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99화
우려했던 아인 이드리스와의 관계는 그렇게 나빠지진 않았다. 당일 무거운 얼굴로 돌아갔던 그는 다음날부터는 다시 아무렇지 않은 모습으로 돌아왔다. 마음에 담아두지 않기로 한 건지, 그냥 불편한 상황을 피하는 건지는 알 수 없었지만, 어쨌든 덕분에 무난한 날들이 이어졌다.
그새 소식을 들었는지 갑자기 들이닥친 라미아스가 엘뤼엔한테 나도 아버지라고 부르게 해달라고 했다가 그대로 쫓겨나는 일이 있긴 했지만. 그리고 이후로 심통이 단단히 난 그가 내게 일방적인 냉전을 선포하긴 했지만. 어쨌든 그런 것들을 포함해서도 여느 때와 같은 일상이었다.
“근데 라미아스가 이프리트한테 뭘 부탁한 거였어?”
천 년에 한 번씩 만들어지는 귀한 술까지 대가로 건넬 정도면 보통 일은 아닐 텐데, 대체 무슨 일을 벌인 건지 모르겠다. 곧 알게 된다고 했던 걸 보면 분명 나와도 관련된 일이건만 짐작 가는 바가 전혀 없었다. 단단히 삐친 라미아스는 알려줄 리가 없어서 이프리트한테 다시 확인해보려니 그가 재밌다는 얼굴로 웃었다.
“어, 도련님. 아직 눈치 못 챈 거야?”
“……벌써 알아차렸어야 할 만큼 가까운 곳에서 벌어지는 일이었어?”
“뭐, 그렇게 대단한 일은 아냐. 라미아스가 잘하지 못하는 분야가 있는데, 그걸 내 계약자한테 대신 부탁해줬을 뿐이야. 걔가 유일하게 직접 부탁하지 못하는 상대거든.”
“왜?”
“남의 연애사는 궁금해하면 안 돼. 그게 짝사랑하다 비참하게 차인 결말이라면 더더욱.”
……아, 그런 거구나.
본의 아니게 라미아스의 슬픈 추억 하나를 알게 된 모양이다. 아연한 기분으로 바라보니 이프리트가 짓궂은 얼굴로 한쪽 눈을 찡긋해 보였다. 알고 보면 정령왕 중에서 그가 가장 성격이 나쁜 건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그건 그거고, 라미아스가 정확히 뭘 부탁한 건지는 여전히 모르는 채로 시간은 계속 흘러갔다. 겨울에 접어들어 쌀쌀해진 날씨는 이제 방한복을 갖춰 입어야 할 만큼 추워졌다. 제도는 한파가 심하진 않았지만 눈은 자주 내리는 편이었다. 몸이 얼면서 동작이 둔해지니 마수를 진압하는 과정에서도 피해가 늘기 시작했다. 매일같이 이어지는 전투에 피로가 쌓인 것도 원인이었다.
그래서인지 요즘은 특별대 식단이 죄다 보양식 위주로 나오는 중이었다. 주방장이 혼신의 힘을 불태우기로 작정한 듯 날이 갈수록 더 맛있어져서 요즘은 다들 식사 시간을 유일한 낙으로 삼고 있었다. 출근하면 오늘 식단이 뭔지부터 궁금해하는 게 당연한 일과가 됐을 정도였다.
“그거 압니까? 주방은 주간 야간으로 2교대잖아요. 주간 팀 요리가 훨씬 맛있대요.”
“헉, 정말요?”
“전에 우리 조원이랑 임시로 교대 근무했던 3조 친구가 말해주더라구요. 주방장 실력이 완전히 다른 수준이라는 모양이에요. 야간엔 못 먹을 수준의 풀죽만 나오는 경우도 잦다더라구요.”
“으아, 망했네요. 다음 주부터는 우리가 야간 근무잖아요. 그동안 먹는 거 하나 보고 버틴 거나 다름없는데.”
“그래도 야간이면 마수 처리는 덜하게 되겠죠. 제일 평화로운 시간대니까요.”
“솔직히 맛없는 거 먹고 평온하느니, 맛있는 거 먹고 마수랑 싸우는 쪽이 더 나은 것 같은데요.”
“으음, 그것도 그렇기는…….”
“아니, 그래도 몸이 편한 게 더 낫죠. 음식이야 따로 사 먹어도 되잖아요.”
“여기 주방만큼 맛있는 식당이 있긴 해요?”
순찰을 나가기 전 장비를 점검하는 시간, 조원들 사이에서 심각한 주제 하나가 화두로 떠올랐다. 각자 주장이 합리적인 데다가 한 치도 물러서려는 의향이 없다 보니 아무도 이렇다 할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있었다.
“조장! 조장은 이걸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아, 그, 글쎄요. 어려운 문제군요…….”
아인 이드리스가 난처한 표정으로 어색하게 웃었다. 나 역시 어느 쪽에 서야 할지 고심하고 있을 때였다.
“저기.”
누군가가 가까이 다가와 말을 걸어왔다. 돌아보니 한 남자가 머뭇거리는 얼굴로 서 있었다. 아마 이름이 슐츠였던가. 그나마 적당히 어울리는 다른 조원들과는 다르게 그는 내성적인 성격이라 말을 섞는 일이 거의 없는 편이었다.
“무슨 일이에요?”
“방금 주방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엘을 찾는 것 같습니다.”
“주방에서 저를요?”
식당이야 매일 가는 장소지만 아직 주방 쪽 사람들과 연이 닿은 적은 없었다. 배급해주는 몇 사람 빼고는 여태 주방장의 얼굴도 모를 정도였다. 어리둥절했지만 일단 슐츠를 따라 이동했다. 주방이 있는 쪽으로 가니 문 앞에서 우왕좌왕하고 있는 사람들이 보였다. “오셨다!” 그들 중 몇 사람이 나를 발견하곤 얼굴에 화색을 띠었다.
“안녕하세요. 저를 찾으셨다고 들었는데요.”
“아, 네! 맞습니다! 물의 정령사 맞으시지요? 그럼 혹시 물을 만들어내실 수도 있나요?”
“네, 그거야 가능은 한데요…….”
선뜻 긍정하니 사방에서 탄성이 터져 나왔다. 그중 한 사람이 울 것 같은 얼굴로 내 손을 포개어 잡았다.
“어, 얼마나 채울 수 있습니까? 독 하나를 가득 채우는 것도 됩니까?”
“그 이상도 되죠.”
“세상에! 신이시여, 감사합니다! 정령사님! 제발 저희 좀 도와주십시오!”
“대체 무슨 일이길래…….”
“어서 이쪽으로!”
그들은 이렇다 할 설명도 없이 팔을 붙잡고 나를 마구 끌고 가기 시작했다. 강제로 떨어진 슐츠가 당황해서 부랴부랴 쫓아왔다. 그렇게 얼결에 휘말려 떠밀리다시피 간 곳은 주방 안쪽이었다. 그곳에서도 심각한 얼굴로 둘러서 있는 사람들이 보였다. 물이 채워진 나무통 몇 개를 두고 뭔가를 의논하는 듯한 모습이었다.
“이거론 어림도 없어.”
“지금 더 길어오는 중입니다.”
“이런 속도로 시간 내에 할 수 있겠어?”
그들이 나누는 대화 소리가 얼핏 들려왔다. 내 팔을 꼭 붙잡은 남자가 신나서 소리쳤다.
“주방장님! 물을 구할 수 있게 됐습니다!”
“뭐?”
그 말에 안에 있던 이들이 동시에 이쪽을 돌아보았다. 놀라워하면서도 긴가민가해하는 표정들이 와 닿았다.
“물을 구했다고?”
“예! 보세요! 물의 정령사 님을 모셔왔습니다! 다량의 물도 채워주실 실수 있다고 하십니다!”
“물의 정령사?”
주방장이라 불린 남자의 눈에 이채가 서렸다. 하지만 난 다른 이유로 아무런 반응을 할 수가 없었다. 당연히 낯설어야 할 주방장의 모습이 아무리 봐도 낯익었기 때문이었다. 인간에 비해 길쭉하게 뻗은 귀의 형태, 푸르스름한 피부. 두건에 감싸져 있긴 하지만 누가 봐도 은발임이 분명한 머리칼.
“……시벨리우스?”
아니, 얘가 왜 여기에 있어?
틀림없다. 스쳐 지나가도 잘못 볼 수가 없는 얼굴이었다. 시벨리우스가 분명했다. 그 순간 표정이 굳어진 그가 빠르게 다가오더니 내가 쓰고 있는 후드를 확 걷어냈다. 너무 급작스러워서 미처 방어할 겨를도 없었다. 그런데 정작 눈이 마주치고 나서는 오히려 그가 더 경직됐다. 크게 홉뜬 눈동자가 생각지 못한 장면을 마주한 것처럼 흔들렸다.
“…….”
주위가 순식간에 고요해졌다. 눈앞에서 얼음이 된 시벨리우스만큼이나 지켜보는 사람들 역시 굳어 있는 상태였다.
“음…… 일단 이건 좀 놔줄래?”
그제야 정신이 돌아온 건지 시벨리우스가 황급히 내게서 손을 떼어냈다. 역시 본인이 의도한 상황은 아니었던 듯, 한눈에도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미안해. 내 이름을 알고 있길래, 아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어.”
거기까지 들으니 대충 무슨 오해를 한 건지 알 것 같았다. 아무래도 그가 여기 있는 게 허락을 받은 일은 아닌 모양이다. 인간을 경계하는 유니콘 일족이 룬인 그가 세상을 유람하도록 놔뒀을 리가 없으니 당연히 가출한 거겠지. 그런 중에 마주친 사람이 자신을 알아보는 것 같으니 발각됐다고 여긴 모양이었다.
“우리가 아는 사이인 건 맞지 않나?”
일부러 짓궂게 대답하니 마른침을 삼킨 그가 더 어쩔 줄 몰라 했다. 첫 만남에서 대뜸 아는 척을 해와서 당황했던 일이 엊그제 같은데, 이젠 정확히 그 반대의 입장에 놓이고 보니 여러모로 감회가 새로웠다. 그래, 시벨리우스. 내가 일방적으로 친한 척해서 참 당황스럽지? 나는 그것보다 더 당황스러웠단다. 여기선 해주지 못하는 말을 속으로 갈무리하려니 웃음만 나왔다.
“괜찮으니 신경 쓰지 마. 아무튼 이렇게 만나게 될 줄은 몰랐네. 어떻게 된 거야? 설마 여기서 일하고 있었던 거였어?”
주저하던 시벨리우스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자세한 설명은 해주지 않았지만 과정은 대충 알 것 같았다. 특별대를 운영하는 동안 주방 역시 임시로 일할 인원을 더 채용했다고 들었다. 그중에서 주방장 면접을 보고 합격한 모양이었다. 힐끔 바라본 그는 온통 뻣뻣하게 굳어 있었다. 노예 상단에서 봤을 땐 내가 인간이라는 이유로 구해줄 생각도 하지 않던 녀석이 지금은 아무렇지 않게 인간들 사이에 섞여서 생활하고 있으니 민망하긴 할 터였다. 확실히 전에 봤을 때만큼 차가운 분위기는 아니었다.
“네가 주방장이었다니, 이럴 줄 알았으면 진작 확인해볼 걸 그랬네. 어쩐지 음식이 다 맛있더라.”
“……맛있다고?”
“아, 나도 여기서 일하거든. 특별대 소속이야.”
그 말에 시벨리우스가 다시금 멈칫하다 고개를 끄덕였다.
“헌터라고 했었지.”
중얼거리던 그가 조금 망설이는 얼굴로 나를 바라보았다. 그리곤 머뭇거리며 입을 열었다.
“음식이 입맛에…… 맞아?”
“당연하지. 맛있다니까? 그냥 빈말이 아니라 진짜 엄청 맛있어. 나만 아니라 사람들 다 식사 시간만 눈 빠지게 기다리는걸?”
“……그렇구나.”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는 시벨리우스는 조금 안도한 듯한 모습이었다. 요리 실력에 자부심 넘치는 그만 알고 있어서 그런지 조심스러워하는 모습이 신선했다.
“근데 너무한 거 아니야? 제도에 있는 거였으면 나부터 찾아오지 그랬어. 그때 내가 어디로 오면 되는지 알려주지 않았어? 아, 혹시 잊어버렸던 거야?”
“그건 아니지만…….”
“그럼 왜?”
“의례적인 인사말이라고 생각했어.”
“설마 그럴 리가. 난 너 기다리고 있었는데?”
시벨리우스의 눈동자가 다시 흔들렸다. 말문이 막혔는지 얌전히 입을 닫는 모습에서 그가 느끼고 있는 충격과 혼란의 감정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흠흠.”
피식 웃으려는데 작은 헛기침 소리가 들렸다. 뒤쪽에 있던 슐츠가 보낸 신호였다. 그제야 주위에 있는 사람들에게로 시선이 미쳤다. 다들 돌아가는 상황을 이해하지 못해 어리둥절해하면서도 차마 끼어들지는 못하고 발만 구르는 모습이었다. 초조한 얼굴들을 보니 내가 이곳에 온 용건이 떠올랐다.
“그런데 무슨 문제야? 물이 왜 필요해?”
제도에선 모든 건물마다 수도 설비를 갖추고 있었다. 이런 큰 주방이라면 더욱 당연했다. 시벨리우스도 뒤늦게 상기한 얼굴로 황급히 표정을 고쳤다.
“밤사이에 수조에 무슨 문제가 생겼는지 오염된 물만 나와. 급한 대로 다른 데서 공수해오고 있기는 한데 시간이 부족한 상황이라…….”
“잠깐 볼 수 있어?”
고개를 끄덕인 그가 나를 즉시 지하에 마련된 수조로 안내했다. 연결된 관을 틀어보니 콸콸 쏟아지는 물색이 한눈에도 탁했다. 악취가 진동하는 게 어떻게 봐도 오염된 상태였다. 손으로 조금 받아 혀끝으로 살짝 핥아보니 싸한 느낌이 퍼졌다.
‘……독인가?’
아무래도 그냥 평범하게 더러워진 건 아닌 모양이었다.
“운디네.”
부름에 응답한 이가 곧바로 모습을 드러냈다. 허공에서 물이 솟아오르며 반투명한 소녀가 나타나자 지켜보던 이들 사이에서 숨을 삼키는 소리가 울렸다. 생긋 웃은 운디네가 양손으로 옷자락을 들고 인사를 건네 왔다.
“수조 안을 정화해줄래? 그리고 뭐가 섞인 건지 분석해줘.”
고개를 끄덕인 운디네가 수조 안으로 스르르 스며들었다. 잠가두지 않은 수도꼭지에선 여전히 물이 쏟아지는 중이었다. 곧 구정물처럼 탁하던 물색이 점차 맑아지기 시작하더니 완전히 투명한 색으로 변했다. 사람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헉, 물이 깨끗해졌어.”
“세상에…….”
감탄이 쏟아지는 가운데, 정화를 마친 운디네가 솟아올라 다시 내 옆에 사뿐히 내려앉았다.
“어떤 건지 알았어?”
운디네가 어깨를 으쓱여 보였다. 정확히 뭔지는 파악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전달해오는 설명을 듣고 있으려니 얼굴이 절로 찌푸려졌다.
“무언가의 피인 것 같다고?”
작은 잔 하나를 달라고 해서 내밀었더니 운디네가 그 안에 보라색 액체를 주르륵 채웠다. 정화하면서 독으로 작용한 성분을 따로 모아온 것이었다.
물과 섞였을 땐 악취가 심하더니, 따로 모아둔 것에서는 아무런 냄새가 나지 않았다. 흔한 피비린내조차 나지 않아 그냥 봐서는 물감이나 잉크처럼 보였다.
“이게 수조 안에 들어 있던 겁니까?”
“맞아요. 물에 섞여 있던 걸 추출한 거예요.”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으려니 슐츠가 다가와서 같이 액체를 살폈다. 질문에 고개를 끄덕이며 답해주는데 다른 곳에서 낮은 신음이 들렸다.
“이건…….”
놀라서 고개를 드니 시벨리우스가 굳은 얼굴로 응시하고 있었다. 액체를 살피는 그는 조금 혼란스러워하는 표정이었다.
“이게 왜 이런 곳에…….”
“뭔지 알겠어?”
조심스럽게 물으니 그가 주춤거리다 고개를 끄덕였다.
“마목의 수액인 것 같아.”
“마목?”
그게 뭔가 싶어서 어리둥절해졌다가 곧 상황을 파악하고 얼굴을 굳혔다. 마목은 마계에서 자라는 나무를 뜻하는 호칭이었다. 식물이지만 몬스터나 다름없는 데다가 마계에서만 자생하기 때문에 평범한 방법으로는 결코 다른 세계로 건너올 수 없었다.
“확실해?”
“내가 아는 마목 중에 이런 색의 수액을 가진 게 있어. 등급이 높은 마목은 아니라 마력을 품고 있지는 않은데, 강한 환각을 일으킬 수 있어서 마족들이 정체를 드러내지 않고 장난칠 때 자주 쓰는 거야.”
다른 사람도 아니고 유니콘인 시벨리우스가 하는 말이면 거의 확실하다고 봐야 했다. 연달아 계속되는 균열도 문제인데 이번엔 마목의 수액이라니, 대체 뭐가 어떻게 되어가는 일인지 모르겠다. 한숨이 나오려는 걸 억지로 삼키고 일단 액체를 챙겼다.
“알려줘서 고마워. 이건 상부에 가져가서 바로 보고할게. 아무튼 수조는 정화됐으니 이제 괜찮을 거야.”
“……고마워.”
“별말씀을. 난 이만 가봐야겠다. 곧 순찰 시간이라 자리를 오래 비울 수가 없거든. 나중에 다시 만나러 올게. 남은 회포는 그때 천천히 풀자. 참, 오늘 점심 식단은 뭐야?”
속사포로 쏟아내는 말들을 조금 복잡한 표정으로 듣고 있던 시벨리우스가 마지막 질문에 입을 열었다.
“오리고기 스튜와 찐 감자, 전복구이. 후식은 단호박 푸딩이야.”
“와, 정말? 다 맛있겠다! 기대할게!”
원래도 식사 시간만 기다려왔지만 주방장이 시벨리우스라는 걸 알게 되니 그 시간이 더 기대됐다. 웃으며 건넨 말에 눈을 깜빡인 시벨리우스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아주 살짝 부드럽게 휘어진 눈빛에 내가 아는 그의 얼굴이 조금 보이는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