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78화
아인 이드리스가 나를 바라보았다. “나중에 뵐게요.” 내가 그렇게 말하니 그가 실망한 얼굴로 시무룩해졌다.
“그럼 언제 뵐 수 있겠습니까?”
“뭐든 나중에 정해. 방해하지 말고.”
내가 답하기도 전에 이프리트의 말이 이어지는 게 더 빨랐다. 아인 이드리스가 기가 막히다는 표정을 지었지만, 이프리트는 오히려 더 손을 휘저을 뿐이었다. 결국 그는 변변찮은 기약 없이 그대로 떠날 수밖에 없었다. 나는 침울하게 어깨를 늘어트리고 나가는 뒷모습을 바라보다 이프리트를 돌아보았다.
“정령사한텐 더 친절하다더니?”
“쟨 예외야. 미네르바를 배신한 애잖아.”
거침없이 돌아온 대답에 몸이 절로 움찔했다.
“아직 배신 안 했는데……?”
“한 거나 다름없지. 트로웰은 같은 정령왕의 미래는 잘 보지 못해. 그런데도 봤다는 건 그만큼 선명한 예지라는 거야. 우리 중에 그 예지를 믿지 않는 건 미네르바 본인밖에 없어.”
“……음, 일단은 내가 막아볼 예정이긴 한데.”
“알아, 들었어. 근데 어려울걸? 게다가 바뀐다 해도 마찬가지야. 트로웰이 보는 미래는 인과에 얽혀 있기도 해. 그냥 뜬금없이 벌어지는 일이 아니라 애초에 가능성이 있기에 나타난 결과인 거야. 즉, 저놈은 원래 그럴 수 있는 녀석이라는 소리지.”
아, 그래서 그런 미래를 본 것만으로도 트로웰이 그를 싫어하는 건가. 바뀔 수도 있다는 걸 알면서 너무 적대시하는 거 아닌가 싶었는데 이제 좀 의문이 풀렸다. 상황이 사람을 그렇게 만든 게 아니라 그런 사람이라 상황을 그렇게 만들어간다는 말인가 보다. 속으로 고개를 끄덕이고 있는데 시큰둥하게 중얼거린 이프리트가 나를 돌아보았다.
“그러니 너도 괜한 죄책감은 느끼지 마.”
“어?”
“네가 그 미래를 막는 데 실패해도 네 책임은 아니라는 소리야.”
속을 읽힌 기분에 뜨끔해졌다. 뭐든 말하고 싶은 기분에 입을 열었다가 그대로 다물었다. 어쩌면 누구에게든 이 말을 듣고 싶었던 건지도 모른다. 괜히 고마우면서도, 그게 참 비겁하게 느껴져서 마음이 가라앉았다.
* * *
엘뤼엔과 트로웰이 돌아온 건 그로부터 사흘 후였다. 내가 제도에서 유명하다는 맛집을 전부 섭렵하고도 모자라, 근방의 도시까지 진출했을 무렵이었다. 여느 때처럼 일과를 마치고 숙소에 돌아왔는데 캄캄해야 할 방에 빛이 들어와 있었다. 황급히 문을 여니 안에 있던 두 정령왕이 돌아보았다.
“앗, 이제 돌아온 거야? 어서 와!”
“왔냐.”
반가워하는 내 뒤에서 이프리트의 떨떠름한 목소리가 이어졌다. 빙긋 웃어준 트로웰과는 달리 엘뤼엔은 무표정했다. 잠시간 문간에 서 있는 우리 둘을 가만히 바라보던 그가 내게 시선을 고정했다. 왠지 모르게 삐딱한 시선이었다.
“왜, 왜?”
“살이 쪘군.”
“헉? 진짜?”
그동안 너무 많이 먹었나? 온종일 음식점만 탐방하러 다녔으니 근래 들어 많이 먹긴 했다. 검술을 배우는 중인데 멋대로 살찌면 안 되는 거 아닌가? 놀라서 거울을 들여다보는데 엘뤼엔은 대꾸 없이 고개를 틀기만 했다. 트로웰을 바라보니 그는 조금 묘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혈색이 좋아지긴 했네. 활력도 더 생긴 것 같고.”
“정말? 그럼 안 좋은 쪽은 아니야?”
“굳이 말하자면 좋아진 쪽이야.”
다행히 걱정할 만한 상황은 아닌 모양이다. 하긴, 몸이 둔해진 느낌은 못 받긴 했다. 오히려 요즘은 가뿐하다고 여기던 참이었다.
“거참, 당연한 소리를. 매일 그만큼 지독하게 훈련하는데 좀 먹었다고 체형이 변하면 그게 더 이상하지. 오히려 그동안 식사량이 운동량을 못 따라갔던 것 같더만. 딱 보기 좋은데 저건 왜 오자마자 애한테 시비야?”
안도하고 있는 내 옆에서 이프리트가 투덜거렸다. 엘뤼엔의 서늘한 시선에 바로 입을 다물긴 했지만. 그런데 이번엔 트로웰이 미간을 찌푸렸다.
“식사량이 못 따라갔다고? 딱히 못 먹게 한 적은 없는데.”
“그래도 매번 혼자 알아서 해결하게 했지? 얘 지켜보니까 혼자선 적당히 먹는 편인 것 같더라고.”
나를 돌아보는 얼굴들에 그게 적당히 먹는 거였나 라는 표정이 스쳤다. 내가 생각해도 민망해서 어색하게 웃으려니 트로웰이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럼 같이 식사하는 시늉이라도 하란 거야?”
“왜 못 해? 애를 건강하게 잘 키울 생각이면 식사 자리 정도 같이 어울리는 게 뭐가 어려워? 고기랑 채소는 골고루 먹게 하고! 식후에 과일 같은 후식도 좀 챙겨주고! 가끔 맛있는 간식도 먹으러 다니고!”
“……이프리트. 보부가 되랬더니 역할에 몰입한 거야, 아니면 원래 체질이야?”
“너희가 너무 무심한 거거든?”
두 정령왕이 잡담하는 동안 내 신경은 계속 엘뤼엔에게 쏠렸다. 그는 팔짱을 낀 채 소파에 말없이 앉아 있는 중이었다.
‘기분이 안 좋아 보이네.’
원래도 반응을 보이는 편은 아니지만 오늘 그는 유난히 더 가라앉은 것 같았다. 영역을 복구하느라 많이 피곤했나 보다. 그러고 보면 이프리트는 원래 일주일은 걸릴 거라고 예상했었다. 생각보다 너무 일찍 돌아온 셈이었다. 좀 더 푹 쉬다 와도 될 텐데. 내 존재가 그에게 짐이 되는 것 같아서 마음이 무거웠다.
“저기, 엘퀴네스. 귀찮으면 굳이 안 내려와 있어도 괜찮아.”
그런데 뭔가 잘못 건드렸나 보다. 안 그래도 차갑던 시선이 더 살벌해졌다.
“필요 없으니 꺼지란 소린가?”
“아, 아니? 내가 언제 그렇게 말했다고…….”
“부득불 같이 다녀야 한다고 우기던 녀석이 이제 안 내려와 있어도 괜찮다?”
“난 그냥 엘퀴네스가 피곤할까 봐…….”
엘뤼엔의 눈썹이 다시금 꿈틀거렸다. 뭔가 굉장히 못마땅한데 화를 참는 표정이었다.
“너.”
“……넵.”
“뭔가 착각하는 모양인데, 내가 있을 곳은 내가 정한다. 건방지게 훈수 두지 마라.”
도대체 내가 어느 분노 지점을 건드린 건지 모르겠다. 얼른 고개를 끄덕이자 그는 지긋이 노려보고는 그대로 눈을 감았다. 억울하고 황당한 마음에 트로웰을 돌아보니 그가 조금 전처럼 묘한 표정을 지으며 웃었다.
“이건 네가 잘못한 것 같네.”
“……내가 잘못했다고?”
그냥 편히 쉬었으면 하는 마음에 건넨 말일 뿐인데. 뭘 잘못했다는 거지? 의미 전달이 약했던 건가, 그게 아니면 인간이 정령왕을 걱정하는 게 주제 넘는다는 뜻인가. 아무래도 이해할 수가 없었다.
“도련님, 신경 쓰지 마. 자기 계약자가 나랑 더 친해진 것 같으니까 빡쳤나 보네. 그러게 평소에 잘할 것이지.”
혀를 찬 이프리트가 듣기 좋은 말로 나를 위로했다. 그러나 기대감을 품기에는 그에게 얼음 창이 날아드는 게 더 빨랐다.
“아, 이 미친 새끼야! 아니면 말로 할 것이지, 이런 좁은 데서 그런 흉악한 걸 던지고 난리야!”
간발의 차이로 창을 피한 이프리트가 버럭버럭 소리 질렀다. 여느 때와 같은 것 같으면서도, 미묘하게 불안정한 시간이었다.
오후엔 오랜만에 트로웰과 대련했다. 무게 가중 장치를 착용하지 않고 하는 대련은 처음이었다. 전보다는 수월했지만 뭔가 개운치 않은 느낌이 계속 따라붙었다. 사실 이건 최근 개인 훈련을 할 때도 계속 느끼고 있던 부분이었다. 정확히는 노예 상단에서 탈출한 이후부터였다. 트로웰도 그걸 느꼈는지 대련을 잠시 중단하고 물었다.
“왜 그래? 표정이 석연치 않은데.”
“으음, 그때 그 느낌이 안 나와.”
“무슨 느낌?”
의아한 얼굴로 묻는 그에게 나는 최대한 상세히 설명하려고 노력했다. 노예 상단에서 수많은 병사에게 쫓겼을 때 마법사를 상대했던 것. 그들이 펼친 방어 마법에 갇힌 꼴이 되었던 것. 그래서 몇 차례 두드린 끝에 결국 깨트렸던 것.
“그랬는데, 갑자기 검이 부서지더라고.”
“흠.”
“그 뒤에 다시 다른 검을 챙겼어. 그리고 또 방어막을 공격할 기회가 생겼고. 근데 두 번째 땐 안 됐어. 분명 처음이랑 같은 힘을 실었는데.”
아마 횟수가 부족했던 탓은 아닐 거다. 우연일 수도 있겠지만, 방어막을 깨트렸던 순간엔 느낌이 좀 달랐다. 평소엔 억지로 길을 내서 끌어왔다면, 그때만은 뭔가 속 시원하게 터지는 듯한 기분이었다. 이후로 계속 같은 감각을 찾아보려 했지만 아무리 해도 잘되지 않았다. 그러자 트로웰이 어이없다는 듯이 웃었다.
“그렇군. 서툴러서 안 쓰는 건가 했더니 아직 깨닫지도 못한 거구나.”
“어? 그게 무슨 소리야?”
“네가 말한 그 상황이 뭔지는 알아. 나도 그때 대충 보고 있었으니까.”
헉, 보고 있었구나. 그럴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지만 막상 그 요란한 현장을 지켜봤다고 생각하니 민망했다. 머쓱해져서 뺨을 긁으려니 그가 이채 어린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내 생각보다 잘 싸워서 좀 의외였어. 너도 할 때는 하는구나 싶었고. 가르친 보람도 느낀 것 같아. 결말은 별로 탐탁지 않았지만.”
“아하하…….”
“그런 점이 더 너답긴 해. 그건 좋은 점이긴 한데, 좀 싫은 것 같기도 하고…….”
흐려지는 말끝이 서늘하게 느껴지는 건 기분 탓만이 아닐 것이다. 그때 너무 맥없이 붙잡히긴 했지. 내가 더 강했다면 투항할 게 아니라 오히려 모두를 구하는 결말로 갔을 거다. “다음엔 더 노력할게.” 굳게 다짐하듯 말하니 그가 살짝 눈썹을 찡그리다 피식 웃었다.
“다음에 또 그런 일이 생기면 안 되지.”
“아, 그건 그렇네.”
“네 무능한 길드원들도 그걸 인지해야 할 거야.”
왠지 목소리가 낮아진 것 같아 의미를 생각해 볼 겨를도 없이 급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제야 음산한 기운이 감돌던 눈동자에 다시 온기가 돌아왔다.
“일단 검을 들어.”
이어진 말에 곧바로 검을 들었다. 엉거주춤 자세를 취하는 내게 다음 지시가 이어졌다.
“검 끝에 집중하고, 검신과 공명한다고 생각해봐.”
“공명?”
“검까지 네 팔이라고 생각해. 전신에 기운이 흐르게 한다고 여기면 편할 거야.”
검까지 내 팔이라고 생각한다라. 일단 하라고 하니 그대로 해봤다. 정신을 단단히 집중하고 검에까지 이어진다는 느낌으로 기운을 깊이 회전했다. 다행히 제대로 하고 있는지 잠시간 지켜보던 트로웰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다시 간다.”
비록 이어진 말은 예상치 못했지만.
“어? 자, 잠깐……!”
“제대로 집중해. 다시 흐트러졌잖아.”
갑작스러운 공격에 식겁해서 방어하니 트로웰의 얼굴이 찌푸려졌다. 정신을 바짝 차리고 다시 의식을 집중했다.
그 이후에는 평소와 같은 대련이 이어졌다. 몰아치는 공격을 피하고 막아가면서 내가 검과 한 몸이 된 듯한 집중을 유지하는 게 쉽지는 않았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검을 쥐었다는 감각도 잘 느껴지지 않았다. 검이 손안에 달라붙은 건지, 내 손이 검에 붙은 건지 구분이 되지 않았다. 그 감각에 익숙해지고 나니 트로웰의 움직임도 더 선명하게 보이는 것 같았다.
그래서일까.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더 대련이 수월해지는 기분이었다. 이제까진 트로웰의 움직임을 따라가는 것만으로도 급급했다면 지금은 그의 동선을 파악해볼 만한 여유가 생겼다. 몇 차례 궤도를 쫓으려니 왠지 손을 뻗어야 할 곳이 저절로 느껴졌다. 그러나 이대로는 닿지 않을 거라는 것도 알았다. 닿으려면 동선을 더 빠르게 예측하거나, 공격 범위가 더 넓어야 했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궤적을 넓힐 수 있다면. 마음이 초조해지니 힘이 더 실렸다. 순간 몸 안에서 무언가가 훅 빠져나가는 느낌이 들었다. 설핏 마주친 황금색 눈동자가 커지는 것이 보였다.
‘안 돼!’
상황을 의식했을 땐 몸이 멈춰 있었다. 억지로 경로를 튼 검을 부여잡고 가파른 숨을 내쉬는 채였다. 열기로 가득하던 공간에 싸늘한 정적이 내려앉았다. 트로웰이 묘한 얼굴로 나를 바라보다, 엄지손가락으로 자신의 왼쪽 뺨을 가볍게 쓸었다. 상처 난 피부에서 피가 흐르고 있었다. 그제야 내가 무슨 짓을 한 건지 정신이 번쩍 들었다.
“트, 트로웰! 괜찮아?”
“……너 지금 뭘 하는 거야.”
싸늘한 목소리에 다가가려던 걸 멈췄다. 마주친 얼굴은 명백히 노기를 띠고 있어 몸이 절로 움츠러들었다.
“미, 미안. 내가 너무 몰입해버렸나 봐.”
“그 말이 아니야. 왜 그 순간에 경로를 강제로 틀어? 다치려고 작정했어?”
“하지만 그대로 진행했으면 네가…….”
“지금 네가 날 걱정하는 거야? 감히 인간인 네가 정령왕을? 난 인간이 아니야. 검 따위에 찔려도 다치지도 않고 죽지도 않아. 운 좋게 날 역소환 시킨다면 넌 그냥 네 성장을 기뻐하면 되는 거야.”
“그치만…… 아프잖아.”
“그걸 지금 말이라고 해? 난 그냥 아픈 정도겠지만 자칫 잘못했으면 넌 죽었어. 즉사는 엘퀴네스도 어쩌지 못해.”
“…….”
“두 번 다시 이딴 짓 하지 마.”
솔직히 그러겠다고 자신은 못했다. 몸이 알아서 멈추는 걸 나도 어쩔 순 없었으니까. 차마 고개를 끄덕이지 못하는 나를 트로웰이 복잡한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역시 싫은 쪽 같아.” 알 수 없는 말을 중얼거린 후 긴 한숨을 내쉰 그가 한층 누그러진 얼굴로 입을 열었다.
“그래도 적응은 확실히 된 것 같네. 이제 좀 알겠어?”
“뭐, 뭐를?”
“네 검을 봐.”
그 말에 당황해서 시선을 내렸다가 더 크게 당황했다. 내 눈이 뭔가 이상해진 게 아닐까. 검날에 푸르스름한 빛이 흐르고 있었다.
“어?”
“그걸 공력이라고 해. 또는 오러라고도 하지.”
“허……?”
“반년 만에 입검의 경지라. 확실히 빠르긴 하네.”
“……입검?”
“검술에서는 검에 공력을 실을 수 있게 되는 경지를 입검이라고 불러. 이 단계가 완전해지면 나중엔 공력만으로 형태를 만들 수도 있게 되는데, 그런 사람을 검성이라고 하지.”
낯익은 단어에 겨우 정신이 들었다. 검성은 소드 마스터의 이곳 말이었다. 아니, 그전에 오러가 뭔지도 대충은 안다. 샴페인 용병들이 모두 오러를 다룰 수 있는 존재들이었다. 그들이 몬스터와 전투하는 광경을 숱하게 봐온 덕분에 그 위력이 얼마나 대단한지는 넘칠 만큼 잘 알았다. 그런데 내가 벌써 그 사람들과 같은 실력이 됐다고? 검술을 배운지 고작 반년밖에 안 됐는데? 내가 노예 상단에서 쉽게 날뛸 수 있었던 건 병사들의 실력이 낮은 탓도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단 말이야?
“아마 이전엔 무의식적으로 그걸 일으켰을 거야. 그래서 방어막이 깨진 거고. 검이 터진 것도 그 때문이야. 공력을 버티지 못하는 싸구려 검이었던 거지.”
벌린 입을 다물 생각도 못 하고 멍하니 트로웰을 응시했다. 시선을 맞춰온 그가 빙긋 웃었다.
“좀 더 분발해 봐, 천재 검사님. 장래가 아주 기대되니까.”
“으으, 너무 그렇게 띄워주지 마. 아직 뭐가 뭔지도 모르겠는데.”
“네가 대단하다는 게 실감이 안 나? 그럼 좀 더 실감할 수 있게 해줄까?”
“뭐, 뭘 하려고?”
주춤하며 경계하니 그가 눈을 나른하게 휘어 접었다. 쏟아지는 햇살이 그의 속눈썹 끝에서 별 가루처럼 반짝였다. 찬란하게 빛나는 것이 그의 화려한 금안인지, 반사된 햇볕인지 구분하기가 어려웠다.
“마침 적당한 기회가 있을 예정이거든.”