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정령왕 엘퀴네스-496화 (496/608)

제496화

한 드래곤의 사심으로 창설된 특별부대는 어처구니없게도 정말 필요한 존재가 됐다. 얼마 후부터 기다렸다는 것처럼 균열이 더 잦아졌기 때문이었다. 창단 이래 보름간 발생한 횟수만 벌써 열두 차례. 거의 매일 발생하다시피 하는 수준인데 심지어 출몰한 마수도 전부 상급뿐이었다. 본래라면 제도가 반파되었어도 이상하지 않을 재난일 텐데, 상시 대응하는 특별대의 활약 덕분에 피해 규모는 미미할 정도로 적었다.

덕분에 안 그래도 드높던 세피온 공작의 위명은 이제 거의 하늘을 찌르는 수준이었다. 위급한 순간이 하도 자주 오다 보니 (나를 비롯해) 헌터들은 강제로 부려진다는 불만을 감히 품지도 못했다. 너무나 짜 맞춘 듯한 흐름이라 혹시 그가 일부러 균열을 만들어내는 건 아닌지 의심스러울 지경이었다.

솔직히 마음에 걸리는 점이 한두 군데가 아니긴 했다. 그중에서도 가장 수상한 점은 그놈의 균열이 주로 우리 조의 직무 시간에 일어난다는 거였다. 지난 열두 번의 균열 중에서 여덟 번이 내가 근무 중일 때 발생했다. 구역이야 달랐지만 별로 의미는 없는 게, 일단 마수가 나타나면 지원을 나가기 때문에 결과적으로는 조 전체가 투입될 수밖에 없었다. 그때마다 합을 맞추다 보니 아인 이드리스와도 더는 거리를 두고 지낼 수가 없었다.

“엘, 이것 좀 봐주시겠습니까? 뭔가 불편한 것 같은데 어디가 잘못된 건지 모르겠습니다.”

“음, 팔을 조금 더 내려봐요.”

“이렇게요?”

“네, 그 정도. 거기에 무릎을 좀 더 굽히고요. 네, 그 자세예요.”

덕분에 요즘은 어울리는 정도를 넘어 쉬는 시간마다 틈틈이 아인 이드리스의 검술 연습을 봐주는 지경까지 이르렀다. 이쯤 되니 그냥 자포자기의 심정이라고 해야 하나. 나 때문이든 아니든 어차피 영향은 이미 받았고, 블레스터도 만들어질 거다. 어차피 귀한 검을 받는다면 그만한 자격이라도 갖추도록 돕는 쪽이 더 낫지 않을까 싶었다. 현실도피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이런 식으로 생각하니 마음은 훨씬 편했다. 그나마 아인 이드리스가 훈련에 성실하다는 점이 위안이었다.

‘습득이 좀 느린 편이긴 하지만.’

그거야 늦게 시작한 데다가 평소에 몸을 단련한 적이 없던 사람이니 어쩔 수 없는 부분이었다. 애초에 뛰어난 신체조건을 타고난 내 경우와 비교하는 건 더더욱 무의미했다. 어차피 실제적인 지도는 개인 교사가 알아서 할 테니 내가 신경 쓸 일도 아니었다.

듣자니 고르고 골라 어렵게 모셨다는 그의 검술 선생은 근위대 3기사단장으로, 제국에서 가장 정교한 검술을 구사한다는 정평이 난 기사라고 했다. 아무나 제자로 받아들이지 않는 데다가 받아들여도 천문학적인 수업료가 들기로 유명한 사람인 모양이었다. 대신 그만큼 확실하게 기사로 키워낸다니 지지고 볶아서라도 아인 이드리스를 쓸 만하게 만들어줄 터였다.

“근데 미네르바한테 배우는 것도 괜찮지 않아요?”

“예? 미네르바요?”

같은 동작을 반복하느라 땀을 뻘뻘 흘리던 아인 이드리스가 당황하며 돌아보았다.

“미네르바는 검술을 모를 텐데요.”

“본인에게 확인한 사실이에요?”

“아, 그건 아니지만…… 검을 쓰는 모습을 본 적이 한 번도 없습니다.”

“그래도 가르쳐줄 수 있을걸요? 정령왕은 타고난 지식도 있고 살아온 삶도 길잖아요. 뭐든 배워둔 게 많을 거예요.”

“음, 그것도 그렇네요. 거기까진 생각을 안 해봤습니다. 하지만 가능하다 해도 고려하진 않았을 것 같습니다.”

“왜요?”

“부끄러운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아서요…….”

아인 이드리스가 멋쩍은 얼굴로 뺨을 긁었다. 가족이나 연인한테서 운전을 안 배우려 하는 것과 비슷한 심리인가. 하긴 몸이 힘들면 짜증이 나기 마련이니 그런 점들을 신경 쓸 수도 있긴 하겠다. 솔직히 미네르바도 절대 봐주는 타입은 아니라 일단 시작하면 무참히 굴릴 테니 십중팔구 다투게 될 게 뻔했다.

‘헉, 혹시 그러다가 사이가 틀어지게 되는 거 아니야? 이러다 진짜 내가 부추기는 꼴이 되게 생겼네. 말조심해야지.’

그가 고민도 하지 않고 단호하게 거부해서 정말 다행이었다. 이번만큼은 아인 이드리스가 무척 마음에 들었다. 앞으로도 딱 지금처럼 내가 권하는 건 전부 거절해주면 좋을 것 같았다.

“그러고 보니 엘은 어느 분께 검술을 사사한 겁니까?”

“아, 저는 형한테 배웠어요.”

“형님한테서요? 엘을 가르쳤다는 건, 형님의 검술 실력이 더 대단하다는 겁니까?”

“당연하죠. 지금까지 한 번도 못 이겨봤어요. 스치기만 해도 이긴 취급 해줄 정도면 말 다했죠.”

“굉장하네요. 제가 보기엔 엘의 검술도 대단한데, 그런 엘이 스치기도 힘들다니. 형제가 재능이 다 출중하군요.”

내가 먼저 형이라고 했으면서 형제라는 말에 기분이 좋아지는 건 무슨 모순인지 모르겠다. 얼굴 못 본 지 오래된 누군가가 떠올랐지만 억지로 고개를 흔들어 털어냈다.

‘좋은 생각만 하자. 기분이 좋아지는 생각. 이를테면 오늘 먹을 점심 메뉴 같은 거.’

때마침 곧 점심시간이었다. 이 특별부대에서 유일하게 마음에 드는 곳이 있다면 바로 주방이다. 매끼마다 식사만큼은 책임지고 제공해주는데, 매일 식단이 달라지는 데다가 전부 고급 식당 남부럽지 않게 맛있었다. 오늘은 뭐가 나올지 상상하는 것만으로 잡다한 생각이 저 멀리 달아났다. 그러나 평화로운 시간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지원 요청입니다! 5구역에서 마수가 나왔습니다! 1급 대형 종입니다!”

조원 하나가 급하게 뛰어오더니 날벼락 같은 소리가 떨어졌다. 나도, 검술 연습을 이어가던 아인 이드리스도 얼굴이 바로 굳었다.

그게 바로 직전까지의 상황이었다.

“또 우리 근무 시간대에 발생했단 말이지…….”

이렇게까지 재수가 옴 붙을 수 있는 건가. 그게 아니면 정말 누군가 의도하기라도 한 걸까. 깊은 한숨을 내쉬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방금 막 마수를 처리한 현장은 수습하러 나온 병사들로 아직 부산한 상태였다. 전투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갈라진 바닥, 사체에서 풍기는 비릿하고 역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조금 전까지 전투에 임했던 헌터들은 각자 아무 데나 자리를 잡고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가벼운 생채기 외에 부상자는 없어 보였다. 꽤 먼 거리라서 걱정했는데 다행히 늦지 않게 도착한 모양이었다.

“고생하셨습니다.”

조금 떨어진 곳에서 직속 조원들이 인사를 해왔다. 항상 같이 움직이는 처지라 다른 이들보다는 가깝게 지내지만 그래도 아직 전체적으로는 데면데면한 관계였다. 가볍게 인사말을 돌려주고 나니 각자 알아서 휴식 장소를 찾아 흩어졌다. 한쪽에선 각 조의 조장들이 모여 회의를 하는 중이었다. 그들 사이에 있는 아인 이드리스의 모습이 보였다.

“저기, 아까는 감사했습니다.”

그때 한 무리가 머뭇거리며 다가오더니 그중에서 한 사람이 내게 고개를 숙였다. 어리둥절해졌다가 곧 그가 누군지 알아보았다. 조금 전 마수의 앞에서 넘어졌다가 죽을 뻔했던 헌터였다.

“다친 곳은 없으세요?”

“예, 덕분에 멀쩡합니다.”

“다행이네요.”

본인도 정신없는 상황이었을 텐데 기억하고 인사까지 하러 와주니 고마웠다. 웃으며 화답하니 얼굴이 상기된 그가 칭찬을 남발하기 시작했다.

“상급 정령사인데 검술까지 능하시다니, 정말 대단하시네요. 그 마수의 가죽을 한 번에 꿰뚫으시는 거 보고 오금이 다 저렸습니다. 저는 몇 번을 내리쳐서야 날이 겨우 박혔거든요.”

“칭찬 고마워요.”

“아니, 그저 사실을 말씀드린 겁니다. 솔직히 제가 보기엔 아인 이드리스보다 엘 님이 더 대단하신 것 같습니다.”

그러자 함께 온 사람들도 흥분해서 끼어들었다.

“앗, 사실 저도 그렇게 생각했어요. 검술이야 당연하고, 정령술도 주문이 짧을수록 더 뛰어난 거라고 들었거든요. 그런데 이드리스 님보다 엘 님이 훨씬 짧던데요? 둘 다 상급 정령이었는데.”

“맞아, 이드리스 님은 정령에게 지시할 때마다 길게 외치시던데, 엘 님은 따로 지시하시는 말이 거의 없으시더라고요. 그런데도 서로 한 몸처럼 움직여서 정말 신기했어요.”

아니, 뭘 또 그렇게까지. 동료를 구해준 고마움에 다들 어떻게든 띄워주려 혈안이 된 모양이었다. 거기에서 멈추면 좋았을 텐데, 이어진 말엔 얼굴이 찌푸려졌다.

“제가 보기엔 아인 이드리스는 좀 과대평가 된 경향이 있는 것 같아요. 듣기론 위급한 순간엔 그냥 정령왕을 불러서 해결한다더라고요.”

“그게 왜요?”

“무슨 일에건 미네르바만 부르면 되는 거잖아요. 남한테만 의지하는데 그게 본인의 실력이라고 할 순 없죠.”

“음? 원래 정령술은 소환한 정령에 의지하는 능력이에요. 아인이 왕의 계약자니까 미네르바의 힘이 곧 아인의 힘이죠. 가장 강한 힘으로 상황을 쉽게 해결하는 게 문제가 되나요? 칼이 있는데 굳이 나무 막대기로 고기를 썰진 않잖아요.”

“앗, 그렇게 말하시니 그런 것 같긴 한데…….”

당황한 사람들이 우물거리다 황급히 입을 다물었다. 기척에 돌아보자 아인 이드리스가 어정쩡한 자세로 서 있는 게 보였다. 난처한 얼굴을 보니 조금 전 대화를 다 들은 게 분명했다. 그가 조금 머뭇거리다 입을 열었다.

“균열은 완전히 사라졌다더군요. 이만 복귀하면 된다고 합니다.”

“아, 네.”

“그, 그럼 저희는 이만…….”

어색하게 웃은 사람들이 후다닥 몸을 피했다. 아니, 그러니까 일을 벌이는 건 다른 사람들인데 왜 자꾸 고통은 내 몫이 되는 거냐고. 빠르게 멀어지는 뒷모습들을 바라보다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조금 전 말은 신경 쓰지 마세요. 제가 도와준 것 때문에 고마워서 칭찬하려다 선을 좀 넘었던 것 같아요.”

“아닙니다. 사실 틀린 말은 아니니까요. 저도 엘이 저보다 더 뛰어나다고 생각합니다.”

아니, 이 녀석은 왜 또 이러지.

어이가 없어서 바라보니 아인 이드리스가 머쓱한 얼굴을 했다.

“이렇게 밝히긴 쑥스러웠습니다만. 사실 전 은사 계약에 더 가깝습니다.”

“그래요?”

“원래 정령왕을 소환할 정도의 마나를 가진 건 아니었는데, 미네르바가 제게 특별한 술을 주셨습니다. 그걸 마시고 난 후에 계약이 가능해졌죠.”

이건 몰랐던 이야기였다. 특별한 술이라면 설마 트로웰이 빚은 특제주인가? 인간의 능력치를 올리는 술은 그것 말고 달리 떠오르는 게 없었다. 미네르바가 멋대로 가져갈 수 있는 건 아니니 그럼 결국 트로웰도 이 계약을 도와줬단 말인데…… 와, 그래서 더 분노한 거구나. 자신의 도움을 받아 계약한 인간이 미네르바를 배신하다니, 그의 기분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머리가 다 아찔했다. 여태껏 죽이지 않고 참고 있는 게 용했다.

“음, 이해했어요. 그래서요?”

“아, 그러니까…… 정령왕과 계약한 게 온전한 제 능력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미네르바가 택해주지 않았다면 전 정령왕의 계약자라는 과분한 자리에 오를 수 없었을 겁니다.”

“하지만 선택받았으니 됐잖아요.”

“네, 물론 그렇긴 하죠. 하지만 제가 아닌 누구라도 그렇게 될 수 있었던 거니까요.”

이건 또 무슨 황당한 소리인지 모르겠다. 침착하게 대응하고 싶었지만 이번에도 얼굴이 찌푸려지는 걸 참지 못했다. 굳은 시선으로 바라보니 아인 이드리스가 당황한 얼굴로 마주 보았다.

“아인 이드리스. 뭔가 착각하시는 것 같은데요.”

“……예?”

“원래 모든 정령사는 정령 쪽에서 택하는 거예요. 인간이 택하는 게 아니라.”

움찔한 그에게서 숨을 삼키는 소리가 울렸다. 경직된 눈동자엔 동요가 가득했다. 누가 봐도 놀란 반응이라 오히려 내 속이 더 터졌다. 이걸 대체 왜 설명해야 하는 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소환 의식 자체가 정령의 눈에 들려는 과정이잖아요. 은사 계약은 그게 좀 더 표면적으로 드러나는 것뿐이죠. 정령왕의 선택은 아무나 받나요? 그리고 또 아무나 받는 거면 어때요? 자격이 안 되는데 선택받았다면 더 고마운 일이잖아요.”

“아, 저는…….”

시선을 떨군 아인 이드리스가 초조한 듯이 옷자락을 부여잡았다. 어둡게 가라앉은 얼굴이 파래졌다 붉어지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그 머릿속 생각이 조금도 짐작이 되지 않아 깊은 한숨이 절로 흘러나왔다. 설마 지금 이 순간이 또 영향을 주는 건 아니겠지. 하지만 나중에 후회할 땐 후회하더라도 이 말만은 해야 할 것 같았다.

“정령 계약에서 주권은 정령에게 있어요. 그걸 잊지 마세요.”

* * *

솔직히 말하면 그 뒤에는 후회했다. 근무 시간은 아직 더 남아 있었고, 안쓰러울 정도로 기가 죽은 아인 이드리스는 좀처럼 회복하지 못했다. 그냥 적당히 좋게 말해줘도 될 것을 너무 강하게 쏘아붙인 것 같았다.

하필 그가 조장이었던 탓에 우울한 공기가 조 전체에까지 영향을 미쳤다. 애먼 조원들은 눈치만 보기 바빴고, 어딜 가나 가시방석에 앉은 기분이었다. 끝내 분위기가 회복되지 못한 채로 퇴근한 탓에 자괴감이 더 컸다.

“역시 사람은 충동적으로 살면 안 돼…….”

저물어가는 하늘을 바라보며 허탈하게 중얼거리는데 어디선가 가벼운 웃음소리가 들렸다.

“기세 좋게 말하더니 벌써 후회하는 거야?”

“……!”

깜짝 놀라 눈을 크게 떴다. 급히 주위를 둘러보았지만 찾는 얼굴은 어디에서도 보이지 않았다. “이쪽이야.” 그때 다시 목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드는 순간 보이는 광경에 무심코 숨을 삼켰다. 나무 위에 그리운 사람이 앉아 있었다.

“안녕.”

눈이 마주치는 순간에 맞춰 그가 고개를 살짝 기울였다. 장난스러운 행동에 왠지 목이 메는 것 같았다. 조각상처럼 아름다운 소년의 외형. 다갈색 피부와 흑단처럼 새카만 머리카락. 심연을 들여다보는 듯한 황금안. 누가 봐도 틀림없는 그였다.

“……트로웰.”

그가 나무에서 훌쩍 뛰어내렸다. 바로 앞에서 보면서도 왠지 실감이 나지 않아 그에게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곧게 마주한 시선을 보고서야 정신을 차리고 간신히 웃었다.

“오, 오랜만이네.”

“난 별로 오랜만 아닌데.”

어색하게 건넨 인사에 삐딱한 대답부터 돌아왔다. 그렇게 가버려도 지켜보고 있긴 했구나. 이번엔 정말 화나서 갔기 때문에 관심도 완전히 끊었을 줄 알았다. 어쨌거나 그가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는 건 좋은 의미였다. 아니, 잠깐만. 근데 아까 벌써 후회하는 거냐고 물어보지 않았나? 그게 무슨 의미지? 뒤늦게 미친 생각에 들뜬 마음이 급격히 서늘해졌다.

“그, 혹시, 대화한 거 다 들었어?”

더듬더듬 물어보니 트로웰이 말없이 시선을 보냈다. 누가 봐도 들었다는 얼굴이라 발밑이 무너지는 듯했다. 하지만 더 큰 수난은 따로 있었다.

“들었지, 들었지. 정령 계약의 주권은 정령에게 있다! 와, 우리 도련님 맞는 말을 너무 잘해서 정말 멋지던걸?”

갑자기 이프리트가 유쾌하게 웃는 얼굴로 나타났다. 아니 이건 또 무슨 일이야. 입을 뻐끔거리고 있으려니 그 옆에서 스르륵 나타나는 또 다른 사람도 보였다. 이런 자리에 동조했다는 게 믿어지지도 않는 엘뤼엔이었다.

‘미친! 다 지켜보고 있었어!’

이럴 줄 알았으면 말하기 전에 주변을 좀 더 살펴볼걸! 최근엔 따라다니면서 지켜보는 일은 거의 없어서 방심하고 있었다. 있는 대로 잘난 척했는데 그걸 보고 있었을 줄이야! 뭉크의 절규가 왜 그런 형태로 표현된 건지 너무나도 잘 알 것 같았다. 쥐구멍이 절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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