랐더라고.”
그 순간 해맑게 웃고 있던 그의 표정에 금이 서렸다.
“……계속 그 머리 모양 유지하는 거야?”
“이게 더 편하거든.”
“그렇지만…….”
어깨를 축 늘어트리고 한숨을 내쉬는 시벨리우스는 눈에 띄게 시무룩한 표정이었다. “엘, 너 일부러 이러는 거지.” 터덜터덜 따라오는 걸음에 설움이 묻어져 나왔다. 굳이 부정은 하지 않았다.
* * *
숲에서 민가로 가려면 가장 가까운 곳도 꼬박 하루를 걸어가야 한다. 심지어 숲 안쪽으로 진입하는 중이다 보니 갈수록 점점 더 거리가 벌어지는 중이었다. 길도 매우 험악해서 마차는커녕 말을 탈 수도 없다. 예전 같았으면 주기적으로 마을을 방문하는 것 자체가 큰마음 먹고 해야 하는 일이었을 거다. 하지만 이젠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고마워, 아버지!”
오늘도 하해와 같은 은혜로 마을 어귀에 이동시켜 준 엘뤼엔에게 활짝 웃으며 감사한 마음을 표했다. 그런 나를 바라보는 엘뤼엔은 매우 불만스러운 표정이었다. 가라앉은 시선에서 괜히 능력을 공개했다는 진득한 후회가 느껴졌지만 모르는 척했다. 그래 봤자 다음 주에도 부탁하면 또 들어줄 거라는 걸 이미 알고 있었다.
“너무 싸돌아다니지 마라.”
“오늘도 같이 안 가려고?”
“일없다.”
얼른 다녀오기나 하라는 듯 성의 없이 손짓하는 모습에 할 수 없이 이번에도 시벨리우스와 단둘이 마을에 들어섰다. 그때까지 시벨리우스는 계속 묘한 표정이었다. 뒤따라선 그가 나직한 목소리로 물었다.
“다음엔 안 데려다준다고 하지 않았어?”
“그래서 몹시 귀찮게 굴었지.”
“엘, 너는 엘퀴네스가 무섭지 않아?”
“전혀? 혼날 때라면 몰라도, 내가 잘못한 게 없을 때야 무서울 게 뭐 있겠어.”
“정말 대단하다니까.”
뭐가 대단하다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그렇게 생각한다니 그냥 그런가 했다. 굳이 묻지 않아도 시벨리우스는 알아서 설명을 시작했다.
“정령왕 엘퀴네스는 매우 냉정한 성격이라고 들었거든. 직접 보기에도 그게 맞는 것 같은데, 엘 너한테는 참 약한 것 같아. 네 이런 면 때문인 건지도 모르겠어.”
“내가 좀 뻔뻔하긴 하지.”
“하하, 그렇다기보다는 밝고 긍정적인 성격이야. 네가 좋은 사람이라 아무리 냉정한 정령왕이라도 마음이 약해지는 게 아닐까?”
“그렇게 말해도 당분간은 머리 안 기를 거야.”
“그, 그래서 하는 말 아니야. 진심이야. 정령왕과 이렇게 스스럼없이 지내는 인간은 엘 너밖에 없을걸? 그러고 보니 검술도 트로웰에게 배운 거라고 하지 않았어?”
“그렇긴 한데, 내가 가르쳐달라고 부탁한 거였어.”
“바로 그런 점이 대단하다는 거야. 전에 엘이 형이라고 소개했던 그 사람 맞지?”
아, 둘은 우연히 한 번 마주친 적이 있었던가. 왕세자 때문에 수호부가 발동했었는데, 그걸 트로웰이 한 거로 오해해서 다짜고짜 공격하려고 했었다. 고개를 끄덕이니 시벨리우스가 수긍한 표정을 지었다.
“어쩐지…….”
“왜? 트로웰이 인간으로 보이지 않았어?”
“음, 그것도 그렇긴 한데…….”
고개를 끄덕인 시벨리우스가 천천히 말끝을 흐렸다. 왠지 다음 말을 잇기를 망설이는 표정이었다. 의아해져서 바라보니 그가 어색하게 웃는 얼굴로 입을 열었다.
“실은 그 사람, 그날 처음 본 건 아니었어. 전에도 지나가다 본 적이 있거든.”
“어, 그래?”
“어떤 남자를 폭행하고 있었어.”
……왜 망설였는지 알겠다. 말이 좋아 폭행이지, 단지 그 정도 선에서 끝냈을 리가 없었다. 그래서 그날도 무작정 트로웰을 범인으로 오해한 거였나 보다. 나와의 만남도 처음부터 파격적이긴 했지. 그래도 제국에 있는 동안은 참는 줄 알았는데 이제 보니 속 편한 생각이었다. “트로웰이 아무나 때리는 건 아니거든? 아마 나쁜 인간이었을 거야.” 나름대로 두둔해보긴 했지만 시벨리우스의 흐려진 미소를 봐선 별로 통한 것 같진 않았다.
“어쨌든 그 인간 혐오증으로 유명한 땅의 정령왕이 네 제안을 받아들인 것 자체가 난 굉장한 것 같아. 꼭 내가 목격한 상황만이 아니라도 그에 관해 들은 일화들이 많거든.”
무슨 내용일지 듣지 않아도 대강 짐작이 됐다. 분명 따스한 일화들은 아닐 것이다.
‘지금 트로웰은 뭘 하고 있을까.’
미네르바의 상태는 조금은 나아졌으려나. 씁쓸한 기분을 삼키고 원래 하려던 일에 집중하기로 했다. 우선 헌터 협회에 들러 그동안 모아둔 몬스터 부산물들을 처분했다. 그간 알음알음 얼굴을 익힌 지부장이 한달음에 달려 나와 맞이했다.
“자네들! 이번 주도 와주었군!”
“잘 지내셨어요?”
“그럼, 그럼, 자네들 덕분에 잘 지냈지. 그게 이번에 가져온 것들인가? 어디 보게. 허어, 역시 이번에도 전부 다 희귀한 것들뿐이군! 헉, 이건 괴물 발톱의 심장 아닌가? 이렇게 귀한 걸! 세상에 이건 검은 수소 머리 괴물의 힘줄이잖아! 설마 숲 안쪽으로 더 들어간 건가?”
호들갑을 떨며 가져온 부산물들을 하나하나 살피는 지부장의 눈길은 광기에 차 있었다. 거래를 처음 트던 날부터 이랬다. ‘가시나무 마을’이라고 하던가. 근원의 숲 인근에 있는 민가 중에서 가장 번화하다고 할 수 있는 이 마을은 숲의 몬스터를 노리고 몰려드는 헌터들의 주된 교역 장소이기도 했다. 지금까지 꽤 많은 헌터들이 부산물들을 처분하러 왔지만, 우리가 가져온 것만큼 희귀하고 보존 상태가 좋은 건 흔치 않다는 모양이었다.
“겨울이라 매물도 거의 없는 시기인데 자네들이 있어서 다행인지 몰라. 지금 바로 계산해주지. 일단 헌터증을 주게.”
몬스터 사냥은 아무나 해도 되지만, 부산물을 거래할 수 있는 자격은 헌터에게만 있다. 그래서 제대로 된 절차를 밟으려면 반드시 헌터증을 제시해야 했다. 이미 익숙해진 과정이라 미리 준비해 둔 헌터증을 내밀었다. 건네받은 지부장이 헌터증의 양면을 펼치고 마법 각인을 감식하는 도구에 올려두었다.
<요안네스 루엘.> 구릿빛이 감도는 코끼리 그림 위로 적혀 있는 낯선 이름이 보였다. 제국을 떠나기 전 라미아스가 위조 신분이 필요할 때 쓰라며 만들어 준 헌터증이었다.
원래는 굳이 다른 신분증을 쓸 계획까진 없었다. 하지만 헌터 협회는 국제기구였다. 나라마다 협회장을 따로 두고 개별적으로 운영하고 있어도 소속된 헌터에 관한 정보는 서로 교류했다.
최근 정령들이 떠드는 얘기를 들어보면 제국만이 아니라 다른 나라에서도 나한테 관심을 보이고 있었다. 홀연히 사라져버린 내 행방을 두고 이러쿵저러쿵 말도 많은 것 같았다. 이런 상황에서 내 헌터증을 사용했다간 각국에 내 위치를 떠벌리는 꼴이었다. 아무리 구석진 시골이라도 조심해서 나쁠 건 없었다. 내가 꾸준히 짧은 흑발을 유지하는 이유이기도 했다.
“바루스 등급의 헌터가 검은 수소 머리 괴물의 서식지까지 들어가고도 무사히 돌아온 건 처음이야. 계속 말하는 거지만 등급 시험을 다시 치러야 하는 거 아닌가? 등급이 올라가면 지명 의뢰도 받을 수 있고, 수수료도 훨씬 적어질 텐데.”
아무것도 모르는 지부장은 내가 실력보다 낮은 등급을 유지하는 걸 매우 안타까워했다. 만날 때마다 반복하는 말을 한 귀로 듣고 흘리며 여유롭게 받아넘겼다.
“아직은 생각이 없어서요. 이대로 처분해주세요.”
“할 수 없지. 나중에라도 마음이 바뀌면 꼭 등급 시험을 다시 치르게. 모르긴 몰라도 마키나 급은 거뜬히 받을 수 있을 거야. 알겠지? 귀찮아도 꼭 다시 생각하게. 내가 자네들이 내 아들들 같아서 하는 말이야.”
“네, 조언 감사합니다.”
이후에도 지부장은 말을 멈추지 않았다. 쏟아지는 잔소리에 건성으로 반응하면서 건네주는 돈주머니를 챙겨 들고 밖으로 나왔다. 협회에 있는 내내 굳어 있던 시벨리우스의 안색이 그제야 겨우 편안해졌다.
“저 인간은 너무 말이 많아.”
투덜거리는 소리엔 절로 고개를 끄덕이지 않을 수가 없었다. 신경 써주는 건 고맙긴 하지만 올 때마다 진이 쏙 빠지는 기분이다. 아무래도 한 주에 한 번 들르는 일정을 더 긴 간격으로 바꿔봐야 하지 않을까 싶었다. 이후 우리는 본격적으로 상가를 다니며 필요한 비품과 식료품을 사들이기 시작했다.
“엘, 이거 봐. 생태라고 적혀 있는데 동태밖에 없어.”
“정말이네. 그사이에 냉동됐나 보다. 밖에 내놓기만 해도 얼어붙는 날씨니 어쩔 수 없지.”
안 그래도 추운 북쪽 날씨는 본격적으로 겨울에 돌입하고 나선 그냥 추운 수준을 넘어섰다. 온도가 얼마나 낮은 건지 물을 뿌리면 그대로 눈이 되어 떨어질 정도였다. 강은 완전히 얼어 땅과 다를 바 없이 단단해졌고 폭설도 수시로 내려서 온 사방이 하얗게 얼어붙은 지 오래였다. 시벨리우스가 아니었다면 이 시기에 노숙하며 숲을 탐색하는 건 진작에 포기해야 했을지도 몰랐다.
“그래도 엘은 추위를 별로 안 타는 것 같아. 검성이라 그런가?”
“아, 그것도 있긴 한데. 아마 이거 때문일 거야.”
대답하며 옷 안에서 목걸이를 꺼내 보였다. 시벨리우스의 시선에 호기심이 서렸다.
“이곳에서 만난 꼬마 숙녀한테 선물 받은 거야. 이프리트가 여기에 화기를 심어줬거든. 그래서 보온 효과가 있어.”
“와, 그랬구나. 그냥 돌조각처럼 보이진 않는데…… 혹시 화석이야?”
“화석 맞아. 게다가 조개화석이야. 근데 이걸 근원의 숲 부근에서 주웠다나 봐. 신기하지?”
“정말 그렇네. 여기가 예전엔 바다였나 봐.”
“진짜 환장하시겠네.”
순간 들려온 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지금 뭐라고 했어?”
“어? 여기가 예전엔 바다였나 보다라고…….”
“아니, 그다음에…….”
“그다음?”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는 시벨리우스는 내가 뭘 묻는 건지 전혀 짐작도 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역시 내가 잘못 들은 건가? 하긴 시벨리우스치고는 너무 거친 말투였다. 얼마 전에도 이런 식으로 위화감을 느낀 일들이 몇 번 있었던 것 같다. 어느샌가 잠잠해져서 신경 쓰지 않았는데, 또 환청이 시작된 건지도 모르겠다.
“근데 엘, 그 화석 내가 좀 자세히 봐도 될까?”
“어? 왜?”
“확실하진 않은데, 좀 묘한 기운이 서려 있는 것 같아서…….”
묘한 기운이라니. 이프리트가 불 속성이라고 말해줬던 것 같은데, 그걸 말하는 걸까? 의아한 기분에 목걸이를 일단 풀어냈다. 그런데 생각보다 손에 힘이 들어간 모양이다. 파삭거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조개화석 표면에 균열이 생겼다. 시벨리우스와 내가 동시에 눈을 부릅떴다.
“헉! 부서졌어!”
“치, 침착해, 엘! 수습할 수 있을 거야!”
“화석을 어떻게 수습해!”
혼란에 빠진 우리는 어쩌지도 못하고 연신 우왕좌왕했다. 더 갈라지지 않도록 매만져 봤지만 그럴수록 오히려 점점 더 심하게 금이 가고 있었다. 마침내 완전히 갈라진 화석이 두 조각으로 나뉘어 쪼개졌다. 망연자실한 상태로 서 있는 내게 시벨리우스가 급히 사과했다.
“미, 미안해, 엘. 내가 괜히 보여달라고 해서…….”
“아냐, 내가 힘 조절을 못 해서 부순걸…….”
허탈한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저었다. 조금만 더 조심할걸. 랑시에겐 아버지의 유품이나 다름없는 물건이었는데, 그런 소중한 걸 망가트렸다고 생각하니 죄책감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다행히 암울하기만 하라는 법은 없었는지 곧 희망적인 이야기가 들렸다.
“그래도 깨끗하게 잘렸으니까 다시 붙일 수 있을 거야.”
“앗, 정말?”
“응, 걱정하지 마. 내가 어떻게든 감쪽같이 붙여볼게. 아, 근데 목걸이에 걸어 둔 효과는 다 사라질 거야.”
“그건 괜찮아. 모양만 복구할 수 있으면 돼.”
보온 효과가 사라지는 건 아쉽지만, 다시 붙일 수만 있다면 기능이야 아무래도 좋았다. 희망을 되찾은 게 보였는지 시벨리우스의 얼굴도 한결 밝아졌다.
그러고 보니 이프리트가 강화 마법도 걸어뒀다고 하지 않았나? 분명 그렇게 말했었다. 마법이 만능은 아니지만 이렇게 쉽게 부서지는 건 좀 이상했다. 그때 문득 살펴본 화석 조각에 스치는 것이 있었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쪼개진 안쪽에 무언가가 박혀 있는 게 보였다. 자색을 띤 작은 조각 같은 형태였다.
“이게 뭐지? 광물인가? 자수정?”
“뭔데? 나도 볼래.”
시벨리우스가 관심을 보이고 다가왔다. 고개를 기울이는 그에게 내가 발견한 부분을 보여줬다.
“여기, 자주색 띤 부분.”
“자주색? 어디?”
이게 안 보인다고? 너무 대놓고 있는데 찾지 못하는 게 당황스러워서 손가락으로 그 부분을 짚어줬다. 그제야 알아봤는지 잠시 멈칫한 시벨리우스가 한참 동안 살피더니 조금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엘, 이거 평범한 건 아닌 것 같아.”
“비싼 광물이야?”
“광물이라고 해야 할지. 아마 내가 느낀 묘한 기운이 이거 때문인 것 같아. 확실해지려면 좀 더 조사해봐야겠지만. 아무래도 라프네리아 결정 같은데…….”
“어?”
천천히 눈을 깜빡였다. 라프네리아라면 예전에 들어본 적 있는 단어였다. 방랑 영혼을 표하는 명칭이었던가. 그 혼이 오랜 세월에 굳혀지면 영혼의 보석이 되는 거라고 했었다. 그런데 바로 그 영혼의 결정이라…….
“……어?”
스치는 깨달음에 멀거니 화석을 다시 내려다보았다. 그러니까, 뭐야. 설마 이게 영혼의 보석이라는 건가. 라미아스와 내가 지난 시간 동안 열심히 찾아 헤매던 그 영혼의 보석? 그게 이 화석 목걸이 안에도 들어 있었다고?
“이제야 알았냐.”
어디선가 투덜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나도 모르게 숨을 멈추고 입을 틀어막았다.
“엘?”
시벨리우스가 의아한 시선을 보냈지만 아무 대답도 할 수 없었다. 쿵쿵 뛰는 심장 박동에 정신을 차리기도 벅찼다. 이번엔 분명히 들었다. 내면의 목소리도, 착각인 것도 아니었다. 누군가가 확실히 내게 말을 걸었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에 내게 이렇게 말할 사람은 하나밖에 없었다.
“……라피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