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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06화
“자, 어때요? 보셨죠?”
“알았으니 어서 내려와!”
웃으며 연을 흔드는 동생을 보고 왕세자가 이마를 짚었다. 혀를 낼름 내민 왕녀가 다시 아래로 내려가려고 할 때였다. 우지직! 그냥 듣기에도 심상치 않은 소리가 울리더니 왕녀가 타고 있던 나뭇가지가 한순간에 부러졌다.
“꺄악!”
“아나이스!”
“왕녀님!”
기겁한 사람들이 서둘러 달려들었다. 나 역시 깜짝 놀라서 나서려는 걸 트로웰이 붙잡아 제지했다. 그런데 그 순간 어디선가 바람이 일더니, 떨어지는 왕녀의 몸을 무사히 받아냈다.
“괜찮으십니까?”
들려온 목소리가 낯이 익었다. 누군지 굳이 확인해 보지 않아도 그 주인을 모를 수가 없는 음성이었다. 역시나 사람들 사이에서 아는 얼굴이 걸어 나왔다. 아인 이드리스였다. 왕세자는 물론, 모두가 얼떨떨해하는 얼굴로 멍하니 그를 바라보았다. 곧 그들 가까이 다가선 아인 이드리스가 바닥에 엉망으로 주저앉아있는 왕녀에게 손을 내밀었다.
“제가 부축해드리겠습니다.”
멍하니 그를 바라보던 왕녀가 천천히 손을 내밀었다. 이윽고 두 손이 서로 겹쳐졌다.
“저 녀석이 다른 연인을 만든다고 했던 거 기억해?”
트로웰의 목소리가 노래하는 것처럼 울렸다.
나도 모르게 신음부터 흘렸던 것 같다. 나른히 휘어 접은 트로웰의 금안이 흐트러졌다. 그 속에서 얼핏 어른거리는 것이 눈물인지 빛인지, 그의 것인지 내 것인지조차 구분할 수가 없었다.
“이걸로 시작됐어.”
* * *
균열 발생이 중단된 지 스무날이 넘어가자 예상했던 대로 특별대는 해산됐다. 문제가 생기면 언제든 다시 소환될 수 있는 임시 해산이긴 했지만 어쨌든 다시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게 된 헌터들의 얼굴은 몹시 밝았다. 그동안 수고했다는 의미로 세피온 공작이 성대한 연회를 열어준 덕분도 있었다.
친교가 목적인 귀족들의 연회와는 다르게 정복을 갖춰 입을 필요도 없이 그냥 산해진미를 늘어놓고 즐기는 자리였지만, 그래서 더 반응이 좋았다. 사람들은 밤새도록 웃고 떠들며 그간 정을 쌓은 동료들과 작별 인사를 나눴다. 특별대 운영 기간이 길었던 건 아니었으나 짧다고 할 만한 기간도 아니었다. 각자 다른 길드원이 한 팀으로 오랜 시간 활동하는 경험은 드물었기에 다들 이래저래 시원섭섭해하는 분위기였다.
“그동안 고생 많았습니다.”
악수를 청하는 손을 가만히 바라보다 고개를 들었다. 평소에도 복장에 신경 쓰는 편이었지만, 연회라고 더 멀끔하게 차려입은 모습이 보였다. 훤칠한 키에 준수한 얼굴. 눈동자는 보기 드물게 선명한 푸른색이었다. 짙은 흑발에 티 한 점 없이 하얀 피부가 대비되어 깨끗한 느낌을 풍겼다. 그의 몸 주변으로 청아하게 감도는 공기가 그런 분위기를 더욱 돋보이게 했다. 주위에 워낙 화려한 사람들이 많아서 미처 의식해 보지 못했는데, 일반적으론 한눈에 호감을 사기 쉬운 인상이었다.
“엘?”
“아, 미안해요. 아인도 고생 많았어요.”
쓰게 웃으며 손을 맞잡으니 의아해하던 그가 기쁜 미소를 지었다. 수줍은 듯 상기된 얼굴은 온순한 소동물을 떠올리게 했다. 평소 그를 볼 때마다 마음을 절로 약해지게 한 모습이었다. 그러나 얼마 전 나무에서 떨어진 여성을 구하고 부축하던 그의 얼굴에도 지금과 같은 미소가 걸려 있었다는 점을 상기하니 이번엔 도저히 좋게 넘길 수가 없었다. 그 미소를 마주한 여성이 어떤 표정을 지었는지를 떠올리니 더더욱.
“이걸로 시작됐어.”
트로웰의 목소리가 환청처럼 울리는 것 같았다. 복잡한 마음이 내 태도에서도 그대로 느껴졌는지 아인 이드리스가 다시금 의아한 얼굴을 했다. 아무것도 아니라며 고개를 저어주고 속으론 한숨을 삼켰다.
‘……내연 상대의 얼굴까진 보고 싶지 않았단 말이야.’
저렇게 깨끗하고 순진하게 생긴 얼굴로 외도라니. 정말 사람은 겉보기로는 모르는 거다. 나조차도 내심 안일하게 여겼던 것 같다. 아인 이드리스가 미네르바가 아닌 다른 사람을 마음에 담게 된다는 건 이미 알고 있었는데, 막상 그 일이 진짜 시작된다고 하니 심장이 철렁 내려앉는 것 같았다. 그간 막연히 생각해 왔던 분위기와 너무 달랐던 탓도 있었다.
영원을 맹세한 반려를 저버리게 한 사람이라 나도 모르게 악당 같은 이미지를 연상했었나 보다. 그 상대가 그렇게 순수하게 웃는 소녀일 거라곤 상상도 해본 적이 없었다. 둘의 만남이 그런 식으로 동화처럼 시작되었을 거라고도.
게다가 하필 하고 많은 사람 중에서 그 망할 왕세자의 동생일 건 뭐란 말인가. 트로웰이 의미심장하게 건넨 말이 이런 의미였을 줄이야. 엎친 데 덮친 격이라고 해야 할지, 원수는 외나무다리에서 만난다고 해야 할지. 이 상황을 적절하게 비유할 만한 말이 도저히 떠오르지 않았다. 덕분에 요즘은 잠도 제대로 못 이루는 지경인데, 정작 이 모든 근심의 원흉인 아인 이드리스는 태평하게 웃고 있다는 게 더 울화통이 터졌다.
“엘이 다른 임무로 차출된 이후로 오랜만에 만나는 거네요. 마지막 인사도 드리지 못하는 건가 싶어서 서운했는데 이렇게 뵐 수 있어서 다행입니다.”
“아하하, 그렇네요. 이제 각자 일상으로 돌아가는 거니까요.”
이게 정말 마지막 인사였으면 좋겠다. 우리 가능하면 다시는 마주치지 말자. 진심을 기원하며 웃으니 아인 이드리스의 표정이 조급해졌다. 뭔가 할 말이 있는 것 같은 얼굴이라 불길한 기분이 스며들었다.
“엘, 혹시 다음에 따로 식사 자리를 마련해도 괜찮겠습니까? 엘에게 소개해드리고 싶은 분이 있습니다.”
“네? ……누구를요?”
“여기서는 언급하기 좀 그렇습니다. 그저 존귀한 자리에 계신 분이라고만 말씀드리겠습니다. 저 역시 우연한 계기로 최근에 가까워지게 되었는데, 정령술에 관심이 많으시더군요. 그분이 엘에게 관심을 보이셔서요.”
주어가 빠졌는데도 누구를 말하는지 알 것 같은 건 그저 기분 탓이 아닐 거다. 아인 이드리스가 에펜 왕국의 왕녀를 구했다는 얘기는 아주 유명했다. 덕분에 그가 왕세자와 자주 어울리게 되었다는 것 또한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얘기였다. 덕분에 세피온 공작이 하루에도 몇 번씩 뒷목을 잡고 있다는 건 나만 아는 얘기였지만.
정령술에 관심이 많은 거 좋아하시네. 이렇게 나오시겠다? 뻔뻔하게 웃던 왕세자의 얼굴이 떠오르니 속이 울컥했다. 그놈이 흑주술을 쓴다는 증거가 없어서 당장은 문제 삼지도 못한다는 게 한이었다.
“죄송하지만 그런 자리는 불편해서요. 정중히 거절할게요.”
“아, 그렇군요. 저도 혹시나 싶어 여쭤봤던 거니 신경 쓰지 마세요. 부담을 드렸다면 죄송합니다.”
말은 그렇게 해도 설마 내가 거절할 줄 몰랐는지 아인 이드리스는 퍽 당황해하는 얼굴이었다. 마주 대해봤자 속이 끓기만 하는 모습을 뒤로하고 주위를 살폈다. 전원 참석이 권장된 연회인 만큼 다비안도 와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아무리 찾아봐도 그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오늘 슐츠는 보지 못했나요?”
“슐츠요? 아, 네. 보지 못했습니다. 그는 오늘 연회에 참석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래요.”
‘물어볼 게 있었는데.’
사실 그를 만나려고 참석한 거라 맥이 빠졌다. 어차피 일어날 일이야 그렇다 치고, 한 가지 마음에 걸리는 게 있었다. 예전에 트로웰에게 얼핏 듣기로는 아인 이드리스에게 구애한 여자는 분명 백작가의 딸이라고 했었다. 그런데 지금 내연 상대로 내정된 건 왕녀다. 설마 어디선가 일이 틀어진 건지, 그게 아니면 내가 모르는 배경이 더 깔린 건지 알 수가 없었다.
“직접 알아봐. 너한테만 대답해주는 녀석도 있잖아?”
혹시 몰라 왕녀에 대해 라미아스에게 물어봤더니 삐딱한 대답만 돌아왔다. 수천 년이란 나이는 다 어디로 먹은 건지 왠지 날이 갈수록 좀생이가 되어가는 것 같았다. 나도 오기가 생겨서 그러마 하고 나왔는데 정작 다비안을 만나지도 못하니 난처했다. 아직 그는 숨어 지내는 처지라 어디서 지내는지도 알지 못하는 상태였다. 라미아스라면 행방을 알 테지만 당연히 대답해주지 않을 게 뻔했다.
툭툭
딴생각에 홀로 빠져 있는데 어깨를 가볍게 건드리는 손길이 느껴졌다. 무심코 돌아보았다가 보이는 얼굴에 나도 모르게 움찔했다. 시벨리우스였다.
“너 맞구나.”
“아, 안녕!”
그러고 보니 연회 음식은 주방에서 준비하는 거였지. 여길 오면 시벨리우스와 재회하는 것도 예정된 거였다. 어색하게 웃으며 인사하니 그가 가만히 나를 내려다보았다.
“수호부 준비해놨는데, 왜 안 왔어?”
“앗, 미안. 그동안 조금 바빴어.”
“……그랬구나.”
가라앉은 시선에 조금은 안도한 듯한 기색이 떠올랐다. 내가 일부러 피했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실제로 일부러 피한 게 맞다 보니 한층 밝아진 얼굴에 양심이 찔려왔다. 젠장, 언제 내 성별을 밝히지? 이 녀석이 나한테 물어보지도 않았는데 대뜸 뜬금없이 나 남자라고 말하면 이상하지 않을까? 아니, 지금 이상해 보이는 게 문제야? 오해를 푸는 게 먼저지! 머릿속이 맹렬하게 빙글빙글 돌았다.
“그런데 무슨 고민 있어?”
“아, 만나야 할 사람이 있었는데 못 만났거든.”
물끄러미 바라보는 푸른 눈동자에 이채가 서렸다. 저 눈빛의 의미가 설마 수호부 받으러 올 시간은 없고 다른 사람 만날 시간은 있냐고 묻는 건 아니겠지. 다시금 밀려드는 양심의 가책을 외면하며 얼른 다른 쪽으로 눈을 굴렸다.
“아무래도 오늘 여기에 안 올 모양이야. 하하하, 중요한 일인데 거참 곤란하네.”
“거처로 직접 찾아가는 건?”
“주소를 몰라.”
“꼭 만나야 하는 사람이야?”
“응, 그렇지.”
대충 이쯤에서 남자라고 밝히면 되는 건가. 내가 뭐라고 하는지도 모르는 기분으로 대답하며 조심스럽게 때를 맞춰보고 있을 때였다. 잠시 고심하는 듯하던 시벨리우스가 품에서 종이 한 장을 꺼내 들더니 빠르게 글자인지 문양인지를 그려나갔다. 그리곤 다 적은 것을 내게 내밀었다.
“이걸 들고 집중한 다음 그 사람의 얼굴을 강하게 떠올려 봐.”
“어?”
“글자가 푸른색으로 빛나면 성공한 거야. 그때 던지면 그가 있는 곳으로 널 안내할 거야.”
“……엉?”
“기억이 불분명할수록 효력이 떨어질 테니 최대한 구체적으로 상상해야 해. 그 사람만이 지니고 있는 물건의 형태도 괜찮아.”
아니, 시벨리우스. 이 녀석 이렇게 대단한 능력자였어?
눈을 깜빡이고 있으려니 시벨리우스가 내 손에 강제로 종이를 쥐여주고는 그대로 몸을 돌렸다. 너무 후다닥 달아나서 미처 잡을 틈도 없었다. 얼핏 보이는 귀 끝이 빨개서 차마 잡을 수 없었다는 표현이 더 맞을지도 모르겠다.
“……성별 말해야 하는데.”
뒤늦게 해명할 기회를 놓쳤다는 걸 자각했지만 이미 떠나간 배였다. 시한폭탄을 차곡차곡 적립해가고 있다는 기분을 버리기 어렵긴 한데, 도움을 받은 건 솔직히 기뻤다. 미안하다, 시벨리우스. 이 빚은 나중에 꼭 갚을게.
“일단 쓰라고 준 건 써야지.”
한층 가벼워진 걸음으로 곧장 연회장을 빠져나왔다. 적당히 한산한 곳에 이른 후, 시벨리우스가 알려준 대로 종이를 손에 쥐고 집중했다. 혹시 마도구의 영향이 있을지도 모르니 외모보다는 메달의 형태를 떠올렸다. 그러자 곧 종이가 파르르 떨리더니 검은색 문양에 푸른 빛이 감돌기 시작했다.
‘성공인가 봐.’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종이를 던지니 팔랑거리며 날아가기 시작했다. 흐느적거리면서도 결코 바닥으로는 떨어지지 않는 것이, 스스로 이동하는 게 분명한 움직임이었다. 홀린 듯이 그 뒤를 따라 걸음을 옮겼다.
종이는 꽤 한참 동안 허공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움직임이 변한 건 족히 몇 시간은 걸었다고 여겼을 때쯤이었다. 힘차게 날아가던 종이가 한 골목 가에 접어들더니 빠르게 힘을 잃고 바닥으로 추락했다. 그리곤 마치 제 사명을 다했다는 듯 그 자리에서 재가 되어 사라졌다. 당황해서 다가가니 판자로 대충 엮어둔 듯한 허름한 집 하나가 보였다.
‘설마 여기에 있는 건가?’
그제야 주변을 돌아볼 여유가 생겼다. 눈앞의 집만 그런 줄 알았는데 근방에 있는 집들이 대부분 다 판자로 지어진 형태였다. 인기척이 별로 느껴지지 않는 동네는 한낮임에도 불구하고 어두침침한 느낌을 풍겼다. 바닥은 정비되지 않은 채 더러웠고, 악취도 풍겼다. 내내 종이가 날아가는 방향만 보면서 따라와서 몰랐는데 이제 보니 빈민가 안쪽이었다. 이 근방은 향락가가 밀접해 있어 밤에는 활발해지는 반면에 낮은 죽은 듯이 고요했다. 그만큼 낮 시간대는 외부인이 눈에 띄기 쉬운 환경이기도 했다. 괜한 시비에 휘말리기 전에 조심스럽게 집 앞으로 다가가 몇 차례 문고리를 잡고 두드렸다.
“다비안. 안에 있어요?”
처음엔 너무 조용해서 아무도 없는 건가 싶었다. 하지만 집중해보니 안쪽에서 희미한 기척이 느껴졌다. 문으로 가까이 다가가 귀를 바짝 대어 보니 뭔가 이상한 소리가 들렸다. 끙끙 앓는 신음 같기도 하고 바닥을 긁는 소리 같기도 했다.
‘뭐지?’
무슨 일이 있나? 혹시 어디가 아픈 건가? 마음이 급해져서 나중에 수리비를 물어주기로 하고 일단 문고리부터 부쉈다. 들어선 안쪽은 빛 한 점 없이 캄캄했다. 창문은 물론 빛이 들어올 만한 틈새란 틈새는 전부 다 가려둔 것 같았다. 공기 중에선 묘하게 비릿한 냄새가 풍겼다.
“다비안?”
걸음을 옮기는데 바닥에서 무언가가 질퍽하게 밟혔다. 손을 뻗어 만져보니 축축한 것이 묻어났다. 피 냄새인지 비린내인지 알 수 없는 냄새가 코끝을 찔렀다. 정체는 알 수 없지만 아마 이게 집 안을 가득 채운 냄새의 원인인 것 같았다.
“흐으으…….”
얼굴을 찌푸리고 있는데 방 안쪽에서 옅은 신음이 들려왔다. 들어갈수록 들려오는 소리가 더 선명해졌다. 그렇게 조금 더 들어가니 검은 덩어리가 구석에 웅크리고 있는 게 보였다.
“다비안, 거기 있어요?”
말을 걸어봤지만 그림자에서 돌아오는 반응은 없었다. 조금 전 들었던 소리가 다 착각이 아닌가 의심스러울 정도로 적막한 공간엔 숨소리 하나 들리지 않았다. 뭉쳐진 형태가 일정한 간격으로 들썩이고 있지 않았다면 살아 있는 건지 아닌지조차 의심했을지도 몰랐다.
‘이게 다 무슨 일이야.’
긴장되려는 마음을 가라앉히고 천천히 주위를 돌아보았다. 마침 근처에 전등의 형태가 보였다. 건드려도 되는 건지 알 수가 없어서 망설여졌지만, 이대로 있을 수도 없어서 그냥 강행하기로 했다.
달칵, 동작하는 장치를 누르자 빛이 일면서 주위가 조금씩 밝아지기 시작했다. 그제야 볼 수 있게 된 방 안의 광경에 숨을 삼켰다. 온 사방이 검붉은 오물로 범벅이 되어 있었다. 기름인지 체액인지 정체 모를 액체에 피가 섞인 것 같았다. 그림자가 있던 위치를 확인하니 웅크리고 있는 남자가 보였다. 엉겨 붙은 머리카락이 얼굴을 다 가리고 있었지만 다비안이 분명했다.
“다비안!”
그는 무릎과 발목이 단단히 결박된 채였다. 손목에도 쇳덩이를 매단 수갑을 차고 있었다.
‘누가 이런 짓을?’
설마 라미아스가 이렇게 한 건 아니겠지. 다비안의 정체며 위치를 아는 사람이라고 해봤자 얼마 되지 않으니 달리 떠올릴 만한 사람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