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정령왕 엘퀴네스-527화 (527/608)

제527화

“조심해야지. 큰일 날 뻔했잖아.”

장난스러운 음성에 그제야 퍼뜩 정신이 들었다.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난 거지? 카류안은 어디로 가고 카노스가 날 부축하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아니, 애초에 이게 현실이기는 한가? 그냥 모든 게 다 어수선했다.

“정신이 조금 없지? 괜찮아, 괜찮아. 곧 좋아질 거야. 주술이 풀릴 뻔해서 그래.”

“주술……?”

“꽤 정교한 주술이네. 내가 보낸 건가 했더니 아니었잖아? 나 말고 이런 게 가능한 신이 또 있는 줄 몰랐어. 처음 느껴보는 힘인데 누구지?”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가 없어서 눈만 멍하니 깜빡거렸다. 뭔가에 집중하기엔 몸에 힘이 하나도 들어가지 않았다. 시야가 흐릿한 느낌이 점점 심해졌다. 이대론 의식을 잃을 것 같아 삐걱거리는 머리를 억지로 굴려 어떻게든 생각을 이어갔다.

방금 카노스가 뭐라고 했더라? 아, 그래. 주술이 풀릴 뻔했다고 했었다. 내게 걸려 있는 주술이라면 엘뤼엔이 걸어준 걸 말하는 걸 거다. 이 세계에서 육체를 유지할 수 있는 술법.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등골이 서늘해졌다. 나도 모르게 몸을 빼려고 했지만 가로막히는 게 더 빨랐다. 품에 갇힌 자세로 옴짝달싹도 하지 못하게 된 나를 향해 불길한 미소가 닿았다. ‘가만히 있어.’ 눈으로 경고한 카노스가 내 손을 붙잡아 들어 올렸다. 그러자 끼고 있던 장갑이 부식되는 것처럼 사라지면서 맨 손등이 드러났다. 그 위에 새겨진 마신의 문장이 함께 드러난 건 너무도 당연한 결과였다. 그걸 가만히 내려다보는 카노스는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는 표정이었다.

“미래에서 온 엘퀴네스라…….”

몸이 움찔 굳었다. 천천히 고개를 들자 내가 긴장한 걸 알아차린 카노스가 다시 웃었다.

“누가 이런 깜찍한 짓을 했을까?”

* * *

<이 주술엔 큰 약점이 있다.>

<유념해라, 엘.>

<네 진짜 신분은 아무도 모르게 해야 해.>

질끈 감고 있던 눈을 슬그머니 떴다. 기분 탓인 건지 모르겠지만 왠지 조금 전과 큰 차이가 없는 것 같다. 아니 착각이 아닌가. 몸을 더듬어 보니 감촉이 전부 선명했다. 경험자라 잘 아는데, 영혼일 땐 내 몸이 만져지는 감각도 느껴지지 않는다. 역시 아무리 봐도 멀쩡했다. 방금 카노스가 내 정체를 알아차린 거 아닌가? 왜 사라지지 않지?

“내가 조금 손봤거든. 이제 내 앞에선 괜찮아. 주위에 결계도 쳤으니까 지켜보는 시선도 없을 거야.”

당황해서 계속 더듬어 보는데 경쾌한 목소리가 들렸다. 마른 목을 억지로 축이며 고개를 들었다. 처음과 똑같은 미소를 짓고 있는 카노스가 보였다. 지금까지 환상이 사라지지 않을 리가 없으니 이게 정말 현실이 맞는 모양이다.

“정체를 알아보면 풀리는 거지? 그럴 것 같아서 나서는 걸 자제한 건데 말이야. 할 수 있는 만큼 보완하긴 했는데 이미 어긋난 건 어쩔 수 없어서 부작용이 있을지도 몰라. 이건 내 탓만은 아니다?”

“아…….”

“하지만 사실 내가 짐작할 때부터 이미 어느 정도는 오류가 생기긴 했어. 이건 내 탓 해도 돼. 내가 너무 잘나서 그냥 딱 봐도 알겠던 걸 어쩌겠어.”

씩 웃는 얼굴을 멍청하게 바라보다 이내 머릿속을 정리했다. 그러니까, 아무래도 처음부터 위험했다는 것 같다. 하긴 카노스처럼 눈치가 빠른 신이 날 주시하면서도 아무것도 짐작하지 못할 리가 없었다. 계속 위태했는데 조금 전 완전히 들통나서 풀릴 뻔했고, 그걸 카노스가 수습해준 거다.

부작용이 있을지 모른다는 게 걸리긴 하지만 당장은 다행이란 생각이 더 컸다. 미래를 바꿀 생각이라 해도 내가 혼이 되어 이 시대에 갇히는 결말을 바란 건 아니었으니까. 이제야 여유가 좀 돌아오는 것 같아 카노스를 제대로 바라보았다. 가물거릴 만큼 오래된 과거도 아니면서 새삼 이런 모습이었구나 싶다. 그의 소멸을 실감했던 순간이 아직도 생생한데 눈앞에서 멀쩡하게 웃고 있는 얼굴을 보니 꼭 죽은 사람이 살아 돌아온 것만 같았다.

“도와줘서 고마워요.”

그 때문에 주술이 풀릴 뻔한 거지만, 그가 아니었다면 수습해주지도 못했을 거다. 덕분에 편하게 얘기할 수도 있게 되었으니 오히려 잘됐다 싶었다. 카노스는 의외라는 듯이 눈을 살짝 크게 떴다.

“엘퀴네스 맞지? 이 기운은 아무리 봐도 물인데.”

“네, 맞아요.”

“내가 누군지도 알고?”

“알아요. 카노스잖아요.”

이렇게 묻는 걸 보니 날 기억하는 건 아니구나. 당연한 건데도 왠지 마음이 먹먹해졌다.

“이상하네. 근데 왜 반기는 것처럼 보이지? 보통 나와 아는 사이면 이렇게 귀여운 반응을 보이지 않거든. 내가 골탕을 안 먹였을 리가 없는데?”

“……그거 자랑 아니거든요.”

“아, 역시. 당하긴 했었구나?”

더 상큼하게 웃는 얼굴을 떨떠름하게 바라봤다. 그래, 보통은 바로 그런 표정이거든. 이제야 익숙한 반응이 나왔다며 카노스가 즐거워했다. 이 시대에도 여전히 종잡을 수 없는 사람이었다.

“나랑은 어떻게 아는 사이였어? 갑자기 모르는 사제가 생겨서 솔직히 얼마나 놀랐는지 알아? 이 문장은 내가 직접 준 거야?”

“네, 그거야…….”

“하긴 내가 안 새겼으면 이런 게 있을 리가 없지. 와, 정령왕한테 내 인장을 새길 생각을 다 하다니. 아무리 나라도 좀 제정신이 아닌데? 내가 왜 이런 짓을 했지? 언제쯤 미래에서 온 거야? 혹시 나랑 사귀는 사이야?”

“……그럴 리가요.”

한숨을 푹 내쉬었다. 대화를 따라가기가 힘든 건 둘째치고, 대체 왜 사고회로가 그렇게 흘러가는 건지 모르겠다. 보통은 부하로 삼았다고 생각하지 않나?

“그래? 그럴지도 모른다 생각했는데. 너 꽤 내 취향으로 생겼거든.”

“제 취향도 존중해주세요…….”

“아, 그건 미처 생각을 못 했네. 근데 나 정도면 괜찮지 않나?”

“마신이라고 양심을 저버리면 안 되지 않을까요.”

“하하, 잘 받아치는 걸 보니 진짜 사이가 좋았나 보네.”

웃음을 머금은 눈동자가 느슨하게 휘어졌다. 누가 봐도 호의적인 태도였지만 긴장을 늦추지 않았다. 지난 경험상 아무리 분위기가 좋아도 카노스는 방심해선 안 되는 사람이었다. 오히려 풀어질수록 뒤통수를 칠 확률만 높아졌다.

“그런데 카류안은 왜 죽이려고 했어?”

“…….”

그래, 바로 이렇게 말이다. 한차례 호흡을 정돈한 후 그를 바라보았다. 카노스는 여전히 웃고 있었지만, 공기의 색은 이미 바뀌었다. 시선을 조금 돌리니 조금 떨어진 곳에 얌전히 눕혀져 있는 카류안이 보였다. 상처는 전부 치료됐지만 찢긴 옷자락과 핏자국은 그대로라 그가 얼마나 심각한 상태였는지는 짐작할 수 있었다. 이 세계의 분쟁을 해결하기 위해 직접 파견한 마족을 죽이려고 했으니 기분이 상했겠지. 심지어 이때는 카류안과의 사이도 화목한 시기다. 지그시 압박해 오는 기운에 의지와는 상관없이 몸이 떨렸다. 하지만 그가 겁나진 않았다. 담담히 응시하는 나를 카노스가 조금 묘하다는 듯이 바라보았다.

“전부 짐작하고 있는 줄 알았는데요.”

“전혀 모르겠는데?”

“그런데 왜 건드리지 말라고…….”

“원래 과거 일은 함부로 개입하면 안 돼. 바꾼다고 해서 상황이 더 나아질 거라고 장담할 수도 없고. 일이 더 꼬이기만 할 가능성이 더 크거든.”

단순히 원론적인 경고였던 건가 보다. 그렇다 해도 굳이 방해하는 성격은 아닐 텐데, 몸소 구하러 온 건 단순히 카류안을 아끼기 때문인가. 아니면 그를 죽이려는 이유가 궁금해진 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런 경고를 들었는데도 죽이려고 한 걸 보니 쟤가 미래에서 꽤 큰 사고를 치나 봐?”

역시 내 짐작이 맞았다. 바라보는 눈길에 흥미와 탐색의 빛이 가득했다. 글쎄. 그게 고작 사고 정도로 표현될 일일까. 낮게 실소하니 그의 눈빛이 더 짙어졌다.

“네가 여길 온 거랑 연관된 일이려나?”

“……어디서부터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괜찮아. 나 시간 많아.”

다음 순간 몸을 압박하던 공기가 풀어졌다. 뭐야, 벌써 끝인가. 한결 편해진 호흡에 안도하며 조금 얼떨떨한 기분으로 카노스를 바라봤다. 이전의 그가 내게 관대했던 건 친우의 아들이기 때문이라 여기선 좀 더 시달릴 줄 알았는데 의외였다.

“그래서, 어떤 사정인데?”

카노스는 아예 무릎까지 끌어모으고 내 앞에 자리를 잡았다. 턱받침까지 해가며 생글생글 웃는 얼굴이 아무래도 끝까지 들을 기세였다. 루카르엠도 아니고 본 모습이잖아. 신의 강림은 시간제한이 있는 거 아니었어? 미래의 그는 휴가를 받아서 괜찮았다 치고, 지금은 대체 뭘 어떻게 한 건지 모르겠다. 설마 그 휴가를 이 시기부터 받았던 건 아니겠지.

더는 생각하기를 포기하고 차분히 지난 이야기를 시작했다. 내가 태어난 과정부터 그 당시 혼란한 아크아돈의 상황들. 악신의 탄생을 위해 준비되었던 계획들과 그 주범이 누구인지까지. 이곳에 온 이후로는 그 누구에게도 털어놓을 수 없었던 이야기였다.

“아, 정말? 쟤가 악신이 된다고?”

흥미롭게 듣던 카노스가 다시 잠들어 있는 카류안 쪽으로 시선을 던졌다. 아무리 그라도 이런 얘기엔 표정 변화가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당황스러울 만큼 아무렇지 않은 얼굴이었다.

“정령왕의 탄생까지 이용하다니 치밀했네. 그래도 어떻게든 잘 막아낸 것 같아 다행이야.”

“막았다는 건 어떻게 알았어요?”

“실패했으면 처음부터 여기 온 목적이 카류안이었겠지. 그런데 아니잖아?”

아, 그게 그렇게 되는 건가. 하긴 처음엔 카류안을 죽일 계획까진 없었다. 아무것도 건드리지 말라는 카노스의 말을 의식해서 섣불리 판단하기가 어려웠다. 하지만 그가 악신이 되는 걸 막지 못했다면 선택의 여지가 없었을 거다. 속으로 수긍하고 있으려니 강렬한 시선이 느껴졌다. 카노스가 왠지 해맑은 표정으로 나를 지켜보고 있었다. 그 입가에 걸린 미소가 예사롭지 않았다.

“흠, 그래. 어쨌거나 소멸했단 말이지.”

“왜, 왜요?”

“그냥. 어려운 일을 해결해 준 게 너무 고마워서.”

그걸 해결한 사람은 카노스인데요. 차마 거기까진 말할 자신이 없어서 씁쓸하게 웃었다. 아무리 그대로 본인이 소멸한다는 사실을 알려주기는 꺼려졌다. 결국 그 사실만 밝히지 않은 채로 나머지 이야기가 마저 진행됐다. 모든 이야기를 들은 그는 후련하다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랬구나. 상황은 전부 이해했어. 그 사건으로 죽은 친구의 영혼이 사라져서 찾으러 온 거란 말이지. 쉽지 않은 결정이었을 텐데 위험한 모험을 감행했네.”

“저 때문에 죽었으니까 제가 찾아오는 게 도리인 것 같아서요.”

“심정이야 알겠지만 좀 무모하지 않아? 너 하나에 달린 생명을 생각해야지. 행여 네 육체에 문제가 생기면 그 시대의 아크아돈은 또 가뭄에 허덕일 거 아냐. 하나를 살리겠다고 여럿을 나 몰라라 하면 쓰겠어?”

“그건…….”

“―라는 건 그냥 해본 소리였어.”

“……네?”

“냐하하~ 뭐, 아무렴 어때? 구하고 싶은 녀석도 구하지 못한다면 절대자의 자리가 다 무슨 의미겠어. 그런 건 걷어차는 편이 낫지.”

다른 사람도 아니고 소멸을 자처한 그가 이렇게 말하니 농담으로 안 들린다. 억지로 웃었지만 비실거리는 웃음소리밖에 나지 않았다. 다행히 카노스는 내 반응은 크게 신경 쓰지 않는 것 같았다.

“그래서 단서는 좀 얻었어?”

“아뇨. 계속 헤매고만 있어요. 생각보다 더 쉽지 않더라고요.”

“아, 진짜?”

유난히 반짝이는 눈동자가 나를 빤히 훑어내렸다. 이건 또 무슨 의미지? 초조한 기분으로 옷자락만 만지작거리자니 뜬금없는 소리가 들렸다.

“나 잠깐 머리 좀 쓰다듬어봐도 돼?”

“네? 왜, 왜요?”

“토끼 같아서 만져보려고.”

“…….”

“보송보송해 보여서 너무 귀엽네.”

“…….”

그렇지. 이 사람은 카노스였지. 혹시 내가 말하지 않은 게 있는지 기억을 읽어내려는 건가 긴장했던 게 다 허탈해졌다. 한숨을 내쉰 후 마음대로 하라는 뜻으로 머리를 내밀었다. 막상 진짜 허락할 거라곤 생각을 안 했는지 카노스는 오히려 놀란 얼굴이었다. 다시 금방 미소 짓긴 했지만, 드물게 그를 당황하게 했다고 생각하니 뿌듯함이 차올랐다. 곧 머리 위에 따뜻한 기운이 닿았다. 그답지 않게 조심조심 만지는 손길이라 조금 웃음이 나왔다.

“경계심이 너무 없는 거 아냐, 미래의 엘퀴네스님? 본인이 평소에 둔하다는 생각해 본 적 없어?”

“꽤 많이 하는데요. 그치만 카노스 앞에서 경계해서 뭐해요.”

“와, 그렇게 말하니까 설렜어. 보통은 내 앞이니까 경계하는데 이런 반응은 또 신선한걸.”

“그게 아니라 편한 방법을 터득한 거죠. 카노스는 경계하면 더 괴롭히잖아요.”

“오오, 나를 너무 잘 알아. 우리 진짜 친했구나?”

즐겁게 웃은 그가 다시금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조금 전보다 한층 과격해진 손길에 머리칼이 순식간에 헝클어졌다.

“호의엔 호의로 답해주는 게 예의지. 그런 의미에서 기운이 날 만한 이야기 하나 해줄게. 내가 보기엔 조만간 좋은 소식이 있을 것 같아.”

“그게 무슨 소리예요?”

“너무 낙담하지 말라는 소리야. 네가 찾는 게 의외로 가까운 곳에 있을지도 모르잖아.”

“……혹시 카노스는 그 녀석이 어디에 있는지 알고 있어요?”

“냐하항, 글쎄에?”

틀림없다. 이건 누가 봐도 알고 있는 사람의 얼굴이다. 심장이 두근두근 뛰었다. 하지만 아무리 간절하게 바라봐도 카노스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기대감만 심어주고 알려줄 마음은 없는 모양이었다. 생각해 보니 이렇게 매달릴 일도 아니라 체념이 찾아드는 것도 빨랐다.

“됐어요. 어차피 못 찾아도 상관없어요.”

“카류안을 죽여서 과거를 바꾸면 되니까?”

조금 멈칫했다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마주한 그는 여전히 편하게 웃는 얼굴이었다. 압박할 때와는 다른 분위기라 무심코 상황을 낙관적으로 여겼나 보다. 이어진 말엔 머리가 식었다.

“미안하지만 그건 안 될 것 같아.”

“……카노스.”

체한 것처럼 손끝이 차가워졌다. 얼굴이 굳어진 내게 카노스의 태연한 시선이 닿았다.

“카노스가 카류안을 아끼는 건 알아요. 하지만 악신이 태어나는 걸 방관하실 건 아니잖아요. 그가 아무것도 시작하지 않은 지금 막아야 해요.”

“심정은 알지만 내 판단은 변함이 없어. 아까 말했지? 과거의 일은 함부로 개입하면 안 돼.”

“개입해서 더 좋게 바뀔 수도 있는 거잖아요. 카류안 때문에 다치거나 죽는 사람이 한두 명이 아니에요! 카노스도……!”

나도 모르게 쏟아질 뻔한 말을 간신히 멈췄다. 하지만 눈치 빠른 카노스는 이미 내가 하려는 말을 알아차린 것 같았다.

“나도 뭐?”

“…….”

“아하, 그게 그렇게 되는 거구나?”

참담한 기분으로 숨을 삼켰다. 장난스럽게 웃는 얼굴만으로 이어질 대답이 예상됐다.

“그래도 안 돼.”

“카노스!”

“넌 원래 계획대로 친구의 영혼만 찾아서 돌아가. 그게 가장 좋아.”

“싫어요.”

곧바로 답한 말에 카노스의 눈빛이 서늘해졌다. 움찔할 만큼 차가운 시선이었지만 그가 날 싫어해도 어쩔 수 없었다. 내가 어떤 마음으로 결심했는데. 쉽게 설득될 거라면 시작도 하지 않았다. 떼를 쓰는 어린애처럼 보여도 할 수 없었다. 눈앞에 멀쩡히 살아 있는 그를 보니 더 포기하지 못하겠다. 미래의 신계가, 우리가 무엇을 잃었는지 새삼 알 것 같았다. 그는 살아 있어야 하고, 앞으로도 살아가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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