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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령왕 엘퀴네스-492화 (492/608)

제492화

아니, 이건 또 무슨 참신하게 해괴한 짓이야? 급히 고개를 돌려 확인한 크리스는 아무것도 모르는 채 차를 준비하는 중이었다. 그 틈을 타서 빠르게 라미아스 옆에 붙었다.

‘이게 뭐하는 거예요, 지금?’

‘누굴 시키는 것보다 내가 직접 살펴보는 게 제일 편할 것 같아서. 영광인 줄 알아. 내가 또 한 연금술 하거든.’

‘아니,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미리 말이라도 해주든가요!’

‘넌 예고하고 연회장에서 뒤통수 쳤냐?’

아니 그거랑은 다르지, 이 드래곤아! 당신과 나는 그때 아는 사이도 아니었잖아!

아무래도 이 드래곤과는 절대 친해질 수 없을 것 같다. 혈압이 가파르게 올라 뒷목을 잡았다. 때마침 쟁반에 다과를 담아서 내오던 크리스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엘, 너 왜 그러고 있어?”

“아, 잠깐 목이 좀 결렸나 봐요. 별거 아니에요.”

다행히 그는 미심쩍어하면서도 크게 의심하진 않는 듯했다. 일단 더 중요한 문제가 있다 보니 그의 신경은 곧장 라미아스에게로 향했다.

“그 녀석은 좀 살펴보셨습니까? 어떻습니까? 치료가 가능하겠습니까?”

산뜻한 얼굴로 다비안을 요리조리 살피던 라미아스가 그 질문에 어깨를 으쓱였다.

“상태가 생각보다 더 괜찮군요. 이 정도는 무리 없이 치료할 수 있겠습니다.”

“정말입니까?”

“물론입니다. 지금 바로 시술에 들어가도록 하죠. 대략 한 시간 정도 걸릴 겁니다. 그동안 다른 일 보고 오셔도 됩니다.”

“아닙니다. 여기에 있겠습니다.”

“그러시겠습니까? 뭐, 편하신 대로 하시지요.”

라미아스의 느긋한 대답에 크리스의 표정은 더 밝아졌다.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듯한 무심한 태도가 자신감으로 느껴진 모양이었다. 실제로 마법 생물인 드래곤만큼 연금술에 능통한 존재도 없기는 했다. 생각지 못한 등장에 당황스러운 것과는 별개로 다비안을 생각하면 이보다 더 좋을 수 없을 만큼 잘된 일이었다.

한동안 라미아스는 가져온 짐꾸러미에서 이것저것을 꺼내 늘어놓았다. 가장 먼저 꺼낸 건 넓은 천 자락이었다. 사각형의 천을 바닥 위에 넓게 펼친 그는 그 위에 정체를 알 수 없는 푸른색 염료로 문양을 그리기 시작했다. 마법진인 것 같았다. 아무런 무늬가 없던 천 위에 화려한 문양이 한가득 채워져 나갔다. 어느 정도 완성되었다 싶을 때쯤 그는 그 한가운데 다비안을 앉혔다. 그리곤 이번엔 다비안의 얼굴에 문양을 그려 넣어갔다.

워낙 세밀한 문양이라 그 일련의 과정만 해도 꽤 시간을 잡아먹었다. 보는 것만큼이나 체력을 소진하는 일인지 라미아스의 이마에도 어느새 땀이 송골송골 맺혀 있었다.

“후우.”

어느 순간 붓을 멈춘 라미아스가 긴 숨을 내쉬었다. 조마조마한 표정으로 지켜보고 있던 크리스가 황급히 몸을 내밀었다.

“다, 다 된 겁니까?”

“설마요. 이제부터 시작이죠. 본격적으로 힘든 시간이 될 겁니다. 혹시 밧줄과 헝겊 없습니까?”

“네? 밧줄이요?”

“묶을 수 있는 거면 뭐든 좋습니다. 일단 이 사람을 단단히 묶어주십시오. 혀를 깨물지 못하도록 입안에 헝겊을 채워주시고요.”

그 말에 나도 모르게 크리스를 바라본 모양이었다. 얼빠져 있던 그가 붉어진 얼굴로 눈을 부라렸다.

“왜, 왜 그렇게 보는데?”

“아뇨…… 잘 묶겠다 싶어서.”

“아씨, 젠장. 다비안 이 자식 정신 차리기만 해봐.”

투덜거리면서도 크리스는 성실하게 끈과 헝겊을 챙겨왔다. 지시한 대로 다비안의 몸을 묶고, 입을 벌리게 해 헝겊을 채워 넣었다. 이런 순간에도 다비안은 조금도 저항하지 않은 채 눈만 깜빡이고 있었다. 자신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건지 전혀 의식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완벽하게 포박한 형태가 되자 라미아스가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런 과정이 필요한 이유는 곧 드러났다. 묶인 다비안을 마법진 위에 눕힌 후에도 여러 장치와 약품 따위를 신중히 배치한 라미아스가 황금색 액체가 담긴 시약병을 꺼내더니 마법진 위에 부었다. 그러자 문양을 따라 붉은빛이 일기 시작했다. 빠르게 번져나간 빛이 순식간에 다비안의 몸을 감쌌을 때였다.

“커윽!”

그 얼굴에 새겨진 문양에서도 빛이 일기 시작한 순간, 다비안의 입에서 거친 신음이 터져 나왔다. 경직된 몸이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묶어두지 않았다면 몸부림을 쳤을 게 분명했다. 라미아스는 그의 상태를 확인해 가면서 액체를 더 붓거나 가루 같은 것들을 뿌리곤 했다. 그때마다 다비안은 더 꿈틀거렸다. 고통을 호소하는 얼굴엔 식은땀이 줄줄 흐르고 있었다. 보는 사람도 아프게 느껴질 만큼 괴로운 시간이었다. 안색이 창백해진 크리스는 가만히 앉아 있기가 힘든지 몇 번이나 주먹을 쥐었다 폈다 해가며 방 안을 서성거렸다.

다행히 한없이 이어질 것만 같던 이 기나긴 과정에도 끝은 있었다. 어느 순간 다비안의 관자놀이가 멍드는 것처럼 검어지더니 무언가가 느린 속도로 피부를 꿰뚫고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새카만 석영 같은 긴 막대였다.

“이런 미친!”

빠르게 마른세수한 크리스가 욕설을 내뱉었다. 다비안은 정신이 완전히 나가 있는 것 같았다. 괜찮은 걸까 싶을 만큼 경련하던 그는 검은 막대가 완전히 뽑혀 나온 순간 바닥에 맥없이 쓰러졌다. 곧 쨍그랑 소리와 함께 검은 막대가 바닥에 떨어졌고, 그게 신호라도 된 것처럼 휘황찬란하게 빛나던 마법진이 서서히 식어갔다. 붉은빛이 완전히 꺼진 문양은 본래의 색을 잃고 새카맣게 그을려 있었다.

다 끝난 건가? 쓰러진 다비안은 여전히 거친 숨을 몰아쉬는 채였다. 눈을 뜨고 있는 걸 보니 의식을 잃지는 않은 듯했다. 가까이 다가간 라미아스가 그의 입에 물려둔 헝겊을 빼냈다.

“정신이 듭니까?”

건네진 질문에 다비안이 눈꺼풀을 천천히 깜빡거렸다. 이름을 부르지 않는 한 어떤 소리에도 반응하지 않던 눈동자가 또렷하게 라미아스를 응시했다.

“누구…….”

말했다!

나와 크리스는 거의 동시에 서로를 바라보았다. 저 상태가 된 이후로 다비안이 입을 연 건 처음이었다. 격정에 차오른 크리스가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 그동안 결박을 풀어낸 라미아스가 그의 몸을 일으켰다. 다비안은 부축을 사양하지 않으면서도 경계의 시선을 보내고 있었다.

“왜 내가……. 여긴…….”

“안심하세요. 전 당신을 도우러 온 연금술사입니다. 지금 막 당신 머리에 새겨진 사술을 제거한 참입니다.”

“사술……? 무슨 말인지…….”

“차분하게 기억을 떠올려 보세요. 우선 몇 가지 질문을 드리지요. 당신 이름이 뭡니까?”

“……리온.”

크리스를 바라보니 고개를 저었다. 아무래도 첩보원으로 생활해서 그런지 무의식적으로 가명을 댄 것 같았다. 라미아스는 아랑곳하지 않고 다음 질문을 이어나갔다.

“그렇군요, 리온. 나이는 몇입니까? 직업은요?”

“스물일곱…… 왕궁 사서. 당신 뭐야. 왜 이런 걸 묻지?”

“아아, 연금술사라니까요. 경계하지 마세요. 별다른 의미는 없으니까요. 그저 의식을 확인하기 위한 과정입니다.”

“의식…….”

“네, 여기 있는 이들을 알아보시겠습니까?”

그 말에 눈을 깜빡인 다비안이 눈동자를 굴려 이쪽을 확인했다. 그제야 이 장소에 다른 사람이 더 있다는 걸 인지한 듯했다. 나를 보고 멈칫한 그는 다음 순간 크리스를 발견하곤 눈을 크게 떴다.

“……크리스?”

“그래, 이 미친놈아. 나다. 알아보겠냐?”

“네가 왜…….”

당황해서 묻던 다비안의 얼굴이 천천히 굳어졌다. 무언가 깨달은 것처럼 나직하게 신음하는 걸 보니 드디어 자신에게 벌어진 일들을 알아차린 모양이었다.

“내가 구조된 건가?”

“그래, 인마! 너 이 자식, 내가 진짜 너 때문에 아주…….”

차마 다음 말을 잇지 못한 크리스가 그를 와락 끌어안았다. 잠시 움찔한 다비안이 천천히 손을 뻗어 마주 안았다.

“미안하다.”

“젠장, 미안하다면 다야? 이 망할 자식. 그러게 진작 그만두랬잖아. 몸조심하라고 그렇게 당부했는데. 내 말은 곧 죽어도 안 듣더니, 이 나쁜 자식!”

연신 욕하는 목소리에 물기가 서렸다. 다비안이 흐릿하게 웃으며 그의 등을 다독였다. 훈훈한 광경이었지만 분위기는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라미아스가 가볍게 손뼉을 쳐서 시선을 끌어모았기 때문이었다.

“자자, 지인도 알아보시는 것 같군요. 현재 상황도 인지하시는 것 같고요. 아주 다행입니다. 그럼 마지막 질문을 하겠습니다.”

“이 정도면 확인은 다 된 거 아닙니까?”

“아닙니다. 아직 가장 중요한 질문이 남아 있습니다.”

의아해하는 크리스에게 단호히 답한 라미아스가 몸을 굽혀 다비안과 시선을 똑바로 맞췄다.

“리온, 석양의 피를 삼키는 방법을 기억하고 있습니까?”

이어진 질문에 크리스의 얼굴이 굳어졌다. 다비안 역시 가볍게 숨을 삼켰다. 동요를 비치던 눈동자가 이내 차분히 가라앉았다. 눈을 느릿하게 감았다가 다시 뜬 그의 얼굴에선 표정을 전혀 읽을 수 없었다.

“……기억합니다.”

“사그라지는 붉은 세상에서 당신의 역할은 무엇입니까?”

“은밀하게 숨어드는 새벽의 흑표범.”

잡음 없이 고요한 공간에 또렷한 음성이 울렸다. 다비안의 눈을 똑바로 응시하던 라미아스의 얼굴에 미소가 어렸다.

“좋습니다. 이 정도면 확실히 기억은 온전하네요.”

그는 매우 만족스러워했지만 방 안의 분위기는 아주 엉망이었다. 특히 그를 노려보는 크리스의 눈길은 흉흉하다 못해 타들어 가는 것 같았다. 주먹을 움켜쥔 그에게서 이 갈리는 소리가 울렸다.

“당신…… 그냥 평범한 연금술사가 아니었군.”

“모르셨군요. 연금술사란 원래 평범하지 않습니다.”

느긋한 대답에 크리스의 안광이 더 형형해졌다.

“목장과 화단 중에서 어느 쪽이지?”

“석양이 깔린 들판에 흐드러진 한 송이 꽃입니다.”

“아이기스군.”

어떤 기준인 건지 모르겠지만 아마도 비밀 기관들을 칭하는 은어인 모양이었다. 소속을 파악한 크리스와 다비안이 경계하는 태도를 보이자 라미아스가 생긋 웃었다.

“안심하세요. 우린 적이 아니니까요.”

“그 말을 어떻게 믿어?”

“적이었다면 이렇게 얌전히 찾아오지도 않았겠지요?”

“…….”

“예민하게 반응하시는 건 이해합니다, 라케인 크리스. 한때는 솔개라 불렸던가요. 움브라와 접선하려다 습격당했으니 지금은 모든 것들이 다 의심스럽겠지요.”

“그것도 알고 있다고?”

“우리가 하는 일이 바로 그런 것들인 걸요. 대강의 상황은 파악하고 있습니다. 국장님께서 근심이 아주 크시답니다.”

라고, 내가 알려줄 때까지 하나도 모르고 있었던 국장 장본인이 뻔뻔하게 대답했다. 그 말에 두통이 있는지 머리를 문지르고 있던 다비안이 멈칫하며 크리스를 응시했다.

“습격이라니?”

“아, 그게…….”

“당신이 전해달라 한 것들을 전하려던 과정에서 벌어진 일이죠. 며칠간 감금까지 당하고, 아주 위험했답니다.”

당황한 크리스가 대답을 망설이는 사이 라미아스가 얄밉게 끼어들었다. 다비안의 얼굴이 굳어진 건 당연한 수순이었다. 라미아스를 진득하게 노려본 크리스가 한숨을 내쉬었다.

“신경 쓰지 마. 보다시피 난 멀쩡해. 무사히 탈출했고, 며칠 창고에 갇혀 있던 거 외엔 별다른 일도 없었어. 하지만 물건은 잃어버렸어. 미안하다.”

“……네가 사과할 일이 아니야. 무사해서 다행이다. 네가 그거 때문에 잘못되었다면…….”

다비안의 표정이 흐려졌다.

“그래서 그 잃어버린 물건에 대한 것 말입니다만.”

급격하게 가라앉은 분위기를 전환한 건 이번에도 라미아스였다. 다시금 손뼉을 친 그에게 두 남자의 시선이 향했다. 물론 절대 고운 시선은 아니었다. 라미아스는 여전히 신경 쓰지 않았지만.

“상황은 어디까지 기억합니까? 관련 문제로 국장님께서 당신을 만나고자 하십니다.”

“임무에 관한 건 저희 대장님께 보고하겠습니다.”

“아쉽게도 넥시아 님은 뵙기 어려울 겁니다.”

“무슨 뜻입니까?”

“넥시아 님은 사흘 전 모종의 작전 중에 소식이 끊겼습니다. 요원 여섯 명이 파견된 특수 작전이었고, 전원 실종. 생존 가능성은 희박합니다.”

입을 다문 다비안의 얼굴이 창백하게 질렸다. 크리스의 얼굴도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오늘 제가 여기에 온 건 당신에게 이 소식을 전해드릴 목적도 있었습니다. 대장 넥시아가 사라진 움브라는 금일부터 부대장인 파벨이 지휘권을 이어받고, 아이기스와의 공동 작전은 봉쇄됩니다. 지금 복귀하는 건 별로 추천하지 않습니다. 지금 당신은 작전 중 이탈한 상태로 되어 있습니다. 복귀 즉시 체포될 겁니다.”

“필요한 절차와 심문이라면 받겠습니다. 움브라에서 직접 하달한 지시 외에는 따르지 않습니다.”

“굳이 직접 확인하시겠다면야.”

라미아스는 아쉽다는 듯이 혀를 차면서도 순순히 물러섰다. 물론 언제든지 마음이 바뀌면 연락하라며 쪽지 하나를 건네주긴 했지만. 다비안이 그 쪽지를 펼쳐볼 일은 없을 거라는 것만은 알 것 같았다.

“그럼 전 이만 가보겠습니다. 사술은 제거됐지만 잔류한 게 남아 있을 수 있어서 잘 관리해줘야 합니다. 한동안 두통이 좀 있을 겁니다. 약을 두고 갈 테니 통증이 있을 때마다 섭취하세요.”

가방을 꾸린 라미아스가 탁자 위에 약병 하나를 놓아두며 말했다. 그가 돌아간 후에도 무겁게 가라앉은 분위기는 풀릴 줄을 몰랐다. 두 사람이 해후를 나눌 시간도 필요할 테고, 다비안이 안정을 취해야 하는 상황이기도 해서 나 역시 적당히 눈치를 보다 자리를 빠져나왔다. 미안해하는 크리스에겐 다음에 보자는 말로 화답해주었다.

먼저 나간 라미아스가 혹시 날 기다리고 있진 않을까 싶었는데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부연 설명을 듣기는 틀린 모양이었다. 그런데 숙소에 돌아와 보니 뜻밖의 상황이 펼쳐져 있었다.

“도련님, 어서 와.”

“…….”

반갑게 맞이하는 이프리트의 맞은편에서 어디서 많이 본 푸른 머리칼의 남자가 느긋하게 차를 마시는 중이었다. 누가 봐도 라미아스였다. 눈이 마주치자 그가 가까이 오라는 듯이 손가락을 까닥거렸다. 다비안 앞에선 얄미울 정도로 생글생글 웃고만 있더니, 지금 그는 명백히 심기가 불편해 보였다.

“일이 너무 짜증 나게 돌아가.”

자리에 앉자마자 투덜거리는 소리가 이어졌다.

“뭐가 어떻게 된 거예요?”

“말한 그대로야. 움브라 대장이 실종됐어. 판단 보류 상태였는데 오늘 아침에 최종 확정됐지. 그래서 공동 작전은 전면 중단이야. 원래 수장의 신변에 문제가 생기면 진행하던 작전들은 일단 봉쇄하거든. 완전 제대로 꼬인 거지.”

그래서 열이 오른 김에 다비안을 직접 치료하러 행차한 거였나 보다. 연거푸 머리를 쓸어 올리는 라미아스는 짜증을 숨기지 못했다.

“그 녀석이 순순히 나오면 좀 좋아? 복잡한 절차 좀 줄여보려 했구만, 굳이 고생길을 자처할 건 뭐야? 꽉 막히게 생겼다 싶더니, 생김새만큼 피곤한 성격이긴!”

“아이기스 요원이 움브라 대장한테 순순히 정보를 제공하면 어떻게 하실 건데요?”

“당연히 죽여버려야지.”

휘어진 푸른 눈동자가 사납게 빛났다. 짜게 식은 기분으로 바라보니 그가 뭐가 문제냐는 뻔뻔한 표정으로 고개를 치켜들었다. 굳이 이런 점까지 라피스를 닮을 필요는 없는데. 여기선 이미 이렇게 됐으니 어쩔 수 없지만, 돌아가서는 절대 엮이지 말아야지. 속으로 굳게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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